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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역사속으로

경주시 문화유적지 괘릉

by 범여(梵如) 2012. 9. 14.

 

? 제   목          경주시 문화유적지 괘릉

? 종   목          사적 제26호

? 명   칭          경주 괘릉

? 분   류          유적건조물/무덤/왕실무덤/고대

? 수량/면적        75.372㎡

? 지정(등록)일     1963.01.21일

?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산17번지

? 시   대          삼국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 관리자(관리단체) 경주시


괘릉은 낮은 남쪽 울창(鬱蒼)한 소나무 숲에 있는 것으로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785~798)의 무덤으로 추정 된다고 한다, 원성왕의 성은 김 휘는 경신(敬信)이며 제17대 내물왕의(12대)후손으로( 백과사전에는 10세손으로 되어있다)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신설하고 벽골  재를 늘려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시체를 그대로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걸 괘자를 써서 괘릉(掛陵)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흑으로 덮은 둥근 모양의 능 아래는 능의 보호를 위한 병풍석이 있는데 12지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현명하게 보인다, 봉분 앞에는 4각 석상(혼유석, 상석이라고도 함)놓여있고 전면80m전방에는 옆으로 돌사자 한 쌍 , 문인석 한 쌍, 무인석 한 쌍과 무덤을 표시하는 화표석(華表石)(망주석이라고도함) 한 쌍이 마주보고 있다,


이 석조물들의 조각수법은 매우 당당하고 치밀하여 신라시대 조각품 중 우수한 것으로 꼽히고 있는데 , 특히 힘이 넘치는 모습의 무인석은 서역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 페루시아 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괘릉의 무덤제도는 당나라의 영양을 받은 것이지만 병풍석에 배치된12지 신상과  같은 세부적인 수법은 신라의 독창적인 것이다,  또한 각종 석물에서 보여 지는 뛰어난 조각수법은 신라인의 예술적 경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외에도 설은 많으나 필자는 문화재청 자료를 이용하였다,

 

 

▲ 괘릉의 봉분

 

▲병풍석의 십이지 상이 뚜렸하다 !

 

 

▲동영상

 

 

 

? 경주시 문화유적지 괘릉

? 종목             보물1427호

? 명칭             괘릉석상 및 석주일괄

? 분류             유물/기타종교조각/유교조각

? 수량/면적        10점

? 지정(등록)일      2005.01.22

? 소재지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17. 611~4

? 시대             통일신라

?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 관리자/관리단체  경주시


사적 제26호 경주 괘릉을 중심으로 좌, 우 입구에는  석조 상들이 쌍쌍이 서 있는데

 문인석 한 쌍, 무인석 한 쌍 , 사자 상 4점 석주2점으로 총 10점이 배치되어 있다,


무인석상은 서역인 처 럼 보여서 동서 문화의 교류 적  측면에서 크게 중시되고 있는 자료이며 

 통일신라시대 절정기의 사실적인 조각인 제33대 성덕왕(聖德王702~737) 능 석인상을 계승하여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된 상이다,


또한 이들의 무 인상, 문 인상들은 제42대 흥덕왕(826~836)능의 석상보다 앞선 생동감을 갖고

있으며 역동적인 사실성을 나타낸 대표적인 조각품으로 신라 조각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8세기의 이상적 사실 조각과 함께 당대의 찬란한

신라 문화의 진수를 알려주는 자료라고 한다,


 

 

▲석주

 

 

▲무인석

 

▲ 문인석

 

 

▲사자상

 

 

▲사자상

▲석상 및 석주 일괄 보물 : 제1.427호

 

서울매일신문 : 아침방송 현장취재

http://www.seoulmaeil.com

편집국/기획보도국장/김 영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