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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梵如의 日常 ♣

불기2559년 연등회와 세계 간화선 무차(無遮)대회

by 범여(梵如) 2015. 5. 18.

2015년 5월 16일

佛記 2559년 석가탄신일을 맞아 초파일 1주일 전에 하는 연등회 제등행렬과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가 서울시내 광화문과 동국대학교 교정과 종로 일대에서 개최 되었다

지난 10여일 동안 무척이나 바빴던 공사가 마무리 되고 조금 한가한 틈을 찾아서

제등행렬과 간화선 무차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사무실 업무를 마치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지하철 3호선 광화문역에 내려서 행사장으로 향한다

늦은 오후 광화문의 모습

간화선 무차대회 행사장 주변에 이게 뭔 짓거리여

남의 잔치에 초치는 것도 아니고... 내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도 소중하거늘

고얀 짓거리 하는 넘은 누구여... 한대 쥐어박고 싶네...

혹 정신병자는 아닌지...

간화선이란?

간(看)이란 본다는 뜻이며, 화(話)는 화두를 말한다. 초조(初祖)인 보리달마(菩提達摩) 이래

중국의 선종은 인도의 선정(禪定)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양식의 수행법을 주장하였는데,

 그것은 "곧바로 자기의 마음으로 향하여 그 본성을 보아 불타를 이룬다"(直指人心見性成佛)는 것이다.

보리달마 이후 오조(五祖) 홍인(弘忍)에 이르기까지는 단일한 계보로 이어왔으나, 이후 점수(漸修)를

주장하는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과 돈오(頓悟)를 주장하는 혜능(慧能)의 남종선(南宗禪)으로 분파되었다.

 

초반에는 북종선이 우세하였으나, 안녹산의 난 이후 혜능의 제자인

신회(神會)의 활약으로 남종선이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남종선은 다시 그 종풍에 따라 분파되어 임제종(臨濟宗)·조동종(曹洞宗)·법안종(法眼宗)·운문종(雲門宗)·

위앙종(潙仰宗)의 오가(五家)를 형성하였다. 이 가운데 임제종이 가장 융성하였으며 선종의 정통으로 남았다.

고요히 앉아서 좌선하는 묵조선(默照禪)과는 달리 화두를 들고 철저대오(徹底大悟)하는 간화선은 당대

조주종심(趙州從諗)선사의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는 화두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오로지 화두만을 보는 것으로 수행의 방법을 삼아 이를 극력 제창한 사람은 송대에 임제종의 정통을

이은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였다. 조동종의 묵조선에 반대하는 그의 활약에 힘입어 간화선은 임제종의

정통적인 수행법이 되었으며, 임제종의 융성과 함께 극히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대혜의 간화선을 받아들였으며,

〈간화결의론 看話決疑論〉을 저술하여 이를 널리 폈다.

이후 제자인 진각국사 혜심(惠諶) 등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면서 간화선은

우리나라 선수행의 정통적인 방법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무차(無遮)란 부처의 자비에 따른 차별 없는 평등사상으로 승려와 속인,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누구나 참여해 부처의 덕과 지혜를 나누는 대규모 법회를 무차법회라 한다.

 <화엄경>은 “마음과 행동이 같지 않고 구하는 바가 저마다 다르더라도 평등하게 베풀어

모두 만족하게 한다”고 무차대시회(無遮大施會)를 언급했다.

인도 아소카왕이 고승들을 모셔 법문과 재물을 보시한 게 대표적이다.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도 신라·고려 때 성행했다.

주로 백성의 어려움을 달래기 위해 무차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번에 조계종이 광복 70년의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지난 16일 밤 서울 광화문에서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를 열었다.

세계 20여개국에서 온 승려 200여명을 포함해 수십만 불자들이 세종대로를 가득 채웠다.

조계종 측은 “1600년 한국 불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서 종정 진제 스님은 법어에서

“사람이 곧 부처임을 깨달아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는 삶을 사는 일이 우리가 이루어야 할 서원”이라고 했다.

이날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너희들은 서로 화목하고 다툼이 없으며, 물과 우유처럼 서로 어울리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돌보며 사느냐”고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물었던 것을 상기시켰다는데, 대답은 ‘노’다.

시비와 다툼만 더욱 커진 세상이다. 스님들 역시 자비행보다는 탐진치에 깊이 빠진 모습이다.

재가불자였던 유마거사의 통절한 한마디가 그립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부처님 오신 계절,

5월의 사찰마다 거리마다 연등이 물결친다.

하지만 백번의 무차대회보다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무차를 실천할지가 관건 아닐까

광화문에서 세종로로 나오는데 베낭에다 태극기를 매단체 박근혜 대통령 하야하라면서

걸어 다니면서 시위를 하고 있는데 마치 대통령 이름을 강아지 새끼 부르듯 한다

요즘은 대통령 해먹기도 힘이 들겠다... 열심히 하려 하는데 모두 다 씹으니...

저렇게 힘든 자리를 왜 다들 대통령하려고 하는지 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된다

조그만 사고라도 나면 안되겠죠

전국에서 오는 불자들 맞이에 여념이 없는무차대회 장소의 현장

이건 또 뭐야... 남의 잔치에

자식잃은 아픔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이제 좀 그만했으면 합니다

우리같은 서민들은 세월호 사건 이후에 너무 힘듭니다

책임자 처벌이라... 책임자는 세월호를 운영하는 세모 그룹을 말함인가?...

대통령 해먹기 힘들겠구나...

무차대회 현장을 둘러보고 다시 연응축제가 열리는 동국대학교 현장으로 향한다

동국대학교 후문

참으로 많이도 드나들었던 교문... 6개월만에 다시 와본다

동국대학교 중앙광장

중앙광장 청동대불의 모습

중앙광장에서 연등축제가 열리는 대운동장으로 향한다

연등축제 현장의 모습

연등회에 참석한 佛子들

연등회(燃燈會:

신라 진흥왕대에 팔관회(八關會)와 더불어 국가적인 행사로 시작되어 주로 고려시대에 성행했다.

불교에서는 부처에게 바치는 공양 중에 등공양(燈供養)이 있는데, 이는 부처 앞에 등을 밝혀서

자신의 마음을 맑고 바르게 하여 부처의 덕을 찬양하고, 부처에게 귀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연등회의 종류에는 상원(上元) 연등과 초파일(初八日) 연등이 있다.

 

상원연등은 매년 정월 보름날에 왕궁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이틀 동안 등불을 밝혀 다과를 베풀고,

음악과 춤으로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기며, 부처를 즐겁게 하여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비는 행사이다.

상원연등은 불교적인 의미와 함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풍년기원제와 결합된 행사이다.

신라시대 정월 15일에 행해진 연등은 바람과 비의 신인 용신(龍神)과 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별자리(天文太一星宿)에 드리던 풍년기원제와 불교의 등공양이 결합되어 행해진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연등회는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 의해 거국적인 행사로 행해졌다.

이후 성종 때 유학자들의 강한 반대로 일시 폐지했다가 1010년(현종 1) 윤3월에 다시 행했다.

그로부터 매년 2월 보름에 연등회를 베풀었다. 초파일 연등은 석가 탄생을 축하하는 연등으로

현재 인도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는 행사이다.

 

4월 초파일 연등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에서 볼 수 있는데 고려 의종 때 백선연(白善淵)이

4월 8일에 점등했다고 씌여 있으며 당시에는 초파일 연등을 열면 3일 낮과 밤 동안 등을 켜놓고 미륵보살회를 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초기 억불책의 일환으로 1415년(태종 15)에 초파일 연등을 금지시키면서 연등회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1414년 이후 계속해서 베풀어진 수륙재(水陸齋)는 연등회와 팔관회를 계승한 행사라 할 수 있다.

정각원 앞에서...

정각원(숭정전·서울 유형문화재 20호)

정각원 건물은 원래 전 서울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던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이었는데, 원래 경희궁은 선조의 왕자인 정원군의 사저였던 것을 광해군 8년(1616년)에 궁으로 승격 개축하여 처음에는 경덕궁이라 하였으나, 영조조에 이르러 경희궁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이 건물은 임금이 신하들의 하례를 받고 정령을 반포하던 경희궁의 중심이었다.

1926년 3월 지금의 동국대학교 북쪽 자리로 이전하였다가, 1976년 9월 현재의 자리로 옮겨 법당으로 장엄된 뒤,

 1977년 2월 정각원으로 이름하여 다시 개원되었다. 조선 후기 건축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건물로서,

서울시 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각원 건물의 양식을 대강 살펴보면 정면은 5간, 측면은 4간이며 배층 팔짝기와 지붕으로 되어 있다.

초석과 기둥은 원형이며 축부는 기둥 윗부분을 창방으로 짰으며 평방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천정은 우물천정 양식인데 천정 중앙은 조정천정으로 되어 있고 청룡과 황룡이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는 다포형식이며 75.83평 규모이다

 

연등회 행사가 끝나고 동국대학교에서 동대문-종로-광화문 무차대회 행사장까지  제등행렬이 시작됐다

 

 

 

 

 

 

 

 

 

 

종단 지도자 큰스님들의 행진

승가대 학인스님들

 

 

 

 

 

 

 

 

 

 

 

 

 

 

 

 

 

 

 

 

 

 

 

 

 

 

 

 

 

 

 

 

 

 

 

 

 

 

 

 

 

 

 

 

 

 

 

 

 

 

 

 

 

 

 

 

 

 

제등행렬을 마치고 무차대회장소인 광화문 현장으로 향한다

무차대회 현장

 

승.속을 떠나 간절한 염원으로...

무차대회에 참여한 불자들의 모습

 

진제 종정스님의 간화선 무차에 대해 법문    

종정스님은  사람이 곧 부처임을 깨달아 서로 존종하고 상생하는 삶을 사는것이 우리가 이루어야 할 서원이라고 법어를  하신다

무차대회가 열리고 있는 광화문의 모습

무차대회를 마치고 집에오니 자정에 가까운 시간 낼 아침 영월지맥가는 베낭을 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