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영평(명성)지맥(終)

명성지맥 제2구간 - 여우고개에서 도내지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4. 6. 25.

☞ 산행일자: 2014년 6월 22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 가끔 빗방울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3km / 9시간 3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여우고개-파힌힐 펜션-벙커봉-안부 능선-690m봉-군부대 철조망 우회-부대 정문

                 750m봉(사향산?)-734.8m봉-675m봉-낭유고개-헬기장-암릉지대-헬기장-572m봉

                 568m봉-관음산-태양열 집열판-산정리 갈림길-610m봉-삼거리 갈림길-벌목지대

                 평강식목원 철조망-삼거리 갈림길-411봉-암릉안부-벙커봉(501봉)-NO6 송전탑

                 임도-340m봉-삼각점봉-잣나무 군락지(급경사)-인삼밭-도내지고개

소 재 지: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일동면, 영북면

 

매주마다 떠나는 산행, 원래 계획은 땅끝기맥 2구간을 가기로 했는데 남부지방에

태풍이 온다기에 이젠 비를 맞으면 청승스레 걷는것도 싫고 더군더나 나홀로 산행은

기상 변화로 인한 위험성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고 지난 4월 제주도 여행 때문에

미뤄진 백두대간 죽령~저수령구간을 가려고 단양가는 18:00 버스표를 예매했다.

 

그러다보니 이른 아침에 수원 현장 상황을 체크하고 사무실로 올라와서 포교사단에서

실시하는 2014년도 상반기 포교사 연수교육을 받기위해 자곡동에 있는 탄허기념관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데 현장에서 전화가 온다.

소비자가 갑자기 일정이 바뀌었다고 하면서 일욜까지 인테리어 공사를 마감 시켜달라고 한다

미치고 펄쩍 뛸것 같지만... 소비자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고하여 단양가는 걸 포기하고

연수교육이 끝나자마자 수원 현장으로 내려가서 작업 인부들을 추스려 야간작업을 한다.

공사가 끝나자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작업을 마치고 난 다음 인부들을 데리고 사당동에

와서 해물탕에다 소주 한잔을 먹고 헤어져 집에오니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집에와서 샤워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넘 피곤한 탓인지 잠이 오질 않고하여

새벽 5시반에 집을나서 서울에서 가까운 명성지맥 2구간을 가기위해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산양리행 06시 20분 버스표

선릉역에서 지하철 첫차를 타고 동서울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6시경이다

이른 아침에 갈아입을 옷과 물만 가지고 온 탓에 이곳에서 점심때 먹을

햄버거 하나와 바나나 우유, 캔맥주 2개를 사서 베낭에 넣고 버스에 오른다.

06시 20분에 출발한 버스는 내가 내려야하는 이동까지 1시간 10분정도 걸린다.

예전 같으면 꿀맛같은 잠을 잤었마련 오늘은 도대체 버스에서도 잠을 이룰수가 없다

이동 버스 매표소(07:30)

버스에서 내려 아침을 먹으려고 여기저기 두리번 거렸지만 이곳 이동은 이곳과

가까운 일동과는 달리 아침에 밥을 파는데가 없다. 하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샌드위치 하나에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택시를 타고 여우고개로 향한다.

(택시요금 11,000원)

여우고개(狐峴:420m:08:00)

포천시 영북면과 이동면의 경계인 78번 도로가 지나가며

한자로 호현(狐峴)이고 영북면쪽 고개 아랫마을이 호현동이다.

궁예가 왕건에게 패하여 명성산에 피난하고 있을 때 왕건 군사들이 궁예 군사들을

여우처럼 엿보았다고 해서 '여우고개'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抱川市誌)

택시에서 내린 다음 길거리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곧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은 다른 구간에 비해 거리도 짧고 군부대 구간을 빼고는 그리

힘들지 않기에 여유로운 걸음으로 산행 들머리에 들지만 한가지 염려스럽다면

잠을 한숨도 못잔 것이 조금은 걱정이 된다

망해버린 여우재 상회 골목으로 올라가니 산정교회가 나오고 계속해서 직진을 한다

장발장 펜션 표지판을 따라서 직진을 한다

잠시후 장발장 펜션을 지나 좌측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펜션 파인힐(08:10)

펜션 파인힐을 지나면서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임도로 들어선다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잡풀이 우거진 임도로 올라서는데 임도 우측은 산을 망가뜨려 택지 조성작업이 한창이다

택지 너머로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는 사향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임도가 끝나고 잣나무들이 보이며 잣나무사이 희미한 등로로 올라선다

군 교통호가 보이고...

빡세게 올라서니 벙커가 나타난다

벙커봉(08:30)

벙커봉을 지나면서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

넓은 임도가 끝나면서 다시 벙커봉으로 올라선다

벙커봉을 지나니 멋진 암릉지내가 나오고 저 멀리 지난번 지나왔던 광덕산과

우측으로 백운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 아래는 이동면 도평리의 마을이 펼쳐진다

 

이동면 도평리(都坪里)는 복숭아와 자두가 많다고 하여 도리평(桃李坪) 또는 도리돌로 불렀다.
이동면의 최북단으로, 북쪽으로는 철원군과 접하고 동쪽으로는 화천군과 경계를 짓는다

1945년 해방 때 38선 이북에 포함되면서 철원군 이동면에 속하여 북한 관할이 되었다.

6.25전쟁으로 실지를 회복하고 1954년 11월 17일 행정권이 남한으로 이양되었으며

광덕산백운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지류를 따라 마을이 들어서 있다.

690m봉(08:40)

나리꽃들이 예쁘게 피어있다

690m봉에서 바라본 이동갈비와 막걸리로 유명한 이동면의 모습

군부대가 완벽하게 점령하고 있어 갈 수 없는 사향산의 모습

동화사 갈림길(08:50)

좌측으로 이동면 장암리에 있는 동화사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사향산가는 길인데 등로 아래에는 군 벙커가 있다...

이동에서 올라오는 쪽에도 시그널이 있다

사향산 군부대 철조망(08:52)

사향산 정상은 군부대가 완벽하게 점령하고 있는 바람에 우측으로 우회한다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키보다 훨씬 큰 잡목이 괴롭힌다

철조망을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철조망 끝까지 갔다가 좌측으로 꺽어지니 군부대 정문이 보인다

군부대 정문(09:05)

군부대 정문에 오니 철문은 굳게 잠겨 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부대가 철수하였단다

그러면 당연히 원상복구하여 사향산을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하는건 아닌지?

정문을 지나서 다시 철조망을 따라서 마루금을 향해서 올라가는데 저 멀리서

부부인듯한 남.녀 2명이 걸어온다... 아마 사향산을 갖다오는 모양이다.

가까이서 만나 인사를 나누는데 명성지맥 하시나보죠 하고 인사를 먼저 건넨다

상당히 반갑기만 하다... 지맥을 알 정도이면 어느정도 산을 안다는 얘기고

대화가 통한다는 얘긴데, 사향산 아래 펜션에 왔다가 산에 올랐다고 한다

오늘 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분이시다... 이곳은 아직도 고사리가 보인다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내려 가는데 맞은편에 지난구간의 명성산과 여우봉이 보인다.

포악한 군주로 역사에 기록된 궁예왕의 恨맺힌 명성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역사는 철저하게 승자 중심의 역사이기에 포악한 패주로 기억되었는지?...

 

억새꽃 축제로 유명한 명성산은 포천 여느 지역에 비해 궁예와 관련한 이야기가 매우 풍부한 곳이다.

궁예가 왕건의 군대에 패하여 도망하였다고 하여 패주동(敗走洞)[가는골]이라 하던 것이 그 음이

변하여 지금은 파주골[坡州洞]이 되었다. 다시 궁예는 명성산에 은거하여 성을 쌓고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왕건의 군대가 명성산 뒤쪽을 포위하자, 군사들 대부분이 명성산 앞 절벽에 떨어져 죽고

궁예는 북쪽으로 간신히 도망하여 부양(斧壤)[지금의 평강]에 이르렀다.

이때 도망하지 못한 궁예의 군사와 그 일족이 온 산이 떠나가도록 울었다 하여

‘울음산’, 곧 명성산(鳴聲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영북면과 철원군 갈말읍에 걸쳐 있는 명성산에는 망봉(望峰)[혹은 망무봉(望武峰)], 궁예왕굴,

항서받골(降書받골) 등의 지명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한다.

망봉은 궁예가 지금의 산정호수 좌우로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망원대(望遠臺)를 올리고 봉화를 올렸다는 곳이다.

 

명성산 상봉에 위치한 궁예왕굴은 궁예가 왕건의 군사에게 쫓겨 은신하던 곳으로서 2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자연 동굴이다.

항서받골은 궁예가 왕건에게 쫓기다가 항복을 하였다는 곳인데, 원래는 궁예가 왕건

부자로부터 투항의 서한을 받았던 곳으로서, 이후 와전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군부대 철조망을 30분을 돌아서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마루금 정상에서 복귀하니 포천시 일동면과 궁예와 관련된 국망봉과 姜氏峰과 도마치봉 등이 보인다

 

궁예(弓裔)가 세운 태봉(泰封)의 수도는 강원도 철원이었다.

따라서 궁예와 포천 지역은 일견 아무 관련도 없는 듯하다.

궁예와 관련한 설화는 주로 철원 지역에서 많이 전해 오며, 그 외에 연천·안성 등지에서도 전한다.

하지만 포천 지역 또한 철원과 인접한 곳으로, 지금까지도 유적·유물이나 산·고개·바위 등 지명 등에

태봉(궁예)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포천시는 행정 구역 개편을 통해 편입된 지역이 많은데,

관인면은 갑오경장 이후 철원과 연천에 속해 있다가 1983년 당시 포천군에 편입된 지역이다

 

궁예가 송악에 도읍을 정하던 시기부터 왕건(王建)에게 쫓겨 패주하기까지

주요 활동지는 철원·포천·연천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 일대였다.

따라서 지금도 포천 일대에는 궁예와 관련한 지명과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

포천 지역에는 특히 궁예의 패망과 관련해 슬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 많다.

일동면 강씨봉은 궁예의 부인 강씨가 날로 과격해지는 궁예의 폭정을 직간하다 오히려 유배를 당한 곳이다.

강씨는 강씨봉으로 유배된 후 곧 사망하였는데, 왕건에게 패한 궁예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강씨를

찾았을 때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라 한을 품고 돌아서 올라선 곳이 국망봉(國望峰)이라고 한다.

사향산에서 조금 올라오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산꾼을 반기고 군부대에

점령(?)당한 사향산 대신 사향산 노릇을 하고 있는 734.8m봉이 나온다

734.8m봉에 있는 군부대 삼각점

꿩대신 닭이라고 이곳에다가 선답자들이 사향산이라 표시를 해놨다

사향산(麝香山:750m:09:25)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와 영북면 산정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정상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오를 수 없는 산이다

노곡리의 주산(主山)이 되며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정상부분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산세가 가파라 웅장해 보인다

사향(麝香)은 원래 노루 배꼽의 향기를 말하는 것인데 보통 사향 노루의 배꼽으로 인식을 하며 사향산이란

이름은 노루형상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곳 정상은 암릉으로 된 펑퍼짐한 곳으로 맞은편으로 한북정맥 능선인 백운산과

궁예가 패주로 쫓기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던 국망봉과 자신에게 직언을 했다는 이유로

부인 강씨를 유배하여 죽인 강씨봉, 왕건의 부하에게 말에 매달려 질질 끌려 다녔다는

도마치봉이 보이고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지난구간 걸었던 광덕산과, 각흘산이 보인다

사향산 정상에서 인증샷

사향산(?)에서 바라본 가야할 관음산의 모습

사향산을 조금 내려서니 약간 움푹 파인곳에 바람을 솔솔불고하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진다

오늘 산행거리가 짧고 서울 근교라서 베낭을 베고 20분만 잘 요량으로 잠을 청하는데

얼마나 피곤하였던지 20분만 잔다는게 일어나니 2시간 가까이 자버린 모양이다

몸은 개운하지만 괜스레 맘이 급해지는데 서둘러 베낭을 메고 낭유고개를 향하여

뛰다시피 내려가는데 방화선으로 만들어진 등로라 길은 좋다

지도상 670봉으로 추정되는 벙커봉을 지나니 좌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로 내려서니

낭유고개가 보이며 꽤나 많은 차량들이 지나 다닌다

낭유고개(狼踰峴 340m:12:10)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와 영북면 산정리를 잇는 고개로 339번 지방도가 지나면

고개 정상에는 탱크 방호벽이 고개 정상을 외롭게 지키고 있다

사향산과 관음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 사향산(麝香山)을 상징하는 노루가 숲에서

나오는 것을 잡아 먹어려 이리가 길목을 지키는 고개라 하여 낭유(狼踰)고개라 부렀다고 하며

남쪽아래 낭유동 마을 유래를 보면, 마을 뒷산에 이리(狼)의 발자국이 바위에 그대로 나 있는데

이 마을을 '이리(狼)가 넘었다(踰)'해서 '낭유리'라 부르게 되었고, 이동면에서는 굴고개라 하고,

영북면에서는 낭유리고개(이리너미고개)라 한다.

 

낭유고개까지 와서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찾으니 카메라와 지도가 없다.

베낭을 벗어놓고 아무리 뒤져봤지만 카메라는 나오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베낭을 숲속에 숨겨놓고 스틱만 가지고 단잠을 잤던 사향산으로 향한다

다시 사향산 아래(12:50)

이곳에 오니 카메라 가방은 어리버리한 쥔장을 원망하며 얌전히 있다.

너무나 고맙기만 한데 지도는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지도는 그 이전에 빠진 모양이다참으로 낭패다...

장가가는 놈이 뭐 빼놓고 가는 꼴이니 나 원참 하는 수 없이 선답자의 산행기

읽은 것을 기억하며 바짝 정신 차리면서 가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동안 나홀로 산행의 경험으로 맥길을 읽으면서 가는 길 밖에 없다

5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던 똑닥이 카메라를 다시 찾아 다시 불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뛰어서 베낭을 벗어논 낭유고개에 도착한다

다시 낭유고개(13:20)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에 올라 낭유고개를 내려다 본다.

오랜 옛날에 산정호수C.C(지금의 몽베르 C.C)가 부도 났을 때 그린피 싼 맛에

자주 라운딩을 하러 넘었던 고개가 이곳 낭유고개이다

그 당시에야 골프에 미쳐 산을 잘 몰랐던 시절이고 고개 이름도 관심이 없었는데...

능선에 올라 조금 지나니 위장막이 드리운 벙커가 나오고 헬기장이 나온다.

벙커봉과 헬기장을 지나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드문드문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넓은 임도를 따라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바람 한 점이 없고 날씨는 상당히 덥다

더군더나 마사토의 미끄러운 등로가 마음 급한 산꾼의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만든다

2번이나 갔다온 조금전에 지나온 등로의 궤적

내가 요즘 왜 이리 혼줄을 놓고 사는지 모르겠다

급경사로 올라서는 길은 태풍으로 인해 넘어진 소나무들이 어지럽게 누워있고

조금 지나니 로프가 나오고 잠시후에 잘 관리된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13:50)

헬기장에 올라서니 저 멀리 지난번에 탔던 (신천)왕방지맥의 종현산과 개미산이 아련히 보인다

탄피종이 있는 벙커봉(13:55)

벙커봉을 지나자 긴장이 풀린 탓인지 갑자기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예정된 시간보다 거의 4여 시간을 허비하여 상당히 긴장을 하여 배고픈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걷다가 갑자기 밀려오는 허기... 등로 안부에 바람이 꽤나 시원하게 부는 곳에서

옷을 벗어 스틱에 걸어 말리고 신발과 양말까지 벗어 놓고 우선 맥주 한잔을 마신다

貧者의 점심상

이른 새벽에 잠도 못자고 나온터라 먹거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동서울 터미널에서

햄버거 하나와 바나나 우유, 캔맥주 2개 토마토 한알이 오늘 점심상이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맘만은 엄청난 부자이다 ㅋㅋㅋ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옷을 입는데 시원한 바람 탓인지 잠깐 사이에

옷은 꽤나 뽀송뽀송하다... 좋은 느낌으로 다시 길을 나선다

암릉이 있는 능선 안부를 걸어간다

등로 안부에서 바라본 포천시 일동면의 모습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시격시에 올라가는 깃대봉과 벙커가

나오고 넓은 헬기장이 있는 관음산 정상이 나타난다.

일동면은 조선 시대 영평현에 소속되어 동면(東面)이라 부르던 곳인데, 영평현 동쪽에 있다 하여

동면이라 부르다가 둘로 나누어 남쪽은 일동면, 북쪽은 이동면으로 부르게 되었다.

 

동쪽으로 가평군과 경계를 이루며 강씨봉 (830m]과 청계산[840m]의 연봉이 솟아 있고,

서쪽의 영중면과 신북면과의 경계에는 관모산[589m]·금주산[569m]이, 남쪽 화현면과의

경계에는 원통산[567m]이 솟아 삼면이 산악으로 둘러 싸여 있다.

그 여맥(餘脈)이 면내로 뻗어내려 동서로 길고 좁은 분지(盆地)를 형성한다.

북쪽에는 한탄강의 지류인 영평천이 흐르고, 남쪽에는 청계산과 청계 저수지가 있다.

영평천의 상류인 일동천 유역 평지에 조성한 농경지가 주민의 생활 터전이 되고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쌀, 주류, 잡곡, 채소 등이 생산되고 인삼 등 특용 작물을 재배한다.

최근 개발된 일동 제일 유황온천의 수질이 좋아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면서 상업이 발달하는

추세이며, 20개 중소 기업체도 활발히 가동하며 이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수입리에 청동기 시대 유적인 고인돌이 있고, 양사언 선생의 묘가 있다.

관음산 정상에 올라서니 온 사방이 두루 보이는 헬기장이 나오고 가운데 움푹파인 구멍이 있다

관음산(觀音山. 733m:14:50)
포천시
일동면,이동면, 영중면, 영북면 4개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관음이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사승예불형(師僧禮佛形).

즉 승려가 부처님께 불공(佛供)을 드리는 형상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조금전에 지나온 사향산과는 달리 암릉이 없는 전형적인 육산(陸山)으로

정상 북쪽의 산자락에는 산정호수가 자리집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드라이버

코스로 유명한 영평천이 자리를 잡고있다.

산행의 들머리는 영중면 파주골과 영북면 산정리의 쇠골, 낭유고개가 있다

성동리의 파주골은 궁예가 패주(敗走)가 변해서 된 것이고

또한 궁예가 항복문서를 전달했다는 ‘항서(降書)받골’도 있다고 한다

관음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관음산 정상 북서쪽으로 보이는 신천(왕방)지맥 주능선의 모습

정상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영평(명성)지맥길을 이어간다

반가운 시그널... 잘 계시는지 궁금하다?

관음산 정상 삼각점(△갈말 25 / 1983 재설)

관음산 정상을 내려오니 ‘현위치 관음산 1-4(정상) 구조 안내 표지판’이 나오고 도내지 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한없이 좋다

태양열 집열판(15:05)

관음산에서 10분정도 편안한 길을 따라서 내려오니 태양열 집열판이 나온다

태양열 집열판 철망에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달려 있는데 대부분 안내 산악회

시그널 같이 보이는데 진권아우님이 땅끝기맥에 걸어 달라고 한 것을 이곳에 건다

번지수가 달라도 한참 다른 곳에... ㅋㅋㅋ 이건 돌쇠대장이 해야 하는데 돌 대장은

머나먼 곳에 유배가고 없으니 내라도 해야제... 돌쇠대장이 귀양지(?) 에서 잘있는지

도강재 대장도 보고싶다...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들 잘있겠지

태양열 집열판을 지나면서 길은 계속 좋고... 룰루♪♬랄라♩♪ 하면서 도내지 고개로 향한다

낙엽이 쌓인 편한 길을 걸으니 또다시 졸음이 밀려온다

좌측으로는 잣나무 숲 군락지가 나오고...

산정리(山井里) 갈림길(15:28)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산정호수가 있는 산정리가 나온다

오늘 산행중에 유일하게 만난 이정표이다... 지맥길은 관음골 삼거리로 이어진다

610m봉(15:30)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과 이동면, 일동면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으로 이곳에서 부터

광덕산부터 여기까지 같이 해 온 이동면과 작별을 하고 새로운 일동면을 만나지만

북쪽은 여전히 영북면과 계속해서 같이 지맥길을 이어간다.

정상에는 목초지를 연상케하는 넓은 공터에 긴급 연락처 ‘현위치 관음산 1-3(7부능선)’이란

구조 안내 표지판이 서 있고 끄트머리에 있는 나무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많이있다

오늘 산행중에 가장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읽으면서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읽고 숙지한 바람에

지도를 잃어버리고도 알바하지 않고 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 약간 좌측의 직진길은 등로가 뚜렸하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안내 산악회)이

걸려 있고 우측으로는 길이 거의 보이지 않아 조금만 방심하면 알바할 수 있는 구간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밑 시그널이 달린 아래로 쳐다보면 등로가 보인다

좌측 직진으로 내려가면 궁예가 왕건의 군대에 패하여 도망하였다고 하여 패주동(敗走洞)이라

불렀던 지금의 파주골(坡州洞)이 있는데 지금은 파주골 순두부가 유명한 곳이란다.

610m봉에서 잡풀을 헤치고 5분정도 내려오니 ㅓ자의 길이

나오는데 지맥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조금을 더 내려가는 벌목지대가 나오면서 일동면 수입리가 보이고 그 너머로

신천(왕방)지맥길인 종현산과 개미산의 능선들이 보인다

수입리는 예전에 갈기또는 가계라고 불리다가 1914년 일제시대의 행정개편 때 수입리(水入里)라

불렀는데 水入이란 물이 들어오는 곳이라는 뜻이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곳은 온천이 개발되어

물로 수입을 잡는 곳이니 꼭 맞는 것 같다

벌목지대

간벌을 한 곳에는 잡목들만 무성하다

키보다도 훨씬 큰 잡목을 지나가는데 특히 산딸기가 많아 마구 몸뚱아리를 할퀴는데 따가워 미치겠다

이제 베낭에는 먹을 것이라는 캔맥주 하나와 물 500ml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가야할 길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기에...

농익은 산딸기를 계속 따서 입에다 넣으면서 간다

벌목지대를 지나니 잣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벌목지 너머로 관음골재가 보이고 저곳 아래로 내려서면 파주골이다

잣나무 군락지로 들어서서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등로가 잘 보이질 않는다

또다시 남쪽으로 벌목지가 보이면서 산 아래의 마을을 보면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태풍으로 쓰러진 잣나무를 피해 오르니 낙엽이 수북하고 철조망이 나온다

평강식물원 철조망(15:55)

철조망을 따라 좌측으로 영평(명성)지맥길을 이어간다

철조망을 따라 계속 걸어가는데 낙엽이 수북하다

8분 정도 걸으니 철조망과 이별을 하고 지맥 마루금을 이어간다

평강 식물원은 부지면적 32만 5,327㎡이며, 1999년 8월 착공하여 2006월 5월 개원하였다.

한의사 이환용(李桓容)이 자연생태계 복원, 인간의 건강과 평안 회복을 위하여 건립한 식물원으로,

명칭도 평안과 건강에서 따왔다. 암석원·고층습지·고산습원·습지원·들꽃동산·만병초원·연못정원·

이끼원·자생식물원·고사리원·화이트가든·잔디광장 등 12개의 테마로 조성되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암석원은 특수한 조성기법으로 고산식물의 자생지에 맞는 생태를 재현하였으며,

백두산·한라산 등 국내의 산을 비롯하여 히말라야산맥·알프스산맥·로키산맥 등 전 세계의 고산식물과

바위에 붙어 사는 다육식물 등 1000여 종이 전시되어 있다.

 

고층습지는 백두산 장지 연못을 생태적으로 재현하였고, 고산습원은 고산의 작은 계류(溪流)와

그 주변의 습원(濕原)을 응용하여 조성하였다. 습지원은 수서곤충과 물고기·양서류·파충류

등의 서식처로 조성되었다.

들꽃동산에서는 다양한 야생화를, 만병초원에서는 고산성 진달래과에 속하는

400여 종의 만병초를 감상할 수 있다.

연못정원은 약 3,300㎡의 면적에 50여 종의 수련이 품종별로 심어져 있고,

이끼원은 열대우림이나 깊은 계곡 주변의 이끼를 재현한 곳이다.

 

화이트가든은 흰진달래·흰용머리·흰붓꽃 등 순수와 청결을 상징하는

흰색 꽃을 피우는 식물만 전시한 공간이다.

인근에 산정호수·명성산·한탄강·화적연·종자산·백운산계곡·백운사·선유담·국망봉자연휴양림 등이 있다.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668번지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평강식물원 [平康植物園] (두산백과) 인용

철조망이 끝나면서 돌탑을 만난다

돌탑을 지나 조금을 더 진행하니 무명봉이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다올님! 또 만났네요... 약초 산행은 잘하고 계시는지?

또 다른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이곳은 좌측으로도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보이지 않아 신경을 써야 할 듯...

혹이 잔뜩 달린 갈참나무도 만나고...

앉은뱅이 소나무가 있는 봉우리도 지나고...

소나무에 군용 목도리가 하나 걸려있다.관음산 정상 구덩이에도 모자가

하나 버려져 있더니만 요즘 군인들 뭐 아까운 줄 모른다.

안 그래도 산행 오기전에 GOP에서 총기사고로 5명의 젊은 목숨을 앗아가는

사건이 발생한 슬픈 소식을 접했는데...

안부 능선을 따라서 편하게 걸어간다

폐헬기장터 같은 곳을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암릉 있는 봉우리가 나오고 우회길이 보이는데 이곳은 우회길이 편할듯 싶다

다시 조그만 오르막을 오르지만 고도차가 그리 높지 않다

무명봉에 올라 다시 우측으로 꺽어진다

무명봉에서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이름모를 버섯이 산꾼을 반긴다

멋진 소나무가 도열해 있는 안부 능선을 지나니...

벙커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지도상 501m봉이 나온다

501m봉(16:50)

봉우리 정상에는 관리가 안된 벙커가 있고 이곳에서 90도 우측으로 꺽어진다

NO 6 송전탑(16:55)

송전탑을 지나자마자 내리막길 넓은 임도가 나오고 3분정도를 내려오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 조그만 무명봉으로 오른다

임도를 버리고 올라서니 무명봉으로 올라선다

삼각점봉(17:05)

넓은 공터에 아무런 표식이 없는 삼각점이 박혀있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살짝 꺽어지니 군사보호시설 콘크리트 말뚝이 하나 서있다

이곳부터 내리막길은 군 교통호같은 터널모양의 등로를 지나는데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지 길은 거의 보이질 않고 낙엽만 수북한데 진달래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잠시후에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스키를 타듯이 미끄러지면서 내려선다

무명묘지(17:20)

삼각점봉에서 길이없는 소나무 숲길을 15분정도 내려오니 무명묘지 1기가 나오고

그 아래로는 인삼밭과 牛 축사가 나타나고 밭고랑 사이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축사 너머로 다음구간 가야할 불무산이 보인다

밭 가장 좌측으로는 인삼밭과 축사가 있고...

옥수수밭을 지나니 도내지 고개가 나온다

도내지고개(되내지고개:17:30)
 
포천시 영북면 야미리와 문암리를 잇는 고개로 43번 국도가 지나간다
 
지명의 유래는 옛날 도적들이 이 고개를 넘는 행인들에게 물건을 털면서
 
돈내지라고 말한데서 유래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으로 그 후에 變音되어 도내지 고개라고
 
불렀으며 이곳 현지 사람들은 되내지고개라고 부르는데, 현재 살고있는 사람들은 도내지고개라는
 
지명을 잘 모르고 문암리고개라고 부른다

조금전에 지나온 등로의 궤적

얼마되지 않는 거리를 9시간 30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그나마 다행인게 산에서 꿀맛같은 2시간동안 수면을 취하는 바람에 피로는 가셨고
 
잊어버린 뻔한 카메라를 되찿았으니 손해보는 장사는 아닌듯 싶다
 
도로를 무단
횡단하여 장터국밥집 마당 수도에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 입는다

장터국밥집

장터국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에다가 션한 맥주 2병을 게눈 감추듯이 먹고 커피까지

마신 다음 교통편을 물으니 이곳 도내지고개(문암리)에는 서울가는 차량이 완행밖에

없어서 조금 아래에 있는 운천까지 가야 동서울가는 직행이 있다고 하길래

걸어 갈려고 거리가 얼마나 되냐고 물으니까 꽤나 많이 걸리고 택시를 타면

6,000원이 나온다고 쥔장 아줌마가 이야기 하는데 옆에서 식사를 하던 내 또래

정도 되신 분이 자기가 운천 간다고 하면서 식사를 끝내고 태워 주겠다고 한다

졸지에 양넘 지갑 줏은 기분이다... 감사,감사 복받을깁니다

운천발 동서울행 버스표

생각보다 버스 요금이 상당히 비싼 편이고 시간도 2시간 정도 걸린다

운천 버스 터미널(18:40)

국밥집에서 이곳에 도착하니 동서울가는 버스가 금방 가버리고 30분 이상을 기다린 다음

동서울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는데 천둥과 벼락이 계속 내리치며 비가 온다

다행히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비는 그치고 밤 9시 10분에 집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