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석인원: 백두대간 산우회 20명과 함께
○ 산행거리 : 도상거리/ 17.4㎞ + 암마이봉 1.0km + 어프로치 2km / 11시간 소요
○ 소 재 지 : 전북 장수군 천천면 / 진안군 백운면 / 마령면 / 진안읍
이번 겨울에 엄청나게 추운 탓인지 이젠 웬만한 추위에는 추운줄을 모를 정도이다.
그 추위 덕에 우리 사무실도 지난 한주는 상당히 바빴다. 동파 사고가 많았던 탓에
덕을 좀 보았다. 오랫만에 국민들에게 시원한 소식이 있었서 어깨가 처진 민초들에게도
희망이 보인것 같았고... 소말리아 해역에서 납치된 우리 상선 삼호 주얼리호를 우리나라
최영호가 구출한 것이다. U.D.T 대원들의 활약상에 통쾌함까지 느꼈다. 거기다가 버스에서
내릴 즈음 아시안컵 축구에서 난적 이란을 연장전 끝에 1-0으로 격파한 시원한 소식까지...
참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단한 민족이다. 외국에 나가보면 어딜가도 열심히 사는 모습.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그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말이다. 정치인들만 빼고 말이다.
이번 사건을 정치인들이 여. 야를 막론하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지 말았으면 한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주는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거늘 제발 그대들의 공으로
포장하지 마시길 바라며... 지금 국민들은 구제역을 비롯하여 정초부터 치솟는 물가로
인해 허리가 휠 지경이오. 제발 없는 사람 두 다리 쭈~욱 뻗고 살게 해주이소.
民心은 天心이라 하지 않았소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와룡2교 도착(04:00)
장수I.C를 빠져나온 버스는 어둠을 뚫고 와룡 휴양림길을 달린다.
중간에 구제역과 사투를 벌이는 농민들에게 상당한 미안함이 든다.
그 와중에 버스속에 TV에서는 아시안컵 8강전 연장에서 윤빛가람 선수가 결승골을
넣으면서 우리가 4강에 진출하는 장면을 맛본다.
대전 - 통영간 고속도로 덕유산 휴게소에 휴식을 취한 후에 장수 I.C를
빠져나와 장수쪽으로 가다가 반월마을로 새로 뚫린 샛길로 천천면으로 넘어간다.
와룡휴양림 입구를 확인하고, 천천면으로 들어간다. 천천면 지서를 지나
야심한 새벽에 04시에 산꾼들을 실은 버스는 중상마을 버스 정류소를 지나서
2주전에 참으로 힘들게 내려왔던 와룡 자연 와룡휴양림으로 들어가면서
신광리(신광사) 다음이 중리(중상)마을이다. 2주전과는 달리 날씨는 상당히
많이 누그러졌으나 아직도 눈이 많고 새벽이라 추운 날씨이나 참으로 오지이다
보니 새벽 하늘에 별은 쏟아질듯 수없이 떠 있고 음력 섣달 스무날의 달빛만이
산꾼을 반긴다. 준비를 마치고 누구가 먼저랄 것도 없이 콘크리트 임도를 2km
넘게 걸은 다음에야 나타난 신광재다. 진안군청에서 전봇대에다 하얀 시트지로
붙여 놓은 신광재.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신광재를 미재라 한다.
우리는 ‘사람과산’ 발행 지도를 보고 그렇게들 부르는데 어떤 근거를 가지고
지도상에 명칭을 넣는가는 모르겠다만 기왕이면 현지에서 쓰는 명칭을 최대한
살렸으면 싶다.
아무도 간 흔적이 없다. 지난주 내려올 때 러셀을 하면서 내려왔던 기억 때문에 상당히 걱정을 했는데
이번에는 트랙터 지나간 자국을 밟으면서 30분만에 신광재에 도착한다. 날씨가 많이 포근한 탓인지
옷이 땀에 젖기 시작한다.
사람키보다도 더 높게 쌓인 눈이 녹아 고드름으로 주렁주렁 달려있다.
신광재 (미재:04:50)
30여분에 걸쳐 편안한 임도를 올라선 신광재. 어둠속에 눈에 파묻힌
산비탈에 넓게 조성된 고랭지 밭이 고요한 풍경이 펼쳐진다.
주변에 있는 2채의 폐가와 밭가운데 덩그러니 서있는 검은 농막이 처량하게만 보인다.
하얗게 깔린 눈이 다 녹고, 날이 풀리면 삶의 터전을분주할 터이고, 이내 풍성한 결실물로 온 언덕을 다 채울 것이다.
밭 한가운데 조그맣게 솟은 마루금을 경계로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와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의 행정구역이 나뉘고,
산꾼의 눈으로 보면 동쪽비탈은 장수군이요 서쪽 비탈은 진안군일것이나, 이곳 농사짓는 농군이야 진안군.장수군이
무슨 상관이며 그저 농사만 잘 되기만 바랄뿐일 것이다. 참으로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밭과 밭사이의 길을 지나면서 헤드렌턴에 의지한 채 이 골짝 오지의
마루금으로 접어든다. 신광리 마을위에 자리잡은 금산사의 말사인
九山禪門의 하나인 성주산문(聖住山門)을 개창한 낭혜무염(郎慧無染)
선사가 개창한 신광사는 아직도 적막강산이다. 새벽예불을 마친 스님이 차 한잔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는가 보다...
동네 개소리만 요란하다
신광재 밭 여기저기에 수확하다 만 무우들이 말라 비틀어져 어지럽게 널려있다.
밭 옆에서 전기로 된 철조망을 타고 우측 산으로 오른다. 이곳은 양지라 그런지 눈이
상당히 녹아서 땅바닥이 보일 정도이다. 그 대신이 길이 거의 없어 개척해서 나갈 정도로
온갖 잡목들이 태클을 건다. 900봉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넓은 밭을 끼고 한없이 길을 걷는다.
과거에 인삼밭인 모양이다. 이곳 진안에도 인삼이 많이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낙동구간을 같이한 방초 김 성수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인삼재배를 한번 한곳은 다른
작물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땅의 영양분을 많이 뺏기 때문이란다.
그 분이 이곳 진안출신이다. 지금쯤 설악산 공룡능선 코스 가셨는데 아마 지금쯤 잘타고 있겠지
30분이상을 걸은 다음에야 산등성이 안부에 오른다. 능선에는 눈이 너무 많아 들어갈 수가 없다.
부득히 아래쪽을 택한 다음 길을 걷는다. 그런데 후미 불빛이 너무 많이 쳐진다.
이제사 900봉을 내려오는 것 같다. 초반인데 이렇게 차이나면 힘들텐데. 조금 성수산이 나타난다.
어둡기만 성수산(1059.7m:06:10)
신광재에서 출발한 지 1시간만에 성수산(聖壽山:1059.7m)오른다. 금남.호남정맥길에
있는 진안과 장수의 경계에 있는 성수산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멀지않은 임실 성수산이
한자까지도 똑같은 성수산이 있다. 그래서 정맥길에 있는 높은 산을 진안 성수산이라고 하고
높이가 낮은 성수산을 임실 성수산이라고 부른단다 성수(聖壽)란 임금의 나이를 뜻한다
임금이 오래살기를 비는 성수무강(聖壽無疆) 또는 성수만세(聖壽萬歲)이다
그런데 이 산 주위에는 성수산이 2개나 더 있다. 하나는 875.9m의 높인 전북 임실군 성수면에
있는 성수산이고 또 하나는 임실군 덕치면 사곡리에 있는 성수산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성수면에 있는 성수산이다. 면소재지도 성수면이 2군데나 있어
혼란 스럽다. 임실 성수면과 진안 성수면(외궁면)도 있으나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임실 성수산에 대해 좀 알아보면...
고려와 조선 건국설화가 서린 천자봉조지상(天子奉朝之像) 임금에게나 붙일 법한 성수산(聖壽山)의 지명과 높은 하늘에서 신이 ‘성수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이태조의 귀에 들렸다는 뜻을 지닌 상이암(上耳庵)의 이름이 무척 신령스럽다.
임실군지와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풍수지리에 통달한 도선국사가 성수산을 살펴보고 천자봉조지상(天子奉朝地像), 즉 임금을 맞이할 성지로서 손색이 없음을 알고 송도로 올라가 초야에 묻혀 있던 왕건에게 백일기도할 것을 권했다. 왕건은 이 산에서 기도 후 목욕을 하다가 고려 건국의 대망을 이룰 것이라는 영험을 받고 기쁜 나머지 그곳을 환희담(歡喜潭)으로 명명하여 바위에 새겼고, 세도선국사는 도선암을 세워 고려 건국을 기념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무학대사의 권고로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섬멸하고 개선 길에 성수산에서
들러 기도했다. 꿈에 용이 나타나 세 번이나 몸을 씻어 준 발룡대몽(發龍大夢)을 꾸고, 기도하던 곳이
산, 물, 하늘의 세 가지가 맑다는 뜻으로 삼청동(三淸洞)이라 일필휘지하게 이르렀다.
왕으로 등극한 후에는 높은 하늘에서 신선이 성수만세를 세 번 외치는 소리가 이태조의 귀에 들렸다는
뜻으로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으로 고치고, 어필각을 세워 삼천동이라 쓴 입석비를 안치하게 됐다.
진안의 금남호남정맥에 있는 성수산과 혼선을 피하기 위해 임실 성수산으로 부르기로 하자.
임실이 충효의 고장으로 불리는 것도, 성수면에서 그동안 충신과 효자 효부가 많이 배출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군민의 날에 충효사상을 기리기 위해 소충제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이 산의 정보를 알기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봤지만 임실 성수면의 성수산 외는 아무것도 없다.
정맥길에 있는 이곳 성수산은 가장 높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전북의 모 신용금고에서 설치한
스텐레스 표식판만이 성수산임을 알려준다. 갈 길이 먼 산꾼은 서둘러 길을 떠난다.
1008봉(복지봉:06:55)
성수산에서 눈길을 헤치고 45분에서야 1008봉에 도착한다. 지도상에 없는 복지봉이란 명칭이
새롭게 있다. 진안 문화원에서 박쥐봉이 변음하여 복지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범여의 생각엔
박쥐봉이 더 나을 듯 싶은데...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우측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급경사라서 상당히 위험하다
980봉(07:20)
해가 많이 길어진 것 같다. 7시가 넘으니 주위가 훤하게 보인다
709.8봉(08:00)
넓은 공터 헬기장 어느곳에 삼각점이 있는데 눈이 너무 많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지나친다
이곳이 대한민국의 최오지중 하나이다. 주위에 보이는 건 산밖에 없다.
강원도 인제나 양구만큼 오지인것 같다.
전라북도에는 KBS의 TV무인중계탑이 39군데나 있다고 한다. 이것은 강원도보다 숫자가 많은
것으로 그만큼오지라는 뜻이다. 진안 장수군 일부를 커버하는 팔공산 TV중계탑도 그 중에 하나다.
709.8봉 내림길에서 바라본 옥산동 마을
709.8을 지나니 여기 저기 벌목을 해놘 탓에 산들이 자꾸만 벌거숭이가 되어가고 있다
서서히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마이산의 봉우리 시야에 나타난다. 선두에 간 3명의
산꾼들이 양지바른 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조금 더 가사 먹을요량으로 옥산동재까지
내려 갔으나 마땅한 곳이 없어서 인삼밭위 능선에 능선에서 아침상을 펼친다.
눈길을 걷는다는 것은 엄청난 체력소모로 인해 힘이든다.
1대간 9정맥이 뭐길래... 마치 혜초선사가 求法을 하기위해 인도로 향하는 것처럼
으로 1년6개월을 더 걸어야 1대간 9정맥 완주를 하는데...
무슨 미련이 남아 아직도 못 떠나시나. 집착을 버리심이 어떨런지.
옥산동 고개(08:35)
비포장 임도다. 왼쪽 아래로 보이는 마을이 옥산동이다. 우측 멀리 골짜기 사이로
마이산이 아스라이 보인다. 고갯길을 가로질러 건너편 비탈로 치고 오른다.
경사길에 제법 호흡이 가빠지나 5분만에 첫 봉이고 다시 내려서고 오르고 30여분
동안 봉우리와 안부를 서너개 지나니 다시 앞쪽에 도로가 보인다.
옥산동재 옆에 인삼밭도 눈속에 파묻히고...
옥산동재를 지나 마루금 능선에 아침상을 펼친다. 오랫만에 2년전 백두대간을 같이 한
동료 산꾼과 오붓하게 라면을 끓여서 커다란 시리얼컵에다 이스리 한잔을 원삿 했더니만
속이 얼얼하다. 아뭏튼 추울때는 뱃속에 이스리가 들어가야 추위를 들 느끼는 것 같다.
후미가 너무 처지는 것 같아 아침도 느긋하게 먹고 거기에다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이 세상 그 무엇하나 부러울 것이 없다. 그래서 이 맛에 산에 중독이 되는 것 같다.
편안 능선을 타고가니 과하게 마신 이스리 탓인지 자꾸만 잠이 쏟아진다. 졸면서 걷는다.
우리와 반대로 오는 정맥 산꾼이 인사를 하는 통에 잠을 깬다. 자꾸만 마이산은 코 앞에까지 오고...
가름내 고개(10:00)
가름내 고개(10:00)
1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다. 내려서서 나온길로 돌아보니 시멘트방벽에다
‘호남정맥’이라 크게 적어놨다. 건너편 인삼밭 좌측으로 붙어 오르니 오른쪽
아래에서 임도가 올라오는데 제법 규모가 있는 묘터로 연결이 된다
진안 문화원에서는 여꾸실고개라는 푯말을 해놨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상당히
헷갈린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족묘
울님 유두만큼이나 빨간 망개열매
가름내 고개에서 30번 국도 가는 길은 온 천지가 벌목을 해놔서 시아 확보는 좋은데
좀 그렇다. 그 자리엔 잡목들이 많이자라 산꾼들이 걷기에는 상당히 불편하다.
이곳을 밭으로 개간하여 인삼밭을 만들려고 하나...
30번 국도(반월재:10:40)
마이산 바로 뒤편 진안읍에서 마령면으로 가는 왕복2차선 아스팔트 도로다.
우측이 진압읍 방향인데 이 길로 10분만 가면 오늘 날머리 강정골재(활인동치)로
바로 연결이 될것이다.차가 심심찮게 지나간다. 도로 건너편은 논이다. 마루금을 가늠해 보며 논우측으로 나있는 농로길을
따라 논 뒤로 돌아 오르니 깨끗한 상석을 앞에둔 ‘평산신공지묘’가 나온다. 다시 뚜렷한 산길을 따라 계속 오름길로 이어지는데
고개를 드니, 오르막 마루금에 묘 1기와 봉긋한 봉분뒤로 숫마이봉 정상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눈속에 파뭍힌 묘지들이 평화롭게만 보인다.
먹이를 찾아나선 멧돼지들이 산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다.
눈을 보니 아마 오늘 아침에 한 모양이다.
저 너머에 백두대간의 능선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서 올라가는 길이 예사롭지 않다. 조금전 편안한 능선을 걷다가 갑자기
고도를 높이니 숨이차다. 숫마이봉이 코앞에 나타난다.
숫마이봉 아래에서 바라본 진안읍의 모습
숫마이봉(11:20)
은수사 내려가는 길
엄청 힘들게 숫마이봉에 올라 왔으나 숫마이봉은 올라 갈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은수사라로 우회를 한다. 내려가는 내리막길은 양지라 그런지
눈이 다 녹아있다. 마이산은 타포닌 현상으로 생긴 암산이라 꼭 폭탄을 맞은 것
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마이산 산제단과 안내판(11:45)
은수사 섬진강 발원지
예로부터 섬진강의 발원지를 두고 진안 사람들은 마이산(馬耳山)이라고 하고 장수사람들은
수분재(水分峙)라고 한다. 실제로 마이산 동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금강으로 가고, 서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서쪽으로 간다. 또 수분재 북쪽 물은 금강으로, 남쪽 물은 섬진강으로 간다.
택리지같은 자료에서는 섬진강 발원지를 마이산이로 보았다고 한다.
1918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지지자료는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우곡리 부귀산에서 발원하여
경남 하동군 갈도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귀산(806.4m)은 진안읍 북서쪽 정곡리 뒷산이다.
해방후 건설부에서 만든 하천편람이나 수자원공사에서 만든 전국하천조사서도 한동안 이 개념을
그대로 써 왔는데 섬진강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가장 긴 물줄기는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1151m)
아래 데미샘에서 시작된다. 팔공산 자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는 모두 세개인데 왼쪽 물줄기는
서쪽 마령치에서, 중심 물줄기는 고중대 마을 위 계곡에서, 오른쪽 물줄기는 원신암 마을 동북쪽
상추막이골에서 시작된다. 세 물줄기 가운데 가장 긴 것은 상추막이골 데미샘이다.
이곳이 최장(最長) 발원샘이라는 것을 밝혀낸 것은 하천 연구가 이 형석 선생이라고 한다.
이 형석 선생은 실제 팔공산 물줄기보다 봉황산(천상데미) 물줄기가 약 250m 더 길다며 1986년
국립지리원으로 부터 데미샘이 가장 긴 발원샘이라는 사실을 확약 받았다고 한다.
데미샘이 있는 봉우리를 천상데미(봉황산)라 하는데 데미라는 말은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로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천상데미라 불리워 왔으며 이 샘이 천상데미에
있다하여 데미샘으로 불리워졌으며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이가 시리도록 차가우며
다른 어느 샘에서도 맛 볼수 없는 미묘한 맛을 느끼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곳 마이산에 있는것은 섬진강 발원지가 아니라는데 참으로 헷갈린다.
이 고장 사람들의 욕심으로 치부해야하나 정확한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섬진강의 개요
한국(남한)의 4대강은 일반적으로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으로 나뉜다.
국가가 정한 4대강 개념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유역과 수량, 강의 길이를
말한다면 낙동강, 한강, 금강, 섬진강의 순서가 맞다. 영산강이 섬진강을 제치고
4대강으로 분류되는 것은 강의 길이나 수량 때문이 아니라 영산강 유역에 인구가
많이 집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은 강은 그만큼 상수원이 중요하며 4대강은
그 유역 사람들의 식수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섬진강을 5대강으로 분류한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 원신암 마을 상추막이골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광양만에
이르기 까지 3개도 10개 시.군을 거쳐 218.6km를 흐르는 남한에서 4번째로 긴 강이다.
섬진강 발원지는 금강 발원지와 이웃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역태극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섬진강(蟾津江)은 단군시대에는 모래내, 백제시대에는 다사강, 고려초에는 두치강으로
불리다가 고려말에 현재 광양시 진상면 섬거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만마리의 금뚜꺼비가
강변에 나가 울어댐으로써 왜구가 퇴각했다는 전설에 유래되어 뚜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으로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태조 이 성계와 관련이 있는 일월곤륜도와 안내판
마이산(馬耳山 :673m)
마이산(馬耳山 :673m)은 인기명산 18위로 전북 진안에 있으며 두 암봉이 나란히 솟은 형상이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중생대 말기인 백악기 때 지층이 갈라지면서 두 봉우리가
솟은 것이라고 하며 동쪽 봉우리가 숫마이봉, 서쪽 봉우리가 암마이봉이다.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이의 448 층계를 오르면 숫마이봉 중턱의 화암굴에서 약수가 솟는다.
또한 두 암봉 사이에 낀 마루턱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탑사가 있으며, 세찬 바람에도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돌탑들이 신기하다.
마이산은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이며, 신비하게 생긴 바위산에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도립공원(1979년)으로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여 100명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이갑룡 처사가
평생동안 쌓았다는 80여 무더기의 석탑과 함께 마이탑사가 유명하다. 탑사, 은수사, 금당사,
북수사, 이산묘 등의 문화재가 있다.
마이산을 찾아오는 묵객들에 의해 계절별로 지어진 또 다른 이름은 봄에는 구름위에 떠 있는
두 개의 봉이 돛단배처럼 보인다고 하여 “돗대봉“ 여름에는 초록의 산야에 솟아있는 모습이
청룡의 뿔을 닮았다 하여 ”용각산‘ 가을에 단풍이 들면 말의 귀를 닮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여
“마이봉” 겨울이면 타포니 지형으로 눈이 쌓이지 않고 유난히도 시커멓게 나타나는 봉우리가
먹물을 머금은 붓처럼 보인다고 하여 “문필봉’이라 하며 사계절 아름답다. 봄이면 마이산
남부의 이산묘와 탑사를 잇는 1.5km의 길에 벚꽃이 만발하고 마이산 벛꽂축제가 열린다.
가을이면 억새가 물결을 이루고, 단풍이 붉게 물든다.
마이산의 전설
마이산은 아득한 옛날 한쌍의 두 신선이 자식을 낳고 살아 가던중 마침내 승천할 때가
이르러 남신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승천하는 장면을 보면 부정을 타서 안되니 한밤중에
떠나자고" 말하였으나, 여신은 밤에 떠나기는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하였다.
그래서 새벽에 떠나게 되었는데 때마침 일찍 물길러온 동네 아낙이 승천하려는 장면을
보고 "어머나 산이 하늘로 올라가네" 하고 소리치자 승천이 틀린 것을 안 남신이 화가
나서 "여편네 말을 듣다가 이 꼴이 되었구나" 하고 여신으로부터 두 자식을 빼앗아
그 자리에서 바위산을 이루고 주저앉았다 한다.
구전되어 내려온 전설이긴 하지만 진안읍에서 마이산을 보면 아빠봉은 새끼봉이
둘 붙어있고 서쪽 엄마봉은 죄스러움에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
신비스런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은수사의 대웅전인 무량광전(11:45)
은수사 대웅전의 주불(아미타불)과 좌.우 협시불
후미에서 산행대장님 한테서 전화가 온다. 지금 30번국도란다. 그럼 그럼 거의 2시간 가량
차이가 난다. 그 덕분에 여유를 부리며 은수사 경내를 관람한다. 아이젠에다 등산화를 벗기 싫어
밖에서 부처님에게 예를 올리고 마음속 기도를 한다. 그런데 옆에 있는 관광객이 정문을 열고
추출돌 밟고 무례한 행동을 한다. 그 자리에서 거기는 스님들만 출입하는 곳이니 그리로 가면
안된다고 훈시를 하니 멋쩍은 듯 한번 쳐다보면서 가버린다.
그런데 이곳은 좌.우로 나란히 무량광전. 대적광전이 있다. 어느곳이 대웅전인지 헷갈린다.
주로 대웅전에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는 곳은 무량광전이라 하고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는 곳을 대적광전이라 부르는데 이곳은 태고종 사찰이라 그런지 이해가 잘 안간다.
마이산은 국가지정 명승지 제12호로 지정된 만큼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암석의 측면에 동굴 형태의 구멍이 생기는 타포니(taffoni)현상으로
울퉁불퉁 총알맞은 것처럼 생긴것은 오랫동안 풍화작용에 의해 생겼다고 한다.
타포니 현상이라고 하는데 7천만년전 담수호에 갇혀있었다가 지각변동으로 돌출하여
생겨난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쏘가리 형태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마이산 타포니 지형은 풍화작용이 바위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냄으로써 만들어 진 것으로 세계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발달한 곳이다.
마이산의 타포니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특수한
기후조건 즉 신생대 제 4기의 빙하기와 뒤에 온 한냉기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마이산 탑사(12:00)
은수사 관람을 끝내고 탑사로 내려왔다. 탑사의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바로 아래 매점에서
이곳 특산품인 오뎅에다 동동주 한잔을 하고나니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다.
탑사의 미륵존불
어랴 여기도 섬진강 발원지... 머리나쁜 범여는 헷갈리다가 산행을 끝내겠네 ㅋㅋㅋ
탑사 대웅전 앞에서
이 갑룡 도사의행적
▶자 : 갑룡 호 : 석정 (본명: 이경의, 자: 갑룡, 호: 석정)
1860년 임실군 둔덕면 둔기리에서 전주이씨 효령대군 16대손으로 출생했던 석정의 본명은
이 경의 호는 이 갑룡이라 한다. 구한말 시기적으로 어려운 때에 지혜는 총명 했지만 가난한
양반 집안이므로 서당에 다니지 못 하고 창호지 틈으로 세어 나오는 글소리로 학문을 읽혀으며
군불에 나무를 집히고 앉아서 나무 가락으로 땅바닦에 글을 쓰며 틈틈이 일하시면서 공부에 열중하셨다.
아주 어릴적에 갓 돐을 넘기시고 제사날에 조상 제사상에 홀로 술을 올리고 절을하면서 침묵과
함께 기도를 한참 동안 하셨다 한다.
남달리 어릴적부터 효성이 지극 했으며 같은 동내에서도 이 경의를 이길자가 없었다 한다.
어릴적부터 효성이 지극한 갑룡은 부모님이 자리에 누워 임종 하실 때 이 갑룡은 자기의
손가락을 조금 잘라 피를 먹이시어 약 석달간을 더 사시게 하셨다 한다.
16세때 부모님을 여의시고 부모님 묘소 옆에서 움막을 짖고 3년동안 시묘 살이를 하시다 인생의
삶과 죽음의 인생 허무무상을 탄식 하시다가 19세때 시묘 살이를 마치고 전국을 만행 하시면서
속세를 떠나셨다 한다. "疊疊山中, 萬康漁萬來"라 오직 홀로 의 산과의 대화요,강을 건너도
또한 물고기와의 대화로다.
외로움을 달래며 이산 저산 이절 저절에서도 자리 잡지 못하시고 결국 고향에서 농사나 지으며
인생을 살아야지 하며 전국을 누비시다가 거창에서 장수로 임실 둔덕으로 넘어가실 무렵 어느
두 봉우리가 이 갑룡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가 1885년경 나이 25세 되던해 젊음을 이곳에 묻으라 하신다. 유,불,선에 바탕을 두고
龍華世界의 실현이 이상적이라 믿고 구도의 행각 끝에 수도에 들어갔다.
마이산에서 남자산이라는 지리산이 200리, 여자산이란 계룡산이 200리 그 한복판의 마이령봉은
남녀 두 봉우리가 역역하고 그 절묘함이어느곳에 비 할 수없어 그 정기로 사바세계를 개척 하리라
마음먹고 중생 구제를 위해 고행을 자처하며 1기,2기, 쉬지않고 탑을 쌓기 시작했다.
세속과는 완전 등진채 낮에는 돌을 날랐고 밤에는 기도 하다 자시에 돌탑을 하루에 한층씩 30여년동안
인간의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108기의 탑을 쌓으면서 108 번뇌를 해탈 하고자 108개의 석탑을 구상
자연석을 탑촌으로 하나둘 올려 놓으면서 뭇 중생이 짖는 죄를 대신해 비는 기도로 일관 하며 탑을
완성될 동안에는 사람이면 고독을 느껴서라도 하산의 길을 떠나 세속에 묻혔을지 모른다
(탑사 홈페이지에서 발췌)
이 갑룡 처사 존영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된 마이산 탑군은 이갑룡 처사가 평생을 바쳐 쌓았다는 탑으로,
인간의 백팔번뇌를 상징하여 108기를 쌓았다는데 지금은 80여기만 보존되고 있다 한다.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 16대 손 이갑룡 처사가 수행을 위해 마이산에 들어와 생식을 하며
수도하다 신의 계시를 받아 쌓기 시작했다는 돌탑이다
숫마이봉의 웅장한 모습
천황문 가는 계단
탑사에서 올라와 은수사 무량광전에 들러 부처님께 하직 인사를 고한다. 특이한 점은
무량광전 안에 큰북이 메여있는데 아무나 치고싶은 사람을 쳐보란다.
조금은 이해가 안된다 법구는 의식을 집전하는 스님이나 법사들이 사용해야 하는데
아무나 쳐보라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정맥길은 천황문으로 올라 암마이봉으로 연결이 되지만 암마이봉은 ‘식생복원을 위하여’
10년간 폐쇄되었단다. 그러면서 정맥꾼들을 탑사로 해서 봉두봉으로 유도를 한다.
고집스럽게 원칙을 고수하며 천황문에 올라 숫마이봉 아래 화엄굴에 들렸다가 나오니
창원남고 출신들이 산행을 와서 시산제를 지냈단다. 아니 섣달 스무날에 왠 시산제?
경상도 사람들의 시끌벅쩍함. 목마른 산꾼이 그냥 지나가랴 베낭을 내리고 막걸리
한사발 얻어 마신다. 40여년을 서울에 살지만 말투가 경상도 말인지 알아보고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의령 신반이라고 하니 내보다 4년 후배인 친구도 있고 의령
덕실이란 친구, 용덕, 가례 등등 의령의 지명이 다 나온다. 아예 퍼질고 않아서 막걸리,
돼지고기 두루치기, 배, 사과 등을 얻어 먹고는 암마이봉으로 향한다.
마이산 등산지도
암마이봉 올라가는 길에서 바라본 숫마이봉 정상
암마이봉(675m:13:00)
이제 서서히 눈발이 날이 날리며 굵어지기 시작한다. 암마이봉 올라가는 곳이 경사도가
70도 이상에다 눈이 엄청나게 쌓여서 마치 에베레스트 올라가는 기분이다.
왕복 1km에 약 1시간이 걸린다. 전망은 끝내주는데 너무 추워서 서둘러 내려온다
내려오는데 급경사에다 눈이 많아 아이젠 자체가 무용지물이다. 스틱을 접고 200m
가까운 로프를 잡고 내려오다 로프를 놓쳐서 50m 정도를 굴렀더니만 온 몸이 다 아프다.
이곳부터 단속구간이다. 오늘도 산행전과 1범이 추가되는구나. 그래도 가야지
다행히 단속반은 없다. 사람이 다니지 않은 탓에 산죽사이로 눈이 너무도 많다.
엄청난 체력과 시간, 인내심이 요구되는 구간이다.
암마이봉 밑둥치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길을 걷는다.
물탕골 정상에 도착하니 온 몸이 녹초가 되는 느낌이다. 대장님 한테서
전화가 온다. 봉두봉을 지나고 있단다. 이해가 안된다. 나중에 알고보니
탑사로 간 모양이다. 이렇게 가면 2시간이 넘게 차이가 난다.
고개쉼터(물탕골 안부:14:00)
봉두봉(504m:14:10)
삿갓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암마이봉
저 아래의 탑형재 저수지가 꽁꽁 얼어있다.
삿갓봉(14:40)
저 너머 장수-익산간의 고속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삿갓봉을 지나니 사람이 안 다닌 탓에 눈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진안 문화원에서는 강정골재를 강경골재라고 붙여놨다. 인쇄 실수인가?
강정골재(활인동치:15:20)
야트막한 능선을 걷는데 눈이 많이 쌓이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탓인지 상당히 불편하고
눈이 깊어 시간이 상당히 더디다. 먼저 마이산에서 종주를 포기한 산행대장이 자꾸만
전화가 온다. 괜히 맘만 급해지는데 갑자기 체력이 뚝 떨어진다. 잠시후에 나타난
강정골재다. 정맥 마루금을 싹뚝 잘라서 길을 만들어 놨다
30번 보다 자리수는 아래인 26번 도로지만 지나는 차는 30번도로와는 비교도 안된다.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중앙분리대도 있어 무단횡단도, 달리 속도땜에 무단횡단할
엄두도 못 내겠다. 이곳 역시 이 지역 사람들은 강정골재라면 잘 모른단다
활인동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진안 문화원에서는 강경골재라고
적어놓고 있다. 어느것이 맞는지 헷갈리기만 하다. 도로로 내려서니 ‘모텔’ 간판이 걸린 곳이다.
자꾸만 눈은 쏟아지고 조금후에 버스가 우리를 실러왔다. 다른 사람들은 일찍 내려와
식사를 마쳤다. 괜스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식사를 겸한 폭탄주 한잔하고 나오니
이젠 눈이 폭설로 변해 버렸다. 서울갈 일이 걱정이다. 아이구 모르겠다.
운전이야 기사님이 할 일이고 내가 걱쩡할 일이 아니니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대전-논산간 고속도로 정안 휴게소
계속해서 눈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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