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상적멸분(離相寂滅分) 제14 (5)
須菩提야 如來는 是眞語者며 實語者며 如語者며 不광語者며 不異語者시니라
수보리 여래 시진어자 실어자 여어자 불광어자 불이어자
"수보리야, 여래는 참다운 말을 하는 자며 실다운 말을 하는 자며
사실과 같이 말하는 자며 거짓이 아닌 말을 하는 자며 다르지 않은 말을 하는 자니라."
우리들은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줄 때에는 현명하게 판단하여 적절한 충고를 해 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똑 같은 상황이라도 그것이 내 문제로 다가오면 그만 속수무책이 됩니다.
그이유는 간단합니다.
내 욕심에 가려 집착했으므로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스운 예로 장기나 바둑을 둘 때 옆에서 그 대국을 지켜 보게되면 자기의 평소 실력보다
이급 정도 높게 수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대신 내깃돈을 주면서까지 훈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옆에서 보니 저 말이 곧 죽게 되어 있는데 두는 당사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니
너무나 안타까워 대신 돈까지 내어 주면서 참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우리 중생들이 사물 사물에 집착하여 인생의 진실한 모습과는 동떨어지게
작은 삶을 살아가니까, 부처님께서는 너무나 안타까워 자신의 명예를 다 걸고
"나는 진실한 말만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이렇게 다섯 번이나 반복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경전에서는 이렇게까지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상 너머에 너무나도 밝은 세계가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아둥바둥 사는 것을 보고
얼마나 우리 중생들이 애처로웠으면 이렇게까지 하였겠습니까.
그동안에 늘 '있다'는 문제를 이야기하시다가 '일체 상을 떠나는 것이 부처다'하는 것은 혁명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이 실상인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울긋불긋한 현상에 매여 희로애락에 젖어 사는
중생들이 너무 안타까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당부 하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如來所得法은 此法이 無實無虛하니라
수보리 여래소득법 차법 무실무허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바 법인 이 법은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
부처님이 깨달았다고 하는 이 법의 본질은 모든 사변으로부터 떠나 있고, 본래가 공적한 자리입니다.
그러니 실다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없다는 가운데에서도 쓰고, 쓰고도 마침이 없는 묘한 작용이 일어나니 과연 헛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본래가 적적하여 상을 가질 수 없으니 실다움도 없고, 또 그러면서도 이렇게 끊임없이 만상이
흘러나오고 과거에 계속 자아내었고 앞으로도 마음껏 쓰고도 다함이 없을 것이니 헛되지도 않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若菩薩이 心住於法하야 而行布施하면 如人이 入暗에
수보리 약보살 심주어법 이행보시 여인 입암
則無所見이요 若菩薩이 心不住法하야 而行布施하면 如人이
즉무소견 약보살 심부주법 이행보시 여인
有目하야 日光明照에 見種種色이니라
유목 일광명조 견종종색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러서 보시하면마치 사람이 어두운 곳에
들어가매 아무 것도 보이는 바가 없는 것과 같고, 만약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마치 사람이 눈도 있고 햇빛도 밝게 비쳐서 여러 가지 사물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
14분 까지가 『금강경』의 상권(上券)입니다.
『금강경』의 주된 사상이 14분 까지에서 거의가 다 설해집니다.
특히 이 부분은『금강경』전체의 결론이라고 보아지기 때문에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을 힘주어 설명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둠'과 '밝음'을 가지고 살짝 대비시켜 놓았지만, 여기에는 매우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눈에 보이는 현상과 우리들 의식 속에 존재하는 법에 머물러 살아가는 것은 어떤 사람이 캄캄한 곳에 들어가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캄캄한 곳에 들어가 보면 그 곳에 다이아몬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어도 그 것이
다이아몬드인 줄 전혀 알아채지 못합니다.
혹, 다이아몬드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들어가 더듬거려서큼직한 것을 들고 나왔다
하더라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덩이를 들고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우리들이 순식간에 맹인(盲人)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해서라도 집으로는 돌아가야 하겠기에 길에 나섰거만 온전히 돌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아무런 의식 없이 편히 다닐 수 있었던 계단이나, 익숙했던 길들이 전부 우리들에게
상처를 줄 무기로 변합니다.
그래 가지고 성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때의 마음에 생기는 두려움이나 답답함은 도 얼마나 크겠습니까.
우리들의 인생길이 바로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집착하여 인생을 살면,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온갖 상처투성이로
인항 가슴 아픈 일만 생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있지도 않은 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집착하여
전도(顫到)딘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매달려도 좋을 만한 가치가 있다면 부처님도 떠나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원히 그것에 매달리라고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집착해도 좋을 만큼 대상이 있어주지 않고, 우리 자신조차 변해가지 않습니까.
만약 나도, 너도, 이 세상의 온갖 사물도 끝까지 변치 않는 존재라면 영원토록 따라가고
매달릴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또 놓쳐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니 사물 하나하나, 우리들의 감정, 의식, 마음 작용, 이 모든 것들은 본질적으로 텅 비어 있기
때문에, 또 잠깐 동안의 인연에 의해서 모였다가 흩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고집할 수도 없고, 고집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우리들 눈에 실체(實體)로서 번듯이 보이고 있지만 언젠가는 흩어지고 텅 비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흩어지고 난 뒤에야 알게 되는 것이 아니고 존재하는 동안에도 이러한 점을 꿰뚫고 있으면 상처받을 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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