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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낙동정맥(終)

낙동정맥 제 11구간 - 지루하고 힘들었던 산행

by 범여(梵如) 2010. 6. 13.

 산행일시: 2010년 6월 12~13(무박산행)

산행구간: 가사령(경북 포항 죽장면)-성법령-사관령-574봉-배실재-628봉-침곡산-서당골재

              768봉(태화산)-먹재-한티재-배실재-도일리 마을회관

거리/구간: 마루금 22km, 날머리 2km/ 실제거리 약 30km/시간: 9시간 20분 소요)

 

지난주에 중국 상해, 소주, 항주로 3박4일만에 여행을 갔다온 관계로 2주만에 다시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이젠 주말마다 외박(?) 하는게 이젠 익숙하다. 오늘 한국과 그리스의 월드컵 중계방송이

저녁 8시 30분부터 시작하여 전반전만 보고 부지런히 탑승 장소인 양재역으로 가는데 아파트 단지가

날아갈듯이 난리다. 전반전에 이 정수 선수가 기분좋게 한골을 넣었는데 후반에 박 지성 선수가

한골을 넣었단다. 이런 날엔 산악회에서 1시간만 늦게 출발하면 안되나 하는 불평(?)속에 차에 오른다.

 참으로 한국이란 나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 중국을 가서도 확연히 느꼈다. 상해 시내에

한국차가 질주하고 삼성,L.G 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단다. 전 세계에서 가장 광고비가 비싸다는 상해

황포강에 삼성이 유람선을 통채로 빌려 광고를 하는가 하면 엑스포 박람회장 한국관은 관람인파로

인산인해로 인해 5시간을 줄을 서고도 들어갈 수가 없어서 비행기 시간 땜에 포기하고 푸동공항을 

향하면서 부뜻함을 느꼈다. 우리나라는 정치하는 자들만 변하면 초선진국으로 갈 수 있을터인데...

지난 6.2 선거에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있을 터인데... 하긴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 아둔한 머리로 자각하진 싶지 않을 터이지만... 괜한 잡념에 차에 오르면서 이내 잠에 떨어진다.

서포항 I.C를 벗어나면서 잠에서 깬다. 거기서 약 40분을 2차선 도로를 달린 후에야 가사령에 도착한다.

어제 서울은 하루종일 비가 상당히 많이 왔는데 이곳은 전혀 비가 오질 않은 모양이다.

가사령에서 새벽 4시에 산행을 시작한다. 시작부터 된비알이다.거기다가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습도가 바람이 전혀 없는 탓에 금방 옷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저 아래 상옥리 마을엔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하고 개짖는 소리로 사람사는 곳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오지 마을이다.

산행 시작 40분 후에 성법령의 헬기장에 도착하여 물 한모금 마신 후에 부지런히 길을 재촉하여

사관령에 도착한다. 약 6km 가까이 되는 거리를 1시간 반만에 도착한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

하긴 새벽 산행은 빠르다. 주위를 볼 필요도 없고 사진 촬영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오늘 산길은 크게 난이도는 없으나 상당히 지루하다. 非山非野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 무시할

수도 없는 코스이다. 낙동정맥의 딱 절반구간인 배실재의 넓은 곳에서 아침 만찬을 준비한다.

산꾼들의 베낭을 풀고 이것저것 나눠 먹으면서 우정을 나눈다. 그중에서도 막걸리가 단연 인기 짱이다.

침곡산 오름길은 등산로가 아니라 정글이다. 길이 제대로 돼있지 않아 겨우 빠져 나간다. 그 와중에

청순한 찔레꽃만이 짙은 향기를 내뿜으며 피곤한 산꾼을 유혹한다. 입에서 장 사익님의 찔레꽃이란 노랠

흥얼거리면서... 침곡산 정상에서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오르 내림을 계속한 끝에 768봉 산불 감시초소에

도착에서야 마루금을 구경할 수가 있다.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땀은 비오듯이 쏟아지고 거기다 먹재까지

고도를 450까지 뚝 떨어지는 내리막에 무릎에 무리가 온다. 자꾸만 스틱에 힘이 들어가고...

한티재를 지나 불랫재가는 오름길은 너무 힘이든다. 식수에다 식용 소금으로 염분 유출을 막고 휴식을

취한다. 아직도 3.5km나 남았다. 시원한 바람이 꽤 분다. 염치 불구하고 웃도리를 벗어 나무에 걸어 말리고

바지를 내리고 가을이 아닌 여름에 고추 말리기(?)를 한다. 참으로 시원하다. 이 맛을 그누가 알리오 ㅋㅋㅋ.

산이란 힘들지 않은 산이 있으리 마는...불랫재 가는 높은 봉우리 2개가 사람을 질리게 한다.

다행인 것은 마루금 주위에 산딸기가 지천으로 깔려있다. 비타민C 보충한다는 핑계로 닥치는 대로 따서 입에

넣고 내림길을 걷는다. 이곳은 마사토 지형이라 상당히 미끄럽다. 안전사고 나기가 딱 좋은 곳이다.

근데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걸 어쩌랴 겨우 내려와 도일리 하산길의 임도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리고...

하산주와 녹차 삼겹살에 영천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상경길의 버스에 몸을 실고 꿈나라 여행으로

11구간을 마무리를 깔끔하게 했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가사령에서 불랫재까지 지도와 고도표

 중국  상해에 소수민족이 운영하는 태가촌의 식당에서 소수민족과 함께(2010,06,,04)

중국 상해 엑스포 한국관 앞에서

영덕과 영양, 청송의 경계를 가르던 낙동정맥은 청송의 주왕산에 들었다가 나와 포항과 청송을 가르고
다시 포항으로 들어 죽장면과 기계면을 가르며 지난다. 지난 구간 지나온 통점재에서 오늘 들머리 가사령은
포항시 죽장면 상옥리에 있는 고개에서 2주전에 비를 쫄딱 맞은 구간에서 산행을 준비한다.(03:40)

가사령(佳士嶺)이란 아무런 표식이 없어 동료 산꾼이 만들어 온 코팅 표식을 걸고 산행을 시작한다.

상옥리(上玉里)의 여명- 시작부터 된비알이다. 거기다가 바람한 점이 없다. 저 아래 상옥리의 마을 가로등도

이별을 준비하고 여명이 밝아오는 상옥리 마을에 개 짖는 소리만 요란하다. 아무래도 새벽에 헤드랜턴을 켜고

 산행하는 무리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이곳 상옥리는

"고산분지에 형성된 마을로서 신라 때부터 숨어 살게된 사람들, 전란을 피해 온 사람들,

화전민들이 정착함으로써 커지게 되었다. 흔히들 이곳을 '오강지두 팔령지하(五江之頭 八嶺之下)'라

할만큼 산간오지다. 예부터 피란지처(避亂之處)로 '첫째는 고래요. 둘째는 두마(斗麻)'라 할 때,
첫째에 해당하는 곳이다. 옥같이 맑은 냇물이 흘러 오십천(五十川)의 상류 한 지류가
되니 세칭하기를 옥계(玉溪)라 했으며, 고래 또는 고내라고도 부르던 상옥은 높은 곳에
냇물이 흐른다는 뜻 <고천(高川)>으로 풀이되기도 하고, 지형이 마치 거대한 고래로
각(刻)을 떠낸 듯한 행주형국(行舟形局)인지라 이에 연유하여 고래(鯨)라 부른다 한다.
한편으로는 동편 산의 모습 또한 암수 두 마리의 고래를 닮았다는데 연유한다고도 전한다.
윗고래인 1리에는 거릿마을(거렁미), 솔안마을(松內), 못둑모치, 무쇳골(수철골)이 있고,
아랫고래인 2리에는 상윗골(사잇골, 샛모치), 배빗재마을, 당모치(堂坪), 먹방골(墨房里),

 넘은절골(城寺洞), 장터, 쑥밭과 같은 마을이 있다.
신라말기 서라벌에서 난을 피해 들어온 고관대작들의 고급주택이 즐비하였으며, 한때 1000여

호가 넘게 살았다 전한다. 먹방골은 그 당시부터 먹을 만드는 고을로 소문이 났고,
무쇳골은 병기와 농기를 만드는 마을로 군사상 중요한 지역이었다 한다.
성지비결(性智秘訣)에 이재칠전중(利在七田中)이라 했고, 정감록(鄭鑑錄) 비결에도

구인종 칠전중(求人種 七田中)이라 했다 하여

칠전(鯨田, 葛田, 坪中田, 馬頭田, 艾田, 大中田, 角田(火田))의
중앙에 위치한 이 마을을 피난처로나 군사기지로 이용하였다 한다.
산남의진에 가담한 강대근(姜大根) 의사의 출생지라고도 한다. "
<죽장면 지명유래 인용>

성법령 정상 헬기장에서

709.1봉에서 분기되어 성법령을 지난 형북기맥은 678.8봉, 비학산(762.3), 윈고개, 도음산(384.6),

 연화재, 소태재, 감태고개를 거쳐 우목리에 이르는 도상거리 42km의 산줄기다.
포항은 연일, 흥해, 청하, 장기로 크게 4등분하는데 연일과 흥해의 문화권을 가르는 맥이 형북기맥이다.

 저 아래 성법리(省法里)는 "1914년 무들, 생알, 섬마을, 음지마을, 양지마을, 보살미기, 피밭골과

같은 자연부락을 통틀어 성법리(省法里)라 칭하였다.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성법리부곡(省法伊部曲)이

있었고, 그 지휘관제소가 덕동에 있었다 한다. 법을 반성하라는 뜻으로 이 지역 일원을 예부터

 성법(省法)이라 통칭하였다."고 한다 (04:45)

사관령 정상에서

 가끔 바람은 불긴 하여도 습도로 인하여 아침부터 옷은 땀으로 범벅을 이룬다.

숲으로 우거져 아무것도볼 수가 없다. 부지런히 걷는 일 이왠... 힘들여 오른 봉우리는 보도

블록이 깔려있는 헬기장 사관령(士官嶺)이다.
5km가 넘는 거리를 1시간 반만에 도착한다. 아무런 표식도 없다.

무심코 지나치면 이곳이 헬기장으로만 인식하지 그냥 모르고 지나치기 딱 좋을듯 하다.

포항시는 낙동정맥길에 좀 신경을 썼으면 한다.

이곳 가사령은 임진왜란 전후에 가사리에서 무기를 제조, 벼슬아치 외는 덕동으로 못 넘게
통제하였다해서 불리게 된 이름이라는데 고개가 아니라 봉우리다.

사관봉이라 부르는 것이 맞을듯...(05:30)

사관령에서 배실재 가는 길엔 찔레꽃이 만발하다. 참으로 말고 곱다.

거기다가 진한 향기가 산꾼을 유혹한다.

아침 산행에 지친 산꾼들의 머리를 맑게 해준다.

장 사익님의 ‘찔레꽃’을 흥얼거려 본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

낙동점맥의 중간 지점인 배실재에서(06:40)

오늘 코스는 낙동정맥 구간 중에서 가장 멋없는 코스이다. 특별하게 볼 곳도 없다.

그렇다고 아주 쉬운 코스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난해한 코스도 아니다. 그저 무미건조하다고나 할까.

녹음으로 우거져 주위 조망권은 아예 제로에 가까울 정도이다.

침곡산(針谷山 725.4m)

침곡산(針谷山 725.4m)은 포항시 죽장면과 기북면을 가로지르는 능선에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로 대동여지도에는

사감산(士甘山)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정상엔 폐헬기장과 무명무덤이 자리하고 있을뿐 이렇다 할 조망은 없다.

하지만 낙동정맥에선 제법 이름이 알려진 산 답게 오늘 코스에 유일하게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반가울 따름이다.
'針谷山'은 산이 높고 뾰족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기 보다는 서쪽 사면 아래 죽장쪽 입암에서 이 산을 향해 뚫린 좁고

긴 꼴짜기가 마치 바늘 같이 가늘다 하여 골짝일대를 침곡리(針谷里)라 부른고 있는데서 유래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08:30)

 768봉(태화산) 정상에서

지도상에는  태화산이란 지명은 없고 768봉이란 숫자만 표시되어 있다. 어느 산꾼이 표시한 모양이다.

정확한 고증과 확인을 거쳐 지명을 붙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768봉에서 먹재까진 지옥의 코스이다.

768봉에서 먹재까지 고도를 250까지 급경사로 뚝 떨어진다. 이런 코스는 정말 무릎에 엄청난 무리가 온다.

정말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데도 긴장이 된다. 그리고 불랫재를 가기 위해선 다시 그만큼 고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더욱 더 힘이 든다(09:40)

농촌지역의 한가로운 모습들(경북 포항시 기북면)

태화산에서 바라본 다음구간 영천지역을 지나야 할 마루금들.

(먹재, 한티재인줄 알았는데...)
한티재로 알고 내려선 먹재 옛날, 좌측 먹골 사람들은 의식주에 곤란이 없다고 하여
실골이라 하였는데 그게 변하여 먹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먹골과 죽장면 정자리를 잇는 터널이 1992년 7월에 뚫렸다.
잘록한 고개를 지나 다시 짧은 오름길을 오르는데

31번 도로 한티터널을 통과한 차량들이 간간이 보인다.

한티터널

한티터널를 통과하는 31번도로 터널까지는 좋았지만 그 사면의 절개지는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되묻고 싶을 뿐이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지 산사태를 미리 예고할 수 있는 센스를 설치해 놨는데 그 강철 쇠줄을 마루금 등산객이

많이 다니는 길 중앙에다 설치해서 산꾼들 다치기 딱 좋게 설치 해놨다.참으로 멍청하고 한심한 인간들...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나. 그리고 현장 한번 나와보지 않고 결재하는공무원 나리들...

제발 국민들 위해 제대로 일좀 하시길...   터널 위를 지나 완만한 능선을 따라 한태재를 향한다. 

한티재에서 한티재(大峴)를 넘는 옛 길이 이 마을을 지났으며, 재 아래 마을이라 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마을어귀엔 고인돌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냥 패스를 한다.

꿀벌을 하는 젊은 친구가 사람이그리운지 말을 건네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오늘은 참으로 산 타는 사람이 참 많네예’ (11:10)

 

태화산(768봉)에서 불랫재 가는 길은 딸기밭이다. 지천으로 딸기가 널려있다.

실컷 따 먹었다. 비타민 C 보충은 확실히 한것 같다. 덕분에 팔뚝은 딸기줄에 할킨 훈장으로 얼룩져 있고...  

한티재에서 불랫재까지 3.5km는 참으로 힘이 든다. 커다란 봉우리 2개는 넘어야 하는데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만이

산꾼의 위안을 준다. 얼마나 땀이 많이 나는지 옷을 벗어 짜니 땀이 뚝뚝 떨어진다.

염치불구하고 옷을 홀라당 벗어 상의를 나무에 걸어 땀을 말리고 아랫도리 내려 바람을 쐬며 한 여름에 

고추 말리기(?)를 한다. 아~~ 날아갈 듯한 이 느낌 극락이  따로있나 여기가 극락인걸

640봉에서 불랫재 하산길은 아예 길이라기 보다는 정글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듯하다

 있지 않아 산꾼들이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할만큼 힘이 든다. 몸을 자꾸 지쳐만 가고 힘든 내리막 거기다가

 마사토의 미끄러운  길 마지막 안간 힘을 다한다.

관리가 되어 길에 잠까지 쏟아진다. 조금만 참자. 저 아래 임도에서 도일리 마을까지 포장도로 20분 정도는

자면서 걸을 수 있는 멋진 코스가 있으니까.

불랫재에 위치한 盆城 裵氏 묘지 우측의 다음구간 들머리를 확인하고 임도로 하산한다.

불랫재의 유래"불랫재"는 포항시 기계면 남계리와 영천시 자양면 도일리를 잇는 고개로
고개 아래 남계리에 "불랫골"이 있다
"불랫재"는 "불래재"인데 발음상 "불랫재"가 된 것이며, 그 語原에 대해선 몇가지 설이 있는데
남계리 계곡 절터골에 신라시대부터 절이 있어 부처님이 오신다는 뜻 [佛來]와,
재를 넘어가면 도적이나 범과 같은 야수의 피해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不來]와,
영천 쪽에서 불을 내면 강한 서풍을 타고 잘룩한 불랫재를 넘어 남계리로 "불이 내려 온다"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의 화령현(火嶺峴) 아래 있는 고개인데 비슷한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이도 20여년전 영천시에 있는 "영천호"에서 "포항종합제철"로 보내는 송수관을
이 고개 밑으로 뚫어 설치하니 지하수맥이 끊어져 마을 샘물이 말라
이 고개 아래에 살던 사람들은 물이 없어 모두 떠나 버리고 지금은 인가가 없다고 한다. (13:00)

포항시 홈페이지 인용

오늘의 하산 지점인 도일리 마을(경북 영천시 자양면 소재(1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