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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삼포(옥룡)지맥(終)

삼포(옥룡)지맥 제4구간 - 석계마을 임도에서 몽탄나루까지

by 범여(梵如) 2026. 2. 6.

 

☞ 산행일시: 2026년 02월 01일

☞ 산행날씨: 오전에 흐린날씨, 오후에 맑음..강한 바람에 짙은 미세먼지

☞ 산행거리: 도상거리15.8km+날머리 1.1km / 7시간 1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석계마을 버스정류장-석계마을 임도- 파묘- 고문산- 안부- 무명봉

                    쉼터- 망해산갈림길- 안부- 무명봉- 112.3m봉- 묘지- 무명봉- 묘지

                    매산재- 함양박씨 가족묘- 안부- 60.9m봉- 안부- 무명봉- NO72송전탑

                    무명봉- kt나주동강 이동통신탑- 병반재- 안부- 묘지- 114.5m봉(백련산 갈림봉)

                    김해김공&은율송씨 묘- 할미당고개- 93.4m봉- 봉굴- 나주나씨가족묘

                    68.4m봉- 안부- 무명봉- 고개 삼거리- 71.7m봉- 경주최씨 가족묘- 창녕조씨 가족묘

                    백련산로- 창녕조공&신안주씨 묘- 안부- 무명봉- 안부- 79.9m봉- 무명봉

                    임도삼거리- 갈림길- 77.1m봉-안부-무명봉- 월양터널 위- 김해김공 묘

                    진주이공&진주하씨 묘-민가(알바)- 대전삼거리- 고공수로- 77.3m봉- 57.1m봉

                    무명봉(대한산경표갈림길)- 49번 도로- 삼거리- 무명봉- 몽송마을 안부- 안부-

                     88.5m봉(몽송봉)-안부- 60.5m봉- 몽송재- 평산신씨 가족묘- NO 64송전탑-

                     옥룡산- 암봉- 울산김공묘- 안부-몽탄나루

☞ 소  재 지: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 동강면

 

올 겨울에는 유난히 잔병(?)치레를 하는 느낌이다...예전에는 독감예방주사를

맞으면 감기가 걸리지 않았는데 올해는 감기를 달고 다니다시피 하고, 음식도

맛있다는 생각을 느끼지 못하니 자연히 먹는게 소홀하다...나홀로 산행을 하면서 

먹는게 부실하다보니 자꾸만 체력 저하로 인해 산에서는 점점 발걸음이 느려지고

힘이 드는구나...거기다가 남은 지맥이 대부분이 먼 곳에 있어서 6~7시간

산행하려고 차를 10시간(왕복)이상을 타야하니 체력적인 부담이 많다.

 

오늘도 새벽 1시 30분에 광주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호남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여 1시간 이상을 멍때리기를

한 다음에 버스에 오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광주행 버스표

남도지방의 지맥길을 걷기 위해서 나홀로 산행을 하는 산꾼에게는

더 없이 매력적인 도시이다...심야고속버스가 새벽 2시까지 있으니

말이다...오늘도  버스를 타고 광주로 향하는데 非夢似夢간을

헤매다가 서울을 출발한 지 3시간 20분만에 광주에 도착한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04:50)

광주터미널에 도착하여 터미널 내에 있는 설렁탕집에서 입맛은

없지만 억지로 아침을 해결하고 30분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나주를 경유하는 해남행 버스에 오른다.

광주발 → 나주행 버스표

터미널을 출발하여 광주 진월동을 거친 다음에  잠이 들었는데

나주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잠을 잔 바람에 깜빡하면 내리지

못할 뻔 했다...나주에서 영산포로 가기 위해서 나주터미널을

빠져나가는 버스를 세워서 버스에서 내린다

나주터미널(06:25)

나주터미널에서 나주시 공산면 가송리로 06시 35분 출발하는

113번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는 전기버스라 버스에 오르니

얼음장처럼 차갑다...이 버스는 나주시내 구석 구석을 돌다가

영산포를 지나면서 부터 공산면소재지까지는 논스톱으로 달린다.

 

나주터미널에서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손님이라곤 달랑 나혼자다.

이 버스는 공산면 소재지를 지나면서부터는 마을 구석구석까지

쑤시고(?) 다니지만 손님은 커녕 개미새끼 한마리도 구경하지

못하고 1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에 석계마을 버스정류장까지

나혼자 버스를 전세내어 온 셈이다

석계마을 버스정류장(07:35)

나주시 공산면 가송리 3구라 불리는 석계(石溪) 마을은 돌골짜기에 흐르는

물이 맑고 깨끗하며 골짜기 수가 많아 마을 이름을 석계라 칭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으나, 왜 꽃밭등이라 불려지는 지는 알려진게 없다.

산행을 시작하다(07:45)

이른 아침에 잔뜩 흐린 날씨에다 오늘도 미세먼지가 무척이나

심하고, 알출이 시작된 듯 하나, 구름 사이에 갇혀버린 해를

찾을 수가 없고, 오늘이 음력으로 섣달 열나흘날이라 그런지

달님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으나 날씨는 춥고 손이

상당히 시리다.

지난번에는 석계마을회관으로 내려왔는데 트랙을 보니

많이 돌아가는 것 같아서  마을 농로를 따라서 간다

농로를 따라서 가는데 석계마을 너머로 2월에 걸어본 예전인

함평지맥 마지막 구간에 속해있는 속금산(束金山:173.1m)이

사람이 그리운 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함평군 학교면 월호리와 금송리의 경계에 있는 속금산은 함평군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산강의 本流를 굽어보고 있는 산으로 주변에는 옥마봉(玉馬峰),

투구봉, 칼봉(60.6m)을 거느리고 있으며, 속금산의 지형이 장군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산 남쪽에 위치한 월호리 망월동 구릉에서 옹관묘군이 발견된 바 있다

 

금이 많이 나오는 산이라 하여 속금산(束金山) 또는 용금산(湧金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실제로 금을 많이 채광하였다고 하며 『동역도』(전라도)에 속금산(束金山)이 고막원과

함께 영산강 본류 주변에 표기되어 있다... 『광여도』(무안)에 진례면 서쪽 영산강 본류변

가까이 속금산이 보이며 『군세일반』(함평)의 지도에 속금산(束琴山)으로, 『함평군지』에는

속금산(束錦山)으로 표기되어 있다...산이 뾰족하게 솟아올라 속금산이라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 옹관묘란 독장·옹관묘라고도 하며, 청동기시대 이래 이른 철기시대를 거쳐 우리나라의

 남부지역에서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오랜 전통의 무덤 양식 중 하나인데, 널로 쓰이는

 항아리나 독이 1개이면서 넓적한 돌 같은 것으로 뚜껑을 덮은 것은 외독, 2개가 서로

 아가리를 맞대고 뉘인 것은 이음독이라 하며, 3개를 이어서 만든 것도 발견되고 있다.

독무덤

독무덤 또는 옹관묘(甕棺墓)는 금석 병용 시대의 분묘,

흙이나 돌 대신 큰 항아리 속에 시체를 넣어 만든 무덤이다....다음백과 사전인용

 

 청동기시대의 것은 강이나 작은 냇가를 낀 들판과 붙어 있는 구릉지대에서 고인돌·

 움무덤·돌상자무덤 등과 함께 발견되고 있으며, 이른 철기시대의 것은 구릉지대와

 산기슭, 조개더미에서 발견되었다. 삼국시대의 것은 야트막한 산기슭에 있는 경우가 많다.
 청동기시대나 이른 철기시대의 유적은 강서·은율·신천·공주·광산·김해·부산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이후 시기의 유적은 전국적으로 나타난다.

목장을 지나 밭 가운데로 이어지는 맥길을 따라서 내려오니

2주전에 왔던 석계 임도에 도착하고 길가에 있는 김해김씨

세장산비가 반겨주고, 잠시후에 오를 고문산이 범여를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석계마을임도(07:52)

도로명 주소가  가송석계길  인 도로는 가송리에서

석계마을로 이어지는 도로인데 길가에는 김해김씨 세장산비가

서 있고, 주변의 밭은 전부 황토밭인 듯 누런 속살을 드러 내놓고 있다

대밭과 황토밭 사이로 이어지는 마루금...선답자의 산행기에는

악명(?)높은 지맥길이라 소문이 자자한데 초반이긴 해도

아직까지는 그런 感은 오질않고, 다만 아쉽다면 추위에 지독히도

약한 범여에겐 춥고 손이 너무 시립다는 것이다

경운기가 다닐만큼 넓은 농로 위로 올라서니

청색 물탱크가 보이고 넓은 공터가 나온다

파묘(07:58)

선답자의 산행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묘지는 후손들이

좋은 곳으로 移葬을 했는지 봉분은 사라지고 누런

황토만이 보인다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면서 등로는 사라지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등대 삼아서 천천히 오르는데 아직까지 몸뚱아리가

예열이 덜 되었는지 춥고 숨쉬가 힘이 든다

능선 좌측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 대밭으로

내려서서 조금은 편하게 진행하는가 싶더니...

이내 등로는 사라지고 삼포(옥룡)지맥의 악명을 맛보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길도 없는 곳을 치고 오른다

고문산 오름길에 신체 허약,  양기 부족  근골 동통

(뼈와 근육이 쑤시고 아픈 증세)등의 치료제로 쓰이는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호랑가시나무는 노박덩굴목 감탕나무과의 상록 활엽관목으로 한국 전역, 중국 남부에

분포하며 잎은 타원상 육각형으로, 잎 끝에 단단한 가시가 있어 호랑이발톱과 같은 모양이다.

잎은 어긋나고 두꺼우며 꽃은 암수딴그루로 4~5월에 흰색으로 피고, 열매는 핵과로

10~12월에 익는다... 약으로 쓸 때는 부위에 따라 구골엽·구골근·구골수피 등으로 부른다.

 

 

감탕나무속에 120여 종(種)이 알려져 있지만 원예품종을 포함하면 500종 이상이

되며 한국에는 4종 2변종이 자생하는데 호랑가시나무·꽝꽝나무·좀꽝꽝나무·

감탕나무·먼나무는 상록성이고, 대팻집나무·민대팻집나무는 낙엽성이다.

 

한국의 호랑가시나무는 외국의 다른 호랑가시나무에 비해 잎 모양이 예쁘고,

나무의 모양과 열매도 아름다워 조경수 및 절화재로서 각광받고 있으며, 추위에

약해 변산반도가 북한계로 여겨지며, 전라북도 부안군 도청리의 호랑가시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고, 전라북도 고창군, 전라남도의 완도군·해남군,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에서 군락으로 자생하지만 소규모이고, 중국 남부에도 분포한다

어마무시한 이 분들이 지나가신지가 얼마 안되었는지

시그널이 따끈따끈하고 나무가지도 꺽여있다.

잠시후에 오늘 맥길에서 처음만나는 족보있는 고문산에 오른다

고문산(古文山:103.5m:08:12)

나주시 공산면 가송리 석계마을과 가흥마을 경계에 있는 산으로

멋진 산이름과는 달리 이 산에 자료는 눈을 씻고봐도 찾을 길이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오룩스맵의 지도의 한문 표기로 古文山이라

되어 있지만, 이것을 내맘대로 풀이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주위 전망은 전혀 없으며, 준.희쌤의 산패만 없다면 딱 지나치기

좋을 듯 하며, 산 아래에는 최근에 조성한 듯한 나주정씨 가족묘가

조성되어 있다

고문산 아래에 조성된 나주정씨 가족묘

맥길은 묘지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걸려있어 길을 잃어 버리지는 않을 둣 하다 

고문산을 내려서면서 시누대 사이로 이어지는 마루금

안부(08:18)

안부 북동쪽으로 조망이 트이면서 영산강 너머로 2월에

걸어본 예정인 함평(신산경표상:철성)지맥의 합수점이 보인다

칡넝쿨을 비롯한 온갖 잡목들이 얽혀있어 빠져나갈 틈이 보이질 않는다.

겨울철에도 이 정도인데 한 여름철에 이곳을 지나가는 맥산꾼에게

얼마나 괴롭혔을까?...안봐도 비디오다...너무 그러지 마라

안부 좌측 아랫쪽에는 가흥마을 계곡에는 커다란 목장이 보인다

안부를 지나서 빠져나가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초반부터 잡목의 거친 저항에 한참을 버리다가

탈출을 한다 

우측으로는 지맥길에서 0.6km정도 떨어져 있는

망해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무명봉(08:26)

갑자기 넓어진 고속도로같은 길이 나타나고

이곳의 산길은 도데체 감을  잡을수가 없구나 

쉼터(08:28)

망해산으로 향하는 등로는 사람들이 다니는 산인지 넓은 제도권

도로에 쉼터의자도 보인다...등로는 좋은 완만한 오르막 능선에 오른다

 망해산(望海山:148.0m:08:33) 갈림길

직진의 뚜렸한 길은 이곳에서 0.6km정도 떨어져 있는 망해산을

갔다올까 생각을 해봤지만, 왕복 1.2km를 갔다오면 오후에

귀경 차량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입맛만 다시고 지맥길로 향한다

 

 망해산(望海山:148.0m)은 나주시 공산면 가송리와 동강면 양지리 및

운산리 경계에 있는 영산강변의 산으로 망해(望海)는 물에 가까운 산을 의미한다.

 

북쪽에 위치한 함평군 학교면 월호리에 두 개의 하중도(河中島)가 형성되어 있는데

하중도는 장탄(長灘)섬으로도 불려지며 북쪽 큰 것은 함평군에 속하고 남쪽에

나중에 생긴 작은 섬은 나주시 영역이며 과거 함평 장탄 북쪽의 좁은 수로가 배가

오가는 통로로 이용되었다.

 

척포(尺浦)와 형제방죽이 근처에 있고 두개가 나란히 있는 형제저수지는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오산들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으 정상 북동쪽 기슭에 제주 양씨

재각인 영사재(永思齋)가 있다

뚜렸하게 이어지는 망해산 능선에서 사면으로 치고 내려서니...

시누대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안보이니 참으로 난감하다.

이리저리 헤매면서 헤치고 나가는데 참으로 미칠것만 같다

왜이리 개고생을 하면서 집착해야 하는지?

시누대에 귀싸대기 후려맞고, 베낭과 모자가 쥐어 뜯기는

수난을 겪어면서 나가는 틈이 보이고 낮은 포복을 하면서

시누대 지역을 빠져나오는데 정말 죽을 맛이다

조금전 시누대 지역을 벗어나면서 힘들었던 구간을 뒤돌아 본다

참으로 힘들었다...내리막길 100여m를

빠져나오는데 15분이라 시간이 걸렸구나

왜 삼포(옥룡)지맥길을 여름에 해야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안부(08:48)

그래 사람이 산다는건 자체가 喜怒哀樂이 아니였던가.

세상을 살면서 즐겁고 좋은 일만 있다면야 무슨 재미겠는가...

무명봉(08:52)

먹먹하게 다가오는 한 순간에 내 마음에

불어오는 바람...이 토록 오랫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고 머무를 줄은 몰랐다

 

이렇게 만났던 사랑이

풋사랑인 줄 알았더니

내 가슴속에 새겨져 버린

짙은 사랑이 되어 버렸구나

 

그대에게 고백부터 해야 할 텐

아직도 설익은 사과처럼 마음만

붉게 익어가고 그대는 내 마음속에

그리운 사람처럼 자리를 잡고 있구나

112.3m봉(08:54)

족보있는 정상엔 늘 있어야 할 준.희쌤의

산패는 보이지 않고, 잿빛하늘밑에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바람에 흩날린다

등로가 흐릿한 내려서는 것도 그리만만하지 않지만

오늘의 지맥길은 이 정도는 감사해야 하면서 묵묵히

지맥길을 이어간다

묘지(09:02)

아침해가 뗘 오른지는 한참동안 지난듯 한데 아직까지

추위가 풀릴 기미는 보이지가 않다...예전에 비해 내가 추위에

많이 약해진 느낌이다...산행을 하면서 제대로 먹지못한

체력저하 때문인가 보다...편백나무 숲을 통과하니 뚜렸한

길이 나온다 

무명봉(09:06)

편백나무 숲을 지나니 누군가가 지나갔는지 등로에서 저항하는

나무들의 모가지가 다 달아났다...창원의 J3 파랑새 팀일까?

내림막길 내려서니 갑자기 녹색 휀스가 길을 막으며

태양광 단지가 나오고 단지 뒷쪽으로는 가흥저수지가 살짝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친환경에너지라 칭하면서도 산꾼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환경 파괴범처럼 비치는 태양광 발전...2016년에 개봉된

판도라라는 영화를 그 당시에 대통령이라는 자가 그 영화를

보고, 경제성이 가장 뛰어난 원자력을 줄이고 태양광, 풍력발전을

대폭 늘린게 이유라는데, 원자력에 비해 택도없이 뒤 떨어지는

저 태양광 발전이 대안일까 하는대는 의구심이 많아 보인다

태양광단지 빙 돌아서 내려간다

묘지(09:10)

마치 高僧 大德들의 부도(浮屠: 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둥근 돌탑)를 지나 내리막으로 향한다

가흥마을에서 묘지로 올라오는 길을

가로지르니 두릅나무들이 즐비하고...

물탱크 아래로 내려서니...

갑자기 민가가 길을 막는다...다행히 민가로 내려가는

철사다리가 있어서 마당으로 내려서니 

인기척도 없고 개쉬키도 없어서 조용히 집을 빠져 나온다

매산재(도로명 주소:가송가흥길)로 내려서서 뒤돌아 보니

계림육계영농이라는 鷄舍가 있고 그 뒷쪽으로 아쉬운 마음으로

지나온 고문산이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이곳 맥길은 망해산

갈림봉에서 역 U자 형태로 빙 돌아서 이곳을 온 셈이다

 

공산면에 속해있는 이곳 가송리 4구 가흥(佳興)마을은 200여년전 한풍李氏가

처음 정착한 후 지금은 정씨 노씨 최씨 임씨등 여러 씨족이 살면서 마을을 이루었다.

지명유래의 유래는 羅州의 南倉이 자리하였던 곳으로 아름다운 풍치와, 후손이

흥성할 것이라 하여 佳興이라 불렀으며 남창 저수지와 강이 있어 江村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던 마을이다.

매산재(25m:09:13)

나주시 공산면 가송리 가흥마을에서 동강면 양지리 매산마을로 이어지는

801번 지방도가 통과하고 있으며, 고개 정상에는 민가 한채가

자리를 잡고있다...지명의 유래는 매산마을에서 유래한 듯 싶다

매산재 정상의 모습

도로를 가로질러 농로로 올라선다

농로를 조성하다만 듯한 넓은공터의 절개지가

나오는데 직벽이라 오를수가 없어서 좌측으로 우회를 한다

백두사랑 이대장의 흔적을 따라서 올라가니...

대밭을 지나 능선에 오르면서 마루금에 복귀를 하고...

함양박씨 가족묘(09:19)

함양박씨 가족묘를 지나 지저분한 등로로 내려서니...

또다시 시누대숲이 나오기에 바짝 긴장을 했는데

다행히도 금새 끝나고 대밭으로 내려선다

안부(09:22)

밭가운데를 걸으면서 바라본 공산면 가송리 한새골의 모습

밭을 지나면서 잡목의 저항은 시작되고 완만하게

오르다보니 족보있는 60.9m봉에 도착한다

60.9m봉(09:32)

이 지맥길에는 준.희쌤의 안티팬이 생겼나?

족보있는 봉우리에 있어야 할 선생님의 산패가

보이지 않으니...

안부(09:35)

60.9m봉을 지나면서부터 공산면과 동강면의 面界의 경계를

걷던 마루금은 이곳부터는 공산면과 작별하고 온전히 동강면으로

접어든다

무명봉(09:38)

우측으로 내려가니...

묘지 너머로 보이는 나주시 동강면 인동리는 지근거리에

있는데도 짙은 미세먼지로 한치앞도 안 보이는구나

 

NO72송전탑(09:43)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베어낸 나무들이 태클을 걸기 시작한다

무명봉(09:46)

내리막길에서 만난 竹泉선생의 흔적

잠시지만 편하고 호젓한 길을 걷는다.

佛家에서는 염일방일(拈一放一)이란 말이 있다

하나를 얻으려면, 반드시 또다른 하나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다...산행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忍苦의 세월을 이겨내야만이 지맥길을 완성할 

있을 것이다...힘들지만 묵묵히 걷다보면 끝이 보이겠지...

내리막길에 나뭇가지 사이로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도로가 가까워졌는지 차량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kt나주동강 이동통신탑(09:51)

kt 이동통신탑에서 내려가는 길

나주나씨 세장산비를 보면서 23번 국도로 내려간다

병반재(09:54)

나주시 동강 인동리 병반마을에서 양지리 장동마을을 있는

2차선의 23번국도(도로명 주소:나주서부로가 지나가고 있으며

양지리 쪽으로는 하얀농장이라는 커다란 농장이 보인다

병반재에서 바라본 병반마을의 모습

나주시 동강면 인동1리에 속해있는 병반 마을은 조선 중엽시절

마을에 병참기지가 설치되어 병졸들이 많이 주둔하였다 하여

병반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도로에서 좌측의 아시바 계단을 따라서 능선으로 오른다

맥길 우측에 있는 하얀농장을 지키는 백구는 사람이 그리운 지

나를보고 짖지도 않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구나...많이

외롭게 보이는데, 나 역시 홀로 산행을 하다보니 사람이 그립구나.

오름길은 참으로 좋다...그러나 언제 변할지

모를 길이라 늘 긴장하면서 오르막길로 향한다

안부(10:02)

고속도로같은 넓은 길은 끝나고 너덜겅이 나온다 

묘지(10:06)

영암, 나주의 맥길을 만나면서 무수히도 많이 만났던 호화묘지는

공산면의 후반과 동강면에 접어들면서 점차 여느지역의 묘지와

같이 평범한 묘지들로 변해가는구나

조금 까칠하게 능선에 오른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114.5m봉(10:10)

넓은 공터가 나오고 폐헬기장인 듯 보도블럭들이 낙엽속에

나뒹둘고 있는 이곳이 족보있는 114.5m봉 정상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지맥길에서 1.2km정도 떨어진 곳에

백련산(白蓮山:148.9m:나주시 동강면 곡천리 소재)이 있는데

일부 산행기를 보면서 백련산까지 갔다오는 산악회도 있다마는

나에게는 언감생심이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조금을 더 더 내려가니 억새로 뒤덮힌 묘지가 

나오는데, 지난 여름에 후손들이 벌초를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조상한테 잘해야 복받을긴데...

김해김공&은율송씨 묘(10:14)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밀양박씨 묘지가 있고 그 앞에는 사각추모정이 있다

할미당고개(45m:10:19)

나주시 동강면 곡천리와 인동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좌측으로는 동강면 사무소로 향하고 우측에는 인동축산이라는

커다란 농장이 보이는 이곳이 도로명 주소가 인월로인 2차선

도로가 지나간다

맥길은 할미당 고개를 지나 항토밭을 가로질러 간다

황토밭에서 바라본 성산제와 그너머로 보이는 동강면

소재지 마을은 아주 가까운 곳임에도 미세먼지로

흐릿하기만 하다.

밭을 가로지른 다음에 절개지 능선으로 향한다

마삭줄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절개지 능선...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가쁜숨을 몰아쉬며 능선에 오르고...

잠시후에 선답자의 시그널만 정상을 

지키고 있는 93.4m봉에 도착한다

93.4m봉(10:35)

남쪽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맥길...

봉굴(10:37)

등로 우측에 커다란 구멍의 함몰지대가 보이는데 

오룩스맵 지도에는 봉굴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왜 봉굴이라 부르는지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사각사각 낙엽을 밟는 소리에 빠져

내려가다보니 잘 관리된 묘지가 나온다

나주나씨가족묘(10:39)

묘지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가로질러 맥길을 이어간다

68.4m봉(10:42)

임도를 지나자마자 시작되는 시누대길

안부(10:45)

시누대 사이로 이어지는 맥길

다행히 등로 관리가 잘되어 있어서 편하게 걸어간다

무명봉(10:54)

시누대 구간이 끝나고 편안하게 이어지는 맥길

아침에 비해서 기온이 많이 올라간 듯 보이나

몸뚱아리가 부실한 범여는 여전히 추운 느낌이다

고개 삼거리(11:00)

좌측으로는 동강면소재지가 있는 나주시 동강면 인동리에서

우측의 곡천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예전에 민초들이 넘었던

고개인 듯 아직도 양쪽 다 고개의 흔적은 뚜렸하다

고개를 가로질러서 뚜렸한 임도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으로 향한다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희미한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족보있는 71.7m봉 정상이다

71.7m봉(11:13)

71.7m봉 정상에서 남쪽의 내리막길로 향한다

경주최씨 가족묘(11:15)

헤럴드 V 멜처드라는 사람은 산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지...

 

하루하루 산에 오르는 것처럼 살아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등반하되

지니치는 순간순간의 경치를 감상하라

 

그러면 어느 순간 산 정상에 올라와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며, 그곳에 인생 여정중

최대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감정에 몰입되어 천천히 걷다보니 묘지가 나오고

동남쪽으로는 동강면소재지가 있는 인동리의

어느 마을이 보이는데 지근거리에 있는 마을인데도 

미세먼지로 인해 사물 구분이 잘 안된다

창녕조씨 가족묘(11:17)

창녕조씨 묘지를 지나 내려서니 2차선 도로가 나온다

동강재(11:20)

나주시 동강면 곡천리와 인동리 연결하는

2차선도로(도로명 주소:백련산로)에 도착하여

좌측으로 동강면 소재지가 보인다

도로에서 바라본 동강면소재지의 모습

전남 나주시의 남서단에 있는 동강면(洞江面)은 동쪽은 공산면, 서쪽은

영산강 건너 무안군 몽탄면, 남쪽은 영산호, 북쪽은 영산강 너머 함평군

엄다면 · 학교면과 접해 있으며, 신도청 소재지와 2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국도 제23호선과 국가지원지방도 제49호선이 서해안고속도로와

무안국제공항과의 연계성으로 인해 개발 잠재력이 많은 지역이다.

 

영암 백룡산에서 뻗어온 능선이 공산면을 거쳐 백련산, 성산, 옥룡산으로

이어지며 동쪽을 제외하고 삼면이 영산강으로 둘러 쌓인 반도형 지형으로,

심하게 굽이도는 구간이라 일대를 곡강(曲江)이라 불리우며,영산강 충적평야와

간척지들로 유명한 곳이다.

 

몽탄나루와 간석지에서 많은 어패류가 생산된 곳이며 백제 때 봉산현(鳳山縣)이

있었고, 1355년 곡강·두동(豆洞)방을 두었으나 조선이 건국되면서 폐한 후 나주목

두동·곡강면에 속했고, 1914년 개편 때 나주군 동강면이 되었다. 동강은 두동과

곡강이 통합되어 형성된 지명이다.

 

1995년 나주시 동강면이 되었으며 면 소재지인 인동리를 비롯하여 월양리, 진천리,

대전리, 장동리, 옥정리, 곡천리, 대지리, 월송리, 양지리, 운산리 등 11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해동여지도』(나주)에는 영산강 좌안에 곡강면 일대가 잘 묘사되어 있다.

 

두동은 두북동면(豆北洞面)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편, 이곳의 우십교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우십교지(牛十橋池)는 주 남쪽 45리에 있다."고 수록되었고,

『여지도서』에 "우십교제는 둘레 7,060척이며, 깊이 7척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 시대 영산강 유역 제방 중 가장 큰 규모이며 태조 왕건이 고려 건국을 앞두고

견훤과 필사의 전투를 계속하고 있을 때 왕건이 잠을 자다 꿈을 꾼 마을과 왕건이

꿈을 꾸고 강을 건넌 몽(夢)과 탄(灘)의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백련산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른다

창녕조공&신안주씨 묘(11:22)

안부(11:26)

무명봉(11:28)

무명봉을 지나니 야생녹차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면서

맥길을 가로막고 있으나 그리 힘들지 않게 통과한다

안부(11:41)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름길로 올라서니 

등로 가운데에 삼각점이 박혀있는 79.9m봉에 도착한다 

말을 뒤집으면 인생이 바뀐다 

성실(誠實)" 하지 않으면

일을 그르쳐 "실성(失性)" 하고

 

"지금(只今)"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금지(禁止)" 당할 날이 오며

"실상(實狀)" 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상실(喪失)" 의 아픔을 겪을 수 있다

 

"체육(體育)" 으로 몸을 단련하지

않으면 "육체(肉體)" 를 잃을 수 있으며

관습(慣習)을 타파하지 않으면 나쁜

습관(習慣)에 얽매여 살게 된다

79.9m봉(11:50)

79.9m봉 정상 3등삼각점(영암 301 / 1999 복구)

79.9m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향한다...우측으로는

곡천리로 가는 길인데 방심하면 알바하기 쉽상이다

지나가신지가 오래된 듯 합니다

야생녹차나무 군락지 사이로 이어지는 고도차가

없는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1:58)

묘지에서 내려서니 소형 차량이 다닐만큼 임도가 나온다

임도삼거리(12:01)

임도삼거리에서 직진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따라서 오르막으로 향한다

갈림길(12:04)

전봇대와 비닐하우스, 컨테이너가 있는

농장이 나오는데 지금은 농사를 안짓는지

농장은 폐허처럼 변해 버렸다

임도 끄트머리에서 직진 능선으로 올라간다

겨울 억새 / 문방순

 

백발을 풀어 바람에 널어놓고

몸마저 빛바래 바삭거려 와도

가을날 따뜻했던 시선에 취해

겨울 끝자락에 버티고 서있다

 

계절을 거슬러

어리석은 아집의 매듭들

곡선을 이루며 흘러가는 개여울이

하나씩 풀어놓으라 한다

 

꿈틀거리는 봄의 소리는

화해의 손을 내밀고

땅이 열리는 생명이 춤을 춘다

내 안에 꽈리가 무너져 간다

 

나를 보내는 너의 계절은

어깨와 어깨를 내어주어

한바탕 어울림의 마당을 열고

돌고 돌아가는 물레로 온다

77.1m봉(12:10)

77.1m봉 정상에 선다...이곳도 준.희쎔의 산패는 찾을 길이 없고

키가 큰 편백나무 몸뚱아리에다 선답자들이 걸어둔 시그널로

77.1m봉 정상임을 확인한다

내리막으로 향하는 길...정말 고역이다

우측으로 영산강이 흐릿하게 보이고 좌측

아래에서 들려오는 차량소리가 요란하다

안부(12:13)

안부 좌측 아랫쪽은 49번 도로가 지나가는 월양터널이 지나간다

오늘 산행길에 2번째 魔의 구간을 만난다.

강한 잡목의 저항에 체력은 점점 떨어지는 힘이 드는구나

무명봉(12:16)

이곳에서 오늘 산행중에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면서 대형 알바를 한다.

 

사연은 이렇다

스마트폰의 오룩스맵을 확인해야 하는데 베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

꺼진줄도 모르고, 산행을 오기전에  走馬看山격으로 읽은 선답자의

산행기를 기억삼아 이곳에서 49번 도로를 따라서 남쪽으로 가야하는데

이곳에서 월양터널 공사를 하면서 절반이 날아가버린 봉우리를 

보면서 월양터널을 건넌게 큰 패착이었다

월양터널 위(12:18)

월양터널을 지나서 절개지로 올라와 봉우리 절반이

날아간 능선을 올라가려니 자신이 없다...할 수 없이

시멘트 구조물을 따라서 남쪽으로 향하는데 지맥길은

도로 옆으로 이어지고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마루금상에

있는 62.7m봉인데...아직까지 스마트폰이 꺼진줄도 모르고

걷고 있는 셈이다

서쪽으로 영산강이 시야에 들어오고

저곳이 한반도지형이 있는 곳이다

뒤돌아 본 월양터널의 모습

끄트머리에서 잡목의 저항을 받으면서 올라서니...

수로가 나오고...

시누대숲의 태클에 뀌싸대를 맞고, 모자가 벗어지고,

베낭이 쥐어 뜯기는 受難을 당하면서 나오니 묘지가 보인다

김해김공 묘(12:35)

시누대의 이지매에 정신이 혼미하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한모금 마시면서

스마트폰의 트랙을 확인하는 헐~~~이게뭐여

스마트폰이 완전히 방전되어 꺼져 버렸구나

그것도 모르고 봉사 문고리잡는 식으로 걸어 왔으니...

고속충전 베터리라 곧바로 스마트폰에서

트랙을 확인하니 대형알바를 한 게 확인이

되었지만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체념한 체 마루금으로 복귀하려고 부지런히 걷는다

진주이공&진주하씨 묘(12:38)

묘지에서 바라본 동강면 대전리 상촌마을의 모습

또다시 고행은 시작되고...

잡목의 저항에 미치겠다.

알바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좌측에 민가가 보이고 민가마당으로 내려선다

주택(12:45)

다행히 쥔장은 안 나타나고 백구 2마리가 밥값하느라 난리다

민가를 빠져나와 동강로에 들어서 우측으로 향하는데

잠시후에 오를 77.3m봉이 범여를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우측의 대전교차로를 바라보면서 마루금에 복귀한다

대전삼거리(12:55)

대전교차로에서 남도정미소 우측 골목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남도정미소 옆 마을길을 따라서 걷는데 영산강이

가까워졌는지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어온다

고공수로(12:59)

10분 휴식(13:02~15)

고공수로를 지나는데 새벽 일찍 아침을 먹고는 아무것도

먹은것이 없어서인지배가 많이 고프다...밭 언덕을 방패삼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빵과 두유, 초코렛 하나로

점심을 대신하고 10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휴식후 다시 길을 나서는데 맥길과 49번 도로가 나란히 한다

도로 너머로 하얀 구조물이 보이는데 느러지 전망대이다.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에 있는 느러지 전망대는 담양 용추봉에서 시작되어

목포 하구언에 이르는 영산강은 나주평야에서 달려오던 영산강이 나주시

동강면을 지나면서 강폭이 넓어져 流速을 낮추고 휘돌아 나가는 곡강(曲江)으로

영낙없는 한반도지형을 형성하고 있다...성내지 않고 부드럽게 휘어져 흘러가는

강줄기가 느림의 美學을 말해주면서 한편으로 바닷물의 역류를 막아주는 잠금장치

역할을 하는 자연의 오묘함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

좌측으로 꺽어져 태양광 단지옆의 밭가운데로 맥길을 이어간다

양파를 심어논 밭가운데로 지나는데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다

밭을 지난 다음에 벌목을 하고 황칠나무를 조림한 능선으로 오른다

양파밭을 올라와서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좌측으로 오르지 못한 62.7m봉이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

맨 뒷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2주전에 걸었던 구수봉이다

힘들다 힘들다하면서도 산에만 들어오면 이렇게 맘이 편하다.

이렇게 시작한 나홀로 산행이 어언 15여년이 되어간다.

오늘도 이렇게 걷고있는 것은 世俗의 힘든 삶을 보상받는

심리때문일까...나 자신도 모르겠다

77.3m봉(13:32)

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준.희쌤에겐

庶者 취급을 받는 봉우리인지 산패는보이지 않고, 선답자의 시그널로 대체한다

57.1m봉(13:34)

아무도 오지않은 산에 멋진 정자와 체육시설이 즐비하나

정자의 툇마루에는 사람의 흔적 대신에 솔갈비만 가득하고

체육시설은 낡고 녹이 서려 안전을 위협할 정도이다

이용자가 없는곳에 이런 시설을...

수요 예측을 제대로 못한 나주시의 전시행정을

보는 것 같아서 조금은 씁쓸하다고나 할까.

옥룡산 갈림봉(13:36)

옥룡산 갈림봉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좋은 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길이 전혀없는 곳에 선답자의 시그널이 잔뜩 걸려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향하면 몽송봉, 옥룡산으로 이어지는신산경표상의

옥룡산으로 향하고, 水界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좌측으로

이어지는 나주시 동강면 대전리와 장동리를 지나서 삼포천과 영산강이

합류하는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등로이나 오늘은 아쉽지만 산산경표상의

옥룡산으로 향하지만 언젠가 보충산행으로 꼭 한번 와야할 길이다.

등로는 완전히 사라지고 빛바랜 레전드의 흔적만이 맥길을 지킨다

직진으로 내려가니 오금이 아찔할 정도의 절개지가 나오고

그 아래로 지나가는 49번 국도가 맥길을 끊어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또한번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이제 모든걸 체념한 체로 걷는다...걷다보면 좋은 길이 나오겠지하는

신념 하나로...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옥룡산을 바라보면서 강하게

 태클을 걸어오는 억새와 칡넝쿨, 아카시아의 저항을

뚫고 도로가로 내려선다

49번 도로(13:45)

나주시 동강면에서 무안군 일로읍으로 이어지는 49번도로

(도로명 주소:남악동강로)가 지나가고 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 몽송교차로가 보이는 곳에 건널목이 있는지 신호등이

반짝거린다...저기까지 언제 내려간단 말인가

차량의 흐름을 확인하고 6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한다

49번 도로를 무단횡단 한 뒤돌아 본 지맥길

이곳에서 우측의 숲으로 가야하지만 그냥 몽송마을기로

가면서 잠시후에 오를 옥룡산을 바라보며 걷다가 우측으로

꺽어진다

삼거리(13:48)

마루금에 복귀하니 한반도지형 1km라는 팻말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혼자놀기

한반도지형 1km라는 팻말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숲속으로 들어간다

무명봉(13:52)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양지바른 곳에 묘지가 있고

좌측으로 몽송마을에서 올라오는 안부가 나온다

몽송마을 안부(13:50)

몽송마을 안부에서 직진으로 올라서니 묘지가 나오고

몽송봉으로 올라가는 완만하고 뚜렸한 길이 이어진다

안부(13:57)

음지라 그런지 잔설이 살짝 보이는 곳에서 

올라서니 맥산꾼들이 몽송봉이라 부르는

88.5m봉 정상으로 향한다

드디어 88.5m봉 정상에 오르니 돌아앉은

안내판이 느림보 맥산꾼 범여를 반긴다

88.5m봉(14:00)

나주시 동강면 옥천리와 곡천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일부

맥산꾼들 사이에는 몽송봉(夢松峰)이라 부르고 있으나 지도상에

기록된 공식지명은 아니고 아마도 지명은 좌측 아래에 있는

몽송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정상에는 무명묘지가 1기가 자리잡고

있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한반도지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느러지

전망대로 향하는 길이고 맥길은 좌측으로 내려간다...네가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없을것 같아 전망대로 갔다올까 생각을 하다가

귀경하는 교통편이 어찌될 지 몰라서 포기를 한다

 몽송(夢松)이란 지명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망색이 짙어져갈 무렵 궁예는

태봉국을 세우고 전주를 중심으로 견훤은 후백제를 세워 통일신라 후

232년만에 후삼국이 되었다.

 

태봉국 궁예의 장수였던 왕건은 송악 연변의 토호인 해상세력이 배경이었다.

해상왕 장보고 휘하 장수계열이 통일신라가 망하자 개성 연안으로 이주하였고,

왕건은 이 해상세력을 발판으로 무안과 나주를 오가며 호남정략을 펼칠 수 있었다.

 

무안과 나주의 젖줄인 몽탄강은 고려 태조 왕건(877~943)과 견훤(867~936)의 격전지였다.

몽탄이란 이름은 후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아직 후삼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후백제 견훤과 한판 승부를 겨루게 되어, 견훤이 마지막 나주성에 웅거하여 고려군과

싸우게 될 때 왕건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동강면 옥정리 몽송부락에 당도하여 진을 쳤다.

 

그 때에 3천의 견훤군이 사방을 에워싸고 공격하니 포위된 고려군은 당황하여 포위망에서

혈로를 뚫으려 하였으나 마침 강물이 범람하여 빠져나갈 수 없었고 고려군은 사력을

다하여 방어하였으며 밤이 깊어서야 견훤군이 공격을 멈추어 서로가 방어태세로 전환하고,

싸움은 소강상태에 들어가 고려군은 지친 나머지 잠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고려의 장수 왕건도 소나무 아래 군막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백발 노인이

왕건 앞에 나타나 "앞으로 대업을 이루려는 장군이 일기도 모르고 잠만 자면 되는가?

지금 강물이 빠졌으니 군사를 이끌고 빨리 강을 건너 무안 청용리 두대산(148.2m)을

향하여 파군천 하류에 진을 치고 있으면 견훤군이 뒤를 쫒을 것이다... 그러면 그곳에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견훤군을 치면 장군은 크게 승리하고 삼국을 통일하는데 성공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왕건이 깜짝 놀라 일어나니 그것은 꿈(夢)이었고 이상한 꿈인지라

밖을 나가보니 과연 강에는 물이 완전히 빠져있었다.

 

이에 급히 군사를 깨워 강물이 빠진 여울(灘)을 건너 청용리 두대산을 항하여 행군하였다.

두대산은 마람으로 이어져 군량미를 쌓아놓은 노적봉 같았고, 파군천에 이르니 마치

강물이 하얀 쌀뜨물처럼 흐르고 있어 이상히 여기고 군사를 좌우에 매복시켜 놓고 지형을

살피고 있을 때, 견훤군이 뒤를 쫒아오다가 큰 군사가 진을 치고 있는 줄 알고 전진을

주저하자 좌우에 매복한 왕건의 군사가 함성을 지르며 화공으로 협공하니 혼비백산한

견훤의 군대는 지리멸렬하여 크게 부서지고 견훤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도망쳤다고 한다.

 

그 후 이 강을 "꿈(夢)에서 가르쳐 준 대로 여울(灘)을 건넜다" 하여 "몽탄강"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 몽탄강 하류의 전승지를 파군천이라 하였으며 이 천을 이은 다리를 파군교라 하였다.

무안군 몽탄면과 나주군 동강면을 연결하는 영산강 하류의 몽탄강은 지금도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에 몽송부락을 하몽탄이라 하고, 무안군 몽탄면 몽강리를 상몽탄이라 부르고 있다.

이후 왕건은 나주 오씨 처녀와 결혼을 하였고, 태조의 제2비인 장화왕후(莊和王后)가 낳은

아들이 바로 고려 2대왕 혜종(惠宗)이다.

조금전에 88.5m봉을 올라오면서 뒤돌아 앉은

안내판이 분묘이장 요청 안내판이었구나

느러지전망대로 가는 걸 표기하고 옥룡산으로

향하는데 느림보 범여의 발걸음에 비애를 느낀다

그래 그게 뭐 대수냐...이렇게 걸을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몽송봉을 지나고 내리막길은

편백나무 숲사이로 맥길이 이어진다

안부(14:04)

무명봉(14:06)

맥길은 직진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아주 지근거리에 있는 옥룡산도 미세먼지로 아주 흐릿하고

영산강이 가까워서 그런지 오후부터는 강바람이 아주 차갑다

지맥길 가운데는 지금 공사중?...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 몽송마을은 하몽탄(下夢灘)

마을 바라보면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이 마을은 후삼국 시절에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군은 적군(고려)은 완전히

포위된 상태이고 앞으로는 영산강 물이 넘치도록 흐르니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했다.

동녘이 환하게 밝아올 때에야 잠이 깬 견훤은 깜짝 놀랐다. ..옥정리 강가에 있어야 할

왕건군의 군막은 하나도 없고 적병은 찾을 수가 없었다.

강을 보니 도도히 흐르던 강물은 바닥이 드러나 있었고 “아뿔싸! 내가 너무 방심했구나.

이 강은 물이 들고 빠진다는 것을 내가 몰랐었구나!” 견훤은 영산강을 건너 비호같이

왕건군의 행방을 찾아 나섰는데 파군천에 이르렀을 때 파군천 물은 하얀 쌀뜨물로 흘렀고

눈을 들어 두대산을 바라보니 수 만석의 군량미 노적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것을 보고

견훤은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왕건에게 대군의 원병이 왔다는 말인가?”

견훤이 겁을 잔뜩 먹고 전진을 주저하고 있을 때, 좌우 산등성이에 매복하고 있던 왕건의 군사가

징을 치고 북을 치며 협공을 개시하며 커다란 바위덩이를 굴려 내리니 수많은 견훤군이 압사 당하고

여기저기서 활시위를 당겨 화공법으로 공략하니 삽시간에 견훤의 군대는 지리멸렬하여 크게

부서지고 싣고 오던 군막과 보급품도 고스란히 불에 타버렸다. 이 전투에서 견훤은 겨우 생명을

부지하여 도망하였다고 전하여지고 있다.

그 후 왕건이 잠들어 꿈을 꾼 소나무가 있는 곳을 몽송(夢松)이라 했고, 이 강을 현몽에 의해

여울을 건넜다하여 몽탄강(夢灘江)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몽탄강 하류의 전승지는 군대를

격파했다 하여 파군천(破軍川)이라 하였으며, 이 내를 이은 다리를 파군교(破軍橋)라 하였다.

지금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 몽송마을은 하몽탄(下夢灘)이라 하고, 무안군 몽탄면 몽강리는

상몽탄(上夢灘)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과수원을 지나 우측으로 향하니 몽송재이다

몽송재(14:14)

옥룡산 가는 길에서 바라본 몽송마을의 모습

이곳에서 좌측으로 지맥길이 이어지지만 바람이 너무

불고, 먹은것이 없어서 그런지 체력이 완전히

방전된 느낌이라 그냥 편안한 농로를 따라서 옥룡산으로 향한다

평산신씨 가족묘(14:25)

묘지에서 옥룡산을 오르면서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이곳이 후삼국시대 말기에 왕건과 궁예의 치열한 세력 다툼의

중심에 선 몽송마을...순간의 방심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걸

역사는 가르쳐 주고 있는 듯 하다

묘지 뒷쪽으로 오르면서 또다시 고행은 시작되고

삼포(옥룡)지맥길은 끝까지 방심하면 안된다

두발이 아닌 네발로 기어오르다시피 옥룡산으로 향한다

NO 64송전탑(14:32)

힘들게 송전탑을 지나면서 뒤돌아 보니 느러지전망대와 영산강,

한반도 지형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데, 갔다올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나뭇가지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한반도지형과 느러지전망대

표해록(漂海錄)은 조선 성종19년(1488년)에 최부(崔溥)가 지은 기행문으로

표해록 중에선 가장 유명하며,  총 3권 2책이며 지금은 국립중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정식 명칭은 금남표해록(錦南漂海錄)이다.

 

나주시 동강면 몽송리가 고향이라 저곳에 곡강 최부길이 조성되어 있다.

표해록은 부친상으로 제주에서 나주로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명나라 저장성 임해현(臨海縣) 우두외양(牛頭外洋)에

상륙하여 조선으로 돌아오는 6개월(136일)간의 이동 과정을 생생하게 정리한 내용이다.

 

 『표해록』은 세계 3대 중국 기행문 중 으뜸으로 뚜렷한 역사의식과 민족적

긍지를 지니고 충효 등 유교적 가치관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극복, 43명 전원이 무사귀국하기까지 조선 최고의 선비가 보여준

극적인 인간승리의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능선에 올라 우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로 향하는데 

영산강변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드세기만 하다

옥룡산 정상에 올라서니 겨울날씨라  낙엽에 쌓안 정상에 망가진 

쉼터의자, 땅속에 깊이 박힌 삼각점...명성에 비해서 뭐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다....말 그대로 실망스럽다 

옥룡산(玉龍山:132.9m:14:40)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에 있는 산으로 산산경표상으로 지맥길의

주산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에는 낡은 쉼터의자들이 망가진 채

방치되어 있고 낙엽속에 묻혀있는 3등삼각점과 준.희쌤의 산패와

선답자의 시그널 몇개가 걸려 있으며 영산강변에 솟아 있는 산으로

영산강 위의 영산강대교와 몽탄대교가 보이고, 몽탄나루가 바로 앞이다. 

 

『호구총수』에는 두동면에 옥룡촌(玉龍村)이 기록되어 있고, 옥룡은 귀한 곳,

유리한 곳, 전망이 좋은 곳을 뜻하고, 광복 이후 옥룡촌은 몽탄(夢灘)이라 했으며,

영산강 건너편 무안군 몽탄면과 나루가 연결되어 있었다... 1994년 몽탄대교가

개통되었고 북서쪽에 복룡(伏龍) 마을이 있으며 영산강변에는 들노래로 소문난 봉추마을도 있다. 

옥룡산 정상 3등삼각점(영암 309)

모든걸 체념하고 좌측 아래로 내려간다

암봉(14:44)

울산김공묘(14:45)

암봉을 우회하면서 내려서니 울산김공위 묘지가 나오고

묘지 좌측으로 내려서면서 몽탄나루로 향한다

낙엽으로 이루어진 내리막길이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그래...권력이나 산이나 내려갈 때 조심해야지...

서향을 바라보면서 양지바른 곳에 오손도손 나란히 누워있는

묘지를 바라보면서 내려서는데  生前에도 다정하게  지나셨던 모양이다

안부(14:48)

안부 아래로 내려서니 생전에 벼슬깨나 한 세도가의 묘지인 것

같은데 지금은 후손들이 돌보지 않은지 칡넝쿨과 억새같은

잡풀에 가려져 보기가 영 거시기 하구나

묘비를 자세히보니 가선대부(嘉善大夫)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오위장(兼五衛將)을 지낸 양성이공(陽城李公)과 정부인(貞夫人)

김해김씨의 묘비로 기록되어 있다

 

* 가선대부(嘉善大夫)는 조선 시대종이품(從二品문무관의 품계로 1865(고종 2)년부터 

  문무관과 종친의빈(儀賓) 품계와 같이 썼다

*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는 조선 시대중추부(中樞府) 종이품 벼슬.

* 오위장(五衛將) 조선 시대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딸려 오위의 군사를 거느리던 장수로

 12명으로품계는 초기에는 종이품(從二品)이었다가임진왜란 이후에 정삼품(正三品) 되었다.

양성이공 묘지 아래는 뭔 공사인지는 몰라도 지금 한참 공사중이고

우측의 대밭사이로 이어지는 마을길로 내려간다

대밭을 빠져 나오니...

도롯가 입구에 산으로 아우님의 빛바랜 흔적을 바라보면서

몽탄나루로 내려선다

몽탄나루(夢灘:14:55)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에 있는 나루로 마을 앞에는 예전에 몽탄강(夢灘江)이라

불렀던 영산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강건너에는 무안군 몽탄면 몽강리가

보이는데 예전에는 이곳에서 이어지는 배가 다녀서 나루가 형성된 곳이란다.

참으로 힘들었던 지맥길이었지만 남도지방의 지맥 하나를 끝내고 나니 속이

후련하지만, 한편으로는 삼포천과 영산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진 못한

아쉬움도 남는다...하지만 꿩대신 닭이라 했던가 아쉽지만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몽탄(夢灘)이란 지명은 영산강에 잠기는 지점으로 고려 태조 왕건이 나주성에 웅거한

후백제를 공략하다가 현 나주 동강면으로 퇴각하였다... 그러나 영산강이 막혀 건너지

못하고 있던 중 꿈(夢)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눈앞의 호수는 강이 아니라 여울(灘)이니 빨리

건너라고 하므로 말을 타고 현재의 몽탄나루를 건너 견훤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하여

몽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 몽탄나루는 무안군의 동쪽 몽탄면 몽강리에 있는 나루터로서 현재

몽탄나루 바로 아래에 몽탄면 명산리와 나주시 동강면을 연결하는 몽탄대교가 건설되어

몽탄나루의 기능은 쇠퇴하였으며, 대동여지도에 몽탄포(夢灘浦)가 승달산 동쪽 영산강가에

표기되어 있을 정도로 영산강을 이용한 수운 교통이 매우 발달한 지역이고 대동지지에

몽탄진(夢灘津)은 남쪽으로 35리인데 나주 경계와 통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몽탄나루는 몽탄대교가 건설되기 이전에 몽탄면 몽강과 명산, 청룡, 당호 등지에서 영산강

동쪽의 나주시 동강과 공산면 지역으로 건너다니던 나루터였다... 몽탄나루는 영산강

하류에 있는 나루터로서 이 나루터에서 하류 쪽의 주룡나루터까지 강폭이 갑자기 넓어지므로

나루터로서의 기능이 매우 활발했던 곳이다.

예전에는 몽탄강(夢灘江)이라 불렀지만 지금은 영산강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우리나라 4대강중에 하나이자 호남의 젖줄인 영산이란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나주의 영산강변 영산창(榮山倉)에서 유래되었다는 견해가 유력한데 영산지방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나주)에 영산창(榮山倉)은 금강진(錦江津) 언덕에 

있으니 곧 영산현이다...나주및 순천, 해남 등지의 전세를 여기에 두어 거두어

들였다가 배로 운반한다...금상(今上:왕위에 있는 임금을 이르는 말)7년(중종7:

1512)에 창고에 거두어 들이던 것을 영광의 법성창(法聖倉)으로 옮겼으므로

폐지되었다라는 기록이 있고, 동일문헌에 영산폐현(榮山廢縣)은 주의 남쪽에 있다

 

영산강의 지명유래에 대해서는 영산포 영산동의 효부였던 영산신씨를 기리는

영산사(榮山祠)가 세워지면서 금강이 지명이 바뀌었다는 설, 또 하나는 정씨

성을 가진 마음씨 좋은 노인의 며느리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영산서원(榮山書院)과

유래된 설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당시 영산강 지명이 발원지로부터 하구까지를 일컫는 전칭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여지도에서는 사호강(沙湖江)에 근원이 담양의 용천산(龍泉山)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원율천(原栗川)이 되고 (중략)....좌측으로 덕진포(德津浦)를 지나 엄산(奄山)을

경유하여 목포의 서쪽 바다로 들어간다는 기록으로 영산강의 유로를 설명했다.

 

이는 영산강의 전칭으로 사호강 지명을 보여주고 있으며, 대동여지도에서 상류에서부터

수록된 지명을 보면 담양의 북천 (北川), 죽녹천(竹綠川), 광주의 칠천(漆川), 나주의

금강(錦江), 사호강(沙湖江), 곡강(曲江)등이 기재되어 있다

도로를 걸어가면서 바라본 몽탄대교와 영산강교의 모습

합수점인 삼포천은 멀게만 느껴진다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옥정리에 나주로 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려고 하는데 물어 버려고 해서

사람이 없어서 물어 볼 수도 없고, 지나가는 차량들을

상대로 앵벌리(히치)를 시도했지만 차가 지나가야

앵벌이를 하지 하는 수 없이 2주전에 이용했던

공산면 택시를 호출하여 영산포 터미널로 향한다

 

잠시후에 택시가 도착하고 영산포로 향하는 택시에서

잠시 잠에 빠졌다가 일어난다...터미널에 도착하니

택시요금이 25,000원인데 지난번에 이용해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2,000원을 깍아준다...복받을 겨

영산포터미널(15:35)


영산포의 본래 흑산도 사람들이 육지로 나와 남포(南浦)에 우거하였으므로

영산현이라 했다...고려 공민왕 12년 군으로 승격했다가 주(州)로 예속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같은 사실을 볼 때 영산 지명은 흑산도에 있던 지명이 옮겨져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군현의 읍치나 진(鎭))등의 이동으로 지명이 바뀌는

것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영산포발 → 광주행 버스표

터미널에 도착하는 버스가 금방 지나가고 다음 차가 17시 05분 차란다

일단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근처 식당에

허기를 면하려고 했는데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일단 버스표를

예매하고 베낭에 남은 간식으로 허기를 면한 다음에 버스에 오른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17:25)

광주발 → 서울행 버스표

광주에 도착하여 터미널 내에 있는 순두부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로 힘든 지맥길 졸업을 자축하며

서울가는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