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4년 5월 18일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0km + 어프로치 약1.2km / 9시간 40분소요
☞ 참석인원: 온누리님과 둘이서
☞ 산행코스: 바람재-노적봉-바람재-463봉-화학산 분기봉-능성삼거리-개바위등
각수바위재-각수바위-398봉-유치재-461봉-450봉-소반바위산
451봉-문암재-수락재-447봉-큰재-400봉-임도-409봉-임도-송전탑
덕룡재-세류촌 임도-410봉-덕룡임도-371.5봉-400봉-자갈바위-376봉
기동재- 354봉-개천산-임도-고인돌소공원-탐진강 발원지-궁성산 갈림봉-
아크로C.C-오두재
☞ 소 재 지: 전남 화순군 청풍면, 도암면, 춘양면 /장흥군 장평면, 유치면/영암군 금정면
나주시 봉황면
6년 5개월에 걸쳐(2009년 1월 4일부터 시작) 진행하여 백두대간(북진.남진), 9정맥, 9기맥중
이제 마지막 한 구간인 땅끝기맥을 마무리하기 위해 토욜밤에 광주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오늘 첫구간에는 4년전 낙동정맥을 같이한 온누리님께서 동참을 하신다고 하여 광주에서
만나기로 하여 광주에 도착하니 저녁 9시 45분이다
땅끝기맥의 개념과 지도
전남 장흥군 유치면에서 화순군 이양면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상의 839번
지방도로의 곰재(웅치)에서 올라서면,국사봉(499.1m),깃대봉(448m)을 지나고
삼계봉(5.3.9m)에 이르기 전 바람봉(노적봉) 헬기장(430m)에 올라선다.
이곳 바람봉(노적봉)에서 북으로 따로 분기하여 각수바위,계천산(400m),국사봉(614m),
월출산(808.7m),월각산(456m)으로 이어지면서 영산강의 남쪽벽을 이루다가
별뫼산(464m),서기산(511m),첨봉(354m),두륜산(700m), 대둔산(671.5m),달마산(499m),
도솔봉(421m)을 거쳐 우리나라 육지 최남단인 땅끝 마을에서 바다로 빠지는
도상거리 약122.7km의 산줄기다.
동으로는 탐진강 ,서로는 영산강을 나누는 분수령이기도 한 땅끝기맥은
월출산 천황봉(808.7m)이 기맥의 최고봉이고 두륜산(700m),대둔산(671.5m) 외에는
500m도 안되는 낮은 산으로 어어지지만 ``남도의 수석전시장'' 으로 불리듯
암릉구간이 많은 아기자기 하면서도 옹골찬 산줄기로 산악인들로부터
``다시 가보고 싶은곳'' 으로 주저없이 손꼽는 곳이기도 하다.
산자분수령의 공식을 대입하자면, 별뫼산 이후로는 영산강이나 탐진강의 하구와는
멀어지는 듯도 하지만 우리나라 땅줄기의 끝점으로 간다는데 더 큰 의미를 둔다.
이렇게 볼때, 대간이나 정맥의 구분 없이 백두산에서 이어지는
마루금으로는 나라 안에서 가장 긴 산줄기가 된다.
언제 일지는 알수 없지만 ``땅끝에서 백두산까지'' 라는 제목의 종주기를 기대할만도 하다.
섬을 제외한 우리나라 육지부의 최남단인 땅끝은 더불어 우리나라 바다를 구분짓는 기준점이기도 하다.
낙동정맥의 끝인 부산 다대포 몰운대는동해와 남해를 가르는 기준점이고,
이곳 해남 땅끝은 서해와 남해를구분하는 기준점이 되는 곳이다.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갈두부락 사자봉 아래 땅끝탑에서
남서 방위각 225도로 그은선이 바로 서해와 남해의 경계선이 된다
땅끝기맥 지도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광주행 고속버스
광주행 버스티켓
2주전과는 달리 오늘은 정확하게 3시간 20분만에 광주 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저녁은 안 먹은 탓인지 배가 상당히 고프다
터미널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해물순두부에다 션한 맥주 한잔 마시고
2층에 있는 수면실로 향한다.
유 스퀘어 24 수면실(22:30~04:40)
수면실은 2주전과는 달리 자리가 많이 있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너무 더워서
자다가 말고 옆에있는 온돌로 되어 있는 방으로 가니
이곳은 상당히 시원하다... 편하게 04:30분까지 수면을 취한다
광주고속터미널의 모습
이른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끝내고 수면실을 나와서 지하 식당에서
온누리님과 부대찌게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집에서 가지고 온 빈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담는다... 밥값이 1,000원인데 지난번에 들렸다고
이것저것 반찬까지 담아주는데 남도의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다
광주발 → 청풍행 버스표
광주발→장흥행 버스(06:05)
식당에서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광주발 장흥행 06:05분 버스에 오른다
이 버스는 말이 직행버스이지 화순을 거쳐 화순군 면소재지 구석구석을 지난
다음에 우리가 하차할 화순군 청풍면사무소앞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청풍면 버스정류장(07:00)
열흘전에 예약한 이양택시 이 성일님이 가족들과 여행을 가면서 대신에
자기 친구를 소개해 주었는데 버스가 서자마자 버스뒤에 택시가 대기하고 있다
바람재 아래 들머리(07:30)
땅끝기맥의 들머리인 바람봉(노적봉?)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대체적으로 장흥군 장평면
병동리에 있는 운곡마을에서 시작을 하는데 난 극소수의 선답자들이 선택한 이만리 저수지쪽의
방향을 택했는데 너무도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청풍면사무소앞 버스 정류장에서 839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가 석치마을 표시석이 있는
신석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올라서니 꽤나 큰 이만리 저수지가 보인다
이곳에서 조금을 더 올라가니 비포장도로이긴 하나 차량이 올라가는데 무리가 없다
저수지를 지나 5분정도 오르니 우측으로 새로운 포장도로가 나오나 이곳에서
좌측 비포장도로를 따라 3분정도 올라 사방댐 가기 직전 공터에서 내린다(택시비 15,000원)
이곳에서 내리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긴 하나 길은 거의없다
애기똥풀을 비롯한 야생화들이 수줍은 모습으로 산꾼을 반긴다
10분정도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바람재에 도착을 한다
바람재(07:40)
말이 바람재이지 잡목과 찔레꽃이 군락을 이뤄 재의 흔적이 잘 보이질 않는다
찔레꽃이 만발하여 진한 향기를 뿜어댄다
급경사를 치고 오른 탓인지 갑자기 배가 아파온다
정당한 장소를 택해 이른 아침에 시원하게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좌측으로 땅끝기맥 분기봉인 바람봉으로 올라선다
바람봉(430m:07:50)
전남 화순군 청풍면과 장흥군 유치면, 장평면 등 2개군 3개면의 접경하고 있는
봉우리로 화순군 청평면으로 흐르는 봉우리는 영산강 상류인 지석천으로 흐르고
장흥군 유치면으로 흐르는 물은 탐진강 상류인 탐진댐으로 흐르는 두 강줄기
발원지이며 호남정맥에서 갈라지는 땅끝기맥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노적봉(露積峰) 정상석이 세워져 있지만 바람재 위에 있는 봉우리라 하여
‘바람봉’이라 불리워지고 있는데 아무런 고증도 없이 개인이나 단체가
이름을 붙이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 보이며 모 산악회는 실수한 것 같다.
바람재삼거리라 하는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200여m 봉우리 아래에 있는 바람재 위에 있는 봉우리라 바람봉이라 부른다
9기맥중에서 가장 멋있는 구간으로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
산꾼들에게 사람받는 월출산과 설악산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을 방불케하는
멋진 암릉구간이 많고 영암, 강진, 해남을 거치면서 다산 정약용선생과
고산 윤 선도의 발자취를 느낄 수있는 멋진 곳이다.
4년만에(2011, 6.5) 다시 찾은 바람봉 정상 참으로 감회가 남다르다.
5년만에 다시 찾은 바람봉 정상
넓은 공터에 이정목, 선답자들의 시그널... 모두 다 그대로인데 다시 찾은 범여만 변했나?
호남정맥 능선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주렁주렁한데 땅끝기맥 능선은 초라하기만 하다
이곳 좌측 능선 아래 장흥군 유치면에는 우리나라 불교의 禪脈을 이어온 九山禪門 중의
한 군데인 가지산문(迦智山門)의 본산인 장흥 보림사가 있는 곳이다
보조체징선사가 당나라에서 840년 신라로 돌아와 전남 장흥 가지산(迦智山) 보림사(寶林寺)에 산문을 열었다.
바로 이 산문이 조계종의 시작점이다. 가지산문은 손자뻘인 체징이 개산(開山)하였지만,
이 산문은 도의 선사의 선사상을 배경으로 확립됐다... 보림사를 향해 예를 올리고 땅끝기맥길을 시작한다
보림사(寶林寺)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가지산 봉덕리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 말기의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860년(헌안왕 4) 보조체징(普照體澄)이 초암을 확대해 지은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였다.
가지산파(迦智山派)의 근본도량으로 인도의 가지산 보림사,
중국의 가지산 보림사와 함께 삼보림(三寶林)으로 일컬어졌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중수와 중창을 거쳐 대사찰이 되었으나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
현재 경내에는 3층석탑·석등·보조선사창성탑(普照禪師彰聖塔)·
보조선사창성탑비·동부도·서부도·철조비로자나불좌상 등 다수의 유물이 전하고 있다.
「땅끝기맥」은 공식명칭은 아니고 조석필씨가「태백산맥은 없다.
이 땅의 산줄기는 백두대간이다」(도서출판 사람과 山 간행)에서
「산경표」를 좀더 윤택하게 쓰기 위해 명칭이 없는 몇몇 산줄기를 기맥으로
부르자 했고 그 중 땅끝에 이르는 산줄기를「땅끝기맥」이라 명칭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상석에는 바람봉이 아닌 노적봉이란 정체불명의 표시석이 서있다.
호남정맥에서 땅끝기맥이 분기하는 봉우리에는 [노적봉] 표지석이 있다.
이 표지석은 목포노적봉산악회가 땅끝기맥을 완주하고 그 기념으로 세웠다고 한다.
목포 유달산 언저리에는 '노적봉'(높이 65m)이 있고, 산악회는 이 이름을 따서
'노적봉산악회'라고 했고, 땅끝기맥분기점은 산악회이름을 따서 '노적봉'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니 땅끝기맥분기점 명칭은 그곳과 전혀 관련이나 유사성이 없는 목포의 노적봉이 옮겨온 것이다.
무명봉에 산 이름을 꼭 붙여야 할 경우에는 자료와 현지조사를 통해 본래의 이름이 있으면
이를 찾아주고, 이름이 없는 경우는 그 산에 어울리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름을 붙여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표지석은 그 산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는 중요한 정보이므로 공인된
(현재 산,고개,섬 등 자연지명은 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토지리정보원장이 고시를 하고 있다)
명칭만을 사용하고 개인이나 단체가 임의로 이름을 만들어 설치하는 일은 삼가고,
기왕에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님의 글 중에서)
바람재(08:00)
장흥군 유치면 대천리에서 화순군 청풍면 이만리를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아래에 있는 우치리 소재 남쪽에 있는 고개로 북쪽이 트여서
바람이 세다하여 붙혀진 지명이란다
바람봉 정상까지 갔다가 다시 이곳에 내려와서 땅끝기맥의 첫 발을 내딛는다.
재의 정상에는 각종 잡목과 찔레꽃 나무 군락을 이루고 있어 등로가 보이질 않는다
이른 아침에 찔레꽃 향기가 코를 찌른다.
마치 상큼한 여인의 향기처럼...
바람재를 가로질러 오르니 바닥의 등로는 어렴풋이 보이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잡목으로 인해 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길을 무조건 치고 나간다
잠시후에 넓은 임도처럼 보이는 곳이 나오긴 하지만 잡목이 우거지긴 매한가지다
초반부터 고난의 연속이지만 지난번에 탔던 영산기맥길에 비하면 양반이다
잡목을 헤쳐 나가는 요령과 영산기맥길의 학습효과 때문에 겁은 별로 나질 않는다
거기다가 오늘 동행한 산행고수인 온누리님이 있질 않는가...
잡목을 헤치고 나가니 조금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잠시후에 장흥군 유치면 대천리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나오지만 이곳에서
직진으로 올라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산꾼 범여를 반긴다
잡목이 가득한 희미한 넓은 임도로 올라가다 y자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 넓은 임도를 따라가야 영산기맥길인데 우측 정상으로 오르는 등로가 뚜렸하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길래 무심코 10여분을 올라서 가니 길이 보이질 않는다
다시 지도를 보고 정리를 하니 이곳은 화학산 오르는 길이라 되돌아 내려온다
산행을 할 땐 여름산행이 가장 힘드는 것 같다
녹음이 무성하여 능선이 보이지 않으니 맥길을 읽을수가 없어서 말이다
예전에 풍수지리 공부를 할 때의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명당 자리를 보려거던 무조건 겨울에 가라는 말씀을...
화학산 갈림길(08:40)
이곳에서 우측으로 올라가면 화학산 가는 길이고 좌측 내리막길로
내려서면 영산기맥길인데 이곳부터는 뚜렸한 등로에 길이 무지좋다
등로 우측으로 화학산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다
화학산(華鶴山:613.8m)은
전남 화순군 청풍면 청룡리, 이만리, 도암면 우치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으로 풍
수지리상 지형이 큰화학산, 작은 화학산으로 한 자웅의 학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형상을 하고있는 화학귀소형(華鶴歸巢形)이라 하여 화학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수많은 능선이 새의 깃털 같아 마치 황금 새가 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해서 황학산(黃鶴山)이라고도 부른다.
화학산은 아들딸을 낳고자 소원을 빌었고, 소원성취를 위해 만사형통 산신계를 올렸으며,
예전에는 가뭄이 들면 정상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6.25전쟁 때는 정상고지에 방호진지가 있었던 곳이다.
험한 능선으로 이어진 산세와 장흥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동학혁명 당시에는
동학군이 주둔하기도 했으며, 동학농민전쟁 이후에도 의병전쟁, 6.25전쟁 등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1951년 4월,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대혈전이 벌어져 수천명의 귀중한 인명이 희생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호남정맥이 화순의 최남단인 봉미산으로 이어진 후 서쪽으로 향하다가 삼계봉에 이르러 북쪽으로
치솟은 산 중의 하나로 주능선은 남북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고 산세가 밋밋하고 바위지대도 적어 그
리 험하지 않은 육산으로 산기슭에는 문바위와 두개의 폭포, 각수바위가 볼거리이고, 나주호의
풍경을 볼수 있는 곳이기도 한 곳이다
편한 길을 따라서 조금 내려서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기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능성삼거리(08:50)
고속도로(?)같은 넓은 임도를 걸어가는데 능성삼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개바위등(08:55)
개바위등 이정목에서 임도를 따라서 직진을 한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는데 넘어진 나무로 인해 걷기가 불편하다
개바위등 이정표에서 2~3분정도를 걸어오니 ㅏ자형 갈림길이 나오는데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내리막길로 접어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잠시후에
좌측에 있는 濟州梁公의 묘지가 나오는데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라고 했는데 간벌을 하여 마구 버려진 나무들로 인해
도저히 길을 걸을수가 없어서 다시 되돌아와 편한길로 내려선다
제주양공 묘지에서 바라본 각수바위
등로에서 잔나비 걸상버섯도 하나 수확하고...
우회하여 소반바위재에 내려서니 찔레꽃을 비롯한 잡목들이 태클을 건다
각수바위재(09:05)
장흥군 유치면과 화순군 청풍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찔레꽃을 비롯한
잡목들이 너무 많이 우거져 있어 고개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지만 유치면쪽
직진으로 등로는 뚜렸히 보이지만 우측 기맥길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이곳에서도 약간을 헤매다가 등로를 찾아서 기맥길을 걸어가는데 초반에
30여분을 헤매는 바람에 시간을 꽤 흘렀는데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각수바위재에서 올라오니 東來鄭公의 묘지가 나오고 묘지 좌측으로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오면서 좌측으로 꺽어져 기맥길을 이어간다
각수바위 갈림길(09:20)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20m 벗어나 있는 각수바위로 올라선다
각수바위 오름길에서 바라본 화순군의 산그리메
화순군 지도(위키백과 인용)
동쪽은 곡성군과 순천시, 서쪽은 광주광역시와 나주시, 남쪽은 보성군과 장흥군,
북쪽은 담양군과 접해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무등산(無等山:1,187m) 줄기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북동쪽으로 뻗은 줄기에는 백아산(白鴉山:804m)을 비롯하여 구봉산(九峰山)·천운산(天雲山:608m)·
태악산·종암산·우봉산을 일으키고, 순천시·보성군의 경계에는 모후산(母後山:919m)이 솟아 있다.
북서로 뻗은 줄기에는 만연산(萬淵山)·종괘산(鐘掛山)을 이루고, 남서로 뻗은 줄기에는
화학산(華鶴山:613m)·천대산(天臺山)·해망산(海望山) 등이 있는데 대부분 견고한
화강편마암류의 암석으로 되어 있다.
지석천(砥石川)은 이양면(梨陽面)에서 발원하여, 26개의 지류가 합치면서 남평(南平)으로 흘러 영산강에 합류한다.
동복천(同福川)은 북면(北面) 백아산에서 발원하여, 21개 지류를 합치고 보성강에 합류한다.
화순천(和順川)은 동면(東面) 청궁리(靑弓里)에서 발원하여 8개 지류를 합친 뒤
능주면(綾州面) 원지리(元池里)에서 지석천에 합류한다. 화순천 유역의 능주평야를 제외하고는 평야가 없다.
각수바위(角首巖峰:515m:09:20)
화순군 도암면 우치리와 장흥군 유치면 대천리 경계 능선에 있는 암봉으로
두개의 봉우리가 뿔 모양(角首)이라해서 각수바위라 부르기도 하고
새댁의 원혼이 서려있어 각시바위라 불렸다는 설도 있다.
봉우리 정상에 오르니 2개의 뾰족한 봉우리 사이로 천길 낭떠러지인데
오금이 저려올 정도 아찔하며 바로 아래에는 우치저수지가 보인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화학산이 각수바위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 암릉 아래에 있는 마을이 우치리(牛峙里)인데 우치의 뜻은 원래 소재(牛峙)라
부르는 것을 한자로 소우(牛) 자와 고개치(峙) 자를 각각 취하여 우치라 한것이다.
우치리에는 소재(牛峙) 마을, 문바위(門巖) 마을, 각수바위(角首巖) 마을, 가마터 마을 등
4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120호가 거주하였으나 6.25 이후 마을의 소각과 함께 폐촌이
되다시피 되었고 이후 이농현상으로 문바위, 가마터, 각수바위 마을은 폐촌되고
현재는 소재마을만 남아 30여호가 살고 있다고 한다.
각수바위 정상에서 바라본 화학산과 우치제의 모습
동행한 온누리님
5년전 낙동정맥길에 첨 뵌 분인데 나의 롤모델이 되신 분이다
산행전에 완벽한 조사와 정보 그리고 꼼꼼한 기록을 하시는 분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정말 많이 배웠다... 나보다 한참 위인 6학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모습... 배워야할 게 참 많으신 분이다
각수바위 아래에 피어있는 노란꼬들배기
되돌아 온 각수바위 갈림길(09:25)
각수바위에서 멋진 조망을 감상하고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다시
물한모금을 마시고 베낭을 걸머지고 기맥길을 나선다.
등로는 숲이 우거져 그늘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상당히 덥고
바람 한 점이 없다. 헤어밴드에 땀을 계속 짜내도 또 다시 이마에 땀이 흐른다
식수가 조금은 걱정이 된다. 생수2L, 막걸리 한통, 스포츠 음료 하나에
쥬스 2개가 있건만 이럴때는 식수 조절이 잘 안된다
목마르다고 벌컥벌컥 마셨다가 식수 때문에 산행을 포기한 경험이
있기에 목이 왠만큼 마르면 참으면서 기맥길을 걸어가는데 여간 고역이 아니다
갈림길을 지나오니 潭陽田氏의 묘지가 나온다
담양전씨의 묘지를 지나서 우측의 멋진 암릉을 끼고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서서 우측으로 꺽어져 옆사면길로 접어드니
산죽길이 나오고 바람 한점없는 날씨에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땀은 비오듯...
멋진 소나무 한그루를 만나고... 다시 정글같은 산죽 군락지를 지난다
등로에서 바라본 장흥군 유치면 운월리의 모습
정말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오지마을이 보인다
동료산꾼 도리깨님이 이곳에서 가까운 장평면 출신인데
예전에 호남정맥길에서 자기 친구가 장평면 양조장 사장이라
막걸리 얻은 먹은적이 있는데 이 양반 같이 왔으면 막걸리 걱정은
안해도 될낀데...요즘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도 없으니...ㅋㅋㅋ
하늘밖에 안 보이는 등로를 따라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우치재(牛峙:09:50)
화순군 도암면 우치리와 장흥군 유치면 소양리를 잇는 임도로 우치재 또는
바람재라고도 부르며 지명은 우측 아래의 우치마을에서 따온 모양이다
시멘트로 포장된 넓은 임도로 임도에는 나물 채치꾼의 것으로 보이는
RV 차량 한대와 산불조심 경고판이 붙어있다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여자 둘, 남자 한명이 나물 채취에 여념이 없다
다시 완만 능선을 따라 걷지만 바람한 점 없는 더위에 정말 미칠것만 같다
461봉(10:10)
정상은 넓은 공터인데 억새가 정상을 점령하고 있다.
혹 삼각점이나 있을까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서 기맥길을 향하는데 다시 잡목지대의 정글이 나온다
어디로 가란 말인지... 길도 안보이고...
예전에 방화선 임도였던 것 같은 넓은 임도인데 잡목과 가시나무가 길을 완벽하게
점령하는 바람에 무식하게 밀고 나가는데 무릎에 상처가 났는지 쓰려온다.
다행인게 집에서 다 떨어진 등산바지에 등산화, 폐기처분 일보직전의 베낭을
가져온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등로 주위에는 참취를 비롯한 떡취 등
취나물이 많이 보이지만 난 곰취 왜엔 거들떠 보지도 않기에 그냥 지나간다
15분정도를 잡목이 우거진 방화선 임도를 걸으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이곳에서
직진으로 향하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 소반바위산으로 오른다
다시 잡목과의 전쟁(?)을 치르는데 이곳 역시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귀한 백색 꼬들배기를 만난다
소반바위산(小盤巖山:493m:10:35)
장흥군 유치면과 화순군 도암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짧은 발이 달린 밥상을 소반(小盤)이라 하는데 밥상처럼 생긴
바위라 하는데 소반 모양의 바위는 어디 있는지 찾을 길이 없고 잡목만 무성하다
선답자들의 시그널 몇개만이 소반바위 산임을 알려준다
정상에서 뚜렸한 직진길이 있지만 기맥길은 올랐던 길을
다시 30여m 되돌아와서 우측으로 꺽어져야 한다
한 현우님의 표지기... 대단혀요
소반바위산 가기전 30여m에 꺽어져 땅끝기맥길로 향하는 길에는 숲이 너무
많이 우거져 있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보이지 않아 주위를 요하는 구간이다
우측으로 확 꺽어져 내려서야만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가야할 451봉의 모습
소반바위산에서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좌측으로 간벌지역을 만난다
조금전에 지나온 소반바위산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451봉 능선에 오르니 좌측으로 화학산이 아련히 보인다
수락재(10:50)
아무것도 없는 조그만 공터인데 지도상에 수락재라고 표기가 되어있다
수락재를 지나 평평한 안부 능선에서 의자를 펴고 웃통까지 벗어놓고 막걸리
한통으로 동행한 온누리님과 나눠먹고 10분 넘게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길을 걷는다
오늘따라 막걸리 맛이 꿀맛같다
수락재를 지나면서부터 등로는 잡목을 제거해놔서 편한 길을 걷는다
마치 둘레길 걷듯이... 여태껏 험한길을 걸어온 것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정신없이 걸어가는데 산죽길 등로 가운데 새끼 살모사 한마리가 겁도없이
피하지도 않은 채 대가리를 쳐들고 공격자세를 취한다
이~쉬끼가 겁대가리 완전히 상실했구먼... 내가 산행 짠밥이 얼만되
가지고 있는 스틱으로 뱀을 말아서 숲으로 던져 버리고 길을 걷는다
등로에서 바라본 왕정제의 모습(화순군 도암면소재)
계속해서 무명봉을 몇개인지도 모르고 오르내린다
400봉을 올라서니 허기가 지고 어차피 어느 싯점에 점심을
먹어야 할 것 같아 산죽 그늘진 곳 정상에서 점심상을 펼친다
점심시간(12:20~50)
점심이라봐야 집에서 빈도시락을 가져와서 식당에서 맨밥 한그릇(1,000원)을
사는데 식당 쥔 아줌마가 김치에다가 오징어무침, 맛있는 젓갈을 서비스로
주는 바람에 멋진 한끼를 해결한다... 사실 나홀로 산행은 갈아입을 옷을 비롯해
모든걸 베낭에 넣어야 하기에 장거리 산행에서 베낭무게와의 전쟁이다
그러기에 도시락도 그렇게 해결할 수 밖에 없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왕정재(12:55)
화순군 도암면 왕정리로 내려가는 고개로 우측으로 왕정리로 연결되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왕정저수지와 왕정마을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도암면 왕정리(旺亭里) 의 지명은 왕정리(旺亭里)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왕정리라 하였다.
왕정리에는 왕정마을, 상고기(上高基) 마을 등 2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이농(離農)으로 상고기 마을은 폐촌되고 왕정마을만 남아 있다.
잘 정리된 등로를 지나고 또다시 잡목과의 전쟁은 시작된다
두더지 굴 같은 산죽길을 지난다
임도(13:05)
임도끝쪽이다... 자동차가 다닐만큼 넓은 임도는 도암면 행산리로 가는 길이다
행산리(杏山里) 의 지명은 행동(杏洞) 마을의 행(杏) 자와 당산몰(堂山) 의 산(山) 자를
각각 취하여 행산리(杏山里) 라 하였다. 행산리에는 행동마을, 당산몰 등 2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당산몰은 폐촌되고 행동마을만 남아있다.
행동(杏洞) 마을의 뜻은 마을뒤에 살구나무가 많아 이렇게 부른다고 전한다.
이제 행동마을을 행산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당산몰은 당산나무가 있는 마을의 뜻이란다.
1759년 여지도서에는 능주목(綾州牧) 이하면(二下面) , 1789년 호구총수에는 능주목(綾州牧)
서이하면(西二下面), 1867년 대동지지에는 능주목 호암면(虎巖面), 1895년에는
나주부(羅州府) 능주군(綾州郡) 호암면(虎巖面), 1896년에는 전라남도(全羅南道)
능주군 호암면, 1912년 지방 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능주군 호암면 행동(杏洞) 으로 나오고,
1913년 행정구역개편으로 화순군 (和順郡) 호암면 행동, 1914년 지방행정구역개편으로
도장면과 호암면을 폐합하여 도암면이 되면서 화순군 도암면 행산리(杏山里)
(행동, 남평군 다도면 도롱리 일부) 로 편입되었다. 1
957년 왕정리와 합하여 행정리(杏亭里) 로 되었다가 다시 분할하여 오늘에 이른다.
390봉(13:10)
이곳부터는 다시 등로를 간벌해놓아 조금 좋은 길을 걸어가는데
이곳에서 기맥길은 약간 좌측으로 꺽어져서 진행을 한다
넓은 공터가 나오면서 잠시 지나니...
벌목을 하였는지 아님 산불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나무는 한 그루도 없고
줄기식물만이 산 전체를 뒤덮고 있다
산길에서 자주 만나는 늘 반가운 시그널들
NO 164송전탑(13:45)
엉겅퀴는 국화과 엉겅퀴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산과 들의 풀밭에서 자란다.
높이는 50~100센티미터이고 전체에 흰 털과 더불어 거미줄 같은 털이 있다.
뿌리잎은 꽃필 때까지 남아 있고 줄기잎보다 크다. 줄기잎은 피침상 타원형으로
깃처럼 갈라지고 밑은 원대를 감싸며 갈라진 가장자리가 다시 갈라지고
결각상의 톱니와 더불어 가시가 있다. 꽃은 6~8월에 피며 결실기는 9월이다.
시골에서는 흔히 '가시나물'이라고 부르며 연한 식물체를 나물로 해서 먹는다.
된장과 고추장에 박아서 먹기도 한다. 국화과의 엉겅퀴속은 전세계에 약 250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약 11종이 분포되어 있다.
엉겅퀴속에는 정영엉겅퀴, 깃잎정영엉겅퀴, 좁은잎엉겅퀴, 가시엉겅퀴, 흰가시엉겅퀴,
버들잎엉겅퀴(솔엉겅퀴), 엉겅퀴(가시나물, 항가새), 섬엉겅퀴(물엉겅퀴), 큰엉겅퀴(장수엉겅퀴),
바늘엉겅퀴, 흰 바늘엉겅퀴, 도깨비엉겅퀴(거친엉겅퀴), 흰도깨비엉겅퀴, 고려엉겅퀴,
흰고려엉겅퀴, 흰잎고려엉겅퀴, 깃잎고려엉겅퀴, 동래엉겅퀴, 흰잎엉겅퀴(소젖풀)가 자라고 있다.
지느러미엉겅퀴속에는 지느러미엉겅퀴(엉거시) 1종이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다.
엉겅퀴라는 이름의 유래는 엉겅퀴의 효능으로 인해 생겼다고 하는데, 엉겅퀴를 먹으면
피가 엉긴다고 하여 '엉겅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꽃말은 ‘엄격’이다
덕룡재(德龍峙:345m:13:53)
화순군 도암면 행산리에서 나주시 봉황면 덕룡를 넘는 고개로
행산재라고도 부르는데 화순군의 극서점이기도 하다
고개를 살짝 지나니 고사리밭이 되어버린 무명묘지 한기가 있다
대산꾼 준.희님이 붙여논 아크릴 표지판이 깨져 있어 안타깝다
맥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겐 전설같은 존재인 분이란다
부산 국제신문 산악회를 이끄셨던 분이신데 지금은 건강이
안 좋으시단 소식을 접했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지난해
나홀로 수두지맥을 걷다가 솜등산의 유래를 알고싶어 전화를
했는데 그렇게 반가워하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덕룡재를 올랐다가 다시 내려서니 세류촌 임도로 내려선다
세류촌 임도(14:20)
영암군 금정면 세류마을에서 나주시 다도면 중장터와 화순군
도암면으로 가는 임도로 중장터 고개라고도 부르며 시멘트 포장도로이다
기맥길은 시멘트 포장도로 맞은편 철문 오른쪽 산길로 오른다.
임도를 가로질러 우측으로 약간 내려섰다가 등로로 올라선다
좌측으로는 약초재배 지역이라는데 약초는 보이지 않고 원형 철조망으로
기맥길을 막는 바람에 계속해서 원형 철조망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선다
X자 나무도 지나고...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이곳 정상인 410봉 가기 직전에 좌측으로 꺽어지라 했는데
원형 철조망으로 완벽하게 막은데다가 숲이 너무 우거져 틈새가 보이질 않는다
410봉(14:20)
가건물이 있는 정상을 지나 길을 찾느라 애를 먹는다
잠시 헤맨끝에 철조망 사이를 비집고 내려서 좌측으로 간다
희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겨우 등로로 접어드니 이번에 넘어진 고사목과 산죽이 태클을 건다
이리저리 넘어진 고사목을 피해서 걷는데 시간이 꽤나 지체가 된다
또다시 원형을 철조망을 넘어 능선으로 올랐다가 안부를 따라서 내려선다
이번엔 산딸기 군락지를 지나는데 가시에 얼굴이 할키고 팔뚝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그러나 잘익은 산딸기는 달콤하다... 걸어가면서 산딸기를 입에다 따서 넣는다
반가운 준.희님의 시그널안부 능선에서...
무명묘지를 만난 다음...
급경사로 내려선다
덕룡임도(14:50)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에서 나주시 봉황면 덕곡리로 이어지는 곳으로
지도상에는 820번 지방도로 표기가 되어있고 축사로 쓰인 듯한 건물이 보인다
산꾼들의 지도에는 덕룡임도로 표기가 되어있고 도로공사를 하는 중인데
이렇게 낮은 곳에도 동물이동 통로를 만드는 중이다
맥길을 끊지않고 이어가려는 노력이 고맙기만 하다
공사중인 도로를 건너 밭가장자리를 지나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 다음 371.5봉으로 올라선다.
도로를 건너 가야할 마루금의 궤적우측 공터에 광주에서 오신분이 가건물을 짓고있다
이곳까지 오면서 생수를 아끼고 아꼈는데도 2L짜리 수통의 바닥이 보여 생수를
좀 달라고 하니 주겠다고 하여 아껴뒀던 생수를 다 마시고 1.5L 한통을
다시 채우고나니 엄청난 부자가 된 느낌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다시 길을 떠난다
임도로 올라간다
좌측 능선의 편백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향을 맘껏 들어 마시면서 정상으로 오른다
겁없는 뱀
편백나무 숲을 오르는 등로 가운데 나무토막 위에서 뱀 한마리가
깊은 잠에 빠졌다. 대체적으로 뱀은 후각이 발달하여 사람 냄새가
나면 도망을 가는데 이 넘은 겁대가리를 완전 상실했는지 바로 옆에
가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되도 꼼짝도 하지않고 잠을 자고있다
371.5봉(15:20)
등로에서 바라본 궁성산
궁성산과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아크로C.C클럽하우스가 보인다
호젓한 산죽길을 지나니 우측에 뿔모양처럼 생긴 뾰족바위를 만난다
기동재(15:45)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기동마을에서 나주시 봉황면 덕곡리를
넘는 고개로 좌측으로 기동저수지가 있으며 시멘트 포장길이
탐진강 발원지까지 연결되어 있고 밭에서 트랙터가 작업을 하고 있다
소박했던 움 엄니같은 찔레꽃
산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사면길을 따라서 개천산으로 향한다
우측으로 멋진 암릉도 만나고...
우측으로 멋진 암릉도 만나고...
직진의 옆사면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져서 개천산으로 향한다
급경사의 능선을 올라서니 산성터의 흔적같은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개천산(改天山:400m:14:10)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와 나주시 봉황면 덕곡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 오름길에는
성턱의 흔적이 보이지만 정작 정상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몇 장있을 뿐 그저
그냥 밋밋한 산봉우리리다... 이 산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얼마전에 산행을 하신 것 같은 기분죤산악회 성남정맥님의 시그널이 걸려 있는데 반갑다
개천산에서 내려서니 습지처럼 생긴 엄청나게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은 칡넝쿨과 억새 산딸기 등 산행의 장애물을 다 모아놓은 것같은 곳이다
한달후쯤 산행을 했더라면 고생을 좀 할것 같은 기분이 든다
등로를 찾지못해 한참을 헤맨끝에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무명봉에서 뒤돌아 본 개천산의 모습
곧 바로 약간 우측으로 내려서니 시누대 군락지가 나온다
빽빽한 시눗대 군락지를 빠져 나오는데 온 몸이 다 긁키고 상처투성이... 패잔병 신세다
시눗대 군락지를 지나서 절개지로 내려서니 포장도로가 나온다
.좌측으로는 아크로C.C 가는 길이고 우측으론 기동저수지 가는 길인데
선답자들 일부는 이곳을 기동재라 부르기도 한다
산죽길에서 내려서서 좌측으로 임도를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온다
고인돌소공원(16:25)
기동재에서 나주시 봉황면 덕곡리로 내려가는 길에는 고인돌 소공원이
만들어져 있는데 고인돌 몇기와 소공원이 만들어져 있으나 관리가 안되어
여기저기 쓰레기가 나뒹굴어 보기가 영 그렇다
탐진강 발원지 이정표
고인돌소공원을 지나 탐진강 발원지 이정표를 따라 기맥길을 이어간다
땅끝기맥길에서 약간 벗어난 탐진강 발원지로 향한다
성터샘 입구에는 넓은 늪지대 같은 곳이 있지만 물은 하나도 없다
탐진강발원지 성터샘 표지석과 표지판이 있다.
「이곳 성터샘은 궁성산의 성터에 있다고 하여 유래된 샘으로 탐진강의 발원지이다.
탐진강은 전라남도 3대 강의 하나로서 이곳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궁성산(482.2m) 범바위골
성터샘에서 발원하여 강진군 군동면 삼신리 삼각점까지 총 유로연장 약 57km에 이른다.
이곳 발원지에서 탐진강 직상류의 옴천천 합류지점까지 27.9km를 지방 2급 하천인 탐진천이라 하고,
옴천천 합류지점부터 탐진강 하구인 강진군 군동면 삼신리 삼각점까지 29.1km를 국가 하천인 탐진강이라고 한다.
이곳 궁성산은 성터샘 주변에 궁성산선의 흔적이 있는데 유래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축성 연대와
용도 등을 알 길이 없으나 주민들의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말을 훈련시키고 화살을
쏘는 연습장으로 활용되어 "활터"라 불렀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봉화대라는 주장도 있다.
탐진댐의 건설 계기로 발원지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한국수자원공사와 장흥환경운동연합이
공동으로 토지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이곳 성터샘 자리에 탐진강 발원지를 복원하고 주변에 휴게 공간을 조성하였다.」
탐진강(耽津江)발원지인 성터샘(14:30)
전라남도 영암군·장흥군·강진군을 흘러 남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 56㎞이다.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궁성산(弓城山:484m) 북동쪽 계곡에서 발원해 남동쪽으로 흐르며,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寶林寺) 앞을 지나면서 유로를 남쪽으로 바꾼다. 유치천(有治川)과 제비내를
합류하고, 장흥읍을 관류해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금강(錦江)을 합류한 다음 강진군 강진읍 남쪽에서
남해 도암만으로 흘러든다. 하천명은 탐라(耽羅)의 사자가 신라에 조공할 때 배가 이 강 하구의
구십포(九十浦)에 머물렀다고 해서 탐라국의 탐(耽)자와 강진의 진(津)자를 따서 탐진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으며, 예양강(汭陽江) 또는 수녕천(遂寧川)이라고도 불렸다. 강유역에는 용반평야를
비롯해 부산평야·장흥평야·강진평야가 분포하며, 영산강·섬진강과 더불어 전라남도의 3대강으로 손꼽힌다.
탐진강의 하구인 구십포는 수심·수온 등이 장어가 살기에 알맞아 장어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은어도 서식하나 하천 오염으로 인해 줄어들고 있다.
탐진강 발원지인 성터샘 안에는 물한방울이 없다
탐진강 발원지에서 인증샷
발원지에서 다시 되돌아와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오니 좌측으로는 대밭이 있다
등로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궁성산이 보인다
궁성산(弓城山:484m)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에 있는 산으로 산에 산성이 있어 생긴 명칭인 것으로 보인다.
이름대로 정상부에 산성이 있었다고는 하나 현재는 대부분 파괴된 상태이며, 돌로 축조된 성터 흔적이
200m 정도 남아 있으며 궁성산과 관련된 산성(山城)에 대한 기록이 없어 축성 연대와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말을 훈련시키고, 화살을 쏘는 연습장으로 활용되어 ‘활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사리(飛射里)는 궁성산성 훈련장에서 활을 쏘면 과녁을 넘어 화살이 떨어졌다고 전한다.
월출산과 활성산에서 전달된 신호를 전하는 봉화대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궁성산은 흙산인 육산(肉山)으로, 산 정상이 넓고 평탄해 산성이 입지하기에 적합한 지형이다.
궁성산은 무등산에서 봉미산[506m]과 국사봉[613m]으로 이어지는 호남 정맥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져 나와 월출산으로 뻗어 가는 능선에 위치한다.
궁성산의 동쪽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골짜기는 탐진강(耽津江) 발원지이며, 서쪽 금정면 안노리와
용흥리 계곡은 영산강 수계의 금천(錦川)이다. 또한 동쪽 기동 저수지에 담긴 물은 활성골을
따라 남쪽 노린재들에서 서쪽 자작골과 영사 마을에서 흘러내린 비사리골 물을 더해 동남쪽으로 흘러간다.
궁성산의 세 갈래 능선은 북서쪽으로는 봉천산을 거쳐 나주시 세지면 오봉리로, 남동쪽으로는 주당 고개를
거쳐 국사봉으로, 북동쪽으로는 덤재[加音峙]와 덕룡산으로 이어진다.
궁성산 궁성산성 터에는 현재 27홀 규모의 아크로 컨트리클럽이 들어서 있다.
또 궁성산 법흥사 뒤쪽에는 쌀이 나온 천석굴 전설이 전하고 있다.
산딸기와 찔레꽃, 칡넝쿨이 갈 길 바쁜 산꾼의 발목을 잡는다
어디로 가란 말이야?
잡목지대를 지나니 ‘절대출입금지’란 깨진 아크릴판을 지나 궁성산 갈림봉으로 향한다
등로는 뚜렸하나 선답자의 시그널이 없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금정면 능선인
신망산으로 가는 길인데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있어서 약간은 혼란스럽다
궁성산성터의 모습
궁성산 갈림길(16:55)
궁성산(弓城山:482.2m)은 영암군 금정면 동쪽에 있는 산으로
활성산이라 부르기도 하면 탐진강 발원지가 있는 곳이다.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어느 시대에 난이 일어나 동쪽에서
쏘는 화살이 남쪽 월성산까지 날아갔고 남쪽에서 쏘는 화살이
동쪽 활성산까지 날아갔다고 하여 동쪽에 있는 산을 궁성산으로
남쪽에 있는 산을 활성산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11시방향으로 꺽어져 내려서면 산죽길이 나오고 아크로C.C로 내려선다
아크로C.C
궁성산 갈림길에서 산죽길로 내려서면 골프장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나오며
곧 이어 클럽하우스가 보이고 골프장 정문 경비초소가 있는 오두재로 내려선다
12년전쯤 겨울에 2년에 걸쳐서 이곳에 2박 3일에 걸쳐서 전지훈련을 온 기억이 새롭다
대학원 동기가 이곳 영암출신이라 이곳에 와서 클럽하우스 3층에 있는 골프텔에서 자고
저녁에 영암읍내에 있는 동락식당인가 하는 곳에서 세발낙지를 포식한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이 골프장은 예전에 회원제였으나 지금은 퍼브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코스 길이가 7,510야드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고 하며 코스난이도가 상당히 어려웠다
오두재(烏頭峙:17:10)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에서 용흥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오두재(烏頭峙)라는 이름은 고개의 형상이 까마귀 머리와 비슷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 지형도(朝鮮地形圖)』에 지금의 계천산이 궁성산으로
기록되어 있고, 오두재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는다.
『한글 지명 총람』에 처음 기록된 것으로 보아서는 1961년 이후에 비로소 고시 지명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오두재 인근의 궁성산과 계천산 주변에 탐진강 발원지가 있다.
오두재에는 현재 국도 23호선에서 계천산으로 연결되는 지방 도로가 지나고 있다.
오두재에서 내려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영암군 금정면 택시를 불러서 버스정류장이 있는
영암군 신북면으로 향한다... 원래 계획은 오두재에서 산행을 마치고 영암에서 서울가는
17시 30분발 버스를 타려고 계획했으나 초반에 알바아닌 알바로 조금 버벅거린 바람에
시간을 놓쳐버려 신북에서 버스를 타고 광주로 간다
신북 버스터미널(영암군 신북면 소재:17:45)
아직 광주가는 버스는 오질않고 하여 다시 베낭을 정리하고 목이 말라서 동행한
온누리님과 막걸리 한병을 사서 나눠 마신 뒤에 잠시후에 온 광주행 버스에 오른다
신북에서 탄 버스는 나주를 거쳐 1시간 1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 후에 광주에 도착한다(차비 5,700원)
터미널에 도착하니 19시 10분이다. 배도 고프고 하여 서울가는 19시 55분 버스표를 끊은 다음에
장애인 화장실로 들어가서 머리를 감고 타올을 몸을 딲은 다음에 속옷까지 갈아입고 나니
조금은 살 것만 같다 ... 화장실에서 나와 인근 식당에서 시원한 물냉면 한 그릇을 시켜 먹는다
배가 고파서 양을 좀 많이 달라고 하니 거의 곱배기 수준으로 주는 바람에 베불리 먹었다.
광주발 서울행 버스표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차는 막히지 않았으니 워낙 늦게 출발하여 서울에
도착하니 밤 11시 20분 정도 되었다... 지하철이 끊길 것 같아서 동행한 온누리님에게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서둘러 지하철 역으로 와서 지하철을 탄 다음 도곡역에서 버스로 환승하여 집에
도착하니 12시 5분전이다... 긴장이 풀리니 아~~~ 피곤하다
내 다리 좀 보소
집에와서 샤워를 마치고 보니 긴 바지 긴 소매의 옷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몸뚱아리는 상처투성이다... 그리고 상당히 쓰라리다
에~~~공 범여가 뭣이 아쉬워 이 짓거리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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