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3년 9월 21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구름, 상당히 더움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2.5km +어프로치 2.9km / 9시간 25분소요
☞ 참석인원: 동료산꾼 젠틀맨님과 함께
☞ 산행코스: 말머리고개-오두지맥분기점-한강봉-436m봉-안부사거리-느르미고개
은봉산-임도-소사고개산불감시탑-270m봉-310m봉-팔일봉갈림길-하우고개-노아산갈림길-노아산-게내미고개-264m봉
새우개고개-쉼터안부-노고산 입구-군부대도로-미화레미콘-56번지방도-오현리삼거리-스르레미고개
266.1m봉-암봉-수레네미고개
☞ 소 재 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백석읍, 광적면, 남면 / 파주시 광탄면, 법원읍
등산은 하나의 신앙이다.
신앙처럼 등산을 한다.
산이 있는 한 오를 것이고
목숨이 있는 한
쉬지 않고 걸을 것이다.
이번 추석엔 연휴 기간이 길어서 특별히 갈데고 없고 추석 전날에 고향을 잊어버린
초등학교동창 7명과 오랫만에 집에서 가까운 청계산 산행을 끝나고 마신 술이 힘이 들었다.
추석엔 절에서 제사를 모시고 집에서 쉬다가 혼자서 무작정 이른새벽에 차를 가지고
서울에서 가까운 운악산 정상에 올라 매트를 깔고 1시간정도 잠을 자고나니
몸이 참으로 개운하다... 그런데 지난 겨울에 금남기맥을 같이했던 동료산꾼 젠틀맨이
내일 수락지맥을 간다면서 내 블로그의 산행후기를 스크랩해간다고 하면서 전화가 온다.
그러면서 난 뭐하냐고 하길래 난 내일 서울에서 가까운 한북 12지맥의 하나인 문산(감악)지맥을
갈려고 한다고하니 그럼 자기도 중랑(수락)지맥을 가지않고 나와 같이 동행을 하겠단다.
내일 이른 아침에 의정부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는다
문산(감악)지맥의 개요
문산(감악)지맥이란 한북정맥상에 있는 한강봉(460m)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하여
436봉~느르미고개~은봉산(380m)~소사고개~팔일봉 어깨~노아산~개내미고개~세우게고개
스르네미고개~266봉~무건이고개~368봉~설머치고개~감악산(675m)~간패고개~마차산(588m)을
거쳐 3번국도 한탄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42km의 산줄기를 말하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문산지맥이라고 부른다
감악지맥 구글어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양주시 고지도
강남구청역(05:40)
감악지맥 첫구간을 가기위해 이른 새벽에 집을나와 아파트 정문을 나서는데 평소에 인사를 잘하는
경비원이 오늘도 산에 가시냐고 하면서 잘 다녀오라고 하는 인사를 받으면서 강남구청역으로 향한다.
강남구청역 7호선 지하철 시간표
의정부역(06:45)
7호선 강남구청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도봉산역에서 도착하여 1호선으로 환승한 다음
의정부역에 도착하니 6시 40분이다. 젠틀맨님은 7시 22분에 도착한단다.
의정부역 앞의 모습
동료산꾼 젠틀맨님이 올 동안에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신천(왕방)지맥과 중랑(수락)지맥 구간을
하면서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들렸던 역앞에 있는 김밥천국 집에 들려서 젠틀맨님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잠시 후 같이 만나서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기위해 식당문을 나선다.
식당앞에서 송추가는 23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8분에나 온다기에 첫구간 거리를
감안하여 시간이 늦을것 같아 길가에 서있는 택시와 가격을 흥정하여 15,000원에
말머리 고개까지 가기로 하고 택시를 타고 말머리고개에 도착한다.
말머리 고개(馬峙:08:20)
경기도 양주시 송추 고비골에서 백석읍 기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39번 국도가 지나며 고개 정상에는 해태. 크라운제과 연수원이 있다.
지도상에는 말머리 고개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말굴이 고개란다.
말굴이 고개라는 이름은 중국 사신이 타고오던 말이 굴렀던 곳이라 붙혀진 이름이다.
도로가 포장되기 전에는 이 고갯길이 무척 험하여 지나던 차들이 애를 먹었던 곳이란다.
현재 이 고개를 말머리고개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말굴이를 잘못 발음해서 원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변음되어 붙혀진 이름이란다.
말굴이에서 말구리로, 말구리에서 잘못 발음되어 말두리로, 말두리에서 말머리로 변했단다.
고비골(여행스케치가 있는 곳) 위라고 하여 고비고개라 부르기도 하는데
고비골이란 이름은 세가지의 이름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고비나물 즉 고사리가 많이나는 곳이라 붙혀진 이름이고, 둘째는 장흥에서 제일 높은
곳인데서 비롯된 이름이고, 셋째는 이곳을 넘는 길이 구불구불하다는데서 붙혀진 이름이란다.
말머리 고개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우측 바리게이트 옆으로 산행을 시작하다(08:25)
올라가다가가 붙어버린 나무
급경사로 올라서는데 흐린 날씨에 여름못지 않게 덥다.
더군더나 기상청에서 가끔 비가 온다고 하기에 우의와 우산까지 챙기고 점심식사를
끓여 먹을려고 코펠과 버너에다가, 산행후 갈아입을 옷까지 베낭에다 넣은 탓인지
오늘 베낭 무게가 10km는 더 되는 느낌이라 10분도 안되어 옷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지난해 오두지맥 때는 이곳에서 밤을 꽤나 많이 줏었는데 올해는 추석이 일찍 온 탓인지
밤은 하나도 없고 기상청만 믿고 챙긴 우의를 비롯한 불필요한 장비 땜에 베낭만 무겁다.
오늘도 구라청(기상청)의 구라에 약이 오른다.
오두지맥 분기봉(08:40)
1년만에 다시 밟아보는 분기봉... 그러나 오늘은 반대쪽으로 걷는다.
예전에 이곳에 있었던 이정표는 없어지고 아무것도 없다.
철거를 했으면 다른 이정표라도 설치하던지 그냥 두던지하지 조금은 아쉽다.
오두지맥 분기점(2012,9.29) - 오두지맥 산행때 찍은 사진
한강봉(漢江峰:530m:08:55)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가업리와 기산리 경계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
올라서면 한강이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강봉의 남사면으로 흐르는 물은 한강으로 흐르고, 북사면으로 흐르는 물은 임진강으로 흐른다.
옛날 이곳에서 봉화를 올렸다고하여 봉화등이란 다른 이름을 가지고도 있다.
봉화는 장흥의 송추를 거쳐 한양으로 이어졌다 한강봉은 호명산,불곡산,도락산과 함께
백석읍의 4대 명산으로 꼽히며 연중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한강봉에서 시작하여 은봉산 자락까지 길게 이어진 능선을 긴등이라고 하는데 능선이
길다하여 붙혀졌으며 이 지역 사람들은 이 능선의 모양이 마치 소가 누워있는
와우형(臥牛形) 형상을 있다고 하여 옛날에는 기와집을 짓지 않았다고 한다.
소 등에 기와가 얹어지면 무거워서 부지런히 일을 할 수 없게 되므로 마을에
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소의 혈에 해당되는 곳에서 매년 음력 10월 1일 산제를 지냈다고 하며
제사를 지냈던 참나무도 있다고 한다.
한강봉 정상 삼각점(△문산 470 / 1992 재설)
오두지맥 분기봉에서 한강봉을 오르는데 더운 날씨에 박무탓에 모든게 희미하게 보인다.
한북정맥길에서 만났던 정자만이 산꾼 범여를 반긴다.
정자에 오르니 호명산과 백석읍 건너 불곡산이 보이고 좌측 능선으로 가야할 은봉산도 보인다.
말머리고개에서 이곳까지 어프로치 구간 2.9km가 끝나고 본격적인 문산(감악)지맥이 시작된다.
젠트맨님이 힘이 드시는지 막걸리 하자는 것을 조금 더가서 먹자고 하여 그냥 걷는다.
한강봉 정상에서 바라본 양주시 백석읍(白石邑)
백석이란 땅이름은 방성리와 양주1동의 유양동·어둔동에 걸쳐 있는 양주산성(옛 대모산성·大母山城)에
흰돌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현재 양주산성에는 흰 돌이 없고, 다만 방성리에
소재한 양주소놀이굿전수회관 부근의 배나무 과수원에 흰 돌이 있어 이것을 백석의 기원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원래 백석은 조선시대부터 사용되는 용어로써 전국 어디에나
존재하며, 백석이라는 땅이름이 존재하는 대부분의 지역을 보면 흰 돌이라는 자연물 그대로 옮겨
백석(白石)이라고 했다기 보다는 큰 들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ㅎ,ㄴㄷ,ㄹ이 변하여 흔돌▶흰돌▶백석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백석(白石)이란 땅이름은 18세기 중반의 문헌인 여지도서(1757)에서 처음 등장한다.
18세기 후반의 문헌에서는 구체적인 마을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호구총수(1789)는
백석면이 일패리(一牌里)·이패리(二牌里)·삼패리(三牌里)·사패리(四牌里)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어서 동국여도(1801∼1822), 청구도(1834), 양주목읍지(1842), 대동여지도(1861), 대동지지(1864). 양주목읍지(1871),
조선지리략(朝鮮地誌略, 1888), 양주군읍지(1899), 양주읍지(1899)에서도 백석이란땅이름이 확인된다.
백석은 양주동에서 서쪽에 있으며, 읍치로부터 초경이 10리, 종경이 40리 되는 거리에 있다고 하였다.
한편 정조실록 18년(1794) 1월 17일 조항에서는 양주읍치 뒤로 두 갈래의 길이 있는데,
북쪽에는 울대현(蔚垈峴)이 있고 서쪽에는 백석면이 있어 곧장 관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고 하였다.
양주시 11개 읍면동 가운데 하나로 동쪽으로 양주동, 서쪽으로 파주시 광탄면, 남쪽으 로
장흥면, 북쪽으로 광적면과 접해 있다.
면적은 군내에서 장흥면 다음으로 크다. 백석읍은 남쪽의 앵무봉(鸚鵡峰, 621.8m)으로부터 시작하여
북쪽의 노아봉(老兒峰, 336m)에 이르기까지 한강봉(漢江峰,436m)과 은봉산(隱鳳山,379m) 등의 연봉을
이루어서 동서의 지형구분이 뚜렷해진다. 따라서 북쪽의 오산리(梧山里)에서부터 광적면 가납리와 광석리에 걸
친 드넓은 분지가 발달되어 있고, 기타의 지역은 거의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소재지는 오산리에 있으며
방성리(防城里), 홍죽리(弘竹里), 연곡리(蓮谷里), 기산리(基山里), 가업리(加業里), 복지리(福池里) 등 7개의
법정리와 26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면소재지인 오산리에는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경찰지서,
농협, 양주소방서,초, 중,고 학교 등이 있다.
백석읍 위치도
양주시 행정지도(위키백과 인용)
양주(楊州)는 본래 현재의 서울 강북지역인 한양군(漢陽郡)을 고려 태조때 양주로 개칭한 것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양주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고구려가 각축을 벌인 군사적 요충지로서,
당시에는 매성군(買城郡) 또는 마홀(馬忽)로 불렸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757년)에는 내소군(來蘇郡)으로 고쳤다가 고려 태조 때에 견주(見州)로 개칭했다
양주시는 경기도의 중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동서로 20㎞, 남북으로 30㎞에 이른다. 대체로 산이 많아 평지가 적고, 서·남·북쪽 방면에 흐르는 하천변에 평지가 산재해 있다.양주시는 한강의 지류인 중랑천과 임진강의 지류인 신천(莘川)의 발원지로, 자연경관이 수려해 한국 100대 명산에 드는 도봉산, 북한산, 감악산 등이 있는 곳이다.장흥, 일영, 송추 기산 등 계곡과 저수지가 많아 수도권의 1일 생활관광지로 이름나 있다. 또한, 장흥아트밸리, 송암천문대, 장흥수목원 등 새로운 문화 관광지도 각광받고 있다.
한강봉 정상 이정표
이곳에서 2분정도 주위 전망을 감상하고 좌측으로 본격적인 문산(감악)지맥길을 걷는다.
한강봉으로 내려서니 나무로 만든 개선문같은 문을 통과하여 등로로 내려선다
내려서니 등로는 잘되어 있으며 멋진 소나무들이 즐비하고 좌측 나무사이로 고령산(앵무봉)이 보인다.
첫번째 이정표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선다
등로 아래에 사는 주민들인지 산꾼이 아닌 산보나온 주민들이 보인다
한강봉에서 가야할 은봉산까지 이곳 사람들은 긴등이라고 부른다.
긴등이란 한강봉으로부터 시작하여 은봉산자락까지 길게 이어진 능선으로
능선이 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사람들은 이 능선의 모양이 마치 소가 누워있는 와우형(臥牛形)의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옛날에는 기와집을 짓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소등에 기와가 얹어지면 무거워 부지런히 일을 할 수 없으므로
마을에 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의 혈(穴)에 해당되는 곳에서 매년 음력 10월 1일 산제사를 지냈는데,
이곳에는 지금도 산제사를 드리는 참나무가 있다고 하는데 어딘지 모르겠다.
은봉산 약수터 갈림길(09:10)
은봉산 약수터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니 좌측으로 묘지들이 나온다.
좌측 능선아래에는 잘꾸며진 묘지들이 즐비하다
고령산(앵무봉)과 개명산을 바라보고 있는 묘지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범여가 봐도 명당자리처럼 보인다
비비꼬인 심사인지 좋은 사이인지는 모르겠으나 꼬여있는 소나무를 만난다.
잠시 후에 내리막길에 고개가 나타나는데 지도상 느르미고개이다.
느르미고개(09:25)
양주군 백석읍 가업리 남서쪽 봉산자락에서 기산리 턱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노루목처럼 좁은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장현(獐峴)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상구너미, 턱골고개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고개를 건너 무명묘지가 있는 곳으로 올라서서 은봉산으로 향한다
조금을 올라서니 밤나무 아래에 밤이 꽤나 떨어져 있는데 먼저가는 젠틀맨님은
그냥 지나치고 見物生心이라 범여가 밤을 줏는 사이에 젠틀맨님은 보이지도 않는다.
NO49송전탑(09:33)
송전탑을 지나 내려서니 오늘 처음을로 잡풀과의 전쟁(?)을 준비한다
49번 송전탑을 내려서니 묘지들이 보이는데 등로에는 가시달린 잡풀들이 마구 할킨다.
스틱으로 이리저리 치우면서 겨우 지나 다시 묘지 지난다.
은봉산 입구(09:40)
은봉산 입구는 군부대장의 각종 경고문이 걸려있고 철문이 굳게 닫혀있다
기맥, 지맥을 타는 산꾼들이 가지 말라고 안가는거 봤냐
철문옆으로 해서 군부대가 완벽하게 점령하고 있는 은봉산으로 향한다
은봉산 정상에 오르니 군부대 시설물 이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은봉산에 대한 표시물이 더 있지 않나싶어 직진으로 조금 더 진행한다.
조금을 더 진행하니 조그만 나무에 3000산 정상을 꿈꾸는 한 현우님이
“銀峰山”이란 표지 코팅지가 붙어있어 이곳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이곳 그늘진 곳에서 어제 운악산에서 가져온 가평 잣막걸리 한병을 간단하게 비운다.
은봉산(隱鳳山:380m:09:43)
양주시 백석읍 가업리와 기산리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옛적 의령 남씨일가가 이 산에 장사를 치르는데
지관이 말하길 이곳을 파다가바위돌이 나오면 시신을 그위에 올려놓고 묻으라 하였는데 그러나 자손들은
차마 돌 위에 장사 지낼 수 없어 바위돌을 들어내었더니 숨었던 봉황이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일설에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은을 채굴하였다고 하며 산중턱에는
당시에 채굴했던 은굴이 남아있다고 전한다
지나온 한강봉과 그 뒤 챌봉의 모습
막걸리 한잔 마시고 휴식을 취한 되돌아 온 은봉산 입구(10:10)
이곳에서 소사고개까지 꼬불꿀한 임도로 내려간다
소사고개가는 임도에서 만난 큰갓버섯(식용가능)
소사고개에서 바라본 기산 저수지
백석읍의 남쪽에 위치한 기산 저수지는 대규모 위락시설과 음식점,카페촌들이
들어서 수도권 주민들의 편안한 안식처로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소사고개 (所沙峴:10:23)
양주시 백석읍 홍죽리와 기산리를 잇는 고개로 39국도와 98번 지방도가 지나며
안골에서 기산리 턱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한자로는 所沙峴이며 소새고개라고도 한다
고개에는 기산배수지와 탱크 방호벽이 설치되어 있으며 기산저수지에서 보면 기다란
산줄기가 마치 뱀의 모양을 이루고 있는 모습인데 풍수지리설에는 만약 이 근방에
묘지를 쓰면 "소새"라는새가 뱀을 쪼는 모양이 되므로 가세가 기운다고 하는데
실제로 허씨 집안이 묘소를 쓰고 망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고개의 이름이 소새고개가 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인근마을 사람들은 소새고개가 있는 산자락의 형상을 항상 ‘소‘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소사고개 혹은 소새고개라는 이름이 유래한 이유는
‘소 사이의 고개’가 그대로 변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고개에 대한 자료는 18세기 중반의 문헌에서 부터 확인된다.
여지도서(1757∼1765)에서는 이곳을 소사현(所沙峴)으로 소개하면서, 읍치에서 서쪽으로
30리 거리에 있으며,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가 묻혀 있는 소령원(昭寧園)으로 가는 통로라고 하였다.
이밖에도 대동여지도(1861), 대동지지(1864), 증보문헌비고(1908)에서도 확인된다.
소사현을 한자로 ‘소사현(素砂峴)’이라 한 것은, 옛문헌에 따르면 잘못된 표현이다.
은봉산 입구에서 꼬불꼬불한 임도를 따라서 내려오니 좌측으로는 기산 저수지가 보이고
저수지 위로는 고령산(앵무봉)이 보이며 도로가에는 기산배수지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도로를 건너 배수지 철조망 사이로 감악지맥길을 이어간다
예쁘게 피어있는 구절초
구절초(九節草)는 5월 단오에 줄기가 다섯 마디가 되고, 음력 9월 9일에는
아홉 마디가 된다고 해 이름 지어졌다. 꽃을 완상하며 무슨 의학적 효험을 따질까마는,
딸을 출가시킨 우리네 친정 어머니들은 예전부터 9월이 되면 갓 피어난 구절초를 정성껏
채집해 그늘에 말려 두었다가 시집간 딸이 해산을 하고 친정에 오면 달여 먹이곤 했단다.
구절초가 신선이 어머니들에게 준 약초라는 뜻의 선모초(仙母草)라 불리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힘든 길을 올라오는 산꾼을 격려하는 큰금개국
배수지 철조망 오름길은 잡풀로 인해 그야말로 고역이다
조금을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간벌을 하여 방치해 둔 잡목 때문에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기만 하다. 이곳에는 산초나무에 산초가 많이 달려있어
그것을 따 베낭에 넣는 사이에 젠틀맨님은 얼마나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산불감시초소(10:35)
270m봉(10:38)
봉우리 정상에는 군삼각점(C-0018/331FOB)이 있고 이곳에서 90도 꺽어져 오르내림을 계속한다
310m봉(10:45)
우측으로는 은사시나무 군락지가 보이고...
등로 좌측 아래로는 육지장사가 보인다.
육지장사 회주로 계시는 지원 큰스님께서는 예전에 같은 모임에서 한달에 한번씩 뵙는데
지금은 조계종 포교원장으로 계시는 바람에 바쁘셔서 자주 뵙기가 힘들다.
항상 불교 포교를 고민하시면서 고생하시는 큰스님... 늘 건안하시길
육지장사 홈페이지 인용 |
육지장사 대웅보전, 선재당, 수선당의 모습 - 뒤가 감악지맥 능선이다 (불교카페에서 스크랩)
육지장사 대웅보전
다이어트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사찰이다
팔일봉 갈림길(10:55)
이곳에서 길이 반질반질한 팔일봉가는 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길이 거의없는
능선으로 접어들어 하우고개로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이곳은 조금만 방심하면
팔일봉으로 가는 알바를 하기에 독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구간이다.
우측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희미한 길이 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나온다.
지나온 은봉산의 모습
조금을 내려가면 넓은 임도가 나오고 우측으론 임도가 있다
좌측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사격시 붉은 깃발이 올라가는 깃대기가 보이고...
좌측 능선 위로는 팔일봉이 보인다
팔일봉(八日峰)양주시 광적면 비암리와 백석읍 홍죽리 및 파주시 광탄면 기산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여덟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산을 통해 해를 맞는다 하여
팔일봉(八日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 온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조선 21대 왕인 영조(英祖)와 생모 최씨에 관련된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영조의 생모 최씨는 무수리였는데, 최씨가 죽자 아들 영조는 살아서 천대를 받던 어머니를 좋은 곳에
묻어 주고 싶어서 명당을 찾아다녔다.
여러 곳을 찾던 중, 양주에 와서 명당을 발견하였으나 그곳에는 조선 초에 영의정을 지낸
윤자운(尹子雲)[1416~1475]의 묘가 있었다.
이에 탄식하다가 근처 산에 올라 8일 동안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좋은 묏자리를
내어 달라고 기원하였는데 이로부터 팔일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한편 산등성이가 마치 거룻배처럼 생겼다 해서 거루봉(거룻봉)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팔일봉 산자락 아래에는 현재 조계종 포교원장이신 지원 큰스님이 회주로 계셨던 육지장사(六地藏寺)가 있다.
벙커봉(11:00)
벙커봉이 나오고 벙커 위에는 댕댕이종이 있고 팔일봉과 가야할 노아산이 보인다
벙커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노아산의 모습
벙커봉에서 내림길은 간벌을 한 잡목 때문에 길은 보이질 않고 내가 만들어서 내려간다
벙커봉에서 내려와 직진을 한 다음 좌측으로 꺽어져 다시 우측 비포장 도로로 오른다
하우고개(11:05)
양주시 백석읍 안골에서 광적면 비암리 괴미로 넘어가는 고개로
와우고개·와우개·와우현(臥牛峴)로 부르면서 이름이 참으로 많다
소가 누운 모양의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이곳은 온 천지가 군사시설로
가득하고 민간인 출입은 없고 군사도로가 사거리를 이루고 있다.
군사 시설물
비포장 도로로 올라 우측 능선으로 접어드는데 포장도로로
올라와 우측으로 꺽어져도 같은 능선을 만난다
이제사 새끼 영지버섯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젠틀맨님이 가져온 인천 소성막걸리를 둘이서 한병을
비우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 산속에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오늘 몇번이나 산에서 만나는 라이더
젠틀맨님과 막걸리 한잔 마시고 산길을 걷는데 은봉산에서 만났던
라이더가 아닌 산악오토바이를 즐기는 또다른 라이더를 만난다.
이곳은 산악오토바이를 상당히 많이 만나는데 저 분들도 취미지만 등로가 엄청나게 홰손된다
능선에서 다시 군사도로로 내려서서 뜨거운 퇴악볕에 노아산까지 걸어간다.
넓은 군사도로를 무작정 걸어가는데 한 여름 못잖은 더위가 산꾼을 괴롭힌다
Y자 갈림길(12:15)
노아산 헬기장(12:25)
약 30여분을 군사도로를 걸어온 탓에 옷에는 땀이 줄줄 흘러 내리는데 오늘따라
비가 온다는 예보를 한 구랑청(기상청)이 한없이 밉기만 핟다.
노아산 헬기장에 도착하여 좌측으로 400m 떨어진 노아산에 베낭을 벗어놓고 간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노아산의 모습
노아산 가는 길
노아산 정상의 군시설물은 사용을 하지 않는지 텅텅 비어있다
노아산 정상 삼각점(내용을 할 수 없음)
노아산 (老兒山:337m:12:30)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와 광적면 비암리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월암산(月岩山)이라고도 한다
산에 바위기 많아 달빛이바위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이 매년 10월1일 이곳에서 제를 지낸다
이 산에 묘를쓰면 그 후손이 번창하고 다른사람들은 병과 가난에
시달린다 하여 사람들이 묘를 모두 없앴다고 한다
산 정상은 군 시설물이 완벽하고 점령하고 있다
노아산 정상에서
다시 노아산 헬기장(12:40)
노아산 헬기장 삼각점(△문산 314. 1994 재설)
헬기장 정상에서 동쪽 아래로 내려선다
노아산 헬기장 아래에 있는 군부대장의 경고문
노아산 아래의 공터에서 40여분간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막걸리 한 병을
마신 다음에 베낭을 정리하는데 조금전에 만났던 오토바이족들이 또 지나간다
사거리갈림길 안부(13:30)
사거리 안부에서 직진하여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선다
등로 가운데에 두개의 시멘트 말뚝을 만나고...
Y자 갈림길(13:40)
능선 분기봉에서 내리막길을 내려서서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 희미한 길로 들어선다.
좌측 능선길로 들어서니 선답자의 시그널을 만나고...
내리막길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등로에서 만난 노랑다발버섯
淸州 韓氏 가족묘지를 우회해서 내려서니...
게너미 고개(13:50)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있는 고개로 게가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인근 노고산에 노고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노고 할머니가 오줌이 마려워 다리 한쪽은 노고산에 걸치고 다른 한쪽은 반대편
도락산에 걸친 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와 광석리 경계 지점 부근 황새등고개에 있는 요강바위에 오줌을 쌌다고 한다.
그런데 요강바위가 넘쳐서 인근 개울에 뜨거운 오줌이 흐르게 되었다.
개울에 살던 민물게들은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이 고개를 넘기 시작하여 이웃한
양주시 광적리 비암리와 파주시 광탄면 발랑리쪽으로 갔다고 한다.
그 후로 광적면 연곡리 일대에는 민물게가 보이지 않고 비암리와 발랑리에서만 민물게가 있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400여 년 전 양주 게가 소나기 빗줄기를 따라
파주로 넘어갔다고 하여 게넘이고개라 불리었다고 한다.
실제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게[蟹]가 이 지역의 특산물이었다고 적혀 있다.
혹은 게와 관계없이 고개가 높고 험하여 ‘기어 넘어가는 고개’라는 순우리말이 변화된 명칭으로 보기도 한다.
게너미고개를 해유령(蟹踰嶺),해유현(蟹踰峴)해현(蟹峴),해령(蟹嶺)이라고도 불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해유령이 양주 치소에서 서쪽으로 30리 되는거리에 있으며 파주로 통하는 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게너미고개에서 왜군과의 육지 싸움에서 최초의 승전이게넘이고개(해유령)에서 있어 해유령전투로 기리고 있다.
게너미고개 옆에는 1977년 10월 3일에 경기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된 해유령 전첩지가 있다.
1977년 4월 21일에 이곳에 세워진 해유령 진첩비는 승리를 거두고도 억울하게죽은 부원수 신각(申恪)[?~1592]을 기리는 비이다.
해유령 진첩비 바로 앞에는 신각의 충절을 기리는 충현사(忠顯祠)가 있다.
게넘이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르니...
상서원 판관부사를 지낸 당진한씨 묘지 옆으로 오른다
묘지를 지나 능선 오르는 길은 보이질 않고 오르막길은 내가 길을 만든다
능선에 올라 우측으로 90도 꺽어져서 가는데 이곳도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
잠시후 다시 좌측으로 꺽어지니 이곳부터는 호화묘지를 계속 만난다.
조금전에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고...
묘지에서 바라본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遇古里) 우골마을의 모습
여러개의 골짜기가 여기서 만난다는 뜻의 遇谷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묘지에서 만난 등골나무꽃
묘지를 가로질러 다시 잡목이 가득한 능선으로 오른다.
다시 잡목을 만나 헤치고 오르니 다시 호화묘지를 나타나기 시작한다.
좌측으로는 호화묘지들이 계속 나타난다.
소나무가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젠틀맨님과 막걸리 한병을 나눠 마신다.
이곳에서 뚜렷한 직진길을 버리고 희미한 좌측길로 간다
다시 넓은 임도가 나오고 엄청나게 큰 송전탑을 만나 다시 좌측 넓은 임도로 걸어간다
넓은 임도에서 이 아래에 생긴 수녀원에서 산책나온 수녀님 두분을 만난다.
송추에서 이곳까지 걸어왔다고 젠틀맨님이 설명하자 이해를 못하는 눈치다
등로에서 만난 모싯대
넓은 임도를 내려오니 Y자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새우개(三峴)고개(14:40)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에 있는 고개로 315번 지방도가 지나는 4차선 도로로
삼현터널 위 동물이동통로 감악지맥길을 이어간다
마을이름을 안새우개라 부르는데 이 마을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세고개
우골고개(점말고개),언굴고개(갈곡령),자작고개(화암령)를 넘어야 한다는데서 유래한다
세고개에서 음운이 변한것으로 보인다
공터를 지나가는데 넓은 공터에 개망초가 가득하다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우측으로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잣나무 단지가 나오고...
잣나무 단지를 지나는데 시원한 그늘에 바람이 살짝 불어온다.
안부능선으로 올라서니 감곡성당에서 붙여둔 ‘산책로’란 코팅지를 자주 만난다.
양주시에서 설치한 체육시설을 만나 2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노고산 군사도로(14:55)
U자로 굽은 좌측의 도로를 버리고 경고문 뒤쪽의 능선으로 올라선다.
명색에 정통산꾼을 자처하는 범여가 도로를 따라 걷지는 않는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레이더봉 입구까지 갔다가 좌측 도로로 내려온다기에
조금이라도 지맥길을 이어가기 위해서 도로에서 300m 쯤 올라갔는데 갑자기
센서가 감지 되었는지 군부대에서 빨리 나가라고 경고방송이 흘러 나오는 바람에
레이더봉 아래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능선 아래 군사도로로 쫒겨 나온다.
등로에서 쫒겨 나오는 동료산꾼 젠틀맨님
다시 도로를 따라 무작정 걸어가는데 오늘 4번이나 만났던 오토바이족을 또 만난다.
노고산 입구(15:10)
감악지맥길은 저곳 노고산에서 능선을 타고 1.7km만 가면 스르네미 고개가 나오는데
1968년 1.21 사태에 김신조 일당이 이곳 노고산을 거쳐서 청와대를 습격한 이후로
감악지맥 이 구간은 완전 통제되어 4km가 넘는 길을 우회하여 가야만 하지만
이곳은 휴전선이 가까운 최전방 지역이라 국가가 하는 일에 추호의 토를 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공군부대가 점령하고 있는 노고산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우회도로로 내려간다
산꾼들은 산에서는 펄펄 날으지만(?) 이런 시멘트 도로에는 정말 쥐약이다.
레미콘 공장까지 내려오는데 발바닥에 불이나는 느낌이다.
이곳은 의미없는 길이지만 그래도 가야하기에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노고산(老姑山:400.9m)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와 덕도리와 파주시 법원읍 갈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신 할머니가 있었다 하여 노고산(老姑山)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이 산에 관련된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노고성 할머니가 치마로 돌을 옮겨 성을 쌓다가 도락산과 노고산에 두 다리를 걸치고 오줌을 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노고성 할머니 밑에 있던 게가 뜨거운 오줌에 놀라 할머니를 물어버렸다.
그러자 화가 난 노고성 할머니는 게를 파주 너머로 던져버렸다. 이로부터 노고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노고산은 산신 가운데 할머니 산신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노고산이나 노고봉을 할미봉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르는데 대개 이런 곳은 산신제를 지내던 장소이다.
노고산이라는 이름은 19세기 중반의 지리 관련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동국여도(東國輿圖)』[1801~1822]에서는 노고산이라고 하였으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에는
석적산(石積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광적면의 옛날 지명이 석적면이었으므로 석적에 있는 산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지역에서는 노고산을 서석적산(西石積山)이라고도 부른다.
레미콘 뒷쪽에 보이는 노고산 능선의 모습
노고산 입구에서 15분 정도를 내려오니 미화레미콘 파주 공장이 나오고
노고산 능선이 계속 산꾼을 따라 같이 걸어간다.
전국에 걸쳐있는 노고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을 보면, 외형적으로 정상부근의 모습이 둥글둥글하여
노년기 산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노고산은 대부분 늙은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전설이 붙으면서
'老姑'라는 할미귀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노고산을 다른 이름으로 국사봉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것도 대개 낡은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산제사를 지내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미화레미콘 공장 입구(15:25)
부대입구(15:40)
파주시 법원읍에서 양주시 광적면으로 이어지는 56번 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구 도로 윗쪽엔
신설 4차선도로가 한참 공사중이고 우측으로 꺽어져 도로를 따라 한없이 걸어간다
도로를 따라서 스르네미 고개로 향한다.
법원읍 갈곡리 버스 정류장도 만나고...
탱크 방호벽도 지나고...
도로를 계속 걷는데 이곳은 차량소통이 많아서 갓길로 걷는게 상당히 위험하다
법원읍 오현리 사거리(15:55)
법원읍(法院邑)은 이 지역의 전신인 천현면은 갈곡리와 삼성대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샘물이 법원리와 대능리 벌판 자갈과 모래로 덮여 있는 지하 1km 정도로 물줄기가 흘러
가야리 황새말 앞으로 터져 흘러내리자 샘물을 덮어 흐르는 고개(泉峴|[샘재])라 하였던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법원읍은 읍내 법정리인 법원리에서 이름을 딴 것인데, 이는 법의리의 법자와 원기리의 원자를 따서
이름한 것이며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원(法院)과는 한자만 같을 뿐 상관관계가 없다.
율곡 이이의 장지도 이 지역에 있는데 율곡 선생의 고향이 이곳 파주이다
오현리 삼거리에서 양주, 의정부 방향으로 가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휴식을 취할 겸
동료산꾼 젠틀맨님과 막걸리 한 병을 나눠 마시고 건너에 있는 수퍼에서 생수 한병과
캔커피를 사서 마신뒤에 다시 스르네미 고개로 향한다
스르레미 고개 가는길에서 바라본 문산(감악)지맥(원래) 능선
노고산에서 1.7km면 내려올 길을 공군부대 때문에 4km를 넘는 길을
우회하여 스르레미 고개까지 우회를 하여 걸어온다.
스르레미 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스르레미고개(14:15)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면과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고개 정상에는 파주시와 양주시 경계를 알리는 해태상 2가가 서있다.
소가 수레를 끌고 넘었다는 이 고개는 그 옛날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이 넘던 곳으로
김 신조가 개성을 출발하여 고랑포(경순왕릉)를 거쳐 파평산과 법원리의 삼봉산(비학산)
줄기를 따라 이 스르네미 고개에 이르러 노고산으로 진입을 했다고 한다.
능선 좌측 임도 옆에 있는 나무에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김신조 일당 침투루트
스르레미 고개에서 좌측 능선에 있는 임도를 따라 올라선다.
임도를 올라가다가 Y자의 임도를 만나 넓은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조그만 능선에 올라 서는데 갑자기 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花蛇 한넘이 깜짝 놀라서 도망을 가는데 뱀을 싫어하는 내가 더 놀랬다.
능선을 지나니 다시 묘지군이 나오고...
이곳은 사격장이 들어서기에 묘지이장을 하라는 안내문을 지나고...
벙커봉(16:30)
벙커 정상에는 땡땡이종도 보이고
다시 벙커봉에서 임도로 내려온다
군부대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도로로 걸어간다
오늘은 능선보다 군사도로, 임도를 더 많이 걷긴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도로에서 바라본 양주시 광적면의 山河
헬기장(17:00)
임도옆 헬기장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서 다시 좌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능선에서 조금 지나니 다시 266.1m봉이 나타나고 벙커위에 삼각점이 나온다.
266.1m봉(17:05)
266.1m봉 정상에는 군벙와 삼각점 그리고 화생방신호규정 푯말이 있다
정상에서 우측 교통로 내려서 다시 군사도로를 따라 계속 걷는다
266.1m봉에 있는 군시설물
교통호로 내려와서 다시 도로로 걸어가다가...
Y자 갈림길(17:08)
망토 갓버섯도 만나고...
넓은 군사도로를 버리고 우측 좁은 길로 걸어간다.
Y자의 길에서 직진으로 들어서서 험한 자갈길로 올라서서 암봉으로 향한다.
암봉(17:25)
암봉 정상에 도착하니 오늘 처음으로 파주에서 왔다는 부부 산꾼을 만난다.
게내미고개에서 왔다고 한다. 이분에게 부탁하여 젠틀맨님과 처음으로 같이 인증샷을 남긴다.
이름 그대로 주위의 조망도 좋지만 날씨가 흐리고 시간이 많이 늦은 탓인지
가야할 감악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정상에는 군부대 삼각점과 커다란 굴이 있다.
이곳에서 700ml 캔맥주에다가 포도를 나눠먹고 수레네미 고개로 향한다
암봉 정상에 있는 군 삼각점
암봉 정상에서 인증샷
암봉정상에 있는 굴
다음구간에 가야할 감악산을 조망하고...
암봉에서 휴식을 겸한 맥주 한잔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수레네미로 내려오는데
숲속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급경사 내리막길에 잣나무 숲은 젖은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조심스럽게 내려오니 포장임도가 나오는데 수레네미 고개이다.
수레네미고개(車踰嶺:17:50)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거미울에서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 중국으로 가는 길목이라 수레가 끊임없이 넘나들던 고개라 하여 수레네미고개라 하였다.
또 지세가 험하고 도적이 많아 쉰 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었으므로 쉰고개 또는 쉰넘이고개라고도 하였다.
혹은 고개가 험해 몇 번을 쉬어야 넘을 수 있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에 차유령이 처음 보이기 시작하여『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1908] 등에도 차유령이 나온다.
현재 수레네미고개는 이용되지 않고 그 옆에 새로 놓인 2차선 포장도로를 통해 차량들이 통행하고 있다.
거미울이라는 마을의 원래 이름은 ‘수레 거(車)’에 ‘말 마(馬)’자를 써서 거마울이었다.
거마울, 거마울 하던 발음이 거미울로 변형되어 거미울마을이 되었다.
여기에는 마차길이 지나는 곳이라 주막이 있었다. 장사꾼들은 고개를 넘기 전에
그 주막에 모여 잠을 자고 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꼭 쉰 명이 모인 다음에야 그 고개를 넘어갔다.
한두 명씩 고개를 건너가면 강도들이 나타나 물건을 모두 빼앗아 가기 때문에 강도를 당하지 않기 위해
쉰 명씩 모여서 고개를 건넜던 것이다. 쉰 명이 모여 넘어 간다고 하여 처음에는 그 고개를 쉰넴이고개라고 하였는데
쉬르네미, 쉬르네미 하다가 수레네미고개로 부르게 되었다.
수레네미 고개에서 절개지로 올라서서 20여분을 올라가다가 아무래도 여기서
1시간 반을 더가야만이 오늘 목적지인 설머치고개이라 아무래도 힘들것 같아
다시 포장도로로 내려와서 벌말쪽으로 내려와 지나가는 차량을 히치하여
그 분의 목적지인 적성에 도착하여 서울 불광동으로 가는 30번버스로 서울로 귀경한다
오늘의 전리품인 산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