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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1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30구간 - 저수재-투구봉-흙봉-솔봉-묘적봉-사동리

by 범여(梵如) 2010. 3. 19.

산행일자: 2009년 11월 29일

산행 코스: 저수재(850m)-투구봉(1080.6m)-시루봉(1110m)-배재(950m)-싸리재(900m)-흙봉(1056m)

                뱀재(940m)-돌탑(1033.5m)-솔봉(1102m)-묘적령(1000m)-절골-사동리

거리/시간;  약18km, 5시간15분소요)

 

범여는 저수재와의 인연은 비와 함께 시작되는가 보다. 지난 7월에 안생달에서 이곳 저수재 산행때도

220m/m 이상오는 장대비에 디카를 하나 망가뜨린 슬픈 기억이 있는데 오늘도 저수재에 가기위해

서울을 출발하자 마자 비는 쏟아지기 시작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중앙고속도로 단양I.C를 지날즈음

비의 양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산꾼들을 긴장시킨다. 산꾼들은 비를 가장 싫어한다

그 만큼 장비도 많아져야 하고 무엇보다 거추장스럽고 특히 겨울산행엔 미끄러워 산행사고가 많이

나기에 바짝 긴장하게 된다.저수재에서 간단하게 기념사진 한장 찍고 부지런히 투구봉을 향했다

이곳 산행코스는 워낙 오지(奧地)이고 볼것이이곤 하나도 없는 밋밋한 육산이라

 백두대간 타는 산꾼외엔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변변찮은 표지판 하나 제대로 된게 없다. 가장 높다는 시루봉(1110m)도 표식이 없어

그냥 지나쳐 버렸으니 말이다. 일반적으로 고도차가 그리 심하지도 않고 전통적인 육산(흙산)이라

산행 훈련하긴 정말 안성마춤이다. 거기다가 서울근교완 달리 사람하나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투구봉을 지나자 비가 진눈깨비로 변하기 시작하고... 어느듯 이곳도 겨울로 접어들기 시작하구나

이제 백두대간도 2코스만 마치면 졸업이다. 참으로 자연은 위대한 선생이다. 그리고 참 많이 배웠다

참는 법(忍)도 배웠고. 느리게 사는법, 버리는(空) 즐거움도, 낮추는(下心) 마음도...

 

인간이란 존재, 그리고 요즘 시대 무조건 대량생산. 스피드만 요구하는데 이건 자연에 역행하는 행위다.

그리고 요즘 시끄러운 4대강 사업, 녹색성장 등등...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웃기는 얘기다.

자연은 그대로 두면 순리대로 움직인다. 개발이란 미명아래 탐욕과 망상에 싸여 콘크리트로 떡칠하여

자연을 파괴하고  그걸로 인해 인간의 생활은 더 피폐해질 것이다.

우리가 예전보다 더 많이 가졌고 더 잘먹고, 더 잘산다고 하여 옛날보다 행복지수가 더 높은가...

이제 제발 자연은 자연으로 돌려주자꾸나

 

저수령 표시석 앞에서의 범여

저수령의 유래 - 이곳은 경북 예천과 충북 단양의 경계로 저수령(850m)은 지금의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험난한 산속의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고 오르기가 너무 힘이들어 지나가는 길손들의 고개가 저절로 숙여

졌다는 뜻으로도 해석하며 그 옛날 저수령에서 은풍곡(恩豊谷)까지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었으며

이곳을 넘는 外敵들의 목이 잘려서 죽는다고 해서 저수령이라고 했단다.

저수령은 남쪽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북쪽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를 잇는 927번 지방도가 지나는

 해발 850m의 고갯마루로서 1994년 도로가 개설됐고, 조선 후기의 지도엔 ‘회령(檜嶺)’이라 적혀 있기도 하다.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영원한 어머니일 뿐 아니라 위대한 교사이다. ………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자연 앞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 같은 것은
접어두어야 한다.………“

법정 스님의 이야기이다.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하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은 법정 스님이 아니더라도 산이 직접 고개를 숙이라고 명한다. 底首嶺이다. 오늘은 저수령에서 출발하여

 대봉-시루봉-솔봉-묘적령으로 이어지는 길을 간다. 저수령에서 촛대봉 오르는 길, 길진 않지만 된비알이다.

실제 底首(고개를 숙이다)하지 않고서는 나아갈 수 없다. 그 이후에는 오르고 내림이 적으며 대체로

 평탄한 길이다.

촛대봉 정상에서

촛대봉 못 미쳐 ‘용두공원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촛대봉 남쪽 아래 마을 이름이

 용두리이다. 龍頭란 말 그대로 ‘용머리’라는 뜻이다. 고개를 숙이는 고갯길(저수령)이 있고 용머리가

나오니 뭔가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 전통 지리학에서는 산줄기를 龍 또는 龍脈, 來龍이라고 표현한다. 용은 조종산(祖宗山)인

 태조산(太祖山)에서 출발하여 각종 크고 작은 산줄기를 거친 다음 사람들이 살아가는 穴(혈)까지

달려온다.(우리나라 산들 가운데 *용산 혹은 용*산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태조산이라

함은 백두산을 의미한다.

조선 후기 때 편찬된 지리서「輿地圖書(여지도서)」에 의하면 오늘 우리가 가는 촛대봉과 시루봉을 통 틀어

 용두산이라고 불리어졌다고 하니 저수령은 곧 용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곳이라는 뜻일 게다. 결국 촛대봉과

저수령은 백두산에서 뻗어져 오는 대간의 중요한 부분임을 예로부터 인정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투구봉 정상(1080m)에서

오늘은 용의 목을 밟고 용의 머리를 타고 진행하니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진행할 수 밖에 없다.

 용의 목과 용의 머리가 아니더라도 오늘 구간은 조용히 진행해야 할 이유가 또 있다.

사실 저수령은 소백산의 시작점이다.

물론 종점은 비로봉이다. 毘盧(비로)란 비로자니의 준말로서 부처를 뜻하는 말이며, 속세에 나타난 부처가

바로 蓮花(연화)이다. 부처가 되기 전 머무르는 곳이 兜率天(도솔천)이며, 도솔천으로 가기 전 열심히

참선하여 경지에 도달하는 상태가 妙積(묘적)이다. 물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불을 켜 길을 밝혀야한다.

불을 밝히려면 촛대가 필요한 법.
말인 즉 오늘 우리가 가는 촛대봉 구간, 다음에 가게 될 묘적봉-도솔봉 구간, 그 다음에 가게 될 연화봉-

비로봉 구간 모두가 바로 수행자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조용히 진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1084봉에서 - 경북 예천은 참으로 오지이기도 하지만 재정자립도가 낮다보니 변변찮은 표지판 하나없다

배재 정상(해발 950m)

그래도 수행하는 기분으로 경건하게 천천히 걸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걸음은 빨라진다.

 걸음이 빨라지니 자세가 흐트러(?)진다. 좌우를 살피는 것은 건성 건성, 조망은 대충 대충, 걷기는 종종,………

도솔천에 이르는 것도 싫고 부처가 되는 것도 싫다. 그래도 수행자의 최소한의 흉내라도 내기 위해

 종일토록 고개는 숙이고 걸었다.

우리는 두터운 옷이라도 입고 있지만 이 와중에 옷을 훌러덩 벗고 맨 몸으로 당당하게 추위와 바람을 대하는

 별난 친구가 있다. 봄날 움을 틔워 초록빛을 발산하지만 나비와 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시샘하지

 않는 친구.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 빛을 시원한 그늘로 바꾸어 산 꾼들을 쉬어 가게 하지만 생색을 내지 않는

친구. 가을에는 스스로 변화하여 주위에 볼거리를 제공해주지만 뽐내지 않는 친구. 겨울에는 눈보라 속에

 가지가 꺽이기도 하지만 온갖 가식을 모조리 떨쳐버리고 본래의 면목만을 보여주는 친구.

落木寒天(낙목한천)속의 나무이다.

나무는 무수한 사계절을 지내면서 이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러다가 수명을 다한다. 나무는 죽었다고

해서 곧 바로 쓰러지거나 썩지 않는다. 수명을 다한 나무는 참으로 긴 시간을 죽은 채로 지내게 된다.

죽은 채로 지내는 동안 숲의 온갖 생물들이 나무를 자원으로 그리고 집으로 이용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무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보살과도 같은 모습이다. 저수령-촛대봉-묘적령

-도솔봉-연화봉-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산 구간에서 수행자는 우리들이 아니라 바로 나무들이다.

나무는, 이것 저것 복잡한 현대 생활에서 당당하고 그리고 무심히 살아가는 방법을 오늘 겨울 산(대간)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다.

나 말고도 수없이 지나간 백두대간 산꾼들

미끄럽지만 않으면 정말 낙엽을 밟으면 호젓하게 한번 걸으보련만...

흙목재(1070m) 정상에서

봉우리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밋밋한 걸음으로 1033.5봉에 다다르니 표지판에 '흙목정상'으로 적혀 있다.

 내림길로 이어지니 정상은 정상일진데..어디쯤 흙목마을이라도 이어져 있는 것일까..

내림길 이후 버려진 헬기장처럼 보이는 공터가 풀섶에 뒤덮혀 있고, 이어지는 대간 마루금에서 거대한

 송전탑을 만난다. 생활에 꼭 필요한 전기를 높은 산을 넘겨서라도 실어 보내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훗날 개발의 방향에서 가능하면 지역별 발전을 구상하여 긴 거리의 이동을 피할

수만 있다면 경제적으로도 좋을 것인데...큰 오르내림 없는 숲길을 걸으며, 헤드랜턴을 접은지

오래고 벌써 허기짐을 느끼며 뱀재(헬기장)에 다다른다.

솔봉 정상(1021m)에서

솔봉으로 이어지는 평탄한 오름길을 암릉구간을 피해 우측사면을 타고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공터를 지나 1063 안부를 벗어나니 솔봉(1101.8)이 제법 뾰족하니 솟아 기대를 하고 올라갔으나

잡초만이 무성하다.(06:40) 차라리 표지기를 따라 우회하는 편이 나았겠다...

다시금 이어지는 마루금을 올라서서 바삐 20여분 내림길을 밟아 내리니 안내 표지판이 서 있으나 떨어져

 나간 자리에 작은 글씨로 모시골 정상이라 적혀 있다.

안내 지도상에 오른쪽 고항리에 모시골이라는 마을이 있으니 아마도 그옛날 그 동

네 사람들은 이곳 마루금까지 오르면 정상으로 여긴 모양이다. 흙목정상처럼...덕유산 동엽령에

서 용추계곡 하산길에 정상을 물어오던 어느 연인들처럼...

묘적령가는 마지막 고개에서

별 특징도 없는 고개를 지나니 이 높은 곳에 쉼터를 만들고 의자까지 설치를 해 놨다.

고맙긴 하지만 과연 몇 사람이나 이용을 할까 의문이 든다.

입산금지라는 플랑카드를 걸어놓고 묘적령 가는 길은(소백산 국립공원) 막혀있다. 

 대간 길로 가려면 그쪽으로 올라갔어 묘적령을 거쳐 절골로 내려가야 하는데 길을 막아놓았으니

그렇다고 대간 산꾼이 가질 않냐면 그건 아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의 부정적인

편견에 이젠 분노까지 느껴진다. 저 멍충이들의 머리는 언젠쯤 깰까.

묘적령(해발 1000) 정상에서

가는 세월이 서러워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는 단풍 - 어쩜 이게 우리네 인생사와 다를께 뭐 있는가

흐르는 계곡물도 겨우사리 준비에 들어가고

유두봉을 지나 싸리재-솔봉을 거쳐 묘적령에서 단양 사동리 마을로 하산한다. 하산 후 서울 행 차량에 몸을

실었지만 동장군과 풍장군은 항복 선언을 하지 않는다. 참으로 대단한 전력을 가진 군사들이다. 이쯤 되니

산신령에게 빌어보는 수 밖에 없다.

“아이고! 소백 산신령님! 그래도 오늘은 촛대봉에서 불은 밝히고, 웬 종일 고개를 숙이고 걸었으니, 이쯤에서

화를 푸시고 다음 산행 때에는 조용히 진행할 수 있는 길을 좀 열어 주십시오!”

이제 산행길 끝나고 임도에 접어드는 절골(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 소재)

하산길에서 바라본 사동리의 운무

지난 7월 범여가 속세의 때를 벗기위해 알탕하던 자리는 낙엽으로 가득하고

사동리 마을의 저녁풍경

 

                        (범여의 애창곡 - 천년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