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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낙동정맥(終)

낙동정맥 제12구간 - 불랫재에서 시티재까지

by 범여(梵如) 2010. 6. 28.

산행일시: 2010년 6월~27일(무박)

산행구간: 중도일 마을(경북 영천시 자양면)-불랫재-상도일 안부-춤추는 소나무-안국사 갈림길

              돌탑-운주산-식탁바위-625봉-이리재-봉좌산 삼거리-봉좌산-배티재-도덕산 삼거리

              도덕산-너덜지대-오룡고개-삼성산 삼거리-삼성산-안강 휴게소(경북 경주시 소재)

거리/시간: 약 30.8km / 9시간 45분 소요

 

요즘처럼 힘든 때에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을 이뤄 전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행복 바이러스

를 전파하고 희망을 주는 우리 젊은 태극전사들이 우르과이와 8강 진출을 놓고 일전을 벌이는

그 시간에도 범여는 머나먼 여정의 낙동정맥길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모든 산꾼들 다 오늘은  모든게 월드컵에 집중되어 있는 느낌이다.

예전과 달리 버스에 중계 방송관계로 모두 다 거의 뚠눈으로 중계방송을 보았고 중계가 끝나고

아쉽게 진 것을 아쉬워 하면서 잠을 청하지만 좀처럼 눈이 감기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새벽 3시가 조금넘어 버스는 지난구간 날머리인 중도일 마을이 가까운 서포항I.C를

 통과한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하차하니 다행히 비는 오질 않는데 약간의 안개비와 짙은 습도로 인해

 엄청난 체력이 소모될 것 같은 느낌이다.

선두에 서 일행들과 포장된 임도를 통해 약 2km 가까이 걸어 盆盛 裵氏 묘지를 끼고 우측 들머리로

들어선다. 나무잎들이 비를 잔뜩 머금은 탓에 옷은 금방 다 젖어 버린다. 그렇다고 우의를 입을 수도

없었다. 부지런히 걷는다. 모두 다 아무말없이 상도일 안부를 지나니 짙은 안개 속으로 서서히 음력

오월 보름날의 여명은 밝아오기 시작한다. 

정확히 60년전의 7월에 이곳에 6.25의 치열했던 전투로 인해 아무런 이유없이 죽어간 영혼들의

울부짖음인가 서글픈 새소리가 운주산 아래까지 계속된다. 그 당시 이곳 자양을 중심으로 기계, 안강

죽장, 장사로 이어지는 어래산, 보현산, 운주산에서 낙동강 전투가 엄청 치열한 곳이였다.

이곳이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면 남한이 함락될 시점이었다고 한다. 비극적인 이념 전쟁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너무나 많이 희생된 영혼들이 자꾸만 범여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구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돌탑을 지나 운주산 정상에서 운무로 가득한 아침을 맞는다.

오늘 코스는 상당히 힘이드는 코스이다. 거리와 난이도 모두 다 말이다.

거기다가 마루금 정상에는 산이란 명칭이 있는 곳이 하나도 없다. 모두 다 700m에서 1km 정도

살짝살짝 벗어난 코스로 모두 다 이름있는 산이라 보고 가자니 시간이 너무 걸리고 안 보자니

언제 올지 모르니 난감하다. 그래서 세 사람의 산꾼이 의기투합하여

다 보자고 4군데 산을 다 보자고 의견을 모으고 부지런히 서둘렀다.

첫 구간인 운주산과 봉좌산은 나름대로 괜찮았다. 갔던 길을 되도라 오질않고 우회

할 수 있는 길이 있었기에 말이다. 운주산을 찍고 이리재까지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뚝 떨어지는

느낌이다. 고도 800에서 300으로 떨어지니 말이다. 다행인 것은 빗길임에도 불구하고 길은 

미끄럽지 않다. 거기다가 정통적인 육산인 까닭에 관절에 무리도 별로 오질 않는다.

가속도가 붙는다.  이리재에 내리니 대구, 포항간 고속도로가 아래 터널로 뚫리는 바람에 이 재는

식사시간 30여분 동안 차량 한대 구경할 수 없는 한적한 고개이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봉좌산 가는 된오름길을 시작한다. 고도를 600으로 높이니 아침 식사후라

그런가 상당히 힘이든다. 에둘러 봉좌산에 도착하니 맑은 날이면 주위 전망이 기가 막힌 곳이련만

오늘은 주위에 50m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雲霧로 가득하다. 사진 몇장찍고 길을 서두른다.

배티재를 지나 부지런히 도덕산을 향한다. 도덕산은 삼거리에서 다시 되돌아 와야 하기에

괜히 마음이 바쁘다. 약 20분을 걷으니 도덕산 정상이다. 이곳에는 여러 단체의 명의로 3개나

되는 정상석이 있다. 보기가 좀 않좋다. 이것도 자연 훼손이 아닌가. 좀 정리되었으면 하는

느낌이다. 더군더나 새로 송전탑 설치하는 바람에 산등성이는 너무 많이 훼손되어 있다.

도덕산 정상에서 과일로 원기를 보충하고 삼거리로 되돌아와 급경사의 오룡고개까지 긴

내림길이 시작된다. 무릎에 약간의 무리가 오는 느낌이다. 너덜길을 지나 긴 내림이 끝나니

주위의 뽕나무에 오디가 새카맣게 달려있다. 그리고 산딸기가 지천이다. 너무 많아 

자연적으로 떨어진게 엄청나다. 산꾼들이 갈 생각도 않고 오디 나무에 매달려 입에 따넣기

여념이 없다. 범여도 마찬가지... 이곳이 잠업이 성해던 곳이란다. 특히 오룡고개 좌측에

있는 오배마을이란 곳은 누에고치 마을로 유명하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이곳이 뽕나무가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지천으로 널려있는 딸기로 배를 채우며 오룡고개에 다다른다.

근데 저 넘어 산을 보니 기가 딱 막힌다. 급경사의 엄청난 삼성산이 앞을 딱 가로막고 있다.

코가 박힐만큼의 급경사가 1시간 가까이 이어진다. 입에는 단내가 난다

마지막 최선을 다한다.  엄청난 체력이 요구되는 코스이다. 거기다가 속옷이 다 젖어 

땀으로 인해 사타구니가 다 헐어 버렸다. 쓰리고 아파 미칠지경이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도

없고. 있는 힘을 다해 삼성산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삼성산을 향했다. 근데 앞서 3개의 산과는

달리 삼성산은 마루금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있다. 장난이 아니다. 30여분이 걸렸다.

근데 이곳도 아크릴 표시석 포함해서 4개의 정상석이 있다. 이젠 안개가 걷히는지 저 건너

지나온 도덕산도 보이고 저 아래 안강읍과 우리가 가야할 시티재가 아련히 보인다.

능선에서 바람도 꽤 불어준다. 할 수 없이 속옷을 벗어 말린다. 약 10분정도 말려서 입으니

사타구니가 좀 덜 아픈 느낌이다. 이젠 힘든 코스는 별로 없고 긴 내림끝에 시티재에

도착하니 사워를 하고 비빔밥 한그릇에   모든 피로를 풀고 서울로 향한다.

아쉽다면 풀독으로 인한 가려움증에 션한 막걸리 한잔도 못한것이 너무 아쉽지만 말이다.

오늘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우리의 젊은 태극전사들 너무 잘 싸웠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모든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안국사 안부에서

60년전인 1950년 7월 이곳에서 벌어진 6.25 전쟁의 상흔을 안고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유주무주 고혼들의 넔을 그 누가 위로해 줄까. 냉전시대의 희생자들 과연 그들은 누구를 위해

희생되어야만 했던가. 이곳 자양, 안강, 기계, 죽장, 지역의 낙동강 방어선에 투입된 많은 민초들이여!

부디 이제 모든 원한을 버리고 극락왕생하소서

운주산(806.2m 05:15)

고스락에 항상 구름이 주위를 감싸고 있어 이름 그대로 “구름이 머물러 살고 있는 산”이라고 해서 雲住山이란다.

포항과 영천의 경계를 이루는 낙동정맥 길의 산으로 200m 살짝 비켜난 영천땅에 속해 있다.

壬辰倭亂 때는 山勢 덕에 방어하기가 좋아 김 백암 장군이 성터를 쌓고 진지를 설치하였단다.

이로 인해 산 남쪽 아래 임고면에는 수성리(守城里)라는 있고 구한말에는 의병조직

산남의진(山南義陳)이 이곳을 근거지로 일제에 대한 항쟁을 펼쳤으며 임진왜란과 6.25때는 주민들의

 피란처가 되기도 했던 전흔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산이다.  

운주산 아래에 있는 무덤(근위장군 합장묘)도 운무로 아무것도 볼 수가 없구나 

 이리재 (07:15)

운주산 정상에서 이리재 내림길은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해발 800고지에서 300으로 떨어지니 과연 그럴만하다. 다행인것은 비가 왔지만 다행히 미끄럽지는

않았고. 정통적인 육산으로서 걷는데는 큰 불편은 없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산행길의 가속도가 상당히 붙는다. 높은 습도로 인해 피로감은 배로 더해 오는 느낌이다.

거기다가 짙은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이 불만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비가 오질 않아

천만다행이다.  긴 내림 끝에 이리재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이리재는 포항쪽 기계면 봉계리와 영천쪽 임고면 수성리를 연결하는 고갯길

고개 밑으로 시원하게 뚫린 대구 포항간 고속도로가 뚫려있는 바람에

이리재는 식사시간 30여분 동안 차량 한대를 구경하지 못했다.

봉좌산 가는 길의 시그널

이래재에서 아침만찬을 끝낸 후 부지런히 길을 서둔다.

다시 해발 300고지에 600고지로 고도를 높이려니 상당히 힘이 든다.

거기다가 배가 불러 더욱 더 힘이 든다. 거기다가 속옷이 젖어 그런지

사타구니에 습기가 차고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지 쓰리고 아프기 시작한다.

봉좌산(鳳座山:600m:08:20 )

봉좌산(鳳座山)은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와 경주시 안강읍의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상에서 약 0.7km 정도 벗어나 있다.

 맥은 계속 이어져 안강과 기계면의 경계를 가르며 어래산으로 이어진다.
봉좌산 꼭대기에는 봉좌암(鳳座岩)이라는 봉황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날씨가 맑은 날은

저 멀리 포항시내를 포함해 정말 전망이 뛰어난 곳이건만 오늘은 모든걸 접어야만 해야겠다

배티재(10:00)

옛날 이 고개에 맷돼지가 행패를 부렸는데 그 산돼지의 등에 매태,
이끼가 있어 매태가 와전되어 배태-배티로 되었다는 설과
배’가 산을 뜻해 산 고개라는 뜻으로 배티가 되었다는 설이 있는 배티재이다.

도덕산 정상에서(702m 10:30)

 낙동정맥 마루금에서 약 20분정도 벗어나 있는 도덕산을 향한다. 짙은 습도에 쿨한 기분은 전혀없다

방초, 황호님과 부지런히 향한다. 다시 되돌아 와야하기에... 가는길에 새로 송전탑을 설치하는 바람에

정상 주위에 산림이 상당히 많이 훼손되어 있다. 겨우 도착한 곳에 표식판이 각기 다른 단체의 이름으로

3개나 설치되어 있다. 지금 사진은 가장 최근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도덕산은 경상북도 경주시안강읍영천시고경면에 걸쳐 있다. 일명 두덕산()이라고도 한다.

주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자옥산(), 북쪽으로 봉좌산()이 이어지며 서쪽으로 삼성산(),

 동쪽으로 어래산()과 마주 본다. 산세는 평범하지만, 전망이 뛰어나 정상에 서면 멀리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범여는 아직 德이 모자람인지 동해는 고사하고 20m 앞도 안보인다.

조선시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이 이곳에서 공부하여 성공했다해서

더 알려져 있는 산이다.

 산 아래 옥산리()에 조선시대 회재() 이언적()이 기거하던 독락당(:보물 제413호)과

옥산서원(:사적 제154호), 정혜사지13층석탑(국보 제40호) 등의 유적이 있다.

오룡고개 내려가는 마루금 옆의 너덜길

마루금에서 약 1km 정도 벗어나 있는 도덕산에 들렸다가 다시 마루금에 복귀하여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코가 닿도록 급경사를 내 닿는다.  갑자기 겁이 난다.

내려온 만큼 다시 그 이상 올라가야만 한다는 이치를 알기에...사타구니는 자꾸만 쓰리고...

오디나무에 붙어 오디를 따먹고 있는 산꾼들

30분이상의 내리막을 치니 먼저 내려온 산꾼들이 오디나무에 모두들 매달려 있다.

새카맣게 익은 오디가 정말 달콤하고 맛있다. 이곳 영천지역은 잠업농가가 상당히 많다.

오룡고개 좌측 저 아래에 누에고치로 유명한 오배마을이 있어서 그런가

주위에 뽕나무와 산딸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주위에 널려있는게 산딸기이다. 최근 산행에서 산딸기 원없이 먹어봤다.

저 산나리는 어느 님을 기다리시나...

한가하기만 콩밭도 낙동정맥 마루금과 같이 하고.

오룡고개(11:15)

해발 약250m의 오룡고개입니다.
영천시 고경면 삼포리와 오룡리의 경계를 일우는데 28번 국도에서
갈라져 나와 오룡리와 삼포리를 돌아 다시 28번 국도로 이어지는
포장도로인데 고개를 경계로 왼편은 빗물이 동쪽으로 흐르고
오른편은 서쪽으로 흘러갑니다.
임진왜란때 달성 서씨가 처음으로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 전합니다.
지형이 용처럼 생겼다 해서 미룡(美龍)이라 했는데, 일제 때에 강제로
미농(彌農)으로 고쳐 부르다가 행정구역 개편시 오룡(五龍)으로

불리어졌다 합니다.

삼성산(578.2m: 12:30)

삼성산(三聖山)은 옛날 이 산에 삼부자(三父子)가 살고 있었는데 생활이
어려워 초근목피로서 연명하여 가매 도성인의 도를 잘 베푼다하여 이 삼부자를
보고 성인이라 하고 그 뒤 이 산을 삼성산이라고 합니다.

지나온 도덕산의 모습

삼성산 안부에서 내려다 본 범여가 가야할 낙동정맥의 마루금 - 저 아래 어렴풋이 오늘의 날머리

시티재가 보인다

마지막 시티재를 향한 발걸음은 너무나도 무겁다.

저 아래 차량소리가 이제 오늘의 하산지점을 말해 주는것 같다.

염치불구하고 휴게소 수도꼭지를 붙들고 샤워를 하고있는 산꾼들

시티재(여현 [峴:안강휴게소 13:45(경북 경주시 안강읍 소재)

해발300m의 시티재 안강휴게소에 내려섭니다.
신라 경덕왕 때 주민의 평안함을 염원하는 뜻에서
안강(安康)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옛날 암행어사가 이곳을 지나다 보니 "소대발(소에 실은 나무발)"이 
이 고개에서 많이 나오는 것 같다 하여 시치재, 즉 시티재가 되었는데
지금은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콘크리트 광장 휴게소가 되었는데 상당히 규모가 큰데
지금은 대구 -포항간 고속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규모에 비해 상당히 을씨년스런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