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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1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9구간 - 동업령-귀봉-무주구천동까지

by 범여(梵如) 2010. 2. 25.

산행일시: 2009년 2월 1일(일)

산행코스: 덕유산 안성 매표소 - 용추계곡 - 동업령 - 백암봉 - 귀봉 - 횡경재 - 백련사 - 구천동 계곡 - 삼공리 주차장
거리/시간: 약 22km(들머리 4.5km/ 날머리 6km. 6시간 30분

 

舊正 명절에 불린 몸무게 뺄려고 백두대간 덕유산 코스 3구간을 갔다 왔습니다
덕유산 안성 매표소 - 용추계곡 - 동업령 - 백암봉 - 귀봉 - 횡경재 - 백련사 - 구천동 계곡 - 삼공리 주차장
약 22km를 6시간 반만에 빡세게 걸었습니다.
어젠 날씨가 무척 포근해서 산행하긴 좋았으나 눈이 녹아 고생했고
음지에는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 땜에 고생은 했으나 그래도 즐건 산행이었습니다

 

덕유산(德裕山)
본래 이름은 '광여산'(匡廬山) 또는 '여산'이라 불렀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이 산으로 피신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왜병들이 이곳을 지나갈 때면 짙은 안개가 드리워 많은 사람들이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광여산의 신비로움에 사람들은 덕이 있는 산이라 하여 '德'자를 써서 '덕이 많고

넉넉한 산'이란 뜻으로 '덕유산'이라 불렀다.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남한에서 4번째로 높고, 1000미터 이상의

봉우리만도 20개가 넘는 거대한 산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다.

수량도 대단하여 '무주구천동'이라는 유명계곡이 생겨났다.

 또한 전란이 미치지 않았던 지역이라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로 꼽는다.

 

 

 

 

고도표와 지도

안성 매표소 시작부터 미끄러워 힘이든다. 그래도 산행하기는 참으로 편하다.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따뜻하다. 매표소에서 칠연계곡 올라가는데 눈이 녹아

등산화는 상당히 질퍽거린다. 입었던 자켓을 벗어 베낭에 넣고 다시 길을 걷는다.

칠연계곡

 안성면 통안마을 뒤 덕유산 쪽에 반석으로 형성된 계곡과 그 일대를 칠연암동이라 하는데,

무주구천동에 비해 그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폭포,

소와 담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작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뒤지지 않는다.

이곳의 대표적인 명소는 칠연폭포로 일곱개의 폭포와 못이 연이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폭포는 위에서 아래로 소와 소 사이를 맑은 물이 완만한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린다.

칠연암동 하류에 있는 용추폭포는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기암절벽과 노송, 정자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고 칠연폭포 아래쪽 계곡 건너에는 조선 말기 의병장 신명선과

의병들이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여 묻힌 칠연의 총이 있고, 젊은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전라북도 자연학습원이 자리하고 있다.

길이 생각보다 미끄러워 제대로 속력을 낼 수가 없네. 거기다가 눈이녹아 질퍽거리고... 

동업령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미끄럽다. 이곳은 인기있는 등산코스라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대간 산꾼들에게는 동업령까지 4.5km는 아무소득(?)도 없는 구간이다.

소위 말해서 마루금도 아닌 날머리 구간이기 때문이다.

용추계곡 올라가는 길

용추계곡은 대간 산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리 갈일이 없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산을 오르는데 이마에 땀이 비오듯이 흐른다.

동업령 도착 200m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동업령 정상에 올라서서    

4km를 넘는 칠연계곡을 거쳐 동업령에서 감뿐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한 후에

백암봉을 출발할 무렵 흔하지 않는 장면을 보게 된다.

구름이 감히 대간을 범(?)하려고 기를 서고 있는 모습이다.

경남 거창 쪽에서 몰려온 구름이 대간에 막혀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 구간 마루금 봉우리가 모두 1,200m를 넘어서는 고봉들의 연속이니 구름인들 쉽게 넘을 수 없다.

 동업령 정상에서 바라본 거창군 북상면 대곡리 마을

대간 마루금은 주민들의 생활습관 등을 구분할 뿐만 아니라 날씨까지 서로 다르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간은 참으로 별것을 다 가르쳐준다. 

 백백암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횡경재 가는 길
        

횡경재(橫徑峙)
'가로질러 넘어가는 고개'란 뜻이다.
제법 아늑하고 공터가 넓어 쉬어가기에 적당하다.

송계사에서 오르는 길과 백련사에서 오르는 길이 만나 교차되는 지점이다.

일찍부터 시작된 이상고온으로 양지에는 빠르게 눈이 녹고....

백암봉에서는 전체 덕유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백암봉(白巖峰) 

'송계삼거리'로 불리는 곳이다.

안성쪽으로 하얀 암봉을 내리고 있어 백암봉이라 했다.

고도 1420m의 높이로서 오늘 구간 중 최고봉이 되며. 백두대간과 북덕유능선이 갈리는 곳이다.

 

오랫만에 화창한 날씨다2주 연속 궂은 날씨속을 헤매다 3주만에 본 광경이다. 좋다! 참으로 좋다!!
내 능력으로는 이렇게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다른 형용사를 사용했다간 오히려 덕유의 모습이 왜곡될까 두렵다. 

좌측으로 가면 덕유의 정상 향정봉과 중봉이고  여기서 마루금은 오른쪽으로 휜다.

백암봉 가는 길목에서

백암봉에서 덕유의 파노라마를 보면서 어디가 덕유의 앞모습이며 뒤 모습인지 궁금해진다.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는 남덕유가 뒤 모습일까? 아니면 마루금에서 비켜난 덕유의 최고봉 향적봉이 뒤 모습일까?

문득 지하철에서 본 詩가 생각난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시냇물이나 각종 나무들도 뒷모습이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뒤 모습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앞모습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앞모습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영화배우 혹은 탤런트들도 뒤태를 특히 강조하고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앞모습은 성형 등으로 인해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라는 뜻이 담긴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뒤 모습을 강조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것.

이를테면 자연은 앞 뒤 모습의 구별이 필요치 않으며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내가 가고 있는 대간 마루금도 앞 모습 뒤 모습이 구별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그리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런데 덕유산은 그렇지 않다.

뒤 모습은 없다 하더라도 분명 앞 모습은 있다. 향적봉이 바로 앞모습이다.

그리고 향적봉이 앞 모습이 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이라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걸음이 빠르면 백암봉에서 향적봉을 다녀올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감히 향적봉으로 가지 못한다.

걸음이 빠르지도 않거니와 향적봉을 대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향적봉이 대간 마루금에서 비켜나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귀봉/ 거봉(居峰) 가는 길

두 가지 이름으로 불려진다.

정상석이 없어 그냥 스쳐지나기 쉬운 곳이다.
구천동계곡 끝에 있어 계곡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곳 이정표는 '송계매표소 4.2Km / 송계삼거리 2.3Km / 향적봉 4.3Km‘라 적혀있다. 

귀봉가는 길에서 바라본 덕유산 정상 향적봉(1,614m)

 

향적봉(香積峰)
덕유산 최고봉으로서 향기가 쌓여 있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가까운 곳의 적상산 '향로봉'에서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면 그 향기가 이곳에 와서 쌓이고,

그 향기를 찾아 온 산신들이 기도를 들어줬다고 한다.

 

내 삶의 의미와 의지를 찾아 떠난 대간길 산중에서, 만나는 모든 한 걸음 한 걸음의 아름다움들이

아픈 무릎을 잊게 하고 ,내 지치고 메마른 가슴들을 적셔 삶의 끝자락을 평안한 안식의  길로

이끌어 줄 수만 있다면 살아 있는 날까지.. 이땅 끝까지..걸을 수 있을때 까지...용기가 난다.

쉬운 산은 없다든가...특히 대간 길에서..식후에 마주하는  길은 늘 숨이 차다.

꽤 길다고 여겨지는 길을 20여분헐떡거려 오른 귀봉에서 마주 보이는 향적봉이

참 가깝다고 느끼며 지나온백암봉(송계삼거리)가 되려 높아 보인다

 

덕유산에서는 구천동 골짜기가 최고의 명물이다. 이 골짜기는 학소대(鶴巢臺) ··수심대(水心臺) ·

수경대(水鏡臺) ·인월담(印月潭) ·청류동(淸流洞) ·구월담(九月潭) 청류계(淸流溪) ·구천폭포(九千瀑布)

등등을 품고 있으며 이들로 인해 국립공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련사 일주문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이 초암을 짓고 수도하던 중

그곳에서 흰 연꽃이 솟아 나와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뒤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쳤다.

1900년(광무 4)에 당시 무주부사였던 이하섭이 중수하였고 6·25전쟁 때 불타버린 뒤 1961년에

 대웅전을 건립하였으며, 1968년에 요사를 건립하였다. 그 무렵 백련암으로 불리던 절 이름을

 백련사로 바꾸고 30여 년 동안 중창 불사에 힘썼다.

주요 건물로 대웅전, 원통전, 선수당, 문향헌 등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매월당 부도(:전북유형문화재 43), 백련사 계단(전북지방기념물 42),

정관당 부도(:전북유형문화재 102)가 있다.

무주 구천동 계곡에는 벌써 봄이 찾아 오는가 보다

무주구천동(九千洞)
옛날 이 계곡 주변에 14개의 사찰이 있었다.여기서 수행을 하던 수도승들의 수가 9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구천명이 모여 사는 계곡'이란 뜻으로 '구천둔이라 부르다가 변음되어 '구천동'이 되었다.
구천동 계곡의 길이는 약 30Km, 경관이 뛰어난 곳을 '구천동33경'으로 지정했다.

 
무주 구천동 하산길 

구천동 하산길에서 만난 詩가 가슴에 와닿네그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