永同金自粹遺蹟(영동 김자수 유적) 충청북도 기념물 제41호
소재지 :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
[永同金自粹遺蹟(영동 김자수 유적)]
이곳은 고려 말에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김자수와 조선 문종(1450~1452) 재위 때 강릉판관을
지낸 그의 손자 김영년이 살던 곳으로, 김영년은 사임 후 이곳에서 후학 양성을 하였다한다.
김자수는 자를 純中(순종), 호는 桑村(상촌)이며, 본관은 경주로서 경주 김씨의 중시조이다.
유적으로는 선생과 그의 후손이 대대로 살았던 先志堂(선지당)과 후손의 효자 정려각이 있다.
[先志堂(선지당)] 이 집은 중종(1506~1544) 재위 때 지어 많은 인재를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인데,
순조(1800~1835) 재위 때 김노경이 선지당의 당호를 친필로 현판하였고, 秋史(추사) 김정희가
'長宜子孫(장의자손)'이란 친필로 편액한 것이 현재 보존되어 있다 한다.
[기념비]
정면5칸, 측면2칸의 누마루 형식의 팔작지붕집으로 중간 3칸은 대청이다.
순조 16년(1816)에 중수하였다.
공민왕 23년(1374)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좌상시,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고려가 망한 후 안동에 은거했던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이다.
조선 태종 때 형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자결하였다.
선지당의 좌측 전면에 있는 정효각은 9대손 김은(1640)과 김추(1648) 형제의 효자비각으로
경종 원년(1721)에 세운 비이다.
비문은 각각 '효자 증통덕랑 호조좌랑 김은', '효자 증통덕랑 호조좌랑 김추'라 되어 있고
비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기와집이다. (참고자료 : 문화재청)
[先志堂(선지당)과 효자 정려각]
김은과 김추 형제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석에 있을 때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연명토록 하였으며, 별세 후에는 조석으로 묘소에서 부모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효성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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