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09년 7월 12일
산행코스: 안생달 마을(해발 500m)에서 시작 차갓재-작은 차갓재-묏등바위
황장산(1077.3m)-황장재(920m)-치마바위(1000m)-폐백이재(850m)-벌재(650m)
-들목재(750m)- 문복대-옥녀봉(1077m)- 경북 예천의 저수재(850m)
거리/구간: 마루금 16km 들머리 2km날머리 3km / 6시간 30분소요
중부지방에 200mm이상의 장대비가 하늘에 구멍이 난것처럼 쏟아지는 일욜에
백두대간 가는 길은 멈출 수가 없었다. 매일 아침 그시간 그 자리에는 나와 거의
맛이간(?) 산꾼들이 어김없이 나와 있었다. 서로가 수인사로 목례만 나누고...
차가 도착하자 서둘러 차를 탔다. 비가 너무 많이 온탓인지 고속도로가 텅비어
있는 느낌. 차는 막힘없이 달렸다. 차가 충북 제천, 단양을 지나자 곳곳에 비피해 지역이
보이기 시작 일말의 불안감도 들고... 오늘은 충북 단양의 대강면과 경북 문경시 동로면의
경계지역의 능선인 문경 안생달 마을(해발 500m)에서 시작 차갓재-작은 차갓재-묏등바위
황장산(1077.3m)-황장재(920m)-치마바위(1000m)-폐백이재(850m)-벌재(650m)
-들목재(750m)-옥녀봉(1077m)- 경북 예천의 저수재(850m)까지 마루금 16km 들머리 2km
날머리 3km를 6시간 30분을 산행 하였다. 거기다가 황장산에서 벌재까진 월악산 국립공원
입산금지구역인데 설마 이 비에 공무원이 설마 단속하겠냐고 방심하다가 선두 그룹 1명이
공무원 적발되어 초소에 감금되는 바람에 무거운 베낭에 판초까지 입고 1km 가까이
도망 다니는 바람에 30분정도 지체되고 장대비가 나뭇잎 맞고 떨어지니 왜 그리 아픈지?
거기다가 문경지역이 백두대간이 110km로 가장 구간이 길고 기가 센지역이라 옛부터
자손들이 잘 안되면 조상이 묘를 도장(盜葬:묘를 남의 산에 몰래 離葬함) 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 이곳 문경이란다.
얼마나 비를 맞았던지 모든게 다 젖어 카메라가 물이 들어가 사진이 엉망이고 나중엔
작동 불능이 되어 폐백이재에서 저수재까진 카메라에 아예 담지도 못했다.
에고 그 넘이 백두대간이 뭐길래 이 범여를 맛이가게 하남 ㅉㅉㅉㅉ...
그 비에도 산꾼들과 함께 맛이간 산악회 버스
안생달에서 시작한 산행은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하는 구간이 너무도 많이 있고
서울 출발부터 빗줄기는 갈수록 굵어지기 시작한다.걱정되던 빗줄기가 잠깐 그친 생달마을의 맑은 공기가 반가운지,
2주전 탄항산에서 하늘재밑 관음리에 내려와 산나물에 싸서 먹던 이슬이 안주가 그리웠던지 산행버스가 느릿하게
마을로 들어서서 정차하자마자 대원들이 베낭을 준비하며 산행을 서두른다.
하얀 철쭉(?)을 보셨나요. 이제사 피기 시작하고....
다시금 비가 시작되면 오늘은 제대로 수중훈련을 치루야 될 판이다. 몇걸음 능선을 밟은후에 차갓재 표지석 장승 앞에 멈춰 서서
다시 빗줄기가 이제는 폭우수준으로 바뀐다. 전화가 울린다. 아들의 전화다. 아빠 오시면 안돼요라는 걱정어린 전화다.
서울에는 폭우가 엄청나게 내리는 모양이다
그 옛날 고려시대 이 고개를 넘어 왼쪽 벌내 마을로 피난 가던 공민왕의 피난 수레도 오늘처럼 을씨년스런 비를 만나 갓을
씌우고 있었을까.. 저 아래 안생달 마을에는 시커먼 먹구름으로 인해 마을은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차갓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니,.얇은 셔츠에 후둑거리는 빗방울이 시원스럽다.
투명한 녹엽(綠葉)을 기대하며 제발 오동엽(梧桐葉)의 대우성호(大雨聲豪)가 바람에 실려 그러하듯 잠잠해 지기를..
작은 차갓재부터 묏등바위까지 암릉구간은 아랫쪽이 천길 낭떠러지 미끄러운 빗길에 아찔한 느낌마져 들고...
작은 차갓재를 지나 묏등바위로 향하는 멋진 암릉 길위에서 지나온 생달 마을 쪽 풍경을 조망하려하나 짙은 운무에 가려진 채
1시간 여 조심스런 칼날 잔등 밟기를 계속한후 묏등바위 로프 밑에서 대열이 멈춰 선다. 선두대장의 숨가쁜 무전과 안전확보
지시가 들려오니 비에 젖은 직벽 암릉 줄잡이가 많이 미끄러운 모양이다.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 30m 앞의 동료를 확인하기 조차 힘이들고
비록 7-8m의 짧은 줄잡이지만 비에 젖은 묏등바위의 오름은 매우 위험하다. 단체 산행객들이 시간을 절약하려고 굵은 로우프를
3개나 설치해 놓았지만, 오히려 좁은 날등에 불필요하게 발 슬립을 유도할까봐 낡은 것은 제거함이 바람직하겠다.
날씨가 맑은 날에 좌우가 좁은 직벽 낭떠러지에 황홀한 월악의 숲들이 시선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곳이리라...
한명씩 조심스레 올라서서 숨돌릴 겨를도 없이 다시금 이어지는 직벽 끊어진 슬랩을 트래바스하기 위하여 가로줄에 매달린다.
얇은 매듭줄이 가장 안전하게 붙어 있고 새로 쳐놓은 2개의 굵은 줄은 늘어져 오히려 위험하다.
안전시설을 위한 국립공원 관리소측의 장비를 동원한 확실하고 빠른 조처가 요망된다.
황장산 정상에서 새앙쥐가 된 범여
베면 속이 누렇다고 해서 붙여진 黃腸木(황장목), 습기에도 뒤틀림이 적고 견고하다고 해서
예로부터 궁궐 및 관아 건축, 임금의 관 등에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황장산이란 이러한 황장목이 많이 분포 ․ 서식하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궁궐이나 임금의 관 제작 등 국가의 중차대한 일에 동원(?)되었으니 입산이 통제된 것은 당연한 일.
조선 숙종 때 실시된 封山(봉산)이라는 제도는 우량한 황장목이 자라는 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봉산은 곧 황장산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황장산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요즈음에도 입산통제가 심하다.
빨간 모자 아저씨로는 통제가 잘 안된다고 판단한 건지 오늘은 장막까지 치고 있다.
‘風雨帳幕(풍우장막)’,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빗줄기 밖에 없다.
덕분에 自然水按摩(자연수 안마)를 지겹도록 체감한다.
장막처럼 쏟아지는 이 비들은 오늘 지나가는 마루금을 경계로 한강으로 그리고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간다.
하늘에서 같은 시간에 탄생하여 같은 시간에 출발했지만 땅(마루금)에 도착하는 순간 갈려진다.
이는 운명이기도 하고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다. 그런데 빗물이 한강과 낙동강으로 갈려지는
자연의 법칙을 거역하려는 시도가 한때 진행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를 추진하던 무리들은 “이미 포기했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 입장에 있던 무리들은
아직도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양측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간다.
갈등의 골이 깊어진 곳은 여기뿐만 아니다.
한강과 낙동강간 물잇기가 실제로 진행된다면 물구멍이 통과하게 될 지역 주민들간에도 갈등이 불가피하다.
실제 경상북도 문경지역에는 땅값의 장난으로 주민간 갈등이 나타나기도 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속리산 아래 늘재에서 시작하여 청화산-조항산-악희봉-구왕봉-희양산-백화산-조령산-부봉-포암산-대미산으로
이어지는 길에다 오늘 구간인 차갓재-황장산-저수령에 이르는 길은 문경을 에워싸고 있는 구간인데
116km 정도에 이르니,
한강과 낙동강간 물잇기가 실제 진행되면 물구멍이 문경 지역을 관통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 빗속에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산나리꽃
사실 문경 구간은 대간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구간의 산 하나 하나가
모두 뛰어나고 눈부신 조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고 작은 산줄기가 모두 한 군데로 모이기도 하고 다시 나누어지기도 하는
원리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작은 산줄기 모여서 굵어지는 곳(대간 마루금)에서 물줄기는 가늘게 시작하며, 크고 작은 물줄기가
모여서 굵어지는 곳에서 산줄기는 가늘어진다는 원리. ‘굵음과 가늘어짐의 조화’ ‘산줄기와
물이 휘둥그스름하게 굽이져 모양을 이루는 형세’ 즉 태극의 모양이다.
신경준은 「산수고」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나의 근본에서 만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은 산(山)이요, 만 가지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로 합하는 것은 물(水)이다”
이는 우리 땅 전체인 대간이 하나로 어우러짐을 나타내는 말로서 곧 태극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전통지리에서는 우리 땅을 ‘山太極 水太極’이라고 불렀다.
태극은 음(陰 : 파랑)과 양 (陽 : 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태극은 우리 국기에 까지 표시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물 잇기를 반대하는 무리들은 비단 환경단체들 뿐만이 아닌 것이다.
물구멍을 만들면 산태극 수태극이 망가질 수 밖에 없으며 이는 나아가 태극기를 훼손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우려하는 전통 지리학자들 대부분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 지방의 이름 聞慶은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聞慶이 아니라
듣기 거북한 소문을 듣게 되는 聞硬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장재(해발920m)에서 카메라에 습기가 차 사진이 제대로 나오질 않고...
30여분 조심스레 급경사 내리막을 밟아 황장재(잘루목, 문안골/산태골)에 다다른다. 지나온
감투봉을 올려다 보니 꽤 험난한 모습을 보여주며 다음을 유혹한다.
아직도 5시간 이상 남은 대간 길에 빗줄기는 자꾸만 굵어져 이젠 우의위로 때리는 비는
이젠 이 육신이 아플정도로 아프다. 신발엔 비로인해 자꾸만 질척거려 신행시간이 길어만 진다
묏등 바위에서 - 이곳은 전망이 좋아 주위으 도락산, 소백산을 다 볼수있는 전망좋은 곳으로 사진 촬영지로
끝내주는 곳인데 안개땜에 아무것도 볼 수 없고.
황장재 이후로 꽤 긴구간을, 작은 칼날 암릉밟기로 지루하지 않게 지나오며 간간이 걷혀지는 안개 속에서 월악의 깊은
계곡 속으로 때묻은 잡념들을 날려 보낸다. 숱한 아집과 욕심과, 남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허허로운 외침들..
남들의 눈으로 바라봐야만 했던 나의 부끄러움들..죽어서도 간직하고 싶었던 작은 명예들..나를 잃어버린 채 나의 현실의
자유를 잊은 채...이젠 나의 눈으로 나를 보고 남들도 바라볼 수 있기를...
하도 허기가 져서 점심식사를 양송이 스프, 가래떡 하나에 오렌지 2알로 해결하고
1004봉을 지나 치마바위에 올라서니 이어지는 능선길을 버리고 오른쪽 급경사를 따라 10여분 대간길을 수정한다.
작은 고갯마루를 지나는 것이 아마도 폐백이재(산밭구이골/갈밭골)를 지나는 모양이다. 다소 시장기를 느껴 벌재까지는
아무래도 가기가 힘이들것 같다. 소낙비 줄기를 맞으며 동료 산꾼들과 같이 허기를 채운다.
울 아들이 아빠가 걱정이 되는가보다 비가 많이오니 두번이나 조심하라고 전화가 오고...
고대 통일 중국 국가 가운데 가장 단명한 나라는 진나라 수나라이다. 이들 모두 3대를 넘기지 못하고 망했다.
그런데 이들 두 나라는 공통점이 있다. 진나라는 만리장성을 그리고 수나라는 북쪽의 탁군에서 남쪽 항주까지
장장 2,000km에 달하는 운하라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인 것이다.
중국 민간에서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면서 수많은 지맥을 끊어졌기 때문에 망했다는 설도 있다.
미신으로 치부하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많은 내용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진시왕의 여덟 번 째 아들 호해가 측근이었던 조고와 짜고 왕위를
은근 슬쩍 가로채고는 만리장성 축조의 책임자였던 몽염 장군(진시왕 맏아들 부소의 측근)을 죽이려 한다.
몽염은 죽음 앞에서 "나의 죄는 진실로 죽어 마땅하다.
공사를 일으켜 요동까지 이어지는 장성(長城)이 일만여리가 되었으니, 그 가운데는 지맥(地脈)을 끊은 것이
한둘이겠는가. 이것이 바로 나의 죄다"라고 말한다.
저자인 사마천은 몽염의 이러한 발언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비난한다. “‥‥‥산을 끊고 골짜기를 메꾸었으니,
진실로 백성의 힘을 노고(勞苦)시키면서 그것을 가볍게 여겼다.
황제에게 극간을 통해 백성을 보호하지는 않고 웬 지맥 타령이냐?” 제 할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사마천도 간과한 것이 있다. 자연파괴는 백성뿐만 아니라 하늘도 노하게 한다는 것을.
등산로는 완전히 못자리 논으로 변해버린 뻘이되고 미끄러워서 너무 힘이들었다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달리 가슴에 봉우리가 있다. 그리고 봉우리 사이에는 물(젖줄 : 乳腺)이 흐른다.
우리는 이러한 젖줄을 마시며 자란다. 산에도 봉우리가 있다. 봉우리 사이에 물(계곡)이 있고 인간은 그 물을 마시며 살아간다.
산은 곧 어머니같은 존재라는 의미이다.
산을 파괴하는 행위는 어머니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이겠다.‥‥‥‥‥聞慶이 聞硬이 아니라 계속해서 聞慶이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가다 따 먹던 산딸기도 보이고
관리공단 직원들에 1km가량 쫓기다가 겨우겨우 벌재에 도착한 범여
벌재(伐峙)는 경북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를 잇는 59번 국도 상의 해발 625m의 고갯마루이다.
과거 이곳을 지나는 도로를 33번 지방도라 하였으나 지금은 59번 국도로 승격돼 있다.
그렇다면 도로의 품격을 봤을 때 지방도 상의 저수령보다 국도 상의 벌재가 격이 더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이번 구간의 가장 낮은 고도인 벌재(625)로 내려서는 절개지 내리막이 무척 가파르다.10여분간
급경사를 내려서니 잘 포장된 벌재 59번(단양/문경) 도로를 건넌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이어주는
이 고갯길로 월악과 소백을 오가는 많은 산꾼들의 편리함은 더할 나위가 없다.
길이 무척이나 미끄럽다. 갑자기 선두대장의 무전이 온다. 빨간모자 아저씨(국립관리공단 직원)가 벌재에서 지키고 있으니
우측으로 돌아란다. 근데 사고가 터졌다. 오늘 처음 온 산꾼이 선두앞에 가다가 직원한테 적발이 되었단다.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그 직원한번 참으로 직업의식 투철하다. 이 많은 비에...)
지금 오후 2시반 저수재까지 7km나 남아있고 미끄러운 길을 감안하면 2시간은 더 걸리겠지
문복대를 향한 느린 걸음을 평탄한 오름길에 실어 놓은 채 823봉을 지나고, 작은 내림으로 문봉재(방곡면/호박골)를 지난다.
30여분의 1020봉을 향한 지루한 오름길을 오르면서 50 평생동안 결코 짧지만은 않을 나이에 그가 겪어야했던 수많은 고통들을
이 깊고 큰 산중에 훌훌 털어버리고, 버리지 못할 세속의 인연들을 마주할때는 가벼운 맘으로 스스로를 믿고 뜻한 바를 일구어
내리라 믿는다.
완만한 경사 길로 고도를 서서히 높여 가면 길 양편이 낙엽송 숲이고, 그 아래가 온통 둥굴레 군락지이다.
아마 우리나라 전체를 두고도 이곳보다 더 넓은 둥굴레 군락지를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넓은 둥굴레 밭이다.
문복대(운수봉:해발1077m) 이젠 카메라 렌즈에 물이 들어가 사진이 제대로 보이질 않네
문복대 정상에 올라서 기록을 남기려니 디카에 빗물이 너무 많이 들어 갔는지 작동이 되질 않는다.(꽤 비싼건데...)
이제 남은 시간 1시간 정도 이번 대간 길 구간 중에서 가장 편하고 짧은 구간답게, 자꾸만 안개 속에 묻혀
지나온 황장산쪽을 되돌아 본다.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바나나 껍질을 벗겨 지루함을 달랜다.
조금씩 벗겨지는 안개 속에서 멀리 소백산 쪽 시루봉이 슬쩍슬쩍 봉우리를 보여준다.
정상 이름치고는 참 서민적인 느낌이다..운수봉이라는 이름 보다는 쉽게 다가오는 이곳에서 어느 영혼이 남겨 놓은
복덩이라도 하나 챙겨갈 수 있기를...
주민들은 이 문복대(門福臺)를 ‘문봉재’ 혹은 ‘운봉산’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문복대에는 표지석이 있고,
날씨가 좋은 날은 남쪽으로 시야가 열려 있어서 문경시 동로면 일대의 들판과 천주산(823.5m), 공덕산(913m)이
시원하게 보인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범여는 德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그 와중에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야생화, 이제사 들꽃이 장미보다 아름다운 이유를 알겠다
오늘따라 UP,DOWN이 왜 이리도 심한지 이젠 등산화가 무거워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다.
옥녀봉(1077)언저리를 돌아 꽤 비탈진 내림길을 밟아 내린다.30분 남짓 지루한 내림길을 밟아 내리니
관광 목장을 통해서 저수령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된 임도를 만난다.
저수재,오른쪽 능선을 다시 올라서서 마지막 작은 구릉같은 봉우리를 지나니 온통 주변이 푸르다 못해 검어질 지경으로
침엽수 계획 조림을 앞세우며 비온 뒤의 신록으로 다가온다. 지나온 길이 더더욱 아쉬어지며 문경쪽 석황리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니 결국 디카는 작동을 하지 않는다 저수재는 다음 산행 기록에서 남겨야겠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물 먹은 카메라로 제대로 잡을 수도 없고
옥녀봉에서 장구재 쪽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엔 철구조물로 된 오미자 터널이 설치돼 있다.
그런데 이곳 장구재 이외에도 벌재 옛길, 그리고 차갓재 쪽에도 이런 형태의 오미자 터널 철구조물을 세워놓았는데,
거기에 오미자를 심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철구조물만 세워 놓았으니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나라 오미자의 45%가 벌재 아래 동로면에서 생산된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긴 하다.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 > 백두대간 1차 북진(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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