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산 적멸보궁 법흥사 법흥사는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獅子山)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사자산 법흥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나라의 흥륭과 백성의 편안함을 도모하기위해 643년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사자산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興寧寺)로 창건했다. 중국 선종의 중흥조인 마조도일 선사로부터 선(禪)을 전수받았던 신라의 선승 도윤칠감국사의 제자 징효절중(澄曉折中)이 886년 이곳에 선문을 여니 이것이 바로 라말여초 구산선문 중 하나였던 사자산문(獅子山門)이다. 1163년 고려 의종 때 다시 중창하였으며, 1730년 조선 영조 6년, 1778년 조선 정조2년, 1845년 조선 헌종 11년까지 역사의 부침속에서도 소실과 중창을 반복하며 그 맥을 이어왔다. 그 후 폐사지에 가까웠던 흥녕사가 1902년 대원각스님에 의해 법흥사로 개칭되고 재건되었다. 1912년 또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933년 지금의 터로 적멸보궁을 이전 중수하였다. 1991년 삼보스님이 적멸보궁을 다시 증축하였고 1999년 도완스님때에 이르러 법흥사 전모를 혁신하는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원음루 (圓音樓) 최근에 지근 건물로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앞면에 원음루(圓音樓), 금강문(金剛門) 등 두 점의 편액이 걸려 있으며, 2층에 법고와 목어가 있다. 범종각 징효국사 탑(澄曉國師 塔) 징효대사 부도는 강원도 지정유형문화재 제72호다. 하대석의 구성과 안상 및 복연, 귀꽃 등 각 부분의 조식 수법이 羅末麗初(라말려초)에 많이 유행된 석조부도와 흡사하며, 중첩된 앙연, 탑신부의 문비모각양식, 옥개석의 추녀와 귀꽃의 장식수법도 고려초엽까지 통용된 수법이다. 높이 267cm, 지대석의 한 변의 넓이가 135cm다. 징효국사 탑비 (澄曉國師 塔碑 ) 높이 3.96m로 귀부 위에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얹은 전형적인 부도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견고한 화강암으로 만든 비신에 "유당신라국사자산○○○○○교시징효대사보인지탑비명... "(有唐新羅國師子山○○○○○敎諡澄曉大師寶印之塔碑銘...)이라는 글씨를 36행으로 새겨 징효대사의 행적과 당시의 포교 내용을 적고 있다. 비문 마지막에는 "천복구년세재갑진유월십칠일립"(天福九年歲在甲辰六月十七日立)이라는 기록이 있어 이를 통해 '천복9년', 곧 고려 혜종 1년(944)에 부도비를 세웠으며, 보인(寶印)이라는 탑호를 받아 '징효국사보인지비'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 정면 중앙에는 '고징효대사비'(故澄曉大師碑)라는 글씨가 전각체로 조각돼 있다. 보물 제612호다. 적멸보궁 (寂滅寶宮) 법흥사 적멸보궁은 사자산 연화봉 중턱에 있다. 경내 입구인 원음루에서부터 5백미터 정도 올라가면 있다. 넓고 큰 돌들을 엮어 1단대의 지대를 마련하고 목조건물로 조성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맛배집이다. 적멸보궁 기와의 입막새에는 법(法)자가 씌어져 있고 '소화(昭和) 8년 11월 준공 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는데, 이는 1934년에 법흥사의 기와를 굽고 새로 지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 적멸보궁이 들어선 것은 자장스님(慈藏:590 ~ 658)에 의해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장율사는 선덕여왕 5년( 636)에 중국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님은 중국 오대산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문수석상 앞에서 간절한 기도 끝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선덕여왕 12년(서기 643년)에 부처님 사리 100과와 부처님께서 입으시던 가사 1벌을 당나라로부터 가져 와 오대산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기도를 계속했다. 오대산에 월정사와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에 흥녕사(지금의 법흥사), 태백산의 갈래사(지금의 정암사) 등이 창건된 것은 이런 인연에 의해서다. 3년후 신라 조정에서 내린 대국통이라는 직위를 받아 황룡사 9층 석탑을 세워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초석을 다졌고 선덕여왕 15년(646)에는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부처님 가사와 사리를 모시고 금강 계단을 세웠다. 임진왜란 중에 통도사의 사리는 왜구들에 의해 도난당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아 왔다. 이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정암사에 나머지는 통도사의 계단을 중수하고 봉안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5대 적멸보궁은 경상남도 양산군 영축산 통도사,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상원사,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강원도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강원도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淨巖寺)로 알려져 있다. 사리탑 법흥사 적멸보궁 뒤에 위치하고 있는 사리탑은 석조부도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어 있다. 탑신은 상 · 하단이 약간 좁아진 배홀림이 있는 八角柱形(팔각주형)으로 전 ·후 양면에는 門扉(문비)를 모각하고 그 안에 자물통을 양각하였는데, 전 ·후면의 형태는 조금씩 다른점이 있다. 이 같은 전후 양면을 제외한 나머지 6면에는 모두 각종 입상이 양각되어 있는데 전면 문비 좌우 양면에는 仁王像(인왕상)을, 그 밖에 좌우 양면에는 四天王像(사천왕상)이 있다. 이 부도의 조성 시기는 앙·복련과 안상 등의 조성 양식이 고려시대 초기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탑신부의 배흘림이나 각 면에 조각된 입상의 조성양식으로 보아 그 보다 다소 뒤진 1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조성된 부도로 추정되고 있다. 규모는 전체 높이 2.4m, 지대석의 한변의 넓이 1.5m다. 석분(石墳) 법흥사 적멸보궁 뒤에 있는데 뒷편의 낮은 언덕으로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그 흙으로 석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 위를 덮었다. 석실의 외부구조는 원형으로 마치 분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고분의 연도와 같이 개설된 입구는 몸을 굽혀서 겨우 출입할 정도인데 내부의 밑바닥이 입구보다 50cm 정도 깊어 몸을 일으킬 수 있으며 머리만 숙이면 굴 내에서도 다닐 수 있다. 이 석실의 조성연대는 내부구조로 보아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실 내부의 높이 160cm, 깊이 150cm, 너비가 190cm 이다. 극락전(極樂殿) 금동 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하여 관음,지장 보살상이 협시하는 삼존상을 모셨다. < 천 정> <처 마> <2001년에 지정된 보호수 밤나무> 안내탑 안내탑의 하나인 수주면에 있는 삼층석탑 흥녕선원의 길을 알려주기 위한 3개의 안내 석탑과 1개의 수호불상이 있다. 석탑은 제천시 장락에 있는 석탑, 수주면 무릉리 삼층석탑, 수주면 주천리 삼층석탑(강원문화재자료 28)이고, 수호불상은 징효대사가 입적한 곳인 요선정(강원문화재자료 41)의 마애여래좌상(강원유형문화재 74)이다.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 맑고 청명한 서강의 물줄기는 한반도면 선암마을변에 우리 땅을 그대로 복원하듯 한반도 지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옛날부터 한반도를 닮았다 하여 찾아간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 땅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으로 서강변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해바다와 남해바다 그리고 동해바다까지 온통 작고 이름없는 아담한 선암마을에 모여든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