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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經典講解

반야심경(般若心經) 강해 37 -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완결)

by 범여(梵如) 2015. 9. 2.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이제 지금까지 설한 반야심경의 내용을 총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경에서는 총괄하여 정리를 함에 있어 다시금 내용적인 면을 되새기지 않습니다.
언설을 세움으로써 오히려 진실이 왜곡될 수 있고, 본래의 의미를 상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 채택한 방법은 이 모든 내용을 하나의 진언으로 내세워 총괄적으로

결론짓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진언이 바로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입니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진언은 원래 번역하지 않고, 산스크리트어 원음을 그대로 소리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진언에 담겨 있는 의미가 부처님의 깨달으신 경지 그 자체를 직설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도

오묘하고 깊어 우리 범부의 사량(思量)이나 이론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번역에 의해서 진언이 담고 있는 본래의 의미, 깨침의 세계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두 번째, 진언이 가지는 소리의 진동 그 자체가 깊은 기운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보살이 삼매를 얻어서 그 힘으로 특정한 소리에 가피를 입힌 것이 진언이며,

또한, 이 우주의 근원적인 진동의 기운이 진언이므로 그 소리를 떠난 진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보통 이 구절은 해석을 하지 않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원어가 가지는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그 함축된 의미를 알아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으리라 생각하며,또한 이미 이에 대한 많은 해석이 이미 보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산스크리트 어는,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스바하’인데, 그 의미를 살펴보면,
‘가테(gate)’는 ‘간 이여’‘가자"‘파라(para)’는‘저 언덕, 피안’을 의미하고, ‘상(sam)’은 ‘완전히’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보디(bodhi)’는 ‘깨달음’의 뜻이고, ‘스바하(svaha)’는 ‘영원하라, 행복하라’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진언의 힘을 빌어 『반야심경』이 가지고 있는 깨침의 소리를 함축하고 있는 이 주문은 어떠한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대략 아래와 같은 의미로 연결하여해석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즉, 이 언덕에 있는 무명 중생의 입장에서 해석해 본다면,“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가세, 우리 함께

저 언덕으로 가세,깨달음이여! 행복이 있어지이다(영원하여라)”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어리석은 중생에서 마음을 닦아 나가는 수행자의 입장에서

해석해 본다면,

 

“가는 이여! 가는 이여!

저 언덕으로 가는 이여! 

저 언덕 온전히 가는 이여!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우리들 중생의 입장에서 반야바라밀다를 증득하신 깨달은 부처님의

세계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라면 조금 달리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신 이여! 가신 이여!

피안으로 가신 이여!  

완전히 가신 이여! 

깨달음을 이루신 이여!

영원하소서.”


또한 이미 반야바라밀다를 증득하여 깨달음에 이르신 부처님의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은 해석도 가능할 것입니다


“건너갔네, 건너갔네. 저 언덕에 건너갔네.  

저 언덕에 모두 다 건너갔네. 깨달음을 성취했네.”
이상과 같은 의미의 해석을 기본으로 하여 조금의 의역(意譯)을 붙여 본다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취했네, 성취했네. 모든 소망 성취했네. 

만 중생들의 모든 소망 다 성취했네.”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우리 모두 행복하여라.  

이 세상 우리 모두 다 함께 행복하여라.”


이 주문이야말로 반야심경 전체의 결론이며 불교 전체의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주문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궁극의 경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게송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명쾌히 내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어딘가로 향해 길을 가고 있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방황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가야할 곳을 올바로 보고, 그 길에 전력투구하여

혼신의 신명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해답은 모두가 제각각 이겠지요.


돈을 향해, 온갖 재물을 쌓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 명예를 가지기 위해 달려가는 등 자신 스스로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한, 가족의 이익, 사회의 공익,국가의 평화를

위하는 방향으로 전 생(生)을 바쳐 내달리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 세계를 환경 오염에서 구해 보고자 이리 저리로 뛰어 다니는 사람들도 있으며,

사회의 온갖 부정부패를 척결해 보고자 사회 곳곳에서 모니터 역할을 자청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 힘들고 가난에 시달리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 나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좁은 소견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고 있는 방향이 인생 전체에 걸쳐 있지 않고, 당장의 눈앞의

이익만을 내다보며 걸어가고 있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고등학생은 오직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대학생은 좋은 직장을 향해,

직장인들은 승진을 향해 뒤도 안 돌아보고, 그렇다고 좀 더 앞을 내다보지도 못하고 열심히 뛰고 있을 것입니다.
고개를 들어 사회를 바라보면, 모두들 숨가쁘게 뛰는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근본을 되돌아 살펴보면,이렇게 열심히 뛰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왜 뛰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뛰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남들이 모두 뛰고 있으니 그저 따라서 뛰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듯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어가고 있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뛰어 가는 곳, 즉, 삶의 목표모두가 제각기 다르게 마련입니다.
동쪽으로 가는 사람, 서쪽으로 가는 사람, 그 중간에서 갈 길 몰라 헤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현명한 길일까?


우리 인간이 어리석은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을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야심경의 말미에 나오는 주문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는 바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주문에서는 바로‘생사의 괴로움이 없는 피안의 저 언덕,으로 가라는 길을 명확히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의 완성’을 향해 가라고 하는 인생의 목표 설정에 대한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이지요.
자신만의 안락을 위하는 재물과 명예를 향한 길, 개인, 혹은 가족만을 위한 길, 사회와

내 국가의 안락을 위한 길, 모든 인간을 위한 길 이 모두는 결코 궁극의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와, 모든 생명 있고 없는 일체를 위해 모두가
‘온전한 존재로서 하나’라는 동체대비심의 마음으로 이 모두가!함께 깨칠 수 있도록 하는

진리의 길이야말로 우리가 가야할 궁극의 경지인 것입니다.


언뜻 보아서는, 사회, 국가를 위한, 그리고 모든 인간을 위하는 길이 훌륭한 듯 보여도

사실은 집단이기주의이거나,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을 갈라놓고 분별하는 좁은 의미의 이타(利他)일 뿐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우러져 함께 북 치고, 장구 치며,신명나게 나아가야 할 길은 다름 아닌,

모두가 하나되는 세계, 깨침의 세계,저 피안의 언덕인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의 세계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은 바로 이러한 훤칠한 길이요, 시원스레 뻗은 걸림이 없는 길입니다.
항상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내가 가고 있는 길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고,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는, 다시 말해, 매 순간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는 것,

관찰하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공부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피안을 향해 가야 합니다.
죽음을 향해 갈 것이 아니라, 진정 삶도,

죽음도 없는 저 피안의 언덕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