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6년 2월 14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날씨에 진눈깨비... 차가운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4.5 km + 어프로치1km / 9시간 40분 소요
☞ 참석인원: 수헌님, 칠갑산님과 함께
☞ 산행코스: 이황리 정류장-문드러니 고개-NO176송전탑-병무관 고개-방재시험연구소 갈림길-203봉-부채바위-은봉리갈림길
214봉-복숭아밭-골프장 개구멍-솔모로 골프장 파인 2번홀-파인 3번홀-체리 4번홀-체리 9번홀 티박스-체리2번홀
체리3번홀-등로-고구마밭-농장-연대삼거리-가평간씨 묘지 도로-민가-매봉-철갑산-판중추부사 문공묘-금당리갈림길
행치고개-중부내륙고속도로-전원주택지-153봉-187봉-190봉-암봉-동여주C.C 스타트하우스-레이크10번홀-7번홀
8번홀-211봉-174봉-묘지-211봉-275봉-금곡리 갈림길-예수상-철조망-신통산-225봉-돌탑-143봉-청안고개
밥푸는집-폐국궁장-공장부지-신 37번국도-공장부지-페럼골프장 능선-바디고개-무명묘지- 안부(왕복)
달걀봉-216봉-소무산 갈림길-철탑-벙커봉-안부-안말갈림길-갈림길-승안고개-전원주택지
불탄지역-174봉-도리마을회관 안부-중군이봉-벙커봉-무명묘지-청미천 합수점
☞ 소 재 지: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 여주시 가남읍, 여주읍, 점동면
신 냉전시대가 다가 오려나 새해부터 정국이 요동을 친다.
북한놈들의 계속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해 얼어붙은 남북의 대치
상황으로 인해 나같이 경기에 민감한 자영업자들은 상당히 불안다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경색된 정국에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전 세계적인
환율전쟁으로 인해 수출시장이 불안하니... 그 여파로 인해 올 장사가 걱정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자꾸만 머리가 아파오는데 오랫동안 미뤄왔던 복하(독조)지맥 마지막
구간을 무거운 마음으로 나선다
사실 이 구간은 골프장을 통과해야하는 곳이 너무 많기에 골프 시즌중에는
정상적인 등로를 걷기에 불가능하여 비시즌인 겨울에 통과해야 한다
최근에 양화(해룡)지맥과 아산(영인)지맥을 같이하는 수헌아우님과 같이 가기로 했는데
5년전에 호남정맥을 같이 한 적이 있는 칠갑산 아우님한테 연락이 왔다
마지막 구간을 같이 하자고 하여 06시 20분에 동서울터미널에서 조우하여
문드러미재를 가기위해 동서울발 감곡행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졌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이황리가는 버스표
집에서 출발하여 지하철 2호선 선릉역에서 05시 47분 첫차를 타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06시 05분... 잠시 후 칠갑산 아우님을 만나 06시 30분발 버스에 오르자마자
깊은 잠에 빠지는데 갑자기 버스가 덩컹거리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다
이게 뭐여!.. 우리를 태우고 가던 버스의 앞타이어가 펑크가 나는 바람에 버스가 멈춰 버린다
다행히 뒤따라 오던 버스에 올라타고 이황리 정류장으로 향한다.
이황리 버스정류장(08:10)
타이어 펑크로 인해 예정했던 시간보다 30분 늦게 이황리 정류장에 도착한다
버스 정류장 이름이 이황리 정류장으로 되어 있지만 이황리보다는 상승대로
더 알려져 있으며 7군단이 이곳에 있고 남한산성 아래 있던 육군교도소가 이곳으로 왔다
버스에서 밤새 꽤나 많이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날씨는 생각보다 춥다
이황리 버스 정류장의 모습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문드러니 고개로 향하는데 들머리까지는 1km정도 도로를 따라 걷는다
이황리(梨黃里) 가는길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는 이황리는 서쪽에는 혼천산과 용채산이 있고 자연마을로는
황정개, 윗황정, 아랫황정, 갈월, 너머말, 문드러니, 배나무정 등이 있다.
황정개는 이황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고 문드러니 또는 문득촌은 문드러니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배나무정은 아랫황정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배나무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목정 또는 이정이라고도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목정 · 황정포 · 노동을 합쳐 이목정과 황정포의 첫 글자를
따서 이황리라고 이곳에서 발원한 이황천은 동쪽으로 흘러 새터 앞에서 나래천과 만나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풍계천에 합류한다
갈림길을 지나니 완행버스가 서는 이황3리 정류장이 나오고 들머리인 문드러니재가 보인다
문드러니 고개(文得峴:08:23)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자석리와 장호원읍 이황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3번 국도가 지나가며 이 고개에서 우측으로 20분정도 가면 상승대와 육군교도소가 있다
옛날 이 고개를 지나던 아홉 선비 중 4명이 대과에 급제해 고개 이름을 ‘글(文)을
얻었다(得)’는 뜻의 지명으로 문득현(文得峴) 부르게 됐었는데 변음되어 문드러니 고개란다
4개월여만에 다시온 문드러니 고개... 오늘 오전까지 비가 온다고 예보한 기상청의 예보와는
달리 비는 오지 않으니 그게 어디인가... 그 바람에 잔뜩 긴장하고 레인코트와 갈아입을
옷을 2벌이나 베낭에 더 넣었으니 베낭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이래저래 기상청이
오늘도 오보(誤報)로 인해 구라청이 돼버렸지만 비를 안맞는게 어디여... 이런 예보는 틀려도 되...
문드러니 고개에서 등로로 들어서자마자 잡목이 심한 태클을 걸어온다
그러다가 2분정도 지나니 뚜렸한 등로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비에 젖은
등로로 인해 지난주와는 달리 먼지가 나질 않아서 편하게 길을 걷는다
약간의 오르막에 오르니 벙커같이 보이기도 한 여인의 乳頭처럼 생긴
봉우리를 지나면서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NO176 송전탑(08:45)
편안한 등로를 걷는데 무한도전클럽의 시그널이 보인다
최근에 지나 갔는지 깔끔한 새것이다.
등로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좌측의 뚜렸한 등로는 방재시험 연구소로 향하는 길이다
병무관고개(08:50)
이천시 장호원읍 나래리와 여주시 가남읍 건장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지만
그냥 밋밋한 등로이고 아무런 표식도 없기에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고개이다
지명의 유래는 병모양처럼 생겼다하여 병무관고개라 부르며 병목안 고개라고도 한다
방재시험 연구소 갈림길(09:00)
2번째 방재시험 연구소로 향하는 길이 나오는데 연구소 규모가 꽤나 큰 모양이다
방재시험 연구소는 화재보험협회의 산하기관이란다
203봉(09:05)
203봉 정상에 오르니 아랫마을 사람들이 새벽 운동을 오는지 운동기구들이 즐비하다.
좌측으로는 가남읍 건장리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지맥길은 우측이다
가남읍 건장리(建章里)는 양화천이 마을을 따라 남북으로 흐르며 옛날 해주 정씨가 500년 전
이곳에 정착해 살아왔는데, 토지가 메마르며 지형이 길게 뻗은 형상이라 건장리라 불렀다 한다.
자연마을로는 작답골, 온발이골, 방축골 등이 있다. 작답골은 지형이 지게 작대기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는 작은 잣(小)의 변음이고 답은 달(山)의 변음으로, 작은 산골이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온발이골은 이곳에서 물건을 소나 말로 운반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물말은 옛날 마을이 있었던 곳으로 아주 좋은 우물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방축골은 방죽이 있었던 곳으로 옛날 몹시 가뭄이 들었는데 이 방죽에서 용이 승천하면서 비가 내렸다는 설이 전해온다.
부채바위(09:09)
203봉을 지난지 얼마 안되어 멋진 바위를 만나는데 산꾼들이 부채바위라고 부르는 곳이다
은봉리(隱峯里) 갈림길(09:10)
여주시 가남읍 은봉리는 대신천과 양화천이 마을을 둘러싸고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목골, 방축골, 부터골, 쌍내골, 자은동, 소죽골 등이 있다. 목골은 골이 깊고 나무가
무성할 뿐만 아니라 특히 고목이 많아 목곡(木谷)이라 불리던 것이 변음된 이름이다.
방축골은 옛날 방축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터골은 옛날 부자가 살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으나 그 후 마적떼가 들어와 망했다는 마을이다.
쌍내골은 두 내가 합쳐지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자은동(自隱洞)은 조선시대 퇴계 이황 선생이
이웃 마을인 장호원읍 사읍리에 거주하는 고을의 원님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이곳에서 아무도 없이
단신으로 수일간 은거하였다가 갔다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소죽골은 소먹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214봉(09:15)
흙에 파묻힌 214봉 2등삼각점(△장호원21 / 76.7 건설)
아무런 관리가 되질않아 흙이 잔뜩 쌓여 있는데 스틱으로
흙을 파내니 (△장호원21 / 76.7 건설) 표시가 나타난다.
214봉에서 바라본 솔모로 C.C 클럽하우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저 곳에 연부킹을 해놓고 골프를 쳤던 곳인데
오늘은 골프가방이 아닌 등산가방을 메고 이곳까지 걸어와서 골프장 가운데로
걸어가야 하는데 직원들과 마찰을 빚지나 않을까...
36홀 규모의 워낙 넓은 골프장이라 대다수의 산꾼들이 골프장으로 들어갔다
쫒겨놨고 아예 우측의 연대산으로 우회해서 가기도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한 겨울의 휴장기에 골프장을 통과한 산꾼들의 기록도 보인다
골프장 주차장에는 그래도 라운딩하러온 골퍼들의 차량들이 꽤나 많다
함 부딪혀 봐야지... 지맥길의 골프장을 많이 지나 다녀서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으니까
솔모로 골프장으로 이어지는 독조지맥 개념도(박종율 선생 자료인용)
214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온 다음 조그만 봉우리로 올라선다
갈림길(09:30)
이곳이 복하(독조)지맥 구간중에 가장 고민이 되는 지역이다
1, 솔모로 골프장으로 들어서 정통으로 가는것이 가장 완벽한 산행이나 골프 시즌에는
골프장으로 통과 자체가 불가능하여 겨울과 같은 비시즌이나 휴장기에 가야하고
2 ,아예 원 지맥길을 포기하고 우측으로 멀리 돌아 연대산으로 가면은 1시간 이상
더 걸린다는 점이다... 범여는 지난해 시작한 독조지맥 길을 1년 기다렸다가
마지막 산행을 오늘 나선다
칠갑산 아우님과 나는 솔모로 골프장을 가로질러 가기로 하고 과감하게 원 지맥길로 내려선다
우회길을 버리고 직진으로 내려서니 길 자체가 없다
가시에 몸뚱아리에 할키면서 내려서니 복숭아밭이 보인다
복숭아밭(09:32)
복숭아밭을 지나니 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를 따라가도 연대산으로
오를 수 있지만 우리는 좌측으로 숲으로 들어간 다음에 골프장으로 내려선다
솔모로 골프장 코스
솔모로는 여주.이천지역의 옛 지명으로 “솔”은 소나무 “모로”는 무리를 말해
“소나무가 많이 있는 곳”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예전에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일C.C였으나 지금은 한진그룹이 형제간에 계열 분리가 되었고 지금은
메리츠 생명 소유이며 솔모로로 이름이 변경된 36홀 규모의 골프장이다
솔모로 C.C 파인 2번홀(09:35)
조심스럽게 골프장으로 내려서니 젊은 친구들이 티잉그라운드에 티샷을 하는 중이라
조용히 기다렸다 페어웨이로 내려서니 캐디가 이곳으로 들어오면 안된다고
하길래 쉿~잇 하고 카트카가 이동한 다음 카트 도로를 따라간다
다행히 캐디가 조용히 간다... 만약 마스타에게 무전으로 연락해 버리면
영락없이 쫒겨나야 하는데... 캐디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카트 도로를 따라 가다가 좌측으로 꺽어진다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가니...
파인 3번홀(09:43)
파인 3번홀이 나오고 다시 카트 도로를 따라 넘어가니 체리 4번홀 티박스가 나온다
체리 4번홀 티박스(09:47)
체리 4번홀 티박스를 지나 오르니 홀 경계가 나오는데 좌측으로 넘어간다
다시 카트 도로를 따라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는데...
체리 코스(좌측)와 퍼시몬 코스(우측)가 갈라지는 곳에서 좌측으로 간다
체리 9번홀 벙커(09:53)
벙커 아래에서 그린 위까지의 높이가 3m 정도가 되는데 솔모로 골프장에는
이런 벙커가 몇개가 더 있는데 보기 플레이어 골프들은 저 벙커에 빠지면
서너타 까먹기 일쑤인데 이런 곳에서 그린 공략을 하려면 조금 짧게 치거나
아님 벙커에 빠지면 뒷쪽으로 쳐낸 다음에 그린을 공략하는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6년동안 매달 다니다보니 홀 공략법을 많이 알게 되었다
페어웨이에서 바라본 연대산의 모습
체리 9번홀 티잉그라운드(09:57)
겨울이라 손님이 적어서 그런지 다행히 체리 코스는 열어놓지 않아 편하게 지난다
체리 2번홀 티박스(10:00)
체리3번 페어웨이를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체리3번 페어웨이에서 바라본 214봉과 클럽하우스
드디어 솔모로C.C를 벗어나 능선으로 접어든다
얼마나 슬라이스가 심했기에 능선 한참 너머에도 OB가 난 볼들이 보인다
능선에서 또다시 잡목의 가시와 전쟁을 치르면서 수확이 끝난 고구마밭으로 내려선다
농로를 따라가니...
잠시 후 농장 안에 있는 민가가 나온다
농장의 굳게 닫힌 철대문을 지나니 연대삼거리가 나온다
연대(蓮臺)삼거리(10:10)
여주시 가남읍 양귀리에서 연대리를 잇는 삼거리로 여주에서 점동으로 가는
84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곳인데 삼거리 뒷쪽엔 가평간씨 묘지가 있다
가남읍 연대리는 양화천이 남북으로 뻗어 흐르며 연대산 밑 골짜기에 위치하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산들이 멀리서 바라보면 연꽃형상을 이루고 있다 하여 연대리라 불렀다.
자연마을로는 쑥디, 서시리(西始里), 군량골, 북당골, 자채낭골 등이 있고 쑥디는 옛날에 가평 간씨와
여흥 이씨가 피난처를 찾아 사방이 안 보이는 외진 곳을 찾아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는데,
움푹하게 파인 곳이라 하여 부른 이름이라 한다. 서시리는 서편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군량골은 전쟁 중에 창고를 짓고 군량미를 쌓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당골은 전쟁 중에 북을 쳐서
군인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불당이 있었다 한다. 자채낭골은 임금님께서
드시던 자채벼를 재배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대 삼거리에서 수헌 아우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아우님이 승합차에서
내리는데 이렇게 기막힌 타이밍이란 말인가?...사실 오늘 산행의 도상거리가 26km이상이라
당일 산행으로서는 조금은 무리라서 난 처음부터 과감하게 연대산 오르는 걸 포기했다
연대산으로 우회하면 최소한 1시간 산행시간이 늦어지기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산행에 나선다
가평간씨의 묘지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들어서니 잡목의 태클이 무쟈게 심하다
능선 좌측의 묘지 너머로는 인삼포와 양귀리(兩貴里) 마을이 보인다
여주시 가남읍에 있는 양귀리는 '양지말구일'과 '음지말구일'이라 불리는
두 지역을 합쳐 '양귀리'라 부르게 되었으며 양화천이 남북으로 뻗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구일, 음달말, 양달말 등이 있는데 구일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누구나 이곳에 이사를 오면 몇 년 안에 부자가 된다하여 '귀일'이라고도 부른다.
음달말과 양달말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마을로, 양달말은 햇볕이 잘들어 붙여진
이름이며, 응달말은 그늘 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잡목을 헤치고 마을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매봉을 바라보며 마을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는데 좌.우는 정원수들이 보인다
전원주택(10:30)
도로 끝까지 오니 전원주택 한채가 지맥길을 막고 있어서 우측으로 우회한다
구획별 식수분포 현황판
구획별 식수분포 현황판을 지나 인삼포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전원주택과 인삼포 사이로 올라간다
밭을 가로질러 매봉으로 향하다가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뒤돌아서 본 연대산 (蓮臺山227m)
지명의 유래는 조선 초기에 이곳에 이씨의 무덤이 있었는데 이장(移葬)을 하려고
묘지를 파니 그 안에 연화(蓮花)가 있었다하여 연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연대산은 가남읍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연대리 주민들은 이 산이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산이라고 여겨 오래전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음력 정월 초사흗날 산제사를 지내왔다.
산제사를 지내는 장소는 연대산의 큰 바위로 크기가 가로 130cm, 세로 108cm이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마을 주민 중에서 생기복덕을 가려 제관과 축관을 각각 한 명씩 뽑으며,
이렇게 뽑힌 제관과 축관 그리고 마을 이장은 바깥 출입을 금하고 왼새끼로 꼰 새끼와
창호지를 끼운 금줄을 쳐서 부정을 막는다. 제관은 뽑힌 날 바로 집에서 3되 3홉으로 술을 빚는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이 되면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찬물에 목욕재계하고 밤 12시에
수퇘지를 잡았고. 통돼지가 준비되면 제관과 축관이 술잔과 향로를 챙겨 통돼지를 운반할 사람들과
함께 산에 올라 제사 터에 도착하면 먼저 통돼지 배가 밑을 향하도록 놓고 향로와 초를 밝힌 다믐에
여법하게 산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밭 가운데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른다
매봉(鷹峰:186m:10:40)
여주시 가남읍 금당리와 양귀리의 경계에 있는 그저 밋밋한 봉우리로 아무것도 없다
자연과 송정님이 코팅지에다가 메직으로 매봉이라 써놓았는데 색이 바래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매봉 정상에서 20여m정도 직진을 하다가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매봉 내리막길은 간간히 내린 싸래기 눈으로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까지 내려 섰다가 다시 철갑산으로 오르는데 이른 새벽에 밥을
먹은 탓인지 갑자기 허기가 지면서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철갑산 오름길에서 만난 암릉
철갑산(鐵甲山:225m:10:55)
여주시 가남읍 안금리와 금당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아래는 아리지C.C가 자리를
잡고 있고 그 밑으로는 여주J.C에서 충주로 이어지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산 아래에 철갑산에 있던 절이 있어서 붙혀진 지명으로 옛날에 엿장수가 철갑투구를 쓰고
대포산에 올라 대포를 쏘았다고 붙혀진 지명이라는데 선뜻 이해가 잘 안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신통사와 철갑사가 모두 환희산에 있었다고 하였으나,
『범우고』에는 모두 폐사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로 보아 1799년(정조 23) 이전의
어느 때인가 폐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초석으로 보이는 돌들이 널려 있고 기와편과 토기편이 약간 수습되고 있다.
도저히 허기가 져서 더 이상을 걷지 못하겠다... 산 아래 바람이 불지않은 장소를 잡아
칠갑산아우님이 가져온 막걸리에다가 부침개로 허기를 면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길을 간다
철갑산의 내리막길은 엄청나게 미끄럽다... 내리막길 우측에는 판중추부사 문공묘가 보인다
판중추부사 문공묘(11:19)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는 조선시대 중추부에 둔 종일품(從一品) 관직인 판사(判事)로 정원은 2명이다
고려시대의 중추원과 달리 조선시대의 중추부는 특정하게 관장하는 일이 없었고, 문무당상관으로서
소임이 없는 사람들을 대우하는 기관이었고 따라서, 이 곳의 판사도 그들 고유의 담당업무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순장(巡將)으로서 행순(行巡 : 순찰)의 임무를 맡는다든가 관찰사나 병마절도사로 겸임되는 등
실질적인 기능을 가지기도 하였다. 특히, 중추부판사는 대신급의 고위관원이 체직될 때 잠시 임명되는 자리로 활용되었다.
금당리(金塘里) 갈림길(11:20)
가남읍 금당리는 금곡천이 동서로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소댕이, 조촌동, 안강골 등이 있다.
소댕이는 옛날 물무재 너머에 백천 조(趙)씨가 터를 잡았다 하여 조촌동이라 불러오던 곳인데,
해방 이후 송당들이란 앞들 이름을 따서 송당동이라 하였다가 변음 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소댕이의 소는 솔의 변음이고 댕이는 등성이를 뜻한다. 야산 등성이에 있는 마을이다.
조촌동은 금당2리에서 금당1리로 넘어가는 물무재 너머 왼쪽편에 옛날 백천 조씨가 처음 터를
잡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조촌은 좁말(좁은골)의 한자표기어이다. 안강골은 조선 효종 때
금당2리에서 금당1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조촌동 안으로 조씨와 송씨 몇 호가 터를 잡고 편안하게
살았기 때문에 안강(安康)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금당리 갈림길을 지나면서 우측 아래로는 조금전에 만난 판중추부사 문공묘처럼
다른 묘들이 보이는데 이곳은 예전에 벼슬한 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뒤돌아 본 철갑산의 모습
능선 아래로는 아리지C.C가 보인다
예전에 골프장 사장이 고향 선배의 지인이라 몇번 가본 곳인데 페어웨이가 좁아
상당히 정교함을 요하는 곳이다
잠시후 절개지가가 나오고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맥길을 짤라 먹었다
좌측의 우회길로 향한다
한국도로공사 경계목도 보이고...
행치(行峙)고개(11:35)
여주시 가남읍 양귀리와 점동면 경계에 있는 고개인데 지금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여주 J.C 근처이고 고개의 흔적조차 찾을수가 없고
동물이동통로인 토끼굴이 행치고개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옛날 이곳에 고약한 마귀할멈이 있었는데 마귀할멈의 심술로 이곳에
살았던 순박한 남매가 많은 고통을 겪어며 죽었는데 그 행동을 다사려
이 고개를 행치(行治)라고 했는데 나중에 행치(行峙)로 바뀌었다고 한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아리지 C.C사이로 지나간다
중부내륙고속도로 토끼굴을 지난다
중부내륙고속도로 토끼굴을 지나 우측으로 꺽어진다
지맥길에는 전원주택지가 조성되고 있다
전원주택지 절개지를 따라서 오른다
등로에 오르니 우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나오는데 고속도로 건너에서 우측으로 떨어지는게 좋을듯...
187봉(11:50)
동여주 C.C 경계 능선을 따라서 걷는다
190봉(12:00)
동여주C.C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멋진 암릉을 지나서...
우측의 급경사로 내려선다
드디어 동여주 골프장으로 내려선다
동여주C.C 스타트하우스(12:10)
카트 도로를 따라서 쭈~~~욱 올라간다
동여주C.C LAKE Course 10번홀의 모습
레이크 10홀 페어웨이 너머로 금당리와 강금산이 뚜렸하게 보인다
강금산(剛金山)은 일명 개금산 또는 갱금산으로 불리는 강금산은 가남면 금곡리 , 송림리,
점동면 덕평리, 부구리 경계에 걸쳐 있는 높이 280m 의 산으로 청미천과 오갑산을 바라보는
가남면 동부 지역의 대표적인 산으로 옛날 이 산에 개와 같은 모양의 크기의 금을 묻어 두었는데,
억수 같이 비가 내리고 난 직후 산안개 속에 그 형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때 안개 속을 해 집고
이 금덩이를 캐려고 그 형상을 따라 산 속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들어갔으나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후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맞는다는 교훈과 함께, 마을사람들이 식목을 하여
다시는 그 개와 같은 금의 형상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한다.
그 후 아무도 다시는 금덩어리를 찾으려 하지 않고 마을도 평안하게 살아온다 한다.
지금도 그 개만한 금 덩어리는 강금산 어딘가에 묻혀있을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부터 이 산에는 개만한 금빛이 비추어 많은 사람들이 금에 욕심을 내어 그 위치를
확인 하고자 산으로 올라가면 보이지 않고 산에서 내려오면 또 금빛이 보였다고도 한다.
이는 산이 외로움에 금빛을 띠어 아름답게 하여 많은 사람들을 산으로 유혹하여 외로운 정을 달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명 개금산 또는 갱금산 이라한다. (여주시사 자료인용)
LAKE 코스 10홀 티박스 앞을 지나고...
동여주C.C 배수시설(12:15)
카트 도로에서 바라본 동여주C.C
예전에는 그랜드C.C였는데 지금은 국방부에서 인수하여 군 골프장으로 바뀌었다.
남한산성 아래에 있는 남성대골프장이 위례신도시로 건설되면서 수용되는 바람에
군에서 그랜드 골프장을 인수하여 군 골프장으로 바뀐 곳이다
마운틴코스 7번홀 페어웨이를 가로 지르니...
동여주C.C MOUNTAIN Course 8번홀(12:18)
마운틴코스 8번홀 티잉그라운드를 지나 카트 도로를 따라가다가 등로로 접어든다
211봉(12:25)
211봉에 오르니 넓고 뚜렸한 임도를 만나는데 좌측으로는 대포산으로 향하는 길이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좌측 능선 아래로 남여주C.C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퍼브릭 골프장이라 예전에 싼맛에 참으로 많이 다녔는데 인터넷 부킹이라 부킹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던 같은 기억이 난다.. 예약은 인터넷 잘하는 친구가 했는데 이곳이
독조지맥길인줄은 예전에 몰랐다... 하긴 그때야 대간이니 정맥이니 하는걸 알지 못했으니...
묘지를 이장한듯한 공터를 지나 편안길로 내려간다... 길은 무쟈게 좋다
점심시간(12:35~13:35)
오늘 점심식사 장소로 농막 비닐하우스를 찿았지만 아무리봐도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비닐하우스가 없을것 같아 앞서가던 수헌 아우님이 바람이 불지않는
옴팍한 장소를 물색하여 점심 밥상을 펼치는데 싸래기 눈은 계속 내린다
눈을 맞으면서 막걸리에 삼겹살과 쭈꾸미를 구어서 1시간동안 점심 만찬을
하면서 오랫만에 만난 칠갑산님과 수헌아우님...산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다
묘지(13:40)
시야가 트이면서 산꼭대기에 있는 예수상이 아련히 보인다
211봉(13:53)
211봉을 오늘 2번이나 만난다...등로는 뚜렸하지만 내린 싸락눈 때문에 상당히 미끄럽다
금곡리 갈림길(14:00)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이 높은 산에 가로등이 있고 금곡리 가는 길이 나온다
여주시 점동면 금곡리는 본래 여주군 근남면의 지역으로 쇠일, 소일, 또는 금곡리라 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금곡리라 하였다. 옛날 조씨(趙氏)가 살다 떠나 조촌(朝村)동이라 했고,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에 허씨(許氏)가 들어와 12대째 살고 있는 허씨 집성촌이다.
마을 앞 강금산에서 금을 캐어 내던 곳이라 하여 쇠야[金野]라 부르다가 금을 캐는 사람들이 많자
소일로 부르게 되었다 하며 또 강금산에 개만한 금덩어리가 묻혀 있다는 전설에 따라 금(金)자와
곡(谷)자를 따서 금곡리라 하였다고도 한다.
나무에 걸려있는 예수상... 내 전공이 아니라 그림의 뜻을 모르겠다
오순절 예수상(275m:14:02)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신통산 정상에는 높이 7m20㎝의 커다란 예수 상이 세워져 있다.
두 팔을 벌리고 사람들을 환영하는 모습의 석상을 세운 것은 산 기슭에 자리잡은 ‘천사들의 집’이다.
지난 97년 문을 연 이곳은 ‘오순절 평화의마을’이 경남 삼랑진에 이어 두번째로 마련한 사회복지시설이다
우리나라는 종교 백화점이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고
실제적으로 민초들에게 많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데 종교적인 힘이 컸다는 것에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성직자들의 타락상에 사회가 분노를 하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목사부부의 친딸 구타사망 사건과 신부가 자기 성당 여신도 성추행 사건 등
모든 종교를 망라하고 끊이지 않는 추문에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
작금에 어느 기관에서 성추행과 성폭행 사건을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성직자들이 1위란다
저 위에서 손벌리고 있는 예수님께선 어케 생각하시나요
미꾸라지 한마리가 물을 흐린다는 漁濁一水로 치부해 버리실건가요...
저 자들 절대 천국에 보내지 마셔요
예수상을 지나니 철조망이 나오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선다
싸락눈으로 인해서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에 떨어졌다가 신통산으로 오른다
신통산(神通山:279.4m:14:10)
여주시 점동면 청안리와 금곡리, 여주읍 하거동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높다란 산불감시초소만이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다.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바라보니 점동면소재지와 그너머로 가야할 달걀봉과
오갑지맥이 아련히 보이지만 우측에 있는 강금산은 보이질 않는다
옛날 효성이 지극한 청년이 부친의 병환을 구환하기 위하여 고심하다가
엄동설한에 산으로 올라가니 머루가 무르익어 있어 이것을 가져와
달여 드렸더니 부친의 나았다는 설과 고려말에 이 산 아래에 심통사(心通寺)가
있어서 심통산이라 불리웠는데 그 후에 와전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청안리의
서북쪽에서 북쪽으로 뻗어 있는 신통산(新通山)은 청안리의 북쪽을 아늑하게
감싸주는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예전에는 이 산기슭에 여주로 통하는 길이
있었으며 사람의 내왕이 많았다 한다.
수헌님은 뭘 생각하고 있을까?
철조망 갈림길(14:20)
이곳에서 철조망과 작별을 고하고 우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가며
여태껏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지나면서 만났던 여주읍과도 작별을
고하고 지금부터 온전히 여주시 점동면으로 접어든다
편한길을 따라서 룰루♬♪랄라 하면서 걷는다
255봉(14:23)
운동기구가 있는 능선(14:25)
255봉을 내려서자마자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나오는데
날씨탓인지 모든게 흐릿하게만 보인다... 바로 아래에는 점동면소재지가
보이고 그 너머로 달걀봉과 오갑지맥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언젠가
걸어야 할 길이기에 유심히 바라본다
이곳에서 좌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희미한 곳으로 내려선다
능선에서 바라본 점동면 소재지
여주 시청 소재지인 여주읍의 남쪽에 자리 잡은 점동면은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과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그리고 남쪽으로는 음성군 감곡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므로,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경계 지점에 위치한 면으로 과거에 여주군 지역은 충주 혹은
광주에도 속한 바 있었는데 지금의 점동면 지역은 1895년갑오경장 당시(고종32년)에는
충주에 잠시 속하여 근동면과 점량면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1896년에는 경기도에 편입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근동면의 일부와 점량면이 통합되어 지금의 점동면이 된 것이다.
근동면은 여주읍의 점봉리, 능현리, 멱곡리를 포함하고 지금의 점동면 중에서 처리 근처까지 였으며,
점량면은 오갑산 서편 능성 아래 청미천과 그 하구인 삼합리 지역까지 포함하였던 것이다.
예전에는 한강의 수운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내왕이 빈번한 곳이다.
그러나 교통수단이 바뀌고 농업이 쇠퇴하면서 1965년 이후로 인구가 격감하고 있다.
남한강과 섬강 그리고 청미천이 합수하는 지점이고 경기도 강원도, 충청북도가 경계를
이루는 특수한 지리적 상황이 앞으로 역사, 문화, 관광지로서 큰 변모가 기대가 된다.
이곳은 점동둘레길이라는 띠지를 주렁주렁 달아놨고 길은 아주 편하다
점동둘레길 띠지
나무가지 곳곳에는 점동중학교 학생들이 쓴 시가 많이 보인다
돌탑과 벤취가 있는 곳도 지나고...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통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니...벤취 2개가 나란히 143봉이 나오고...
안말 갈림길(14:38)
점동면 청안리에 있는 안말(안마을)은부락 서쪽엔 신통산, 북쪽엔 챙골산 아래 아늑한 곳에
조선시대 경주 이씨가 정착하여 오다가 후에 경주 최씨가 또한 정착하여 두 성씨가 번성하여
터전을 잡았으며 주막의 안동네에 있다하여 안말 또는 안마을이라 하였다.
또, 주막거리에서 볼 때 신통산자락 계곡안쪽에 있는 아늑한 마을이므로 안골이라고도 불렀다고 전한다.
갈림길(14:40)
청안 고개(14:48)
고개 정상에는 삼신석재 공장이 있고 우측 언덕에는 밥푸는 집이라는 식당도 보인다
37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우측 아래는 청안리로 점동면사무소가 있는 곳인데
본래 여주군 점량면의 지역 주막거리의 안쪽이 되므로 안말 또는 청안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맑고 살기 편안한 곳이라 하여 청안리(淸安里)로 하고 점동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은 안말과 주막거리 두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점동고개를 가로질러 밥푸는 집을 바라보며 고개위로 올라선다
폐국궁장(14:50)
예전에 이곳이 국궁장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져 버렸다
밭을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지맥 능선은 갈기갈기 찢어져 공장지대로 변하고 있다
공장지대 너머로 소무산이 아련히 보인다
신37번국도(15:00)
점동면소재지를 들어가지 않고 우회하는 도로인데 최근에 개통된듯 하다
다행히 차량이 그리많지 중앙분리대를 넘어간다
도로를 건너도 지맥길은 難解하고...
공장부지를 지나 절개지로 오른다
우측으로는 커다란 골재 채취장이 보이고...
짤려나간 절개지 아래에는 두손포장이란 공장도 보인다
아슬아슬한 능선을 곡예하며 걷는다
이곳도 한창 개발중이라... 포크레인으로 소나무를 마구 뽑아놨다
좌측에 무명묘지 2기가 보이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 아래에는 대궐같은 한옥이 멋지게 보이고 슬라브 부속건물 너머로 페럼골프장이 보인다
북쪽으로는 점동면 처리(處里)가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소무산의 모습
독조지맥길에서 좌측으로 비켜나 있는데 지맥길에서 너무 멀어 오늘은 가기가 힘들것 같다
점동면 처리에 위치한 소무산(韶舞山:247m)은 옛날에 어느 유식한 선비가 산의 봉우리가
너무 아름다워 마치 옥녀봉에 신선이 하강하고 神山이 下林하는 별천지에는 소서구성(韶書口聲)하고
백학이 춤을 춘다고하여 소무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절개지 능선을 따라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지니...
길이없는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바디고개(15:25)
점동면 처리에 있는 고개인데 베를짜는 베틀의 바디처럼 생겼다고 붙혀진 이름인데
시멘트 도로가 나있긴 하지만 우측으로는 페럼골프장이 들어서는 바람에 고개의
역할을 잊어버린 곳으로 방치된 쓰레기로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고개를 가로질러 올라서니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의 임도가 나오고 잠시후 묘지가 나온다
갈림길(15:38)
묘지가 나오고 이곳에서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나 어차피 달걀봉으로 갖다
오기로 한 이상 구태여 급경사의 오름길로 올라 가면서 기운을 뺄 이유가 없다
우측의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달걀봉으로 향한다
안부 갈림길(15:45)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달걀봉으로 향한다
발목이 빠질정도의 낙엽은 수북히 쌓여있고 로프가 처져있다.
달걀봉(218m:15:50)
여주시 점동면 처리와 도리, 사곡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삼각점(장호원 22/1976.2건설)과 표지판만 있을 뿐 다른 표식은 없다
오늘 여주의 산을 걸으면서 느끼는 점은 정상석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지나온 매봉, 철갑산, 신통산, 달걀봉까지... 준.희님이 안 지나가니 산패도 없다
여주시장 나리는 관내에 골프장이 넘 많아서 골프만 치러 다니시나...웬 산에
이렇게 관심이 없어서야 되겠소...수헌 아우님은 정상석이 없는 곳에선 절대
인증샷을 남기지 않으니... 정상석 좀 제발 세워주소
산 정상에 달걀 모양의 바위가 서 있어서 달걀봉이라 부른다는데 바위는
찾지 못했고 조금 트인 곳으로 남한강과 오갑지맥 능선이 보인다
달걀봉 삼각점(장호원 22/1976.2건설)
독조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중군이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다시 안부로 되돌아와서 물한모금 마시고 길을 떠나는데 날씨는 점점 추워지기 시작한다
다시 안부(16:05)
달걀봉 갈림봉(216m:16:08)
다시 독조지맥 마루금으로 복귀하여 지맥길을 이어간다
소무산 갈림길(16:12)
등로는 완전히 고속도로 수준이다
등로 아래에 있는 송전탑도 패스하고...
벙커봉(16:19)
체육시설(16:20)
벙커봉을 지나자마자 운동기구가 있는 곳이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좋은 길을 버리고 내려오니 묘지가 있는데 갑자기 길이 없어진다
잡목을 피해 이저저리 헤매면서 등로를 이어간다
또다시 묘지를 만나서 내려서니...길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잡목의 저항이 엄청 심하다
안부(16:30)
지맥길을 안부 너머 직진으로 이어지나 잡목의 저항으로 도저히 갈 수가 없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결국 안부에서 우회하여 맥길을 바라보며 걷는다
편안길 마을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승안고개(16:45)
고개 우측에는 승안교회가 있고 도로 옆에는 여흥민씨 묘지가
보이며 도리에서 점동으로 이어지는 335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이다
맥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곳이나 맥길의 잡목의이 너무 심해 불가피하다
원래 지맥길은 비닐하우스 소나무가 보이는 곳이나 우측 묘지로 치고 오른다
여흥민공의 묘지
승안마을의 모습
점동면 장안리 승안마을은 약 200여 년 전에 스님이 살면서 부락을 개척하였다 하여 승려의
이름을 따서, 승안리라 하였다 하며 여주에서 도리와 삼합리로 연결되는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전원주택을 가로질러...
절개지로 오른 다음에...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분묘 연고자 찿는 팻말도 만나고...
우측으로는 엄청나게 큰 축사도 보인다
산불이 난 지역은 아카시아만 무성하다
174봉(17:05)
군부대 벙커와 교통호가 있는 174봉을 지나 우측으로 내려선다
복하(독조)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중군이봉이 손에 잡힐 듯...
조금전에 지나온 축사들 다시한번 바라보고...
도리마을회관 갈림길(17:12)
건장이 마을 방향으로 향한다
점동면 도리는 본래 여주군 점량면 지역으로 조선시대 여주읍 신진역에서 우만이를
지나 흔바위(흔암리)에서 한강을 끼고 올라오다가 이곳에 이르러 돌아서 안평을 거쳐
충청도 앙성면으로 가는 큰길이 있으므로 도래, 되래 또는 도리, 도호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사장고을 병합하여 도리라해서 점동면에 편입시켰다.
점동면 장안리의 지금 승안리 마을 서편에 도호동(桃湖洞) 마을이 있었는데 남한강에
수운(水運)이 발달하면서 강변쪽의 생활이 편리하고 토양이 비옥하여 도호동 사람들이
이주하여 살며 큰 마을(큰말)을 이루게 되어다는 뜻에서 도래(桃來)가 되고 이것이 되래로
발음된 것이며 여기서 행정리 명으로 도리라 한 것이다.
또한 옛날부터 여러 차례의 난리가 있을 때마다 마을은 안전하여 환란을 모면하였다는
뜻에서 되래라 불렀다 하며,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되래에 침략했다가 소무산 아홉 살이
둘째 고개에서 말이 떨어져 공격을 못했다고 해서 도리라 하였다 한다
안부 이정표
마지막 중군이봉으로 향하는 길에 미끄러운 등로 탓인지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데 팻말에 여강길이란 표시가 되어 있다
여강(驪江)이란 경기도 여주군을 관통하는 남한강을 일컫는 말로 남한강이 강원도 원주에서
흘러나오는 섬강(蟾江), 용인에서 발원한 청미천(淸渼川)과 만나는 지역이 바로 여주의 점동면
삼합리(三合里, 도리)이기 때문에 군에서는 여주를 지나는 남한강을 여강(驪江)이라고 부른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부의 북쪽에 있는데, 나룻배가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곧 한강 상류이며 주 북쪽에 있다."고 하여 여주를 지나는 한강을
여강으로 불렀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대동지지』에도 "곧 한강 상류인데 주치(州治)를 감싸 안고
돌아 서북쪽으로 흐르고 강 가운데 양도(羊島)가 있고 동쪽 연안으로 보은사(報恩寺:신륵사의 다른 이름)가
있다."고 하여 여주 치소를 형성하는 물길이 됨을 기록하고 있다.
여주에서 풍수상 여강의 의미는 한양으로 보자면 명당수인 청계천(內水)에 대해 객수(客水, 外水)인
한강과도 같은 것이며 『해동지도』와 『여지도』 등에서는 여강(呂江)으로 표기되어 있다
중군이봉(223m:17:20)
여주시 점동면 장안리와 도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독조지맥의 마지막 봉우리다
중군이봉의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고 정상에는 중군이봉 표지판 대신에 마을 이정표와
인식할 수 없는 삼각점과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주렁주렁 바람에 날린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건장이 마을로 가는 길인데 이곳은 좌.우 양쪽으로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걸려 있는데 좌측은 세물머리 쪽이고 우측은 건장이
마을 방향이지만 독조지맥 합수점은 세물머리족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맥 산꾼들은 건장이 마을쪽으로 갔다
중군이봉 정상 삼각점
중군이봉에서 우측으로 가면 가파른 절벽 위쪽의 신선바위를 만나게 된다.
신선바위는 먼 옛날부터 신선들이 내려와 노닐던 곳이라는 전설을 가진
바위인데 신선들이 강변의 아름다운 바위에서 노니는 모습을 보다 못한 마녀가
밤에 몰래 내려와 오줌을 싸고 달아난 후로 신선들이 내려오지 않는다고 한다.
공룡의 발자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거대한 두 개의 구멍이 바위 위에 나
있는데 그것이 마녀의 발자국이라고 주민들은 설명하고 있다.
마녀의 오줌이 흘러내린 구멍에는 언제나 물이 마르지 않고 샘솟는다고 했다
중군이봉 정상에서 오늘 처음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좌측의 세물머리로 내려간다
일몰
서서히 해는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바로 아래에는 도리마을 보인다
도리는 예로부터 충주이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거쳐가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충주를 거쳐 가장 빨리, 힘들이지 않고 여주에 다다를 수 있는 길목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중군이봉 등성이의 고갯길에서부터 강변길을 거쳐 마을 서쪽의 사장골까지와
사장골에서 흔암리로 넘어가는 아홉 구비 고갯길인 '아홉사리'를 마을 주민들은
'과거길'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홉사리 고개에서 매년 9월 9일 아홉 번째 고개에 피는 구절초를 꺾어
약을 달이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한 아홉사리 고개를 넘다 넘어지면 아홉 번을 굴러야만 살아서 넘을 수 있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아홉사리 고개를 넘어 흔암리로 가는 길은 옛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거나 한양에서 돌아오던 주막자리로 인해 더욱 정취가 느껴지는 곳이다.
벙커봉(17:25)
아무도 걷지 않았던 편안길을 내려서니 합수점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무명묘지 2기를 지나...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과 청미천이 만나는 합수점
용실봉에서 분기한 독조지맥이 남한강과 청미천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입수를 준비하면서 범여의 복하(독조)지맥 산행도 마무리를 한다
마지막 군 벙커에서 내려서니 세물정이라는 주택이 하나있고 솟대들이 즐비하다
세물정을 지키는 개쉬끼... 얼마나 사나운지...
세물정이란 주택을 지나 솟대들이 가득한 제방길로 나선다
세물정에는 솟대와 시를 쓴 표지판도 많다
청미천 합수점(17:40)
일몰과 함께 복하(독조)지맥은 세물머리라 부르는 청미천 합수점에 入水하면서
독조지맥을 마무리하면서 스틱을 접는데 날씨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춥다
사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나름대로 엄청나게 고민을 많이 했다.
초반에 타이어 펑크로 인해 30분이 지체되었는데 다행히도 연대산으로
우회하지 않고 골프장으로 통하는 바람에 1시간을 단축했고, 연대 삼거리에서
합류한 수헌아우님과 조우... 1분의 오차도 없이 만나 같이 산행한 점
장안리의 지독한 잡목지대를 우회하며 20여분 시간 단축으로 일몰전에
합수점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 한 부분에 너무나 기분이 좋다.
수헌아우님과 오랫만에 만난 칠갑산 아우님과의 인증샷
청미천 합수점을 배경으로 인증샷
옷이 젖은 탓인지 잠깐 사이에 엄청난 추위가 몰려온다
서둘러 점동면 택시를 불러놓고 제방길을 따라 도리마을회관으로 간다
청미천(淸美川)은 경기도 용인시·이천시·여주군과 충청북도 음성군을 흐르는
하천으로, 용인시 원삼면 사암리 문수봉(文殊峰, 404m)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흐르며, 경기도 장호원읍과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의 경계를 이루면서
유로를 북동쪽으로 바꾸어 여주군 점동면의 중심부를 지나 도리 일대에서 남한강에 흘러든다.
『세종실록』에 "거가(車駕)가 죽산현 천민천(天民川) 가에 머물렀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그 발원지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죽산현 편에 "천민천(天民川)은 현 동쪽 10리에 있는데
건지산(巾之山)과 정배산(鼎陪山)에서 발원하여 여주의 여강(驪江)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세물머리에 있는 詩
뒤돌아 본 청미천 합수점
뾰족하게 솟은 섬강 서(성지)지맥과 섬강(백운)지맥의 끝자락이 보이고 우측으로 오갑지맥 합수점도 보인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뚝방길 좌측으로는 도리마을 보인다
도리마을은 여주 출신인 명성황후와 같은 여흥 민씨의 집성촌으로 여주군 가남면
안금리 일대에 살던 조상들이 강변으로 이주해와 정착한 마을이 도리라고 한다.
강변에서는 강 건너 강천리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돛단배의 모양을 한 마을에는 여전히 들고 나는 길이 하나다
택시를 타고 점동면 소재지로 향한다
점동 버스정류장(06:20)
점동면에 도착하여 베낭을 정리하고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여주로 나가려고 했는데
이곳은 여주와 장호원의 정중간으로 어디로 가던지 30리길인데 교통은 장호원이 훨씬 좋다
5분정도 기다린 다음에 여주에서 안성으로 가는 37번 버스를 타고 장호원에 도착한다
장호원 임시 터미널(18:50)
하여간 경기도 버스의 불친절과 난폭 운전은 알아줘야 한다
번잡한 도로에서도 왜그리 빨리 달리는지... 거기다가 불친절까지
장호원 터미널로 와서 버스시간을 확인한 다음에 인근 국밥집에
들려서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뜨끈한 국밥에다 소주한잔
하면서 복하(독조)지맥을 자축하고 다시 장호원 터미널로 향한다
다시 장호원 터미널(20:00)
이곳에서 20시 10분 버스를 타고 동서울 터미널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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