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제17 (1)
물결 떠나 물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얼어 있든 수증기가 되든 오직 물일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반야의 세계에는 오직 반야만이 있을 뿐입니다.
반야(般若)의 세계(世界)가 무엇입니까?
바로 무상(無相)이고, 무아(無我)인 것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나〔我〕가 없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가든 철저하게 밝고 깨끗하여 나는 없습니다.
범부(凡夫)이든 성인(聖人)이든, 초심자이든 익숙해진 사람이든 끝까지 무아(無我)로
종(宗)을 삼아야 일체법(一切法)이 모두 불법(佛法)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분의 내용은 앞에서의 선현기청분 제2와 대승정종분 제3의 문답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이렇게도 경의 뜻이 불가사의하고 과보도 불가사의하니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는 것입니다.
말은 같아도 뜻은 다르다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끝까지 무아(無我)니까 색깔이 달라지는 정도의 차이로 보면 됩니다.
한 번 말할 때와 두 번 말할 때의 그 무게와 색깔이 달라지는 정도의 차이로 보면 됩니다.
초심자로서의 문답과 익숙해진 사람으로서의 문답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爾時에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善男子善女人이 發阿縟多羅三藐三菩提心하니는
이시 수보리 백불언 세존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云何應住며 云何降伏其心하리잇고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그 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으니
어떻게 마땅히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으리까."
지금까지 계속 부처님의 말씀을 새겨 상(相)이 무너진 그 곳에 반야의 등불이
빛난다는 것을 어지간히 알았지만 행여나 하는 마음에서 또 다시 부처님께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일으킨 사람은 진정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고 마땅히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여쭈어 봅니다.
이러한 자세는 참으로 권장할 만한 자세입니다.
웬만큼 알아차렸다고 해서 중도에서 마음을 놓아 버리면 그 무엇도 되지 않습니다.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菩薩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則非菩薩이니
즉비보살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천지는 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라 하늘, 땅, 삼라만상(參羅萬象)은 전부 다 나와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니, '너니'하고 구분지울 게 없습니다.
본래가 동일한 자리여서 평등할 뿐인데 거기에는 이리 저리 금을 긋고 비교하고 분별할 그 무엇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상견중생(相見衆生)'인지라 아직도 바깥으로 드러난 색상(色相)에 마음을 빼앗끼고 기준으로 삼습니다.
지금까지 그만큼 우리 내부에는 다 동일한 부처의 성품뿐이라고 공부를 해 왔는데도 아직까지도
나라는 자만의식, 너라는 차별의식, 못났다 라는 열등의식, 나이에 집착하는 한계의식을 갖고 있다면
불교에 뜻을 두고 있는 진정한 불자로 보기 힘들다는 것을 거듭 말합니다.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實無有法發阿縟多羅三藐三菩提心者니라
소이지하 수보리 실무유법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수보리야, 실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것이 아니니라."
진정한 보살은 사상(四相)을 내지 않는데 깨달음의 마음을 내는 데에 있어서도 어떤 고정된 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깨달음의 마음은 낸다거나 내지 않는다 하는 의지나 분별의 대상이 아니고 나와 너, 고저,
우열, 미추를 떠나 있는 적적대의한 자리이므로 깨달음의 마음을 발함에 있어서 이것이 고정된
근거이고 법이다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於燃燈佛所에 有法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아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어연등불소 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不也니이다 世尊하 如我解佛所說義컨댄 佛이 於燃燈佛所에
불야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 어연등불소
無有法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하니이다
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불 처소에서 법이 있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이 설하신 뜻을 이해하기에는 부처님이 연등불 처소에서
법이 있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과거 연등불 머리를 풀어 지성껏 공양 올리고 발심 수행하여
수기를 받고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마는 사실로는 '이것이 법이다' 할 무엇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금생의 깨달음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의 수행에 있어서도 실로 어떤 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부처님이 묻고 공의 도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수보리가 답합니다.
부처님 스스로 단정짓는 것보다 제자의 입을 통하여 무상의 이치를 설하는 것이 더욱
더 공의 이치를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고 하겠습니다.
佛이 告須菩提하사되 若善男子善女人이 發阿縟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불 고수보리 약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當生如是心이니 我應滅度一切衆生호리라 滅度一切衆生已하야는
당생여시심 아응멸도일체중생 멸도일체중생이
而無有一衆生도 實滅度者니
아무유일중생 실멸도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으면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낼지니, 내가 응당 일체 중생을 멸도하리라.
일체 중생을 멸도하고 나서는 한 중생도 멸도함이 없으리라."
부처님께서도 같은 대답을 한 번 더 들려 주십니다.
부처님께서 일차적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였지만 사실은 한 중생도 제도한바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본래로 부처이고, 깨어 있으며, 해탈(解脫)되어 있는 우리들을 가지고 제도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맞지않는 말입니다.
본성으로 지니고 있는 이 재산, 이 보물은 부처님 같은 능력자도 털 끝만큼 손상시키지 못하고,
가져오지 못하며 또한 보태줄 수도 없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결국은 자기가 갖고 있는 자기 재산을 자기가 썼을뿐입니다.
제 중생 제가 제도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부처님께서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오시어 우리들에게 큰 공헌을 남기셨지만,
본질적으로 볼 때는 각자가 본래로 모든 것을 구족하고 있는 보물 창고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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