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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1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28구간(역산행) - 벌재-황장산-대미산-포암산-하늘재

by 범여(梵如) 2010. 3. 18.

산행일시: 2009년 8월 30일~31일

산행구간: 벌재-페백이재-황장재-감투봉-황장산-작은차갓재-차갓재-새목재

          대미산-부리기재-꼭두바위봉-마골치- 관음재-포암산-하늘재

   

 거리/시간:  26여km/11시간소요

벌재(경북 문경시 동로면)에서 새벽 3시에 철조망 을 월담하여 산행을 시작

(참고로 이곳은 입산금지구역으로 단속이 엄청심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황장산(해발1077.3m) 정상에서  - 黃腸山의 유래는 옛부터 이곳에

사찰이나 궁궐에 쓰는 金剛松 소나무의 군락지로서 누를 黃, 창자 腸으로 소나무 껍질을

벗기면 누런 창자와 같다고 하여 황장산이라고 유래하였단다.

 

일제시대에 일본이 많은 나무를 베어 일본으로 가져갔고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해

소나무보단 떡갈나무 군락지로 변해버려 서글픈 생각이 든다.  

희미하나마 새벽의 여명을 느끼며 황장산 정상을 향하며 한걸음씩 발아래 느껴지는

암릉 날등이, 운무속에 가려진 채 느껴지는 주변의 풍광을 떠올리게 하며 일출의 아쉬움이 더해간다. 

아, 월악이여!! 盛夏의 新綠보다 더 상큼한, 비 온 뒤의 맑은 숲길을 기대하며 30여분의 암릉 구간을

거쳐 황장산(黃腸山,1077) 정상에 도달하여 숨을 고른다.(05:00)역시 험한 암릉으로 둘러쌓인 황장산

정상이라 하나 긴 풀섶과 소나무,잡목에 가려진 정상에서 새벽의 운무에 둘러 쌓인 채 骨氣를 갖춘

肉山의 느낌 속에서 흐린 기념 사진을 남긴다.   

 

큰 산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점점 밝아오는 동녘을 향해 마주하나

소백산은 커녕 守理峰(1019)마저도 짐작이 가질 않는다.

동북으로 겹겹이 다가올 투구봉, 도락산, 황정산을 지도속에서 어깨동무하며 잠시 눈을 감을 수 밖에...

날 맑은 가을 날에 다시 찾으리라 다짐하면서..

 

까만 오석 정상비 옆면에 새겨진 일명 鵲城山의 전설을 되새기며 작년 여름 문안계곡(작성계곡)에서의

거풍을 떠올리고, 쓰러질듯 역사를 이고 있던 鵲城門을 기억해 낸다. 변방(갓성)이란 뜻에서 音韻이

흘러내려 까치로 변하는 말의 역사와, 까치를 실재시켜 함께 인물을 만들어내는 변방 설화의 전설 속에서

역시 인간의 줄거리가 더 매력적이다. 

 

죽어서도 속 노란 黃腸木으로 칠성판을 베고 눕고 관을 만들던 영화로움을 유지하기 위하여

封山으로 지정했다던(숙종,1680년) 시봉표지목을 찾으려 둘러 봤으나 잘 보이질 않는다. 

잘려진 굵은한 그루 소나무 그루터기에서 사라져가는 名品木들을 위한 잔영을 어루만져 본다. 

작은 차갓재 가는 길에서 여명을 맞이하고

황장산 정상에서 10분정도 휴식을 취한후 감투봉 쪽으로 내려선다.

칼날능선을 왼쪽으로 비켜 내려선 후 급경사 내리막에서 10여m로프에 매달리면서 조심스레

밟아내린후 감투봉(985)에 아직은 어둡기만 하다. 구름이 개이는듯 하다가 어느새 운무에 휩싸인다.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동서남북으로 셧터를 눌러댄다. 마치 오늘의 보물찾기에 성공한 기분으로..

배경은 어차피 하늘 뿐 이니 그야 파란색이면 어떻고 흰색이면 어떠랴..황장산에서 보기드문

고사목 검은 흑백을 배경으로...

백두대간 남한구간의  중간인 차갓재에서

차갓재에 이르면 대간 남한 구간 중간지점이라는 구조물이 있다.

지리산에서 시작하여 중간지점까지 왔으니 대간이 뭔지, 대간은

산맥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겠다.

학창 시절 달달 외우던 산맥이라는 개념은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藏文次郞)가

1903년 발표한 <조선의 산악론>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맥 기준은 땅위의 어떤 선상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땅속의 구조선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니우리 조상들의 대간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다시 말하면 대간은 땅의 모양(지형)을 기초로 하여 산줄기를 표시한 데 반해 고토분지로의

산맥개념은 땅의 성질(지질)을 따라 표기한 것이다.

대간개념에는 지리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사상 및 신앙이 담겨져 있으니

일제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어떻게 하든 우리의 사상이나

신앙을 자기들이 지배하기 편하도록 고치려고 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산맥 개념 그 자체가 우리 정신문화를 파괴하려고 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백두대간 남한구간의 正中間 표시석 앞에서

고토분지로가 망아지 네 마리와 인부 6명을 데리고 겨우 14개월 동안 답사한

다음 작성한 것이라 하니 오류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고토분지로의 개념이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도록 했다면

일제의 의도가 불순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 개념은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심지어 중국에서도 사용되는 개념이다.

산맥 개념에 조선의 氣를 꺽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주장은 지나친 국수주의적 해석이다.

사실 우리의 대간 개념은 거의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과학적이다.

대간이란, 산줄기가 강 유역의 경계를 나누면서 산줄기 전체가 연결되기도 하고, 고을과 동네를

묶어주는 개념이다. 즉 대간이 山自分水嶺의 원칙에 따라 형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우리 고유의 자연인문지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간에 따라 물줄기가 나누어지고 물줄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은 문화, 관습 및 언어 등에 차이를 보인다.

이는 곧 각 지방은 서로 다른 문화와 방언을 가지게 된 배경이다. 그리고 대간의 형성 원칙에 따르면

대간은 백두산을 거쳐 중국 대륙을 가로 지른 다음 에베레스트까지 이어지니 참으로 오묘하고 절묘하지 않는가.

그러니 대간과 산맥을 굳이 비교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왜소화할 필요는 없다. 대간은 대간이고

고토의 산맥은 산맥이다. 애당초 서로 다른 개념이다. 분명한 것은 대간이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더욱 설득력있고 호소력있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차갓재를 지나 눈보라를 헤치며 대미산 정상에 선다. 눈덮힌 대미산은 아름다운 풍광을 제공해 준다.

대미산은 문경 산들의 祖山(조산)이라 일컬어질 만한 위용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좌우로 힘찬

산줄기를 내려놓기도 한다. 운달산을 거치면서 낙동강 상류인 영강과 금천을 가르는 문경 방향의

운달지맥과 남한강 상류의 충주호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가르는 등곡지맥이다.

이 구간은 표시석 하나 제대로 되어있지도 않고 보다못한 어느 산악회에서 코팅으로 표시한 새목재(해발 826.6m) 정상

대미산밑 눈물샘 약수터 갈림길에서

차갓재를 지나 새벽 운무를 헤치며 대미산 정상에 선다. 운무로 덮힌 대미산은 아름다운 풍광을 제공해 준다.

대미산은 문경 산들의 祖山(조산)이라 일컬어질 만한 위용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좌우로

힘찬 산줄기를 내려놓기도 한다.

운달산을 거치면서 낙동강 상류인 영강과 금천을 가르는 문경 방향의 운달지맥과 남한강

상류의 충주호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가르는 등곡지맥이다.

수많은 백두대간 산꾼들이 지나간 흔적들

멀리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운달산(1097), 북쪽의 문수봉(1161),동남쪽의 옥녀봉이 한 눈에 들어오며 시원한 조망이다.

단지 흔한 소나무 한 그루 없이 제멋대로 드러누운 갈대 잎들이 황량함을 더해줌이 아쉽고

한 여름엔 오래 머물기엔 적당치 않을 것 같다.

점점 멀어지는 후미조를 기다리지 못하고 앞서 출발하기로 한다.

오른쪽 여우목고개로의 하산길을 버리고 북쪽으로 90도 꺾어

 문수봉쪽으로 내려서니 오른쪽 70m 아랫쪽에 눈물샘 표지가 보인다.

대미산(黛眉山-검푸른 눈썹산)이라 했던가..(聞慶縣誌)  

대미산(해발 1115m) 정상에서 - 大美山 크고 아름다운 산이라 퇴계 이황 선생이 작명한 것으로

유명하며 월악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매우 조망이 좋다.

지나온 조령 능선과 가야할 소백 능선이 그림처럼 놓여 있으며 멀리 운달산과 주흘산

가까이 포암산 등이 눈에 잡힐듯이 보인다. 어떤 산경표에는 눈썹먹 黛 눈썹 眉로 黛眉山으로

표시한 곳도 있다

소백능선들이 산꾼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대미산이 양방향으로 균형된 지맥을 낳고 있는 것은 오늘 이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

대간꾼들에게 대간을 지나치게 왜소하게 또는 소아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대국적으로

균형되게 해석해달라는 부탁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가 여기에 이르니 북한산을 삼각산으로 개명하려는 서울 강북구청장의 노력이 생각난다.

북한산의 원래 이름은 삼각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산이란 이름은 “일제시대 때 ………”라고 운운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

구청장이면 할일이 무척이나 많을 텐데 괜시리 산 이름을 두고 시간을 허비할까.

지금까지의 노력만 하더라도 본래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만두어도 손해 보는 것은 없을 것이다.

부리기재를 통해 꼭두바위로 가는 길은 조용하기만 하다. 대미산은 이렇듯 산을 찾는

우리((人+山)에게 짧지만 강렬한 신선(仙)의 세계를 보여준 것이다.

그 유명한 소나무 군락지는 쇠락해 버리고 잡목이 점령해 버린 대미산의 백두대간길

서글픈 생각만 드는구나

버리미기재라고도 불리우는 이 고개에도 벌목처럼 낮아진 고갯길 좌우로 희미한

길자욱만 남긴 채 벌소리도 윙윙거리지 않는 한적함만 묻어난다.

후미조를 기다리며 잠시 휴식한 후 꼭두바위봉과 마골치를 향해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을 이어간다.

길 양편에 지천으로 늘린 취나물과 더덕 냄새가 발길을 멈추게한다. 개망초꽃 한 송이가 아담하게 어울린다.

 속진(俗塵)의 때를 벗어나는 구도자의 걸음으로 우리는 이렇게 2300리 대간길에서, 작은 생명의 경이로움을 배우고

내 고귀한 삶을 후회없는 한 生厓로 마무리하는 날까지 더 높은 곳을 향하리라...

꼭두바위봉에서 바라본 주흘산(해발 1079m)의 모습

오늘 구간에서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동반자가 있다. 주흘산이다.

오늘뿐만 아니라 이전 구간인 백화산에서 시작하여 조령산-마패봉-부봉을 거쳐 아마도 다음

구간에서도 동행할 듯하다. 대간 마루금이 마치 주흘산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주흘산을 이 고장 문경의 鎭山(진산 : 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그곳을 보호하는 주산〔主山〕으로

정하여 제사지내던 산)이라고도 하는가 보다.

우리 신화에서는 산은 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공간이자 인간이 신선이 되려고 하거나

산신이 되어 들어가는 신성한 공간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산신은 우리 민족을 있게 한

최고의 민족신이자 처음으로 민족국가를 수립한 최초의 국가신인 셈이다.

이런 힘에 대한 믿음이 국가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서도 진산의 개념을 발전한 것이라고

신준환(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은 말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문경에도 당연히 진산이 존재하는 법. 문경을 둘러싼 최고봉은 마루금상의 대미산이다.

그러나 대미산은 문경만의 산이 아니라 제천의 산이기도 하다.

대미산을 문경의 진산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반면 주흘산은 산 전체가 온전히 문경에 있으면서도 우뚝 솟아 있다.

주흘산이 바로 문경의 진산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진산은 높이보다는

인간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여 정해진다는 점이다.

포암산 아래서 본 운달산(해발1097,2m)

문경의 진산은 주흘산이지만 주흘산체에서 최고봉은 주흘산(1030미터)이 아니라 주흘영봉(1106미터)이다.

주흘산이 더 낮음에도 주봉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문경 현장에 가면 쉽게 알 수 있다.

문경에서 영봉은 잘 보이지 않는 반면 주봉은 마을을 내려다보고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다.

문경에 무슨 일이라도 발생하면 도와줄 산이 바로 주봉이라고 보고 진산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신 1106미터 고지를 영봉이라는 이름을 붙여 대우를 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산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인간과의 친밀도가 낮으면 제대로 대접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겠다.

주흘산이 문경의 진산이니 주흘산과 얽힌 이야기도 많다. 전설에 의하면 주흘산은 산 아래를

도읍으로 정하려 마음먹고 치솟았으나 솟구치고 보니 이미 삼각산이 우뚝 솟아 있어 실망한

나머지 되돌아 앉았다한다. 실제 주흘산은 한양을 향해 혹은 대간의 태조산인

백두산을 향해 돌아서서 등을 보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양 또는 백두산을 등지고 있으니 반역자가 나올 수 있는 마을이라는

전설 혹은 사기꾼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설들이 그것이다. 특히 등을 돌린 산에서는 사기꾼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은 풍수에서 통용되고 있다. 山背人欺(산배인기) 바로 그것이다.

문경 출신 가운데 사기꾼 이름을 들어본 적은 별로 없는 듯하다. 이 고장 출신 반역자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이 마을 출신 가운데 큰 뜻을 품은 자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문경 가은 출신인 후백제 견훤왕이 그렇고 이 곳에서 약 3년 가까이 초등학교 교편을 잡았던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렇다.

관음재 고개에서 - 문경 관음리에서 충주 미륵리로 가는 옛고개로 불교의 佛性이 관음(觀音) 세계에서

미륵(彌勒) 세계 현세(現世)에서 내세(來世)로 가는 희망의 상징 고개였다고 한다.

지명처럼 이곳 주변은 마에불 미륵불상과 문화재급이 다수가 있으며 佛家의 요람으로 되어있다.

포암산 정상에서

포암산에 올라 정상적인 길로 들어서니 길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중국 송나라 스님 無門慧開(무문혜개)의 말씀 大道無門(대도무문)이

 생각난다. 큰길에는 문이 없다는 말로서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으로,

누구나 그 길을 걸으면 숨기거나 잔재주를 부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 다음 구절은
千差有路(그렇지만 길은 어디에나 있다)
透得此關(이 관문을 뚫고 나가면)
乾坤獨步(온 천하를 당당히 걸으리라)
로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적지 않은 관문을 뚫고 마침내 편하게 진행한 오늘 구간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무문계혜 스님의 의도를 완전히 왜곡하고 信佛者(신불자)들을 화나게 할 만한 것이지만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정치인이 사용하는 것보다는 순수한 것이니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어쨌든 오늘의 교훈은 대도무문을 다시 한번 새겨보는 것이다.

그나저나 대간 산행에서 복병이 갈수록 많아지니 앞으로 얼마나 많이 대도무문을 중얼거려야 할 지,

대간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는 있을 지 걱정이 앞선다.

관음리에서 바라본 포암산 -  베 布 바위 巖으로 삼베로 바위를 싼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포암산이라고 한다.

지난 구간 탄항산 내림길에서 조망했던 布巖山의, 베를 늘어 놓은 듯한 직벽 슬랩을 상상하며 조심스레

그 동쪽을 우회하여 내려오니,

날카로움을 간직한 크랙들이 밑바닥을 바쳐주어 다행히 미끄럽지는 않으나 급경사 내리막길에 숨이 거칠다.

좌우의 검은 직벽 낭떠러지가 오직 발 닿는 마루금이 내 딛고 나아갈 한 길이다.

항시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산꾼들을 맞이하는 포암산 하산길에서 만난 낙락장송

하늘재에서 - 문경 관음리와 충주 상모면 경계에 있으며 지름재, 거름산이라고도 하며 신라가

북진을 위해 아달라왕 3년(서기 156년)에 죽령과 조령의 가장 낮은 위치에 개척한 령(嶺)으로

삼국시대 당시 상당히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특히 신라 56대 마지막 경순왕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왕건에게 패망의 한을 품고

금강산 가는 길에 이곳을 넘었다고 한다.

참고로 범여가 경순왕의 56대 孫으로 경주 김씨 태사공파이다( 아~~~ 불쌍한 울 할아버지)

관음리에 핀 코스모스 - 이젠 어쩔수없는 가을인가 보다.

사랑하는 울님의 볼만큼이나 붉디 붉은 관음리의 사과밭에서

 

평소보다 1시간 늦은 0시에 서울을 출발 경북 문경에 있는 벌재를 향했다.

차에 오르자마자 월말에 사무실 업무를 좀 늦게까지 마무리 한터라 피곤하여

잠에 곯아 떨어졌다. 버스가 단양 휴게소에 들어서는 바람에 잠에서 깨니 새벽 2시반

이제 산행을 준비를 위해 차에서 부산을 떨어 벌재에 도착하니 새벽 3시경 칠흙같은

어둠속에 경사 75도 가량의 급경사를 1시간가량 치고 올라가니 숨은 턱밑까지 차오르고...

난 사실 벌재에서 작은 차갓재까진 지난 7월 2주에 200mm이상의 빗속을 치고 간 경험자

그런데 산이란 내려올  때와 올라갈 때의  느낌은 360도로 다르고 정말 힘이 들었다

 

황장산까지 2시간 가량 말 한마디 안하고 치고나니 서서히 동녘에 黎明은 밝아오기 시작하고

같이 동행한 아우와 황장산을 지나 전망좋은 바위에 앉아 허기진 배를 간식으로 보충하고

부지런히 걸었다. 3시간여를 걸어 대미산 정상에서 산꾼 동료와 아침 만찬을 겸한 정상에서

곡차맛이 그야말로 꿀맛이다. 주위 조망권도 죽여주고 벌재에서 작은 차갓재까진 급경사와 암릉구간

상당히 힘이드고 위험한 코스, 차갓재부터 대미산 , 꼭두바위봉까진 정통적인 육산으로 잡목지대와

너덜길 등 수십번도 더 오르락 내리락에 체력은 서서히 고갈되고 밀려오는

졸음에 눈꺼풀은 자꾸만 눈을 덮어 오고...

 

다시 암릉과 오르막 내리막에 포암산은 왜 그리도 멀리 보이는고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벌재-페백이재-황장재-감투봉-황장산-작은차갓재-차갓재-새목재-대미산-부리기재

꼭두바위봉-마골치- 관음재-포암산-하늘재의 30여km를 11시간만에 하산하니

왜이리도 힘이 드는지.  범여는 지리산 종주와 설악산 공룡능선 구간보다 더 힘이 들었다.

백두대간 구간을 75%이상 마쳤는데 오늘처럼 힘든 산행은 처음이다

이젠 범여의 체력이 슬슬 바닥을 보이는가. 가을철에 보약을 먹어야 할란가보다.

하늘재 지나 관음리에서 마신 이스리는 말그대로 꿀맛이고

이렇게 힘들어도 다음주 토욜 저녁 또 다시 梵如는 베낭을 메고 나서겠지

山에 중독이 되어 상당히 맛이간 불쌍한 衆生 범여는 누가 구제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