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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전국의 사찰

최초의 불교 순교자 이차돈과 백률사,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과 도리사

by 범여(梵如) 2012. 11. 14.

 

이차돈(異次頓) / 506 ~ 527

신라의 승려 한국불교 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법흥왕의 근신(近臣)으로 일찍부터 불교를

신봉 하였으며 벼슬은 내사사인(內史舍人)이었다.

 당시 법흥왕은 불교를 국교로 삼고자 하였으나 재래의 토착신앙에 젖은 조신(朝臣)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그는 조신들의 의견에 반대, 불교의 공인(公認)을 주장 하던 끝에 527년 순교(殉敎)

자청하고 나서 만일 부처거 있다면 자기가 죽은 뒤 반드시 이적(異蹟)이 있으리라 예언 하였다.

 

과연 예언대로 그의 잘린 목에서 흰 피가 나오고 하늘이 컴컴해지드니 꽃비가 내리는 기적이

일어나 신하들도 마음을 돌려 불교를 공인하게 되었다고 한다. 북산(北岳: 소금강산)에 장사를

지내고 그곳에 백률사가 창건 되었다.                                     
백률사(栢栗寺)는 삼국유사등에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刺秋寺)일 것이라고 하고 있다.
 

자추사는 신라 법흥왕 14년(527)에 불교를 나라의 종교를 삼도록 순교한 이차돈을 기리기 위한

사찰로써 원래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그 후 다시 지어졌다. 단층의 목조 기와집으로 옆에서

보면 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 지붕으로 대부분 신라시대의 양식을 지니고 있다.

 

대웅전에 모셨던 금동약사여래입상은 불국사의 금동아미타 여래좌상, 금동비로지나불 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 불상들은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金銅佛)로 알려져 있다.

 

굴불사지 석불상(掘佛寺址 石佛象)

높이 약 3m의 카란 바위에 여러 보살상을 조각한 사방불(四方佛) 형태로 불상의 서쪽 면은

아미타 삼존불, 동쪽 면에는 약사여래좌상, 남쪽 면에는 삼존입상, 북쪽 면에는 보살상

두 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북쪽면 보살상 중 한 분은 얼굴이 열하나, 팔이 여섯 달린

관세음보살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아도화상(阿道和尙)

아도화상의 별명은 묵호자(墨胡子)라고도 일렀으니 그의 살빛이 검은 데서 온 것 같다.

아도는 원래 고구려 사람으로 부친은 위()나라 사람 아굴마(阿掘摩)를 ?아 중국으로

들어가던 도중에 부자(父子)가 뜻밖에 상봉하였다. 그는 현창화상(玄彰和尙)에게 수학을

하였으니 말하자면 그가 한국 최초의 승려인 것이다.

 

아도스님이 신라의 눌지왕(訥祗王) 때에 일선군(日善郡)에 이르러 모례장자집에서 숨어

포교활동포 할 때 중국 양()나라에서 신라 조정에 두 가지 예물을 보내 왔는데 하나는

의복(衣服)이고 다른 하나는 향내 나는 나무토막이었다.

 

조정은 이 같은 선물 대해 알지 못해 어찌 답신을 보내야 할 지 온통 걱정에 싸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모례’가 이 소식을 듣고 속에 있는 아도에게 물었더니 아도가 대답하기를,

“그것은 백단향(白檀香)이나 자단향(紫檀香) 같은 향나무인데 그것을 잘게 쪼개 불을 사르면

향기로운 냄새가 풍길 거요. 그것을 불, 법, 승 삼보의 성현 앞에서 태우고 기도를 올리면 무슨

소원이든지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니 그 이름을 향목이라고 하오. 특히 나라에 어려운 일이

부딪혔을 때 시험해 보면 놀라운 효과가 있을 것이외다.” 하였다.

 

이윽고 ‘모례’는 조정에 들어가서 아도에 대한 모든 일과 향목의 영통한

 신통력을 아도에게 들은 대로 소상하게 임금께 아뢰었다. 이것을 들은

임금과 신하는 모두 신기하게 여기고 양나라 사신에게, “의복과 향목을

보내주시어 잘 받았습니다.”고 회신을 보내 나라의 망신을 겨우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눌지왕의 딸인 성국(成國)공주가 병이 들어 죽음만 기다리고 있을 때 

눌지왕은 아도스님을 통해 딸을위해 기도해줄 것을 부탁하는데…

 

아도는 궁중에 삼보의 위목(位目 : 불,법,승 글자를 써서 붙인 패)을 써 붙이고 그 앞에 단()

차린 다음 촛불을 밝히고 그 옆에는 다기에 정한 물을 떠놓고 깨끗한 그릇으로 향을 피워올려

기도하자 얼마 후 공주의 병은 놀랍게도 씻은 듯이 나아 곧 자리를 차고 일어나게 되었다.

 

이렇듯 불교의 신통함에 크게 감동을 받은 눌지왕은 궁중 안에 불전(佛殿)을 두어 그 자신

불교를 독신하는 한편 아도의 제자로 하여금 사신 봉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리사(挑李寺)낙동강 동쪽 구미시 해평면 송곡동 태조산 아래 자리잡은

사찰로 신라 19대 눌지왕때 아도화상이 세운 해동 불교의 발상지이다

아도스님이 중국에서 현창화상에게 선도를 배워 19세에 자명을 받아 선산 도개부에 있는

모례의 집에서 굴실을 지어 거처하다가 시봉자가 늘어나게 되어 진기승지를 찻아 결암봉불

하던중 이곳에 오색도화가 설중에 만개하여 사호를 도리사라 하니 해동 최초 가람으로

신라불법의 초전법륜지인 것이다.

 

신라 불교 초전법륜지로 성지화된 이곳은 1976년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려 올 때

모셔온 세존 진신사리가 세존사리탑 보수 공사중 금동육각사리함(金銅六角舍利函)에 봉안되어 발견되었다.

금동육각사리함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며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 현재 직지사 성보 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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