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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삼포(옥룡)지맥(終)

삼포(옥룡)지맥 제3구간 - 박포교차로에서 석계마을 임도까지

by 범여(梵如) 2026. 1. 24.

☞ 산행일시: 2026년 01월 18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짙은 미세먼지

☞ 산행거리: 도상거리15.8km+들머리 1.1km+날머리 0.5km / 7시간 5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박포버스정류장-박포교차로- 도로 삼거리- 청룡고개- 농업기상관측장비

                    갈림길-갈림길-두류산-다시  갈림길- 갈림길- 무명봉-안부- 삼면봉- 무명봉

                    나주C,C9번홀 티박스- 안부- 82.5m봉- 나주C.C입구-삼장고개- 91.6m봉

                   안부- 59.5m봉- 삼장터널 위- 문화류공 묘- 경주최공 묘- 79m봉- 안부

                   84.5m봉- 벙커봉- 안부- 암봉- 안부- 고흥류공 묘-101.2m봉- 갈림길- 안부

                   묵묘- 무명봉- 안부- 갈림길- 102.6m봉- 갈림길-인원부화장 입구- 무명봉- 안부

                   반남박공&천안김씨묘- 안부-장수황공&고성이씨 묘- 90.5m봉- 110.7m봉- 갈림길

                   할매당고개-운동기구- 말발굽바위-구수봉-다시 말발굽바위- 무명봉- 조망바위

                   솔골재- 묘지- 86.0m봉- 제주양공&낭주최씨묘- 오산로사거리- 목장

                    801번지방도 사거리- 남천파크골프장 입구- 해오름 농장- 가송리사거리

                    장수황공 가족묘- 화이트덕- 김해김씨 가족묘- 청도김씨&낭주최씨 부부묘

                    무명봉-농로-농로- 김해김공묘- 석계마을 임도- 석계마을회관

☞ 소  재 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왕곡면, 공산면

 

지난주에 영암, 나주지방에 눈이 내린다는 예보로 경남 고성에 있는 통영지맥을

짧게하고 와서는 2주만에 삼포(옥룡)지맥 3구간을 나서기로 하고, 준비를 하는데

몸뚱아리가 예전과는 다르게 주중에 쌓인 피로의 회복이 더디기만 하니 힘이든다.

그러나 어쩌랴...이제 지맥 산행이 9부 능선을 넘었으니 지금와서 멈출수는 없고...

오늘도 광주가는 심야고속버스를 타기위해 자정쯤에 호남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광주행 버스표

집앞에서 호남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막차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하루전에 예매한 버스표를 뽑아 1시간 넘게 대합실에서

멍때리기를 한 다음에 광주행 버스에 오른다.

 

내가 남도지방의 지맥길을 갈 때 자주 이용하는 이 버스는 밤새 달려서

광주에 도착하면 새벽 5시가 채 안되는 시간에 도착하니 모텔비를

아낄 수 있으니 꿩먹고 알먹고의 가성비가 아주 높아서이다.

밤새 버스에서 수면을 취하는 사이에 버스가 멈추면서 잠에서 깨어나니

광주터미널이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04:55)

광주발 → 영산포행 버스표

광주터미널에 도착하여 터미널 대합실 내에 있는 설렁탕집에서

이른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05시 50분에 해남행 버스를 탔는데

추운 날씨 탓인지 손님이라곤 달랑 나혼자다... 버스는 광주 진월동,

나주터미널을 거쳐서 1시간만에 영산포터미널에 도착한다

영산포터미널(06:50)

영산포 터미널에 도착하니 터미널은 아직까지 어둠이 짙게 깔려있고

사람들이 전혀없는 텅빈 대합실에는 冷氣만 가득하다...내가 오늘

산행들머리로 가는 115번 버스는 아쉽게도 간발의 차이로 놓쳐 버리고

박포교차로 근처로 가는 111번 버스는 20분정도 기다려야 한다

박포마을로 가는 111번 버스 시간표

영산포터미널에서 박포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고 15분이

조금 지난 시간에 박포마을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박포마을 버스정류장(07:30~42)

박포마을 버스정류장에 내리니 아직 일출 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상당히 춥고, 犬公들이 異邦人을 경계하듯

짖어되는데, 니들이야 짖던말던 버스 정류장에서 산행 준비를

한 다음에 산행을 시작한다

박포사거리(04:48)

전남 나주시 왕곡면 신포리에 속해있는 박포마을의 유래는 고려 말 학자 반남박씨

박상충과 포구(浦口) 이름을 따서 명명된 지명으로  박상충이 유년 시절에 배를 타고

서당을 다니던 시절, 마을 앞 포구(박포)에서 왕래하며 출세한 뒤 ‘박씨(朴氏)’와

‘포구(浦)’의 이름을 합쳐 ‘박포’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설은 마을에 장기를 잘 두는 박포라는 인물이 있어, 그 명성에 감탄해 마을

이름이 박포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박포마을은 고려조에 반남박씨, 조선 초에는

나주정씨 등이 정착하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박포사거리를 지나서 마루금으로 향하는데 

날씨도 상당히 춥고, 짙은 미세먼지가 장난이 아니다

2차선 도로(도로명 주소:화정로)를 따라서 들머리로 향하는데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숨쉬기가 힘이든다...하는 수 없이 불편하지만

마스크를 착용한다

박포교차로(07:55)

박포교차로에 도착하니 2주전에 스마트폰 베터리를 가져오지

않아 일찍 산행을 종료하고 이곳에서 개고생한 기억을 되살리니

쓴 웃음이 나온다...차량의 흐름을 파악한 다음에 무단으로 도로를

횡단한 다음에 들머리로 향한다.

도로 삼거리(08:00)

박포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도로를 따라서 1.1km를 걸은 다음에

마루금에 복귀하니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광주정씨세장비가

반겨준다.

마루금에 복귀하여 본격적인 맥산행을 시작한다

조금전에 박포마을에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본다.

짙은 미세먼지가 기저환자인 범여를 하룻종일 괴롭힐 듯 하고

좌측으로 우뚝솟은 두류산이 걱정스런 모습으로 내려다 본다

水路를 살짝 휘어지면 돌아가니...

짙은 미세먼지를 뚫고 떠오르는 日出

나는 미세먼지로 인해 숨쉬기가 힘드는데, 떠오르는 저 해도

나같은 심정이 아닐까?...날씨가 좋으면 해가 떠오르는 저 곳이

월출산이 멋지게 보이는 곳이련만, 오늘은 肉眼이 아닌 心眼으로

만족해야 할 듯 싶다

좌측의 수로 너머로는 나주시 반남면 청송리 장송마을이 보이는데

축사들이 많은지 쾌쾌한 畜糞냄새가 코 끝을 자극한다.

 

장송마을은 약 500년 전에 설립된 마을로 송림이 가장 무성하여 장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양천허씨 허주가 영산포 냉산에서 살다가 농경지를 찾아서 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생긴 동네라고 한다

수로를 따라서 활처럼 휘어져 돌아오니 굉장히 큰 목장과

태양광 단지가 보이는데 맥길은 목장 사이의 휀스를 

따라서 올라가면 오늘 산행길에서 처음 만나는 57.7m봉이 있다

우측의 목장으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가면서 송전탑이

있는 57.7m봉을 바라보며 걸어 농장 마당으로 들어서

휀스를 따라 가려는데 농장 쥔장인듯 한 분이 나와서 이곳은

길이없고, 지금 가축들의 전염병으로 민감한 시기에

아곳 출입을 안 된다고 하기에 아무말도 안하고 되돌아 나온다  

목장에서 쫒겨나와(?) 농기구가 있는 곳으로 가는데 태양광 단지로

들어가는 휀스문이 달려 있어서 가보니 자물쇠로 문이 굳게 닫혀있다

하는 수 없이 57.7m봉으로 향하는 맥길을 포기하고

태양광 단지를 끼고,농로를 따라서 서쪽으로 향하지만

많이 아쉽다

초반부터 너무 아쉬워서 태양광 단지 울타리를 끼고 능선으로 향한다

능선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57.7m봉의 모습

능선으로 오르는데 도저히 틈이 보이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

그래 초반부터 힘빼지 말자... 포기하고 다시 내려간다

과수원을 빠져나와 마을로 내려간다

소득도 없이 개고생을 하다 마을로 내려서니 허탈하다.

우측의 배밭 위로 이어지는 마루금과 앞에 보이는

두류산이 내려다보며 하는 말...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서

이 험한 세상을 우짜살라고 하나 하면서 혀를 찬다

마을을 빠져나오니 2차서 도로가 보이는데 청룡고개이다

청룡고개(08:22)

나주시 반남면 청송리 청룡마을과 왕곡면 신포리 삼장마을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 도로(도로명 주소:청송로)가 지나가고 고개 남쪽에는

족보있는 두류산이 있고, 두류산 자락에는 나주C.C가 있다.

 

지명의 유래는 동쪽에 있는 청룡마을에서 따온 것으로 청룡마을은

울창한 숲이 용의 형체를 닮아 ‘청룡’이라 칭해졌다고 하며, 일제시대때,

행정 개편으로 ‘하두’로 강제 개명되었으나, 1990년 원지명인 ‘이암’으로

복원되었으며, 청송리에는 이암, 청송, 상두마을이 속해있다.

 

이암마을은 무안박씨 박겸이 무안에서 임진왜란으로 종군하다 낙오되어 호산북거

십리두류산남록단에 약 1600년대에 설립된 마을로서 마을지형이 지네형국인데 주위에

삵쾡이(짐승) 형태의 바위가 있어 이 바위가 지네를 지켜 주는 형태이므로 이안마을로

칭하였으나 일제시대의 행정 개편으로 윗마을을 상두라 칭하고 아래 마을인 본 마을을

하두라 칭하다 다시 이암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청룡마을은 500년전에 설립된 마을로서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서 그 지형 형태가 용의

형체를 닮아서 청룡이라 유래된 마을이며, 장송마을은  양천허씨 허주가 영산포 냉산에서

살다가 농경지를 찾아서 다니다 본 마을에 안주하여 살다가 경주김씨의 부인을 맞아

결혼하여 살면서 생긴 마을로 약 500년 전에 설립된 마을로 송림이 가장 무성하여 장송이라

불려진 마을이며, 상두마을은 450년전에 설립된 마을로써 지형 생김새가 되로 가득 채워져서

넘치는 형태로 되어 있고, 항상 곡식이 충만되어 왔고, 재산을 모으면 반드시 마을을 떠나게

된다는 전설이 있으며 상두남이라고 칭하다가 일제시대부터 상두라 불렀다고 한다

흥복마을은  마을 뒷산의 형태가 제비집형이라 하여 초창기는 부를 누릴 수 있으나 후일은

패촌이 된다고 하여 화를 면하기 위해서 흥복이라 부르면 계속 복을 누린다 하여 지금까지

전해지는 마을 이름이다.

청룡고개를 가로질러 두류산으로 향하는데 아직까지 날씨가

추운지, 스마트폰의 트랙을 확인하기 위해서 장갑을 벗으면

손가락이 빠질것만 같다...그래도 다행인 건 지난주에

이곳에 눈이 왔다고 했는데, 등로에 눈은 보이지 않고, 서리로

인해 미끄러울 뿐이다

농업기상관측장비(08:24)

갈림길(08:25)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올라서니 고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亡者들의 천년주택을 조용히 빠져나와 두류산으로 향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두류산으로 향하는 길

고도차는 별로 없으나 서리를 맞은 등로의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갈림길(08:33)

우측으로는 지맥길이고 직진은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두류산이 있기에 두류산으로 향하는데, 산 아래와는 달리

두류산으로 향하는 길은 바람에 세차게 불어온다

거센 바람의 횡포(?)에 맞서면서 올라서다가...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르지 못한 57.7m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는데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허나!...어쩌랴 

집착을 버려야지

두류산(斗流山:106.0m:08:34)

전남 나주시 반남면 청송리와  왕곡면 신포리, 공산면 상방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예전에 헬기장이었는지 흔적들이 보이나, 지금은

뭔 용도인지는 몰라도 야자매트가 깔려있다...커다란 소나무에는 맨발님의

산패가 걸려있고, 그리높지 않은 산임에도 전망은 아주 좋은 곳이지만

오늘은 아주 짙은 미세먼지도 모든게 흐릿하며, 숨쉬기조차 힘이 든다

산의 서남쪽으로는 나주C,C가 자리를 잡고 있다.

 

나주시의 지명 자료를 확인해 보지만 두류산에 대한 자료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며, 다만, 검색 결과에는 ‘청송리’ 자체의 옛 지명(덕동리)과 ‘듀류산’의

한자 유래에 대한 단서가 일부 제시되면 정확한 제시는 못하고 있다

‘듀류산(두류산)’은 한자 ‘두류산(두류山) 으로, ‘두류(두루/두루) 가 ‘모(茅)’에서

변해 ‘두류산’이 되었다는 설명인 즉, ‘듀류산’은 ‘모(茅) 산’의 변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류산 정상의 모습

바람이 너무 세게불고 추워서 서둘러 갈림길로 되돌아 간다

다시 갈림길(08:36)

갈림길로 내려서니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본격적인 잡목과의 전투(?)를 시작해야 할 듯 싶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있는 legend의 흔적

누가 지나갔을까?

두류산을 내려서면서 잡목과의 사투를 벌이는 사이 미세먼지을

안 마시려고 쓴 마스크는 어디로 달아났는지도 몰랐고

잠깐 사이에 등로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서니 누가 지나갔는지

전지가위로 동백나무를 짤라놨다...이곳 사람들이 이 험한 곳에

올리는 만무할 것이고, 아마도 맥산꾼의 흔적인 듯 하다.

어쨋던간에 고맙습니다

갈림길(08:40)

사람이 죽으란 법이 없는가 보다...두류산을 내려서면서

초반부터 잡목의 저항으로 인해 바지가 찢어지고 손에는

망개나무의 횡포(?)로 선혈이 낭자하다...그나마 다행인 건

희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무명봉(08:42)

또다시 망개나무(청미래)의 횡포는 시작되고...

안부(08:45)

등로에서 바라본 나주시 왕곡면 신포리 삼장마을의 모습

나주시 왕곡면 신포리의 삼장마을(삼장리) 유래에 대한 명확한 정보는 

알수가 없으며, 신포리는 내동·박포·산정·신흥 등 여러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마을의 이주·정착 과정에서 ‘정자(정착자)’가 생기며 이름이

붙었다는 설명이 제시 있을 뿐 마을 지명에 대한 유래는 없다.

 

예를 들어 내동은 1559년 무안 삼향면에서 정착산정은 1900년경

경주인 최덕진이 이주했다라는 이런 식으로... 

삼면봉(81m:08:46)

멋진 묘지가 있고 삼장마을이 보이는 곳에서 올라서니 봉우리가

나오는데 잡목으로 인해 봉우리의 분간조차 안되는 곳에 선답자의

시그널이 걸려있다...이곳이 나주시 왕곡면과 반남면,공산면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으로 이곳부터 남쪽은 지난 구간의 전라남도 종자사업소부터

같이 걸었던 반남면과 완전히 작별을 하고 공산면 상방리로 접어들면서

왕곡면과 공산면의 面界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계속해서 최근에 앞서 가신분들의 흔적을 만난다

참으로 길찾기가 難解한 곳인데 고맙습니다

좌측의 나무가지 사이로 나주C.C 골프장 페어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무명봉(08:51)

벌목을 능선을 헤치고 내려서니...

 나주C.C 9번홀 티박스가 나온다

나주C,C9번홀 티박스(08:54)

나주C,C는 9홀로 조성된 퍼브릭 골프장으로 아마도 똑같은 코스를

2번을 라운딩하는 모양이다...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휴장을 했는지

골프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9번홀은 Par5홀로 거리는 410m이고 도그레그 홀(dogleg hole)이다.

화이트 티박스 아래로 내려가는데 서리로 뒤덮힌 페어웨이는 상당히

미끄럽다...조심해서 내려가다 잠시 방심하여 된통 앞으로 꼬꾸라진다

액땜 한 셈치고 일어나 페어웨이를 계속 걸어간다

 

* 도그레그 홀(dogleg hole)의 유래는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온 여러 구전에 따르면, 골프의 기원라고 알려진 스코틀랜드에서

 지형적 장애물 (바위, 언덕, 강, 연못 등)로 인해 비교적 늦게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홀이 만들어졌으며 또 하나의 설에 따르면, 도그레그 홀의

 이름은 공격적인 개 '도그'의 개가 뛰어오르는 듯한 모습이 골프코스 안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연상시켜서 지어졌다는 것과 좌우로 휘어진 홀이 마치 개의 뒷다리(dogleg) 모양을

 하고 있어 dogleg hole로 불러지고 있으며 문헌에 따르면 1902년 영국잡지 골프

 일러스트레이티드(Golf Illustrated)라는 매거진에서 처음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출처 : 골프코스세미나(https://www.golfseminar.co.kr)

좌측으로 꺽어지는 도그레그 중간쯤에서 페어웨이를 벗어나

골프장 윗쪽에 있는 82.5m봉을 만나기 위해...

페어웨이 우측의 숲속으로 향한다

잡목의 거센 저항에 맞서 길이없는 곳으로 올라서니

올빼미산악회의 시그널이 하는 말...그냥 편하게

골프장으로 내려가시지,  '왜 사서 개고생 하요' 하고 충고를 한다

안부(09:00)

갈수록 가관이다...잡목의 저항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골프공들이 이 높은 곳에 왜?...

9번홀이 파5홀에다 도그레그 코스이다보니 아마추어 골프들은

거리가 짧아서 세컨샷을 하면서 드로우샷(draw shot: 골프에서,

샷을 할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부드럽게 휘어지도록 하는 스윙 동작)을

구사해야 하는데 아마추어 골프들은 드로우샷 구사가 쉽지않아

샷을 하다보니 슬라이스(slice:공이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것)가 나서

골프공들이 이 높은 산에 많은가 보다...가다가 깨끗하고 쓸만한 공들이

많아서 대엿개를 줍는다.

야...미치겠구먼...노간주와 망개나무의 횡포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82.5m봉 정상에 올라선다

82.5m봉(09:05)

준.희쌤의 산패는 보이지 않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보인다

내려가는 길도 장난이 아니다.

참으로 苦行이다...이 길도 내가 선택한 길이니 우짜겠노.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9번홀 티박스...골프장을 따라서

걸었으면 5분도 안 걸릴 길을 개고생하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佛家에서는 모든것이 고통이라는 걸 일체개고( 一切皆苦)하고 했다.

그렇다 세상을 살다보면 어디 쉬운일만 있었던 건...몇번이나 될까.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이겨내면서 살지 않았던가...이 길도 그 중에

한부분이라 생각하면서 걸어간다

드디어 고통의 길을 탈출하여 골프장으로 내려선다(09:20)

골프장으로 내려서면서 개고생하면서 걸었던 82.5m봉을

뒤돌아 본다...골프장으로 걸었다면 5분도 안 걸릴 거리를

30여분이나 걸렸으니...이런걸 사서 개고생이라 했던가...

9번홀 그린을 지나서...

나주C.C 정문으로 나간다

나주C.C입구(09:24)

나주C.C입구 좌측으로는 상방제라는 저수지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나주시 공산면 상방리 마을들이 미세먼지에 가려져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흐릿하게만 보인다

 

나주시 공산면에 속해있는 상방리(上方里)에는 상구(上龜) , 석해(石海). 백두(白頭)

복사초리(伏蛇草理)마을이 있다... 羅州吳氏 오득린(吳得隣:1564~1637이 1560년

임진왜란때 왜군을 무찌르기 위해 마을에 진을 치고 있다가 평정이 되어 후손이 머물러

살았다고 하며 석해(石海)마을은 과거 三浦江이 마을 앞으로 흐를 당시 마을에 浦口가

設置되어 있었던 곳으로 굽이 도는 물 이 맑고 깨끗하여 이름지어 현재에 이르렀다.

 

석해마을에는 천연기념물 제516호로 지정된 호랑가시나무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충무공을 도와 큰 공을 세운 오득린 장군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심었다 하며, 마을의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에서 오른쪽 지세가 약하다 하여 마을입구에 숲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이 호랑가시나무와 팽나무 10여주만이 작은 숲으로 남아있다.
호랑가시나무는 호랑이가 등이 가려우면 이 나무의 잎 가시에다 문질렀다는 유래가 있는

나무로서 우리나라 남해안에 주로 자라는데, 전북 부안의 호랑가시나무군락과

광주광역시의 노거수 1주가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이처럼 큰 나무는 찾아보기

어려워 호랑가시나무를 대표할만한 가치가 있다.

 

백두(白頭)마을은 마을 뒤 백두산의 정기를 받고 큰 인물이 배출될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어졌고, 4구는 동쪽의 문을 지키면 모든 악귀가 침범할 수 없는 고장으로 풀숲에 뱀이

엎드려 지킨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복사초리(伏蛇草理)로 불린다... 복사초리는 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나주를 쟁탈하기 위해 격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삼장고개(09:25)

나주C.C를 빠져 나오니 상구1구, 상구, 석해마을 버스 정류장이 있는 

821번 지방도(도로명 주소:자미로)에 도착한다...도로 우측에는 나주C.C

관리동이 보이는데 이 지역 사람들이 말하는 삼장고개인데

나주시 왕곡면 신포리 삼장마을과 공상면 상방리로 넘어가는

곳에 있으며, 삼장마을에 대한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나주C.C 관리동 입구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데...

풀이 죽은 칡넝쿨과...

억새를 헤치면 맥길을 이어간다

기온이 아침과는 달리 많이 올라가고 바람마저 불지 않으니

몸이 노곤해진다...물 한모금 마시려고 베낭을 내리면서

트랙을 확인하려고 스마트폰을 보려는데, 베낭 포켓에 있는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으니 갑자기 하늘이 노래진다

조금전 골프장 입구에서 트랙을 확인했으니 그리 멀리는

아닐거라 생각하며 왔던길을 되돌아 간다

근데 조금전에 지나온 길인데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200여m밖에 안되는 거리를 4번이나 이잡듯이 샅샅이

뒤지면서 가는데도 보이지 않으니 미칠것만 같다.

다시 도로로 가서 5번째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으면서

스마트폰 수색에 나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풀섶에 숨어있는 내 스마트폰이

쥔장을 애타게 기다린다...갑자기 다리가 풀리면서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버린다

도로에서 이곳까지 2~3분 밖에 안되는 거리를

스마트폰 수색작업(?)에 45분이나 허비했다(10:10)

나와 삼포(옥룡)지맥길은 참으로 얄궂은 인연인가 보다.

2구간에는 베터리를 가져오지 않아서 개고생을 했는데

오늘은 스마트폰 분실로 개고생을 하다니...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서니 족보에는 없는 91.6m봉 정상에

도착하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내리막길로 향한다 

91.6m봉(10:20)

다시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나 조금전에 비하면 양반이다

안부(10:24)

노간주나무의 횡포가 오늘따라 유난히 심하다.

기분같았으면 산행을 접고 싶지만, 천리 먼길을

왔으니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한다

59.5m봉으로 올라서는데 또다시 강한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한다

59.5m봉(10:30)

59.5m봉에서 삼장터널이 지나가는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향한다

남쪽으로는 23번 국도가 통과하는 공산면 소재지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미세먼지 탓이 잘 안보인다

 

나주시에 속해있는 공산면(公山面)은 조선시대 나주목 공수면(公水面)·

오산면(吾山面)이 합해졌으며, 나주시청에서 서남쪽으로 1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다시면, 왕곡면과 접경을 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영암군 시종면, 반남면, 서쪽으로는 동강면, 북쪽으로 함평군 학교면과 맞닿아 있다.

 

구수봉과 고문산이 솟아 있으며 가장 높은 곳이 해발고도 161m이고, 대부분 해발고도

20m 이하의 구릉지이며, 면의 북쪽으로 영산강이 흐르고, 영산강변 옛 사암(思菴)나루터에는

황포돛배 선착장이 꾸며져 있다... 영산강의 퇴적면에 제방이 구축되어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삼포강이 흐르는 넓은 저습지인 화산들이 있어 수리(水利)가 편리하여 농업이

발달한 고장으로 특히 공산면은 42,000평의 전국 최대 규모의 드라마 세트장 '삼한지테마파크'인

《주몽》 촬영지와 금광토굴의 젓갈, 충주산방, 신곡리 전통테마마을, 백만송이 홍련화가 자리한

우습제 등 볼만한 구경거리가 많이 있다... 면 소재지인 금곡리를 비롯하여 가송리, 남창리, 동촌리,

백사리, 복룡리, 상방리, 신곡리, 중포리, 화성리 등 10개 법정리를 관할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

보리이고 특산물로 고구마, 수박, 인삼 등이 생산되며 교통은 국도 23호선이 면의 중앙을 지나고 있다.

삼장터널 위(35m:10:33)

나주시 왕곡면 신포리와 공산면 상방리의 경계에 있으며 비교적 교통량이

많은 23번 국도(도로명 주소:남도의병로) 윗쪽으로 동물이동통로가 있다.

오룩스맵 지도에는 이곳을 삼장고개라 표시를 해놨고, 반바지님께서도

이곳을 삼장고개라 해놨지만...난 삼장터널 위라 표기를 한다

터널을 통과하여 좌측의 묘지 방향으로 향한다

문화류공 묘(10:35)

오르막길에는 묘지 사이로 이어지는 맥길이 계속되고...

몽테뉴(Montaigne, M.)는 그의 『수상록(隨想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어디에서 죽음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곳곳에서 기다리지 않겠는가!

죽음을 예측하는 것은 자유를 예측하는 일이다.

 

죽음을 배운 자는 굴종을 잊고, 죽음의 깨달음은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우리들을 해방시킨다.”고...

어쨌든 사람은 죽지 않으면 안 되고 단 한번 혼자서 죽는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끝막음이다.

누구도 피하지 못하고 거부하지 못하며 전신으로 맞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묘지에서 뒤돌아 본 59.5m봉

경주최공 묘(10:38)

경주최공 묘지를 지나 숲길로 들어선다

또다시 시작되는 노간주나무의 이지메

79m봉(10:41)

감사합니다

잠시지만 등로는 좋아지고...

안부(10:46)

흐릿한 등로를 따라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향한다

84.5m봉(10:51)

맥길은 북쪽으로 향하고...

벙커봉(10:53)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고난의 행군

안부(10:55)

아!...너무 힘들다. 모든걸 체념한 체, 맥길을 이어간다

암봉(10:57)

안부(10:59)

다시 내리막길에는 노간주와 망개나무의 괴롭힘에 관중과

동백나무, 고사리까지 합세해 집단으로 범여의 몸뚱아리를 괴롭힌다

맥산꾼이 그렇다고 갈 길을 안가는거 봤어...

무대포로 치고 내려가니 갑자기 나타나는

멋진묘지와 묘지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인다

1월 / 이외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
내가 서있다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한밤중에 바람은 날개를 푸득거리며
몸부림 치고
절망의 수풀들
무성하게 자라 오르는 망명지
아무리 아픈 진실도
아직은 꽃이 되지않는다.

내가 기다리는 해빙기는 어디쯤에 있을까
얼음 밑으로 소리죽여 흐르는
불면의 가움


기다리는 마음 간절할수록
시간은 날카로운 파편으로
추억을 살해한다.


모래바람 서걱거리는 황무지
얼마나 더 걸어야 내가 심은 감성의 낱말들
해맑은 풀꽃으로 피어날까

오랜 폭설끝에
하늘은 이마를 드러내고
나무들


결빙된 햇빛의 미립자를 털어내며 일어선다.
백색의 풍경속으로 날아가는 새 한마리
눈부시다.

고흥류공 묘(11:02)

자헌대부(資憲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를 지내신

고흥류공께서는 부인을 둘이나 거느리신 女福이 많으셨던 분이었나 보다

 

* 자헌대부(資憲大夫)는 조선시대 문신 정2품 하계의 품계명으로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文散階)의 품계인 정헌대부·자헌대부가 제정되어

 그대로 수록되었으며, 정2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군·위·좌참찬·우참찬·지사·판서·

  판윤·대제학·세자좌빈객·세자우빈객·도총관·제조 등이 있다.

*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는 조선시대 중추부에 소속된 종2품의 관직으로

  고려 초기에 1인이던 동지원사의 정원이 이처럼 대폭 늘어난 것은 고려 후기

  재추(宰樞)의 수가 많아진 것에 더하여, 세종 때의 중추원 복설에서 그 성격이

  문무의 당상관으로서 소임이 없는 자를 대우하는 기구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고흥류공 묘지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101.2m봉(11:07)

101.2m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등로는 희미하나

잡목의 저항이 별로 없어서 그런대로 걸을만 하다

등로는 사라지고 우측으로 시누대가 살짝 보인다

양호씨의 흔적을 만난다...제대로 가고 있다는 뜻이렸다

갈림길(11:14)

동백나무 군락지를 헤쳐나가 내려서니...

태양광 단지가 맥길을 가로 막는다

맥길을 가로막고 있는 휀스 너머로 가야할 102.6m봉이

얼굴을 내민다...안부로 내려서기 위해 우측으로 향한다

안부(11:17)

또다시 괴로운 맥길이 시작된다

묵묘(11:22)

무명봉(11:24)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흔적조차 찾기 힘든

竹泉선생의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힘들게 지나온 101.2m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작별을 고하는데, 내 生前에 이 곳에 올 일이

없으니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안부(11:25)

아주 잠깐 사이에 편안한 길을 걷다가...

갈림길(11:28)

또다시 잡목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며 한동안 버벅거린다

북서쪽으로 보이는 왕곡면 송죽리 방향으로는 산을 까뭉개고

태양광 패널로 도배를 하다시피 되어있고, 뒷쪽에 보이는

뾰족한 산이 봉의산(68.4m)이 얼굴을 내민다.

 

남도지방의 맥길을 걸으면서 유난히 만나는 태양광 단지...저 태양광이

과연 친환경 발전이 맞을까 하는데 많은 의문점이 대두된다...태양광

전기를 얻기위해 많은 자연을 파괴되어야 하니 말인가?

102.6m봉(10:38)

또다시 잡목의 저항에 직면한다...어디로 가란 말인가?

갈림길(11:40)

등로는 보이지 않고 숲속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흔적만이 이곳이 맥길임을 알려주는 듯 하다

지독한 잡목과의 死鬪를 벌이면서 내려가는 길.

몸뚱아리는 만신창이가 되고 점점 지쳐간다 

얼마나 내려갔을까...트랙을 확인하니 인원부화장이 나오고

鷄糞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거기다고 개쉬키들의 울음소리에

귀가 아플 정도이다...水路를 따라서 내려서니 인원부화장이 보인다

인원부화장 뒷쪽의 좌측으로는 87.1m봉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뾰족한 봉우리가 봉의산(68.4m)이다

조금을 더 내려오니 이곳에서도 태양광 단지를 만나고

그 뒤쪽으로 펼쳐지는 능선이 삼포(옥룡)지맥 마루금이다

태양광 단지를 끼고 내려선 다음에...

우측의 밭으로 내려서니 개집에 갇혀있는 개쉬키 한마리가

지랄발광을 하면서 짖어댄다...그 바람에 부화장에서 남정네

한사람이 나오더니 사유지에 들어왔으니 나가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인원부화장 입구(11:52)

미안하다고 하면서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숲으로

오르려는데, 그 남정네 쉬키가 입에 게거품을 물고

나가라고 지랄발광을 하는 바람에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도로로 나간다

도로로 나와서...

우측으로 향한다

우측으로 보이는 저 능선이 지맥 마루금인데

그 쉬키하고 시비하기 싫어서 우회길로 가는데

많이 아쉽다

수로를 끼고 우측으로 꺽어져 마루금으로 향한다 

마루금에 복귀하다(11:56)

태양광 단지와 가건물 사이로 이어지는 맥길을 따른다

가건물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갑자기 나타나는 고속도로같은 지맥길.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갑자기 길이 좋아진 의문이 풀렸다.

우측 아래에 있는 송전탑을 시공하면서 만든 임도 때문인 듯 하다

무명봉(12:05)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만든듯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2:07)

안부에서 올라서니 잘 꾸며진 묘지가 나오고 묘지 아래로

펼쳐지는 보리밭 너머로 공산면 남창리 마을도 미세먼지에

갇혀버려 많이 아쉽기만 하다

반남박공&천안김씨묘(12:09)

묘지에서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아침에 지나온

두류산이 조심해서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넨다

안부(12:11)

안부 좌측으로는 느티나무 조림지가 보이고...

우측의 넓은 임도로 올라서니 이동식 화장실이 나온다.

산에서 뭔 화장실이 필요한 겨...아무데나 싸면 되는데...

장수황공&고성이씨 묘(12:14)

묘지 뒷쪽으로 올라가니 지적도근점이 묻혀있는 90.5m봉이 나온다

90.5m봉(12:22)

지도상에 나오는 족보있는 봉우리는 아니다.

오룩스맵에서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무명봉이다

90.5m봉 정상에 묻혀있는 지적도근점

지적도근점이란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설치된 작은 표식으로

지도 위의 집처럼, 우리 땅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표식들은 전국 토지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필수적인 기준점이 된다... 예를 들어, 2023년 현재 전국에는 약 140만 개

이상의 지적도근점이 설치되어 있으며,지적도근점은 땅의 소유권을 증명하거나

토지 거래 시 정확한 경계를 확인하는데 사용되며 이는 마치 건물의 주소를

확인하는 것과 유사한 원리로, 측량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욱 정밀하게 관리되며,

1990년대 이후에는 GPS와 같은 위성 항법 시스템을 활용하여 위치 정확도를 높였다.

 

최근에는 5cm 오차 범위 내에서 위치 파악이 가능하며 지적도근점은 주로 콘크리트

말뚝이나 금속 재질로 만들어지며, 모양과 크기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110.7m봉(12:30)

족보있는 봉우리인데 준.희쌤의 산패는 안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어지럽게 걸려있다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갈림길(12:32)

아!...이게 누구십니까?

창원의 J3 멤버이신 이 분들이 지나가신지가 얼마되지

않았는지 시그널이 따끈따끈하다...지난해 3월 9일에

화원지맥 마지막 구간 운거산 근처에서 만났던 분이신데

시그널로 만나니 참으로 반갑구나...나같은 산꾼은 감히

범접조차도 하기 힘든 대단하신 분들이었는데...

아무리 산이 좋아도 안전이 우선입니다...늘 健安하셔요.

잠시후에 오를 구수봉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이곳에서도 잡목과의 엄청난

전쟁이 시작되는데 참으로 미칠지경이다

남쪽으로는 나주시 공산면 남창리의 마을들이 흐릿하게 보인다

남창리에는 중도(中道), 월호(月湖), 송산(松山), 장승백이 마을이 있다.

 

중도(中道)마을은 500년전 의령여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하며 
中道마을 유래는 中正의 도를 깨우친 선비가 가업을 발하며 급거 선도하며

살았던 곳으로 상중도 하중도가 있으며 지금은 두 마을을 합하여 中道라 칭하고 있다.

월호(月湖)마을은 300년전 반남박씨, 장수황씨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옛날 마을

앞에 저수지가 있었으며 일제시대 김기현 면장이 밑에 있는 鎭泉을 포함 확장(擴張)함으로서

많은 호수에서 달빛이 환하게 마을을 비추니 마을 이름이 월호라 하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송산(松山)마을은 150년전 장수황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하며 마을명이 지어지기는

일제시대 治山綠化 사업을 하므로써 마을 뒷산의 소나무 숲으로 울창하여 松山이라 부르고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장승백이 마을은 면의 중심지로 교통의 요지이며 생활필수품의 유통센터로

1일과 6일에 5일 장이 서고 많은 사람이 모여 교 육과 행정의 중추역할을 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지명의 유래는옛 조상들은 이정표로 十里마다 말뚝이 있는 곳에 장승을 세웠고 마을 입구에다

장승을 세 워 무사 안일을 기원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 장승 앞을 지날 때마다 소원을 기원하였으며,

장승이 서있다 하여 장승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내가 길을 만들어서 가야하는데

지도상의 트랙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도저히 정상적인 트랙상으로는 갈 방법이 없어서

살짝 우측으로 내려서니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잠시후에 묘지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계단처럼 보이는 묘지 우측 능선이 정상적인 지맥길이다

묘지로 내려서니  2차선 도로(도로명 주소:송죽로)가

지나가는 할매당 고개에 도착한다

할매당고개(35m:12:44)

나주시 공산면 남창리와 왕곡면 송죽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2차선

도로(도로명 주소:송죽로)가 지나가는 고개인데, 왜 할매당이라

부르는지 유래는 알 길이 없다.  

할매당 고개에서 왕곡면 송죽리 방향으로 가다가 좌측의

시멘트 도로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너무에 걸려있다

시멘트 도로로 올라서자마자 좌측으로 꺽어져 숲속으로 올라간다

이곳의 오름길도 잡목들이 엄청난 텃세를 부리지만

어차피 가야할 길...운명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치고 오른다

내가 가진것이 무엇인가
내가 가질 수 있고
가질 수 없는것은 또 무엇인가?


나는 여지껏 욕심만
무겁게 짊어지고 있었네

하지만 그 욕심 잃을지라도
결행 하는것은 결코 욕심이 아니라고
내마음 나에게 이야기하네

우리는 언젠가 때가되면
육신마저 버리고 가야한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필요할까?

운동기구(12:58)

잡목과의 전쟁(?)을 끝내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좌측의 공산면

남창리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등로에 도착하고 운동기구들이

즐비하다.

조금전에 지나온 맥길을 뒤돌아 보니 아직도 미세먼지가

걷힐 기미는 보이지 않고, 겉으로는 참으로 유순해 보이는

능선이 왜 그리도 산꾼에게 모질게 굴었을까?...저곳을

지나오면서 몸뚱아리는 상처투성이다...옛말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했는데, 이곳의 산길도

똑같은 느낌이다.

구수봉 가는 길

懶瓚和尙歌(나찬화상가) /  南嶽懶瓚和尙(남악나찬화상)

世事悠悠不如山丘(세사유유불여산구) 

세상일 끝이 없으니 저 산등성이만 못하구나, 

 

靑松蔽日碧澗長流(청송폐일벽간장류) 

푸른 솔 해를 가리고 계곡물 깊이 흐르네. 

 

山雲當幕夜月爲鉤(산운당막야월위구) 

산 위의 구름으로 천막을 삼고 밤의 달로 갈구를 삼아 

 

臥藤蘿下塊石枕頭(와등라하괴석침두) 

머루덩굴 밑에 앉고 돌베개를 베고 잔다. 

 

不朝天子豈羨王侯(부조천자기선왕후) 

천자를 뵙고자 하지도 않고 왕후를 부러워하지도 않으며  

 

生死無慮更復何憂(생사무려경복하우) 

생사 걱정 없으니 다시 무엇을 근심하랴. 

 

水月無形我常只寧(수월무형아상지녕) 

물 속의 달 형상 없듯이 나는 늘 이렇게 편안하고 

 

萬法皆爾本自無生(만법개이본자무생) 

만 가지 법이 모두 그러하여 본래부터 생멸이 없다. 

 

兀然無事坐春來草自靑(올연무사좌춘래초자청) 

오똑이 일 없이 앉았으니 봄이 오면 풀이 저절로 푸르다.

 

* 나찬화상가(懶瓚和尙歌)는 8세기 당나라 현종 때 호남성 남악 형산에 살았던 

   남악나찬화상의 산거시(山居詩)중 일부로 선종 사서인 『경덕전등록』권 30에

  <남악나찬화상가(南嶽懶瓚和尙歌)>라는 제목으로 수록돼 있는 긴 선시(禪詩)다

 

 북종선 개창자인 대통신수조사(大通神秀祖師:606~706) 문하의 3세이며

 대조보적선사(大照普寂禪師:651~739)의 제자로 생몰 연대는 미상이다.

 일명 명찬(明瓚)으로도 불리는 나찬화상은 중국 5대 명산의 하나인 남악에

 들어가 일생 동안 나오지 않고 초암에서 수행했으며, 산거수도(山居修道)의

 심경을 노래한 그의 <남악나찬화상가>는 『조당집』· 『전등록』·『송고승전』

 등에 실려있다.

구수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의 모습

이곳 송죽리(松竹里)의 지명유래에 대한 명확한 정보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송죽리’라는 이름은 한자 ‘松竹(소나무·대나무)’처럼 ‘송죽(松竹)’을

그대로 한자화한 지명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유래와 비슷하지 않을까?

말발굽바위(13:06)

말발굽 바위 전설 안내판

지맥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고 맥길에서

직진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곳에 왕곡면의 진산인 구수봉이

있어서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구수봉으로 향한다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리 길이 많아도 종착지는 하나다.

 

소설가 이외수의  길에 대한 명상수첩 의 글 중에서

구수봉(153.1m:13:09)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와 공산면 남창리, 백사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준.희쌤의 산패와 정상목, 3등삼각점, 선답자의 달려있는

왕곡면의 진산으로 주변의 조망은 좋은 편이나 오늘은 짙은 미세먼지로

모든게 흐릿하게만 보여서 아쉽기만 하다...정상 아래에는 조금전에 지나온

말발굽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가 이 산의 지명유래가 된듯하다

 

구수라는 지명은 구유의 전라도 지역 사투리로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의병장

김덕령이 이곳(구수봉)을 지나다 바위에 고인 물을 말에게 먹인 것에서 유래됐다고도

전해지고, 정유재란 당시 왜적 소탕에 앞장섰던 황대중 장군이 신흥마을 뒷산에서

말을 타고 가다 바위에 말발굽 자국을 남겨 그 형상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고도 전해진다.

 

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천혜의 영산강 풍경과 죽산보, 다시면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산꾼들은 함평(신산경표상:철성)지맥의 속금산과 이별바우산, 고막원(신산경표상:

태청)지맥의 청림산이 보이기도 하는 산으로 산줄기 끝자락에는 주몽, 천추태후,

태왕사신기 등 다수의 역사극 촬영지인 나주영상테마파크가 자리 잡고 있다. 

구수봉 정상 3등삼각점( 영암 308 / 1986 재설)

구수봉 뒷쪽으로는 161.7m봉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흐르는

영산강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임에도 코빼기도 안 보이니 많이 아쉽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말발굽 바위로 되돌아 간다

말발굽바위(13:15~30)

말발굽 바위가 마치 구수(구유의 전라도 지역 사투리)같이 생겼다해

이 산을 구수봉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구수봉 말발굽 바위에는 정유재란

당시 왜적 소탕에 앞장섰던 황대중 장군의 전설이 서려있는 바위다

 

두류산을 지나 이곳까지 오면서 하도 개고생을 해서 많이 지친다

이곳에서 두유로 허기를 면하고 15분정도의 휴식을 취한다

말발굽 바위에서 서쪽으로 내려가는데 이곳부터

행정구역은 산행시작부터 같이 걸어온 나주시

왕곡면과 완전히 작별하고 온전히 공산면으로

접어든다

오전에 걸었던 등로와는 달리 길은 뚜렸한 편이나

오늘 걷는 지맥길이 워낙 험해서 바짝 긴장하면서 걸어간다

무명봉(13:38)

무명봉에서 바라본 나주시 공산면 백사리의 모습

무명봉에서 잠시후에 걸어야 마루금이 뚜렸하게 보인다

조망바위(13:40)

길은 좋다...얼마만에 느껴보는 豪奢인가...

등로는 살짝 좌측으로 꺽어지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진다.

 

소설가 이외수의  길에 대한 명상수첩 중에서

비교적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2차선 도로(도로명 주소:덕음로)가 지나가는 솔골재로 내려선다

솔골재(35m:13:51)

나주시 공산면 백사리 사동마을에서 남창리 신흥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또다른 지명으로는 사동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라 사동고개라 부르기도

솔골재에 대한 지명유래는 찾을길이 없다

 

솔골재를 가로질러 올라서니 양지 바른곳에 무명묘지 1기가 나온다

묘지(13:53)

묘지 뒷쪽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동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나온다

벌써 봄을 준비하는 春蘭

등로에서 바라본 나주시 공산면 백사리 사동(沙洞)마을

 나주시 공산면 백사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사동은 약 350년 전 낭주 최씨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으며 그 후 광산김씨가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명유래를 보면 원래 마을 이름은 사동(絲洞)이었는데 조선 말엽 백사(白沙)선생이

이곳에 살면서 반급제를 하니 나라에서 크게 놀라 이들 형제들 때문에 국가가

위태롭게 될 것 같아 몰래 사람을 보내 이곳 오형제 선조의 묘를 파헤치니 검은

암소가 뒷발은 일어서고 앞발은 구부린 상태였다... 이때 실오라기 같은 안개가

자욱이 올라가고 있어 실이골이라 했으며 지금도 오황산이라 불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다시 등로는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86.0m봉으로 오르는 길...마삭줄 군락지 사이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에 동백나무들이 잘려있다...오전에 봤던 것과

똑같은 모습인데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맥산꾼이

지나간 게 맞은것 같다

86.0m봉(14:04)

86.0m봉 아래로 내려서니...

시누대 군락지가 나오고...

시누대 군락지 가운데로 이어지는 마루금...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시누대 숲을 빠져 나오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로 이어지는 편안한 길로 내려간다

제주양공&낭주최씨묘(14:15)

제주양공 묘지에서 내려와 좌측으로 향한다

2차선 도로가 나오는데 좌측으로는 조금전에 지나온

솔골재로 향하는 길이다...맥길은 86.0m봉을 정점으로

반원형을 그리면서 맥길을 이어온 셈이다

오산로사거리(14:20)

이곳에 2차선 도로(덕음로)를 버리고 백사보건진료소

입간판이 있는 우측의 도로로 향하다가...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목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간다

또 한번 좌측으로 꺽어지고...

목장(14:23)

목장으로 베낭을 메고온 산꾼을 처음보는지 소들도 멍하니 쳐다본다

목장을 지나서...

보리밭 가운데로 맥길을 이어간다

보리밭을 지나니...

황토밭이 나오고...

황토밭을 지나서 도로에 내려선 다음에 우측으로 향한다

이곳부터는 도로가 지맥길이다...도로투어가 시작된다

801번지방도 사거리(14:36)

인증샷

남천파크골프장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공산면 중포리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 2월에 걸어볼 예정인

함평(신산경표상:철성)지맥에 있는 속금산(171.9m)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보인다

 

나주시 공산면 중포리(中埔里)에 속해있는 사암(思庵) 마을은 마을 앞에

연못이 있고 어지신 분(思庵 박순, 1523~1589)이 살았다고 하여 '물 수(水)' ,

'어질 양(良)' 수양(水良)이라 불러지게 되었다는데 형제 방죽의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옛날 마을에 유명한 도둑이 나주 고을 곳곳을 다니며 물건을 훔쳐 고을 사람은

물론 나주 관아에서 붙잡으려 하였지만 도둑을 잡기는커녕 누가 도둑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진짜 도둑이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고 도둑은

형제를 불러놓고 자신이 몇 해 전 고을을 떠들썩하게 했던 도둑임을 밝히고, 죄를

용서하는 뜻으로 고을 백성들을 위해 큰일을 해주기를 바라는 유언을 남겼다.

 

형제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서다 산봉우리에서 기우제를

올리는 사람들을 보고 중포리 수양마을 옆에 방죽을 파기 시작하였다... 형은 넓은

자리에 얕으면서 넓게 팠고, 동생은 좁은 장소를 잡아 깊게 팠다. 형제가 방죽을 파기

시작한 지 서너 해가 지나 제법 방죽의 모습이 갖추어지자 형제들은 뚝을 쌓기 시작하였다.

 

방죽이 완성되는 날 마을 사람들은 큰 잔치를 벌여 마을 주민들은 형제에게 고맙다고 하였다.

형제가 파 놓은 방죽이 있어서 다음 해 가뭄이 들었을 때도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중포리에서 유명한 형제방죽이다

남천파크골프장 입구(14:40)

느림보 범여가 행여 길을 잃고 헤맬까 싶어서

도롯가 나뭇가지에 흔적을 남겨놨구나

앞에 보이는 농장직전에서 트랙은 우측의 배밭으로

이어지나 걍~~~그냥 무시하고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트랙상 황토밭 가운데가 맥길이다

해오름 농장(14:48)

황토밭과 배밭을 지나서 마루금은 다시 도로로 내려온다

내가 걸어야 할 고문산에서 이어지는 맥길의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가송리사거리(14:55)

우측으로 공산면 가송리로 향하는 사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는

꽤나 큰 규모의 대주사료를 보면서 맥길은 무안, 함평쪽 직진으로향한다

 

가송리의 지명은 ‘공산면의 형제방죽(방죽)’과 ‘공수·오산’의 합성에서 유래었으며

자연마을로는 송정(松亭), 연화(蓮花), 석계(石溪), 가흥(佳興)이 있다.

 

송정마을은 사암선생이 한산 군수시에 송정(松亭)이란 정자를 짓고, 능암소는

이곳에 와서 독서 한곳으로 정자 이름을 따서 마을名이 지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으녀,

思庵 朴淳 (1523-1589)은 李朝 宣祖때의 사람으로, 右尹 祐(우)의 아들로 서경덕에게서

글을 배우고 최경창, 백광훈, 이달 등을 가르쳤다. 벼슬은 우의정과 영의정을 역임 하였다.

연화마을은 250년전 羅州李氏가 처음 정착하였으며 그후 金海 김씨가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 되었다고 전하며, 당시 마을 앞에 연꽃이 만개하여 마을 명을 蓮花라 정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석계마을은 돌골짜기에 흐르는 물이 맑고 깨끗하며 골짜기 수가 많아 마을 이름을 석계라

칭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가흥마을은 200여년전 한풍李氏가 처음 정착한 후,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羅州의 南倉이 자리하였던 곳으로 아름다운 풍치와, 후손이 흥성할

것이라 하여 佳興이라 불렀으며 남창 저수지와 강이 있어 江村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다

가송사거리를 건너자마자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져 밭으로 향한다

황토밭 가장 자리를 따라서 서쪽으로 향한다

앞에 보이는 철탑을 포스트 삼아서 걷는데 농장 너머로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고문산이 멀게만 느껴진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 범여의 視界를 좁게 만든다

장수황공 가족묘(15:02)

장수황공 가족묘를 철탑방향으로 향한다

봄이오는 소리

밭에서 시멘트 도로로 내려서니 포크레인에서 작업을 하던 친구가

작업을 멈추고 쫓아와서 이곳은 길이 없으니 나가라고 소리를

질러대기에 늘 둘러대는 말...길을 잘못들어와서 그렇다고 하니

무조건 나가란다...갑자기 나도 꼬라지가 난다...이보쇼 나가면 되잖아

젊은 친구가 왜그리 융통성이 없어하고 소리를 지르니 갑자기

찍소리도 안한다

화이트덕(15:05)

농장입구에서 우측으로 향하니...

농장 쥔장이 사는듯한 멋진 한옥을 만나고...

좌측으로 꺽어져 남쪽으로 향한다

김해김씨 가족묘(15:10)

대머리 묘지를 지나 앞에 보이는 무명봉으로 향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이렇게 말했던가

 

나는 걸을 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청도김씨&낭주최씨 부부묘(15:14)

오전에 워낙 잡목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터라 이런곳은 식은 죽먹기다

무명봉(15:16)

무명봉을 넘어서니 농로가 나오고

잡목속에 청도김씨세장비가 묻혀있다 

농로(15:17)

목장 사이로 이어지는 지맥길...

시누대 사이로 이어지는 호젓한 길을 따르면서

너무 힘들어 하는 몸뚱아리를 추스리면서 걷는다

농로(15:20)

지도를 보니 도로 끄트머리에 보이는 건물이 가송교회이다

농로를 가로질러 보리밭으로 향하고 보리밭 위 묘지로 올라선다

김해김공묘(15:22)

묘지에서 다시 도로로 접어들어 고문산으로

향하는 편안한 농로를 따라서 걷는다

석계마을 임도(15:25)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반아 다 되어간다...원래 계획은 고문산을

넘어서 23번 국도까지 가려고 했는데 오전에 스마트폰을 분실하여

1여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모든게 허사가 되어버렸구나

다음구간에 오를 고문산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행을 종료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서울가는 교통편 때문에 이곳에서 산행을 접고 우측의 석계마을로 향한다

석계마을회관(15:30)

석계마을회관 도로명 주소...다음에 올 곳이라 찍어둔다

이곳에서 공산면 택시를 호출하니 시간이 좀 걸린단다.

옷을 갈아입고 베낭을 정리하고 나니 공산면 택시가

도착하고, 택시를 타고 영산포 터미널로 향한다

영산포공용터미널(16:32)

영산포터미널에 도착하여 택시에서 내리는데 광주가는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 나간다...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버스표를 예매한 후,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을씨년스런 대합실에서 한참을 멍때리기 한다

영산포발 → 광주행 버스표

17시 05분에 광주로 출발하는 버스는 오늘도 5분정도 연착을

한 다음에 영산포터미널에 도착하고 버스를 타자마자 잠에 빠진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17:58)

광주발 → 서울행 버스표

광주에 도착하니 곧바로 서울로 버스표가 있어서 표를 예매하고

버스에 오른 다음에 저녁을 대신하여 베낭에 남은 초코파이와

두유로 베낭털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