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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十勝地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

by 범여(梵如) 2014. 11. 21.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

 

 

◈ 십승지지 [十勝之地]


술가(術家)들이 말하는 살기 좋은 땅, 십승지지(十勝之地)가 있다.

이 십승지지는 천재지변(天災地變)이나 싸움이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열 군데의 땅을 말한다.

 

승지(勝地)란 경치가 좋은 곳, 또는 지형이 뛰어난 곳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굶주림과 전란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의미한다.

그래서 십승지지란 전란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열 군데의 땅을 말하는데, 원래 이러한 승지(勝地)를

점상占相하는 풍수 또는 감여(堪輿)의 술(術)을 말하는 사람을 지사地師 지관(地官) 풍수(風水)가라고 하는데, 신라 말기의

도선대사(道詵大師) 고려말기의 무학대사(無學大師), 조선 중기의 남사고(南師古), 이지함(李之함) 등이 유명하였다.

 

 

참위설(讖緯說)과 풍수지리설을 신봉하던 술가(術家)들의 말로는 풍기(豊基)의 금계촌(金鷄村), 안동(安東)의 춘양면(春陽面),

보은(報恩)의 속리산(俗離山), 운봉(雲峰)의 두류산(頭流山), 예천(醴泉)의 금당동(金堂洞), 공주(公州)의 유구(維鳩)와 마곡(麻谷),

영월(寧越)의 정동상류(正東上流), 무주(茂州)의 무풍동(茂豊洞), 부안(扶安)의 변산(邊山), 성주(星州)의 만수동(萬壽洞)을 가리킨다.

 

 

한편 정감록(鄭鑑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신(保身)할 땅이 열이 있으니 첫째는 풍기 ·예천이요,

둘째는 안동의 화곡(華谷)이요, 셋째는 개령(開寧)의 용궁(龍宮)이요, 넷째는 가야(伽倻)요, 다섯째는 단춘(丹春)이요,

여섯째는 공주의 안산심마곡(安山深麻谷)이요, 일곱째는 진목(鎭木)이요, 여덟째는 봉화(奉化)요,

아홉째는 운산봉 두류산(雲山峰頭流山)이요, 오래 살 땅이라 착한 정승과 좋은 장수가 이어 나리로다.

열째는 풍기의 대 ·소백산이니 길이 살 땅이라 장수와 정승이 이어 나리로다.”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는 물론 3 ·1운동 후 이러한 괴설(怪說)을 믿고 솔가(率家)하여 이사를 가는 일이 있었다.


그 중 민간에 의하여 전해지고 있는 10개소의 승지(勝地)를 보통 십승지지(十勝之地)라고 부르는데,

그 중에서도 남사고(南師古)가 선정한 십승지(十勝地)가 가장 유명하여

특별히‘남사고산수십승 지지(南師古山水十勝之地)라고 칭한다.


1. 남원 운봉 동점촌(전라북도 남원시)


지리산 아래 동점촌은 경남 산청군과 함양군 경계에 있다고 하는데 현재 동점촌이라는 곳을 찾을 수가 없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지리산 북쪽의 함양 땅에 영원동(靈源洞), 군자동(君子洞), 유점촌(鍮店村)을 들어

남사고 의 복지(福地)라 지적하였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벽암(碧巖), 추동(楸洞), 유점촌(鍮店村)은 남사고의 복지(卜地)라 하였다.

이들 승지는 대부분이 지리산 북쪽 임천 유역에 위치하였다.

두 문헌에서 다같이 공통으로 든 곳은 유점촌(鍮店村)이지 남사고가 말한 동점촌(銅店村)은 아니다.

혹 유(鍮)와 동(銅)의 글자가 비슷하여 혼용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감록에는 운봉 향촌(香村)이라고 되어 있다.

2. 풍기 금계(金鷄)촌(경상북도 영주시)


소백산 아래에 위치하는데, 예로부터 태백산, 소백산 아래에서 인재가 배출되는 복지(福地)라고 일컬어 왔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 말을 타고 가던 남사고가 소백산을 보고 즉시 말에서 내려 말하기를 활인(活人)산이고

피난처로 제일이다. ”라고 하였다 한다.


소백산 남록에 위치한 금계(金鷄)촌은 북천北川(지금의 금계천)과 남천(지금의 남원천)이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르고 있어 풍수지리적으로 부산대수(負山帶水)를 이룬 전형적인 명당 이라 하였다.


3. 봉화 내성촌(乃城村)-(경상북도 봉화군)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내성은 태백산 아래에 자리 잡아 춘양(春陽) 소천(召川),

재산(才山)과 함께 피병(避病)과 피세(避勢)의 땅이라 하였다.


4. 보은 증항촌(甑항村)-(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 아래에 있는 증항은 보은읍에서 상주 함창 방면으로 뻗은 가로를 따라

40여리 쯤 가면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도계(道界)가 되는 시루봉(甑峯) 아래에 있는데,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전란 때 이곳에 몸을 숨기면 만인의 한 사람도 상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5. 예천 금당동(경상북도 예천군)


금당동(金塘洞) 북쪽은 예천군 용문면 죽림동‘금당실’로 추정 된다.

동쪽에 옥녀봉 서쪽에 멀리 국사봉 남쪽에 백마산 북쪽에 매봉으로 각각 둘러 쌓여진 분지인데,

다만 동남쪽 병암성에서 한천(寒川)의 침식으로 골짜기가 되어 이곳의 관문이 된다.


6. 공주 유마지방(충청남도 공주시)


공주시 유구면을 흐르는 유구천과 사곡면을 흐르는 마곡천 사이 100리 구간 유구천 계곡을 말하며,

이 지역은 살육을 면할 수 있는 피난처라고 하는데, 6.25전란 때 많은 피난민들이 이 계곡으로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7. 영월 정동 상류(강원도 영월군)


강원도의 유일한 피난처인 영월읍 동편은 한강 상류가 남북으로 흐른다.

그런데 한강 동부에 만경대산(萬景垈山) 줄기가 동서로 뻗어 한강의 지류로서 북쪽의

함백천(咸白川)과 남쪽의 옥동천(玉洞川)의 분수령이 된다. 남사고는 옥동천을 피난처라고 한 듯 하다.


8. 무주(武州) 무풍 북동쪽(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의 무풍 북동쪽에는 덕유산이 있는데, 무풍은 무주의 별호도 되지만, 지금은 무풍면이 되었다.

남사고가 말한 무풍 북쪽 덕유산은 현재 위치가 불분명하다. 무주 읍지(邑誌) 에도 덕유산은 남쪽 50리 지점에 있다고 하여

사실과 차이가 많으며, 택리지에는 북쪽에 설천(雪川), 무풍이 있고, 무풍은 남사고가 복지(福池)라 한 곳이다.

9. 부안(扶安) 호암(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의 변산 호암의 호는 호(壺)자인데, 그 소재지가 불분명하다.

통설에 의하면 호암은 변산반도를 총칭하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문헌에 의하면 변산반도는 수목이 울창하고 인적이 없어 호랑이가 사람을 피하지 않고,

궁궐에서 재목이 필요할 경우 이곳에서 공급하였다고 한다.

남사고는 몸을 감추는데 가장 묘한 곳이라 하였다.


10. 가야산(伽倻山) 만수동(전라북도 운봉)


가야산은 성주 가야산과 예산 가야산이 유명 한데, 이곳에는 만수동이라는 곳이 없다.

일반적으로 가야산의 만수동이라 하면 지리산 남원군의 운봉과 함양군의 군계(郡界)에 있는 곳을 말하는데,

가야산 만수동이라 하면 지리산의 만수동으로 짐작되어진다.


이들 십승지지들은 대부분 깊은 오지(奧地)에 위치하여 임진왜란이나 6.25전란 때에도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정감록(鄭鑑錄)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