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균관대박물관, 석굴암 유리원판사진 95년만에 첫 공개
특별전시회에는 일제 강점기 1913년 데라우치 총독에 의해 석굴암(石窟庵) 1차 해체,
복원할 때의 과정을 담은 유리원판 사진 12점이 공개된다<이중 7점은 최초 공개되는 것>.
석굴암과 불국사의 수리공사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의 경영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실시되었었다.
특히 일반에 최초로 공개되는 석굴암 해체, 복원 과정을 촬영한 사진 중에서 원형이 훼손되기 이전
석굴암 본존불과 전실(前室)을 촬영한 모습은 전실에 지붕까지 설치되어 있어 인공조명 없이는
볼 수 없는 현재의 석굴암과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912~13년께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이 사진은 일제의 수리 공사 이전 석굴암 전실(前室)이
굴절형 구조임을 보여주고 있다. 금강역사상(사진 오른쪽에서 넷째)이 틀어져 있고
그 위의 그림자(점선)가 곡선이다. 1960년대 수리 과정에서 전실은 직선으로 펼쳐지면서
대왕암 쪽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이번 사진을 통해 석굴암 전실(前室)이 굴절형이었다는 것이
재확인되었으며, 일제가 우리의 문화재를 복원하면서 훼손한 실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석굴암 돔을 덮었던 흙, 기와, 석재와 내부의 환기구 모습 등은 석굴암 구조를 밝혀줄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일제 강점기 석굴암 복원 과정에서 본존불을 제외한 모든
초석이 교체된 사실을 확인한 점도 의의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 사진은 이미 1910년대 일본에 의해 석굴암 해체수리 이전이라고 발표되었다.)
또한 이 전시회는 1961-63년에 걸쳐 진행된 석굴암 2차 수리과정을 촬영한 사진도 함께
공개되며, 현재의 모습까지 석굴암의 어제와 오늘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간 석굴암의 변천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또, 1차 해체과정에서 발견된 천불보탑(千佛寶塔)과
금강역사(金剛力士)의 팔뚝도 대여 전시되는데, 이 유물이 경주박물관을 떠나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석굴암 내부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돼 있는데, 전시관에는 석굴암 내부를
실물의 70% 크기 모형으로 제작하여 일반인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유리원판들에 담긴 석굴암 초기 사진은 기존에 알려진 엽서나 각종 책자에
수록된 관련 사진과 대략적인 석굴암 윤곽에서는 크게 다른 점은 없으나, 유리원판을
직접 인화함으로써 도판 상태가 좋아 관련 연구를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1925년 불국사(佛國寺) 다보탑(多寶塔)을 수리하는 모습의 사진과 다보탑 위에서
찍은 석가탑(釋迦塔) 사진도 최초로 공개된다.
불국사는 1970년대 대대적인 수리와 복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나,
실제로는 1918-25년 일제가 수리한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다보탑 수리에 관련한
보고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에 유리원판 사진을 통해 처음으로 학예사
김대식박사가 논문(도록에 수록됨)에서 일제의 수리기록을 입증했다.
특히 석가탑은 1966년 해체과정에서 파손된 이후 복원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상륜부에
새로운 부재를 만들어 올리기 이전의 모습으로 의미가 크다. 석가탑은 해체 복원을 하면서
상륜부를 남원 실상사탑을 모델로 삼아만들어 올렸던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회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60여 개의 계곡을 품고 있어 ‘노천박물관’ ‘신라문화의 타임캡슐’로 불리는
경주 남산(南山)의 일제 강점기 때 찍은 유리원판 사진 60점이 처음으로 복원 공개되는데,
현재의 모습(최근 사진 40점)을 비교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진들을 통해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남산이 몇몇 유물을 제외하고는 지난 70년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도 확인할 수 있다. 용장사지 3층석탑과 보리사 석조여래좌상,
초가를 덮은 칠불암을 촬영한 사진은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송재소 성균관대 박물관장은 “이번 전시회는 1912년 일제에 의해 석굴암이 근대적 의미로 발견된
이래 해체, 복원 과정에서 훼손되는 실상이 유리원판사진과, 그동안 자료로 잘 알려지지 않은
1925년 다보탑 수리과정의 사진이 국내 대학박물관에 의해 최초로 공개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경주 남산의 경우 문화재 반출을 금지하는 등 엄격히 관리한 덕분에 70년 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 ‘문화재 보호’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한다”고 밝혔다.
한편 1910년대 석굴암 유리원판 사진은 경주에서 동양헌(東洋軒)이라는 사진관을 운영하던
‘다나카(田中龜熊)’라는 민간인이 찍은 것으로 추정되며, 1925년 다보탑과 남산 사진 등은 당시
총독부 박물관장을 하던 ‘후지타 료오사쿠(藤田亮策)’가 촬영한 것으로 밝혀졌다.
후지타는 1930년대 집안지역의 고구려 유적들도 촬영했다. 1953년 밀반출을 기도하던 유리원판
사진 2,000점을 성균관대가 구입, 소장하였는데 최근 첨단기법으로 복원, 사진전이 열리게 된 것이다.
성균관대 박물관은 지난해에도 중국의 동북공정을 고발하는 ‘집안 고구려유적의 어제와 오늘’전을 개최하였었다.
- 2007년 9월 17일 / 일간신문 참고 정리 (윗쪽의 5장 사진만 성균관대박물관 전시 유리원판사진이고 ...
나머지는 참고로 보면 좋을 듯 싶어서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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