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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經典講解

금강경 - 리상적멸분(離相寂滅分)제14 (3)

by 범여(梵如) 2013. 5. 3.

 

리상적멸분(離相寂滅分)제14 (3)

 

 須菩提야 忍辱波羅蜜도 如來가 說非忍辱波羅蜜이니
수보리    인욕바라밀    여래    설비인욕바라밀   

是名忍辱波羅蜜이니라
시명인욕바라밀

"수보리야, 인욕바라밀도 여래가 설하되 인욕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니라."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이라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환경이나 금욕스러운 상황을 끝까지
참아냄으로써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입니다.
다른 바라밀도 있지마는 상을 떠나는 문제에 있어서는 인욕이라는 것이 중요한 방편으로 대두됩니다.
허황된 일체의 상에서 떠나게 되면 그 어떠한 감정의 대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참아낼 대상도 기뻐할 대상도 성낼 대상도 그 어떤 것도 없게 됩니다.
우리들의 고통을 초월하였으므로 실제로 참을 것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욕바라밀은 인욕바라밀이 아닌 것이고 단지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인 것입니다.
 
何以故오 須菩提야 如我昔爲歌利王에게 割截身體하야
하이고   수보리   여아석위가리왕     할절신체
 
我於爾時에 無我相함 無人相 하여 無衆生相하며 無壽者相호라
아이어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주자상
 
何以故오 須菩提야 我於往昔節節支解時에 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하면
하이고   수보리   아어왕석절절지해시   약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應生嗔恨일러니라
응생진한
 
"어찌한 까닭인가. 수보리야, 내가 옛적 가리왕에게 신체를 낱낱이 베일 때에 나는
그때에 아상이 없었고 인상이 없었으며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왜냐하면
내가 옛적에 마디마디 사지를 베일 때에 만약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으면 응당
성내고 원망함을 내었으리라."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초월하여 텅 비어 있는 상태에서 누구를 원망하고 무엇에 대하여 성을 낼 수 있겠습니까.
인욕바라밀도 인욕바라밀이라고 할 수 없는 그 경지를 부처님께서는 전세(前世)에 겪었던 실제를 예로 들려 주십니다.
부처님게서 전생에 인욕선인(忍辱仙人)으로서 산중에서 혼자 수행을 하고 있을 때,
그 시대의 왕인 가리왕(歌利王)은 많은 신하와 궁녀를 거느리고 사냥을 나왔습니다.
왕은 점심을 먹은 후 노곤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보니 자기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여기저기를 찾아보니 자기의 시종들이 바위앞에 있는 어느 수행자에게로 가서
지극한 예를 다함 법문을 듣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시종들이 전부 거기에 가 있으니 왕은 거만한 마음에서 큰 화가 났습니다.
그 수행자에게로 급히 가서 물었습니다.
"그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러자 그 수행자는 고요히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인욕(忍辱)을 수행하는 중입니다."
 
"그대가 정말로 참기름 그렇게도 잘 하는냐.내가 직접 시험을 해 보겠다." 하면서
칼을 뽑아 수행인의 신체를 하나하나 마디마디 잘라내었습니다.
"이렇게 해도 아프지 않느냐. 원망하는 마음〔瞋恨〕이 나지 않느냐."
"내 이미 있지 않고 너 또한 떠나 있는데 무엇이 아프고 누구를 원망한단 말입니까." 하며
그렇게도 낱낱이 베임을 당하면서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하늘의 제석천이 그것을 보고 가리앙에게 돌비〔石雨〕를 퍼부어 벌을 주고,
수행자의 몸을 본래대로 환원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바늘 끝에 조금 찔리거나 손가락에 조그마한 가시 하나가 박혀도 얼마나 아픕니까.
가만 있는 사람을 약간만 건드려도 신경질 부터 내는게 게 보통 우리들 수준인데
그토록마디마디 살점을 올내고 뼈를 갈라놓은아픔을 당하면서도 아무런 진한(瞋恨)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나는 수행자다. 수행자니 이 정도는 참아야지'하는 수준의 인욕은 아닐 것입니다.
나와 너를 공(空)으로 보았기 때문에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사상(四相)에서 떠나
있으므로 이미 고(苦)의 상도 없는 것입니다.그
러므로 육체의 고통도, 원망할 가리왕도, 심지어는 고마워할 제석천도 없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又念過去於五百世에 作忍辱仙人하야 於爾所世에
수보리   우념과거어오백세   작인욕선인     어이소세

無我相하며 無人相하며 無衆生相하며 無壽者相호라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수보리야, 또 과거 오백세 동안에 인욕선인이었던 일을 생각하니
그때의 세상에서도 아상이 없었으며 인상이 없었고 중생상도 없었으며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생각난 김에 부처님께서는 과거 오백생 동안에 수행한 인욕을 다 반야의 광명에 비추어 들려 주십니다.
그 때에도 사상이 없음으로 해서 이름하여 인욕바라밀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꼭 부처님의 전세가 아니더라도 역사상에는 이와 같은 예가 많이 있습니다.
사자존자(獅子尊子)는 부처님의 법맥을 이은 분 중의 한 분인데 이교도의 모함을 받아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형에 임하면서 남긴 시가 있습니다.


"사대원무주  (四大元無主)   
오음본래공  (五陰本來空) 
장두임백인  (將頭臨白刃) 
유사참춘풍  (猶似斬春風)"


풀이를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 수 화 풍 사대가 원래 주인이 없고 색 수 상 행 식 오음으로 이루어진 이 몸도
마음도 모두 공한 것이라서 머리를 가지고서 흰 칼날 앞에 대어도 마치 봄바람을 베는 것 같다오."

칼로써 봄바람을 베어 보십시오.
무슨 흔적이 있으며 또 봄바람을 베는 칼잡이는 무슨 흥이 아겠습니까.
망나니가 칼을 들고 사형을 집행하려는 순간에도 이런 시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실체를 공한 것으로 보니 가능합니다.

이 정도의 경지라면 부처님의 전신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남김없이 비운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순교자 이차돈도 자기 자신을 불생 불멸의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한 점
주저없이 불법을 위해 자신이 생명을 보시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是故로 須菩提야 菩薩이 應離一切相하고 發阿縟多羅三藐三菩提이니
시고   수보리   보살   응리일체상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일체 상을 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낼지니"

보리심은 모든 상을 떠나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상식과 지식, 상념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을 때 깨달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온갖 시비선악의 판단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진실한 자기를 볼 수 있습니다.
참선 일념(參禪 一念)에 들면 그 동안 우리들 마음 속에 누적 되어 있는 온갖 기준과 법도,
지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깊고 깊은 마음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잊어버리거나 떼어내어 날려 버려서 벗어난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 속에는 본래로
온갖 사변에서 떠나 있는 공적한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 참선입니다.
이 세상의 제도(制度)라는 상을 떠난다고 깊은 산중에 가서 도를 닦는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상념들의 찌꺼기에 매여 있고 얽혀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고,
복잡한 세계에 침잠하여 상으로 부터 벗어나 있으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