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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화성(태행)지맥(終)

화성(태행)지맥 제1구간 - 지맥 분기봉에서 염치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6. 1. 17.

☞산행일자:  2016년 1월 16일

☞산행날씨:  진눈깨비... 오후에 흐림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7.5km  + 어프로치 2.2km / 6시간 50분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왕림 휴게소-43번 지하차도-서거정묘소-분기봉(왕복)-노유령-화인폴리머-삼봉산 수선집

                철조망-220m봉-225.2m봉(삼봉산:?)-헬기장-삼봉산(지내산:?)-덕고개 갈림길-갈림길-백학고개

               발안 서(오두)지맥분기봉(헬기장)-산불지역-태행산-갈림길-너덜지대-임도-깃대봉-넓은 공터-폐초소봉

               군부대2차선 도로-172m봉-167.7m봉-타이어갈림길-NO143송전탑-NO27송전탑-39번국도 지하차도

               늘푸른산업-비봉폐차산업-서해안고속도로 지하차도-삼표골재-145m봉-무명봉-경동택배

               무명봉-무명봉-공장지대-121.6m봉-염치고개

소 재 재: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비봉면, 남양읍

 

이번주는 참으로 소득도 없이 정신없이 바빴는데 인테리어 서너군데 견적서 제출하고

자료를 준비하던중 갑자기 현장이 두세군데가 겹친다 그 중에 한군데가 시간적 여유도

주질않고 일욜부터 4일안에 작업을 완료해 달라고 하는데 조금은 난감하다

 

이번 토욜 저녁에 신백두대간을 가려고 산악회에다 예약까지 해놨는데...

그러나 고객에 못한다고 할 수 없는 노릇...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대장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양해를 구한 다음에 인부들 수배하고 작업을

준비해 논 다음에 서울에서 가까운 화성(태행)지맥을 좀 짧게 잡아 산행준비를

한 다음에 토욜 아침에 일어나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고 양송이 스프 끓이고

보온병에 커피를 타서 마실 따끈한 물을 넣고 집을 나서 사당역에서 조암가는

8155번 버스를 타고  장인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다음에 34번을 갈아타고

왕림 휴게소에 도착하니 09시 10분정도... 버스에서 내리니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참으로 난감하다... 눈이 올때는 독립군(나홀로 산행) 활동이 조금은 부담스럽기에...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태행지맥(太行枝脈)개념도

태행지맥(太行枝脈)은 한남정맥 감투봉(185m)에서 아산만으로 가는 棲鳳枝脈의
화성시 봉담읍 장안대뒤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 화성시 송산면 와룡산(臥龍山.107.8m)에서
선감도를 바라보며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1.4m되는 산줄기인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화성지맥이라 부른다

지나는 곳은 삼봉산(271m),태행산(268m),염티고개.성고개,다락고개,굴고개,구봉산(159m. →0.2km),
매봉산(109m. →2.7km),아지미고개,천등산(146m. →3.1km),이봉산(106m),승학산(110m),와룡산(107.8m).

 

필요한지도 : 1/25000. 발안. 남양,사강,궁평.
영진 1/5만. P 166.165.. 164. 141. 140.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장안대학 버스정류장(08:50)

사당역에서  조암까지 가는 8155버스는 이곳까지 오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버스기사에게 왕림 휴게소에 좀 내려달라고 하니 일언지하에 거절 당하고 그 전에

장안대학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34번 버스가 도착하여 왕림휴게소에 도착한다

왕림휴게소(09:10)

화성시 봉담읍에 있는 왕림휴게소는 휴게소의 역할은 잊어 버렸고 주위에는 아웃도어 할인점이

즐비하고 34버스 종점이기도 하며 수원과 평택으로  이어지는 43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고

도로 건너편에는 조선조에 문장가인 서거정의 묘지가 있다

 

봉담읍은 1831년에 편찬된 『화성지』에 따르면 현재의 봉담면은 삼봉면과 갈담면

관할지역으로 기록되어 있고 갈담면은 이전의 정송면이 폐지되고 그 일부가 갈담면으로 되었다.

또 모지면은 삼봉면에 합쳐졌다고『화성지』에 기록되어 있다. 갓등면의 통폐합에 대해

아무런 기록이 없지만, 이 역시 갈담면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에 제작된 『1872년지방지도』를 보면, 현재의 봉담읍 왕림리 일대(삼천병마골로 표기)가

삼봉면과 갈담면의 경계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삼봉면과 갈담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봉담면으로 통합되었다.

1998년에 봉담읍으로 승격하였다. 봉담이라는 면 이름 중에 '봉'은 옛 면 이름

삼봉면에서 따온 것이고 이때 삼봉은 이곳의 산 이름 삼봉산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담' 글자를 따온 '갈담'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하려 하는데 갑자기 꽤나 굵은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산행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유로운 맘으로 산행을 시작한다(09:20)

왕림 휴게소에서 43국도 토끼굴을 지나서 화성(태행)지맥 분기봉으로 향한다

43국도 토끼굴 표지판

아웃도어 매장 가운데로 지나간다

아웃도어 매장을 지나니 y자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는 서거정을 모시는 재실이 보인다

재실 옆으로 올라서니 서거정의 묘소가 나오는데 맨 아랫쪽에 첩의 묘소이다

서거정(徐居正:1420년~1488: 호는 사가정(四佳亭) 묘(09:23)

조선 초기의 문인으로 45년간 세종.문종.단종.세조.예조, 성종등 6명의 왕을 모시며 한명회와 같이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인데 호는 사가정(四佳亭)이고 아버지는 목사 미성(彌性)이며 어머니는 권근의 딸이다.
1444년(세종 26) 문과에 급제하여 사재감 직장(直長)을 지내고 이조 참의, 사헌부 대사헌(1478년), 의정부
좌찬성 등을 역임하였고 1451년(문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집현전 박사(集賢殿博士)·부수찬(副修撰)·
응교(應敎)를 역임하였다.
 
1456년(세조 2) 문과중시에 급제, 이듬해 문신정시에 장원했다.
후에 공조참의(工曹參議)가 되어 1460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서 그 곳 학자들과 문장과 시(詩)를 논하여 해동(海東)의 기재(奇才)라는 찬탄을 받았다.
귀국 후 대사헌이 되고 1464년 조선 최초로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 :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겸함)이
되었으며 1466년 발영시에 또 장원, 이후 6조(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470년(성종 1) 좌찬성(左贊成)에
올라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으로 달성군(達城郡)에 봉해졌다.
여섯 왕을 섬겨 45년간 조정에 봉사하였고, 시문을 비롯한 문장과 글씨에도 능했으며
시화(詩話)의 백미인 《동인시화(東人詩話)》와 《동문선(同文選)》 등을 남겨 신라 이래
조선 초에 이르는 시문을 선집, 한문학을 대성했다.
 
덕행이 있어 세조 때 《경국대전》, 《동국통감》, 성종 때 《동국여지승람》 등 책의 편찬에
관여하였으며, 또한 왕명으로 《향약집성방》을 한글로 번역했다.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지리·의약 등에 이르기까지 정통했다.
사후 문충(文忠)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경상도 대구의 구암서원에 배향되었다.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사가정역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묘비는
조선숭정대부 좌찬성 달성군 시문충사가 서공거정묘(朝鮮崇政大夫 達城郡 諡文忠四佳徐公居正墓)
정경부인 선산김씨부貞敬夫人善山金氏附)라 써있고 아래로는 그 후손들의  묘들이 있다.
시문충(諡文忠)의 ‘시(諡)’라는 뜻은 임금이 생전의 공덕을 칭송하여 내려준 시호(諡號)이다

서거정 선생은 대구 출신으로 원래 묘지는 서울 방이동에 있었으나 서울 도시개발 계획으로

1975년도 이곳으로 이장을 했다고 한다

서거정 묘소를 지나서 화성(태행)분기점으로 향하는데 앙증맞은 묘비가 있는 곳을 지난다

화성(태행)지맥 분기봉(09:35)

안성 북(서봉)지맥에서 분기한 이곳에서 화성(태행)지맥이 분기가 된다

 

2015년 3월 29일 서봉지맥 첫구간을 할 당시 이곳을 지날때는 저 표지판이

없었는데 아마도 준.희 선생께서 최근에 화성(태행)지맥을 시작한 모양이다

화성(태행)지맥 분기봉을 찍고 다시 왕림 휴게소로 내려서는데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계속 내리는 눈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아이젠을 착용하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간다

분기봉에는 반가운 현오님의 시그널이 반기고...

등로에서 바라본 삼천병마(三千兵馬)골의 모습

봉담읍 왕림리 낮은 고개를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 뻗어있는 현재의 장안대학 뒷산과

서쪽으로 연결되는 삼보광업소 산까지 합쳐서 예부터 삼천병마골이라 불러오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오산의 독산성에 권율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다는 첩보를

듣고 공격하였으나 권율장군의 기지로 대패하고 도주하여 이곳 고개를 넘어가게

되었는데 권율장군은 왜군이 이곳을 통하여 도주하리라 미리 알고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공격하니 왜군의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였다고 한다

이때 죽은 왜군의 숫자가 무려 삼천명에 이르러 전후에 마을 주민들이 이 고개를

삼천병마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1794년(정조 18년)에 간행된 ‘수원부읍지’의 산천편에서 노유령(老留嶺)이

보이는데  위치나  정황으로 보아 지금의 삼천병마골의 옛 이름으로 보인다

조금전에 지나왔던 여흥민씨 가족묘를 다시 지나니...

서거정 묘역도 또 만나고... 

서거정 묘역을 지나니 재실의 문이 열려있어 재실로 향한다

염수재(念修齋)

염수재를 둘러본 다음에 왕림휴게소 향한다

서거정 사당인 염수재(念修齋).
솟을 대문에 걸린 展省門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왕림 휴게소에서 북쪽 고개로 향한다

왕림 휴게소(09:55)

왕림휴게소에 있는 삼천병마골 안내판

노유령(老留嶺:10:00)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포장도로로 올라선다

고개 좌측에는 화인폴리머 회사가 보이고...

고개로 올라서니 우측에는 고물상이 있다

계속내리는 눈으로 인해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공터 컨테이너하우스에는 삼봉산 맞춤 옷가게가 있다

누구것일까... 산동네님 아님 이 대장... 궁금하다 

공터(10:05)

직진을 하면 건달산으로 향하는 길인데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철조망을 따라 오르는데...

초반부터 잡목의 저항이 무척 심하다

앙증맞은 돌 하나를 지나...

무명봉(10:15)

무명봉 정상은 대부분의 산꾼들이 옆사면으로 나있는 등로를 따라 가는지

정상에는 잡목으로 인해 오르기가 상당히 힘드는데 백두사랑 산악회와 

다올님의 시그널이 눈을 맞으면 오르는 범여를 반긴다... 정통 산꾼답다 

무명봉 정상에서 만난 다올님의 시그널

무명봉 정상의 모습

무명봉에서 등로로 복귀하는데 길이 없어서 애를 먹는다

울타리 갈림길

고갯마루에서 여기까지 철조망 울타리 따라왔다

이곳에서 우측으로는 상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철조망을 끼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철조망 등로에서 바라본 220m봉의 모습

계속해서 철조망을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눈발이 조금씩 가늘어지기 시작한다

철조망 안쪽에는 아카시아 나무들만 울창한데 철조망으로 막은 이유를 모르겠다

등로 우측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인다

지적도근점도 만나고...

220m봉(10:30)

220m봉 정상에는 앙증맞은 돌탑하나와 벤취 2개가 있는 곳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내리막길에는 눈이 꽤나 쌓여있고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0:35)

안부를 지나서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니...

225.3m봉(10:43)

이곳에는 커다란 암릉과 2층으로 된 팔각정자와 각종 체육시설이 즐비하고

삼봉산 안내판과, 이정표가 있는데 화성시는 이곳을 삼봉산이라 하는데

실제 삼봉산은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데 삼봉중에 제1봉이란다

225.3m봉 정상의 모습

화성시가 225.3m봉 정상에 설치한 삼봉산 안내판

팔각정 뒷쪽으로 내려서니 로프 내림길이 나온다

뒤돌아 본 225.3m봉 정상의 모습

갈림길 (10:47)

로프길을 내려오니 이정표(←삼봉산 제1봉, ↑내리(지내산),→상리 1.5km)가

있는 곳에서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눈 때문에 상당히 미끄럽운 경사를 내려와 평지길을 걷는다

준.희 선생님도 최근에 지나신 모양이다

내리막길 좌측에는 밀양박공 부부 묘지가 보인다

안부(11:02)

우측으로는 봉담읍 내리 장안마을로 이어지는 곳은 등로가 거의 보이질 않고

좌측으로는 봉담읍 상기리 장안이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지형도상에는

엄청나게 넓은 도로로 표기되었지만 실제로는 아주 좁은 등로이다

다시 오르막은 계속되고...

갈림길(11:15)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아직도 여전한 발걸음이시죠?

우측으로 내려서는 등로가 보이는 싯점에서 다시 또 오름길이다

헬기장(11:30)

좌측으로는 발안 서(오두)지맥 분기점이 보이고...

안부(11:33)

등로에서 바라본 상기리 호련이 마을

백학과 홀연이, 갓등이는 박해 시대에 피난해 온 교우들로 이루어진 교우촌으로

교우촌 형성에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이며 주위에 질그릇을 만들 수 있는 흙이 있어

옹기 가마를 만들어 그들의 생계를 꾸리는 데 더 없는 조건을 갖춘 천혜의 요지다.

태행산과 삼봉산의 깊은 산줄기에 서향으로 쌍학이 있고 동향으로 홀연이며,

앞산 사명산이 앞을 가로 막아 홀연이 계곡 마을은 천혜의 은거처로 안성맞춤이다.

 

태행산과 삼봉산 사이인 가파른 홀연이 고개를 넘어서 완만하고 긴 산골길을 700m 정도

가면 농장 가옥 한 채가 오른쪽 산골 속에 있는데, 이 계곡 이름이‘멍우리’라 하고, 이곳에 점터가 있었다 한다.

그리고 더 아래로 내려오면 왼쪽으로 ‘윗말’이라는 동네가 있고 그 아래 동네가 ‘홀연’이다. (펌글)

삼봉산 오름길에 만난 이 대장의 시그널... 산에 열정하나는 대단한 친구다

미끄러운 등로에 올라서니 삼봉산 정상이다

사르리님의 시그널...독립군(나홀로 산행)으로 활동하면서 안본지 오래됐다

삼봉산(三峰山:268.2m:11:45)

화성시 봉담읍 상기리와 내리, 비봉면 쌍학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영진 1/50,000의

지도에는 산봉산, 화성시에는 지내산, 국토지리원의 자료에는 삼봉산으로 기록되어 있고

높이도 자료마다 달라서 상당히 혼란스런 산이지만 국토지리원의 자료에 따르기로 한다

 

삼봉산의 유래는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붙혀진 이름으로 이 지역사람들은

삼뱅이라 부르며 바깥삼뱅이, 안삼뱅이 등 주위의 지명들이 삼봉산을 중심으로 명명됐다.

화성상리유물산포지(華城上里遺物散布地)는 삼봉산 북사면 완경사지에서

삼봉산으로 이루어진 등산로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데, 약간의 삼국시대의 경질 타날문토기편과

조선시대 자기편이 채집되었고, 입지와 채집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분묘유적이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화성시에는 이곳을 지내산(260m)이라고 표기해놨는데 상당히 했갈린다

아직도 눈이 내리고 내 베낭이 인증샷을 대신한다 

지내산의 지명 유래는 임진왜란때 민관군이 이 산에서 왜병과 접전을 벌였는데

그러다 불리한 상황에 처했는데 그때 홀연 짙은 안개가 피어나 조선군을 돕고 왜군을 물리첬다 한다.
그런데 안개가 피어나는 모습이 마치 지네가 독을 품는 모습같다 해서 지네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눈은 계속 내리고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우측 산이 서울대 소유인 모양인데 광양의 백운산과 지리산

반야봉 일대도 서울대 소유이니 참으로 부자 대학이다

이곳은 눈이 꽤 많이 쌓여있다

갈림길(11:55)

직진의 뚜렸한 등로가 나오는데 비봉면 쌍학리와 봉담읍 내리로 향하는 길이고

태행지맥은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등로는 눈 때문인지 아예 보이지도 않으니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지만 희미한 등로로 조금 진행하면 선답자의 흔적이 보인다

안부(12:00)

삼봉산에서 급하게 내려서니 좌측으로는 봉담읍 상기리로 통하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삼봉산 갈림길(12:05)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덕고개 갈림길로 나오는데 이곳에서 덕고개까지는 꽤나 먼거리이다.

덕고개는 비봉면 쌍학리 개묵동에서 봉담읍 내리 덕고개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란다

봉담읍 내리는 예전에 내시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 붙혀진 지명이란다

화성시에 설치한 이정표에는 삼봉산 갈림길이라 했는데 이게 맞는듯 싶다

갈림길(12:08)

이정표(↑등산로 입구 4.75km ↓상기리1.4km →태행산 1.65km)가 있는데 우측 태행산으로 향한다

태행산 향하는 등로는 마구 넘어진 잡목으로 인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백학고개 (12:10)

우측으로는 비봉면 쌍학리로 향하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봉담읍 호연동으로 향하는 길이다

2분전에 지나온 이정표에는 태행산이 1.65km로 되어 있는데 이곳은 630m라고 되어 있는데

이곳에 630m 거리에 있는 곳을 화성시에서 태행산이라고 부르는 266봉(오두지맥 분기봉)을 말함이다 

백학고개를 가로질러 태행산으로 향한다

오름길에는 나무들이 많이 넘어져 있다

눈쌓인 나무 계단을 오른다.

헬기장이 나오고 이정표(←백학고개 630m ↑등산로 없음 ↓자안리 2km)가 있고 사격장 표시를 알리는 깃대가 있다.

 

산행기에는 삼각점이 있다고 하는데 눈속에 찾을길이 없다

등산로 없음이라는 곳이 오두지맥길이다... 화성시에서는 이곳을 태행산이라 표기해놨다

그러나 태행산은 이곳이 아니고 한참을 더 가야 있다... 참으로 개념이 없다... 지리공부 좀 하셔

발안 서(오두)지맥 분기봉(266m:12:23)

한남오두지맥 (漢南烏頭枝脈)은 ?

한남오두지맥 (漢南烏頭枝脈)은 한남정맥의  수리산부근 감투봉에서 분기한 서봉지맥이
화성시 봉담읍 장안대뒤에서 서쪽으로  한 가지를 쳐 태행지맥을 분기하고,
태행지맥은 다시 태행산(268m)에서 남서쪽으로  또 한 기지를 쳐 화성시 매향리
서해바다에 이르는 도상거리 31.9km되는 산줄기를 오두지맥이라 한다.

신산경표는 한북정맥의 끝을 산경표와는 다르게  한강봉-개명산-월롱산-오두산으로  적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한북정맥의 긑을 장명산으로 적고, 오두산쪽을 오두지맥으로 적고 있어
이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한남오두지맥이라 적었는데 대한산경표에서는 발안천 좌측의

산줄기라 하여 발안서 지맥이라고 부른다


한남정맥-안성 북(서봉)지맥-화성(태행)지맥-발안 서(오두)지맥으로 이어지는  3차 지맥이 되겠다.

대부분이 공장지대와 도로 비산비야 지대로 독도에 어려움이 많고 산행의 묘미는 떨어지나 맥은 살이있다.

 

발안 서(오두)지맥 烏頭枝脈)개념도(박종율 선생 자료 인용)

오두지맥 분기봉을 지나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 다음에 태행산으로 향한다

지나온 삼봉산의 모습

가야할 태행산의 모습
등로 주위에는 산불이 난 흔적들이 보인다

태행산 정상 아래에서 바라본 건달산의 모습

태행산 정상에서 바라본 비봉면 청요리의 모습

태행산(太行山:295m:12:35)

화성시 비봉면 쌍학리, 자안리, 청요리의 경계있는 비봉면의 진산으로서 정상에는

데크목 광장에 휴게용 의자가 있고 주위에는 산불이 난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태행산의 지명 유래는 조선 500년 내력의 풍수비기를 다룬 손감비결에 의하면

화성시 비봉면에 있는 태행산에는 이성계에 얽힌 전설이 있다.
이성계가 자기의 태를 묻기 위해 명산을 찾던 중 이산의 양지 바른곳에 태를 묻었다.
그후 이성계 태를 묻은 산이란 뜻에서 태행산이라 이름을 지였다.

 

태행산 기슭에는 재양현성(縣城)이 있는데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태행산(:292m)기슭에

있는 포곡식(; 성 내부에 계곡을 포용하고 있는 형태) 석축으로 태행산 남쪽 기슭의 해발 100∼110m

정도 높이의 경사면을 깎아내 정상부의 사용 면적을 넓히고 이를 최고점으로 하여 계곡을 둘러싸며 성벽을 쌓았다.

성벽 안쪽 계곡 부위에도 계단식으로 다시 경사면을 깎아 건물터를 두었다.
성내에는 가장자리를 돌로 쌓은 우물이 1곳 있으며, 건물지가 2동, 문터로 추정되는 곳이 1곳 있으며

문터 옆에는 주춧돌로 보이는 큰돌이 놓여 있다. 성 정상부의 면적은 300평 정도에 이르며,

원래의 성벽 길이는 300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봉면 청요리()에 있는 성곽으로 고려시대 속현인 재양현()의 소재지를 둘러싸고 있던 성으로 추정된다

데크목 광장에는 해맞이 행사 플랑카드가 아직도 걸려있고 화성 비봉로타리클럽도 걸려 있다

태행산 안내판이 있는 데크목 광장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양송이 스프로 허기를 달래며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서는데 이제 눈은 그쳤지만 약간의 바람 때문에 춥다

태행산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데크목 광장을 내려와 직진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일반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 가는 등로가 뚜렸히 보인다

태행산에서 직진으로 조금 진행하니 민간인 출입금지 표지판이 나온다

군부대에서 설치한 듯 한데 그런다고 맥산꾼이 안다니는거 봤어...

아무도 밟지 않은 저 눈길... 나혼자 걷는다... 짜릿한 이 기분... 독립군 아니면 모르제

갈림길(13:05)

이곳에서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뚜렸한 직진의 내리막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져야 하는데

이곳은 등로도 전혀 보이질 않고 선답자들의 띠지도 전혀 보이질 않는다

전혀 보이질 않는 길을 내려오는데 어디가 어딘지 감은 오질않고 눈덮인 너덜길이 나온다

이곳도 예전에 산불이 났는지 잡목만 무성한데 아카시아 나무들이 많이 얼굴이 할키며 내려선다

잡목지대를 빠져 나오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준.희님의 띠지가 등로임을 알려준다

우측으로는 군부대 사격장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군부대가 보인다

군부대 안부(13:15)

다시 등로는 보이질 않고 잡목의 저항이 엄청 심하다

잡목의 저항을 뚫고 조금을 더 지나니 넓은 등로가 나오고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인다

넓은 공터(13:25)

넓은 공터를 지나 낙엽이 수북한 등로를 오랫만에 편하게 걷는다

군 초소봉(13:30)

망가진 군부대 초소와 망루가 보이고 바로 아래는 이동통신탑이 있다.

폐초소 아래에 있는 이동통신탑

넓은 임도를 따라서 편하게 내려간다

군부대 도로(13:36)

도로에 내려서 좌측으로 보니 군부대 바리게이트가 보이고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르는데 조그만 승용차 한대가 군부대로 향하다가 차를 세워놓고 한참을 쳐다본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군부대 북쪽의 모습

이곳 역시 등로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한참을 오르니 우측에 172m봉이 있는데 172m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서서 좌측으로 향한다

172m봉(13:50)

약간의 너덜길을 지나니 앙증맞은 돌탑하나가 있고 다시 길은 보이질 않는다

TV 안테나도 보이고...

무명봉에 올라서니 넘어진 군부대 깃대가 넘어져 있고, 노간주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넘어진 깃대

다시 뚜렸한 등로를 만난다

T자 갈림길(14:00)

희미한 T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T자 갈림길을 지나 오르막을 지나니 시커먼 물체가 보이는데 갑자기 커다란 소리를

내더니만 숲속으로 도망을 가는게 아닌가... 멧돼지다... 머리가 쭈빗하게 서는데... 어~~~휴

167.7m봉(14:07)

봉우리 정상의 커다란 나무에는 그네가 있고 훌라후프 하나가 놓여 있다

167.7m봉에서 내려서니 군부대 시설물같은 타이어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계속되는 타이어... 등로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다시 등로는 험하고 넘어진 잡목과 자리공들이 갈길 바쁜  산꾼 범여를 괴롭힌다

NO143 송전탑(14:25)

또다시 등로는 험해지고...

NO27 송전탑(14:27)

송전탑을 연이어 2개를 지나면서 내리막길을 내려서는데 등로는 참으로 험하다

등로 너머로는 39번 국도와 서해안 고속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서해안 고속도로와 39번 국도

조금을 내려서니 묘지로 이어지는 편한 임도가 나오고 농장 좌측으로 내려선다

39번 국도 지하차도(14:35)

지하차도 안내판

지하차도 끝에는 이렇게 막아놨다... 그런다고 안가나

39번 국도 지하차도를 빠져 나오니 2차선 도로가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늘푸른산업(주) 폐기물 처리장을 지나...

곧바로 (주) 비봉폐차산업을 끼고 우측으로 들어선다

서해안고속도로 지하차도(14:40)

서해안고속도로 지하차도를 지나니 또다른 콘크리트 구조물이 나오는데 삼표산업 들어가는 길이다

철대문이 굳게 잠겨 있으나 아랫쪽은 좀 여유가 있어서 허리를 꾸부려 개구멍을 통과한다

개구멍을 통과하니 넓디 넓은 채석장이 나오는데 지맥길은 깡그리 없어져 버렸다

삼표산업으로 인해 망가져 버린 화성(태행)지맥길

채석장 도로 가운데로 지나간다

봉우리 절반이 날아 가버린 145m봉(가운데봉)을 향해서 걷는다

도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삼표산업 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올라선다

뒤돌아 본 삼표산업 채석장의 모습

145m봉으로 올라서는데 이 봉우리도 곧 없어질듯 싶다

진한 아쉬움으로 끊어진 지맥길을 다시한번 뒤돌아 보고...

좌측으로는 북양공단이 자리를 잡고 있다( 화성시 남양읍 소재)

145m봉(15:00)

북양동(남양읍 소재) 삼거리에서 비봉면 양노리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로 내려선다

2차선 도로(15:05)

도로로 내려서니 바로 앞에는 경동택배가 있다

이곳은 남양읍과 비봉면의 경계인데 비봉면의 표지판이 있는 우측으로 간 다음에 좌측으로 오른다

조금전에 내가 내려온 145m봉의 모습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예전에 채석장이었던 곳에는 공장들이 하나, 둘씩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태행지맥 이 구간도 조만간 사라질듯 싶다

능선에 올라 바라본 북양공단(화성시 남양읍 소재)과 무봉산의 모습

절반쯤 날아가버린 무명봉으로 향한다

무명봉(15:15)

무명봉을 내려오니 끊어진 지맥길에서 공장들이 들어서고 121m봉을 바라보며 걷는다

끊어진 절개지로 내려오는 무명봉에는 남양홍씨와 경주이씨 부부묘가 보이고...

공장지대를 지나 다시 절반쯤 날아가버린 무명봉 봉우리로 올라선다

무명봉(15:30)

무명봉 절개지를 곡예하면서 걷는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화성(태행)지맥길

지맥길 능선에는 공장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공장 마당을 가로질러 도로로 내려선다

엄마네 식당, 매점은 문이 굳게 닫혀있고...

엄마네 식당, 매점을 지나 골목 좌측으로 꺽어진다

바로 앞에 있는 한국아이엠 뒷쪽이 121m봉인데 오를 방법이 없다...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으로 들어가니 (주)델코코 공장이 나오고 토요일인데도 문은 굳게 잠겨있다

산꾼 범여가 넘을만큼 낮은 철제 울타리라서 주위를 살펴봐도 사람들은 전혀

보이질 않고 해서 몰래 월담을 하여 뒷쩍 산 능선으로 재빨리 올라선다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전혀 보이질 않고 잡목만 무성하다

전주이씨 가족묘가 나오고... 나무에 준.희님께서 산패를 걸어놨다

121.6m봉(16:00)

121.6m봉 정상의 모습

내려오는 등로는 전혀 보이질 않는데 반가운 현오님의 시그널이 걸려있다.

오늘은 선답자들의 띠지 덕택능 많이 봤다... 준.희님, 맨발님, 현오, 이 대장

그리고 다올선생까지... 고수님들 고맙습니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우측으로 내려오니...

S.K텔레콤 염치고개 중계기가 나오고...

石材하치장 마당을 가로지르니 오늘 날머리인 염치고개가 나온다

염치고개(念峙:16:10)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북양리에 있는 고개로 남양에서 비봉으로 이어지는 306번

4차선 지방도가 지나며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가 있다

지명의 유래는 북양리 염지동(念地洞·)에 옛날 마을 뒷산에는 절이 있었으나,

廢寺가 된 후 한때는 불당골(佛堂谷)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주민들 이 "그 절을 잊지 말고 염두해 두라"는 뜻에서

염티고개라 부르다가 다시 염치동(念峙洞) 또는 염치로 불려졌다고 한다

 

 

초반에 눈이와서 고생을 많이 했으나 그래도 한구간을 무탈하게 마쳤다는데

안도하며 스틱을 접고 산행을 종료한 다음에 고개 아래에 있는 양노리로 향한다

고개로 내려오다가 우측에 있는 양노리 순대국집에 들려서 늦은 점심에다가

소주 한병  마시고 바로 앞에 있는 양노리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제부도에서 사당동가는 1002번 버스가

오기에  재빨리 버스를 타고 40분이 채 안되어 사당동에 도착한다

사당동에서 첫차가 06시 10분에 출발한다고 하니 접근성은 무지하게 좋다

사당동에 도착하니 저녁 6시도 안되었고 집에 일찍 가봐야 할일도 없기에

아는 식당에 가서 소주 한병 더 마시고 지하철역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