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0년 10월~24일(무박산행)
산행구간: 개금고개-460봉-엄광산-구덕령-승학산 삼거리-구덕산-시약산-시약령-
대치고개-아미고개-270봉(우정의 탑)-괴정고개-군부대 정문-장림고개-
봉화산-구평가구단지-다대고개-아미산(응봉봉수대)-홍치-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
거리/시간: G.P.S;24.1km /약 9시간 소요
산길 천리능선(412.3km)의 낙동정맥...
“경주와 상주”앞 글자를 따와서 경상도가 되고 그 상주의 옛 이름인 “가락(駕洛)“의 흐르는
물의 동쪽에 있는 산줄기라 하여 칭해진”洛東正脈“ 우리 조상들의 한 많은 삶과 哀歡이
교차하는 그 산줄기 이제 沒雲臺에 도착. 더 이상 갈곳이 없어 산꾼 범여의 발길을 멈춘다.
백두산에서 이 땅의 등뼈를 이루며 힘차게 남진하던 백두대간이
태백에 이르러 매봉산 북동쪽 해발 1145봉에서 곁가지를 내어
피재에서 빗물의 운명을 한강, 낙동강, 오십천으로 갈라 놓고는
대간의 기백을 이어 받았다. 매봉산은 산지조종(山之祖宗)의 산인
태백산(1567m)의 영향권이라서 크게 볼 때는 태백산을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매봉산 천의봉에서 시작해서 거침없이
백병산(1259m)을 일궈내고 남으로 남으로 달려 내려가며 저마다 걸출한
이름을 가진 산봉을 엮어가며 낙동강의 동쪽 수계를 형성하고 교통과 문화를 가르며
때론 마을 가까이 내려와 민초들의 고달픈 삶을 아우르던 산줄기. 줄곧 동해를
가까이 두고 강원도와 경상도의 산간오지를 가르다 울산에 이르러 영남알프스란
거대한 산군을 일구었다가 마침내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서 바다로
스며들어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 낙동정맥
국내 제일의 오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낙동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과 한 몸이 되어 남쪽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산줄기로 낙동강의 수계를
형성하는 유역권 전체가 낙동강 물줄기를 중심으로 한쪽은 백두대간, 한쪽은 낙동정맥.
도상 거리만도 약 415여km에 이르는 강원의 태백, 삼척, 경북의 봉화, 울진,
영양, 청송, 영덕, 포항, 영천, 경주, 청도, 울산광역시의 울주, 경남의 밀양, 양산,김해
, 부산광역시의 금정구, 북구, 동래구, 진구, 사상구, 서구, 사하구 등
3개도, 2개 광역시, 7개 시, 7개 군, 7개 구 걸쳐있는 낙동정맥.
그동안 백병산, 면산, 삿갓산, 통고산, 칠보산, 검마산, 백암산, 명동산, 대둔산,
주왕산, 운주산, 어림산, 사룡산, 단석산, 백운산, 고헌산, 가지산, 능동산, 간월산,
신불산, 영취산, 정족산, 천성산, 금정산, 백양산, 엄광산, 구덕산, 아미산을 넘고
동해안과 내륙을 잇는 수 많은 고개를 지났다.
낙동정맥은 낙남정맥,백두대간 일부와 어울러 영남의 울타리를 만들었고 낙동강을 탄생시켰다.
낙동정맥의 뜻은 낙동강 동쪽에 있는 큰뫼줄기를 말함이며, 낙남정맥 역시 낙동강 남녘 산줄기를
가리키지만 실제 지형상으로는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거의 북쪽을 가로막고 있다.
삼수령 피재에 내린 빗방울 중 남쪽으로 흐른 것이 낙동강의 연원이다. 낙동강은 낙동정맥에서
그 최초의 물줄기를 모은 뒤 남으로 흐름을 재촉하면서 백두대간과 낙남정맥, 낙동정맥의 물을
받아들여 우리나라 두번째 큰 강을 만들고 비옥한 유역을 펼쳤다.
낙동강은 이땅에 그 첫모습을 드러 낼 때부터 낙동정맥과 때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만남을
가지고 있다. 낙동정맥, 낙남정맥과 백두대간 일부 구간이 감싼 지방이 바로 영남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땅 그랬기에 걸으면서 정이 든 그곳을 마무리 하는 뿌듯함.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지난 1월 10일에 출발하여 장장 10개월에 걸친 낙동정맥의
대장정. 이제 몰운대 앞바다에서 종삼제(終山祭).족욕식(足浴式)을 끝으로 이제
그 무거운 베낭을 내려 놓으련다. 참으로 아련한 추억도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지나간다. 천의봉 정상에서 기원제를 지내고 출발한 낙동길은 그 추운날 혼자서
산행하면서 면산에서 참이슬에 취해서 삼방산으로 빠지는 바람에 왕복 6.5km를
알바(?) 하면서 힘든 산행도 해봤고 영하 17도의 강추위에 겁도없이 한나무재에서
텐트 쳐놓고 비박을 하다가 얼어 죽을뻔한 기억... 통고산의 상고대에 취해 맛이
간 추억도... 대한민국 최오지 영양의 이름모를 마을에서 동료 산꾼들과 맛있는
찌게에 폭탄주로 하산을 축하했던 일. 맹동산 지나면서 환경파괴 현장에 울분을
토했던 기억. 주왕산 길에 두릅나물과 더덕을 수확하는 기쁨과 관산에서 허벌나게
비 맞았던 일, 간월산, 신불산 구간에서 시간당 30mm이상의 비를 맞고 강풍에
서있지도 못할정도로 비바람에 맞섰던 일, 통도사C.C 구간에서 골프장 보안팀과
맞섰던 일, 금정산 산성 막걸리 맛과 동래파전에 반했던 일은 이젠 추억으로만
남기고 낙동정맥의 산길 능선 1000리길이 넘는 긴 여정을 마무리 한다.
한 주를 어찌 보냈는지 모를정도로 바쁘게 보냈다. 그러는 바람에 산꾼의 가장 기본인
일기예보도 학인하지 못하고 차에 오르자마자 잠을 청하는데 낙동의 긴 여정을 마무리 한다는
벅찬 감격에 도대체 잠이 오질 않는다. 안성 휴게소에서 마지막 파티로 막걸리와 축하케잌을
절단을 하고 잠을 청하기 위해 막걸리를 3잔이나 마셨는데도 잠이 오질 않는다.
2번째 휴게소인 칠곡 휴게소에 오니 비가오길 시작한다. 지난구간 부산의 광경이 넘 멋있어
오늘은 작품사진 하나 건져 볼려고 망원렌즈까지 준비했는데 아무래도 德이 모자람인지
틀린것 같다. 경부고속도로를 벗어나 대구-부산간 신고속도로를 지나 대저I.C를 지나 김해를
거쳐 구포다리를 건너는데 빗줄기는 더 굵어진다
개금고개에서 몰운대까지 지도와 고도표
개금역에서 산행을 시작하다(03시 30분)
산이 아닌 훤한 도시안의 개금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선인들이 거문고를 뜻으며 살았다는 개금고개는 빗소리만 들린다.
엄격하게 말하면 낙동정맥은 金井山群의 끝인 개금고개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맞을것 같다. 도시가 되어버린 뒤 아파트를 지나고 가구공장, 수퍼마켓. 도로
학교 담벼락을 지나는 건 정맥길을 형식적으로 가는거지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부산 지하철 개금역(開琴驛) 에 출발 완만한 경사길 도로를 따라 오르면
고원 아파트와 백병원을 끼고 아스팔트길의 된비알을 오르면서 산길로 접어든다.
백병원 오름길에 금숙이네 포장마차에는 아직도 새벽 취객이 남아 있는지 불이켜져 있다.
서울에서는 생소하기만 한 자기 고향 자역명을 붙인 돼지국밥집이 참으로 많다.
밀양, 하동, 합천, 함안 등 내 고향 고을 지명이라 그런지 정감이 간다.
부산 백병원(03:50)
K.B.S 일일 연속극에나 나올법한 우리네 어린시절 봤던 이발관도 보이고...
부산진구에 운영하는 사회복지관
이런 복지관은 많을수록 좋지만 최근 공동모금체인 사랑의 열매의 행태에서 보듯 가장 청렴해야 할
모금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보면서 분통이 터진다. 고양이한테 생선가계 맛긴 꼴이니...
범여도 해마다 동사무소를 통해 10만원씩이나 기부했는데 말이다. 국민들이 한푼 두푼 낸 기부금으로
유흥비로 탕진한 인간들을 어떤식으로 죄값을 치르게 해야 할 지...
드디어 마루금에 들어선다. 자꾸만 빗줄기는 굵어진다. 저 아래 주례와 사상 지역의 불빛은 환하기만
한데 약간의 바위들의 비에젖어 미끄럽다. 거기다가 바람이 꽤 세차게 불어 寒氣를 느낄 정도이다.
460봉 오름길은 상당히 급경사다. 개금고개가 해발 50m이니 400m이상의 고도를 높이려니 힘이 들 수 밖에...
엄광산 아래 임도에 있는 이정표.
엄광산(고원견산:504 m:04:45 )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부산광역시진구 개금동 엄광산은 높이 503.9m로 제법 높은
산에 속하며, 동남으로 구봉산에 이어져 있는 산이다.
이 산은 고원견산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 명칭은 ""산이 높아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일제시대부터 불려진 이름이다. 엄광산은 얼마 전까지 고원견산으로
불리던 산인데 ""부산광역시을 가꾸는 모임""이 지난 95년 4월에 엄광산(嚴光山)이라는
이름을 찾아주고 정상표지석을 세웠다. 이 산의 정상조망 역시 뛰어나다.
東來府誌 산천조에 보면 엄광산의 산봉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엄광산으로 통해졌던
것이라 보아진다.
구덕령(05:15)
이곳은 부산에서 꽤 큰 꽃마을이다. 꽃을 재배하고 출하하는 곳이니 모양인데 하도 컴컴하여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서울로 치면 양재동 꽃시장쯤 되는 모양이다. 옛날에는 이 아래 동네인
대신동에서 구포쪽으로 나가려면 남포동으로 해서 부산역, 조방앞, 서면을 거쳐서 빙빙 돌아갔는데
지금은 구덕령 아래로 터널이 뚫려서 대신동에서 모라를 거쳐서 금방 구포로 갈 수있다.
작년 가을 친구 장인이 돌아가시어 남부민동에 있는 부산대병원에 왔다가 지나간 경험에 의하면...
이곳 내원정사 주위로 시락국이 유명한 모양이다. 여기저기 시락국이란 간판이 있다.
난 시락국이 뭔지 모른다. 계속해서 비를 맞았더니만 상당히 춥다. 시락국에 이스리 한잔으로
추위를 달래보려고 가계 문 연집이 있나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포기하고 구덕산으로 향한다.
구덕령 꽃마을 회관을 지나 기상관측소 오르는 길을 따라 구덕산을 향한다.
해뜨는 집
해지는 집은 어디 있을까. 해는 커녕 비가와서 죽을 지경이고 컴컴하기만 헌디 ㅋㅋㅋ
구덕문화공원을 지나는데 빗줄기는 자꾸만 더 굵어진다.
구덕 정상아래 있는 부산항공 무선표시소가 있어서 정상아래까지 포장도로가 되어있다.
편안한 걸음으로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낙동강이 가까워서 그런지 어둠속에 몰려오는
짙은 안개로 인해 5m 앞의 동료 산꾼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승학산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하여 물한모금을 마신다. 억새로 유명하다는 승학산은 짙은 어둠속에 그냥 지나친다.
고려 말 무학대사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산세를 살폈는데,이 곳에 오니 산세가 준엄하고 기세가
높아 마치 학이 나는 듯 하다 하여서 승학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구덕산(九德山 :05:50)
높이 565 m의 서구를 감싸고 있는 산중의 산이다.
부산 서구의 서대신동과 북구 학장동, 사하구 당리동의 경계에 솟아 있다.
부산의 등줄인 금정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엄광산에,
남서쪽으로는 시약산에 이어져 있고 남동쪽 산록에서는 보수천이 발원한다.
구덕산의 산명은 근래에 붙여진 이름으로 ‘九’나 ‘德’이 불교와 관계 깊은 글자이므로
불교계통에서 나온 이름인 듯하며, 여기에서 시작된 하천에도 구덕천, 보수천 등의
불교적인 이름이 붙은 듯 하다. 또한 구덕산에는 구덕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니 이를
미루어 볼 만하다. 19세기말 경에 사병산이라고 하였음을 일본인들이 쓴
조선부호여록(朝鮮婦好余錄)의 기록으로 알 수 있으니 구덕산이라는 산명은
그 훨씬 뒤에 나온 것이다. 사병산이란 병풍처럼 둘러진 산이라는 데서 나온 이름인 듯하다.
전형적인 노년산지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짙은 산림과 깊은 계곡이 발달되어 있다.
보수천의 발원지인 동쪽 산록에는 부산 최초의 급수원인 구덕수원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풍치가 빼어나고 등산로 및 산책로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구덕산 삼각점
승학산 삼거리에서 조금 올라오니 정상아래 부산항공 무선소에서
웅~웅 기계음 소리가 야심한 새벽에 귀에 상당히 거슬린다.
5분거리인 구덕산 정상에서 인증삿을 하고 다시 되돌아온다.
저 아래 부산 시내는 아직도 한밤중이다. 전망이 멋있는 곳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발길을 돌려 시약산으로 향한다.
시약정(06:10)
시약산 정상은 기상 관측소에 내주고 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아타까움을
뒤로하고 좌측에 있는 시약정으로 향한다. 비도 피할겸 휴식도 취할겸해서
시약정에 베낭을 풀고 허기를 면하기 위해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한다.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저 아래 어렴풋이 부산시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남항대교도 보인다. 구덕산 아래에서 몰려오는 비구름에 안개가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조금 쉬니 한기가 엄습해온다. 서둘러 베낭을 메고
대티고개로 향한다.
비구름 사이로 여명은 밝아오는데 안개로 인해 부산시내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네
대티고개 가는 길엔 이름모를 무명묘지가 상당히 많다.
그 와중에서도 마치 제주도식 돌담에다 철조망까지 친 문중묘도 보인다.
대도시 주위답지 않게 소나무는 어둠속에서도 제법 건강하게 보인다.
내림길은 S자 모양으로 꽤나 급경사이다. 미끄러워 조심스레 내려서
대티고개 내려가는 좁은 주택지 골목을 지난다. 일욜에 늦게 잠에
취해있는 민초들이 깰까봐 조심조심 발자국 소리를 죽이려고 애를 쓴다.
대티고개(06:50)
부산시 서구와 사하구의 경계인 고개. 새벽에 비를 맞고 내려오는 산꾼들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 상한 사람으로 쳐다본다. 하긴 멀쩡한 사람입장에서
보면 그럴수도 있겠지. 미치지 않고는 이 짓을 못하니까 말이다. ㅎㅎㅎ...
'대티(치)'하면 고개라는 뜻을 포함하는데 '고개'는 또 뭔가?
정맥길은 이 지역에서는 완전히 없어져 있다. 그 대신에 고개를 깔아뭉개서
도로를 만들고 다닥다닥 집들이 모여서 살고 조그만 빈틈만 있으면 텃밭을
만들어서 각종 채소들을 심어놓고 있다.
정맥길을 주택에 빼앗기고 미로처럼 이리저리 헤매면서 마루금을
찾아 나서서 까치고개로 향한다.
까치고개 가는 길에서 바라본 구덕산의 모습
까치고개(07:05)
이곳 역시 서구와 사하구의 경계이다. 그러나 조금전에 지나온 대티고개에 비해
고개도 좁고 조그만 뒷골목 같은 느낌을 준다.
까치고개를 지나 오름길에도 조그만 틈만 있으면 남새들을 심어놨다.
이곳도 아마 서민들의 주거인 모양이다. 서울로 치면 봉촌동이나 신림동 달동네
정도되는 모양이다. 자꾸만 민초들의 고단한 삶에 팍팍함을 느끼면서
공동묘지길을 오른다. 꼭 지난 4월 낙남정맥길에 창원 굴현고개에서
천주산 오름길의 묘지를 걷는 느낌이다. 정맥길에 공동묘지가 형성되어 있어
이리저리 묘지를 피해 길을 걷지만 망자들에 대한 미안감은 조금은 든다.
저 멀리 구덕산도 보이고 그 아래에 있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이 에술적이라
작품하나 건지려고 망원렌즈까지 가져왔는데 비에 카메라도 젖어 버리고 조망권도
확보되지 않아 포기하고 우정의 탑이 조성되어 있는 247.2봉으로 향한다
우정의탑(247.2m :07:30)
공동묘지를 지나는데 빗줄기는 조금 가늘어진다.
그다지 높지 않는 마루금을 여유로운 걸음으로 오르니 247.2 정상 봉우리에
둥굴게 쌓은 돌탑이 자리하고 상단에 우정의탑표석이 세워져있다.
감천항
빗속에서 이제 조금이나마 감천항도 보인다.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에 있는 감천항(甘川港)은 북항, 남항, 다대항, 부산 신항과 함께 부산항을 구성한다.
부산항은 1876년(고종 13) 2월 인천항, 원산항에 앞서 최초의 근대 무역항으로 개항되었다.
1898년 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 및 확장 공사가 그 시작이나 당시에는 상업 항구로의 시설은 갖추지 못하였다.
247.2봉에서 괴정고개까지는 고도가 뚝 떨어진다. 247에서 고도를 30으로
낮춰야 하니 말이다. 군데군데 공동묘지와 주택가에 형성되어 있는 법화종
종단소속인 성불사를 지나니 부영 백산 아파트가 맥길을 완전히 거들내고
턱하니 버티고 있다 거기다가 CCTV까지 달아놨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렇다고 안 지나갈 산꾼이 아니던가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여 정문으로 나오는데
시간적으로 아침식사 시간이 지나서 허기가 지는데 비는오고 마땅한 장소가 없다.
즐거운 식사시간
벽산 아파트를 빠져나와 조그만 건물 1층 복도에서 아침상을 편다.
비는 계속내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초리는 약간 맛이 간사람인 것
처럼 쳐다보면 지나간다. 먹는시간만큼 큰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식사에다 막걸리에 이스리까지... 거기다가 후식으로 커피에다 사과까지
먹고 갈길이 멀어 서둘러 길을 나선다.
괴정고개(08:10)
감천고개로 불렀던 괴정고개. 낙동정맥 마루금은 옥천초등학교 운동장을 통과한다.
개금고개에서도 아파트 단지에서 육교로 연결 되더니 여기서도 학교 정문에서
육교로 바로 연결되는데 학교를 가로지를 수는 없어 낙동길은 먼 길을
에둘러 돌아와 육교를 내려서 S.K주유소와 좌측에 오토바이 수리점을 끼고
약간 올라서 주택가를 지나고 대동고등학교 정문 울타리를 끼고 좌측으로
오르니 마지막구간에 처음으로 시그널이 많이 달려있다. 너무나도 반갑다.
대동고등학교를 지나니 몸에서 밀어내기 신호를 보낸다.
근데 비오는날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기는 좀 그렇다.
일단 마루금을 이탈하여 우의 벗어던지고 시원하게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사이 동료 산꾼들은 다들 도망가버린다. 관리가 안된
예비군 훈련장을 지나니 176봉 봉우리를 군부대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한치의 빈틈도 없이 철통같이...군부대를 끼고 내려오니
이번엔 자유 아파트가 맥을 짤라먹고 그 옆에는 대동고등학교가 아닌
해동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간다고 해야하기에 가긴하지만 이곳은
마루금의 의미는 참 무의미 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으며 장림고개에
내려선다.
장림고개(08:40)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과 신평동을 잇는 고개이다. 왕복 6차선선 도로가 나있다.
이곳도 S.K 주유소 뒤를 돌아 올라가야 마루금이 맞은것
같은데 사유지인지 철조망으로 쳐놓아 도저히 돌아갈 수가 없어서 도로를 우회하여
300m쯤 가다가 우측 산으로 올라선다. 이곳은 시그널을 설치하며 구청 청소원들이
떼어 버린다고 한다.
시그널을 떼어 버리니까. 전봇대에다 매직으로 정맥길을 표시해놨다.
사실 정맥꾼들에게는 산에서는 시그널이 생명줄이나 마찬가진데 말이다.
감천항 옆에는 개발이란 미명아래 정맥길 산이 파헤쳐져 있다.
인간의 오만함과 탐욕은 언제쯤 멈춰질 것인가...
비오는 소풍이라도 가시나. 달팽이를 통해 느림의 美學을 배우고 싶다.
봉화산(408m:09:10)
두송산이라고 부르는 봉화산(408m) 선시대 경남지역의 직봉로(直烽路)로서 다대포
두송산에서 받아 황령산(荒嶺山)으로 전달한 봉수였다.속칭 봉화산이라고 불리는
해발 408m 의 고지에 흔적뿐이던 것을 1976년에 복원하였다.
조선시대 부산진(釜山鎭)에서 관할했고 도별장(都別將) 1인, 별장(別將)6인,
봉군(烽軍)100명을 두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곳에다 운동시설을 설치해놨는데
비가와서 그런지 운동하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봉화산에서 좌측으로 틀어 구평가구단지 내리는 길에는 온통
주말농장같은 텃밭 천지다. 거기다가 그렇게 비싸다는 배추농사도
꽤 잘 되었다. 내림길 검은 염소도 사육하고 개도 여러마리 있는데
이너무 쉬끼는 산꾼들에게 금방이라도 물어 뜻을듯이 짖어댄다.
그 옆에 쥔장인듯한 여인은 산꾼들이 많이 봤는지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낸다.
구평가구단지 안에 있는 공장 가구점 주인은 혹시 조폭(?) 아닐까.
지나치면 절대후회 한다고 겁박을 한다. 이보시요 요즘 공포 마케팅이
아닌 감성 마케팅으로 함 해보시지. 매출이 2배는 오를것 같은데...
도로 반사경에 새앙쥐꼴의 범여 모습도 비춰보고 ㅋㅋㅋ...
구평가구단지(09:30)
구릉지대인 마루금 일대에 가구점이 많이 들어서 있다.
꼭 서울 강남에 헌인릉 가구단지에 온 착각이 느낄정도이다
구평山마트' 아치형 간판 입구에서 오른쪽길로 들어서 다시 텃밭을 지나니
운동기구들이 잔뜩 설치되어 있는 산등성이에 도착하여 베낭에 있는
막걸리들을 꺼내서 원삿을 외친다. 비를 맞으면서도 마시는 술이
모두 다 즐거운 모양이다. 동료 산꾼들의 모습이 반갑기만 하다.
오늘 지나면 헤어짐이 아쉬워서 그런 때문일까. 특히 방초님과의
10개월간 참으로 많은 걸 주고 받았는데 그 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늘 건안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종종 연락함 주십시요.
동서식당(10:20)
술한잔 마신것이 기분이 쿨해서인지 아님 혼을 놓아서인지 산꾼들의
이정표인 동서식당에서 담벼락 매직으로 된 화살표를 따라갔다가
알바를 한다. 공장 길따라 내려가니 천길 낭떠리지다 다시 돌아와 보니
전봇대에 꼬리표가 2개 있는 걸보고 좌회전하니 국제그린 아파트가
나오고 삼환 아파트 102동 끼고 마을버스가 다니는 도로를 타고 내려와
다대고개에 도착한다.
다대고개 가는길에 낙엽은 떨어지고 마지막 낙동길의 쓸쓸함을 더해준다.
다대고개(10:30)
부산시 사하구 장림동에 위치한 다대고개는 이쪽 사람들은 다대고개가
어디냐고 물으니 잘모른다. 다대고개 육교를 지나 신다대 아피트를 끼고
아미산에 들어서려는데 아파트 앞에서 차를 기다리는 중년 여인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서울서 왔다고 하니 비오는데 청승맞게 산에 다니냐고
하면서 혀를 찬다. 약간 머리가 돌지 않았냐는듯이.
아미산 오름길
신다대 아파트 정문옆 마루금에 오른다. 이젠 몰운대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
오름길이 마지막이다. 마루금 인근에 사찰을 끼고 오르는데 마지막 힘을
쏟는다. 고개 능선에서 우측으로 길을 가니 이곳도 돌탑이 두 군데나 있다.
지난구간과 이번구간을 합쳐서 부산시내 7개구를 거치는데 이정표를 제대로
해논 곳은 북구에 불구하다. 특히 오늘구간 서구와 사하구는 대한민국 최오지인
울진, 영양보다도 못하다. 산꼭대기 운동시설만 만들고 할 것이 아니라
이정표를 좀 만들어서 설치해 줄 의향은 없으신지... 예산이 없으신가?
아님 시민들에게 봉사정신의 마인드가 없으신가...
금정, 동래, 서구 사하구청님 곰곰히 함 생각좀 해보이소.
아미산 가는길의 돌탑
응봉 봉수대의 유래
"봉수대(烽燧臺)는 지금의 다대동 북쪽의 아미산에 있으며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던 통신시설(通信施設)이다.
봉수는 변경지방(邊境地方)에서 일어난 긴급한 정황(情況)을 중앙 또는 인근의 군사기지에
알리는 군사상의 목적으로 설치 사용된 것이다.
대략 2∼30리의 거리를 두고 후망(侯望)의 요지가 되는 산봉우리에 봉수대(烽燧臺 : 烽火臺, 煙臺)를
두어 밤에는 횃불을 밝히고, 낮에는 연기를 내어 인근의 봉수대에 연락했다.
평시에는 일거(一炬, 낮 : 一煙), 적이 나타나면 2炬(二煙), 적이 경계에 접근하면 3炬(三煙), 경계를
침범하면 4炬(四煙), 적과 접전(接戰)하면 5炬(五煙)로 차례로 서울까지 연락하였다.
영남은 다대포가 출발점이 되어 동래 황령산(荒嶺山)을 거쳐 영천, 안동, 충주를
경유 광주(廣州)를 통하여 최종점인 서울 남산까지 이 신호는 전해졌다.
그리고, 이 봉수대를 관할하는 기관은 다대진(多大鎭) 이었다.
다대포 응봉봉수대를 비롯 황령산(荒嶺山), 계명산(鷄鳴山), 간비오산(干飛烏山), 구봉(龜烽),
오해야(吾海也), 석성(石城) 등 7개의 봉수대는 임진왜란때 왜군(倭軍)의 침입시에 그 기능을
발휘한 바도 있어서 이 유지(遺址)는 국방의식의 앙양(昻揚)이란 점에서 중요시되는 문화유산이다.
다대포 봉수대는 1977년 수축(修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미산 봉수대 앞에서
이제 서서히 몰운대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봉수대 하산길에서 바라본 맥길을 짤라버린 롯데아파트 단지
낙동정맥길 홍치고개를 완전히 뭉개 버리고 들어선 흉물스런 롯데캐슬 아파트 단지
회장님 이건 넘 하신거 아닌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제시대에 일본이
조선을 말살하기 위해 산에 쇠말뚝 박은거랑 뭣이 다른가요.
전 갠적으로 롯데를 상당히 싫어해요. 백화점, 과자, 껌,아이스크림, 편의점, 수퍼 등등
코 묻은 돈으로 클 생각하시고 해외에 나가 벌어서 국민들 좀 편하게 해주실 생각은 없으신지...
최근만 해도 그래요. 골목골목마다 위장막을 쳐놓고 커피점 공사한다 해놓고 야심한 새벽에
SSM을 열어 동네 구멍가계들 다 죽이고 이게 대기업들이 할짓이요. 지저분하게 말이요.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럴수 있다고 항변하시겠지만 세상사에 돈을 버는것도 正道란게 있고
약자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이란 것도 있지 않소. 제발이지 正道로 추앙받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시길..
아파트 단지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하구언의 모습
저 소나무는 뭣이 그리도 좋아 조로코롬 붙어서 지내나. 참으로 부럽다.
홍치고개(11:20)
홍치고개라 불리는 이곳 정맥길은 완전히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12만평에 달하는
롯데 캐슬 아파트 단지가 맥길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할 수없이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고
상가를 거쳐 계단을 내려 온 후에 몰운대 성당을 지나 다대포 해수욕장 앞 도로까지 30분을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내려 오니 도가니가 얼얼하다. 역시 산꾼은 산을 걸어야지 아스팔트
도로는 체질이 아닌가 보다.
롯데 아파트 단지안에 있는 몰운대 초등학교 정문의 모습
꼭 대학교 정문같이 웅장하다. 같이 동행한 산악회 강 감사님의 曰
초등이란 글자만 빼면 몰운대학교란다. 당신 매형도 꼭 대학을 나왔다고
우긴단다. 어느 대 나왔냐 물어보면 해병대 나왔다고 한다고 해서 한바탕 웃는다.
또하나 걸작은 아파트 경비원에게 몰운대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한다. 강 감사님 曰 몰운대를 물으니 당연히 모르니 아는대라고
바꾸면 어떠냐고 제안을 한다 ㅋㅋㅋ
롯데캐슬 아파트 단지 내림길에서 바라본 몰운대(沒雲臺)의 모습
부산 몰운대는 부산에서 알아주는 비경중의 하나이다. 부산 최남단 끝에 위치하며
낙동강의 하류에 위치하여 삼각주를이룬 곳입니다. 몰운대의 총면적은 506천㎡로
1972년 6월 26일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었다. 다대포 해수욕장을
지나 외딴섬인 몰운대는 부산의 3대(臺)라 하면 태종대,해운대,몰운대 중의 하나이다.
이 3대는 먼저 울창한 숲이 있고, 기암괴석이 있으며, 하늘과 바다를 만리까지 볼수 있다고 한다.
몰운대는 원래 섬이었다. 1863년 일본 통신사 조엄이 해상일기에 해운대와 몰운대를 구경한 뒤 비교하여
이르기를 [몰운대는 신라 이전에는 조그마한 섬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아름다워 아리따운 여자가
꽃속에서 치장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드디어 도착한 다대포 해수욕장(11:50)
다대포 몰운대 해넘이 낙조는 전국에서 유명하다.
남해에서 일출과 일몰을 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곳 이기도하다.
천혜의 몰운대 해안은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바로 선경(仙境)이다.
기기묘묘한 바위와 돌, 모래와 바다 그리고 은빛 파도....
바람, 구름, 안개, 태양....
이런 자연의 모체들이 만들 낸 조화와 신비로움....
그래서 몰운대는 부산팔경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몰운대 초입에 있는 안내석
몰운대(沒雲臺) 시비(詩碑) - 동래부사 李春元의 시(詩)
浩蕩風濤千萬里(호탕풍도천만리) 호탕한 바람과 파도가 천만리 이어지는데,
白雲天半沒孤臺(백운천반몰고대) 하늘가 몰운대는 흰구름에 묻혔네.
扶桑曉日車輪赤(부상효일차륜적) 새벽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이니
常見仙人賀鶴來(상견선인하학래) 언제나 신선이 학을 타고 오는구나.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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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는 조선시대 지방 관아건물의 하나로 각 지방의 행정중심지에 있었으며, 수령이 부임할 때 의식을 치르고 또 임금의 상징인 전패(殿牌)를 안치하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망배(望拜, 임금이 있는 대궐을 향해 절하는 것)를 드리던 곳 이며, 사신의 숙소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현재 다대포 몰운대 내에 있는 객사는 조선후기 다대포 일원의 방어를 담당하던 다대첨절제사영(多大僉節制使營)의 건물 중 하나이다. 다대포를 비롯한 남해안은 예로부터 왜적들의 침략이 심하였던 곳이다. 조선 세종때 삼포의 개항으로 남해안의 방어가 중요시되어 부산포와 제포(薺浦)에 첨절제사영을 두고, 경상좌도에는 다대포 등 10포(十浦)에 만호영(萬戶營)을 두었다. 이때 영은 장림포(長林浦)에 있었으나 언제 다대포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명종 이후 수군제도의 변경에 따라 진(鎭)?보제(堡制)가 실시되자 부산포와 다대포는 방어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진이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군제의 개혁으로 다대진은 부산진, 두모진(豆毛鎭), 개운진(開雲鎭), 포이진(包伊鎭), 서생진(西生鎭), 서평진(西平鎭)과 함께 경상좌도의 7진의 하나가 되었다. 다대진은 부산진과 함께 중요시 되어 다른 진보다 2배의 병선을 보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첨사는 정3품 당상관의 높은 벼슬이 주어졌다. 다대포객사는 언제 창건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대진이 설치된 임진왜란 이후로 추정되며, 건립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가 1825년(순조 25)에 마지 막으로 중수한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서 벽체가 없이 기둥만 남아 마치 누각 건물처럼 보인다. 객사 건물에는 가운데 정당과 좌우에 날개처럼 익실(翼室)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임을 볼 때 현재 남아 있는 정당 외에 좌우에 익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분의 관청 건물이 그러하듯이 다대첨사영 역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초등학교로 전용되면서 다대포객사도 학교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1970년 현재의 자리에 이전?복원하였다. 그러나 이 객사를 원 자리인 다대초등학교에 그대로 두었더라면 교육적인 효과가 보다 컷을 것으로 생각된다. |
몰운대 끝에서 종산제와 족욕식을 끝낸 후 돌아오는 길에 다대포 객사 건물 옆 모습에
회원관(懷遠館)이란 명패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 편액의 글씨는 부산출신 소설가
"요산 김정한"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참고 : 요산 김정한(樂山 金廷漢 1908. 9 ~ 1996. 11 . 소설가)
경상남도 동래 출생. 향리에서 학문을 배우고. 1928년 동래고보 졸업.
광복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에 관여하였고, 교직.언론계에 종사함.
몰운대 최고 끝에 있는 초소
매봉산 천의봉에서 출발하여 10개월이란 긴 여정끝에 산길 천리 넘게 걸어온 범여
이젠 더 이상 갈데도 없다. 이젠 마음속에서 품었던 원망, 미움, 탐욕의 무거운 짐을
몰운대 앞바다에 내려놓고 가련다. 쥔장 잘못만난 내 足이여 참으로 고생했다.
그러나 어쩌랴 너와나의 전생의 인연으로 인해 만난 것을... 그리고 고맙다.
我昔所造諸惡業(아석소조제악업) 皆由無始貪瞋癡(개유무시탐진치)
從身口意之所生(종신구의지소생) 一切我今皆懺悔(일체아금개참회)
아득히 먼 옛날부터 제가 지은 모든 잘못, 탐애하고 화를 내고 어리석음 때문이며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어왔으니, 모든 것을 남김 없이 이제 참회하옵니다
몰운대 끝에서 바라본 쥐섬
시인 정일근님 '몰운대 저녁노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몰운대 저녁노을이 다대포를 덮을 때
강과 산의 작별을 가슴 치며 바라보다
바다가 먼저 붉게 울어, 하늘의 눈시울이
덩달아 붉어지는 것도 보지 못한다면
그런 어둔 눈으로 내게 묻지도 마라
몰운대(沒雲臺)에서 낙동정맥을 무사히 마침을 정말 고맙게 생각하며
낙동정맥길의 모든 산의 山王大神님에 감사의 終山祭의 잔을 올리니
어여삐 받아 주시옵소서...
몰운대 끝에서 종산제(終山祭)를 마치고 동료 산꾼들과 함께...
종산제를 마치고 몰운대 앞바다에 족욕식(足浴式)을 끝으로 낙동정맥을 마무리 한다
낙동정맥 완주 인증패를 받으면서...
정든 山友들과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해단식을 하고...
10개월동안 정말 많이 情이 들었는데 아쉽습니다.
모두 다 健安하시고 모든분들의 가가호호에 존일만 있기를
간절히 祈願하는 바 입니다.
낙동정맥 해단식 장소인 산호장 횟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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