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佛之宗家 불지종가
- 國之大刹 국지대찰
- 부처님의 으뜸 가는 사찰이요
- 나라의 큰절이네.
통도사는 ‘불지종찰(佛之宗家)’부처님의 으뜸 가는 사찰이요,
‘국지대찰(國之大刹)’나라의 큰절이라는 현판이 일주문에 걸려 있다.
불교에서는 일승의 법이 불지(佛地)에 들어가는 문호(門戶)가 된다는 뜻이다.
이는 불교에서 소중히 여기는 삼보 중에서도 석가모니 부처님이야말로 불교 교단의 창시자요,
모든 중생의 스승으로서 불교의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그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통도사는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받들어 지는 곳이다.
통도사가 위치하고 있는 취서산(鷲棲山)은 영축산(靈축山)이라고도 한다.
영축산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 등 많은 설법을 하신 인도 마가다 왕국의 수도 왕사성의
동쪽에 있는 영축산과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그렇게 불린다고 하며,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앉은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취서산이란 이름도 갖고 있다.
통도사는 서기 643년 신라의 대표적인 고승인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에 의해 창건되었다.
신라 귀족인 진골 무림(茂林)의 아들로 태어난 스님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출가를 하였으며, 왕의 거듭되는 부름에도 산중에서 수행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서기 636년 제자들과 함께 당나라로 건너간 스님은 선덕여왕 12년(643)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부처님이 친히 입으셨던 가사와 사리, 패엽경(貝葉經)을 모시고 귀국하자 선덕여왕은 진흥왕 3년
(549) 양나라에서 보내온 사리와 함께 이곳에 봉안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통도사의 시초라고 한다.
통도사의 창건설화를 살펴보면 자장스님이 처음 절을 세우려고 할 때 이곳은 큰 연못이 있었고
아홉 마리의 용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연못을 메워 절을 짓고자 하였는데 절을 짓자면 용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만 했다.
스님은 신력(神力)으로 여덟 마리의 용들을 제도해 하늘로 승천시키고 나머지 한 마리는
이곳에 남아 사찰을 지키겠다고 하여 작은 연못을 만들어 그곳에 살도록 했다고 한다.
이곳이 지금의 대웅전과 삼성각 사이에 있는 작은 연못으로 구룡지(九龍池)라고 불린다.
구룡지를 메우고 이곳에 통도사가 창건되자 자장율사는 계단을 세우고 사방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계법(戒法)을 설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신라는 비로소 계율을 존중하고 불법을 바르게 믿는 나라가될 수 있었다.
통도사를 ‘불지종가(佛之宗家)’라고 하고 자장스님을 율사(律師)라고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통도사는 꾸준히 사세를 확장하여 고려시대에는 사찰을 중심으로 네 군데에 사유지의 경계를 표시하는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세울 만큼 번창하였으나 통도사는 국가의 변란이 있을 때마다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것은 이곳이 바로 불교신앙의 최고 보물인 사리를 봉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임진왜란 때에는 절이 거의 불타고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 만이 살아 남았다고 한다.
보물 제144호로 지정된 금강계단 앞의 대웅전은 인조 23년(1645) 우운(友雲)화상에 의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 내부에는 사리를 모신 이유로 불상이 없고 대신 거대하고 화려한 수미단(須彌壇)이 좌대를 떠받들고 있다.
통도사는 지금도 많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으며 통도사 역사의 대부분은 사리신앙을 지키고 가꿔온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http://blog.daum.net/sws8007
통도사 일주문의 중앙 현판은 「靈鷲山通度寺」라고 쓰여져 있으며 흥선 대원군의 필적이다.
통도사 일주문 주련 「佛之宗家 國之大刹」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書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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