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2, 04, 01
☞ 산행날씨 : 아침에 춥고 바람이 세참. 맑은 날씨☞ 참석인원 : 나홀로 산행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18km + 날머리2km ,GPS거리 : 22.65km / 9시간 20분 소요
☞ 산행코스 : 모암재-고흥지맥 분기점-적치재-태봉-가마봉-열가재-KT송신탑-장군봉-임도-285봉(고흥, 보성경계)
송장고개-병풍산 갈림길-두방산-원등마을-축내버스 정류장-88.2봉-가드릿재--삼거리 갈림길-온동마을
이동통신탑-삼봉-탄포 삼거리
☞ 소 재 지 :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조성면 / 고흥군 대서면, 동강면, 남양면
지난 한 주는 내 몸이 수난을 당하는 한 주였다. 작업 현장이 너무 바빠서 도와주다가
엄지 손가락을 다쳐서 8바늘이나 꿰매는 수난을 당했고 거기다가 허리까지 삐끗하여 3일간을
꼼짝도 하지 못하는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정형외과에서 처방해 준 약이 너무 독해서 3일간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기력이 많이 떨어지는 기분이다.
일요일(4월 1일) 저녁에 고흥에서 장인 제사가 있어서 안 갈수도 없고 난감하다.
몇년째 핑계를 대고 참석을 하지 않았더니만 장모님께서 맏사위가 참석을 안하니
좀 섭섭해 하는 느낌이라... 토욜일 업무를 마치고 저녁 7시 고속버스로 순천을 가서
거기서 시골까지 가서 아침 6시에 일어나 기왕 온김에 고흥지맥 한 구간을 마치려고 베낭을
메고 나선다. 3년을 넘게 늘 습관처럼 매주 베낭을 메고 나선게 이젠 몸에 베였다.
혼자가니 무리하지 말자고 다짐을 하면서 초입인 모암재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고흥지맥 개념도
고흥지맥(高興枝脈)이란?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분기한 금남호남정맥이 무령고개 장안산, 부귀산을 넘어 전주를 넘는 모래재 부근
주화봉?에서 호남정맥으로 불리며 전라남북도를 휘돌아 광주 무등산과 보성 제암산등을 지나며
남쪽 바닷가를 아우르며 광양 백운산으로 가던 중 전남 보성군 조성면 주월산과 벌교읍 군 통신부대가
주둔했었던 존제산 (703m)사이 도면상 삼각점이 있는 571.1봉에서 갈라지는 고흥을 아우르다 유주산,
단장으로 끝을 맺는 도상 약 90.9km의 작은 산줄기이다.(신산경표 도상거리)
실제로는 571.1봉에서 존제산쪽으로 약간 솟은 둔덕에서 오른쪽으로 조성면과 벌교읍의
경계를 따라 동남진하며 적지치 태봉 가마봉 2번국도 열갓재 장군봉 경전선 송장굴 위를 지나 오른
무명봉인 270봉에서 보성군 벌교읍과 고흥군 동강면의 경계를 따라 송장고개에서 병풍산쪽으로
390봉을 오르다 어깨에서 남쪽으로 동강면내를 동서로 가르며 남진하여 306봉 마륜리 원등마을옆
원등제 가는 도로로 내려가 1차선 도로를 따라 대서면과 동강면을 오가는 2차선 도로로 나가 축배마을로
가는 도로를 잠시 가다 오른쪽 89.3봉으로 올라가 가드릿재 108.3봉 남양초교 뒷능선 상와마을 855번
지방도로 탄포삼거리 이정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산으로 올라 흔백산 심교고개 천봉산
남양초교 뒷능선 상와마을 옥천 저수지고개 송정마을 장담마을 뒷능선 129봉(월락산 전위봉) 152.7봉 7
7번국도 월악육교 101봉 84.5봉 77번 국도 석촌마을 68봉 186봉 111봉 159.8봉 196봉 186봉 855번
지방도로인 성주(평촌)삼거리에서 올라친 150봉에서 동쪽으로 고흥의 진산 팔영산을 떨구고 서진하며
158.4봉 당재 232봉 388.9봉 408봉 운암산 259봉 238봉 146봉 송곡재 주월산 대곡재 수덕재
수덕산 화적재 230봉 鰲舞산 먹국재 351봉 미인치 안지재 벼락산 천등산까지 이어지다
(이상 신경수님의 고흥기맥 산행기에서 인용)
남쪽으로 우마장산을 떨구고 남진하여 210봉을 넘어 77번 국도를 지나고 시루봉 직전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181봉 400봉을 넘어 유주산까지 이어진다.
박성태님이 지은 신산경표에 따르면 유주산(417m) 까지 표시되어 있지만 유주산 이후 남으로 129봉을 지나
사덕리-구암리를 있는 843번 지방도로 뒤쪽의 150m 미만의 크고 작은 야산으로 이어지며 남해바다 지죽도 직
전 53봉을 지나고 지죽도로 연결되는 지죽 연륙교까지 산줄기는 이어진다.
오늘 산행구간 지도
모암재(帽岩峙:07:00)
전남 보성군 벌교읍 옥전리에서 보성군 율어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모암재라기 보다는 천치재로 알려져 있다.
천치(天峙)의 뜻은 이곳이 부처님과 하느님이 만나는 곳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작년(2011.7,17)에 호남정맥길에 이곳을 지나갈 때는 굴착공사만 해놨더만
이젠 동물통로까지 완성하고 그 위에 나무까지 심어놨다. 이곳으로 오르는 길은
꼬불꼬불한 S자 길인데 이곳을 많은 공사비를 들여서 길을 내는 이유를 모르겠다.
벌교에서 율어를 넘어가는 길은 여기 말고도 좋은 길이 너무도 많은데?
첫가집에서 새벽에 나와 조성면소재지 지나고 열가재를 넘어서 옥전리 마을에서
좌측으로 차를 돌려 놋정골옆 천치 저수지를 끼고 꼬부랑길을 올라간다.
저수지 옆으로는 진달래가 만개하여 있고 오늘은 꽤나 추운 날씨탓에 바람이 거세다.
모암재 정상에 올라 처남에게 차를 돌려보내고, 장비를 점검하고 길을 오른다.
이곳 제석산 아래에는 꽤나 추운 날씨탓인지 서릿발이 서있고 얼음도 얼었다.
봄은 언제 오려나....
고흥지맥 분기점 가는 길에서 바라본 벌교읍
1922년 이후 경전선 철도가 벌교읍을 중심지로 교통의 요지가 되어 일제 강점기 동안
전남 동부지방에서 생산된 물산을 실어 나르는 창구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1937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해방이후에 많이 쇠락하였으나 여전히 보성군의
인구 30% 이상을 차지하여 군청소재지가 있는 보성읍보다도 인구가 훨씬 많다고 한다.
작가 조 정래의 소설〈태백산맥〉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으며, 특산물로는 꼬막이 유명하다.
이 지역의 교통이 발달하여 외지인들이 많이 거쳐가는 탓에 흔히 ‘벌교가서 주먹자랑하지 마라’
할 정도로 이 지역의 텃세가 세다고 하다.
고흥지맥길 오름길에서 바라본 존제산(尊帝山:704m)
전남 보성군 벌교읍과 율어면의 경계에 있는성벽처럼 웅장하게 솟구쳐 있는
벌교의 진산이다. 웅치면에 있는 제암산에 이어 보성군내에서 2번째로 높은
산으로서 해발 300m 이상의 고지가 무려 65㎢나 되어 넓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남,북의 이데올르기가 빚어낸 비극의 현장으로 유명한 산이며 소설 태백산맥의
중심무대로 외지에 더 알려져 있는 존제산은 작가 조정래는 그의 소설〈태백산맥〉
을 통해 그만그만한 높이의 산들이 줄기를 뻗고 그 줄기의 산들이 겹쳐지고 이어지면서
원을 이루어 가고 있다. 그건 산들이 손에 손을 맞잡은 강강술래 춤이거나 어떤 성스러운
것들을 받들여 올리고자 하는 산들의 어깨동무였다고 존제산의 산세의 역사적인 사실을
연관지어 풀이하고 있다.
존제산의 이름은 고려 충열왕(忠烈王)이 지었다고 한다.
또한 이 산은 불교와 연관된 지명이 많은 산이다.
존제산 북쪽 유신리의 갓바위 윗등에 염주를 목에 건 불상모양의 바위,
부처님이 하느님과 만나는 곳이라는 천치재, 죽으면 한줌의 흙이 된다는 뜻의
진토재( 이 지역 사람들은 진트재라고 부른다) 스님들이 모여 문장을 자랑하는
곳이라는 석거리재 등는 존제산 동쪽 기슭에 있는 신라 고찰 징광사와 관련된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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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점 오름길에는 추운 날씨탓인지 서릿발이 성성하다.
추운 날씨에 바람이 세차 손이 꽤나 시렵다.
지난해 호남정맥길에서 만났던 정다운 임도도 다시 만나고...
벌교읍 옥전리에서 율어 넘어가는 길의 모습
호남정맥길에서 바라본 율어면의 모습
「보성의 모스크바」로 불렸던 율어는 당시 보성군 내에서 좌익세가 강했던 지역으로 꼽힌다. 그것은 빨치산들의 주둔지가 되었던 존제산을 끼고 있고 조계산에 잇닿아 있는 지형 탓으로 반란사건 이전에도 빨치산들의 활동이 활발했었던
때문이다.
율어는 소작인이 많아 계급적 갈등이 심했을 뿐 아니라 6·25때 전남의용군 부사령관을 지낸 김○○과 같은 열성적인 좌익들의 고향이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했기에 1946년 8월 15일 광복 1주년 기념식 때에도 2천에 가까운 농민들이 경찰관 1명과 우익인사 1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더구나 율어를 비롯한 산간지역은 당시 기관의 추적을 피해 숨어 들어온 사람들의 은신처가 되었고, 산으로 둘러싸인 율어의 상도지역은 자연히 많은 좌익들의 활동지가 되었다. 그들은 반란사건 전부터 칼과 같은 무기로 무장하였으며 면소재지를 제외한 마을단위를 모두 장악하고 있는 상태여서 경찰관들도 자기 보신 이외에 아무런 치안활동도 펼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율어는 이처럼 좌익세가 강했던 만큼 반란이 진압된 후에도 40여 일 간이나 그들의 지배하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12월이 되어서야 경찰 38명과 군병력 50여명으로 토벌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밤에는 소위 밤손님으로 불리는 좌익들이 밥과 가축, 젊은 청년들을 잡아가고 낮에는 토벌대가 좌익에 협조한 자를 통비분자로 잡아가 이 지역의 희생은 컸다.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생존을 위해 죽이고 죽는 살상극이 연속되었던 것이다.
호남 정맥길에는 추운 날씨탓인지 진달래는 개화(開花)를 꿈도 안꾸고 있다.
고흥지맥 갈림길이 거의 다 와가는 느낌이다.
고흥지맥 갈림길에서 바라본 존제산의 모습
산 기슭에 장군대좌의 혈이 있어, 옛날에는 현명한 사람들이 많이 태어났다 하여 존제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고흥지맥 분기점(571m:07:20)
드이어 고흥분기점에 다다른다. 이곳에도 여전히 梵如가 롤모델을 꿈꾸는‘준.희’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고흥지맥은 호남정맥이 전라남,북도를 휘돌아 광양 백운산으로
가던중 전남 보성군 조성면 주월산과 벌교읍 존제산 사이에 있는 571봉(적지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조성면과 벌교읍의 경계 능선을 타고 동남진하여 고흥반도 지죽도앞
남단 바닷가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100km의 산줄기를 고흥지맥이라 한다.
전남 보성군 조성면과 득량만의 모습
바로 아래에는 새로 조성되는 광양~목포간 고속도로가 공사중이고 그 아래에는
조성면에 소재한 대곡 저수지가 보인다. 조성면은 꽤나 넓은 들이 보인다.
원래는 이곳이 바다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1927년부터 10년 동안 일본인 요시이가
간척사업을 벌여 1700ha의 개펄을 막아 만든 농지라고 한다.
우측에 호남정맥 주능선이 주월산이 보이고 그 아래 퍼브릭 골프장인 보성C.C가 자리잡고 있다.
분기점에서 고흥지맥을 시작하는 간단한 예를 올리고 길을 나서는데
시작부터 진달래를 비롯한 잡목들이 강한 태클(?)을 시도한다.
경상도 사나이가 이곳 남도땅에 나홀로 산행이라 텃세를 하는걸까?
이 지역 벌교땅이 텃세 심하다는 걸 익히들어 알고 있지만 산도 이렇게
심하게 텃세를 한다. 길도없고 정리되지 않은 길을 찾아 나서니 초반부터
얼굴이 나무가지에 할키고 베낭을 물어 뜯는다.
생강나무가 그래도 위안을 준다.
이곳 길은 초반부터 오리무중이다. 도무지 길을 찾을수가 없다.
그래도 대간, 정맥길의 범여의 짠밥(?)이 얼마인데 겨우겨우 희미한 길을
동물적인 감감으로 찿아서 길을 이어간다. 벌써 얼굴에 나무가지로
난 상처가 아려오기 시작한다. 잠시후 어둠속에 등대같은 반가운
시그널을 만난다. 나홀로 산행을 하면서 가장 신뢰하는 시그널인
‘광주 문규한’ 님의 꼬리표가 그리도 반가웠다. 난 이 분을 전혀 모른다.
그런데도 왠지 오랜 친구처럼 느껴진다. 정말 대단한 산꾼인 모양이다.
길이없어 길을 만들어가는 신대륙 개척자 컬럼버스처럼 길을 만들면서...
추위속에서도 원추리도 보이고...
잡목의 밀도가 너무 심하다. 잡목으로 인해 산행 속력을 도대체 낼수가 없다.
분기점에서 시작한 크고 작은 봉우리들 잡목과의 싸움에 초반부터 지친다.
지나온 고흥지맥 분기점과 적지봉(赤地峰:571m)의 모습
적지채(赤地峙:07:40)
전남 보성군 벌교읍 옥전리와 조성면 대곡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지금은
옛 민초들이 다니던 그 길은 흔적조차도 없다.
赤地峙는 임진왜란 때 공신 이경남이 그의 아버지를 업고 피난하다 이 고개에서 왜적을
만나 아버지를 살리려다 적의 칼에 쓰러지고 아버지도 죽으니 피가 고개를 붉게 적시었다
하여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초반부터 이런 길을 지나야 하는데 자꾸만 자신이 없어진다.
이쪽 사람들은 산에 대한 애정이 없는가 보다.
멋진 소나무도 보이고...
404봉(07:50)
옥전리 마을과 천치 저수지의 모습
존재산 끝자락 아래에 자리잡은 벌교읍 옥전리는 조그만 전형적인 산촌마을로서 원래는
천치리였는데 발음상 듣기가 거북하다하여 옥전리(玉田里)로 개명하였고 천치 저수지도
칠동 저수지라고 저수지 옆 입간판에 표시하여놨다.
희한한 나무도 만나고...
아직도 나무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숲속길을 헤매면서도 길에서 만나는 꼬리표는 왜이리 반가운지...
울님의 젖꼭지만큼이나 이쁜 진달래 봉오리
조금 내려오니 희미한 임도도 약간 보이기 시작하고...
보성군수 나으리! 그렇게 잘 관리한 보성군 관내의 호남정맥 1/10만 신경을
좀 써주시면 안될까요. 정말 힘이 드네요
최근 몇개월동안 산꾼이 다닌 흔적이란곤 전혀 보이질 않는다.
편백나무가 심어져있는 희미한 임도로 걸어내려 간다.
오리목 나무도 봄을 준비하고...
임도를 내려오니 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10m 정도 가다가
옥전리 내려가는 뚜렷한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길이없는 길로 접어드니
무명 묘지가 나타난다.
옥전리로 내려가는 뚜렸한 길에서 우측으로 접어들기 전에 저 넘어 존제산이
홀로가는 외로운 산꾼 범여를 빼꼼히 쳐다보고 있다.
지나온 360봉의 모습
웅장한 존재산의 모습
주릿재를 보듬은 존제산에는 우리들의 슬픈 역사가 있어 가슴 저림을 더 하게 한다.
사방이 산으로 싸이고, 다른 지역에 비해 교통마저 원활하지 못했던 이유 하나 때문에
빨치산들의 은신처가 되었던 탓으로 이 지역 사람들이 겪은 아픔의 생채기는 깊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 아픔이 존제산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고 할 것이다.
산은 고단함에 찌든 현대인들의 삶을 위안 받을 수 있는 그런 고마운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호젓한 산행을 즐겨한다. 어느 산길이건 상념에 젖지
않게 하리오만 존제산은 우리들에게 아예 그런 산행을 허락하지 않고 있기에 이 산에 배인
생채기를 어루만지기는 고사하고 보통의 상념에조차도 젖어볼 수가 없다.
소설〈태백산맥〉에서는 율어에 있던 염상진등이 이 존제산을 넘어 조성지서를 기습하는 장면과
신속하게 벌교에서 구원 출동한 심재모의 계엄군에의해 산으로 퇴각하는 것들이 그려지고 있고,
염상진이 벌교를 습격하는 틈을 타 심재모가 빨치산에는 없었던 통신장비를 이용해 보성경찰서장에게
텅 빈 율어의 빨치산 해방구를 기습하도록 명령함으로써 피아간에 1승씩을 나눠 가지던 장면이,
하대치가 고흥에서 암약할 밀명을 띠고 벌교의 칠동으로 내려가는 것 등등이 각각 묘사하는 것처럼
이 존제산은 벌교와 조성 그리고 율어는 물론 멀리 화순의 모후산과 백아산, 순천의 조계산으로까지
직접 이어지고 있기에 빨치산들이 교통과 통신이 불편했던 그 시절에 오래도록
지역 양민들을 괴롭혔던 것 같다.
호남정맥길에서 많이 만났던 편백나무 숲을 만난다.
측백나무 숲은 지나면서 오르막을 접어든다. ‘陽川 許公’ 묘지를 오르면서
서서히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고흥지맥의 맛을 본다.
겨우살이를 끝낸 蘭도 봄을 준비한다. 이곳은 인적이 끊긴 탓인지
지천으로 깔린게 난이다
양천 허씨 묘지부터 제대로 길이 보인다. 조금 치고 오르니 산성터인듯한'곳이
나타난다. 그런대도 아무런 표식이 없어 그냥 지나친다.
등로에서 바로본 득량만 [得粮灣]
만의 입구는 남서쪽으로 열려져 보성만과 연결되며 고흥군·보성군·장흥군 등의 일부지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양면 동쪽 연안에는 유인도인 우도(牛島)와 무인도인 각도섬·구룡도 등이 있다.
주변해안에는 넓은 간석지가 펼쳐지며, 특히 득량면 해평리와 대서면 남정리 연안에 득량만방조제를
쌓아 그 일대에 넓은 간척평야가 조성되었다. 만의 연안에서는 낙지·장어 등이 많이 잡히며,
김·미역·굴·피조개·키조개·바지락 등의 양식업이 활발하다. 또한 만의 남동쪽 용당해안은 물이 맑고
수심이 얕아서 예로부터 낚시터로 유명하다.
이 오지 산길에 미친 산꾼들이 지맥길을 이어가는게 눈물겹다
양천 허씨 묘지를 올라 능선을 조금지나 성터의 흔적인듯한 커다란 공터에서
허기가 져서 도저히 걸을수가 없다. 오늘은 귀경의 부담감이 없기에
천천히 가도 될것 같아 이곳에서 휴식을 겸한 간식을 먹는다.
쑥떡과 두유 한잔으로 허기를 면한다. 지난주에 여행으로 인해 산행을
못한 탓인지 몸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다.
거기다가 지난주 화욜 부주의로 엄지 손가락이 찢어져서 여덟바늘을 꿰맸고
거기다가 허리의 통증으로 물리치료를 받고 정형외과 약을 먹었더니 식욕이
떨어져 3일정도 식사를 못한게 원인이었던 모양이다. 20분정도 쉬고 다시 걷는다.
옥전리 뒤의 존제산 뒤로 뾰족하게 생긴 석거리재 위의 백이산과
그 너머 고동산과 금전산도 아련이 보인다. 참으로 민초들이 恨이 맺힌 산들이...
태봉(325.2m:09:15)
전남 보성군 조성면 축내리와 벌교읍 옥전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맞은편 존제산과 가야할 두방산과 봉두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늘 산행중 처음으로 셀카로 인증샷을 남긴다.
태봉 삼각점(순천 448 1986 재설)
가마봉(258m:09:20)
태봉에서 5분정도를 편한 길을 내려오니 ‘준.희’님이 가마봉이라고 쓴 표지판을
소나무에 걸어놨다.
소나무에 팻말 걸려있으나 봉같지 않은 둔덕이라 못보고 지나치기 쉬운곳이다.
옛날 장군이 말을 타고 행군하는 길터라하여 가마봉이라 부른다고 하였단다.
열가재까지는 편한 길을 내려간다.
이곳에 있는 묘지옆의 양지에는 날씨가 따뜻했는지 진달래가 만개했다.
나무사이로 내가 가야할 장군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니 머리가 상쾌하다.
열가재 가기전 좌측 능선은 벌목으로 인해 산이 민둥산으로 변했다.
가마봉에서 편한 내림길에 활짝핀 진달래가 외로운 산꾼을 반긴다.
조금 내려오니 포장임도가 나나타고 커다란 공터에는 생활 쓰레기가
어지럽게 버려져 있고 우측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커다란 조릿대밭이
나오고 도로위에는 우리 조상인듯한 慶州 金氏 묘지가 나타난다.
길을 계속 내려가니 공사중인 광양~목포간 도로가 길을 짤라버려
길이 없어져버렸다. 할 수 없이 다시 올라와 공터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니
열가재에 있는 S-OIL 주유소가 나타난다.
이 도로를 내려가다가 길이 없어져버려 다시 돌아와 열가재로 내려간다.
열가재(09:40)
전남 보성군 벌교읍과 조성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고개로 목포에서 부산을 잇는 2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2번국도위에 목포-광양고속도로 공사중이고 좌우측에 휴게소있다.
이곳에 있는 휴게소도 저 위로 고속도로가 생기면 금북정맥길에 있는차령고개나 차동고개처럼
폐허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만 하다.투자한 금액이 꽤나 될터인데 말이다.
열가재란 이 지역에 열녀가 많이 나왔다고 해서 열가치 또는 열갓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열가재 - 벌교쪽의 모습
열가재 - 조성면쪽의 모습
저 위로 잠시후에 개통될 고속도로가 고흥지맥길을 완전히
짤라버려 고흥지맥은 맹지(盲地)가 되어 버렸다. 참으로 개념없는 인간들...
하는 수 없이 차량의 흐름을 파악하고 화물차 가는 뒷쪽에 낮은 중앙 분리대를
넘어 도로를 건너 100여m 조성쪽으로 걸어가서 좌측 산으로 오른다.
새로 생기는 광양~목포간 고속도로
이 넘의 도로가 고흥지맥을 완전히 망가트려놨다.
kt 송신소(09:55)
열가재 S.K 주유소를 끼고 임도를 따라 오르니 kt 송신소 벌교중계소가 나오고
다시 조금 지나니 또다시 송신소 하나가 더 나타난다 . 중계소를 지나 계속해서
편안한 임도를 따라 걷다가 좌측 임도를 계속 진행한다.
조성면 소재지 너머 보성차밭이 있는쪽에 도강재 있는 곳이다.
도 강재 대장은 잠수함을 타러 갔는지 요즘 코빼기도 보기 힘드네...
그 너머 장흥이 고향인 하양님도 잘 계시는지... 두루두루 궁금하다.
계속해서 편안한 임도를 진행한다.
호화로운 경주김씨 가족묘지를 지나고...
경주 김씨 가족묘지를 지나 조금만 길이 보이고...
태봉 오르기 전 양천 허씨 묘지에서 이곳까지의 길은 참으로 편했다.
편한길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고단하고 힘든 고흥지맥길이 시작된다.
도대체 길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만 넋을 놓으면 그냥 알바하기 쉬운 곳이다.
장군봉(將軍峰:412.7m:10:40)
전남 보성군 벌교읍 마동리와 조성면 신월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송장고개가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송모(宋某)장군이 왜적을 맞아 싸웠다고 하여 송장군 고개 또는 송장고개라 부른다하고
경전선이 지나는 굴을 송장굴(宋將窟),좀 전에 지나온 가마봉이 옛날 장군이 말을 타고 행군하는
길터라하여 가마봉이라 부른다는것등을 종합하여 볼때 이 장군봉도 송장군에서 연유되지 않았을까 유추해본다.
장군봉 삼각점(순천 318)
암릉을 타고 장군봉에 올라 우측으로 꺽어진다. 가시덤불길을 헤치니 좋은 길이 나타난다.
장군봉에서 내려서니 이렇게 좁은 소로가 걷기 편하게 나타난다.
조금 내려오니 묵은 묘지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길이 좋은 곳으로 따르지
말고 좌측으로 떨어진 지점 안부에서 우측으로 꺽어 100여m 정도를 진행
하다가 다시 좌측으로 진행하면 송장굴이 나온다 (알바주의)
저 멀리 고흥지맥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봉두산이 보인다.
저 산 아래에 범여의 처갓집이 있고 장인 묘소도 그 아래에 있다.
봉두산(430m)은 보성군 조성면과 고흥군 대서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봉황이 큰 날개를 활짝 펼치고 비상하려는 듯 산의 모습이
마치 봉황의 머리와 같다고하여 봉두산(鳳頭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송장굴(宋將窟:11:00)
보성군 조성면 은곡리와 고흥군 동강면 마동마을 잇는 고개로 희미한 등로만
보이고 우측에는 성황당 흔적인듯한 돌무덤이 보인다.
이 굴 아래로는 경남 밀양시 삼랑진에서 광주 송정역을 있는 경전선(慶全線)이 지나간다.
점심시간(11:05~15)
아침을 새벽 6시에 먹은 탓인지 일찍히 배가 고프다.
송장굴을 지나니 소형 차량이 다닐정도의 넓은 도로가 나타난다.
바람을 피해 양지 바른곳에서 컵라면에다 과일 쥬스와 과일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설 채비를 한다.
임도에서 좌측 등로를 타고 산으로 접어든다. 이 길로 계속가면 봉두산 아래
마치고개가 나타나는 임도이다.
285봉의 모습
배가 부른 탓인지 산에 오르기가 힘이든다. 고도는 낮지만 오늘 처음으로
급경사의 오르막을 맞는 느낌이다.이곳은 전남 보성군 조성면과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이 만나는 3면 경계봉이다. 이곳을 깃점으로 여태껏
같이 고흥정맥길을 같이 해온 보성군 조성면과 벌교읍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이제 완전히 고흥군으로 접어든다. 우측으론 고흥군 대서면과 좌측으로 동강면이
힘든 여정을 같이 한다.
흐드르지게 피어있는 저 진달래는 어느 님을 기다리시나?
開花를 준비하고...
보성군 조성면 은곡리의 모습
벌교읍 마동리의 모습
285봉 오름길 아래에 있는 마동마을의 모습 뒤로 저 멀리 벌교읍내 뒤에 있는
백이산과 오봉산, 그리고 금전산이 아련히 보인다.
송장고개(11:40)
전남 보성군 조성면과 벌교읍 사이에 있는 고개로 임진왜란 때에
이곳에서 송모(宋某)장군이 왜적을 맞아 싸웠다고하여 송장군고개
또는 송장고개라고 부르며 왜적과의 싸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시체가 쌓였으므로 송장치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285봉에 올라서 좌측 두방산쪽으로 조그만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만난곳이
두방산, 병풍산 갈림길이다.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길은 갈만하다.
두방산, 병풍산 갈림길(11:55)
송장고개에서 올라서니 두방산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고흥지맥길은
우측으로 90도 꺽어져 진행을 한다. 두방산 가는 길은 길이 아주좋고 편하지만
고흥지맥길은 길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힘이든다. 마치 데리고 온 자식처럼...
355봉에서 바라본 두방산(斗傍山:489m)의 모습
전남 고흥군 동강면에 위치한 산으로 이 산 어디에 말의 명당자리가 있다고 해서
말봉산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옛날에 이 산에 귀절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귀절산이라고도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송득운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서산이라고도 불렀으며
호남정맥에서 가지를 친 고흥지맥이 태봉과 장군봉을 지나면서 동쪽으로 두방산, 병풍산
비조암, 첨산의 산줄기를 내려놓고 고흥으로 향한다.
아예 길이없다. 거기에다 간벌을 한 나무들을 보이지도 않는 등로에다
쌓아놓아 걷기가 불편한게 이만 저만이 아니다. 길이 나빠서 걷지 못하는게
아니라 나무 때문에 걷지를 못하겠다. 시간당 2.5km 걷기가 힘이 들 정도이다.
조금 지나가니 산판 임도가 나타난다.
서서히 고흥 앞바다가 시야에 들어오고...
흔히들 고흥하면 기억나는 것이 옛부터 장수들과 힘센 장사들을
많이 배출하는 곳이다. 특히 임진왜란 때 노량해전에서 이 순신 장군이
왜군의 총에 맞아 쓰러졌을 때 이 순신 장군 대신 갑옷을 입고 거북선을
이끌고 승리를 일궈낸 송 희립 장군과 송대립 장군을 비롯해 수 많은 장수들과
그리고 70년대의 어려운 이 시대에 서민들에게 삶의 희망을 선사한 박치기왕
김일 선수와 권투선수 유재두, 박종팔 등이 이곳 고흥 출신이다.
산판도로가 나타나더니 이내 끝나버리고...
다시 잡목과의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 고행길이 시작된다.
이것도 수행의 일부분인가?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즐겁게 가자
303봉(12:35)
이곳까지는 겨우겨우 길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고흥지맥길을 이어왔건만
여기서부터는 길이 보이질 않는다. 여기도 사람들이 간벌을 했건만
이 지역 사람들의 고약한 심술(?)로 자른 나무를 모두다 희미한 등로에다
쌓아둔 덕분에 도저히 길을 걸을 수가 없다. 거기다가 우측의 뚜렸한 등로에도
시그널이 있고 좌측으로 길이 전혀 보이질 않는곳도 시그널이 많이 달려있다.
그리고 이곳은 한라산 중턱에나 볼 수 있는 넝쿨식물들이 산 전체에 널려있어
걸을 수가 없다. 하긴 이곳 고흥은 서서히 제주도와 비슷한 아열대 기후로 변하는
느낌이다. 이곳은 한라봉도 생산되고, 유자와 바나나, 키위 등이 많이 생산되는 걸 보면...
선답자들의 시그널 중에서도 광주 문규한님의 시그널이 있는 좌측 능선을
향하는데 도무지 진행을 할 수가 없다. 베낭위는 잡목들이 잡아 당기고
등산화 아래는 썩어서 넘어진 나무와 넝쿨 식물들이 태클을 거는 바람에
도저히 길을 걸을 수가 없다. 나보고 가란 말인지? 가지말란 얘긴지...
이곳은 나홀로 산행이 참으로 힘이든다. 조그만 정신을 놓으면 그냥
길을 놓치기 일쑤인 곳이다. 거기다가 위의 그림처럼 정리 안된 길이
홀로가는 산꾼을 정말 괴롭힌다. 그래도 가야한다.
왜냐고... 내가 좋아하는 산이니까...몇년전 ‘제빵왕 김 탁구’란 드라마에
나온 대사가 생각이 난다.
‘머리 좋은 놈이 노력하는 놈 못이기고 노력하는 놈이 즐기는 놈 못이긴다’ 라는
대사... 그래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 산. 즐기면서 산행을 하자.
291봉(13:05)
전남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 원등마을 뒤에있는 봉우리다.
잡목과 넝쿨식물과의 사투를 벌이면서 우연곡절 끝에 291봉에 도착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우측으로 꺽어져 원등재를
끼고 30번 철탑을 따라 원등마을로 향했다는데 아무래도 이곳보다는 좌측으로
가서 능선 줄기를 따라 내려 오는게 맞질 않나 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그쪽으로 간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보이지만 길은 전혀없다.
산경표를 따라 간다는게 참으로 힘이든다. 능선 아래로 내려오니 묵묘들이
꽤나 보이고 이곳을 계속 내려오다가 측백나무 숲이 있는 우측으로 꺽여져서
송전탑 쪽으로 내려오지만 이곳은 정확한 지맥길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반가운 시그널을 따라 내려오지만 이 분들도 정확한 길인지 아닌지
하는 생각은 아마 범여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시원하게 조망되는 고흥앞바다
우리나라 최남단인 고흥은 8品 9味 10景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 8品은...
1品: 유자감기와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과를 지닌 유자는, 차로 만들어 마시면 식이섬유와 비타민C의 함유량이 더욱 높아서 좋다. 특히, 비타민C는 유자차 100g당 150㎎ 이상을 함유하고 있어 레몬이나 네이블오렌지 보다 3배 이상 많다.
2品석류열매와 껍질 모두 고혈압·동맥경화 예방에 좋으며, 부인병·부스럼에 효과가 있다. 특히 이질이 걸렸을 때 약효가 뛰어나고, 휘발성 알칼로이드가 들어 있어 기생충, 특히 촌충 구제약으로 쓴다. 과즙은 빛깔이 고와 과일주를 담그거나 농축과즙을 만들어 음료나 과자를 만드는 데 쓴다. 올리브유와 섞어 변비에 좋은 오일을 만들기도 한다.
3品: 해미, 수미
고흥 해창만 간척지에서 생산한 쌀입니다. 청정한 토질에서 깨끗한 물,맑은
공기로 생산하고 밥맛이 담백하고 윤기와 찰기가 흐르는 쌀입니다.
4品: 마늘
마늘은 항균·항암·소염작용이 뛰어나고 비위를 따뜻하게 해 주는 식품이다.
소화를 돕고 남성에게는 정력을 보강해 주기도 하여 대체의학 식품으로 많이 이용된다.
또한 마늘에는 단백질과 지방·탄수화물·카로틴·비타민 등 매우 다양한 영양소가 들어
있어 음식을 만드는 양념으로 많이 사용된다.
5品: 참다래
비타민 C가 풍부하여 성인 1명이 하루에 필요한 양이 열매 1개에 충분히 들어 있다
6品: 꼬막
꼬막은 조개과에 속하며 조간대부터 수심 10m까지의 진흙바다에서 살며, 오염된 바다에서는 살수가 없어
바다 청정도의 척도가 되는 해산물이다. 꼬막에는 헤모글로빈 및 비타민B, 철분, 코발트 성분이 들어있어,
빈혈, 현기증에 좋은 효과가 있다. 또한 타우린과 베타인 등의 성분이 들어있어 간의 독성을 해독하는
기능이 있으며 숙취해소에도 좋은 식품이다.
7品: 미역
전복·소라의 주요 먹이이며 주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서만 식용으로 이용된다.
식이섬유와 칼륨, 칼슘, 요오드 등이 풍부하여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산후조리, 변비.
비만 예방, 철분.칼슘 보충에 탁월하여 일찍부터 애용되어 왔다.
8品:유자골 한우
부드러운 육질과 풍부한 육즙으로 감칠맛나는 진짜 우리 한우입니다.
대한반도 최남단 천혜의 고장 최첨단 우주항공산업과 함께 자연 그대로를 최우선하여 사육한 진짜 우리 한우이다
능선에서 바라본 원등마을(전남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 소재)
마을 뒤의 묘지에 서니 평화로운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서 30번 송전탑을 끼고 내려가 마을 포장도로로 들어선다.
원등마을은 옛 태강현의 근처에 위치한 마을로 종계산의 한 줄기를 고흥반도를
형성한 원맥이 始發한 곳으로 부근에 원(院)이 있었으면 마을이 등성이에 있다하여
원등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아마 이 院을 지칭한 것은 이 마을에서 우측으로
300m 정도 떨어진 임진왜란때 수훈을 세운 송희립 장군을 모신 제동서원이
있어 그렇게 부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범여의 생각中에서)
애매한 능선을 타고 내려와 원등마을로 접어드는 포장도로를 내려온다.
山經表에는 원등마을로 내려오는게 아니다. 그런데 그 쪽은 길이없다
원등마을에 피어있는 매화
마을 한 가운데를 지나서 계속 내려온다.
원등마을(13:45)
전남 고흥군 동강면과 대서면을 잇는 20번 고흥군도가 지나는 곳으로 예전에
참 많이도 다닌 길이다. 범여의 처갓집이 이곳에서 자동차로 5분거리에 있다.
원등마을 앞에 있는 보리밭
저 보리밭 뒤에 보이는 비닐하우스 있는쪽에 제동서원이 있다.
축내마을 버스 정류장(13:55)
원등마을에서 대서면과 조성방향으로 걸어서 10분정도 오니 축내마을
이정석과 버스 정류소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허기가 져 초코파이 한개와
커피 한잔을 마시고 우측 89.3봉은 선답자들의 후기대로 생략하고 축내마을로
향한다. 축내마을도 예전에는 이곳이 조성들녁처럼 이곳도 바다였던 모양이다.
축내마을은 이곳에 방죽을 축조하여 속칭 방죽안이라 불리워오다가 일제시대에
연축내(蓮築內)로 개칭하였으나 1947년에 마을이름을 축내(築內)라 칭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고 한다. 대충 어림잡아 20가구정도 되는가 싶다.
축내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우측 89.3봉으로 올라서서 좌측의 축내마을을
끼고 삥돌아서 축내마을 뒤 고개너머로 오르니 농약을 뿌리는 작업을
하는터라 농약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니 불편하기 그지없다.
얼른 이곳을 빠져나오니 나즈막한 숲속을 지나니 호화묘지群이 나타난다.
축내마을 고개에서 바라본 축내마을과 원등마을 뒷산
저 뒤로 악전고투 끝에 지나온 303봉과 291봉이 보인다.
원등마을 뒤로 뾰족하게 생긴 고흥의 초입에 있는 첨산(尖山)의 모습
이곳은 통정대부를 지내신 창원 박씨의 호화로운 기족묘를 만난다.
이곳 고흥은 여산 송씨와, 신씨, 류씨들이 묘지들이 참 많이 보인다.
축내마을을 넘어가는 도로에는 쓰레기를 무단투기하지 말라는
고흥군수의 표지판이 붙어있고 좌측의 감나무밭을 끼고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데 이곳도 길찾기가 장난이 아니다. 이젠 자꾸 지치기 시작한다.
조금 오르니 여산(礪山) 宋氏 가족묘지 끝의 조그만 길을 올라서니 이곳부터
넝쿨식물이 땅바닥에 지천으로 깔려있다. 조금지나니 촘촘하게 심어진 측백나무
숲을 만나고... 꼬리표도 보이지 않고 낮은 동네 뒷산길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산딸기 나무와 잡풀들이 3년밖에 안된 베낭을 다 집어뜯어서 여기저기
상처가 많이났다. 나즈막한 산에 난이도가 높아서 힘든게 아니라 장애물
때문에 너무나 힘이든다.
정리가 안되어 있는 측백나무 숲을 지나니 좌측으로 성안마을(고흥군 동강면 소재)이
빼꼼히 보이면 산꾼을 반겨준다.
가뭄에 콩나듯이 하나씩 보이는 시그널이 이정표 역할을 하긴 하지만
이 꼬리표를 이곳 고흥지맥길에는 너무 맹신하여도 안될듯 싶다.
의외로 엉뚱한 곳에 붙여놓아 후답자들의 혼란을 주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조금 이상하면 필히 지도를 확인하시고 이동하는게 좋을듯 싶다.
가드릿재(14:40)
전남 고흥군 동강면 유둔리와 대서면 상남리를 연결하는 2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우측에 커다란 목장인듯한 건물이 보인다.
가드릿재를 올라서니 좌측 농장에 있는 두릅나무에 순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한다. 봄이 오긴오는 모양이다.
조금 올라와서 85봉을 만난다. 이곳도 넝쿨식물과 가시덤불로 인해
길은 미로처럼 찿기가 힘이든다. 산을 타면서 오늘처럼 힘들어 본적은 처음이다.
조금 내려오다가 좌측으로 빠지니 커다란 조릿대(산죽)가 나타나고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레 건너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산아래 마을인 온동마을이 빼꼼히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능선에서 좌측으로 내려오니 문화 류씨의 가족묘가 보이고
묘지 아래에는 밭과 대나무숲이 나타난다. 밭에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다.
문화 류씨의 가족묘를 지나고...
문화 류씨의 묘지를 지나 탱자나무 숲을 지나니 상남리 금곡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고개 옆에는 효열부 김녕 김씨의 커다란 비석이 서있다.
이 지역도 마늘이 유명한 지 논,밭에는 온 천지가 마늘밭이다.
금곡고개를 지나니 좌측에 커다란 파란색 지붕의 축사가 있고 그 뒤로는 커다란
태영열 집열판이 모여있는 밭이 있다. 아직은 1시간은 더 가야하는데 먹을것이란곤
아무것도 없고 자유시간이란 초코바 하나 뿐이다. 더군더나 식수가 떨어져서 하는 수
없이 도로를 타고걸어 내려와서 식수를 구하려고 온동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에 있는 교회에 접어드니 40대 중반여인이 자동차를 정리하다
교회에서 물을 갖다준다. 식수통에 물을 채우고 커다란 컵으로 물을
한 컵 먹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삼봉으로 향한다.
온동마을 버스 정류장(15:30)
지맥길에서 벗어난 길을 다시 원대복귀하여 SK 송신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온동마을 앞에는 커다란 감나무 단지가 들어서 있다.
온동재를 돌아 임도에 오르니 통정량 벼슬을 지낸 청주 양씨 묘소가
자리를 잡고있고 다시 능선을 올라서다 내려서니 S.K 동강 기지국이 나타난다.
삼봉 가는길에서 바라본 온동마을
이 마을 지명의 유래는 마을 주위가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쌓여 있어
사시사철 기후가 온화하여 온동(溫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S.K 고흥군 동강 기지국(15:45)
삼봉(三峰: 107.2m:15:55)과 삼각점
고흥군 동강면 유둔리와 대서면 상남리, 그리고 남양면 침교리의
경계 능선에 위치한 삼면봉이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정리되지 않은
등로로 인하여 상당히 힘이 든다.
삼봉에서 내리막길을 내려온다. 여기도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겨우겨우 길을 찿아 내려오니 범여가 가장 싫어하는 채석장이
턱 버티고 지맥길을 파먹고 있다. 언제 이 꼬라지 안볼라나...
산을 타지 말아야 안보겠지... 아예 지맥길을 두동강으로 짤라 버렸다.
고흥지맥을 완전히 끊어버린 채석장
파먹을만큼 파먹었으면 최소한의 예의로 脈길이라도 이어놨으면
좋으련만... 그런 개념이 없는가 보다... 하긴 바라는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지.
선답자들은 이곳에서 채석장 위에 있는 92봉을 무시하고 도로를 내려 갔지만
범여는 약이 올라서도 악착같이 92봉을 올라선다. 그래도 가야할 길이기에...
채석장의 위험한 절개지를 지나 올라서니 산성의 흔적인듯한 돌담이
보이고 좌측으로 동강면소재지 너머로 첨산이 보인다.
고흥을 지키는 수문장 첨산(尖山)
사람들은 순천시 별량면 동송리에 있는 첨산(295m)을 암(♀)첨산, 고흥군 동강면에
있는 첨산을 숫(♂)첨산(313m)이라고 부른다.
별량면에 암첨산은 옛부터 국가에 큰 변란이 있기전에 사람들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곡성이 난다고 전해지며 여순반란사건, 6.25동란,80년 5.18때도 이같은 소리가 났다고 한다.
조정래의“태백산맥”에 인용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하고 신성한 산으로
각인 되어 왔으며 1597년(선조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막하에서 활약하였던 송대립(宋大立) 장군(여산 송씨)이
의병을 모집하여 분전하다가 순절하였던 곳이 또한 첨산이다
첨산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은 김범우의 눈을 통해 거대한 세모뿔과 필봉,
또는 신비로운 산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고흥의 수문장처럼 문턱에
자리잡아 주민들은 신성시하고 함부로 오르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 산으로
그런 산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도 아름다운일 거라고 표현했다.
또한 첨산은 정유재란에는 임진왜란때 이충무공의 막하로 활동했던
송대립장군이 의병을 모아 분전하다가 순절한 곳이다.
김범우는 순천행 기차를 기다리며 첨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첨봉산 이라고 부르는 그 산은 언제 보아도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 기이한 생김도 생김인 데다가 자리잡고 앉은
위치까지 특별해서 생겨나는 신비로움일 것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첨산은 거대한 세모뿔이었다.
산은 으레 줄기가 있게 마련이고, 그 줄기를 따라 크고 작은 봉우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첨산은 그렇지가 않았다. 양쪽에 아무 줄기도 거느림이 없이 혼자 우뚝 솟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과 경계를 짓고 있는 양쪽 능선은 흡사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직선으로
뻗어올라 봉우리에서 만나고 있었다.
첨산이 그런 생김일 뿐이었다면 신비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조물주는 직선의 단조로움을 파괴하여 조화를 이루고 싶었음일까,
직선으로 뻗어오르던 양쪽 능선이 거의
봉우리 가까이에 난해한 곡선으로 다시 정상까지는 직선으로 맞닿고 있었다.
바로 그 부분 때문에 첨산의 신비로움은 잉태되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삿갓을 쓰고 있는 형상이었다.
그런 단정하고도 기이한 모습의 첨산은 자리를 잡아도 하필이면
뱀골재 너머에 바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지형적으로 보아 뱀골재는 어찌할 수 없이 벌교와 고흥반도의 경계였다.
그러므로 첨산은 고흥의 문턱에 자리를 잡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고흥 사람들은 첨산을 고흥을 지키는 수문장이라고 믿고 있었고,
벌교 사람들은 어디서나 그 기이하게 우뚝 솟아 있는 산
을 바라보면서 고흥 사람들의 말을 수긍했다.
고흥 사람들은 그 산을 신성시해서 함부로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김범우는 자신도 첨산을 한번도 올라본 일이 없음을 상기하며 엷게 웃음지었다.
주위에 둘러쳐진 제석산이며 징광산 같은 이미 국민학교 때 오르내렸고,
멀리 있는 조계산이나 지리산까지도 다 올라봤던 것이다.
그런데 한나절 거리밖에 안되는 첨산은 왜 오르지 않았을까.
아마 '함부로 오르지 않는다' 는 금기 때문이었으리다.
오르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 산, 그런 산을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리라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바라보니 첨산이 더 신비스럽게 다가드는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 조정래 소설『태백산맥』중에서
고흥군 남양면 앞바다
고흥 9味란...
1味: 참장어(회, 샤브샤브)
참장어(하모)는 남해안 일부지역에서 한정 생산되는 수산물로, 콜레스테롤이 적으면서 최고의 영양과 담백한 맛을 낸다.
참장어회는 장어의 내장과 머리를 제거한 다음 회칼로 잘게 썰어서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에 찍어 야채나 양파 등과
곁들여 먹으면 고소하고 단맛이 그야말로 별미다. 고흥에 와서 장어요리 한 번 맛보고 가지 않으면 후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름철 스테미너 식품으로 각광을 받는다.
2味: 낙지
고흥에서 나는 꽃낙지는 수심 20m 이내에서 서식하면서 가느다란 발과 함께 몸에 꽃무늬가 있으며 작아서
한 입에 쏙 넣을 수 있다. 매년 4~5월경에 녹동항을 근거지 항으로 한 금산 앞바다, 나로도, 초도, 거문도
해상에서 집중적으로 잡힌다. 봄철에 고흥반도에 오면 이 꽃낙지를 실컷 맛볼 수 있다.
특히, 매운탕처럼 끓여서 그 맛이 시원한 낙지연포탕과 낙지를 살짝 익혀 양념하여 볶아
먹는 연포구이는 산 낙지를 먹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나 여자들이 즐겨 찾는 메뉴이다.
3味: 삼치(회, 구이)
삼치는 청정해역 거문도와 나로도 근해가 주어장이다. 삼치는 맛이 부드럽고 영양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건강식으로도 좋으며 특히 지방함량이 높은편이나 불포화지방산이기 때문에 동맥경화, 뇌졸증, 심장병 예방에 도움이된다.
나로도는 채낚기어업에 의한 재래식 방식으로 삼치를 잡고 있는데, 삼치의 부드럽고 고소한 그 맛이 일품이다.
가을철 나로도 수협 위판장에 가보면 갓 잡아 올린 삼치를 사기위해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4味: 전어
고흥반도 남해바다, 여자만, 득량만 할 것 없이 가을이면 전어가 풍년이다. 전어는 가을에 지방질이 다른 철에 비해 최고
3배나 더 많아 그 고소한 맛이 절정에 달하며 특히, 전남 남해안지역에서 잡히는 전어는 맛이 최고다. 전어는 주로 회로
쌈을 싸먹거나 얼큰한 양념에 무쳐먹거나, 구이로 먹는데 회로 먹을 때는 비늘만 벗긴 뒤 뼈째로 회를 썰어 된장과
고추, 마늘을 곁들여 상추쌈을 싸서 먹는데 씹을수록 고소해지는 뒷맛이 깊고 은은하다
5味: 서대
봄철 나로도에는 산란을 위해 난류를 타고 회유해온 서대가 많이 잡힌다. 서대회는 막걸리 식초에 매콤하게
양념해서 무치는데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또한 서대를 미역국에 넣어서 국을 끓여 먹거나, 말려서
쪼들쪼들 해지면 구워 먹을 수 있는데 그 맛 또한 정말 맛있다
6味: 굴(생굴, 굴구이, 어리굴젓)
굴의 주 생산지인 고흥에서 나오는 굴로 젓을 담은 어리굴젓을 이곳에서는 진석화젓이라고 부르는데, 이른 봄에 굴에
소금을 넣고 버무려 1년 이상 밀봉하여 발효시킨 곰삭은 굴젓을 자연에서 난 온갖 양념에 버무려서 내놓는 젓갈이다.
고흥의 진석화젓을 뜨거운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시원하고 독특한 굴향기와 함께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어 일품이다.
7味: 매생이
겨울철 입맛이 없을 때 매생이 한 사발 먹으면 밥맛이 돋아난다고 할 정도로 매생이는 유명한 해조식품(海藻食品)이다.
남도의 청정해역에서 겨울에만 채취되는 무공해 해조류인 매생이는 철분, 칼륨, 요오드 등 각종 무기염류와 비타민A, C등
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어린이 성장발육 촉진 및 골다공증 예방에 효능이 있다. 또한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을 예방하고
진정시키는 효과가 뛰어나 술 마실 때 안주로도 좋고, 술 마신 후 숙취해소용으로도 좋다.
8味: 유자향주
유자향주는 3년간 발효시킨 유자액 및 각종 한약제(5종)를 섞어서 마지막 발효공정에 투입하여 만든 제품으로,
일반 탁주와는 달리 부드럽고 단맛이 강하면서 뒤끝 또한 깨끗하다. 유자술은 예부터 기관지염, 천식, 기침 등과
같은 호흡기 질환을 다스리거나 위 속의 악취를 제거하는 약술로 여겨져 왔다. 풍양면 야막리의 풍양주조장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유자향이 은은히 배어나오는 몸에 좋은 술을 맛볼 수 있다
9味: 붕장어(아나고)
고흥산 붕장어는 청정해역에서 서식하고 사시사철 대량으로 잡히며, 장어류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은 싸다.
붕장어는 주로 소금구이와 양념구이를 해서 먹는다. 즉석에서 잡은 붕장어에 소금을 뿌려 숯불에 구운 다음 양념장을
찍어 먹으면 붕장어 살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또한 양념을 발라 숯불에 굽게 되면 양념이
살에 베어 그 향이 더욱 깊다.
92봉(16:10)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92봉은 채석장으로 인해 산의 형태를 잊어 버렸다.
다음구간에 가야할 혼백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 산을 언제 가야할 지....
92봉을 내려오니 묘지옆에 있는 개나리가 다소곳이 피어있다.
참으로 이쁘게... 조금 더 내려오니 비포장 농로가 나온다.
고흥 10景이란...
1景: 구름도 쉬어가는 팔영산 팔봉
세수대야에 비친 여덟봉우리를 찾아 먼길을 달려온 위왕!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 - 유영봉, 성주봉, 생황봉,
사자봉, 오로봉,두류봉, 칠성봉, 적취봉. 옛날 중국의 위왕이 세수를 하다가 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에
감탄하여 신하들에게 찾게 하였으나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어 우리나라까지 오게 되었는데, 왕이 몸소
이 산을 찾아와 제를 올리고 팔영산이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2景: 아픔을 딛고 다시 도약하는 섬 소록도
사슴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산다고 이야기되는 곳! 소록도는 고흥반도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km가
채 안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닮았다고 하여 소록도라 불리운다.
섬의 면적은 15만평 정도로 작지만 깨끗한 자연 환경과 해안 절경, 역사적 기념물 등으로 인해
고흥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3景: 바다를 메워 새로운 땅으로 거듭난 고흥만
고흥만 방조제, 경비행장, 항공센터가 한곳에! 1991년 착공한 고흥만 간척사업은 3천 100㏊의 바다를 매립
2005년 말 1천 700여㏊가 농경지로 탈바꿈 되었고, 2006년 말에는 내부개답이 완공 되었다.
간척지 내부에는 전국 최초의 경비행장(52×1,100m)과 항공센터를 건설 중에 있으며 또한 고흥만
방조제는 길이 2.8㎞로 확 트인 바다를 조망하면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코스이며
낚시터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4景:기암절벽이 금강산을 그대로 옮긴 듯 한 나로도 해상경관
수려한 경치가 바다와 어울려 절정을 이루는 곳! 나로도의 아름다운 해상경관을 구경하기 위해 유람선을
타면 나로도항에서 출발해 섬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다시 나로도항으로 돌아온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외나로도의 해안은 땅에서 보는 것과는 젼혀 다른 느낌으로 기암절벽의 연속이다. 꼭두녀, 마침머리, 용굴,
부처바위, 우주센터 전경, 쌍굴 등 해안절경의 파노라마가 이어진다
5景: 금탑사를 안고 세월을 견뎌 온 비자나무숲
철쭉과 억새물결이는 천등산의 품에 비자나무숲이~ 천등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비자나무숲은 금탑사 주위 13ha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에 3,300여주가 군생하고 있는 희귀 천연기념물이다.
주변에는 율곡 이이의 부친이 호환(虎患)이 두려워 심었다는 나도밤나무가 있다. 금탑사를 둘러싸고 있는
비자나무숲은 사찰 창건 후 300~400년이 지난 1700년 이후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며 30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민족의 역사를 굽어보고 있다.
6景: 승천의 꿈을 품에 안은 영남 龍바위
자녀들을 위해 부모들이 공을 드려 등용문 구실을 하고 있는 용바위! 영남면 우천리 용암마을 해변에 위치해있는
용바위는 반석과 암벽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먼 옛날 남해바다의 해룡이 하늘로 승천할때 이곳 암벽을 타고
기어 올라갔다 하는 전설이 있는데 그 자국이 너무도 뚜렷하게 남아있어 보는이로 하여금 신기함을 자아내게 한다.
주변이 넓은 반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단체나 가족단위 나들이 장소로 좋으며 주변 전체가 갯바위 낚시터로도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어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곳이다.
7景: 시원한 바다가 한눈에~금산 해안경관
빼어난 절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거금도 금산! 거금도 즉, 금산면에서 바라보는 해안 절경은 단연 으뜸이다.
국도를 따라 오천쪽으로 도로를 따라 달리다보면 오른 편으로 다도해의 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차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부아도, 준도, 시산도, 초도, 손죽도, 거문도, 장도, 원도, 황제도… 섬 섬 섬들. 행운이 좋아 바다
위에 뭉게구름이라도 곁들어지면 그 어떤 천하의 산수도 부럽지 않다.
8景: 꽃보다 아름다운 마복산 기암절경
이름도 다양한 수많은 바위들이 옹기종기 서있는 마복산 마복산의 산등성이에는 수많은 지릉이 흘러내리고
그 지릉마다 바위꽃이 활짝 피어 있어 마치 금강산이나 설악산의 축소판을 보는 듯 하다. 물개바위,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은 경관 때문에 마복산은 소개골산(小皆骨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9景: 아침을 여는 해돋이의 명소 남열리 일출
철썩 철썩 쏴~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일출을 볼 수 있는곳! 남열리 일출은 드넓은 백사장에서 해돋이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을 지닌 곳이다. 수평선 저 너머에 떠오르는 일출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해돋이를 기다리는 동안 남열리 마을에서 석화 뎅이굴을 장작불에 구워 먹는 재미도 솔솔하다.
매년 1월1일 남열 해수욕장에서 새해 해맞이 행사를 개최 한다.
10景: 사라지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중산 일몰
고흥을 관광하다 해질녁에 잠시 남양면 중산리에서 발길을 멈추면 한낮의 빛을 잃고 사그러져가는 멋진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고흥반도를 돌아나오는 날 내내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은 아마도 중산리 일몰의 잔잔한
여운이 많이 남아서일 것이다
농로 옆에는 태양열 집열판이 보이고 마늘밭을 보면서 산행 종료를 준비한다.
마늘밭을 지나서 도로를 타고 탄포 삼거리를 향한다.
탄포 삼거리(16:20)
고흥군 동강면과 남양면, 대서면의 경계에 있는 삼거리로 15번과 27번
도로가 지나가는 곳이다. 예전엔 고흥으로 통하는 유일한 외통수 도로이다.
지금은 나로도 우주 항공센터 등이 생기면서 그 영화를 새로 생긴 신도로에
넘겨주고 추억만 간직한 체 한가한 시골길이 되어 버렸다.
범여가 30여년전에 처갓집가다가 이곳 검문소에서 차량 트렁크까지 검문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곳은 남해안 지역으로 예전에 간첩들이 이 지역으로
가장 많이 침투하는 루트가 이곳이라 검문, 검색이 엄청나게 심했다고 한다.
지금은 검문소는 텅비어 있다.
이곳에 9시간 20분의 힘든 여정을 끝내고 산행을 끝낸다.
꿰맨 엄지 손가락은 통증이 너무 심하게 아프고 허리는 너무 아파
끊어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한 구간을 끝냈다는 뿌듯함에 택시를
타고 처갓집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G.P.S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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