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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아산(영인)지맥(終)

아산(영인)지맥 제2구간 - 쌍용고개에서 39번국도까지

by 범여(梵如) 2016. 2. 7.

☞산행일자:  2016년 2월 06일 

☞산행날씨:  맑고 쌀쌀한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16.2km  / 7시간 13분소요

☞참석인원: 수헌, 산으로님과 함께

☞산행코스: 쌍용고개-밀양박씨 가족묘-전진CSM(주)-능선삼거리-쌍용사갈림길-NO7 송전탑-월랑초교 갈림길-251.2m봉

                쉼터-개안사 갈림길-연암정-연암산 동봉-봉수대-쌍용리 갈림길-연암산 서봉-쉼터-비포장 임도-삼거리

               한양조공묘지-소동리갈림길-쉼터-갈림길-안부-갈림길-묘지-여우고개-파인디엔씨 철조망-부활동산-개활지

               태양열 시설-도로공사장-절개지-NO16 송전탑-NO15송전탑-NO14송전탑-둔덕산-음봉터널 위-갈림길

              안부-NO12송전탑-158.1m봉-철조망-어르목고개-평강채씨 가족묘-쉼터-옷나무골 갈림길-222.8m봉-쉼터

              신정리갈림길-안부-206m봉-NO7/8송전탑-국사봉-어라산-안부-묘지-성모복지원 갈림길-쉼터-이동통신탑

              비포장 임도-성내고개-묘지-180.5m봉-사골고개-갈림길-쉼터-갈림길-금산-쉼터-263.1m봉-투구봉

             체육공원갈림길-송전탑-산불감시초소-NO31송전탑-동심사갈림길-286.1m봉-갈림길-비포장 임도

             NO30 송전탑-NO29 송전탑-철계단-크리스탈모텔-628번 지방도-배티고개-145m봉-NO없는 송전탑

             비포장 임도-NO27 송전탑-갈림길-172m봉-177m봉-동양파일 입구-S-oil주유소-39번 국도-아산지하통로 1

소 재 지:  충남 아산시 음봉면, 영인면

 

지난해 크리스마스날 후배 산꾼들과 1구간을 끝내고 다시 아산(영인)지맥 2구간을 나선다
맥산행에 관한 한 후배산꾼들이 워낙 유명하고 공사다망하여 각자의 산길을 타기에 이렇게 만나서
산행하기란  쉽지 않아서 명절이나 기념일에 각자 일정을 맞추어 산행을 하기로 하였는데 이번 구정전이라
40일만에 다시 해후하여 아산(영인)지맥길에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용산발→익산행 무궁화호 열차(07:35)

수헌아우님과 용산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용산역에 도착을 하는데

명절 연휴가 긴 탓인지 용산역 대합실은 그리 붐비지는 않는다.

40여일만에 수헌 아우님과 만나 용산발 익산행 무궁화행 열차는 우리가 내려야 할

성환역은 열차가 서질 않아서 평택역에 내려서 전철로 갈아타고 성환역에 도착하니

서울역에서 성환역으로 곧 바로온 산으로 아우님을 만난다

성환역(驛:08:15)

성환역에서 택시를 타고 쌍룡고개로 향한다(택시비 9,400원)

지명 유래는 조선 시대에 객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찰방(察訪)과 역로(驛路) 관리의 일에 관계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환의 찰방터는 조선 시대에 일신, 경천, 단평, 유구, 연기 등 10개 역을 관장하던 곳으로 1895년에 폐지되었다.

 

택시를 타고 쌍용고개로 향하는 길에 지난번 지나온 직산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직산의 옛 지명은 위례성이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남쪽으로 와서 도읍을 열었다고

하는 詩를 조선시대 문인이었던 대제학 서거정은 이렇게 읊었다.

 

백제가 남긴 터에 잡초만 무성한데

나 감개에 젖어 안타까워 한다

다섯 용이 쟁패를 부리던 시대는 지나갔을지라도

위례성 두 봉황의 울음소리는 남아있는 듯 하는구나

온조 사당은 단풍 우거진 곳에 깊숙하게 자리 잡았는데

성거산을 감싸고 푸른 구름이 비꼈어라

 

그러나 ‘위례성 직산설’을 반론한 이가 있는데 조선시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저술한 ‘아방강역고’이다

다산 선생은 “위례성은 이곳이 아니고 삼각산 동쪽이다” 주장하였다

 

위례성은 현재 서울의 풍납토성이 가장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는 곳이다

직산의 옛 지명이 위례성이기는 하지만 백제의 도읍지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후 직산은 사산현이 되고 고려시대에 비로소 직산이란 지명이 되었다.

이곳은 지형이 높아 천수답이 많고 가뭄으로 피(稷)가  많아 피산으로 부르다가 직산이로 바뀌었다

쌍용고개(83m:09:15)

아산시 음봉면 쌍용리와 쌍암리를 잇는 고개로 아산에서 성환을 잇는

25번 도로가 지나가며 우측 쌍암리 방향으로는 공단이 들어서 있다.

아산시 음봉면에 위치한 쌍용리는 마을 남서쪽에 용마산이 자리하며

자연부락으로는 건너자핫골, 용골, 자핫골 마을이 있는데 건너자핫골

마을은 자핫골 건너 아랫쪽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붙혀진 지명이며

용골마을은 마을 뒤 연암산 기슭에 용바위가 있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이다

자핫골 마을은 상룡이라고도 부르며 용골 윗쪽에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택시를 타고 와서 쌍용고개에 내리니 날씨는 생각보다 차갑다

서둘러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산행을 시작한다.

지난번 들머리 반대편으로 접어드니 송전탑을 건설하고 원상복구한 곳을 지난다

잠시후 좌측에서 이어지는 임도를 만나고 넓은 묘지지대가 나온다

밀양박씨 숭조당

밀양박씨 가족묘를 지나니  전진 CMS공장 휀스가 길을 막는

묘지 이리저리 살펴봐도 길은 다 막혀있다

다행히 묘지 옆쪽에 개구멍이 보이기에 그쪽으로 들어간다

전진 CMS 공장 휀스에 갖혀버린 안내 이정목

공장 정문으로 접어드니 또다시 길은 막혀있고...휀스 아래 수로를 기어서 공장을 빠져 나간다

공장 밖을 나와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향한다

희미한 등로 오르니...

아산(영인)지맥을 가로막고 있는 전진CMS 공장

제도권 등로로 접어드니 이정표가 잘되어 있고 등로는 반질반질하다

쌍용사 갈림길(09:39)

NO7 송전탑(09:40)

251.2m봉(09:48)

처음으로 만나는 이정표...등산객이 그리 많이 다니지도 않는듯한 등로에

구조 이정목과 이정표가 잘되어 있는데 특이한 점은 기업체도 꼭 끼어있다

기업체의 협찬으로 만들었나?... 251.2m봉 좌측으로는 월랑리 갈림길이다

 

음봉면 월랑리의 지명은 동으로는 용화산, 서로는 연암산이 있으며, 남으로는

월랑저수지가 있으며 앞이 트인 아늑한 마을로 용화산 고인돌이 하나 있으며

달이 밝은 마을이라 운중반월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월랑이라 한다.

쉼터(09:50)

251.8m봉을 지나자 운동기구 있는 사거리 쉼터가 나오는데 주민 한명이 운동중이다

직진을 하면 동암리이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사거리 중간에 연암산 안내판이 있다 

 

동암리(銅岩里)는 마을 동쪽에 구리바위가 있어 붙혀진 지명이며 만리산, 말미산 등이 낮은

산지를 형성하여 골짜기가 발달해 있으며 동암저수지가 있어 저수지 수로를 따라 논이

분포해 있고 자연마을로는 대동, 새터말, 주막거리 등이 있다.

대동은 동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옛주추와 기와조각으로 대가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새터말은 동암 남서쪽에 새로 터를 잡아 이룩된 마을이라 새터말이라 불린다.

주막거리는 대동 앞에 위치한 마을이며 마을에 주막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쉼터 이정표

쉼터 사거리에 서 있는  연암산 안내판

연암산으로 향하는 길은 음지라 바닥이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쌍용리 (雙龍里)갈림길(09:55)

용 두마리가 동네를 감싸고 있어 쌍용리라 했다고 한다

나무 계단을 올라서니 연암산성이 나타난다

연암산성 정상의 이정표

정상에 오르니 멋진 노거수 한그루가 연암산성의 역사를 대변하듯 멋진 자태로 범여를 반긴다

우측에 서 있는 연암정으로 발길을 옮긴다

연암정((燕巖亭:10:00)

연암(燕巖)이란 “제비 연(燕)에 바위 암(巖)”인데 제비들이 바위에 둥지를 틀었다고해서

연암이라 불렀다는 속설이 있고 또 다른 설은 과거 장수와 한 여인과의 사랑에 대한 전설이

있어서 불렀다는 속설이 있다.

옛날 음봉 땅에 부모를 오랑캐에게 잃은 한 처녀가 살았다. 그녀는 이곳을 지키는 장수와 사랑에 빠졌는데,

오랑캐가 다시 쳐들어오자 그 장수도 오랑캐와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처녀는 부모와 정인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오랑캐 주둔 부대에 나아가 적장의 침실봉사를 자원하여 마침내 적장을 암살하였으나 처녀도 역시 살해되고 말았다.

적이 물러간 후 마을에서는 그 처녀와 정인을 합장해 주었는데, 그 무덤에서 제비 한 쌍이 나와 이 바위에

둥지를 틀었으므로 그 바위를 제비바위라 부르게 되었으며, 산 이름도 연암산이 되었다고 한다.

연암정에서 바라본 성환의 모습

연암산성(燕巖山城)

아산시 음봉면 소동리와 동암리, 쌍용리 경계에 있는 연암산 동봉과 서봉에 걸쳐있는 산성으로

정상에는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산성의 축성 연대로 보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고려시대까지는 이곳의 지역을 방어하는 산성으로 북방에서 내려오는 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고, 조선시대에는 성 안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연암산 동봉(275m)이다

 

연암산 정상부에 석축(石築)으로 된 산정식 산성(山頂式 山城)이 있는데 연암산 정상부분은 2개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데 해발 292.7m의 서쪽 봉우리와 해발 270m의 동쪽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다.

산성은 동쪽 봉우리에 축조되어 있고 둘레는 약 450m 정도로 추정된다.

성벽은 대체로 붕괴되어 흔적만 남기고 있는데 이 중 남벽과 동벽은 석축(石築)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남벽부의 일부 구간은 제법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여기에는 20㎝ ×50㎝의 자연할석으로 축조하였다.

높이는 약 180㎝ 가량 되었다. 성(城)의 내부는 대체로 북고남저(北高南底)의 지형이다.

남쪽부분에 평탄지가 있어 건물지였을 가능성도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지형상 이곳에 성내(城內)의 물을 처리하는 수구지(水口址)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한편 성안의 동쪽부분에는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축조된 것으로 보여지는 석축의 봉수대가 남아 있다.

둘레가 약 50m 가량 되는 원형의 봉수대로서 높이 1m 70㎝ 가량이 남아 있는 부분도 있다.

이 산성으로부터 북방으로는 낮은 구릉과 평야지대가 펼쳐지고 있어 북방(北方)에 대한 시계가 양호하다.

이 산성에서 서쪽으로는 성내리산성(城內里山城), 동쪽으로는 용와산성(龍臥山城)이 같은 산줄기 상에

조밀하게 분포되어 상호연락이 가능하며, 성의 주향(主向)으로 보아 북방으로부터의 적에 대비하였던 산성이었다

연암산성 봉수대(10:02)

아산군 음봉면 관내의 중앙부에 위치한 연암산은 남으로는 동암리, 북으로는 원남리, 두 마을 의

경계에 있는 웅장한 산인데 이 산의 정상에 제비집 모양으로 생긴 큰 바위가 있어 '제비바위'

또는 '연암(燕岩)'이라고 하는데 이 연암산 '제비바위'옆에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는데 둘레 70m,

높이 1.5m, 폭 22m,넓이 370㎡의 석축으로 되어 있다. 지금은 봉화 둑이 모두 허물어져서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며 제비바위 위에 수백년 묵은 한 그루 괴목(槐木)이 우람하게 서 있어서 50여리(20km)

밖에서도 뚜렷하게 보였고, 제비바위와 봉수대는 거북의 등판처럼 보이고 괴목은 거북의 머리처럼

보여서 우리 고장에서는 '거북선 바위'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1980년 경에 수명이 다하여 고사(枯死)하였으므로, 이제는 '거북선 바위'의 모습도 사라지게 되었다.

연암산 봉수대는 남쪽으로 30여리 떨어진 천안군 풍세면 삼태리의 태학산(太鶴山) 봉수대의 봉화를 이어

받아서 북쪽으로 25리 떨어진 평택 망해산(望海山) 봉수대에 전달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아산현 봉수조(牙山縣 烽隨條)에 오암산 봉수 남응 천안군 대학산 북 응직산 현 망해산(烏岩山烽燧 南應天安郡

大鶴山北應稷山縣望海山)」이라 기록되어 있다.

참으로 개념없는 인간이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연암산성 안에 개인 체육시설이 이라니...

언 넘이 갖다 논지는 몰라도 어이가 없다... 거기다 방치한 아산시 관계자도 개념없기는 마찬가지다

역사시간에 졸았는지 아님 머리가 나빠 이해를 못했는지는 몰라도... 한심한 인간 같으니라고....

 

요즘 자꾸만 인간성이 상실되고 있는건 문.사.철 교육부재로 인해 치열한 생존경쟁속에

문.사.철 교육을 홀대한 반대 급부가 아닐까... 그리고 이웃 일본과 중국에 무시당하는 것도

역사교육 부재이다... 자기 역사도 모르면서 어떻게 생존경쟁에서 승리한단 말인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위안부 문제 부정도 우리 민족의 역사교육 결여로 무시당하는 것이다

역사교육이 투철한 이스라엘을 보라... 우리보다 훨씬 작은 이스라엘을 전 세계 어느 국가가 무시하나...

아산시장 나리는 책상머리에서만 폼잡지 말고... 당장 저 운동기구를 치우시요

연암산성에서 씁씀함을 느끼며 서봉으로 향한다

연암산성과 봉수 안내판

쌍용리 갈림길(10:05)

호젓한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

가야할 국사봉, 투구봉, 금산의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연암산 서봉 삼각점

연암산(燕巖山:292.7m:10:13)

연암산 정상에는 2개의 봉우리로 해발 292.7m의 서쪽 봉우리와 해발 275m의 동쪽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으며 해발275m 동쪽 봉우리에 둘레 약 450m 정도의 연암산성이 축조되어 있으며,

성안의 동쪽부분에 원형의 봉수대가 아직도 남아 있다.

정상에는 삼각점과 산불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국립지리원에서 세운 삼각점 표시가 있다

 

그러나 이정표를 그렇게 친절하게(?) 세운 아산시는 정상석 세우는데는 인색하다

준.희 선배님의 산패가 연암산임을 알려줄 뿐이다... 이곳을 연암산 서봉으로 보면 되는데

이곳이 실질적인 연암산 정상인데 동봉에 비해서 초라하기 그지없다

연암산 정상에 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산으로님... 역쉬 고수입니다

연암산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카메라

벤취가 있는 쉼터를 지나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이정표는 무지하게 잘되어 있다... 10m 단위까지 표시되어 있는데 과잉 친절을 받는 느낌이다

임도(10:20)

임도를 따라서 내려오니 ㅏ자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을 한다

좌.우측으로는 묘지가 나오고 등로는 무쟈게 좋다... 우측에는 한양조공&전주이씨 부부묘가 있다

소동리 갈림길(10:25)

묘지에서 편한길을 따라서 내려오니 좌측으로 약수터가는 임도가 나오는데

이곳이 소동리 갈림길이다... 우측 내리막길이 소동1리 방향인데 지맥길은 직진이다

 

소동1리(동리 마을)는 중리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며 소동리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
다. 연암산 북족에 위치한 마을로 전, 답에 가뭄과 토질이 안좋아 들판에 소를 많이 매어 놓
았던 유래로 소동으로 이름지어짐. 동리라는 유래는 소동2리 자연부락이름인 중리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이름 지었다고 한다.

쉼터(10:27)

편안한 길로 내려서니 가뭄탓인지 먼지가 많이나서 목이 아플 정도이다

안부(10:33)

갈림길(10:35)

독도에 주의할 구간이다... 뚜렸한 직진을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지니...

눈쌓인 기독교 공동묘지가 있고...

우측에 묘지를 두고 내려가는데...

묘지를 따라 내려오다가 고속도로처럼 넓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숲으로 들어선다

산꾼들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내려서니...

차량소리가 들리면서 2차선의 3번군도가 보이고 지맥길에는 (주)파인디엔씨가 길을 막고있다 

여우고개(10:42)

아산시 음봄면 원남리와 동암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3번군도가

지나며 고개 정상에는 (주)파인디앤씨라는 공장이 자리를 잡고있다

이 고개에서 조금가면 윤보선 대통령의 묘소가 나온다

 

아산시의 무개념한 이정표 체계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곳이 여우고개라는데 여우고개의 표시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정표에는 여우고개를 열심히 표시해놓고... 지나온 연암산도 마찬가지다

여우고개는 한참을 지나서 알아 차린다...공무원들의 탁상행정... 간판업자만 배불려주려나..

고개를 가로질러 급경사의 절개지로 오르는데 우거진 잡목이 엄청난 태클을 건다

죽을 힘을 다해 능선을 오르니 지맥길을 점령하고 있는 공장 철조망이 나온다

철조망을 따라가는데 맥 산꾼들이 우회를 하는지 등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원칙대로 가는 산꾼들의 시그널은 가끔씩 보인다 

철조망을 지나자마자 넓은 묘지가 나오는데 천주교 공동묘지인듯한 부활의 동산이다

먼저가던 후배 산꾼들이 휴식을 취하려는지 베낭을 내리는데 기왕 쉴 것이면 좀

이르긴 하지만 점심을 먹고 가자면서 점심상을 펼친다

날씨는 제법 쌀쌀하고 바람은 꽤나 차갑다... 베낭에서 자켓을 꺼내 입는다

공동묘지에서 바라본 물한산(수한산)과 동암저수지

묘지에서 바라본 조망은 미세먼지 탓인지 조망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맞은편에는 물한산(284m)과 ( ‘물 수(水)자를 써서 수한산(水漢山)’이라 부르기도함)이

보이는데 여기서는 보이질 않지만 그 너머로 꾀꼴산이 있다

야트막한 산이긴 하지만 물한산성과 꾀꼴산성이 연결되어 있는데

1,500여년전에 축성된 백제시대에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던 곳이란다

점심만찬(11:15~12:35)

40여일만에 만난 후배산꾼들과 떡만두국을 끓여서 소주를 곁들인 점심...

서울이 가까운 탓이라 맥산행답지않게 1시간 20분의 여유로운 점심식사를

하면서 늘 맥산행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다

오랫만에 여유로운 식사를 마치고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부활의 동산에서 만찬을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

만찬장소를 다시한번 뒤돌아보고...

넓은 임도를 지나니 잡목이 무성한 개활지가 나오고...

개활지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능선에 접어들자마자 절개지를 만나는데...

참으로 개념없는 ××들

이곳은 음봉에서 영인으로 이어지는 신설도로 구간을 엄청나게 깊이파서

도로를 만들고 있는데 토목공사에 전문 지식이 없는 내가봐도 너무한 느낌이다

이런 곳은 기존의 산을 그대로 두고 드릴쉽으로 터널공사를 하면 자연 훼손도 안하고

도로를 개설을 할 수 있을 터인데 저렇게 깊이 파서 공사를 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리 해놓고 동물이동통로를 신설하는 의도는 뭣이란 말인가?

내가 보기엔 터널을 뚫으면 공사비도 절감되고 자연도 보존될 터인데...

허리가 잘라진 아산(영인)지맥길

신설도로 옆 절개지를 따라서 곡예하듯 내려간다

절개지를 내려서니 좌측 묘지가 있고 태양광 단지가 보인다

포장도로를 지나 도로 공사장으로 올라선다

음봉~영인간 도로공사장(12:45)

배수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NO16송전탑(12:52)

우측으로는 벌목지가 나오고 그 아래는 골재 야적장이 보인다

좌측의 꾀꼴산 아래로 신설된 용두터널이 보인다

NO15송전탑(12:57)

등로에서 바라본 음봉면 원남리(院南里)의 모습

옛날 한양으로 다니던 길목으로서 어느 한 원님이 요로원에 있는

주막에 머물면서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원남리라 불리웠다고 한다

NO14송전탑(13:03)

둔덕산(屯德山:25.28m:13:05)

아산시 음봉면 원남리와 삼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그냥 밋밋하고 두리뭉실하여 그냥 지나가기 딱 좋은 산이다

음봉터널 위(13:10)

NO12 송전탑(13:12)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생긴 넓은 임도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안부(13:15)

158.1m봉(13:20)

NO11 /12 대형 송전탑이 지나가는 곳인데 정상은 잡목만 무성하다

이곳에서 어르목고개 내려가는 등로 가운데는 음봉배수지가 가로막고

있어서 윗쪽이나 아랫쪽으로 우회해서 내려가야 한다

우리는 음봉배수지 윗쪽 철조망을 따라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어르목 고개로 내려선다

후답자들은  158.1m봉에서 아랫쪽(음봉배수지 방향)으로 내려서야 고생을 덜할듯 싶다

어르목고개에 있는 음봉배수지

어르목고개(13:30)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와 원남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45번도로가

지나가며 음봉배수지와, 안산김씨 효열비가 고개 양 옆에 있다

국수봉에 이어진 山勢를 사람으로 치면 어르목고개가 무릎에 해당되는데

이순신장군의 묘소 뒷산인 국수봉에서 큰 인물이 난다하여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산을 파헤쳐 길을 만들어 무릎을 끊어놓아서 기맥의 기운이 흘러나와 음봉 국민학생

사이에 문둥이가 나온다 여우가 나온다 등 온갖 괴소문이 난무하던 고개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조선시대 명종때 임꺽정이 이곳에 웅거하며 조정으로 가는 곡물이나 진상품을

털었으므로 민초들이 어울려서 넘었다해서 어르목 또는 어라항 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안산김씨 효열비

도로를 건너서 바라본 158.1m봉의 모습

평강채씨 가족묘(13:33)

평강채씨 가족묘를 우측에 두고 걷는다

오름길에는 낙엽이 엄청나게 미끄럽다

암릉구간을 지나고...

쉼터 

등로에서 바라본 음봉면 원남리의 모습

꽤나 큰 봉제저수지가 마을 가운데 있다.

옷나무골 갈림길(13:45)

원남리에 있는 마을로서 옻나무가 많아서붙혀진 자연마을인데 옷나무골이라... 맟춤법이 틀린듯하다

222.8m봉 정상에 오른다... 한현우님께서 國師峰라는 표지기를 걸어놨다

222.8m봉 삼각점(△평택4446)

222.8m봉(13:48)

정상에는 삼각점과 국토부에서 설치한 삼각점 표지판이 있고 222.8m봉 산패가 보인다

한현우님께서 國師峰이란 시그널이 보이고 조금을 지나면 쉼터와 체육시설이 보인다

아산시의 모든 이정표에는 이곳을 국사봉이라 설정하고 있고 대다수의 많은 산꾼들이

이곳을 국사봉이라 하는데 영진 1/50000의 지도에는 다음 봉우리를 국사봉이라 해서

조금은 혼란스럽다

222.8m봉에 있는 쉼터와 체육시설

오늘 내가 걸어야 할 능선의 모습

신정리 갈림길(13:50)

음봉면에 속해있는 마을로서 대부분이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마을 가운데 커다란 신정저수지가 있고 자연마을로 대정리, 신리, 요란, 장골마을이 있다.

대정리는 장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요란장이 섰을때 대장간이 있었다고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신리는 요란마을 옆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붙혀진 이름으로 요란과 신리는 한 마을이 됐다.

요란은 신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옛날에 요로원이 있었다고하여 요로원 또는 요란으로 불리고

시장이 있어서 요란장이라도 불렀다고 한다

장골은 요란 남서쪽 안골짜기에 있는 마을로서 신정리 월추산성터가 있다

응달진 내리막길 능선은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3:55)

국사봉(國師峰:222.8m:14:03)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와 신정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조금전에 지나온

개념도상의 국사봉이 있었고 아산시에서 설치한 이정표도 지나온 곳을 국사봉이라

했는데 맨발님은 이곳을 국사봉이라 표기를 해놨다... 조금은 혼란 스럽다

그런데 동행한 수헌. 산으로님은 이곳이 국사봉이 맞다고 한다.

집에와서 영진 1/50000의 지도를 보니 이곳이 국사봉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도는 225m로 표기가 되어 있다.

 

국사봉이란 지명은 전국에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국사봉의 ‘사’자를 사(思), 사(事) , 사(師), 사(祀), 사(祀)등 여러가지로 쓰고 있으나

한자의 자의(字意)는 별 의미가 없다

국사봉의 ‘국사’는 대개 무속사회의 ‘굿’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어느 산꾼이 어라산이라 붙혀놨고 고도도 214m라 해놨는데 전혀 맞질않다

표지기 하나 붙일때도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붙혔으면 한다

어라산(於羅山:214m:14:10)

아산시 영인면 삼거리와 신정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이정표(← 국사봉 900m →금산 2340m)와 벤취가 있으나 정작 어라산의 표식은 없다

오늘 이 구간을 걸으면서 아산시의 산에 무지... 정말 짜증이 난다

이정표에는 10m 단위까지 표시를 해놓고는 정작 정상에는 그 어떤 표시도

없으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이충무공의 묘지가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영춘편에 ‘어라산은 현 서쪽 58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안부(14:13)

안부에 있는 이정표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니 좌측으로 무명묘지 한 기가 보이고...

쉼터(14:20)

터에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오니 좌측으로는기독교인인

平山申公과 慶州金氏 묘지가 있고 바로 앞에는 이동통신탑이 서 있다

묘지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넓은 임도로 내려간다

등로옆에 있는 묘지

성내고개(14:22)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와 영인면 선내리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지명유래는

성내마을에 따온듯하며 성내리는 대분분의 지형이 낮으막한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관계용수가 풍부하여 논농사가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자연마을로는 안골, 서촌말, 쇠재 등이 있는데 안골은 성내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금산의 북쪽 안에 있다고 붙혀진 지명이며, 쇠재는 금산 밑에 마을로 질그릇점이

있으며 철이 생산되었다고 해서 쇠재라고 불린단다.

촌말은 성내리의 서쪽에 있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고개를 가로질러 민가 옆으로 올라 등로로 접어든다

등로에 오른 다음에 묘지를 지나면서 호젓한 산길을 걷는다 

범여가 너무도 좋아하는 호젓한 산길... 딱 내 스타일이여

180.5m봉(14:32)

등로 아랫쪽에는 청주한씨 가족 납골묘가 보인다

사골고개(14:35)

음봉면 산정리 사골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서 가루고개라고도 부르며

사골(삿골) 마을 골짜기에 사기점이 있었다고 해서 사깃골 또는 삿골이라

불리다가 사골로 바뀐듯하며 조금을 오르니 통나무 계단이 나온다

사골마을 갈림길(14:40)

음봉면 산정리는 본래 사정리, 산솟말, 삿골, 나뭇골, 사기리로 이루어졌으며,

산소와 사정의 이름을 따서 산정리라 하였으며, 이충무공 묘소로 유명한 곳이다

금산(錦山:251m:14:45)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와 성내리, 음봉면 신수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산 위에 돌로 쌓은 성100여간이 있으므로 ‘성재’라고도 부른다

1872년 지방지도(아산)에 따르면 일북면 동심산과 수항치 사이에 금산(錦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동쪽인 음봉면 삼거리에 이충무공 산소가 있으며 서쪽은 아산의 옛고을터가 있다

금산 아래에 있는 영인면 성내리 금성마을은 쇠재라 부르며 옛날 질그릇을 구웠다고 한다

돌로 쌓은 성터를 흔적을 찾아 보았지만 잘 보이질 않는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리고 잠깐동안 곶감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물한모금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성내마을회관 갈림길

263.1m봉(13:05)

호젓한 소나무길을 걷는다

투구봉(255m:15:15)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와 신정리에 걸쳐 있는 암릉으로 되어 있는 봉우리로

멀리서 바라보면 투구처럼 보인다고 붙혀진 지명인데 국수봉(國帥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늘 산행중에 전망이 가장 뛰어난 곳으로 아산 온천과 가야할 다음구간에 가야할 영인산이

한 눈에 들어 오지만 아쉽게도 미세 먼지로 인해 흐릿하다는 점이다

 

『조선지형도』에는 삼거리와 신정리 사이에 요로원이 있고 그 서쪽으로 국수봉(國秀峰)이

한자를 달리해 나타난다...국수(國帥)는 나라의 장수를 뜻하지만 대개 국사(國師)가 변하여

국수(國帥)로 부르게 되었다는 견해도 있으며 산에 돌로 쌓은 성이 있어 둘레가 364척, 높이가

10여척이 되는데 어리목 고개에 있는 성이라 어리목산성 또는 어라항 산성으로 불린다 

투구봉에서 바라본 아산온천의 모습

아산온천은 1987년에 발견되어 1991년에 관광지로 지정되어 개발되었다.

수질은 중수산나트륨을 포함한 알카리성 온천으로 20여종의 무기질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체감이 매끄럽고 혈액순환촉진, 세포재생촉진작용, 신경통,

관절염, 고혈암, 위장병, 풍, 피부미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변이 야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공기가 맑아 삼림욕까지 겸할 수 있는 곳이다

아산온천 너머로 무명산이 뚜렸이 보이지만 지맥길은 아니다

체육공원 갈림길(15:22)

NO32 송전탑(15:25)

산불감시초소(279m:15:30)

아무것도 보이질 않은곳에 산불감시초소...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NO31 송전탑(15:31)

넓은 임도를 따라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진다

281.6m봉(15:35)

정상에 삼각점이 있는데 이곳부터는 표식이 평택에서 아산으로 바뀐다

그런데 스마트폰에 깔려있는 트랭글 앱에서는 이곳을 금산이라고 한다

오늘 산행은 여러군데가 이래저래 산꾼 범여를 헷갈리게 한다

286.1m봉 삼각점(△아산446/78.8복구)

286.1m봉 정상의 모습

286.1m봉에서 바라본 고용산(高聳山)의 모습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와 신봉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에는 초목이 별로없고

돌이 많은 악산(嶽山)으로  들 가운데 솟아 있으므로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용산(高勇山)은 현 북쪽 12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여지도서』에는 “고정사(高井寺)는 지금 못쓰게 되었다. 고용산(高勇山)에 있다”라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1872년지방지도』(아산)에 이북면 동쪽에 고용산(高勇山) 이

표기되어 있으며,『조선지형도』에는 영인면 신봉리와 금성리 사이에 고용산(高聳山)이

한자를 달리하여 기재되어 있다

한편 고용산은 문헌에 따라 ‘용(勇)’ 용(聳)’ 혹은 용(괟)으로 달리 표기하고 있다

돌성이 있어서 쇠성 또는 금성으로 다른 이름으로도 표기하고 있다.

 

또 고용산은 ‘고름산’이나 ‘고령산’의 방언이다

전설에 의하면 병자호란때  인근의 주민들이 이 산으로 피난을 하였는데 적병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봉우리로 올라오자 주민들이 돌을 내리쳐서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동심사 갈림길(15:40)

286.1m봉 지나 1분정도 걷다가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희미한 등로로 꺽어지는데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동심사는 고려시대 충청도 아주(현 아산시)에 있었던 사찰로서 1279년(충렬왕 5년)에

충렬왕의 장자인 강양공이 들렸다는 절이다.

강양공은 충렬왕의 장자였지만 세자로 책봉되지 못했으며 동심사에 머물다는 기록이  있다

비포장 임도

동심사 갈림길에서 내려서는 길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급한 내림길을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넓은 임도를 만난다

NO30 송전탑(13:42)

다시 편안한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NO29 송전탑(15:47)

또다시 등로는 희미하고...

묘지를 지나 내려오니 절개지가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수로를 따르다가 다시 우측으로 꺽어지니...

이정표가 나오고...

철계단을 내려선 다음에 공터로 내려서니...

크리스탈 모텔(15:50)

온천지구에 있는 모텔이 지맥길을 가로 막는 바람에 모텔 주차장을 가로 지른다

모텔 주차장을 빠져나와 628번 지방도쪽으로 향한다

628번 지방도

도로 옆쪽의 옛길을 따라서 배티고개 방향으로 향한다

베티고개(13:55)

아산시 음봉면 신수리와 영인면 아산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628번 지방도 지나간다

도로 우측에는 아산온천지구 모텔들이 보이고 맞은편에는 아산리가 보인다

좌측으로는 혁신사관학교 이정표가 있다

앞에 보이는 내리막 저곳이 아산의 모태가 되었다는 영인면 아산리이다.

 아산현지도(牙山縣地圖, 규10428), 조선후기 지방지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 아산현지도(牙山縣地圖, 규10428), 조선후기 지방지도, 서울대

 

현재의 아산시는 조선시대 아산현, 온양군, 신창현이 합해진 것이다.

아산현은 아산시의 북쪽 지역인 영인면, 인주면, 둔포면, 음봉면, 염치읍 일대이다.
백제의 아술현(牙述縣), 신라의 음봉(陰峯), 음잠(陰岑), 탕정군(湯井郡), 고려의 인주(仁州),

아주(牙州)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부터 아산(牙山)이 되었다.

연산군대에는 잠시 경기도에 속하기도 했다.

동쪽을 위로 하여 그린 지도이다. 지도 왼쪽 아래는 아산만을 그린 것이다.

 ‘서통대해(西通大海)’가 적혀 있다. 서쪽으로 바다와 통한다는 뜻이다.
지도 오른쪽의 하천은 곡교천이고 지도 왼쪽에는 아산만 방조제가 생겼고 아래쪽은 삽교천 방조제가 생겼다.
지도 가운데 많은 건물이 그려진 곳이 읍치(邑治)이다. 영인면 아산리가 중심부였다.

아주관(牙州舘)이 객사인데 현재 영인초등학교가 객사터이다.
교궁(校宮)이라 이름붙여진 곳이 아산향교이다. 아산만 근처에 작은 성곽이 보이고 그 안에 건물이 그려져 있다.

충청도 일대의 세곡을 모아 배를 통해 한양으로 옮기던 공세창(貢稅倉)이다.
지도 여백에는 아산현의 연혁, 면 명칭, 호수(戶數) 등이 기록되었다.

이곳에서 배티고개에서 좌측 임도로 올라서는데 원 지맥길은 능선이나

최근에 송전탑 설치공사로 만든 임도를 따라서 편하게 지맥길을 이어간다

임도에 오르면서 바라본 원지맥길

신설 송전탑(16:02)

신설되는 송전탑은 아직 전선이 연결되지 않았고 NO도 부여받지 못했다

송전탑 설치 때문에 생긴 도로를 따라가다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NO27 송전탑(16:10)

임도로 내려 왔다가  또다시 능선으로 접어든다

능선으로 오른 다음 우측으로 꺽어지니 172m봉이 나온다

172m봉(16:10)

177m봉 갈림길(16:15)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하니 지맥길은 직진인데 대다수의

산꾼들이 우측으로 시그널을 걸어 놨는데 우린 원칙대로 직진길로 향한다

마지막 능선에서 잡목의 강렬한 저항을 받는다

능선 좌측으로는 동양파일 공장이 보이고...

동양파일 공장입구(16:20)

동양파일 야적장의 모습

동양파일 도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39번 도로가 나오는데 왜 선답자들이 우회로를 내려간 지 알겠다

도로 너머가 지맥길인데 절개지로 내려설 수도 없고 차량이 너무 많아 도로를 무단횡단할 엄두가 안난다.

하는 수 없이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원래의 아산(영인)지맥길...39번 국도가 지맥길을 가로막고 있다

주유소가 있는 곳까지 내려간다

39번 국도(16:25)

39번 국도에서 조금 더내려가서 지하차도로 향한다

아산지하통로 1

산행을 종료하다(16:28)

아산지하통로 1을 빠져나와 산행을 종료하고 영인면 택시를 불러서 온양온천역으로 향한다

오늘이 구정 명절 밑인데 택시는 금방온다... 10분 조금 지나 온양온천역에 도착한다(택시비 9,500원)

온양온천역(16:55)

온양온천은 현존하는 문헌기록상 그 출전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백제시대,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그 역사가 근 1,300여년이 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온수군(溫水郡)이라 칭하여졌던 것으로 보아 실제 온천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 온 기간은 약 600여 년이 된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세종, 세조,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께서 온궁(온양행궁)을 짓고

휴양이나 병의 치료차  차 머물고 돌아간 사례가 많고 신정비, 영괴대 등 다수의 관련 유적들이

남아 있어 왕실온천이라 일컫는다.

정조 19년(1795)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영괴첩』의 온양별궁전도에는 내정전, 외전전,

탕실 등의 중앙 내부전각은 크고 자세히 그려져 있고, 외각 사면의 궁장, 사문, 각사는 작고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현재 아산에는 왕실온천 온양온천 외에 신라시대부터 약수로 이름난 도고온천과 1987년에 발견되어

1991년 관광지로 지정된 레저형 아산온천까지 3대 온천특구가 조성되어 있다 

 

온양온천역에 도착하니 열차 시간이 1시간정도 남았기에 근처에 있는 순대국집에

들려서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전골에다가 소.맥으로 거하게

마시고 저녁까지 해결한 다음에 온양온천역에서 열차타고 영등포역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