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4년 9월 27일~28일(무박산행)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2km / 약12시간 소요
☞ 참석인원: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 24명과 함께
☞ 산행코스: 오두재-407봉-397봉-걸매고개-356봉-사슴농장-361봉-358봉-노룡재-차일봉
모개나무재-주당고개-국사봉-개사육장-가음치-송장고개-NO68송전탑-281봉
311봉-영암목장-백룡지맥 갈림봉-활성산-498봉-둔덕치-달뜬봉-임도-353봉
돈밧재
☞ 소 재 지: 전남 영암군 금정면,영암읍 / 장흥군 유치면 / 강진군 옴천면
오랫만에 무박 산행을 나선다... 백두대간 남진을 끝내고 다시는 무박 산행은 안하리라
다짐을 했건만 지난 5월에 땅끝기맥 첫구간을 끝내고 이런저런 이유로 시작하지 못한
땅끝기맥 2구간을 나서기 위해 대간을 같이한 산악회에 묻어서 기맥길을 나선다.
오늘은 조계사에서 팔재계(八齋戒)가 열리는 날이라 상당히 망설이기도 했지만
동료와 후배 포교사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었지만 양해를 구하고 조계사에서
집에 도착하니 저녁 8시 40분... 서둘러 베낭을 챙겨 탑승장소인 양재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조계사 일주문
오랫만에 포교사 팔재계에 참석하기 들린다... 대웅전에 들려서 부처님을 참배하고
행사에 참석하였다가 팀원인 동료와 후배 포교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지런히
집에오니 저녁 8시 40분... 밤 10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해 서둘러 베낭을
챙긴 다음에 탑승 장소인 양재역으로 향한다
팔재계(八齋戒)란
출가하지 않은 신도가 육재일(六齋日)에 지켜야 하는 여덟 가지 계율로서
중생을 죽이지 말라, 훔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 먹지 말라,
꽃다발 쓰거나 향 바르고 노래하고 풍류 잡히지 말며 가서 구경하지 말라,
높고 넓고 큰 잘 꾸민 평상에 앉지 말라, 때아닌 적에 먹지 말라는 내용이다.
오두재(烏頭峙:03:30)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에서 용흥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오두재(烏頭峙)라는 이름은 고개의 형상이 까마귀 머리와 비슷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 지형도(朝鮮地形圖)』에 지금의 계천산이 궁성산으로
기록되어 있고, 오두재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는다.
『한글 지명 총람』에 처음 기록된 것으로 보아서는 1961년 이후에 비로소 고시 지명이
된 것으로 추측되며 오두재 인근의 궁성산과 계천산 주변에 탐진강 발원지가 있다.
고개 좌측에는 아크로C.C 가 있는데 10년도 넘은 시절에 친구중에 이곳 출신이
있어서 겨울에 2박3일간 두 번이나 라운딩을 한 적인 있는 골프장이다
오두재 들머리
서울에서 밤 10시 10분에 양재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새벽 3시 30분에 오늘의 들머리인
아크로C.C (전남 영암군 금정면 소재) 경비실입구인 오두재에 도착하여 우리를 태우고 온
愛馬의 쥔장인 박사장이 끓여주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산행을 시작한다
입구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잔뜩 달려있고 이슬이 촉촉히 내린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407봉(03:35)
이슬이 촉촉히 내린 임도를 따라서 5분만에 지도상 407봉에 도착하니 kt 이동통신
통신탑이 서있는데 얼마전의 태풍의 영향 탓인지 맷 윗부분이 뿌러져 있다
이곳에서 땅끝기맥을 이어가기 위해서 이곳에서 잘 나있는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약간 꺽어져
아크로C.C 9.8.7홀에서 다시 등로 접어드는 산꾼도 있고 이곳에서 잘 나있는 임도를 따라 직진으로
가는 산꾼들도 있다는 걸 선답자들의 산행기로 확인이 되지만 그 어디로 가도 무방할 듯 싶다.
우리는 골프장으로 들어서지 않고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고도차가 거의 없는 397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서니 김해김공 묘지가 나온다
김해김공 묘지(03:50)
김해김공의 묘지에서 다시 골프장 옆의 능선을 걷는다.
이곳에는 골프장에서 날아온 OB난 골프공들이 많이 보인다
앞서가던 노루님이 골프공을 줏는데 썩은 똥볼들이 많다
걸매고개(04:00)
다시 조그만 봉우리로 올라섰다가 내려서니 숲이 우거진 임도를 만난다
임도옆에 앙증맞은 소나무 한그루만이 어둠속에 산꾼을 반긴다
걸매고개에 대한 유래는 찾을 길이 없고 혹 ‘등에 걸머지고 다닐 수 있게
망태기처럼 얽어만든 바랑’을 뜻하는 걸망이 변음되어 걸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범여의 생각 中에서)... 그런 지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지만
어둠속에 地勢를 확인할 길이 없어 먼저 도망간(?) 산꾼을 따라 부지런히 간다
363봉(04:15)
걸매고개에서 조금 내려섰다가 다시 조그만 봉우리로 올라서니 준.희님이
걸어둔 363봉 아크릴 표지판이 산꾼 범여를 반겨준다
363봉에서 다시 안부로 내려서니 좌측으로 뚜렸한 임도가 나오는데
오늘따라 선두에 가는 일행들이 기맥길 지도도 확인하지 않는지 무조건
길이 좋은 곳으로 가버린다...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여 지도를 확인하니
좌측은 세류리 칠성동으로 향하는 길이다... 물론 그리 가더라도 다시
사슴목장에서 만나긴 해도 명색이 맥길을 가는 사람들은 원칙대로 가야
하는게 원칙일 것 같아 주위를 확인하니 직진으로 가는게 맞다
그런데 숲이 너무 우거져 어둠속에 길이 보이질 않는다
이리저리 스틱으로 헤집고 보니 희미한 등로가 겨우 보인다
안부에서 고도를 높혀서 올라가는데 망개나무(청미래)와 산초나무 가시많은
식물들이 등로에 가득차서 선두에 선 나를 초반부터 엄청나게 괴롭힌다
능선 오르는 길에는 힘들게 지나간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능선에 오르니 꽤나 큰 바위가 나오는데 지도상에 표기된 전망바위다
전망바위(04:45)
전망바위에서 동료산꾼들과 베낭을 걸머진 체로 물한모금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다
NO 175 송전탑(04:53)
전망바위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내려서니 칡흙같은 어둠속에서
175번 송전탑이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칡넝쿨과
산초나무 억새등이 뒤엉켜서 걷기가 엄청나게 불편하기 그지없다
잡목들을 헤치고 내려서니 지금은 망해버린 사슴농장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만나고 임도로 갔던 선두들이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사슴목장(05:00)
도로에서 좌측으로 약간 꺽었다가 다시 우측으로 올라서 사슴농장 가운데를
가로 질러서 기맥길을 이어가는데 아직도 축산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른다
폐허가 되어버린 농장을 지나면서 우리의 농촌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농장을 빠져 나오는 이곳도 잡목이 자꾸만 산꾼을 괴롭히지만 안 갈수도 없고...
361봉(05:10)
지도상 361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서 다시 봉우리를 오르려는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낮이라면 어째 지나 보련만
칡흙같은 음력 9월 초닷새날의 야심한 새벽엔 도저히 자신이 없다
다시 되돌아 내려와 벌목지대 가운데의 임도를 지나간다
벌목지대 임도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 아래 농장의 불빛이 네온처럼 환상적이다
이곳 벌목지대에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대봉 감나무를 식재해놨다.
임도를 지나서 다시 등로에 접어드니 어둠속에 358봉을 만나고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서니
마을에서 개시끼들이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이 마을이 떠나가도록 짖어댄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마치 하얀 눈이 내린것처럼 보이는 메밀꽃이 만발한 밭을
지나서 임도가 나오고 곧이어 노룡재가 있는 14번 군도를 어둠속에서 만난다
군도에 내려와 좌측으로 꺽어지니 칠성동 버스 정류장을 만난다
노룡재(286m:05:30)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와 남송리을 지나는 고개로 14번 군도가 지나가며
이 지역사람들은 차일봉 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북쪽으로 잠시 내려가면 탐진강 발원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오고,
계속해 가면 청룡리를 지나 유치면으로 가는데 칠성동 마을 표시석과 정류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도로를 건너서 좌측으로 가다가 반사경이 있는 곳에서
우측 포장임도로 올라선다
노룡재에는 버스 정류장과 수변구역 안내판과 반사경, 그리고 좌측으로
애니피아 목장으로 가는 표지판이 서있는 세갈래 길이 나온다
포장임도에서 올라서니 농가 주택이 나오고 우측으로 버섯재배단지가
있으며 재배단지 끝부분에서 우측 능선으로 접어들어 차일봉으로 향한다
마지막 민가 도로의 좌. 우측으로는 대규모 버섯 재배지가 보인다
산불조심 표지판에서 10여m 정도를 올라선 다음에 등로로 접어든다
등로로 접어든 다음 오늘 처음으로 빡세게 급경사로 오른 다음에 능선 정상에
서니 성터처럼 보이는 돌무더기가 나타나며 잠시후 묘지 1기가 있는 차일봉에 도착한다
차일봉(遮日峰:382m:05:50)
전남 영암군 금정면 남송,세류,청룡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노룡재 위에 있는
봉우리로 풍수지리상 산의 모양새가 텐트(천막또는 차일) 같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차일봉 정상에는 축대가 있는데 언제 축조되었는지는 모르나 흙구덩이 통로는
6.25 동란때 만들어진 것이란다. 차일봉의 雨水는 동쪽은 탐진강, 서쪽은 영산강으로
흐르는 두 강의 경계 발원지이다
모개나무재(06:05)
차일봉 묘지를 지나 어둠속에서 323봉을 지나 좌측으로 약간 꺽어지니 희미한 임도가
나오고 우측으론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산죽길이 이어진 다음 지도상 모개나무재에
도착하였는데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준.희님의 ‘여기가 모개나무재 입니다’라고
써 있는 아크릴 표지판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내가 못본건 아닐까
아님 길을 잘못 든 것일까???
임도를 내려선 다음에 고개턱에 올라서서 휴식을 취하면서 막걸리 한사발... 정말 꿀맛이다
고개 아래로는 꽤나 큰 입석제가 보이고...
풍력 발전기가 있는 활성산과 그 너머로 꼭지만 보이는 월출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다시 도로를 따라서 주당고개로 향한다
ㅓ자 길에서 직진을 하자마자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주당고개(周唐峙:386m:06:40)
영암군 금정면 쌍효리 석동마을에서 남송리 인곡마을을 잇는 고개로
고개로 이어지는 계곡 중간에 병풍바위가 있는데 동쪽에 바위가 있다고 해서
이 지역 사람들은 동암재로 부른다고 하는데 최근에 새로이 시멘트 포장을 한
임도로 삼거리에서 우측 능선으로 접어들면서 영산기맥길을 이어서 가는데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국사봉 오름이 시작되고 국사봉 615m까지 250을 올려야 된다.
지명의 유래는 남송리 인곡 마을에 있는 쌍계사지의 2개 석장승인
주장군과 당장군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오늘 선두에 선 배왕초님이 대간을 끝내고 2개월동안 안 본 사이에 무척이나 큰 느낌이다
이젠 배왕초가 아닌 ‘태양’이란 닉으로 불러줘야 할듯 싶다... 선두에서 잡목을 치면서
길을 열어주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스럽다... 이보게 젊은이 복받을 겨
계속해서 잡목구간은 계속되고...
쌍계사지 갈림길(06:55)
쌍계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 백운대사가 창건한 이래 고려 문종 19년(1065), 원종 4년(1263),
공민왕 17년(1368), 그리고 조선 세조 9년(1463)에 각각 중수를 거쳤으나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으며 이곳 장승이 건립된 시기는, 바로 쌍계사의 창건 중수 연혁과 연관해서 볼 때,
크게 중창을 보았던 13세기나 15세기 중엽으로 그 상한을 잡고 있으며, 하한은 나주의 운흥사(1719)나
불회사 석장승이 건립된 18세기 중엽으로 보고 있다.
쌍계사의 절터로 전해지는 폐사지에는 현재 2개의 돌장승이 서있는데 주장군과 당장군이며
주장군은 높이 345㎝, 둘레 210㎝이고, 당장군은 높이 247㎝, 둘레 175㎝이다
장승은 사찰이나 마을의 입구, 성문밖, 도로변 등에 세워져 액귀를 막는 수호신,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표, 신성구역임을 나타내기 위한 경계표지의 구실을 하고 있다.
쌍계사지 장승은 바로 사찰내에서 살생과 수렵을 금하는 금표적 기능과 사찰의
재산이나 경계를 표시하는 사역표지의 기능으로 보인다.
자연석 화강암을 잘 다듬지 않은 채 윗부분에는 얼굴만 조각하고 몸체는 형태묘사를 생략하였으며,
앞면에 당장군·주장군만을 음각하였다. 표현수법은 머리에 말아올린 듯한 중절모를 씌웠고,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 펑퍼짐한 주먹코, 꼭 다문 한일자 입모양 등 입체감을 잘 살린 뛰어난 조각품이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인상은 흡사 힘센 장군의 형상과 같으며 여기에 괴기스러움까지
아울러 지닌 벽사의 상징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주장군(周將軍:전라남도 민속자료 제17호)
주장군은 높이 345cm, 둘레 210cm이며,짧은 이마 위로 곡선을
그은 돌대(突帶) 같은 2개의 주름과 두터운 눈썹을 음각하였다.
눈은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으로 도드라지게 조각하였고 콧잔등은
3개의 작은 구슬을 연결하듯 처리하였으며, 코는 펑퍼짐한 주먹코이다.
입은 7개의 구슬이빨에 일(一)자형이고 턱은 힘을 주듯 오므리고 있으며, 수염이 배까지 늘어져 있다.
당장군(唐將軍)
당장군은 높이 247cm, 둘레 175cm이며 모자테와 눈 윗부분에 홈을 파 이마를 구분지었으며,
아래로 얕게 2개의 반원을 그려 주름을 표현하였다. 눈썹은 없고,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 가장자리에 두툼한 둥근 테를 둘렀다. 콧잔등에 작은 백호 같은 구슬이 있으며
코는 역시 펑퍼짐한 주먹코이다. 입은 턱 전체에 긴 선으로 표현하였다.
국사봉 오르는 길에서 더덕을 캐는 동료산꾼 천리마님
국사봉 오름길의 잡목의 저항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음을 예고한다
그래도 산행의 나침판과도 같은 선답자들의 시그널은 반갑기만 하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동쪽 저멀리 雲海로 인해 멋진 그림이 펼쳐지는데 4년전에 걸었던
호남정맥길 가지산... 용두산... 제암산이 아련하게 보인다
국사봉이 가까워질수록 잡목의 저항은 더 거세지고...
내가 꽃중에 가장 좋아하는 구절초
국사봉 능선 아래에 있는 쌍효리에 있는 쌍효제의 모습
영암군 금정면 있는 쌍효마을에 효자 형제가 살았다 하여 쌍효리(雙孝里)라 하였다고 한다
국사봉 오름길에서 바라본 아크로C.C
13년전에 3년 연속 저곳에서 겨울에 2박3일씩 자치기를 휘두르고 다닐때가 봄날이었는데...
새벽에 지나온 등로의 모습
동북쪽으로 바라보니 운해 너머로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과 호남정맥길인 안양산도 아련히 보이고...
국산봉 정상이 가까워지나보다 산불감시 카메라가 산꾼을 노려본다
국사봉 정상에는 물봉선이 많이 보인다
국사봉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이곳이 명당터라 소문이 난 탓인지 이 높은 곳에 나주 나씨들의 묘지가 있다
국사봉(國師峰:614m:07:30)
전남 장흥군 유치면과 영암군 금정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국사봉이라는
山名은 언제부터 불리워졌는지는 모르나 조선시대 여암 신경준 선생이 쓴
山經表에는 쌍계산 나주 남육십리(雙溪山 羅州南六十里)로 표기되어 있다
국사봉 아래에 있는 寺地도 쌍계사지로 되어 있는 걸 보아 옛 지명은
쌍계산이었던 모양이다
국사봉은 영산 남기맥과 땅끝기맥의 발원 중심으로 영암군에서는
월출산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으로 영암, 강진, 해남으로 뻗어가는 주산이다
국사봉으로 인하여 금정면으로 흐르는 물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영산강으로 합류되고 유치면 물은 탐진호로 흘러든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산에 국사를 다스릴 선비가 태어난다고 해서
국사봉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국사봉 주위에서 태어난 인물로는 영암의
왕인박사(백제) 도선국사(고려) 임진왜란때 활약한 정운장군(조선시대)이
있으며 해남 출신인 윤관 대법원장과 MB정부때 법무부 장관을 지낸
이 귀남 장관(장흥)도 이 지역 출신이라고 한다
국사봉은 6.25사변으로 북한군 남부지역(나주,화순,영암,장흥,강진,해남,완도)
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이 지역 주민들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설움으로
양민학살이 많았던 곳이라고 한다.
아침만찬(07:40 ~ 08:20)
동료산꾼들과 羅州羅氏 묘지에서 40분간의 아침만찬을 즐긴다
오늘 가야할 활성산과 다음 구간의 월출산도 보이고...
2년전 금남기맥길에서 시그널로 자주 만났던 전주의 소머즈부부님 시그널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늘 친근감이 드는 시그널이다
40분간의 아침만찬에다 모닝 커피까지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약간 넓은 임도를 따라서 급경사를 내려선다
국사봉에서 바라본 영암군 금정면
영암에서 두 번째 높은 국사봉(614m) 자락에 위치한 금정면은 영암군의
11읍ㆍ면 중의 하나로 동쪽은 장흥군 유치면, 남쪽은 영암읍, 서쪽은 덕진면과
신북면, 북쪽은 나주시 세지면과 봉황면 등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당시 나주군의 지역으로 사금(砂金)이 많이 나온다고 해 금마면이라 하여
남송 등 57마을과 나주군 원정면의 월평 등 29개 마을, 그리고 나주군 세화면
임천리 일부지역을 병합해 조선 고종 32년(1895년)에 지방관제 개정으로 영암군에 편입됐다
“금정면은 일제 강점기부터 감으로 유명했던 고장”이라며 “월출산 동북쪽
산악지대로 일교차가 커서 당도 높은 감과 배가 생산된다”고 자랑했다.
금정면은 본디 말랑말랑하고 단맛이 뛰어난 대봉시로 이름난 고장이다
금정면에는 동활성산과 남활성산이 있는데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어느 시대에 전란이 일어나 남쪽에서 쏘는 화살이 동쪽 활성산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동쪽은 궁성산, 남쪽은 활성산으로 부르고 있다
등로 가운데에 있는 羅州羅氏 수목장도 만나고...
보라색 엉컹퀴
언제봐도 예쁜 구절초
미역취
국사봉 정상에서 5분 정도 내려서니 월출산과 활성산이 보이는 전망바위가
나오고 다시 10m 정도 내려오니 다시 조그만 바위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고속도로처럼 직진의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길이 없는 곳으로 들어선다
이곳은 조금만 방심하면 알바구간이니 신경을 바짝써야 할 것 같다
등로에 접어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산죽군락지로 내려서니 등로는 거의 보이질 않고 길을 개척하다시피 내려서니 파묘가 나온다
길이 없는 산죽 군락지를 지나니 이장(移葬)을 했는지 봉분은 없고 묘비가 서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직진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선다
지도상으로 보면 남송리 인곡으로 통하는 길인데 쌍계사지 방향으로 보인다
조금을 더 내려서니 우측으로 상당히 큰 암릉구간을 지나니
허물어진 성터처럼 생긴 무너진 돌담들이 보이는데 이곳이 6.25당시 공산군이
주둔했던 곳이란다. 60년도 훨씬 지난이 싯점에도 전 세계에서 유래없는
분단국가로 이념갈등의 산물로1950년대에 이 지역 민초들이 아무런 이유도
모른체 죽어간양민학살의 현장이라고 한다 ...잠시후에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시멘트 도로(08:55)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 다음에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간다
도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사각정자와 체육시설이 있고...
시멘트 도로로 내려서는데 햇볕이 상당히 따갑다
도로 좌측으로는 농가시설이 있고 뒷쪽으로 국사봉이 보인다
개사육 축사가 있는 가운데 도로를 지난다
축사를 지나 시멘트 도로를 계속 걸어가는데 우측에는 벌목을 하고 새로운 수종을 식재해놨다
드디어 장흥군 유치면과 영암군 금정면을 잇는 23번 국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음치(加音峙:219m:09:15)
장흥군 유치면 연소리와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를 넘는 고개로
23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 아래에 호랑이의 명당이 있어서
그 호랑이가 울면 소리가 크게 들린다고 해서 가음치(加音峙)라 했단다
여암 신경준 선생의 山經表에는 가음산 일작가지 장흥북이십리
(加音山 一作伽智長興北二十里)라 하여 지금의 활성산이 가음산으로 되어있다
지도상에는 가음치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이 지역 사람들은 덤재라고 부른다
늠재에서 활성산 가는 능선이 송장등인데 풍수지리상으로 송장등 생겼다고 하여
송장을 무덤을 의미하며 무덤을 의미하는‘무’자를 버리고 무덤을 의미하는 뜻으로
덤재라 부른다고 한다
23번 국도 지나서 좌측으로 갔다가 우측으로 접어드니 대밭이 나오고 수로를 따라 등로로 접어든다
대밭을 지나니 땅바닥에 꽤나 씨알이 굵은 밤이 엄청나게 많아서 이곳에서 수확을 좀하고...
밤나무밭을 지나니 南陽方公 묘지가 나오고 잠시후 뚜렸한 등로가
나온 다음에 땅끝 기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으로 꺽어지니 계속해서 뚜렸한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후 海州崔公과 부인 南陽洪氏를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묘지를 지나 임도를 따라서 2분정도를 걸으니...
둔덕이 있는데 원 기맥길은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고 좌측으로 임도가 연결된다
동료산꾼들은 좌측 임도로 가는데 나홀로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달려있는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3분정도 걷다가 도저히 길이없어 포기하고
중간에서 임도로 내려선다... 청미래 덩쿨에다 산딸기남 가시에... 죽을 맛이었다
성남정맥님 반갑습니다
후답자들에게... 이곳은 올라서면 아예 길도 없을뿐더러
청미래를 비롯한 가시덩쿨... 그리고 5분도 안돼서 고개로
내려서야 하니 좌측 임도로 가심이 좋을듯 합니다
송장고개(221m:09:40)
가음치에서 금정면으로 가는 23번 국도에서 송장마을을 지나 영암목장으로
지나는 길목을 송장고개라고 하는데 송장고개라는 지명은 연소저수지 윗쪽으로
금오마을이 있는데 금오(金烏)란 금까마귀가 송장을 쪼아먹는 형국이라 하여
송장고개라 부른다
능선에 올랐다가 송장고개로 내려서는 바람에 가장 후미가 돼버린다
고개에 도착하니 좌측으로 꽤나 큰 연소저수지가 보이고 소 사료용
볏집들이 잔뜩 쌓여있다... 잠깐 사이에 동료 산꾼들은 영암목장으로
이어지는 편한 도로로 가버린다... 이곳을 내 평생 다시 올 일이 없을 것 같아
송장고개를 건너 우측 방향으로 가다가 전봇대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땅끝기맥 마루금으로 접어든다
마루금으로 접어드니 수레가 다닐만큼 넓은 임도가 나오고 잠시 후 우측으로 꺽어지니
김포 오야지님의 시그널이 걸려 있다... 역쉬 정통산꾼들은 확실히 달라... 잠시후 무명 묘지를 만나고...
NO68 송전탑(09:50)
가음치에서 활성산으로 이어지는 이 능선을 송장 능선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6.25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퇴로를 차단당한 뒤 이곳에 있던 인민군
잔류부대 60여명은 국사봉과 내산을 중심으로 국군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이때 목포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대 유달부대가 이 지역 양민들은 무참히 살해한 곳이란다
당시 썩은 시체에서 냄새들이 퍼져나와 살아남은 가족들은 가족의 시신을 찾으러
수십차례나 산 속을 헤맸다는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능선이다
산을 걸으면서 그 분들의 영령을 왕생극락을 빌어본다
송장능선에서 바라본 연소저수지의 모습
송장이란 시체를 뜻하는 단어이고 가음치를 무덤을 뜻하는 ‘덤재’라고 부르니
아무래도 6.25동란 때 많이 희생된 시체와 관련된 지명이 아닐까? (범여의 생각 中에서)
281봉(09:55)
땅끝기맥을 다니는 산꾼들이 대부분 도로를 따라서 걷는지 아예 길이 없다.
거기다가 숲이 너무 우거져 시간은 상당히 지체되고 벌써 몸뚱아리는 힘든다는 신호를 보낸다.
능선 아래의 임도에도 숲이 우거지기는 마찬가지이다.
거기다가 이곳부터 스틱마져 없으니 힘이 드는데 같이 동행한 천리마님이
톱으로 나무가지를 잘라서 스틱을 만들어 준다... 북 받을깁니다
힘들게 무명봉으로 오르니 조금 먼저간 김포오야지님과 친구분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도 이곳에서 베낭을 벗고 사과 한조각을 먹으면서 잠시동안의 휴식을 취한다
311봉(10:20)
311봉을 지나서 가는길도 잡목의 태클 때문에 죽을 맛이다... 원칙 좋아하다가...
범여가 뭣이 아쉬워서 사서 개고생이람...
영지버섯... 흐미 이쁜 넘 얼른 채취하여 베낭에 넣고...
잡목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힘들게 오르니 철조망이 나온다
너무 걱정하지마소... 그 쪽으로 갈일 없으니...
여기서도 산꾼을 겁박하는 문구도 보이고...
320봉(11:00)
특용작물 재배지역 철조망을 오르자 묘지가 있는 320봉에 오른다
철조망으로 막혀있어 좌측으로 내려간 다음 우측 철조망을 넘어서니
활성산 풍력발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영암군 금정면 연소리 산 340번지 일원 463만k㎡에 40㎿(2㎿급 20기)
규모의 풍력발전단지 마치 대관령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320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망해버린 서광목장 초지로 걷는다
이곳은 초지가 아니라 칡넝쿨과 온갖 외래종의 잡풀로 뒤엉켜 있다
능선으로 내려서니 저 멀리 목장도로에 후미대장인 하늘마음님과
봄^^^님 그리고 노루 패밀리들이 보인다... 원 기맥길은 목장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야하나 송장능선 길에서 너무나 힘이들어 목장도로로 간다
초지에서 바라본 백룡지맥 분기점
백룡지맥 (白龍枝脈)이란 땅끝기맥 활성산 직전 서광목장(410m봉)에서 분기해서
△235.7봉,△백룡산(420.6 봉, 옥룡지맥 분기),산장산(x 121봉),마산(x 159m),△호산(x 156m),
천제(天祭)산,△태봉산(83.9m),△17.7봉을 거쳐,영암천 영산강 두물머리 에서 맥을 다한다
도상거리 30.606 km 이다
비포장 도로를 지나서 영암목장으로 올라가는 포장도로에 들어서니
후미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냥 도로에 주저 앉아 버린다
이곳에서 하늘마음님이 주시는 막걸리 한잔 정말 꿀맛이다... 고마웠소
막걸리와 과일로 원기를 보충하고 다시 베낭을 꾸려서 활성산으로 향한다
좌측으로는 망해버린 목장의 축사와 사일로의 모습이 보이고...
왕꼬들빼기
누가 대신 걸어주지도 않을 이 길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앞만보고 걸어가는데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퇴약볕
정말 미칠것만 같다... 땀은 비오듯 흐르고...
지나온 320봉의 모습
폐허가 되어버린 축사 사이를 걸어간다
옛 서광목장(11:30)
서광목장은 섬유산업으로 부를 창출한 서광섬유산업의 소유였으며
우리나라에서 대관령에 있는 삼양목장 다음으로 큰 목장이었으나
모기업의 자금악화로 인해 부도가 나서 다른 기업으로 넘어가서
그 기업에서 골프장을 조성하려고 하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방치된 상태란다
축사에서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올라서니 편백나무 숲이 나온다
윗쪽은 지금 영암목장이란 이름으로 바뀌었고 소사료인 볏집더미와
직원이 거주하는지 컨테이너가 여러개 있는데 정작 주인공인 소는 한마리도 안보인다
새털처럼 날아서 내년을 기약해야지
영암목장 갈림길(11:45)
활성산 오르는 길도 잡풀들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3년을 가지고 다녔던 카메라가 속을 썩여서 다른 똑닥이를
가져왔는데 호주머니에서 넣었다 뺐다 했더니만 흑백모드로 바뀌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셧터를 계속 늘러 댓더니만 그림이 우스꽝스럽게 됐다
능선에서 바라본 영암목장의 모습
활성산은 국사봉과 월출산 사이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3개의
커다란 통신탑이 자리를 잡고있다. 3번째 통신탑 우측으로
진행하니 철조망이 나오고 이곳에서도 잡목이 장난이 아니다.
통신탑 뒷쪽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곳이 활성산 정상이며 철조망 안쪽으로
육군 제93보병연대 통신중대 활성산 중계소와 교육훈련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활성산 정상을 점령하고 있는 통신탑
정상에는 통신사의 3개소 군부대 송신소가 있는 바람에 산은
형태조차 보이지 않는다... 군부대 통신소야 보안상 이유로 인해
안되겠지만 민간 통신소야 하나만 지어서 같이 공유하면 경비도 엄청
줄이고 그러면 소비자도 덕일텐데 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활성산(活城山:498m:12:10)
전남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와 한대리 그리고 금정면 연소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고원처럼 형성되어 있으며 옛날에는 산성이 있었고 최근에는 목장이 있었다
활성산이란 지명은 이곳에 있었던 활성산성(活城山城)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때는 활쏘는 훈련장으로 쓰였으며 지금도 정상 주위에는 토성의 흔적이 있으며
예전에는 남활성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활성산 동쪽의 영암읍 한대리와 금정면 연소리 골짜기는 탐진강 수계의 유치천이며,
서쪽의 영암읍 농덕리와 장암리 계곡은 영산강 수계의 영암천이다.
한편 활성산의 세 갈래 능선은 북동쪽은 국사봉을 거쳐 궁성산으로,
북서쪽은 백룡산으로, 남쪽 월출산으로 이어진다
산 정상에는 활성산이란 아무런 표식도 없고 FRP로 만든 산불감시초소와
예전에 산불감시초소로 썼던 폐철재가 을씨년스럽게 정상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활성산에서 실망감만 가득안고 억새가 등로를
점령한 곳을 겨우 感으로 등로를 이어가는데 맞은편 월출산만 산꾼을 반긴다
달뜬봉(屯德峙:460m:12:20)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와 한대리,금정면 연소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여암 선생의
山經表에는 둔덕치 영암동남분이기(屯德峙 靈巖東南分二岐)로 표기되어 있다.
이 곳 봉우리로 보름달이 뜬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 듯 하다
즉 영암 동쪽에서 남쪽으로 두 가지가 뻗어 있다는 뜻으로
영암군 영암읍에서 장흥군 유치면을 넘나드는 고개이다
둔덕치는 둔덕마을에서 한대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에 병사들이
활성산을 점령할 때 집결하였던 곳으로 둔덕 위에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가막살나무
달뜬봉에서 급경사로 내려서니 직진길로 뚜렸한 임도가 나온다
조금을 내려오다가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길이 아예없는 숲으로
들어서야 하는데 이곳은 필히 독도에 신경쓰야 하는 구간이다
좌측 숲으로 꺽어지니 선답자들의 반가운 시그널이 보인다
뚜렸한 등로에서는 시그널이 보이지 않으나 숲으로 조금 들어서니
반가운 시그널들이 산꾼을 반겨주지만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어디로 가라는 건지?
시멘트 공터(12:50)
길이없는 숲을 헤치고 나오니 넓은 시멘트 공터가 나오고 좌측으로 포장도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기맥길은 직진으로 가야하나 대다수 산꾼들은 좌측 임도로 내려서는 모양이다
김포오야지님과 둘이서 직진길로 접어드는데 길은없고 가시가 많은 잡목에다가 칡넝쿨,
싸리나무가 태클을 거는것도 모자라서 아무도 다니지 않았는지 거미줄까지 얼굴에 걸린다
험한 그 길에서도 대산꾼 준.희님 등 쟁쟁한 산꾼들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쥔장은 떠나고 빈 둥지만...
달뜬봉?(12:55)
시멘트 공터에서 5분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능선에 올라서니 기.지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3,000산 오르기에 도전하시는 한 현우님께서 이곳에다
‘달뜬峰’이라는 표지기를 달아놨고 스마프폰에 깔아논 트랭글 앱에서도
이곳을 달뜬봉이라고 알려준다... 지도상에는 활성산 아래 봉우리가 맞는데
약간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平山申公 묘지(12:58)
능선을 빠져 나오니 평산신공의 묘지가 나온다.
어르신 참으로 복도 많소이다...부인을 둘씩이나 거느리셨군요... 부럽사옵니다
묘지에서 직진으로 등로가 있는데 잡목과 벌초하고 버린
나무들로 인하여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임도 삼거리(13:07)
영암군 영암읍 한대리와 장암리로 연결하는 도로로 임도에서 직진을 한다
직진해서 10m 정도를 가다가 좌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임도 좌측에는 松坡愼氏와 부인 文化柳氏 묘비가 서 있고 묘비석 위에
지붕이 있는데 지붕이 있는 묘비는 벼슬을 한 사람에게만 하는 것인데
이 어른은 學生이라 기록한 걸로 보아 벼슬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르신 시비 걸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는거지
숲이 우거지기는 했으나 등로는 대체로 좀 뚜렸하다
가뭄에 콩나듯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간간히 보이고...
등로 갈림길(13:20)
이곳도 독도에 아주 유의해야 할 곳이다... 등로가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좌측으로 꺽어지기 전에 묘지로 올라가는
넓은 임도를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곳 역시 길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좌측으로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인다
이곳부터 돈밧재 내려서기 직전까지 6여년간 매주 산행을 하면서도
이 구간처럼 개고생한 기억이 없다... 정말 미칠것만 같다.
능선을 넘어서니 벌목지가 나오는데 아카시아, 산초나무, 복분자 등
가시달린 나무란 놈은 다 모아놓은 느낌이다... 거기다가 벌목한 나무를
등로에다가 다 모아놓아 도저히 치고 나갈수가 없는데 이곳에서
지쳐버리고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누워있는 넘을 지나려니 땅바닥으로 기어야하고 천신만고 끝에 임도로 나온다
임도(13:50)
1km도 안되는 거리를 급경사의 오르막도 아닌 평평한 능선을 빠져 나오는데
30분이란 시간이 소요되니 미치겠더라... 몸뚱아리는 온통 상처뿐인 패잔병이다
이곳에서 동료 산꾼들이 오길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는데 동료들에게 괜스레 미안하다
임도로 가는걸 그냥 내버려 둘걸...
임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자동차가 다닐만큼 넓은 임도로 내려가다
다시 우측으로 꺽어져 능선으로 접어드는데 이곳 역시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등로는 전혀 보이질 않으나 오랫동안 나홀로 산행을 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로 걷는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조금을 가다가 좌측으로 꺽어지니...
시원하게 뻗어있는 편백나무 숲이 나오고...
지난 4월에 영산기맥 함평의 산에서 만난 부산 맥클럽 시그널도 만나고...
무명봉을 넘어서자 또다른 벌목지를 만나는데 이곳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벌목지를 치고 오르는 곳에 산딸기가 군락지를 이루는데 몸뚱아리를
닥치는데로 할키는데 이젠 바지속에서 피가 묻어나올 지경이다
맞은편으로는 월출산이 보이고 우측으로 영암읍내가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영암읍의 모습
영암의 명산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세 개의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사람들은 동석(動石)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바위의 무게로 보아 수 백사람이 밀어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으나 한 사람이 밀거나
열 사람이 흔들어 보아도 그 움직임이 같기 때문다.
또한 이 3개의 움직이는 바위 때문에 영암에 큰 인물이 난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를 시기한 중국인들은 영암에서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 두려워 이 바위를 모두
산 아래로 떨어뜨렸는데 다음날 보니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신령한 바위(靈巖)라고 말하고 있고 영암에서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영암(靈巖)이라는 지명은 이 신령한 바위에서 유래했다
무명봉(14:50)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좌측으로 편백나무 숲을 만나면서 오르막을 오르고...
다왔나 싶었는데 또다시 조그만 봉우리가 나타난다
임도를 만나서 내리막길을 내려서다가...
수변구역을 표시하는 하얀 아크릴 말뚝을 만나는데
모든게 바래 버려서 알아볼 수가 없다
수변말뚝을 지나자말자 우측의 숲속으로 접어든다
숲속으로 들어서서 조금을 걷다가 다시 편백나무 숲을 만나면서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진한 편백향이 지친 산꾼의 머리를 상쾌하게 만든다.
암릉(15:10)
편백나무 숲을 지나니 암릉구간이 나오고 좌측으로 월곡제가 시원스레 보인다
월곡제(강진군 옴천면 소재)
옴천면은 전라남도 강진군의 북쪽 끝에 위치한 면으로 북으로 땅재를 경계로 영암군과,
서남쪽으로는 주봉(302m)을 사이에 두고 강진군 작천면에 접한다.
남으로는 깃대봉과 옥녀봉을 사이에 두고 병영면과, 동으로는 장흥군과 접한다.
면의 북단인 월곡리 일원에서 발원한 옴천천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면서
영산천, 황곡천, 신덕천 등을 합류한 후 장흥군으로 흘러간다.
옴천면은 본래 연천(燕川)이라 하였으나, 주민들이 각종 질병을 앓게 되자
불경에 나오는 옴자(唵字)를 써서 옴천(唵川)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 하천에서 면 지명이 유래하였다
강진군 옴천면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초 미니 면”으로 얼마나 실리가 없었으면
“옴천면장 할래~ 마을이장 할래” 라는 말이 나왔을까 싶다.
‘옴내’로 불리는 “옴천(唵川) 이라는 지명은 이 면의 들녘을 적시며 흐르는 맑은시내를 가르킨다.
월출산의 지맥인 활성산에서 발원한 제비내(燕川)와 깃대봉에서 발원한 세류천이 오추에서 합류하여
장흥 유치의 탐진강으로 흐른다.
우리나라에서 이 옴(唵)자가 들어간 지명은 옴천이 유일하다.
원래 이 옴(唵)은 범어 'AUM' 음역자로 불교의 법회때 꼭 암송하는 그래서 반야심경의
첫소리는 “옴(AUM)으로 시작해서 “사바하(SVAHA)로 끝나며 진리의
형성을 뜻하는 창조. 유지. 파괴로 해석된다.
이는 옴천이 신성한 지역으로 조용하고 맑은 물이 있어 고승들이 불경을
외우고 참선할수 있는 최적지라는데서 비롯된것으로 보인다.
측백나무를 심어논 지역을 지나는데 이곳 역시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또다시 잡목과의 전쟁은 시작되고...
잡목구간을 지나니 묘지 1기가 나오고 다시 좌측 봉우리로 올라선다
마지막 봉우리를 향해서 모든 에너지를 다 쏟으며 올라선다
돌무더기를 지나서 올라서니 밤이 꽤나 많이 보인다
밤나무 아래는 밤이 많이 떨어졌건만 이제 모든게 귀찮기만 하다
다시 무명봉에 올라섰다가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길은 사라져 버린다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시그널을 따라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내리막길이 편하게 나오는데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낣은 임도를 버리고 내려서니 무명 묘지가 나오고 잠시후 光山金氏 묘지가 나온다
묘지를 지나서 우측 임도로 나오니 돈밧재 표시석이 보인다
돈밧재(錢田峙:280m:15:30)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옴천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835번 지방도가 지나며
한적하고 높은 고개여서 산적들이 재를 넘을 때 돈을 받았다고 하여 불렀다는 설이
있으며 이곳에서 온천이 나와 언젠가는 돈밭(錢田)이 될거라 하여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어느 부자가 가파른 고개를 넘기위해 닷냥의 돈을 주고 업혀서 넘었다고
하여 닷돈재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마을사람들에 의하며 옛날 도둑들이 숨겨논 돈이 돈밧재 어디에 묻혀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돈밧재에 약 20여 가구가 살았던 월송정(月松亭) 마을이 있었지만
현재는 아무도 살지 않아 폐촌되어 버렸고 현재 지방도 835호선인
장강로가 건설되어 있어 영암에서 장흥으로 갈 때 이용되고 있는 도로다.
오늘 산행의 날머리는 풀치재였는데 잡목의 저항이 워낙 강경하여 예상시간보다
2시간 이상 지체되는 바람에 歸京시간이 차질이 생길것 같아 돈밧재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여기서 풀치재 가는길도 잡목이 심한 구간이라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상당히 무리일 것 같아서 말이다.
산행을 종료하는 단체사진을 찍은 다음에 강진군 작천면에 가서 식당 화장실에서
샤워를 한 다음 식사를 마치고 서울가는 버스에서 세상 모르고 깊은 잠에 빠진다
오늘 산행중의 전리품
잡목과의 힘든 전쟁후의 전리품은 참으로 초라하다
눈에 잡티가 들어가서 안과에서 치료를 받았고 풀독으로 인해 피부과 치료 중이다
상처뿐인 영광... 그래도 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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