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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9기맥 자료및 산행후기 ♣/땅끝기맥(終)

땅끝기맥 제3구간 - 돈밧재에서 밤재까지

by 범여(梵如) 2014. 10. 16.

☞ 산행일자: 2014년 10월 9일

☞ 산행날씨: 맑고 청명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22.3km / 10시간 1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돈밧재-347봉-338봉-375봉-330봉-풀치재-누릿재-555봉-양면불상-달구봉 전망대

                  경포대 삼거리-통천문 갈림길-통천문-월출산(천황봉)-돼지바위-남근바위-바람재

                  베틀굴-구정봉갈림길-구정봉-헬기장-향로봉-미왕재(억새밭)-500봉-안부

                  430봉-도갑산-도갑재-375.8봉-386봉-329봉-주지봉갈림길-전망바위-352봉

                  뫼봉갈림길-묵동재-월각산갈림길-월각산-383봉-월하마을 갈림길-307-282봉

                 함양박씨 묘지-밤재

소 재 지: 전남 영암군 영암읍,군서면,학산면 / 강진군 옴천면,작천면, 성전면

 

지난번 2구간에서 너무 고생을 하여 땅끝기맥 나서기가 무척이나 두려웠지만

또 그 사이에 땅끝기맥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한글날이란 휴일을 맞이하여 나홀로 길을 나선다

집에서 산에 간다고 하니식구들은 이제 가던지말던지 관심조차 없는 모양이다

지난 2개월동안 주위에 돌아가신 분과 암 투병으로 들어간 분들 때문인지

산에 가는데 대해서는 아무런 토를 달지않고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으니 얼마나 고맙던지...

다리에 힘있을 때 부지런히 다녀야지... 스스로 위안을  서둘러 베낭을 싸서 고속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광주행 버스표

 

 

터미널에 도착하니 18시 30분인데 5분마다 한대씩 출발하는 광주행 버스중에 우등고속이 아닌

 

 

일반고속버스는 가장 빠른 시간이 1시간이상이나 기다려야 하기에 표를 예매하고 좀 이른 시간에

 

 

저녁을 먹은 다음에 대합실에서 신문 하나를 사서 읽어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19시 23분 광주가는 버스

 

 

버스에 올라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하루만 쉬면 나흘간의 연휴라 그런지 반포I.C를 빠져나오자마자

 

 

고속도로는 완전히 주차장으로 변해있다... 불경기라해도 놀러갈 사람은 다가는 모양이다

 

 

나혼자만 살기가 힘이드나... 그러는 바람에 예상시간보다 20분이상 늦게 광주터미널에 도착한다

 

 

광주터미널(22:55)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내일 새벽04시 40분에 영암으로가는 버스표를 예매한다

 

 

광주발 영암행 버스표

 

 

터미널 2층 수면실(23:00~04:00)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터미널 2층에 있는 수면실로 향한다.

 

 

영산과 땅끝기맥을 하면서 벌써 오늘로 5번이나 신세를 지는곳이라 이젠 낯설지가 않다.

 

 

락카룸 키를 받아서 베낭을 넣고 욕탕에 들어서니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고

 

 

욕조물은 깨끗하다... 느긋하게 30분정도 샤워를 끝내고 수면실로 향한다

 

 

늘 북적거리던 40개의 침상이 있는 침실에는 오늘은 10여명 밖에 없어 편하게 수면을 취한다 

 

광주터미널(03:50)

03시 30분에 일어나 욕실에 들어가 몸을 녹인 다음에  올때마다 들렸던 지하 식당은 아직 문을 안열었다

 

 

늘 우리에게 잘해주던 식당이 문을 열지않아 아쉽지만 도로를 건너 문을 연 식당으로 향한다

 

 

난생 처음먹어 보는 뼈다귀 해장국

 

 

이곳은 유흥업소가 많은 곳이라 그런지 이른 새벽이건만 손님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그러데 주 메뉴가 돌솥 뼈다귀 해장국인데 맛이 기가 막히게 맛이 있다.

 

 

가격은 8,000원이라 호주머니가 가벼운 산꾼에게는 부담스런 가격이지만...

 

 

식당에서 커피 한잔까지 마시고 편의점에 들려서 간식으로 먹을 빵 하나와 쥬스를 사서

 

 

베낭에 넣고 버스를 타러 플렛홈으로 향한다

 

 

04시 40분발 영암으로 가는 버스

 

 

영암버스 터미널(05:50)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10분만에 영암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이곳은 아직 적막강산이다

 

 

명색이 읍내이건만 흔해빠진 편의점 하나도 없다... 산에서 반주로 먹으려고 이 지역 막걸리

 

 

한병 사려고 광주에서 그냥 왔는데 살곳이 없으니... 하는 수 없이 택시 승차장으로 향한다

 

 

돈밧재(06:10)

 

 

영암에서 택시로 15분 걸려서 돈밧재에 도착하니 아직도 컴컴하기만 하다

 

 

음력 구월 열엿새날의 하현달만 월출산 정상에 걸려있고 택시는 다시 돌아간다

 

 

택시가사가 가면서 하는 말이 왜 힘들게 혼자 다니시냐고... 그래 당신은 혼자 다녀봤어...

 

 

돈밧재의 전해오는 얘기로 옛날 도둑놈들이 묻어놨다는 돈이 어디있냐 찾아보려고 했으나

 

 

어두워 어디가 어딘지 구분도 안되지 일찌감찌 포기를 하고 산행 준비를 한다

 

 

돈밧재 들머리에 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헤드렌턴을 켜고 스틱을 편 다음에 스트레칭을 한 후에 산행을 시작한다 (06:20)

 

 

347봉(06:40)

 

 

돈밧재에서 풀치재가는 길은 그야말로 악명높은  길로 유명하지만 지난 2구간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다... 넘어진 나무와 잡목과 망개나무가 괴롭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갈만하다

 

 

이제 어둠이 걷히면서 헤드렌턴을 베낭에 집어 넣는다.

 

 

 

가막살 나무 열매인가?

험한 숲을 헤치고 나가면서 꽤나 큰 잔나비걸상 버섯을 하나 수확한다

좌측 옴천면 월곡저수지 위로 일출은 시작되고... 

산죽 터널을 지나고...

338봉(06:50)
 

완만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름길을 올라서니... 정상으로 오르기 전에 옆사면길이 나온다

이곳이 375봉은 오르지 않고 옆사면을 치고 나오다 다시 330봉로 오른다

330봉(07:15)

330봉을 내려오는 등로 나뭇가지 사이로 월출산 달구봉과 사자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NO 214 송전탑이 나오고...

예쁜 영지를 만나고... 흐미 이쁜 넘

송전탑을 지나니 故 韓奎錫님의 묵묘가 나오고...

김해김씨 가족묘를 만난다

김해김씨를 묘지를 따라 내려오니 편백나무 숲이 나오면서 풀치재가 보인다

돈밧재에서 이곳까지 잡목과의 전쟁을 치른 다음 풀치재에 다다른다

 

풀치재(07:30)

 

 

 

영암군 영암읍에서 강진군 작천면을 잇는 고개로 13번 국도와 829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지도상에는

 

 

 

불티재라고 표기가 되어 있으며 일제시대에 도로가 개통된 이 도로는 한때 교통의 요충지였으나

 

 

 

지난 2000년도에 이 고개 아래 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나처럼 땅끝기맥 산꾼이나 지나는 잊혀진

 

 

고개가 되어 버렸다... 지도상이나 산꾼들에게 불티재로 알려져 있는 이 고개는 불티재, 풀치재

 

 

 

풋치재 등 여러개의 지명을 가지고 있어서 상당히 혼란스러웠으나 국토관리청이 이 고개 아래에

 

 

 

개통된 터널 이름을 짓기 위해서 관련 지자체인 영암, 강진군과 협의한 결과 풀치재로 최종 결정했다고 한다

 

 

 

고개 삼거리 건너편에는 월출산국립공원에서 세운 출입금지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고 버스정류장이

 

 

 

있으며 정류장 옆에는 조그만 소공원이 설치가 되어있다

 

 

풀치재 버스 정류장

조선 시대 사료에는 화현(火峴) 혹은 화치(火峙)로 기재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영암)에 "화현은 영암군의 남쪽 28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대동지지』(영암)에도 화현이 강진 경계에 있는 고개로 나타난다.

『호남지도』, 『광여도』, 『대동여지도』 등의 조선 후기 고지도에는 영암군의 남쪽,

율치(栗峙)와 동치(東峙) 사이로 '화치(火峙)'가 기재되어 있다.

이칭인 풀칫재(초치)에 대해 서쪽의 노루재(누릿재)가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므로 풀치[草峙]라고 하였다는 설도 있다.

 

풀치재 삼거리에서 월출산 출입금지 표지판 뒤로 올라선다

월출산 국립관리소장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네요

벌금 매긴다고요 그래도 갈 넘은 다 갑디다

출입금지 대나무 울타리를 지나서 올라오니 안부에 밤나무가 있고 좌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우측으론 길이 보이지 않으나 월출산 오로는 길은 우측이다

우측으로 접어드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간간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누릿재(220m:08:05)

 

전라남도 영암군의 영암읍 개신리와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월출산국립공원 동쪽의 고개로 월출산 천황봉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사자봉을 거쳐 노루재로 이어진다.

노루재는 노릿재, 누룻재, 황치(黃峙)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지리지에서 노루재를 찾아보기는 어려우나 『호남지도』에 월출산과

화치(지금의 불티재 ) 사이에 황치(黃峙)가 묘사되어 있는 것을 비롯해 『지승』, 『여지도』,

『광여도』 등에 황치(黃峙) 혹은 황현(黃峴)으로 기재되어 있다. 지명은 고개가 '

황사출림(黃蛇出林)' 형명당이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고개에 풀잎이 많았는데 풀잎에서 누린냄새가 난다고해서 누릿재로 불리웠는데 가까운 곳에

 

풀치재가 있었지만 예전의 민초들은 넓은 풀치재보다는 이곳 누릿재를 주요 이용햇다고 한다.

 

 

 

풀치재를 이용하면 월출산을 우회하여 반송정과 청풍삼거리를 거쳐야만 영암읍을 갈 수 있지만

 

 

 

누릿재를 넘으면 곧바로 영암읍 개신리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 반더의 자유님께서 누릿재라는 표식을 붙혀놨다

누릿재를 지나 무명봉 오르는 길에는 이야기가 있는 생태 탐방로라는 팻말이 있는데

길을 막아놓고 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지 국공파의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네그려

누릿재에서 통신탑을 세운지가 얼마되지 않았는지 주위에는

자리공을 비롯한 잡목들을 잘라낸 흔적들이 곳곳에 어지럽게 널려있다

신 누릿재(黃峙:08:10)

 

 

황토고개로 불리는 이 고개는 해남, 강진 등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이 고개를 넘었고 한양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아 귀양을 가는 선비들이 넘던 고개로

 

 

추사 김정희, 다산 정 약용 선생들이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다산 선생이 넘었던 길이라하여 남도유배길이라는 둘레길을 만들어놨다.

 

 

 

이곳은 예전에 삼남의 교통 요충지로 해남, 강진사람들이 영암으로 장을

 

 

보러 다닐때 넘던 고개였으며 남해안의 풍부한 해산물과 영암, 나주의

 

 

농산물을 물물교환하기 위해서 이 고개를 넘어야 했던 민초들의 애환이

 

 

이 고개는 지금도 군데군데 옛 주막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다산선생이 남도 유배길에 넘었던 고개를 산꾼 범여가 지금 넘고있다

.

다산(多山) 선생의 남도 유배길이라는 이 길은 우리가 가는 땅끝기맥 끝부분인 형제섬

앞에서 출발하여 서울 남태령까지 연결되는 삼남길인데 내 생전 이 길 걸어볼 날이 있겠지

또다시 출입금지 구역이란다... 죄송합니다

이곳에 설치되어 있는 데크목 테이블에 베낭을 벗어놓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누릿재의 안내판

땅끝기맥길을 이어가기 위해 부득히 禁線을 넘는다

대나무로 만든 차단막을 지나니 아주 편안한 임도가 나온다

무슨 버선인지?... 버섯도감을 찾아봐도 알 길이 없고...

완만한 임도를 따라서 편하게 월출산 정상으로 향하는데 이곳은 조릿대를 만드는 산죽들이 많이 보인다

임도 주위에는 범여가 좋아하는 가을의 꽃 구절초가 많이 피어있고...

철없는 철쭉

감나무도 만나고...

천남성

사람의 출입을 막아놓은 이곳은 멧돼지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는지

온 천지를 다 파헤치논 것이 미친년 널 뛰듯이 난장판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멧돼지는 보호되야 하고 건강을 위해 길을

걷겠다는 인간은 단속의 대상이니 참으로 엿같은 세상이다

신누릿재에서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30분동안 걸어오니 안부 능선에 도착하는데

이곳에 서니 지난 구간의 국사봉과 활성산이 보이고 잠시후 가야할 달구봉이 산꾼을 반긴다

지난 구간 활성산의 모습

잠시후에 가야할 등로

능선에서 달구봉을 바라보면 걷는데 이곳은 아예 길이없고 칡넝쿨과 전쟁을 치른다

5분간의 칡넝쿨과의 전쟁끝에 겨우 등로로 빠져 나온다 

과남풀

등로를 빠져나오니 멋지게 생긴 소나무 한그루가 말라 죽어있고 조그만

암릉위로 올라서니 남도땅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월출산으로 접어든다

이른 아침부터 걸어온 등로의 궤적

555봉(08:50)

 

힘들게 암릉인 555봉 정상에 오르니 ‘錦江居士 海州崔公現之墓’ 가 있다

 

 

 

후손들의 손길이 닫지 않았는지 과거의 영화를 잊어 버린채 방치되어 있다

 

 

 

묘지를 지나니 양면불상의 안내판이 나온다

 

금강거사 묘비가 있는 555봉에서 1분정도 지나니 좌측으로 양면불상 낡은 표지판이 있다

이곳에서 2분정도 아래로 내려서니 양면불상을 만난다

양면불상 전면의 모습

양면불상 후면의 모습

양면불상(兩面佛象)

 

기맥길에서 좌측으로 2분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앞.뒤로 부처님의 상이

 

 

 

새겨진 특이한 불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조각기법이란다

 

 

 

가사장삼에 가부좌를 하고있는 양면석불에 대한 자료는 없다고 한다

 

 

 

잡목속에 방치된 석불로 인해 추측해 보건데 예전에 사찰이 있었던 모양이다

 

양면불상의 주위에는 사지(寺地)의 흔적이 아련히 보이지만 그냥 방치되어

있는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양면불상에게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다시 기맥길로 돌아온다

줌으로 당겨본 달구봉(673m)의 모습

풍수지리상 암닭이 알을 품고있는 형상이라 봍혀진 지명으로

 

 

닭의 전라도 방언인 달구새끼에서 유래된 지명인듯 싶다.

 

암릉구간 옆 사면을 따라 오르다 암릉구간을 지나는데 예전에 있었던

로프를 짤라 버려서 숏다리인 범여는 참으로 죽을 지경이다

택리지(擇里志:살만한 터를 선택하기 위한 책)를 저술한 청담 이 중환은

 

 

월출산을 하늘에서 기(氣)를 내뿜는다고 하여 “화승조천(火乘朝天)” 의 지세라 했다

 

 

 

실제로 월출산은 원적외선이라 방출하여 약석이라 불리는 맥반석이라 불리는

 

 

 

화강암으로 구성된 암산이다

 

월출산 가는 길에서 뒤돌아본 기맥길에서 벗어난 양자봉의 모습

4개의 암릉이 모여서 연꽃잎처럼 보인다고 양자봉이라 붙혀진 이름이란다

 

 

봉우리 너머로 강진군 성전면 월남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바짝 다가가 본 달구봉

달구봉 정상은 아쉽게도 너무 험해서 오를수가 없고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영암의 지명유래가 된 봉우리의 모습

영암의 명산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세 개의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사람들은 동석(動石)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바위의 무게로 보아 수 백사람이 밀어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으나 한 사람이 밀거나 열 사람이

흔들어 보아도 그 움직임이 같기 때문다. 또한 이 3개의 움직이는 바위 때문에 영암에 큰 인물이 난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었는데 이를 시기한 중국인들은 영암에서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 두려워 이 바위를 모두

산 아래로 떨어뜨렸는데 다음날 보니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신령한 바위(靈巖)라고 말하고 있고 영암에서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영암(靈巖)이라는 지명은 이 신령한 바위에서 유래했다

달구봉 맞은편 봉우리에서 초코파이에 쥬스하나로 원기를 보충하며 휴식을 취한다

 

달구봉에서 바라본 월출산 정상 천왕봉의 모습

 

 

 

천황봉의 지세는 황룡(黃龍) 한마리가 승천하는 형세란다

 

 

장군봉과 사자봉을 이어주는 바람계곡은 용의 입이며

 

 

영암실내 체육관에서 시작되는 신성대 능선길은 좌측 앞발

 

,

풀치재에서 올라오는 땅끝기맥 마루금 능선은 우측 앞발이란다

 

암릉에 앉아 지나온 국사봉과 활성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발 아래는 사자저수지가 시원스레 보인다

월출산 천황사 입구에서 약 3㎞ 지점에 있는 저수지로서 월출산국립공원에 속하였다가 2010년 해제되었다.

1978년 농업용 저수지로 신축되었으며, 유효 저수량은 46만 2700㎥, 저수량은 22만 6500㎥,

 저수율은 49%, 수위는 62.79m이며 명칭은 개신리의 마을 이름인 사자마을, 가까이 있는 사자봉 등에서 유래하였다.

다산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을 따라 이 저수지에서 누릿재∼하치마을(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을 잇는 월출산 둘레길이 조성되었다.

 

월출산 암릉에 오르니 天下를 다 얻은 기분이다

 

 

이곳 영암이 왜 유명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는지 알 수 있을것 같다

 

 

고려시대에 高僧으로 보다는 풍수지리의 大家로 알려진 도선국사,

 

 

백제사람으로 일본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초빙으로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 해박한 경서의 지식으로

 

 

응신천황의 신임을 받아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하는 왕인박사

 

 

이것이 일본의 비조(飛鳥) 문화(아스카문화) 꽃피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게 한 왕인박사도 이곳 월출산 아래 영암출신이다

 

 

그 이외도 민족음각을 창시한 악성 김 창조선생, 바둑계의 황제였던

 

 

조훈현 국수도 이곳 출신이다

 

잠깐 사이에 땀이 젖는 바람에 寒氣를 느껴 서둘러 베낭을 메고 천황봉으로 향한다

짤달막한 산죽길을 지나고 다시 오솔길의 옆사면으로 걸으니 통제구역이 보인다

사자봉쪽으로 바라보니 멋진 암릉들이 마치 설악산에 온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통제구역 끝부분(09:40)

풀치재에서 이곳까지 통제구역을 벗어나 정상적인 월출산 구간으로 접어든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유명한 월출산 구름다리로 가는 길이고 기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이곳부터는 월출산을 찾는 등산객을 만날수 있다.

철제 계단으로 올라서니 천황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월출산 천황봉의 모습

조선조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은 달이 뜨는

아름다운 월출산의 비경에 반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고 한다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 뜨지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

 

고산 윤선도는 山中新曲 중에서 월출산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월출산이 놉더마는 미운거시 안개로다

천황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와라

두어라 해퍼 딘 뒤면 안개 아니 걷으랴 

 

월출산의 남도의 5대산이라는 남원의 지리산, 정읍의 내장산, 장흥의 천관산

순천의 조계산과 같은 육산(陸山)이 아니고 수석 전시장을 연상케하는 기암괴석이

가득한 골산(骨山)으로 그래서 남도사람들은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부른다

 

1973년부터 전남도립공원이었던 곳을 도갑사지역과 같이 묶어 1988년

월출산국립공원으로 승격시켰으니 20번째의 국립공원으로 국립공원중에 가장 적다

등산객들을 만나면서 능선을 걸으니 마치 지리산에서나

보는듯한 울타리가 처진 등로를 만나는데 경포대 능선 삼거리란다

경포대 삼거리(09:50)

경포대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2.6km 떨어져 있으며 금릉은 강진의 옛 지명이며

경포대의 지명유래는 계곡에 달그림자가 아름답게 비친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성전면 월남리의 월출산 남쪽 계곡에 위치한 경승지로 일명 '금릉경포대(金陵鏡浦臺)'라 불리는 곳인데,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강릉의 경포대와 한자가 똑같다. 다시 말해 강진에도 경포대가 있다는 말이다.

 '경포대'라는 것은 여름밤의 밝은 달과 담소의 맑은 물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는 데서 유래되었는데


여기에 강진의 옛 이름인 '금릉(金陵)' 을 써서 '금릉경포대' 라 이름하게 되었다한다.

 

 

이곳은 또한 강진 월출산 등산의 기점이기도 하다

 

월출산 정상 천황봉으로는 등로는 암릉구간으로 철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천황봉가는 길에서 영암읍쪽의 능선을 내려다보니 마치 설악산 용아장성(龍牙長城)처럼 보인다

그리 높지(807m)도 않은 산이 참으로 빼어나게 멋있게 보인다

 

1988년도 우리나라에서 20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출산은

 

 

국립공원중에 면적(56,2㎢)이 가장 적지만 금강산, 설악산을

 

 

 

축소해 놓은듯한 멋진 암릉을 자랑하는 구간이다

 

 

 

능선에서 천황봉으로 곧바로 오르지 못하고 우측으로 꺽어지니 고무판을 깔아논 계단이 나온다

 

통천문 삼거리(09:55)

우측으로 장군봉과 바람폭포를 내려가는 길이다

다시 철계단을 올라 하늘로 통하는 문으로 간다

철계단 옆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판

통천문(通天門)

하늘로 통한다는 뜻을 가진 통천문... 결국 이 문이 세상과 하늘의 경계인 셈이다,

이 문을 지나 하늘의 황제가 살고 있다는 천황봉 이라는 하늘나라가 있다면

이럴것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스럽고 아름다운 곳임은 분명해 보이지만

통천문의 좁은곳은 지나니 황금들판으로 노랗게 물든 영암의 넓은 들판이 보인다

통천문을 빠져나와 곧바로 천황봉으로 오르지 못하고 또다시 계단으로 내려선

다음에 천황봉으로 향하는데 옥황상제 만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우회를 하여 올라서니 좌측의 멋진 암릉이 산꾼을 유혹하고 우측 100m 에 있는 천황봉으로 오른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금릉 경포대 계곡과 월남저수지가 멋진 모습으로 산꾼의 시야에 들어온다 

 

금릉 경포대(金陵 鏡布臺) 계곡의 모습

 

 

 

월출산 최고봉인 천황봉 서쪽의 계곡을 말하며 월출산에서 동백이 가장 많은 곳이란다

 

영암읍내의 모습

월출산 정상에 오르면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정말 환상적이다

정상에는 명산답게 등산객들이 많이 보이고 가장 먼저 동판이 산꾼을 반긴다

월출산(月出山:809m:10:10)

 

 

전남 영암군 영암읍, 군서면과 강진군 성전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우리나라

 

 

 

국립공원중에 가장 적은 곳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달이뜨는 산’이란다

 

 

 

 

지리산, 내장산, 천관산, 변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 20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산 전체가 천혜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남한의 금강산으로 불리운다

 

 

 

 

주봉인 천황봉을 중심으로 능선과 병풍이 아름답게 펼처져 천하절경을 자랑한다

 

 

 

월출산하며 보통 영암 월출산이라고 하듯이 영암과 관련이 많다

 

 

 

영암군의 옛 지명이 월나군(月奈郡) 또는 월생군(月生郡)이었고 백제때는

 

 

 

월나군(月奈郡)이라 불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월나악(月奈岳)이라 했으며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고 불렀다 한다

 

 

 

월출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인기명산 12위에 오를만큼 천황봉을 중심으로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제13호),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이 있으며

 

 

 

구정봉 아래 용암사지 근처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이 자리를 잡고있다

 

 

 

천황봉(天皇峰:809m)

 

 

 

월출산의 주봉이 천황봉이다 속리산 천황봉(1,058m)과 계룡산의 주봉인 천황봉(845m)은

 

 

원래천왕봉이었는데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지도에서부터 일본 천황을

 

 

 

뜻하는 천황봉으로 바뀌었지만 이곳 월출산 천황봉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천황봉으로 불렀다고 한다

 

월출산 소사지 안내문

통일신라시대 이후 五岳(동악-토함산, 서악-계룡산, 남악-지리산, 북악-태백산

 

 

중악-팔공산)정상에서 國太民安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그중 호남의

 

 

 

명산인 이곳 월출산 정상 천황봉에서도 제사를 지낸 흔적인 ‘小祀址’터 발견되었다고 한다

 

 

 

 

월출산 정상석 뒤에 ‘小祀址’라고 새겨져 있고 이곳에서 발견되었다는 통일신라시대의

 

 

토제향로와 토우편, 고려시대의 녹청자접시와 청자탁자편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처음와 본 월출산

고도가 그리높지 않는 산치고는 너무나 환상적이다

산꾼들이 흔히 말하는 정맥의 꽃은 금남정맥이고 기맥의 꽃은

땅끝기맥이라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월출산 정상 1등 삼각점(△ 영암 26 / 1990 재설)

월출산 정상에서 만난 고마운 분들

영암에서 먹거리를 사가지고 와야 하는데 편의점이 없는 관계로 먹을거리라곤

집에서 가져온 고구마와 물 밖에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월출산 정상에서

강진에서 오신 분들이 맛있는 막걸리에 사이다까지 섞고 거기다가 부침개에다

족발까지... 산에 온 건지 먹으러 온 건지 나홀로 기맥길을 타는 산꾼으로서는 상상도

못할만큼 푸짐하게 보인다... 배는 고프고 하여 염치불구하고 막걸리 한잔을 달라고

하니 스스럼없이 주는 바람에 연거푸 3잔을 얻어먹고 나니 이제사 사물이 좀 보이기 시작한다

 

이 분들은 강진에서 왔다고 하면서 강진 무위사의 재월스님 茶 제자라고 밝힌다

한 분은  강진의 호야철강 사장이고, 또 한 분은 동양레미콘 대표, 또 한분은 광주광역 경찰청에

근무하시는 분이라는데 정말 고맙기만 하다... 사업번창하시고, 하시는 일 소원성취하시길 바랍니다 

미안해서 막걸리 한병만 파시라고 하니까 션한 막걸리 한병에 사이다까지 그냥 주신다.

그날 덕분에 너무 잘 먹었습니다... 세세생생 복받을 겁니다

그리고 새벽에서 버스에서 만난 부부산객님도 반가웠습니다

카메라를 떨어트려 SD카드가 망가지는 바람에 지인께서 복원해주시어 늦게 산행기를 올립니다

다들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넉넉한 남도 인심 잊지 않겠습니다 

월출산 정상에서 고마운 분들에게 막걸리 얻어 마시고 그냥 올 수가 없어서 미안한

마음에 베낭에서 비상식량으로 아껴두었던 캔맥주를 하나를 주고 30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나니 갈길이 너무 멀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고 서둘러 월출산 아래로 내려선다

내가 가야할 길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다

내려오는 길 우측에는 누가 밀면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 같은 바위도 보이고...

삼장법사 바위

중생구제를 위해 기도하는 삼장법사 형상이라는데 아직까지 삼장법사를

친견하지 못해서 感이 오질 않는다... 무지한 衆生을 용서하소서...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급경사를 내려선다 

능선 좌측으로는 강진 성전면의 들판과 월남 저수지, 그리고 양자봉이 보인다 

천황봉에서 바람재가는 등로는 마치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기암괴석들이 모두 다 환상적이다

 

일본의 유명한 수석애호가는 월출산을 평하기를

 

 

 

한국의 아름다움은 월출산에 다있다고 말할정도 기암괴석이

 

 

 

마치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천황봉에서 바람재가는 등로에는 300m 마다 이정목이 서있다

돼지바위(10:55)

바위의 형상의 숫돼지 코처럼 생겼다고하여 돼지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조금전에 지나온 천황봉을 다시한번 뒤돌아 보고...

가야할 능선의 모습

천황봉에서 구정봉가는 길의 기암괴석은 환상 그 자체이다

그리 험하지도 않는 이 길 아무래도 꽃피는 내년 5월엔 한번 더 와야겠다 

지나온 돼지바위를 뒤돌아 본 다음에 조금 더 가니 남근바위 안내판을 만난다

남근바위 안내판

남근바위(男根石:11:00)

월출산 주봉인 천황봉에서 구정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사이에 있는 기암(奇巖)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 속한다. 명칭은 남자의 성기를 닮은 데서

유래하였으며, 봄이 되면 바위 꼭대기에 철쭉꽃이 피어 생명의 탄생을 나타낸다고 한다.

구정봉 아래에 있는 여성의 성기를 닮은 베틀굴과 함께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하여

월출산국립공원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40대 후반의

남근석 사이로 지나는 길은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정도인데 40대 중, 후반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이 남근석을 붙잡고 사진을 찍고 있기에 오늘밤에 막둥이 만들려고

기를 받고 있느냐고 농담을 하니 그래봐야겠다고 농담을 받아 넘긴다 

남근바위를 내려서니 바로앞에 전망대와 우측으로 구정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다시한번 뒤돌아 본 남근석

바람재 가는 길에서 바라본 구정봉의 모습

이곳 안내판에는  장군바위(큰 바위얼굴)이라고 표기를 해놨다

월출산을 지키는 장군의 모습을 닮았다고하여 붙혀진 이름이라는데

자세히보니 그렇게 닮았는 것 같다

아쉬워서 또 한번 뒤돌아 보고...

데크목 전망대

남근바위에서 바람재 가기 직전에 넓은 전망대를 조성해놨다.

이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금릉 경포대 계곡과 월남 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오고

좌측으로는 양자봉이, 약간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천황봉이 아쉬운듯 바라본다

잠시후에 가야할 바람재의 모습

바람재 삼거리(600m:11:05)

월출산 등로에서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로 내려가는 길로 정상에는 이정표와

월출산 탐방안내도와 바람이 많이 부는지 바람을 측정하는 풍향계가 설치되어 있다

 

바람재의 유래에 관한 특별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월출산 국립공원의 주능선우로 등산할 때, 이 지역에서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해서

바람재라고 불린다고 구전되고 있다. 구정재, 구정치로도 불린다.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의 금릉 경포대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월출산 국립공원의 

주능선과 맞닿는 곳이기도 하다.

바람재삼거리 표지판

전방에 얼굴처럼 보이는 암릉이 장군바위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형상인 머리위에 투구모양이 월출산을 지키는

 

 

장군의 모습을 닮았다하여 장군바위(큰바위 얼굴)라 부른다

 

멋진 암릉을 앞에다 두고 철계단을 따라서 기맥길을 이어간다

철계단을 지나니 갈림길이 나온다

구정봉 갈림길(11:20)

이곳에서 땅끝기맥길은 직진으로 올라가야하나 여기까지 와서 유명하다는

베틀굴과 구정봉을 들리지 않을 수 없어서 우측 구정봉으로 향한다

구정봉 갈림길 이정표

지나온 월출산 천황봉의 모습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2분정도를 걸어오니 베틀굴이 나온다

 

베틀굴

 

 

 

구정봉(九井峰) 정상을 오르다보면 맨 먼저 나타나는 곳

 

 

 

딱 벌린 형상을 하고있는 베틀굴을 만난다

 

 

 

이 굴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이 근방에 사는 여인들이 난을 피해

 

 

 

이곳에 숨어서 베를 짰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다

 

.

 

굴의 깊이는 10m쯤 되는데 굴 속에는 항상 음수(陰水)가 고여있어

 

 

 

음굴(陰窟) 또는 음혈(陰穴)이라 부르기도 하며 이는 굴 내부의

 

 

 

모습이 마치 여성의 국부(局部)와 같은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더구나 이 굴은 천황봉쪽에 있는 남근석(男根石)을 향하고 있는데

 

 

 

이 기묘한 자연의 조화에 월출산의 신비를 더해주고 있다

 

.

베틀굴 안으로 들여다보니 여인들의 은밀한 부분과 너무나 똑 같아서 보는이를 민망하게 만든다

거기다가 맨 아래 부분에는 물이 많이 고여 

베틀굴에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구정봉으로 향하는데 미끄러운 암릉구간에 로프를 설치해놨다

마애여래좌상 갈림길(11:30)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50m 떨어져 있는 구정봉으로 향한다

구정봉 아래에서 본 모습

암릉구간을 우회하여 구정봉 정상으로 향한다

구정봉 정상에서 바라본 월출산의 모습

 

구정봉(九井峰:738m:11:40)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와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의 경계에 있는

 

 

 

월출산의 한 봉우리로 20여명정도는 족히 앉을 수 있을만큼

 

 

 

넓은 암릉이다. 평평한 암릉에는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아홉개의 웅덩이가 있는데 이 웅덩이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살았다하여 구정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

 

또다른 설은 옛날 구림에 살던 동차진이란 사람이 하늘을 향해

 

 

 

오만과 만용을 부리다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아홉번의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정상에 오르면 깍아지른 듯한 수천척의 절벽이 눈 앞에 전개되어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이며 월출산 내에서는 가장 빼어난 절경으로 이름난 곳이다

 

 

 

땅끝기맥길에서 200m 정도 벗어나 있다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 “월출산에 구정봉(九井峯) 이 있다.”라고 처음으로 등장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전라도 월출산에 “가장 높은 봉우리 곁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따라 올라가면 20명이앉을 만한 꼭대기가 있으며, 꼭대기 평평한 곳에

 

 

오목하게 패여 물이 담기기를 동이같이 된 것이 아홉이므로 구정봉이라 하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아니하므로 속설에 아홉 용(龍)이 살고 있다고 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잠시후에 걸어야 할 월출산의 제2봉인 향로봉도 한번 바라보고...

구정봉 나마

구정봉 나마는 봉우리 주변 지형을 반영한 구정봉이라는 봉우리 명칭과 해당 지형을 학문적으로

표현한 나마(gnamma)[화학적 풍화 작용에 의해 기반암 표면에 형성된 접시 모양의 풍화혈]가 합해진 명칭이다

 

중생대 백악기 말에 형성된 화강암이 차별적인 심층 풍화와 풍화층의 삭박 작용으로

형성된 박리 돔(exfoliation dome)으로 암체에 절리의 발달이 미약한 동쪽 사면은 괴상의

 

암벽을 연상시기며 구정봉 꼭대기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구덩이[웅덩이]가 있으며,

지형학 용어로는 나마라고 칭한다. 나마는 타포니(tafoni)[화학적 풍화 작용과 관련한

미지형으로서 암벽에 벌집처럼 생긴 구멍 형태의 지형]의 일종으로 주로 화학적 풍화에

의하여 평탄면에 생긴 요(凹) 지형을 말하며, ‘가마솥 바위’라고도 칭한다.

 

 

가장 큰 나마는 직경 260×180㎝, 깊이 50㎝이며, 나머지 12개는 직경 20×20㎝, 깊이 10㎝까지

다양한 크기이며 형상은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두 개가 연결되기도 한다.구정봉  나마 외에도

월출산 에는 ‘암혈(巖穴) 신앙’에 의한 구멍 바위가 많이 있다

(디지털 영암문화대전 인용)

구정봉에서 바라본 영암읍 방향의 기암괴석들

구정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한사람도 빠져 나오기 힘든 개구멍이다

마애여래좌상 갈림길에서 나를 기다리는 베낭

안부 갈림길(11:50)

이곳에서 우측으로 600m만 가면 마애여래좌상이 있는데 서울로

올라가야 차량 시간 때문에 아쉬움을 달래며 향로봉으로 향한다

 

이곳 안부에서 우측으로 600m만 가면 국보 제144호인 마애여래좌상이 있건만

나홀로 산행이라 아직도 가야할 길이 너무 많이 남았고 성전에서 버스시간이

애매하여 다음번 100대 명산 산행때 가보기로 하고 오늘은 아쉬움을 접는다

 

헬기장(11:52)

이곳은 베틀굴 오기전 갈림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길이다

헬기장에 있는 이정표

헬기장에서 위의 향로봉으로 오르지 못하고 우회하여 편한 길을 걷는다

향로봉(香爐峰:743m:12:00)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와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의 경계에 있는

월출산의 제2봉이며 주위의 멋진 기암괴석으로 형성된 봉우리로

워낙 암릉구간이 험하여 정상으론 오르지 못히고 우회하며 걸어야 하는 곳이다

뒤돌아 본 향로봉의 모습

향로봉에서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곳은 월출산 국립공원에서 관리를 잘해놔서

편안하게 산죽길을 내려온다...도갑사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을 많이 만난다

향로봉 아래 능선에 서니 전망좋은 바위가 나오고  잠시 후 가야할 미왕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바위 위에서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혼자서 김밥을 먹고 있는데

조금은 청승스레 보이는데 아마 독립군인 모양인데 나도 남이보면 저렇게 보이겠지

미왕재 가는 길에서 만난 이정표

등로에서 바라본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의 모습

월하리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녹차를 상표등록한  “백운옥판차(白雲玉板茶)”를

세상에 출시한 茶의 名人 이 한영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다선(茶仙) 이 한영(李 漢永:1868~1956) 선생은 다산 정약용 선생과 초의선사로

시작된 우리나라 차(茶)의 역사를 이어온 다인(茶人)으로 189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녹차인 백운옥판차를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 상표의 이름은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백운동 ‘옥판산의 차’ 라는 뜻에서 붙혀진 이름이란다

넓은 억새밭의 미왕재가 보이고 북서쪽으로 여인의 유두처럼 뾰족한 주지봉이 보인다

뒤돌아 본 월출산의 기암괴석들

1988년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월출산은 주요 암석이 화강암이고, 풍화 과정을 통하여

그 형태가 다양하고 기이하여 ‘수석의 전시장’ 같다고도 한다. 바위의 명칭은 생김새의

닮음에 따라 동물·성인·직위·성기·생활 도구·불교 등이 동원되어 붙어졌다 

 

헬기장(12:10)

헬기장에서 2분정도 내려서니 미왕재가 나온다

미왕재 가는 길에서 만난 억새밭

 

 

과거 숲이었던 이곳은 산불이 나면서 나무들이 불에타고 대신

 

 

 

‘벼과’식물인 억새가 들어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

 

그래서 원래 지명인 미황재와 더불어 억새밭이란 애칭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억새꽃이 활짝 핀 가을이면 은빛물결로 흔들리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구름다리, 바위산 등과 함께 월출산의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미왕재(540m:12:12)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와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의 경계에 있는 재로서

월출산 국립공원에서 설치한 이정표에는 억새밭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우측의 영암쪽에서 속가의 고향이 영암이시고 승려보다는 풍수지리의

大家로 더 잘 알려진 도선국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도갑사가 자리를 잡고있고

좌측 강진쪽에는 원효성사가 창건했다는 무위사가 있다

 

미왕재라는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으며 등산객에게는 억새밭으로 많이 알려져 있고

억새밭 때문에 가을에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초본 식생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 보호 구역이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국보 제13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강진 월출산 아래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절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름도 무위사로 바뀌게 되었다.
무위사는 말 그대로 불교적 문화유산을 골고루 다 갖추고 있는 고찰로 이름나 있다. 건축물, 불상,

불벽화, 석조미술품, 전적류 등 어는것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무위사에 전해 내려오며 보존 되어

있는것은 우리의 고귀한 값진 문화유산이 아닌것이 없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은 세종 12년(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이 매우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보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 하나만 남아 있고

나머지 28점은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 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사진 글 인용)

미왕재에는 도갑사로 이어지는 이정표와 안내판, 낙뢰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있고 많은 등산객이 휴식을 취하고 있고 주위의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많은 이곳에서 혹시나 국공파가 있나 없나를 확인한 다음에 국가에서 가지말라고

목책을 쳐놓은 곳을 넘어서 땅끝기맥을 이어가는데  목책에 앉아있는 중학생쯤

되는 꼬마가 아저씨 그리로 가면 길이 없는데요 하면서 걱정을 한다

꼬마야! 너와 나는  가는 길이 다르니 걱정하지 말그라 

목책을 넘어니 넓은 공터에 억새밭이 펼쳐지고...

500봉(12:15)

500봉에서 바라보니 노적봉이 더욱 뚜렸이 보인다

노적봉 아래에는 도갑사의 12말사(末寺) 중에 하나인 상견성암이란 암자가 있는 곳으로

이곳은 곡성 성륜사의 조실스님이셨던 청화대종사께서 3년간 독살이를 하면서

염불선(念佛禪)의 체계를 완성한 사찰로서 유명하며  상견성암 바위에는 월출산을 표현하길

 

“천봉용수 만령쟁호:千峰龍秀 萬嶺爭虎)

천개의 봉우리는 빼어남을 자랑하는 용과 같고 , 만개의 계곡은 서로 다투는 호랑이와 같다

내 언제 저곳을 꼭 한번 가보리다

넓은 500봉 정상에는 무명묘지 1기가 있고 우측으론 노적봉이 보인다

출입금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500봉 내리막길에는 산죽길을

정비해놓아 길은 참으로 좋다... 잠시후 대나무로 만든 목책을 만난다

망가진 대나무 목책 안부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다시 부드러운 산죽길을 걷다가 무명봉을 오르락 내리락 거린다

사람들이 전혀 다니지 않은 탓인지 잡목이 우거져 있긴 하지만

등로는 뚜렸하여 길을 걷는데는 큰 무리가 없다

암릉(12:30)

이곳은 바짝 신경을 써야 할 구간이다

우측 내리막길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지만 기맥길은 좌측 암릉 넘어로 가야한다

암릉에 올라서 지세의 흐름을 확인하고 좌측으로 내려서니 등로가 나타난다.

점심시간(12:35 ~ 50)

등로에서 내려와 바람이 부는 안부에서 단촐한 점심을 먹는다

점심이래봐야 집에서 싸온 고구마에다 월출산에서 貴人들에게

얻은 막걸리 한 통과 사이다... 사이다에다 막걸리를 타마시는 이 맛 쥑인다

 

식사를 마치고 조금 걸으니 확트인 전망좋은 곳이 나타나고...

전망좋은 곳에서 바라본 500봉의 모습

다시 편안길을 지났다가 산죽길의 저항을 받으면서 치고오르니 도갑산이 나온다

도갑산(道岬山:401m:13:10)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와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보면 대산꾼 준.희님이 붙혀둔 도갑산이란 아크릴

표지판과 이정목이 보이더만 지금은 비법정 탐방로란 이유로 벤뎅이

소갈머리보다 더 좁은 국공파들이 이마저제거해버려 정상에는 산죽을

비롯한 잡목만 무성한 잊혀진 산이 되어 버렸다

선답자들의 시그널 몇개와 국립공원 모니터링 표시판만 보인다

등로에서 오갈피나무도 많이 보이고...

이곳부터 자꾸만 카메라의 에러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기록에 문제가 생긴다

꽤나 성능이 괜찮은 하이엔드 카메라였는데 몇년동안 산에 다니면서 떨어뜨리고

비를 맞히고 눈에 파묻히고 하면서 함부로 다뤘더니만 드디어 쥔장에게 항명을 한다

그려 내가 미안하구먼 오늘만 참아다오... 하는데 자꾸만 오작동을 일으킨다

등로에서 바라본 노적봉의 모습

좌측으로는 강진군 성전 저수지가 보이고...

도갑재(道岬峙:13:15)

도갑재 역시 지도상에는 어였한 명칭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나 산죽만

무성하고 아무런 표기가 없어서 딱 그냥 지나치기 좋은 곳이다

 

이젠 아예 카메라가 작동이 되지않고 멈춰 버린다... 미칠것만 같다

모든걸 포기하고 부지런히 걷는다...386봉 오르는 길은 한차례 빡세게

치고 오르는데 산행 후반 싯점이라 그런지 상당히 힘에 부친다

지나온 월출산의 모습만이 산꾼을 응원한다

주지봉 갈림길(13:45)

이곳은 주지봉쪽으로도 선답자들이 많이 가는지 시그널이 많이 붙어있다.

이곳에서 주지봉까지는 1.6km의 거리라서 일치감치 포기하고 좌측 능선을

따라서 편안한 걸음으로 밤재를 향하는데 사진 찍을 일이 없으니 산행속도는 빠르다

출입금지 표지판(16:20)

카메라의 고장으로 이젠 밤재까지 거의 다왔기에 스마트폰으로 한장 찍는다

아무래도 한번은 다시와야 할듯 싶다... 너무나 아쉽다

이제사 월출산국립공원 단속구간을 벗어나지만 단속요원이 없어 편하게 왔다

이곳 아래로는 새로생긴 여수~목포간 새로 생긴 고속도로가 지나는 구간이다.

밤재(16:35)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와 강진군 성전면 송월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에는 SK 주유소가 있는 곳에서

아쉬운 마음으로 산행을 접고 주유소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성전택시를 불러서 성전 버스정류소로 향한다

(택시비 5,000원)

성전버스터미널(16:50)

강진군 성전면은 면소재지 치고는 상당히 교통편이 좋은 곳이다

다만 광주나 해남으로 가는 직통편은 서지 않으나 직행버스는 선다

이곳에서 17:05분 광주가는 표를 예매하고 우유하나를 사서 마시는데

광주가는 버스가 도착하여 1시간 20분만에 광주에 도착한다

성전에서 출발하는 버스시간표

광주터미널에 도착하여 19시 20분발 버스표를 예매하고 저녁을 먹고는 서울로 향한다

망가진 SD 카드의 사진을 복원해주신 온누리님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