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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탄천(검단)지맥(終)

탄천(검단)지맥 제2구간 - 남한산성 남문에서 부천당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2. 1. 1.

산행일자 : 2012.01,01

산행날씨 : 흐린 날씨에 가끔 눈발이 내림

참석인원 : 나홀로 산행
산행거리 : 도상거리: 21km +7.2km G.P.S거리: 29.2 km / 8시간 40분 소요
산행코스 : 남한산성역-남한산성 남문(至和門)-검단산-사기막 고개-망덕산(왕기봉)

                  -이배재-연리지목-갈마터널-갈마치고개-332.7봉-곧은골(직동)안부

                  -영장산-곧은골 고개-팔각정(강남300 C.C)-일곱 삼거리고개-새마을고개

                  -봉적골고개-넘어골고개-태재-형제봉-불곡산-부천당 고개

소 재 지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분당구 / 광주시 중부면, 송정동, 오포읍

 

범여로서는 지난 한해는 너무 힘든 한해였다. 정말 모든걸 잊고 싶었다.

모든걸 가년 년(?)에게 모두 버리고 오는 새년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정초부터 어김없이 산행은 시작되고... 맑은 정기를 받아 살고싶다.

이제 나도 어느듯 50대 후반의 나이 이제는 뒤돌아보며 살아야 하는 나이련가?

남한산성 정상에서 소원을 빈다. 내 주위에 아픈 친구들이 빨리 나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소원이 이루어지길 기원하면서..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성남시의 새벽야경(07:15)

개포동 집에서 05시 30분에 출발하여 남한산성역에서 도착하여 어둠속에 남한산성

남문으로 향한다. 남한산성 해맞이로 가는 인파들이 엄청나게 많다.

백련사의 급경사로 오를때는 이마에 땀이 솟는다. 남한산성 남문으로 접어드니

올해가 선거철인지 국회의원 예비후보들이 허리띠를 두르고 연신 굽신거린다.

저 자들만 보면 역겹다. 저 자들이 지난해 힘들게 산 民草들을 알기나 할까?.

자기들 밥그릇 챙긴거 외엔 한일이 뭐 있다고...

경기문화재단에서 2012년 흑룡의 해를 맞아 내년 1월1일 남한산성에서 해돋이 행사를 갖고 있다.

재단은 남한산성 청량산 수어장대에서 해돋이 행사에 참여한 탐방객에게 떡 1500명분을 무료로

제공하고,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추진 과정을 홍보할 예정이라고 한다. 수어장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어차피 해돋이는 틀린것 같고 서둘러 길을 떠나기 위해 수어장대를 나선다.
남한산성에서 새해 떡을 나눠주는 행사는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 '정축년(1637년) 1월1일 광주

목사 허휘(許徽)가 쌀떡 한 그릇을 바치니, 인조 임금이 백관에게 나누어 보냈다'는 기록에 기초해

열게 됐다고 재단 관계자는 설명했다.

수어장대에 모인 해돋이 맞이를 나온 사람들(07:40)

한해 소원을 써서 새끼줄에 매달아 놓은 소원지들...

범여의 소원은 뭘까?... 지난 한해의 힘든 모든걸 잊으버리고 싶은 망각이다.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의 새벽 모습

영춘정 옆에 있는 돌탑(07:50)

돌 하나를 올려놓고 소원을 빌어본다. 내 주위에 아픈 분들은 올해는 훌훌털고

일어나 같이 원없이 산을 함타고 막걸리 한잔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분들이 건강한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굴욕의 역사를 간직한 남한산성의 모습

 

광해군은 재위 15년 동안 수많은 업적을 남긴 현군이었다. 우선 명나라와 청나라가 교체되는

대륙 정세의 격번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조선을 전란에서 비켜가게 한 것이 가장 큰 업적이다.

광해군은 한(漢)족의 명나라와 만주족의 후금(훗날의 청)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등거리 외교정책을

펼침으로써 조선을 전란의 위기에서 구해 냈던 것이다. 또한 안으로는 병기를 수리하고 군사를 양성함으로써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으며, 임란 때 파괴된 농지를 복구하기 위한 양전(量田) 사업을 전개했다.

그러나 서인들은 오로지 권력을 장악할 야심으로 광해군과 북인정권을 끌어내리려 했다.

 

조선의 서인과 인조는
광해군이 무도하게도 명을 배신하고 오랑케와 사귀며 대명의리를 배신한 군왕으며
조선에서 대명의리를 바로 세운다는 명분으로 반정을 일으켜 인조를 옹립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당사자인 명나라에서는 인조반정을 찬탈로 규정하고 있었다.


실례로 명의 관찬 사서인 "희종실록" (권 33 천계 3년 4월 무자 기록) 과
사찬사서인 양조종신록, 서원견문록 등 모든 기록이 당시 인조반정을 찬탈로
규정하고 있으며(명나라의 사서가 인조를 "찬탈자"로 규정한 당시의 내용은
이후 인조의 법통을 이은 조선의 입장에서 심해 난처해한 기록이 된 사례다)

후금의 태종이 3만5천명의 팔기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 것은 1627년 인조반정 5년만에 맞게된 정묘호란이였다.

그로부터 9년 뒤 후금은 나라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조선의 군신관계를 요구했다.

조선은 거부했고 1636년12월(병자호란) 청태종은 1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처음 압록강을 건넌 선봉대가 한성에 도착한 것은 단 6일만이였다.

인조는 강화도로 향하던 가마를 돌려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가파른 산세로

둘러쌓인 천해의 요세.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1만3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청에 맞섰다.

하지만 한겨울 청나라 군대에 포위된 남한산성은 참담했다. 오늘보다도 훨씬 추운 날씨에 저 아래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땅에다 아홉번을 이마를 찓고 굴욕적인 항복을 한 이 남한산성을 걷고있다.

 

선조들의 아픈 역사 과연 잊어야 할 것인지? 아직도 중국은 오만방자한 자세로 고구려와

발해를 자기 역사를 만들기 위해 동북공정에 혈안이 되고 있는데 우린 역사수업을 줄이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 나라에는 국,영,수 수업만을 할것인지 자기의 역사도 모르는 한심한 민족...

 

남한산성 남문(至和門 : 08:10)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는데 그중에서 성남에서 올라오는 남문이

제일 큰 규모인 실제로 남한산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송파나루로 연결되는 서문이 제일 가깝기는 하지만 길이 험하여 암문(岩門)의

성격을 갖고 있다면 남문은 지금도 이곳으로 도로가 성남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제일 평탄한 길이라 할 수 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문을 통해서 남한산성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현재의 성문은 조선 정조3년에 성곽을 개,보수할 때 부터

지화문(至和門)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픈 역사를 곱씹으면서 산성을 내려오고 있는데 지난해 낙동정맥을 같이 걸었던

기분죤 산악회 맥사모님을 만난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반갑다. 곧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남문에서 내려와 종로쪽으로 내려와 식사를 하고 산행을 준비하려고...

남한산성 남문터널의 모습

아침식사

오늘 식당의 주 메뉴는 떡국이다. 근데 많이 퍼져서 맛은 좀 그렇다.

그래도 새해 초하루니 그냥 먹자... 거기다가 막걸리 한병을 쭈~욱 마시고

나니 허기도 가시고 배가 부르니 살것만 같다. 모닝커피까지 한잔 마시고

산행을 시작하면서 친구한테 전화하려고 전화를 꺼내니 이게 원... 전화를

책상 위에다 놓고 가져오질 않았구나. 요즘 내가 왜이러는지 모르겠다. 나이탓인가?

산행시작(08:30)

지금부터 본격적인 검단지맥 산행이 시작된다. 검단산 정상에 있는 공군부대와

KT송신소 때문에 그냥 도로로 향한다. 간간히 내려오는 사람들과 새해인사를

나누면서 아침식사 후 소화도 시킬겸 천천히 걷는다.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하남시, 광주시, 성남시에 걸쳐 있는 남한산(南漢山·535m)은 도립공원

남한산성(사적 57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북쪽의 북한산성과 더불어

도성의 남쪽을 지키는 주요한 피난산성 중 하나였다.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의

옛터를 활용해 1624년(인조 2)에 축성(築城)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산이 남성적인 근육질의 산(암산)

이라면, 남한산은 여성적인 아담한 산(육산)이라고 할 수 있다.

제1 남옹성(08:50)

성문을 나서니 구름속에 해가 살짝이 나타난다.

성문을 지나면서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는데 갑자기 저 위의 성터에서 귀에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직감적으로 지난해 10개월동안 낙동정맥을 같이한 이 고문님의 목소리다.

다시 길을 되돌아오니 거기에는 기분죤산악회 이고문님, 오대장님, 짱아 총무님, 둘리,

채송화님이 무척이나 반가워 한다. 즉석에서 막걸리 한사발을 나눈다.

그 이외는 알지 못하는 분들 몇명도 만나고... 서로의 갈길이 달라 이내 아쉬운 이별을 나누고...

낙동정맥의 동지들과 함께 반가운 해후

 

저 멀리 검단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한산성 유원지 갈림길(09:05)

공군부대장의 경고문도 보이고...

검단산 갈림길(09:27)

검단산 정상은 공군부대 방공포 부대와 KT 송신소에 빼앗겨 버리고 정상석은 바로아래

헬기장 모퉁이에 외롭게 서있다.

검단산(黔丹山:534.7m : 09:30)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검북리에 위치한 산으로서

흔히들 검단산하면 하남시 팔당댐위의 검단산을 알지 이곳을 검단산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정상에는 공군 방공포 부대와

KT 송신소가 자리잡고 주인행세를 하고 있고 정상석은 산 아래 헬기장에

외롭게 서있다. ‘검 黔’ 字는 ‘검을 黑’에다가 ‘이제 今’을 합쳐진 글자로

부엌에서 검은 연기가 문틈으로 들어오는 것을 나타내는 글자란다.

만수천(萬壽泉 : 09:35)

검단산 헬기장에서 내려와 5분정도 걸으니 만수천이란 약수터가 나타난다.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흘러나온다. 바가지로 물한모금 마시고

길을 떠나는데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면서 눈발이 뿌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길이 전반적으로 좋고 대도시 근교 산이라 그런지 이정표는 미안할 정도로 잘되어 있다.

거기다가 고도편차가 별로없는 산에다가 길은 등로라기 보다는 올레길 수준이다.

거의 시간당 4km정도를 소화시키도 무리가 없을듯 싶다.

사기막골 갈림길(09:40)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 있는 곳으로 옛날에 사기그릇을 만드는

가마가 있었던 곳이라 사기막골이라고 부른다. 세속의 벼슬이나 당파 싸움에

야합하지 않고 자연에 귀의하겠다는 뜻에서 옛 선비들이 만든 정원인 별서 정원

양식으로 만들어져 휴식과 체험의 공간으로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망덕산(望德山:500.3m : 09:55)

몇년전에 산행을 할 땐 왕기봉이라고 불렀는데 망덕산이라고 산이름이 바뀌었다.

독립된 산줄기에는 ‘산’이란 명칭이 주어지지만 부속된 능선에는 ‘봉’이란 명칭이

주어지는데 아마 독립된 산줄기로 판정이 난 모양이다.

망덕산에서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부탁하여 인증샷을 하나 남기고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조그만 등로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이배재로 향한다. 심심하지 않을정도로 등산객도 가끔 만나고...

보통골 능선도 지나고...

능선에서 바라본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의 모습

70년대에 이곳은 경기도 광주군으로 서울 청계천이 개발되면서 철거민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와 광주 대단지로 불리던 곳이었다. 범여가 서울에 처음 왔을때도 성남이라 부르지 않고

광주대단지라고 불렀다. 지금은 분당과 판교까지 아우르며 100만명이 넘는 거대도시가 되었다.

뭣이 저리도 좋아서 붙어서 있을까?

이배재(二拜峴 : 10:25)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갈현동의 보통골과 광주시 송정동을 잇는 고개로

舊 3번 국도로 갈마터널이 뚫리기 전까지는 한양에서 광주, 이천, 장호원

충주를 거쳐 문경새재로 넘어가는 영남대로의 중요한 교통요충지 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목현동의 이배재 고개가 남한산성의 보장지(保障地)로서 군사적요충지였다.

병자호란 이후에 군사훈련을 할 때면, 이 고개가 척후지점(斥候地點)으로서, 또 최전방

진지로 삼아 조련(操鍊)하였다.

따라서 이배재 고개 밑의 마을인 목현동에는 주막이 있었으며, 조선조 말기까지

광주의 읍치가 남한산성에 있을 때에는, 목현리를 경유, 초현(草峴)을 넘어

남한산성으로 통하는 길이 대로여서 평소 인마(人馬)의 왕래가 많았었다.

 

이배재의 유래를 보면

옛날 경상도나 충청도 지역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고자 한양으로 갈 때 이 고개

정상에 도착하여 漢陽이 보이기 시작하면 임금에게 한번 뒤돌아 보고 고향의

부모에게 또 한번 절을 하였다고 하여 이배재라는 설이 있었고, 또 하나는

퇴계 이황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낙향하면서 한양이 보이는 곳이라 임금에게

두번 절을 하고 떠난 곳이라 하여 이배재(二拜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경기도 광주시와 성남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지는 남한산성 도립공원이 위치하는

청량산(淸凉山)에서 검단산, 불곡산으로 이어지고 이 산지의 북쪽에서 부터 이배재,

갈마치고개, 곧을골 고개, 새마을고개, 태재, 부천당 고개가 형성되어 있다.

이들 고개는 과거 광주시의 관아에 갈 때와 경안장을 보러 갈 때 이용되던

교통로 역할을 했던 민초들의 길이기도 하다.

급경사로 내려서니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바람이 거세진다.

이곳은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과 성남시 중원구 보통골을 넘는 고개이다.

아마 2차선 도로에 교통사고가 났는지 레카차가 서있고 차량들이 막혀있다.

도로 옆에서 물한금 마시고 다시 나무 계단을 올라 갈마치로 향한다.

16번 송전탑 사이로 지나온 망덕산(왕기봉)이 보인다.

이배재에서 이곳 능선까지 송전탑이 연달아 4개가 나타나더니 조그만 고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니 연리지목이 나타난다.

연리지(連理枝 : 10:50)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된 것을

연리지라 한다. 이같이 서로 다른 두 나무가 하나가 되어 자라는 것은 매우 희귀한 현상이다.

두 몸이 한 몸이 된다하여 애틋한 사랑과 흔히 비유하여 알기 쉽게 "사랑나무"라고도 부른다.

연리지가 되면 하나가 죽어도 죽지않고 양분을 공급받아 다시 살아나니 두 몸이 하나가

되고나면 영원히 산다하여 부부간의 길고도 끝없는 사랑을 의미하며, 사랑하는 남녀가

연리지 앞에서 사랑을 맹세하면 그 사랑은 영원 할 것으로 믿는다.

갈마터널 위(10:55)

이 팻말 아래로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갈현동과 광주시 삼동을 연결하는 터널로서

1978년에 1차로 개통되었다. 이 터널로 3번국도가 지나가고 있고 기존의 갈마치고개는

389번 국지도(局地道)가 지나가고 있다. 갈마터널 서쪽으로는 갈현터널과 성남공단이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뉴서울 골프장이 연결되어 있다.

갈마터널위에 있는 경주 이씨 가족묘

갈마치 고개 위로는 동물 생태통로가 설치되어 있다.

 

갈마치()고개(10:58)

갈현이라고도 하며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갈현동과 광주시 삼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명칭은 옛날부터 칡이 많은 곳이어서 갈현(葛峴)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고, 옛날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도중에 이곳에서 말에게 물을 먹여 갈증을 풀어준 뒤 다시

길을 떠났다고 하여 갈마치(渴馬治) 또는 갈현(葛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성남시 영생 관리 사업소(11:05)

저 아래 화장터에는 어느 망자의 육신이 옷을 갈아입는지 웅웅하는 소리가 들린다.

죽고사는 거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번오면 한번가는 게 중생세계인데

다들 왜그리 집착을 하는지... 衆生들의 삶이라 그런가

직동 안부 사거리(11:20)

332.7봉 삼각점(△수원 311 1983 복구 : 11:25)

모리아산 갈림길(11:35)

성남시 도촌동과 광주시 직동을 연결하는 고개에는 조그만 정자와 운동기구들이

즐비하고 고개를 건너니 예전에 서낭당터가 나타난다. 좌측 광주쪽에는 인공

조림한 잣나무들이 즐비하다. 처음으로 고도를 높인다. 영장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저 아래에는 성남과 장호원을 잇는 신설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남서울 공원묘지(11:55)

영장산(靈長山:413.5m : 12:10)

경기도 성남시와 광주시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맹산이라고도 한다.

이 산봉우리 명칭의 유래에는 옛날 잘 훈련된 매를 이용하여 이 산 정상에서

매사냥을 한 것에서 매지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다른 전설에는 천지가 개벽할 때 세상이 모두 물에 잠겼는데 이 산봉우리에 매

한 마리가 앉을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남았으므로 매지봉이라 부른다고도 전해진다.

영장산은 최근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매지봉’이나 ‘맹산’이라고 불렀다.

맹산(孟山)은 조선시대 세종이 명재상인 맹사성에게 이 산을 하사해 불리게

된 이름이라고 전해진다.산아래 직동(곧은골)에는 맹사성의 묘와 맹사성이 타고

다녔다는 흑소의 무덤인 흑기총이 있다

 

산행을 시작한 지 처음으로 휴식을 취한다.

그만큼 산 능선이 편하기도 하지만 서있으면 춥기에 그냥 계속 걸었다.

이곳 산 정상에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앙꼬빵 한개와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5분정도의 휴식을 취한 후에 태재고개로 향한다.

태재고개 가는 길은 참으로 편안하다.

곧은골 고개(12:30)

성남시 분당구 율동의 서근배미에서 광주시 오포읍 직리곧은 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현재 성남시광주시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인 국도 3호선 과 국지도 389호선

갈마치고개를 지나기 때문에 고든골 고개를 통해서는 차량의 통행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등산로 상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철없는 생강나무

지금이 어느땐데 꽃봉오리를 피우려고 하는지...

반가운 사람을 만나다.

지난해 낙동정맥길에 회장을 맡으셨던 기분죤산악회

이준항 회장님을 만났다. 왜이리 반가웠던지...

지나온 영장산의 모습

 

강남 300 C.C (12:45)

편안한 길을 계속 걸으니 파란 철조망이 나타나면서 조그만 정자가 나타난다.

그 아래 골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남 300 C.C이다. 1990년 중반에 범여가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 처음으로 머리를 올린 곳이 이 골프장이었다.

요즘은 그린피 싼 골프장으로만 찾아다녀 이곳은 잘 오지 않는 편이다.

오늘은 휴장인지 주차장에 차들도 없고 그린도 텅텅 비어있다.

일곱삼거리 고개(12:50)

골프장 철조망을 타고 계속 내려오니 일곱골 삼거리라는 이정표가 있고

그 앞에는 전원주택 단지가 지맥길을 가로막고 있다. 역사의식이 없는

광주시 관계자들이 허가를 내준 탓에 지맥길이 짤려 버렸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선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꼭 필요하다니까.

검단지맥을 두동강 내버린 전원 주택들

동네 산보하듯 편안한 길을 속보로 걷는다. 한낮인데도 바람이 세고

자꾸만 기온이 떨어진다. 내일부터 추워질 모양이다.

8번 송전탑

이 아래 신현리에는 공장과 주택들이 무분별하게 개발된 탓에 을씨년스럽다.

새마을 고개(13:15)

성남시 분당구와 광주시 오포읍을 연결하는 고개로서 태재고개가 확장되어 국지도

57호선이 지나게 됨에 따라 새마을 고개는 현재의 차량의 통행이 이루어지 않는

잊혀진 고개가 되었으며 그 아래에 새마을 연수원이 있어서 고개 이름이 정해진 모양이다.

새마을고개를 올라온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 탓인지 길이 반질반질하다.

올라오는 길에 커다란 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빨간 노끈으로 줄을 쳐놨다.

또 개발을 할 모양이다. 후답자들이 올 즈음에 이 구간도 없어질 듯 하구나.

참으로 편안한 구간에 시간도 줄이고 추위도 이겨낼 겸 속보로 길을 재촉한다.

봉적골 고개(13:30)

성남시 분당구 율동과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정확한 지명을 유래는 알수가 없으나 400m 아래에 있는 마을이

봉적골이라고 한다. 이곳도 각종 공장과 주택건설로 몸살을 앓고있다.

율동공원의 모습

호수가 완전히 얼어 버렸다. 저 아래 산밑에서 국군수도통합병원이 보인다.

넘어골 고개(13:35)

성남시 분당구 율동과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정확한 지명을 유래는 알수가 없다.

골프장이 바로 아래에 있고 그 옆에는 커다란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지맥길이 아슬아슬하게 맹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추운 날씨에도

열심히 연습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래 동계훈련을 열심히해야

봄철에 스코어가 제대로 나지

능선에서 바라본 분당의 모습

흔히들 천당아래에 분당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부동산이 많이 내려

고민이 많은 곳이다. 천당아래 분당이 아닌 지옥인 느낌이다(대출받아 집가진 사람들은...)

韓山 李氏 종중 묘(13:40)

골프 연습장과 호화주택의 뒷 능선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오니 한산이씨

종중묘가 나타난다. 묘를 가로질러 지맥길을 이어간다,

특이한 건 이곳 묘비에는 꽤나 많은 묘비에 부인이 둘씩이나 등재되어 있다.

태재고개 신호등을 지나 ‘오대오 바지락 칼국수’ 집 담벼락을 타고 지맥길을 이어간다.

능선 위에는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를 지낸 한산이씨 묘소를 비롯한 여러기의 묘소를

지나니 다시 도로가 나타나니 윗태재이다. 임도파들은 그냥 아스팔트 길을 와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태재고개 신호등을 지나 ‘오대오 바지락 칼국수’ 집 담벼락을 타고 지맥길을 이어간다.

능선 위에는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를 지낸 한산이씨 묘소를 비롯한 여러기의 묘소를

지나니 다시 도로가 나타나니 윗태재이다. 임도파들은 그냥 아스팔트 길을 와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윗 태재(14:00)

새로 생긴 태재고개 도로로 인해 이곳 도로는 완전히 변두리가 되어 버렸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니 좌측에 채선당과 청계산장이라는 식당이 있다.

이곳으로 올라가면 범여의 선대 조상인 고려말 충신이었던 김자수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곳이다. 예전에 저희 어른들이 이곳 오포에 시제를 모시러 오곤 한 곳이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그냥가고 다음에 함 찾아볼 예정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면 불곡산과 형제봉으로 가는 곳이다.

등로에 올라서니 주인이 없는듯한 개 2마리가 어슬렁거리면서 이리저리

돌아 다니고 이곳에는 추운 날씨에도 산책객들이 간간히 보인다.

형제봉(14:15)

등로에 올라서니 숲에 대한 글과 시를 써서 입간판을 만든 형제봉이 나타나고

정자 하나와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봉우리라기보다 그냥 밋밋한 곳이다.

형제봉에서 부터 불곡산 가는 길 곳곳에는 이렇게 시를 많이 써놓은

입간판들이 즐비하다.

수내동 갈림길(14:25)

이곳은 갈참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바로 아래가 분당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안부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차갑기만 하다.

불곡산111"이정표..체육시설..사각정..사각정뒤로 작은 정상석이

앙증맞게 서있다. 사각정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고 운동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사각정과 불곡산 정상의 위치가 뒤바뀐 느낌이다.

불곡산(佛谷山 : 312.9m:14:35)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과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이다.

경기도 양주군의 진산(鎭山)인 불곡산(470m)과 한문 표기까지 똑같아 혼돈되는 산이다.

오포읍에 자리잡음 문형산(文衡山 : 497m)과 함께 굴곡진 산세를 이루고 있다.

분당 지역의 옛지명에서는 큰절골과 작은절골 등에 절터가 있으므로 불곡산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또 정자동 웃마을 주민들이 이 산을 성스러운 산으로 여기고 산신제를 지낸 것에서 유래하여

성덕산(聖德山)이라고도 하고, 현지에서는 효종산(孝鐘山)이라고도 한다.

불곡산 정상에서 바라본 청계산과 판교의 모습

불곡산 정상에서 바람이 너무 불어 서둘러 우측으로 내려서니

"불곡산110/이마트갈림길" 이정표와 위험표지판이 있는 삼거리 안부

갈림길이 나오고 구미동 방향으로 좌틀하여 밧줄 내리막을 내려서니

청계산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대와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나며 편한 안부길을 걷는다.

부천당고개(281m :14:45)

경기도 성남시 정자동과 구미동을 가르는 능선에 있는 고개로 청량산과 검단산의

남한산성 지대에 성남시, 광주시, 용인시의 경계를 이루는 대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고개 가운데 하나이며, 동쪽으로는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와 연결된다.

이 능선에는 부천당 고개이외도 갈마치 고개, 곧은골 고개, 새마을 고개 등이 있어

동서를 연결하는 민초들의 교통로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곳은 불곡산에 위치한 골안사에서 신현리 절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불곡산 일대에는 부처지골, 절골, 불당골 등 불교와 관련된 지명들이 많다.

 

오늘은 이곳에서 지맥 산행을 종료해야 할것 같다. 날씨도 차가워지고 식수와

간식이 다 떨어졌다. 거기다가 핸드폰까지 없기에... 고개에서 골안사까지 1km

가까이를 내려오니 골안사가 나온다. 타 절에 산신각만큼 밖에 되지 않은듯한

대웅전이 나타난다. 대웅전 밖에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하산을 한다.

골안사(骨安寺) 대웅전(15:05)

조선 후기에 창건한 골안사는 원래 이름이 불곡사(佛谷寺)였으나 분당 신도시 개발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다시 찾아올 때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이곳의 옛 지명인 ‘골안’을

따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등산로 입구 도로변에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지장보살상이 있다.

물론 산이름을 따서 붙여진 '불곡사'였다.

불곡산은 용인 분당지역의 다른 산의 이름처럼 불교에 관련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골안사는 명성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대웅전 이외는 모두 가건물이며 거기다가 범여의 눈에 거슬리는 건

골짜기철학원이란 간판이다. 부처님께서는 正法을 믿으라고 신신당부

했건만... 아무리 신도들이 부탁을 한다고 해도 그렇지, 이건 철학원이란

간판까지 달고 사찰에서 할 짓인가. 제발 민초들을 혹세무민하지 마시길.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역행하지 마시고 제발 중노릇 제대로 좀 하시길...

오늘의 산행 날머리

8시간 40분의 편안한 산행을 끝내고 스틱을 접는다.

구미동 사거리(15:10)

버스 정류장

버스 정류장에서 미금역까지 버스를 타고와 미금역에서 도곡역까지

분당선 지하철을 타고온다. 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핸드폰이

없어 연락도 못하고 시간도 늦어버려 막걸리 2통을 사서 집에와

혼자서 2병 다 마시고 깊은 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