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5년 10월 18일
☞ 산행날씨:흐린날씨에 짙은 박무...낮에는 무척 더움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3.5 km + 설성산 왕복 약 5km +어프로치1.2km / 8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이천호국원-덕현마을 갈림길-노동마을 갈림길-헬기장-노성산-육각정-말머리바위-안부-쉼터
ㅓ자갈림길-원경사 갈림길(왕복)-원경사-인삼밭-노성산 시민공원 주차장-목초지-이천공원묘지
333지방도삼거리-하나로마트 설성점-창천삼거리-창천2리 버스 정류장-333번 지방도-계원율림입구
계원율림 후문-농로-SKMS연구소 갈림길-농로-배추밭-116봉-도로-희망농장-보림양돈-한우축사
돌박지산-묘지-예의생활실천운동'대형표석-충남축산-포장도로-383번 지방도삼거리-전파연구소갈림길
말목장-흥천축산-설성축산-묘지-산길-설성산 갈림길-설성산-설성산갈림길-보째고개-225봉-군부대 담장
7군단 후문-253봉-정수고개-암봉-241.5봉-248봉-193봉-문드러니고개-상승대 버스정류장
☞ 소 재 지: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 이천시 설성면, 장호원읍
지난주에 설악산을 1박2일로 갔다 왔더니만 사무실 업무가 생각보다 많이 밀려 한 주동안 정신이 없다
거기다가 내 나이에 매주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경조사에 늘 지갑은 빈털털이... 이번주도 예외는 아니다
그 바쁜 와중에 토욜에 포교사 연수 교육을 갖다오니 시간이 어중간하다
월욜에 대학원 동기들과의 라운딩이 있어서 골프 연습장에 같다와서 집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서울 근교인 복하(독조)지맥 한 구간을 하기 위해서 집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진혁진님의 지도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일죽행 버스표
동서울터미널에서 일죽가는 버스에 오르는데 고속도로로 들어서자마자
짙은 안개가 자욱하여 한치앞도 보이질 않는데 나들이 차량들로 꽤나 붐빈다
50여분 가량 걸린 다음에 안성시 일죽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일죽버스 터미널(07:30)
버스 터미널은 짙은 박무와 미세 먼지로 가득차 있어 목이 상당히 아프다
일죽터미널에서 이천호국원으로 가는 버스는 매시간 10분에 일죽터미널에서
출발하기에 커피 한잔을 마시는데 오늘 아침에 작업을 하는 현장에서 일하는
시공기사한테 계속해서 전화가 오는데 미치겠다.
어제 작업지시서와 시방서를 다 적어놓고 왔으면 알아서 처리해야지
산에 온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계속해서 통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는 사이에 버스는 출발해버리고 하는 수 없이 다시 1시간을 터미널 안에서
죽치고 앉았다가 09시 10분 버스에 오른다
일죽에서 이천호국원까지 가는 버스표
일죽터미널에서 09시 10분에 출발한 버스는 20분만에 이천호국원 앞에 도착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들머리로 되돌아와서 산행을 준비한다
331번 지방도(09:03)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능국리와 이천시 설성면 수산리의 경계로 일죽에서
이천으로 이어지는 331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50m 전방에 이천호국원 정문이 있다
331번 지방도에서 베낭을 점검하고 스틱을 편 다음 산행을 시작한다 (09:35)
짙은 박무와 강한 미세 먼지 때문에 등로 바로옆에 있는 이천호국원도 잘 보이질 않는다
미국 자리공
생태 교란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왜래종 식물이나 충치, 바이러스 등의 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을 확인된 식물이다
최근에 지나간 듯한 알프스 대장님의 시그널도 보이고...
등로 우측으로는 낡은 철조망이 보인다
짙은 박무사이로 빛내림이 시작되고...
덕현마을 갈림길(09:50)
덕현마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조금가니 운동기구들이 보이고
이정표(↑노성산정상 0.7km, →덕현마을하산길 0.5km가 설치되어 있다.
등로에 있는 운동기구
노동(蘆洞)마을 갈림길(09:55)
안성시 일죽면 능국리 노동(蘆洞)마을은 가리골,가재골이라고도 불리며
약 150여년전에 전주이씨(全州李氏) 이만수(李萬洙 3형제가 지내(池內)마을에서
분가하여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이들이 이곳에서 정착하던
첫날 밤에 꿈속에서 한 도사가 나타나 마을 뒷개울에 가면 가재가 많으 것이라하여
다음날 뒷개울에 가보니 꿈처럼 가재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가재울이라고 했으며, 또 마을 뒷산에 갈대가 많이 있다고하여 가리골이라 하였다
2번째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고...
헬기장(10:00)
헬기장 좌측 하산로 입구에는 위치표시목 '현위치:2-3,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고 이천시 설성면 수산리에서 올라오는 등로가 보인다
노승산 가는길
노승산 정상으로 올라선다
노승산(老僧山:310m:10:05)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과 이천시 설성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느
3개의 정상석과 삼각점, 이정표, 국기 게양대가 2개나 설치되어 있다
해발 310m의 낮은 산이지만 삼국시대 백제, 고구려, 신라가 각축을 벌이던 토성으로서
옛 문헌에는 노성산으로 음죽현(陰竹縣, 신라시대 때 지명)의 주산이며, 영산이다.
산 이름이 노성산 외에 노승산(老僧山), 노송산(老松山)으로도 불리어진다
노승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노승산은 옛날 어느해 큰 흉년이 들어 몇십년만의 큰 가뭄으로 논밭이 바닥을
드러내고, 곡식이 병들어가자 산동(山東)마을 주민들이 기근과 질병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때 노스님 한 분이 나타나 매일 산서(山西)마을로 탁발을 나가 공양미를 가지고 와서는
산동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노스님은 노승산의 작은 동굴(현재 굴바위)에서 기거하며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눔을 행했는데 그러던 어느해 눈이 많이와서 매일 내려오시던 노스님이 며칠동안
마을에 나타나지 않자 걱정이 된 마을 주민들이 노스님을 찾아 나섰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산을 뒤져보니 노스님은 탁발한 바랑을 메고 마을로 오는
산길 눈 속에 묻혀 입적 하였던 것이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노스님의 시신을 거두어
화장을 한 후 분골을 노승산 위에 뿌렸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주민들은 노스님의 자비로운 은혜를 생각하며 산을보고 ‘노스님’하고
부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노승산(老僧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노승산을 장수봉(將帥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노성산, 마국산, 설성산, 사이에 용맹한 말 한마리가 나타나니
세 산에 주둔한 장수가 서로 차지하려고 다툼을 벌였는데 이기는 순서대로
말머리, 몸통, 꼬리를 차지하기로 했단다
그 결과 노성산 장수는 말머리를, 몸통은 마국산 장수가, 설성산 장수가 꼬리를
차지하니 지금도 노성산에는 말머리바위, 마국산에는 말바위(몸통)가 있고,
말꼬리 바위는 설성산에 있었으나, 산사태로 유실되었다 하며, 세 장수의
말안장 바위도 이 산에 있다고 하며 여주강의 잉어가 노성산 물을 먹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말귀바위, 깃대바위에 동아줄을 매고, 장수들이
줄을 탔다는 바위도 있는데, 깃대바위와 성문바위는 일본인들이 없애 버렸다고 한다
장수봉 표시석 뒷면의 모습
노성산 정상 삼각점(△장호원25/1985복구)
늘 나와같이 하는 베낭
커다란 정상석 뒤에 숨어있는 또다른 정상석
일죽터미널에서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예상보다 1시간 늦게 산행을 시작했지만
이 지역은 서울과 거리도 가깝고, 교통도 무지하게 좋은 편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이곳저곳을 두루 구경을 하고 가져온 막걸리 한잔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말머리 바위 방향으로 향하는데 이곳에 서 있는 이정표가 이상하다
정상 끝에는 나무벤치가 보이고, 우측 하산 등산로 입구에는 이정표(↑말머리바위 0.1km
↓주차장 1.5km →노승산폭포 0.84km)와 '노승산폭포 1000m'란 작은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말머리 바위 방향의 이정표로 가면 말머리바위가 아닌 노승폭포 방향이니 독도에 주의해야 한다
좌측 아래쪽으로 자세히 보니 선답자들의 시그널 2개가 펄럭이고 있다
노성산 정상에서 바라본 이천시 설성면의 모습
짙은 박무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하얀 여백만 보일뿐이다
설성면은 1914년 음죽군이 이천군으로 편입되면서 근북,원북,서면이 합면되어 붙인
이름으로, 동쪽 설성산(석성)의 눈 설(雪)자와 노성산의 별 성(星)자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음죽은 신라 ?부터 불러오던 고을 이름이며, 고구려 때에는 '奴音竹'이었다
노승산 정상에 있는 이정 구조목
노승산 내려가는 길
내려서자마자 좌측으로 육각정전망대란 이정표가 있으나... 그냥 패스한다
잠시후에 넓은 공터를 만나고...
말머리바위 갈림길(10:25)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10m 정도 내려서니 말머리바위가 나온다
노승산 말머리 바위
노승산에는 말머리바위를 비롯해 병풍바위,말안장바위,굴바위,노성산폭포,
병옥안과 해당화,고란초,일엽초,난초류(오리,다래,옥장)의 식물이 자생하며,
딱따구리,노루,부엉이,너구리,고슴도치.소쩍새 등과 같은 동물들도 살고 있다
고란초 전망대 갈림길(10:33)
이정표(←바위봉, 고란초전망대, 굴바위, 병풍바위약수/↓정상)가 있는 ┫자 굴바위 갈림길이다.
고란초 전망대 갈림길 이정표
쉼터(10:35)
고란초 전망대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2분정도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전망대란다
이곳에서 서니 나무가지 사이로 노승산과 말머리바위가 보이고 안내판도 서 있다
쉼터에 있는 말머리바위 안내판
노승산 내려오는 길에는 詩를 쓴 현수막이 많이 보인다
쉼터입구 구조 이정목
주차장 갈림길(10:40)
이정표(←주차장 ↑장능리방향 ↓정상가는길)가 있는데 주차장이란
노성산시민공원 주차장을 말하며, 독조지맥길은 장능리 방향으로 이어진다
장능리는 본래 음죽군 서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수동∙장률리∙
능동을 병합하여 장수와 능동의 이름을 따서 장능리라 하였으며 설성면에 편입되었다
세월앞에 장사 없구나
안부사거리(10:42)
이곳에서 독조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지만, 지맥 등로를 벗어나 원경사 방향으로 향한다
원경사 들어가는 길에서 만난 표지판
말머리 바위가 이천 9경이라네요
이천 9景 1경 도드람산 삼봉, 2경 삼봉호 일대, 3경은 설봉산 삼형제바위, 4경은 설봉산성,
5경은 산수유마을, 6경은 반룡송, 7경은 안흥지 애련정, 8경은 노성산 말머리바위, 9경은 이천도예촌
원경사 사천왕문(10:45)
원경사 사천왕문을 접어들어 좌.우측의 사천왕을
향해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원경사로 들어선다
지국천왕(持國天王)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사천왕중의 하나로 수미산 중턱에 살며 동방을 지키는 천신이다.
수미산을 다스리는 제석천 또는 부처님이 지국천왕으로 하여금 동방에서 불법을 지키라고
명령하였으며, 국토를 지키고 백성을 편하게 할 것을 맹세하였다고 하여 지국천왕으로 불린다
흰두교에서는 드르타라슈트라 (산스크리트어: धृतराष्ट्र)라 부른다
지국천왕 발바닥에서 신음하는 악귀
증장천왕(增長天王)
비루다카(산스크리스트어: विरूढक)는 수미산 중턱 남쪽에 있는 유리 지방을 관장하는 사천왕으로
비루인천왕이라고도 하며, 사람들의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하시는 분으로 용과 여의주를 쥐고 있다
자꾸 늘어난다 또는 넓어진다는 뜻을 한자로 번역해서 늘릴 증(增), 길 장(長)을 써서 증장이라고 한다.
중생의 이익을 넓고 길게 만드는 천왕이라는 뜻이다.
증장천왕의 발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는 악귀
다문천왕(多聞天王)
바이스라바나(वैश्रवण, Vaiśravana)는 불교의 사천왕 중 수미산의 북방을 수호하는 천왕이다.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라고도 불리며 수미산의 제 4층인 북방의 수정타(水精埵)에서
야차(夜叉)와 나찰(羅刹)들을 거느린다...사람들의 복관 좋은 명성을 사방에 선양하고
격려하며 손에는 비파를 들고 있다
광목천왕(廣目天王)
산스크리스트어로 비루파(विरू)는 귀, 여러가지 색이라는 뜻이고, 악쉬(पाक्ष)는 눈 또는
뿌리라는 뜻으로 여러가지 색의 눈 또는 뿌리라는 뜻인데, 이를 한자로 바꾸어
넓을 광(廣)과 눈 목(目)을 써서 광목천왕으로 부르며, 이는 크고 넓은 눈으로 수미산의
서방국토를 바르게 지키고 중생을 도와주는 천왕이라는 뜻이며 손에는 금강탑을 들고 있다
원경사 약사여래불
원경사의 유래는 구한말 아들을 갈망하는 노성산 산동 지역의 한 여인이
매일같이 노성산에 올라 지극정성으로 산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기도를 마치고 노성산을 내려오다가 그 당시는
아무것도 었던 현재의 원경사 부근의 터에서 조그만한 불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인은 불상을 신성시 여기고는 마을로 내려와 그 사실을 마을 주민들에게 알려
불상이 마을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러던 중 어느 날, 마을에 특별한 원인이나 병명을
모르는 질병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꿈속에서 노성산 산신이라는
노인이 나타나서 현재의 원경사터에 나를 모셔놓고 정성을 드리면 너의 병이 꼭 나을 것이라 말하였다.
이에 남자는 꿈속의 산산 말대로 현재의 원경사 자리에 작은 움막을 짓고 산신 기도를 열심히 했다.
100일째 되던 날 기도를 마치고 눈을뜨니 놀랍게도 병이 다 나아 있었던 것이다
또한 마을의 다른 사람 병까지도 산신기도를 통해서 병을 치료해 주게 되었으며
소원을 빌면 성취되는 염험까지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이 있은 후 전설처럼 지금까지도 전해져 오고 있으며 이에 원경사에서는
매년 두 차례씩 산신기도를 봉행하고 있다
원경사 부도... 납골당인 모양이다
원경사 9층석탑
원경사 설법당
삼성각
대웅전
대웅전 주불
원경사 범종루
범종루 아래에는 약수터가 조성되어 있고 범종루 4면에는
조례종송을 한글로 쓴편액을 설치한 것이 좀 특이하다
범종루 아래에 설치된 약수터
10분동안 원경사 이곳저곳을 두루 살핀 다음에 다시 지맥길로 복귀하기 위해 원경사를 나선다
지맥길을 향하는 길
이곳도 고란초가 나는 모양이다
다시 지맥길로 복귀한다(11:00)
희미한 등로가 보이나 산초나무를 비롯한 잡목들의 태클이 심하다
이 대장 이 친구 참으로 대단하이!
인삼밭을 지나 도로로 내려선다
노성산 시민주차장(11:15)
시민주차장을 지나 도로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목초지 밭으로 접어든다
목초지 밭으로 들어서니 초지에는 새로 씨앗을 뿌렸는지 싹이 돋아나고 있다
초지에는 짙은 박무가 가득하다
초지를 지나 잡목이 가득한 곳을 지나는데 잡목의 가시가 온 몸을 할키고
숲에서 갑자기 노루 한마리가 헐레벌떡 달아나는 바람에 나 역시 덩달아 놀란다
잡목지대를 빠져 나오니 간이 화장실이 나오고 공동묘지가 보인다
이천시민공원묘지(11:25)
이천시민공원을 지나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원래의 지맥은 공동묘지 진입도로인 시멘트 포장도로 좌측 공동묘지를 가로질러
가야하지만 묘지와 농장, 밭으로 지맥길이 바뀌는 바람에 포장도로를 걷는다
도로 좌.우에는 배밭과 복숭아 밭이 보이는데 잡시 후 도로 삼거리가 나온다
하나로마트 삼거리(11:35)
333번 지방도가 나오고 정면에 있는 삼성자동차 공업사를 바라보면서
좌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설성하나로마트 버스 정류장과
하나로마트 설성점이 보이고 우측에 해동기사식당이 있어 이곳에서
점심식사나 할까 하고 들여다보니 오늘은 휴일이라고 한다
이곳은 설성면 금당리(金堂里) 지역으로 설성면의 주요 기관이 있는
중심지로 청미천(淸渼川) 북쪽 평야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당앞, 상나무거리 등이 있다. 당앞은 당전이라고도 부르며
마을 뒷산에 신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상나무거리는 향나무가 있어 생긴 지명이다.
설성 하나로마트 버스 정류장
하나로마트 설성점
원래 복하(독조)지맥길은 하나로마트 뒷쪽으로 이어지는데 지맥길이 사라져 버렸다
도로를 따라서 걷는데 성호건설중기라고 써있는 컨테이너 박스를 지나고...
이정표를 만나서 여주 방면인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으로 꺽어지니 영진철물건재 간판이 보이고 버스 정류장이 있다
장천삼거리 버스 정류장(11:50)
장천리는 본래 음죽군 원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각리∙한천동∙
독정이∙왜거리를 병합하여 장각과 한천의이름을 따서 장천리라 하였으며 설성면에 편입되었다
우측에 영진철물건재을 끼고 333번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설성한식부페(11:55~13:10)
오늘은 도로를 따라서 걸으면서 상가들이 많기에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는데 점심시간을 맞추어 이곳을 지나다보니 설성부페를 만나다
식대는 6,000원이고 선불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넓은 부페 식당에는 손님이라곤
외국인 대여섯명과 쥔장, 직원뿐이다... 음식은 먹을만한데 특이한 건 음식중에 막걸리가
있는데 한잔에 500원이라고 붙혀 놨서 한잔을 퍼고 500원을 돈 통에 넣어려니 쥔장이
그냥 먹으란다... 왜 그러냐고 그러니 한잔은 공짜란다... 2잔을 더 먹고 1,000원을 주니
돈을 받지 않겠단다... 그러면서 하는말 손님중에 운전기사들이 많이 오는데 마냥 먹게 놔주면
사고의 염려 때문에 그런 룰을 정해 놨는데 난 걸어가는 산꾼이니 특별히 봐주겠다며 웃는다
6,000원에 식사에다 막걸리 3잔까지... 정말 횡재했다... 쥔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1시간이 지나버려 커피 한잔 마시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 걷는데 지독한 미세 먼지탓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목이 아프다
장천2리 버스 정류장(13:20)
왜거리라 불리는 이천시 설성면 장천2리의 지명 유래는 옛날 이 마을에 기와를 굽던 곳이
있었기 때문에 '와동(瓦洞)'이라 불리웠다. '와거리'가 '왜거리'로 변음된 것으로 볼수 있다.
장천2리 마을 입구의 모습
다시 여주방면의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계원율림 입구(13:30)
인삼밭이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계원율림 후문(13:40)
계원율림은 SK그룹 故 최종현 전 회장이 30여년전 직접 밤나무를 심어 `계원율림'이란 숲을
조성하고 가꿔온 혼이 깃든 곳이라고 하는데 산꾼들에겐 이곳 관리인이 악명이 높다고 한다
그 바람에 범여는 더 호기심이 생겨서 독조지맥길인 밤나무 단지 가운데 길을 걸어 보기로 하고
대문을 밀쳐보지만 굳게 잠긴 문을 열리지 않기에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틈이라곤 전혀 보이질 않아
도둑으로 오인받아 쫒겨나지 않으려고 좌측의 농로길로 들어선다
계원율림 안으로 들어가는 걸 포기하고 좌측 농로로 향한다
농로에서 바라본 복하(독조)지맥 오리지널길
농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니 포장도로가 나오고...
갈림길(13:55)
계원율림 정문(14:00)
선답자들은 계원율림 정문에서 건너편 철문을 통해 복하(독조)지맥을 이어 갔다는데 지금은
SKMS연구소 공사중이라 철조망이 처져있어 갈 수가 없어 왔던 길로 되돌아 간다
예전에 선답자들이 다녔다는 복하(독조)지맥길
출입문 안내 방향으로 되돌아가서...
나오는 길에 SKMS 연구소 공사가 한창이다
갈림길(14:15)
갈림길을 지나니 좌측으로 축사가 나오고 다시 우측길로 들어선다
도로를 따라가니...
우측으로 SKMS 연구소가 보인다
SK그룹은 경기도 이천 설성면에 `SKMS(SK경영관리시스템) 연구소'로 그룹의 경영철학인
SKMS를 연구 발전시키는 지식공장 역할을 하는 곳으로 연구소는 연구동과 숙소동,
사색 공간인 뮤즈홀 등으로 짜여 있으며, 앞으로 SK그룹의 글로벌 인력 등 핵심 인재들이
SK가치를 체험하고 무장하는 활동공간이라고 한다
추수가 끝난 논을 지나니 드넓은 배추밭이 지맥길을 가로막고 있다
배추밭을 가로지른 다음에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서 능선으로 오른다
복하(독조)지맥을 가로막고 있는 배추밭
배추밭 너머로 SKMS연구소가 보이고...
109봉?(14:30)
지도상에는 109봉으로 기록된 봉우리이나 등로도 없고, 흔적도 없어 확신이 서질 않는다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고...
도로가 나뭇가지에 본듯한 대장의 시그널이 보인다... 하여간에 대단한 친구야!
농업법인인 보람의 거대한 돈사(豚舍)가 보이고...
농업법인 보람의 정문(14:45)
가야할 돌박지산이 보이고...
쇠사슬로 가로막은 축사 정문을 통과하여 돌박지산 등로로 올라선다
반가운 선답자의 시그널이 외로운 산꾼 범여를 격려한다
돌박지산(165.9m:14:55)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삼각점이 있다
돌박지산의 유래는 ‘돌이 박힌 산’이라는 뜻으로 산이 낮고 볼품은 없으나
이 산에서는 청미천과 복하천이 발원하는 중요한 산이다
돌박지산 정상에서 바라본 설성면 송계리의 모습
송계리는 송동과 하팔계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지명으로
자연마을에는 송계리, 송곡(松谷) 등이 있다. .
송곡은 송골이라고도 하며 뒷산에 소나무가 무성하였다 하여 불린 이름이다.
돌박지산 정상의 모습
정상 곳곳에 돌이 박혀있는 모습이 보인다
돌박지산 정상 삼각점(△장호원 447 / 1988 재설)
돌박지산 정상에 있는 삼각점 안내 표지판
돌박지산 정상에 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돌박지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며 지맥길을 이어간다
현오님의 시그널을 만나고...
조금을 더 내려가니...
지나간지가 오래된 듯한 다올님의 낡은 시그널도 만나고...
뱀 한마리가 산꾼 범여를 째려본다...그래 우짜라꼬
능선을 내려와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잘 꾸며진 묘지가 나오고...
뒤돌아 본 돌박지산의 모습
영산김씨묘역(15:10)
'예의생활실천운동' 대형표지석이 영산김씨묘역을 지나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삼거리 갈림길(15:25)
383번 지방도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지방도를 따라 우측 길로 200여m를 올라가면 ┫자 삼거리 좌측 길을 따라 진행을 하게 되는데
삼거리 입구에는 송암축산, 설성목장 등 다양한 입간판이 세워져 있으며, 직진의 2차선 포장도로
지방도에는 '←전파시험인증센터, 위성전파감시센터, ↑ 383 안성,금당리'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삼거리 갈림길(15:30)
삼거리 갈림길에 서 있는 간판들
도로 좌측에는 말 농장이 보이고...
흥천목장 앞(15:40)
설성목장 앞(15:42)
설성목장을 지나 3분정도 지나 좌측의 비스듬이 누워있는 전봇대를 끼고 등로에 접어든다(15:45)
전봇대 뒤로 접어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김해김공지묘 좌측의 등로 올라서니...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 좌측으로 목장이 보이고...
등로에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의 시그널
등로 좌측으로는 →전파라는 노란 말뚝이 서있고...
우측으로는 →경계라는 말뚝이 서 있다
갈림길(16:00)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는데 전파시험인증센터가
자리잡고 있는데 등로에서는 건물이 보이지는 않는다
오늘 산행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산이 높아서라기보다는 인삼밭과 자그만 산의 잡목등... 생각보다 장애물이 많다
이천시 설성면에 있는 전파시험인증센터란 전자파 시험장 적합성 측정, 전자파 차폐물질 및
구조물에 대한 차폐성능측정과 전자파적합시험업무 등을 통하여 방송통신기자재의
전자파장해에 대한 품질을 보장하고, 방송통신기자재 사용의 안전성 확보 및 이용자의
권익보호 등 국가 방송통신산업 발전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대통령령 제13763호에
의하여 1993년 12월 설립한 미래창조과학부 국립전파연구원 소속기관이란다
잠시 후 군부대 훈련장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설성산이 보인다
군부대의 경고판도 무시하고 계속 걸어간다
설성산 갈림길(205m:16:05)
식당에서 점심을 이곳까지 쉬지않고 걸어 왔더니만 다리도 아프고 허기가 진다
설성산 갈림길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으로 허기를 면하고 나서 고민한다.
설성산을 갔다 올것인가 말것인가를... 그러나 과감하게 설성산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날머리가는 길은 그리 멀지않고 고도차도 심하지 않으며 귀경하는
교통편도 좋은 편이다... 설령 늦더라도 베낭속에 있는 헤드렌턴을 믿으면서..
내 평생 이 길을 다시 걸을 계획이 없고 설성산을 다시 온다는 보장이 없기에...
등로에서 사격시 빨간 깃발을 올리는 게양대가 있지만 깃발이 없는걸로 봐서 사격이 없는 모양이다
군부대 훈련장의 모습도 보이고...
신흥사 갈림길(16:30)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급경사의 오르막길로 향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인 용주사의 말사인 신흥사( 新興寺)는 연대를 알 수 없는
삼국시대 때 설성(雪城)을 쌓을 때 설성사(雪城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이를 확인할 수 없다.
문헌상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영조 36년(1760)에 편찬된《여지도서》의 서술이 가장 최초의 것으로
생각되는데, 즉 이 책에는 설성(雪城)을 언급하면서 '지금 작은 암자를 두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급경사의 오르막길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무명봉(16:35)
급경사의 오르막길 등로에 올라서니 ‘자연보호’ 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무명봉 정상에 도착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자연보호가 아닌 자연훼손으로 보인다
설성산가는 길에서 만난 의자
군부대 경고판도 만나고....
칡넝쿨과 잡목이 무성한 넓은 공터에서 오르니 설성산 정자가 보인다
설성산 팔각정
설성산(雪城山:291m:16:40)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과 장호원읍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팔각정과 삼각점(장호원 309)과
오석으로 세워진 표시석이 있다 이천시 설성면 동북쪽에서 장호원읍 서쪽경계를 이루고 있는 설성산은
해발 291m로 그리 높지 않으나 첩첩한 산줄기가 얽혀 험준한 지형을 이루고 있어, 옛날 군사상의 요충지로
알려진 곳이며 산중에 설치 되었던 곳으로 지금도 음죽음내라는 지명이 남아있으며 음죽현의 다른 명칭을
설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설성산을 성산의 존재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성은
바로 설성산성으로 신라 17대 내물왕대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서 쌓았다는 기록과흔적이
남은 설성이라는 명칭을 명 받고 성을 쌓는데 성이 놓일 자리로만 띠를 두른듯 백운이 내려있어
백운의 자취를 따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설성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산중에 있는 신흥사는 설성을 쌓은 이 무장을 위해 창건 되었다고 하는데 그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조 후기에 와서 다시 중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년 전 선읍리 근처에서 발견된 석조여래입상은 그 표현기법이 매우 뛰어난 유물로 평가되며
설성산에 유서 깊은 고찰이 존재했음을 나타내는 증거물이다(한국관광공사 여행정보-참고)
다시 설성산 분기봉(16:51)
설성산 갈때는 20분이 조금 더 걸렸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 마라톤 하듯
달려 왔더니만 10분정도 걸려 설성산 갈림길로 되돌아 왔는데 이게 왠일인가...
베낭 옆에 꽂아둔 지도가 없어져 버렸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그렇다고 이 늦은 시간에 찾으러 갈 수도 없고... 선답자들의 산행기 읽은 걸 기억하며
가는 수 밖에...갑자기 머리속이 하얗게 되는 느낌이다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
보째고개(16:55)
지도에 보째고개라고 표기한 곳을 지나는데 고개라는 생각도 안들고 확신도 안선다
우측 등로 아래에는 7군단이 자리잡고 있고 남한산성에 옮겨온 육군교도소가 있다
225봉(17:00)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서니 군부대 담장이 보인다
군부대 담장(17:05)
담장을 돌아서 내려서니 7군단 사령부 후문이 나오고...
7군단 후문(17:07)
도로를 따라 오르다 철조망을 끼고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맘은 급해진다
뒤돌아 본 225봉
군부대가 만든 옆사면길을 따라서 올라간다
등로 능선에 오르면서부터 군부대를 따라서 걷는데 길은 무지 좋다...빠르게 걷는다
등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걸어니 253봉이 나온다
253봉(17:20)
군부대 경고판
뒤돌아 본 253봉
좌측 군부대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고 철조망을 따라 빠르게 걷는다
241.5봉(17:25)
초병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하며 봉우리 정상에서 철조망을 끼고 급하게 내려선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정수고개(17:30)
이천시 설성면 자석리와 장호원읍 이황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우측에는 군부대 철조망이 있고 좌측으로 연화정사로 내려가는 곳인데
군부대에 가로막혀 고개의 역할을 잊어버린지 오래인듯 하다
연화정사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자석리 석불입상이 있는 곳이다
자석리 석불입상(경기도문화재자료 제41호) - 사진 펌
연화정사 뒤편 마당에 있는데 이곳은 예로부터 미륵당이라 전해진다.
자석리 남쪽 산기슭에 있으며 소발형(素髮形) 머리 위에 원형의 판석으로
보개(寶蓋)를 만들어 얹어 어석리 석불입상과 비슷하게 보인다.
높이는 약 2.5m에 하부 폭은 1.2m로 얼굴이 큰 편이며 몸체는
가슴 부분에서 연결이 되도록 2개의 돌로 조각하여 얹어 놓았다.
옷무늬와 사지(四肢)의 표현이 없는 둥근 원통모양으로 비대한 감을 준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음죽현(陰竹顯)에 현감이 새로 부임해 왔는데
고을 백성과 현감은 이상한 병에 걸려 고생하였는데 어느날 현감의 꿈에
석불상(石佛像)이 나타나 흙 속에 묻힌 자기를 파내 바로 세워주고 절을 지어
공경해 달라고 하여 그대로 해주니 현감과 백성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전설이 어석리 석불입상에도 전해 오는데 미륵불을 섬기던
토속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정수고개 이정표
장문바위(17:32)
선답자들의 시그널
소나무 숲길을 따라 빠르게 걷는데 우측 아래 군부대에서는 군인들의 함성소리가 들린다
우거진 소나무 숲에 등로는 무지좋고 군부대에서 설치한 이정표를 따라서 걷는다
248봉(17:40)
편한 소나무길을 따라 내려오니 이정표가 나오고 이곳에서
지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우측 국궁장 방향으로 가면 용채산 가는 길이다
이곳부터는 길이 잘 보이질 않고 잡목이 무성하다
가끔씩 만나는 군부대 벙커만 보이는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기에
마라톤하듯 달리다가 바닥에 깔린 삐삐선에 걸려 된통 넘어진다
위장막이 쒸워진 벙커를 지나니...193봉이 나온다
193봉(17:45)
원형 참호와 교통호가 정상 주변에 있고, 육군에서 설치한 '육군020' 시멘트 말뚝이 있는
봉우리인데 이곳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니 시끄러운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가운데 갈라진 바위를 만나 우측 방향으로 내려서 문드러니 고개가 나온다
문드러니 고개(文得峴:17:55)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자석리와 장호원읍 이황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3번 국도가 지나가며 이 고개에서 우측으로 20분정도 가면 상승대와 육군교도소가 있다
옛날 이 고개를 지나던 아홉 선비 중 4명이 대과에 급제해 고개 이름을 ‘글(文)을
얻었다(得)’는 뜻의 지명으로 문득현(文得峴) 부르게 됐었는데 변음되어 문드러니 고개란다
10여전 내가 속해 있는 단체에서 한일C.C(솔모로C.C)에 단체로 연부킹하여
몇년동안 골프를 치러 다녔던 고개라서 도로로 내려서니 금방 알겠더라
서서히 어둠이 몰려오지만 그나마 다행인게 헤드렌턴을 안켜고 산행을
마친것에 안도하며 동서울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장호원 방향으로 걸어간다
서서히 주위로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장호원과 충주 방향의 이정표가 보이는데 장호원의 옛지명은 음죽군(陰竹郡)이다
음죽군(陰竹郡)은 경기도 이천시 남부 지역의 옛 행정구역으로, 지금의
장호원읍, 설성면, 율면에 해당되며 삼한시대의 노람국(怒藍國)을 삼국시대의
노음죽현(奴音竹縣)에 비정되는데 이는 노람이 노음과 비슷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옛 음죽군의 중심인 장호원은 본래 장해원(長海院)이라는 역원(驛院)에서 유래되는데
일제시대에 갑자기 장호원(長湖院)으로 바뀌었고 이 경위가 석연치 않다고 한다.
장호원읍을 흐르는 청미천(淸渼川)은 원래 천민천(天民川)인데 대동여지도의
작성과정에서 천미천(天尾川)으로 오기(誤記)가 되었고 나중에 지금의 청미천이
된 것이라고 하며 장호원 읍과 설성면의 경계를 이루는 설성산에는 설성(雪城)이라는
성이 있는데 신라시대에 눈이 띄를 이루며 내려 쌓인 흔적을 따라 성을 축조했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상승대(18:15)
육군 7군단이 위치한 상승대 주차장에 도착하니 완전히 어두워진다
이곳에서 서울가는 교통편은 무지 좋다... 20분마다 버스가 한대씩 있는데
조금전에 버스가 출발하여 차를 기다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편의점에서 캔맥주하나 사서 마시고 18시 35분발 동서울행
버스에 올라 이천I.C에 들어서니 고속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내일 오랫만에 골프라운딩 나가는 날인데 큰일이다...공이 맞을란지...
예상보다 40분늦게 동서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
상승대 버스 정류장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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