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0년 12월 11일~12일(무박)
산행구간: 무령고개-영취산-무령고개-팔각정-장안산-985봉-955봉-947봉(백운산)
897봉-960봉-밀목재-논개활공장-사두봉-바구니봉재-당재(추모비)-수분재
거리/시간: 도상거리:18.2km(G.PS 거리 20.8km) / 8시간 45분 소요
요즘 우울한 소식이 참으로 많구나. 엊그제엔 안양의 어느 중학교에서
15살의 중학생이 동료들을 흉기를 휘두르고 국회에선 국회의원이란 자들이
예산 통과를 하면서 폭력을 휘두리며 난장판을 만드니 말이다.
하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지... 과연 국회의원이란 자들이
국민을 대변자가 맞느냐에 너무나도 회의적이다.
하긴 단합이 잘될때도 있긴 하지 자기들 세비 올릴때는 기가
막히게 만장일치로 통과되더군... 과연 국회의원들이 자기들의
이익단체이지. 국민의 대변자는 아닐듯... 과연 저들을 위해
세금내는게 아깝지 않은 국민은 하나도 없을듯... 그 사이 民草들의
허리는 자꾸만 휘어지는데 그 고단함을 풀어줄 자는 없으니 ㅉㅉㅉ
새로운 코스인 금남.호남정맥 구간에 도전하기 위해 새로운 산악회에
처음으로 산행을 나선다. 밤 11시경에 탑승장소에 나가니 28인승 리무진 버스에
16명만 탑승한다. 산악회에서 적자가 상당할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타는 산꾼들은 상당히 편안히 간다. 교통이 너무 좋아 금삼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차를 세워놓고 1시간 30분정도 수면을 취한 후 새벽 2시 50분에 무령고개로 향한다.
날씨가 상당히 추운지 차창이 다 얼어 붙었다. 하늘의 별만이 초롱초롱하다.
오랫만에 경부 고속도로를 거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장수 I.C를
빠져나와 장계면을 지난다. 이곳 장수(長水)는 전라도의 오지중에 오지(奧地)이다
잠시후 의기(義妓) 주 논개의 생가를 지나 무령계곡을 향한다.
무령고개 오르는 차는 상당히 힘이들어 한다
이윽고 무령고개 동물통로 앞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귀가 시릴만큼
날씨는 차갑다. 하차후에 장비를 점검하고 정리한 후에 베낭을 장안산
올라가는 계단에다 두고 스틱과 카메라만 들고 백두대간과 금남.호남
정맥 갈림길인 영취산으로 오른다. 꼭 2년만에 영취산에 오르는 감회는
참으로 남다르다. 2009년 1월 4일 백두대간의 의미도 모르고 친구따라
강남가듯이 백두대간을 처음 시작한 곳이 이곳 영취산이기에...
간단하게 금남.호남을 시작하는 마음속 禮를 올리고 인증샷을 남긴 후에 다시
베낭을 둔 무령고개 동물이동통로 옆을 거쳐 장안산 가는 계단으로 오른다.
전라도에는 "무진장" 이란 말이 있다. 무주, 진안, 장수 이 세 고을을 일컬어
부르던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 지독히도 산골에 파묻혀 있고 오죽 세인들의
왕래가 뜸했으면 무진장 이란 말이 아주, 많이라는 의미를 뜻하게 되었다.
그만큼 오지이지만 또한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고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곧은 성품을 가진 인재들이 참으로 많이 배출된 곳이 이곳 장수이다.
고려가 망하자 함백산 아래 두문동에 은거하다 조선 태조의 간청으로
1394(태조3) 성균관 학관 형조.예조.병조.이조판서,우사간 대부 그리고
영의정까지 오른 인품이 원만하고 생활이 청렴한 명신으로 후세 추앙 받은
명재상 황의정승이 이곳 장수 출신이며, 임진왜란 때 가정이 어려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의 후처가 되었다가 최경회가 전사하자 진주 촉석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군의 잔치에 참석하여 일본 장수인 게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六助)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의기(義妓) 논개와 3.1 독립운동시 민족대표 33인중 만해(한 용운)선사와 함께 불교계 대표 및
막후기둥으로 참여하여 선농일치 주창하고, 중국 만주 용정에 대각사 포교원을 설립
독립운동의 근원지로 사용하며 일제시대 부패된 조선 불교를 개혁하기 위하여
대각회를 설립하여 한국 불교사에 큰나큰 족적을 남기신 백 용성 선사 또한
장수군 번암면 출신이다. 지금은 장수사과와 한우가 유명하다고 한다.
금남. 호남정맥 지도
금남호남정맥이란?
전북 장수의 장안산(長安山:1237m)에서 서북으로 뻗어 무주의 주화산(珠華山:600 m)까지 약 65km에
이르는 옛 산줄기의 이름.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갈라져 금남정맥(錦南正脈)과
호남정맥으로 이어주는 산줄기이다. 장안산에서 수분현(水分峴:530m) ·팔공산(八公山:1151m) ·
성수산(聖壽山:1,059m) ·마이산(馬耳山:667m) ·부귀산(富貴山:806m)으로 이어져 주화산에서 끝난다.
또 주화산에서는 금남정맥이 시작되어 호남정맥으로 이어진다. 또 이 산줄기의 팔공산
서사면(西斜面)에서 발원하는 천천(天川)이 북류하여 금강을 이루고, 남사면(南斜面)에서 발원하는
오원천(烏院川)이 섬진강을 이룬다.
오늘구간의 지도
논개의 영정
갑술(甲戌)년 갑술(甲戌)월 갑술(甲戌)일 갑술(甲戌)시에 태어나이름이 낳은개->논개로 되었다는
신안주씨 집안의 논개는사임당이니 난설헌이니 하는 조선시대에 남겨진 여성들의 우아한 이름보다
투박하지만 나라를 위한 절개로 보면 그 어떤 이름보다 숭고함으로 자리를 잡는다.
어릴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돌보던 숙부가 돈을 받고 팔아버리고 도망을 가서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잇기 위해 우연치 않게 관기가 된 논개는 장수현감 최경희의 첩으로 들어가 임란이 시작되면서
경상우도병마 절도사로 진주성에 있던 최경희가 순국하자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六助]를끌어
안고 푸른 남강물에 몸을 던진다. 사실상 논개에 대한 이야기는 사건 발생 300년이 지난 19세기 이후에
기록이 나오고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충효를 더욱 강조하는
중에 부분적으로 전설화시키고 미화시켜 확대 재생산한 면이 있겠지만 다른 면들은 말을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논쟁거리로 남겨 두고 오늘은 순수성만으로 논개를 들여다 보자.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
아-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답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마추었네.
아-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라.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우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수주:樹 洲)변영:卞榮魯)
절개의 상징이 된 논개의 고향 장수땅에서 수주 변영로 선생의 싯구를 음미하며 대간에서
뻗어난 금강과 섬진강을 갈라 내는 산줄기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를 따라 발을 잇기위해
무령계곡 주차장에 차가 멈춘다.
무령고개(04:00
장수군 장계면, 함양군 백전면에 걸친 2차선 포장도로(743번 지방도)다.
고개턱에 벽계쉼터휴게소와 주차장, 샘터가 있으며, 백두대간의 영취산과
금남호남정맥 장안산의 산행 기점이 되는 곳이다.
영취산의 안내도
영취산(靈鷲山)은 원래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 주위에 있는 산으로 부처님께서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 얻은 뒤 설법을 하시던 곳이 영취산(영축산이라고도 함)이다.
양산 통도사 뒷산이 인도의 영취산과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영취산이라고 하며 통도사 대웅전
(금강계단)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불상이 없다
영취산 하면 철쭉으로 유명한 여수의 영취산이나 양산 통도사를 외호하고 있는 영취산을
떠올리며 대간상의 영취산은 산꾼들 사이에 그다지 회자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오르는
영취산 또한 예사롭게 여길 수 없다. 특히 백두대간의 학습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백두대간은 山自分水領 원칙에 따라 이어진다. 그리고 대간은 정맥과 함께 10대강을 나눈다.
10대 강 가운데 3개의 강 유역을 나누는 곳은 한남금북정맥이 갈라지는 속리산 천왕봉과
금남호남정맥을 낳는 이 곳 영취산 등 단 두 곳뿐이다. 속리산 비로봉은 낙동강, 금강, 그리고
한강(남한강)의 유역을 가르며, 영취산은 낙동강, 섬진강, 금강의 유역을 나눈다.
그래서 이 두 곳을 三派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간을 배울 때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할 내용이다.
영취산(靈鷲山:04:20)
금남호남정맥 분기봉인 영취산(靈鷲山)에서 시작한다.
정상석 뒷면에 새겨져있는 영취산 유래는『산세가 신령스럽고 빼어나다는 뜻의 영취산은
불교의 성지 인도 마가다국 수도 왕사성에 있는 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호남과 충남의 산줄기를 이어주는 금남호남정맥의 출발점이자 섬진강, 금강, 낙동강의 분수령으로 행정구역은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이다. 2007. 9. 9 산림청』
여기 백두대간 능선상의 영취산(1076m)에서 갈려 나가는 금남호남 정맥은 무령고개,
영취산 정상의 시그널들
장안산(1237m) 을 거쳐 장수 팔공산을 지나 진안 주화산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나누어 진다.
거기서 남쪽으로 내달은 호남정맥은 내장,추월,무등,사자산 거쳐 광양 백운산에서 그 기세를 다하고,
북으로 뻗은 금남정맥은 대둔, 계룡산을 거쳐 부여 부소산에서 끝을 맺는다.
이렇게 두갈래로 나뉜 정맥은 다시 수많은 지맥을 가지치며 금강,섬진강,영산강, 동진강,만경강,
탐진강같은 강줄기를 퍼뜨려 호남과 충청지역 사람들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금.호남정맥의 첫발을 내딛는 무령고개의 데크목 계단(04:40)
영취산의 정상에 금.호남의 시작을 알리는 발자국을 쿡찍고 다시 내려와 이곳 계단에서
금,호남의 산길을 시작한다, 날씨는 상당히 차갑지만 맑은 공기로 인해 기분은 쿨하다.
이곳은 눈이 꽤많이 왔는지 곳곳에 눈이 많이 쌓여있다.
장안산 가는 길의 팔각정(04:55)
데크목 계단에서 15분정도 오르니 정맥길에서 약 200m 떨어진 팔각정이 나타난다.
이곳을 언제올 지 몰라 팔각정을 오른다. 오른쪽에 계남면과 장계면 지역엔 아직도
깜깜한 새벽이다. 시골 면소재지답게 초라한 불빛만이 팔각정에 오른 산꾼을 반긴다.
이곳은 눈이 꽤나 많이 쌓였다. 베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고 다시 돌아와
장안산으로 향한다.
장안산 오름길
이곳은 흔히 말하는 호남정맥의 고속도로이다. 국립공원이 아닌 군립공원인데도
불구하고 관리는 기가 막히게 잘되어 있다. 저 건너 영취산과 백운산 등 백두대간의
등로가 어둠속에서도 뚜렷이 보인다. 1시간만 늦게 출발하여도 멋진 작품하나
건질 수 있으련만... 아쉽지만 가는길이 멀어 길을 떠난다. 어둠속에서도 이곳
억새 군락지가 멋있는 모습으로 자꾸만 나타난다. 가파른 데크목 계단을 치고 오르니
갑자기 어둠속에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나며 장안산에 닫는다.
장안산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초소 CCTV와 이동통신 중계기
장안산(長安山 1237m:06:00)
전라북도 장수군에 있는 높이 1,237m의 산이다. 1986년 8월 18일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무룡궁란 곳이 있어 금강과 섬진강의 가장 먼 분수령이다.
무룡이란 용이 춤을 춘다는 말로 이재에서 장안산으로 향하는 기세가 마치 용이 하늘로
오르는 기상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마루 입수처에서는 천지수라는 샘이 있고,
산의 좌우편에는 옥지수라는 샘이 있다. 장안산 산봉을 일명 금봉이라고 하는데 장계면
무룡고개, 계남면 괴목, 번암면 지지, 덕산계곡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그 중에서도 더더욱 오지였던 장수군. 장수군 내에서도 특히 외지고 인적 뜸한 골짜기가
장안산 아래 덕산, 방화동을 휘감아도는 덕산계곡 일대이다.
이 곳은 영화 "남부군"에서 이현상 휘하의 빨치산 부대가 옷을 벗고 목욕하는 장면을 촬영한
계곡이 바로 이곳이다. 또한 우리가 걷는 이 길은 빨치산부대가 지리산을 들어갈 때 걷던 길이기도 하다
장안산 정상석 뒤에있는 설명
장안산 정상에 있는 특전여단 1000리 행군 기념비
조국수호를 결의하며 천리행군을 한다. 제9공수 특전여단 53대대 장병일동이라고
라고 적혀있다. 이렇게 군인들이 고생하는데 일부 고위 장교들은 정치화, 관료화되어
이북에게 이렇게 당하고 있으니 이 분들의 상심이 얼마나 클까?. 군인은 군인답게...
그래야만 국민들이 두 다리 쭉뻣고 살지... 리포트나 잘쓰고 윗사람 비위나 잘 맞추는
군인들은 신임 국방장관께서는 깔끔하게 정리하셔서 다시는 연평도 사건처럼 안 생겼으면...
장안산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후미를 기다리며 과일과 빵 한조각으로 원기를 보충한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 듯 어둠속에서도 백운산과 영취산. 그리고 그 너머 계관산도
어려품이 보이고 저 멀리 지리산 연봉들도 실루엣처럼 보인다.
거기다가 날씨맑지 바람한 점 없지 정말 첫 산행이 이런것은 3대가 發福을 해야만
이런 날씨를 만날 수 있는데 말이다. 조금쉬니 금방 추워진다.
서둘러 길을 나선다. 내린막길엔 음지라 그런지 눈이 꽤나 많이 쌓여있다.
상당히 많이 미끄럽다. 아늑한 산죽길을 조심해서 내려간다.
장안리 가는 길
어둠속의 겨우사리
장안산을 내려와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여러개를 거친다.
그렇다고 이곳 봉우리가 적은 것은 아니다. 이곳이 해발고도가 900m가 다들 넘는다.
지나는 길에 벌써부터 나무들에 겨우사리가 꽤나 많이 보인다.
그만큼 이곳이 춥고 눈이 많이 오는 곳이다.
985봉(06:35)
아직은 일출이 되려면 1시간정도는 더 있어야만 되는데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장안산 너머 산꼭대기 너머에는 붉은 빛이 돌기 시작한다.
955봉에서 바라본 눈덮힌 장안산(07:25)
눈덮인 장안산은 정말 멋있다. 이래서 범여는 겨울산에 미치는가 보다.
여기서 일출을 기다리다가 나무가 너무 가려져서 일출이 별로일 것 같아
포기하고 다시 길을 걷는다. 조그만 봉우리를 몇개지나 아침상을 펼친다.
해가 뜨기 직전이라 훨씬 춥다. 장갑을 벗으니 손이시려 보온밥통을 열지못할
정도이다. 따신 밥에다가 국에 말아 대충먹고 커피한잔 마시고 물을 먹으려는데
수통에 물이 다 얼어 버렸다. 그만큼 날씨가 춥다는 얘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바람한점 없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체감온도는 영하10도 정도다
947봉(백운산) 삼각점
백운산(947봉:08:45) 정상
대한민국 산 이름중에 가장 흔한 이름 백운산. 사람이름으로 치면 철수, 영이, 미자, 숙자정도
되는 이름이랄까. 어느 산악회에서 코팅지로 백운산이라고 붙여놔서 백운산인 줄 알지
아무 특징도 없고 밋밋하기 그지없다. 하긴 이름없는 무명봉도 천지인데...
관리가 안되어 있는 이정표.
장수읍 노곡리와 번암면 덕천으로 내려가는 갈림길 고개이다.
장수군에서 이렇게 등로를 잘 관리해줘서 고맙긴한데 설치한 이정표도 좀 신경좀 써주시길.
이곳은 900고지 넘는 곳에도 묘지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이곳이 명당들이
많은가보다. 이 묘지도 풍수지리상 보면 꽤나 명당자리인데 후손이 관리를
하지 않는지 무연고 묘지로 등록되었는지 장수군에서 신고하라고 표지를 해놨다.
하긴 요즘 명당은 교통이 좋은곳이 최고 명당이지 뭐. 그래야 후손들이 한번이라도 더오지.
960봉 가는 길
산등성이에는 눈이 꽤나 싸였다. 바람의 영향으로 인해 산등성이는 30cm이상이나
되는 곳도 있다. 밀목재가는 마지막 오름길은 꽤나 힘이든다.
960봉 정상(09:35)
저 아래 덕산댐으로 인해 이주한 깨끗하게 정리된 가옥들이 밀목재에 들어선
모습이 보인다. 유감이라면 왜 하필이 정맥길을 파괴햐여 그곳에다 주택단지를
만들었을까... 저 멀리 지리산 연봉들이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지리산의 황홀함을 놓지 않으려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되는 산꾼
忍苦의 세월을 이겨낸 老木
960봉에서 밀목재 내림길은 상당히 급경사에다 미끄럽다.
스틱을 의지해서 조심해서 내려간다. 이제는 다치면 안된다.
다친 부위의 복원력이 자꾸만 떨어지는 느낌이다
지나가야 할 남도길의 마루금
저너머 뾰족하게 솟은 부분이 사두봉이다.보긴 가까워 보이도
약 2시간을 더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우측에 논개 활공장도 보인다
밀목재 가는길에서 줌렌즈로 당겨서 본 지리산의 연봉들
밀목재 하산길에서
밀목재 하산길에서 전라도 광주에서 온 산악회 일행들이 올라온다.
그 친구들이 하는 말 일찍도 갔다오십니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하는 행동거지로 봐서는 일반산행 팀인가 본데 산행 기본기가 없다.
베낭도 안멘 자가 여러명이고 거기다가 구두까지 신은 이도 있다.
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모르는 자들이다. 산을 우습게 보면 안되는데 말이다.
거기다가 어떤이는 우리들에게 물한통만 달라고 한다. 하도 기가 막혀서 대꾸도 안했다.
우린 아직 가야 할 길이 8km나 남았는데... 그리고 산에는 식수가 생명선인데...
밀목재에 설치되어 있는 금남.호남정맥 개념도
밀목재 이주단지(10:15)
960봉에서 꽤나 뚝 떨어진 다음에야 밀목재를 만난다.
이곳에는 저 아래 덕산댐이 생기면서 마을이 수몰되면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마을이 생겼는가보다. 마을 자체는 상당히 깨끗하다.
밀목재(密木峙)는 그 옛날에 수목이 빽빽할 정도로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장수읍과 번암면을 연결하는19번 지방도가 개통 되기 이전에는 이 지역에
나무가 아주 많았다고 한다. 산위에서 보니 구비구비 뱀처럼 연결된 도로가
전라북도 최오지임 증명해 주는 것 같다.
밀목재에서 내려와 좌측의 도로를 내려와 200m 정도 지난 다음에
버스 정류장에서 우측 마을로 접어들어 마을회관을 지나서 임도를 따라
깨끗하게 단장된 집을 지나 다시 논개 활공장으로 가는 산길로 접어든다.
이곳 주택들은 지은 지가 얼마 안되어 그런지 모두들 깨끗한데 한결같이
문패에는 부부 이름이 동시에 적혀있다. 금슬이 다들 좋은 사람들이겠지
산길로 접어들기 직전에 커다란 개새끼 두마리가 산꾼들을 잡아 먹을듯이 달려든다.
논개 활공장 아래서 바라본 우측의 남덕유산과 좌측의 서봉(장수 덕유산)
내가 겨울산으로 가장 좋아하는 남덕유산이 멀리서 나를 유혹한다. 해마다 꼭 들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인데 아무래도 올 겨울에는 정맥 산행 스케줄이 꼭 차있어
아무래도 그대를 찾을수가 없을것 같구나. 내 사랑하는 여인만큼이나 곱디 고운 남덕유여!
논개 활공장 정상에서 바라본 한가롭고 고즈넉한 장수읍내의 모습
내가 얼마전에 지나온 남도 마루금 능선과 장안산의 줄기들
논개 활공장(10:35)
남녘지방에는 활공장들이 참으로 많다. 첨에는 산 정상에 웬 활 만드는 공장이 있냐고
의구심이 들었는데...활 만드는 공장이 아니고 페러그라이딩 활공장이다.
낙남정맥구간에 하동 천왕봉과 호남정맥 불재에서 만나는 활공장 등...
이곳에 오르니 담구간의 정맥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 산행은 장수 장계면에 시작하여 계남면과 장수읍 그리고 번암면을 거치면서
U자 형태로 빙빙 돌면서 수분재로 향하는 형태이다.
사두봉 가는 길 능선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덕산댐
사두봉(蛇頭峰.1014.8m:11:00)
저 아래 번암면에는 요천수라는 시냇물과 동산치라는 절경이 있는데, 뱀에게 쫓기는 두꺼비(혹은 개구리)를
신선이 구해주어 그 뱀의 형태로 봉우리가 만들어졌다하여 사두봉이라 불리우고, 개구리가 변한
섬암이라는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란다
또 하나의 설은 산아래에서 바라보면 삼각형의 산 모양이 뱀머리처럼 생겼다해서 사두봉이라고도 한다
사두봉 정상에 있는 후손들이 적어논 사두봉의 유래
사두봉 정상의 묘지
사두봉 정상에는 관리가 잘되어 있는 묘지 2기가 있다. 이 높은곳에 산소를 쓴
후손들은 아마 전문산꾼(?)이 아닐런지... 이곳 높이가 1000고지가 넘으니 말이다.
하긴 지난해 백두대간 구간에 태백산 신선봉(1380고지)에도 묘지가 있긴 있드만...
사두봉 봉수대
사두봉에서 산죽숲을 100m 정도 지나니 관리가 안되어 있는 돌탑 형태의 봉수대를 만난다.
조선시대에 지리산 천왕봉에서 봉수를 연결받아 한양으로 전하는 곳이란다.
봉수대를 지나 내리막에는 간간히 산죽도 보이고 갈참나무와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편안한 길을 고도를 낮추면서 내려간다. 길은 참으로 편하고 좋다.
그러다보니 서서히 졸음병이 도진다. 졸리길래 눈을 감고 길을 걷는다.
범여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길이다. 동료 산꾼과 함께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기도 하고 편안한 걸음으로 바구니봉재에 도착한다.
바구니봉재(11:40)
번암면의 방화동 가족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이곳에는 시그널이 별로없어 조금 조심하지 않으면 알바하기 좋은 곳일듯...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마루금 등로가 뚜렷하여 그런일은 없을 듯하다.
당재(12:10)
바구니봉에서 당재까지는 급격하게 고도를 낮춘다.
그리고 이곳은 산이 낮고 양지라 그런지 눈이 거의 없고 음지에만
눈이 조금씩 보인다. 조그만하고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지나니
임도 삼거리가 나타나고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곳이 당재이다.
이젠 수분재가 거의 다와가는 느낌이다. 당재 아래로는 최근에 개통된 듯한
터널이 수분재 삼거리에서 방화동 휴양림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어느 산꾼이 이곳에서 돌아가셨는지 추모비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장수군에서 설치한 이정목에 백두대간길이라고 적혀있다.
이게 가당치나 한가. 이 지역하고 백두대간길하고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제발 하루 시정하시길... 그리고 산꾼들을 혹세무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 병윤 산우 추모비
그대는 참으로 복이 많소이다. 당신을 그리는 산우들이 많으니...
추모비 뒤를 돌아 다시 산으로 오른다. 이제 수분치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허기가 심하게 진다. 그래도 참는다 여기서 간식을 먹으면
점심밥이 맛이 없기 때문이다. 조그만 봉우리를 몇개를 넘고서야
서서히 수분치가 시야에 들어온다.
오늘 지나온 연봉들... 저 멀리 사두봉도 뚜렷이 보인다.
마지막 내림길은 숲이 우거지고 급경사라 상당히 힘이든다.
스틱을 접고 손과 발이 합작하여 겨우겨우 아슬하게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를 지나 커다란 사과밭 과수원을 지나니 수분 교차로가 나타난다.
수분 교차로
이곳이 금강 발원지인 뜬봉생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사실은 이곳이
아니고 담구간인 신무산 아래에 뜬봉샘이란 조그만한 샘이 있다.
수분령 휴게소(12:45)
8시간 45분의 여정을 끝내고 수분령 휴게소에 도착하니 우리를 태우고 온
愛馬가 보인다. 추운 날씨에 또 한 구간의 숙제를 끝내고 어깨에서 베낭을 내린다.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 입은 후에 산악회에 준비한 청국장에다
산악회 회장님 하사품인 과메기에다 소주에다 맥주를 말아서 맛있게 먹고
또 모자라서 이곳 번암 막걸리를 마시고 차에서 깊은 잠에 떨어진다.
길이 막히지 않은 탓인지 깨어보니 오산 I.C를 지나는데 쉬가 너무 마렵다.
그런데도 차는 힘차게 달린다. 이젠 휴게소 없고 양재역에 내리니 요강이
깨질것 같은 느낌이다
19번 국도가 지나가는 수분령 도로에서
수분령(水分嶺)
수분령은 금강과 섬진강을 나뉜다는 뜻으로 물 수(水)자에 나눌 분(分)자를 쓴다.
19번 국도가 지나는 수분령에는 주유소와 휴게소가 있다
수분령 휴게소 앞의 포대화상
포대화상(布袋和尙)은 중국 후량(後梁) 사람으로 법명은 계차(契此)이다. 뚱뚱한 몸집에 항상 웃으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이었다. 또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다녔는데, 그 자루 속에는 별별 것이 다 들어있어서 무엇이든 중생이 원하는 대로 다 내어주어서 포대스님이라고 불렸다. 기이한 행적을 수없이 남겼으며 사람들의 길흉화복이나 날씨 등을 예언하여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천백억으로 몸을 나누어도 낱낱이 참 미륵일세. 항상 세인에게 나뉘어 보이건만 아무도 미륵임을 아는 이 없네” 라는 게송을 남기고 반석 위에 단정히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포대화상이 미륵 보살의 화현(化現)임을 알아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중국에는 포대화상이 재물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이 있는데 아마도 포대를 메고 다녔던 그의 행적 때문인 듯 하다.
요즘에 이런 포대화상이 많이 나와야 될듯싶다. 얼마전에 사랑의 열매 직원들의 횡령사건으로 불우이웃돕기 모금이 잘 안된다고 한다. 고양이 한테 생선가게를 맡겼으니 잘 될턱이 없지 그래도 모금은 계속되야 할것이다. 내 주위의 어두운 곳을 찾아서 말이다 |
一鉢千家飯 일발천가반
孤身萬里遊 고신만리유
靑日覩人小 청일도인소
問路白雲頭 문로백운두
바릿대 하나로 천 집에 밥을 빌며
고고히 몸은 만리를 노닌다.
낮에도 보이는 사람 별로 없으니
떠도는 흰 구름에게 길을 묻노라.
(포대화상의 禪詩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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