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상적멸분(離相寂滅分) 제14 (4)
不應住色生心하며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이요 應生無所住心이니라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생무소주심
"응당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응당 성, 향, 미, 촉, 법에 머물러서도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 머문 바 없는 그 마음을 낼지니라."
앞에서 "일체상(一切相)을 다 떠나라."라고 했던 것을 하나라나 분석하여 일러 주십니다.
사실 나라고 하는 것은 안이비설신의를 통해 인식되어지는 색성향미촉법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물, 소리, 향기, 맛, 감촉, 법의 이 여섯 가지에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물을 인식하여 분별을 짓고 눈으로 보고 소리를 들으며 냄새를 맡고
감촉을 느끼며 사는세계는 사실 거대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식을 축적해가고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심지어
저 높은 하늘나라 도솔천 내원궁을 아는 법의 세계도 굉장히 큰 세계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전부 다 이 여섯 가지 속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좀 더 깨어 있자면 이 여섯 가지 세계 속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 주착하지 말고 매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어디, 그 어떤 일과도 연관을 가지 아니 하면서 홀로 드러나 있는
소소영령한 진실생명이 활발히 작용을 하여 자기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若心有住면 則爲非住니 是故로 佛說菩薩은 心不應住色布施라하나니라
약심유주 즉위비주 시고 불설보살 심불응주색보시
"만약 마음에 머묾이 있으면 곧 머묾 아님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하기를, "보살은 마당히 마음을 색에 머물지 말고 보시하라"하느니라
우리들이 그 어디와도 연관을 맺지 않고 살아가기란 사실 참으로 어렵습니다.
태어나면서 한 가정의 일원이 되고 자라면서 점점 더 많은 세계에 속해지면서 사회적인 자아(自我)가 확대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여 소속감이나 안정감을
얻을 수도 있지마는 때로는 자신을 옭아매는 경우도 생깁니다.
주위에서 보면 많은 모임에 적을 두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사람이 의외로
자신의 일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또한 '누구 누구의 무엇이다'하는 관계로밖에 드러나지 않고 진실한 자기 자신은 없어집니다.
그것처럼 색성향미촉법의 어떠한 대상에 집착해 버리면 집착해버린 그 대상 하나밖에
알 수가 없고 전체를 온전하게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하나의 대상에 갇히지 않고 그 어디에 도 머물지 않을 때면 그 무엇에도 머물 수 있는 큰 삶이 되는 것입니다.
수박껍질을 벗겨야 맛있는 수박 알갱이를 먹을 수 있고, 매미도 한꺼풀 벗어나야 성충(成蟲)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우리들을 한정지우는 온갖 상(相)으로부터 벗어나야만 신선하고 새로운 삶이 활짝 열릴 수 있습니다.
"수보리야, 보살은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하여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느니."
불교에 뜻을 같이 하여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須菩提야 菩薩이 爲利益一切衆生하야 應如是布施니
수보리 보살 위이익일체중생 응여시보시"수보리야, 보살은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하여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느니."
불교에 뜻을 같이 하여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일체의 삶을 펼쳐야 합니다.
어디 소소한 데에 구애되어 좀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크고 시원하게 인생을 꾸려가야 합니다.
인색한 마음은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무엇인가 응어리가 마음 속에 계속 남아 걸리적거리게 됩니다.
요즈음처럼 다양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디 소소한 데에 구애되어 좀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크고 시원하게 인생을 꾸려가야 합니다.
인색한 마음은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무엇인가 응어리가 마음 속에 계속 남아 걸리적거리게 됩니다.
요즈음처럼 다양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능력껏 남을 위해 봉사하면 됩니다.
재보시(財布施)를 담당할 능력이 있으면 재보시에 힘쓰고, 법보시(法布施)를
재보시(財布施)를 담당할 능력이 있으면 재보시에 힘쓰고, 법보시(法布施)를
담당할 능력이 되면 법보시를 힘껏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여의치 못하지만 시간이 충분하고 건강한 몸이 있다면 그것으로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 있는 따뜻한 부처님의 자비를 직접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중불교운동의 하나로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힘서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요즈음 우리 불교에서는 '생명 공양 운동(生命 供襄 運動)'을 펼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전생에도 도를 구하거나 중생들을 위해서 기꺼이 육신을 보시하였습니다.
그것처럼 우리 불자들도 남을 향한 자비심의 발로로 자신의 육체의 일부를 기증하는 것은
참으로 장려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如來가 說一切諸相이 卽是非相이며 又說一切衆生이 卽非衆生이니라
여래 설일체제상 즉시비상 우설일체중생 즉비중생
"여래가 설한 일체의 모든 상은 곧 이 상이 아니며 또한 일체의 중생이라고 설함도 곧 중생이 아니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아상, 중생상, 수자상은 변화무상하고 필경은 무너질 것이므로,
如來가 說一切諸相이 卽是非相이며 又說一切衆生이 卽非衆生이니라
여래 설일체제상 즉시비상 우설일체중생 즉비중생
"여래가 설한 일체의 모든 상은 곧 이 상이 아니며 또한 일체의 중생이라고 설함도 곧 중생이 아니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아상, 중생상, 수자상은 변화무상하고 필경은 무너질 것이므로,
즉 실상이 아니므로 이 상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 하여 깨달은 부처님이 갖고있는
마음이나 중생들이 갖고 있는 마음은 둘이 아닙니다.
마음이란 본래로 무차별하고 동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이라고 하는 것도 영원한 것이 아니고 본래로 제도되어 있고 부처님과
마음이란 본래로 무차별하고 동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이라고 하는 것도 영원한 것이 아니고 본래로 제도되어 있고 부처님과
동일체이므로 중생은 중생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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