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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덕천(웅석)지맥(終)

덕천(웅석)지맥 제1구간 - 백무동에서 외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6. 9. 12.

☞ 산행일시: 2016년 9월 11일

☞ 산행날씨: 하루종일 높은 습도에 짙은 운해

산행거리: 도상거리 9.7km + 어프로치  약11km + 알바 약2km / 11시간 20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백무동 정류장-백무교-백무동 탐방 안내소-야영장-하동바위-참샘

                  소지봉-돌탑-쉼터-1,637봉-장터목 산장-제석봉-안부-통천문-천왕봉

                  법계사갈림길-안부-철계단-안부-중봉-써래봉 갈림길-헬기장-하봉

                  촛대봉갈림길-절벽바위-공터-묘지-갈림길-갈림길2-두류봉-갈림길

                  국골갈림길-공터-유평리갈림길-1,261봉-허공달골 갈림길-산죽안부

                  독바위 갈림길-산청 독바위-부부바위-쑥밭재-새봉-1,315봉-1,250봉

                  공터-새재-961.7봉-외고개-면양목장 터-외곡마을

소 재 지: 경남 햠양군 마천면 /산청군 시천면, 삼장면, 금서면


지난주 견두지맥길에 너무나 육신이 힘들었던 탓에 이번주엔 식사와 술을 상당히 자제한다

그러면서 한 주가 어케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명절 대목밑이기도 하거니와 현장 2군데를 마무리하려니 정신없이 바쁘다남들은 바쁘게 사는데

북녘땅의 귀때기 새파란 지도자란 넘은 2,000만 민초들이 배고픔에 고통을 받고 있는데 뭔 넘의

돈이 있는지 마치 핵무기와 미사일을 장남감 갖고 놀듯이 시도때도 없이 펑펑 쏘면서 우리나라를

겁박하고 있는데도여의도의 지체 높은 나리들은 여.야 할것 없이 그런것엔 아예 관심도 없고 자기의

이익에만 매몰되어 있는 이 나라의 현실... 참으로 가관이 아니다

이틀전 외국에 사는 친구한테서 장문의 메일이 왔다... 신문엔 한국이 난리라고 하는데

불안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하면서 큰 걱정을 한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러고 보면 한국 사람들... 간이 큰 건지... 둔감한 건지...수천만명이 나라없는 설음을 당하면서

유랑생활을 하는 쿠르드 민족과 똘똘뭉친 이스라엘국가가 얼마나 소중한 지....

우리나라 지체높은 지도자분들...제발 정신 차립시다

덕천(德川:웅석지맥:熊石枝脈) 개념도

지리산 천왕봉(1915m)에서 북쪽으로 가지를 쳐 중봉(1875m),하봉(1755m), 쑥밭재를 지나

1315m봉에서 동진하여 왕등재,밤머리재를 지나 웅석봉(1099.3m)어깨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백운산(515m),을 일구고 고도를 바짝 낮춰 아미랑재,제마재를 지나 경남 진주시 귀곡동

진양호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54.5km 산줄기로 덕천강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덕천지맥이라고 부른다

필요한 지도 : 1/50.000 ;웅봉, 산청, 곤양, 진주
1/25.000 ;가흥, 대성, 생초, 사리, 단성, 대평, 진주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 터미널발→백무동행 23시 59분 버스표

지난주 지리산 언저리에서 개고생한 걸 만회하기 위해 오늘은 웅석지맥 첫 구간을 가기 위해

밤 11시 10분에 집을 나서 동서울 터미널로 향한다...오늘 산행구간은 모든 지맥길이 마찬가지만

들머리가 천왕봉이라 접속구간이 상당히 길기에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백무동까지 가야한다

천왕봉을 접속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하나는 남부터미널에서 중산리가는 심야고속을 타고

천왕봉으로 오르는 방법과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으로 가서 오르는 방법이 있는데 중산리 방향은 거리는 짧으나

급경사의 오르막이고(5.4km), 백무동은 거리는 기나(7.2km) 중산리에 비해 완만하여 백무동을 택한다

평소같으면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등산객으로 꼭 차야할 백무동행 버스는 추석밑이라

그런지 오늘은 손님이라봐야 15명 정도밖에 되질 않고, 그 중에서 등산객은 10여명 정도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평소의 버릇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가 함양J.C를 지나면서 잠에서 깬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함양, 인월, 마천을 거쳐서 03시 40분쯤에 백무동에 도착한다

백무동 버스 정류장(03:40)

버스에서 내리니 지리산 골짜기라 그런지 날씨는 생각보다 쌀쌀하다

장비를 점검하고 헤드렌턴을 켠 다음 산행을 준비한다

천왕할매상 표시석

백무동탐방센터 우측에 있는 천왕할매

천왕할매는 지리산의 수호신으로 마고할미(麻姑할미)는 전설에 나오는 신선할미로

새의 발톱같이 긴 손톱을 가지고 있으며 마고할미가 긴 손톱으로 가려운데를 긁는다는

뜻으로, 바라던 일이 뜻대로 잘 된다는 의미로 마고소양(麻姑搔癢)이라고 하는데 옛부터

전해 전설속에 내려오는 노파를 의미하기도 한다.

 

천신의 딸 마고성모가 하늘에서 내려와 여덟명의 딸을 낳아 모두 무당으로 키워

팔도로 보낸 다음자신의 뒤를 잇게하고 자기는 무조(巫祖)가 되었다는 천왕할매

웅석지맥의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천왕할매를 찾아뵙고 첫 발걸음 내딛는다

옛날에는 천왕봉으로 기도를 드리러 가는 무당들로 붐비었다고 해서 '100명의 무당이 살았다'는

뜻의 '백무(百巫)'로 표기하였던적이 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백무(白武)'로 그 뜻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백무동 탐방 안내소 입구(03:55)

백무동 탐방안내를 지나 장터목으로 향하는데 경기도 광주에서 왔다는 등산객 한명이

지리산에 처음 왔다고 하며 25일에 부부와 함께 지리산을 와야하는데 사전답사 형식으로

왔다고 하면서 세석에서 장터목으로, 그리고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택한다고 한다

나보고 지리산을 몇번이나 왔냐고 묻길래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정확히 모르기에...

세석으로 가겠다는 등산객이 자신이 없는지 나를 따라 장터목으로 향한다

백무동 야영장을 지나 서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어둠속에 이 등산객은 계속해서 이것저것을 묻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하동바위를 어둠속에 지나친다

조금을 더 올라가니 새로 계단공사가 한창이다

계속해서 올라오는데 갑자기 뒤에 따라오던 등산객이 보이질 않는다

참샘(05:00)

헤드렌턴에 몸뚱이를 의지한 채 부지런히 올라오니 참샘이 나온다 

샘 위에 있는 바가지로 시원한 물한모금을 마시고 선 채로 휴식을 취한다

5분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장터목 산장으로 부지런히 올라간다

나뭇잎 사이로 별이 초롱초롱하게 보이는데 지금으로선 장터목에서 일출을 보긴 힘들듯 싶다

소지봉(燒紙峰:1,312m:05:20)

소지(燒紙)는 신령에게 비는 뜻으로 종이를 불살라 공중으로 올리는 것을 소지라고 하는데

백무동은 지리산에서 신내림을 받는 무속인들이 참샘위에 소지봉에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마고할미에게 소지를 올려 보낸것이 소지봉의 유래라고 한다.

또다른 유래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이곳 지리산에서 祭를 지낼 때 아무리 소지를

올려도 높이 올라가지 않아서 지리산을 전라도에 귀속시켰다는 설도 있다

돌탑(05:50)

여명이 밝아지기 시작하면서 주위의 사물이 보이건만 잔뜩낀 짙은 운무가 지리산을 휘감고 있다

쉼터(06:00)

쉼터 이정표

헤드렌트을 벗어 베낭에 넣고 장터목으로 향한다

나무 계단을 오르니 멋진 조망처인 1.637봉이 보인다

1,637봉(06:20)

1,637봉 구조 이정목

3代가 德을 쌓아야 지리 일출을 볼 수 있다 했는가... 아무래도 범여의 덕이 모자람이련가

멀리 바라보이는 반야봉과 중봉, 영신봉은 짙은 박무로 인해 모든게 흐리게만 보인다

장터목과 일출봉은 근거리라 그런지 조금 밝게 보인다

좌측으로부터 연하봉, 촛대봉, 영신봉, 칠선봉, 형제봉, 반야봉이 희미하게 보이고...

오랫만에 접하는 과남풀...용담과 흡사하다... 色感이 참으로 좋다

용담과의 차이점이라면 꽃잎과 꽃받침이 뒤로 젖혀지지 않고 피는게 과남풀이란다

투구꽃 역시 용담못지 않은 요염한 자태로 산꾼 범여를 유혹한다

워낙 독성이 강한 놈이라 옛날엔 사약(死藥)의 재료로도 쓰였다고 한다

드디어 장터목 산장에 도착한다

쑥부쟁이

장터목 대피소(07:00)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교환과 물건을 사고팔던 곳이라 장터목

지리산 주변의 민초들은 참으로 힘들게 살았던 모양이다...하기야 민초들의 삶이 어딘들 팍팍하지 않았겠냐

장터목 대피소 마당에 서 있는 안내판

큰 산치고 자연경관이 빼어나지 않거나, 많은 일화를 담고 있지

않은 산이 있으랴마는 지리산은 다른 산과는 차원이 다르다.

산이 크다고 산국이란 말을 함부로 쓸 수 없듯이 지리산의 품새는

세상사를 보듬는 포용력이 뛰어나다.

오죽하면 어머니의 산이라 했겠으며, 지리산에 들어가면 굶어죽은 일이 없다 했겠는가.

이러하기에 지리산은 자연환경을 뛰어넘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하기에 이 산국의 역사적 의미 또한 큰 것이다.

장터목대피소에서 바라본 반야봉

반야봉은 지리산 8경의 하나인 반야낙조로 유명한 봉우리로

지리산 어느곳에서나 이 산은 아기엉덩이 처럼 보이기때문에

"아기궁뎅이처 럼보이는 산이 반야봉이야"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산의 곡선미가 우아하고 여성스럽지만 이런 반야봉은 사실 남성을 상징하는 산이다

반야는 산스크리트어의 프라냐(prajna)를 음역한것으로 불교경전의반야경(般若經)에 의해 알려진 명칭이다.

 

반야의 뜻은 '절대변하지않는 완전한 지혜'를 의미하므로 지리산에서 지혜를얻는다"라는

말은 반야봉에서 유래된 것이라 추정할수있다.

전설에 따르면 천왕봉의 마고할매가 반야도사를 만나 혼례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반야는 훗날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며

서쪽으로 떠난 뒤 영영 돌아오지 않고 불도를 닦았다.

그 후 그가 도를 닦았던 산은 반야봉이라 불리면서 남성미를 상징하는산이 되었지만,

생김새가 한없이 부드러워 여성성도 가지고 있는 산으로 알려졌다.

 

지리산에는 불교와 관련된 지명이 제석봉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불교와 관련된

지명만으로

나열하면 반야봉을 제일 꼭대기에 있는 봉우리라 해석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천완봉이지만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반야봉을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 말한다.

 

반야봉보다 높은 제석봉, 중봉, 하봉을 제쳐두고 반야봉을 천왕봉 다음의

제2봉으로 치는 것도 반야봉에는 불교적인 관점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터목 대피소 취사장에서 가져온 취사기구로 라면 하나 끓여서 팩소주 하나를 

곁들여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끝내고 셀카로 인증샷을 남긴 다음에 천왕봉으로 향한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제석봉 오르는 등로 옆에는 구절초와 쑥부쟁이, 용담, 참취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오이풀

쑥부쟁이

참취씨방

뭔 미련이 남았기에...?

同居中

개쑥부쟁이

제석봉에 올라 뒤돌아보니 바로앞에 일출봉과 연하봉, 촛대봉,... 그너머로 반야봉이 보이는데

날씨는 제법 쌀쌀하다...제석봉 고사목 지대에는 서서히 가을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인간의 오만과 탐욕으로 빚어진 제석봉의 상처...70여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으니...

인간은 자연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게 아닐까?

늘 이곳을 지날때는 지리산한테 죄인의 심정인데...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제석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배경으로...

제석봉(帝釋峰:1,806m:07:30)

제석신이 머무는 봉우리라 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봉우리 아래에 제석단과 향적대가 있다

불교에서 가져온 지명으로 제석천신은 도리천의 주석하는 불교의 수호신이다.

불교적 의미에서 볼때 제석(帝釋)은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의 임금을 말하므로

지리산에서 가장높은 천왕봉 밑에 제석이란 이름이 붙은것을 보면 지극히 당연한 작명인 것 같다.

옛날 민간신앙으로 제석천(帝釋天)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제석단이 있었던 곳이라 해서 제석봉이라 한다.

 

 

제석봉엔 하얀 고사목들이 처연하고 봉우리 일대가 황량하다.

이 제석봉 고사목은 늙어 죽은 고사목이 아니라 인재에 의한 고사목이라고 한다.

즉 자유당 말기에 당시 농림부장관이던 사람의 삼촌이란 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제석봉에 제재소를 차려놓고 거목들을 베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론이 악화되고 말썽이 날 것 같으니까 흔적을 없애려고 제석봉에 불을 질렀단다.

제석봉에서 천왕봉 가는길의 암릉이 참으로 멋있는데 무심코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이다

천왕봉 가는길에 범의 꼬리 군락지를 만나는데... 벌써 내년을 기약하며 이별을 준비한다

안부(07:40)

안부에서 뒤돌아본 제석봉 능선

통천문 이정표

통천문(通天門:07:55)

하늘로 통한다는 뜻을 가진 통천문... 결국 이 문이 세상과 하늘의 경계인 셈이다,

이 문을 지나 하늘의 임금이 살고 있다는 천왕봉 이라는 하늘나라가 있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스럽고 아름다운 곳임이 분명해  보인다

시인 고은님은 통천문을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고 했다,

신선조차도 이 관문을 거쳐야 할 정도니 우리 인간들이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다듬지 않을수 없다는 것이다,

천왕봉 가는길에서 바라본 칠선계곡

우리나라 대표 3대 계곡인 지리산 칠선계곡은 정상인 천왕봉에서 하류의 마천까지 18km에 걸쳐서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가 이어져 있는 곳으로서 대한민국의 대표 계곡이라고 표현하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다.

칠선계곡은 약 5km 정도 오르는 비선담까지는 상시 개방이 되어 누구나 오를 수가 있는데 이 위로는

별도로 인터넷 신청을 받아 국립공원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오를 수가 있다.

가이드 안내제로 운영되는 이 제도는 모두 5월과 6월. 9월과 10월. 일년에 딱 4개월만 운영이 되는 제도인데

인터넷으로 예약으로 60명 한정으로 신청을 받는데 두가지 형태로 운영이 되고 있다. 

고사목도 그대로인데 범여만 변해 가는구나 

 

산이 그리워
산에 오른다
겨우내 뻥 뚫린 가슴
독아(毒牙)같은 꽃샘바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봄의 가슴 불지르는 진달래는
바위의 무심함을 탓하고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산의 무심함에 나도 속상해
덩달아 눈 흘기는데

한 발 한 발
다가설 때마다
산은 부끄러운 듯
한 섬 한 섬
앞가슴을 풀어헤친다

봉우리에 올라서야
산은 제 숨은 속살을 다 보이고
온통 연분홍으로 뒤덮은 바다
진달래 위험한 향기에 취해
바위도 어쩔 수 없이
몸을 허락한다


공석진 시인의 山行

칠선계곡 갈림길(08:05)

드디어 천왕봉이 위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천왕봉가는 바위에는 사람 이름을 비롯한 글씨들이 많이 음각되어 있다

이곳에는 지나온 通天門이 이곳에도 “通天門”이란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지리산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天柱”라는 글씨가 뚜렸하다

천왕봉 정상에 있는 안내판

오늘은 짙은 박무로 인해 노고단과 반야봉은 멀게만 보인다

매번 지리산에 와서 느끼는 감정이지만 벅찬 감동보다는 두려움이 다가오는 산이다.

흔히들 지리산을 포근한 어머니의 품안같아 여자들의 산이라고 표현하지만 난

장쾌하고 위엄을 갖춘 아버지의 넓은 가슴을 가진 남자의 산이라 부르고 싶다.

골짜기마다 슬픈 역사와 동족상쟁의 아픔을 가졌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은...

천왕봉(天王峰:1,,915m:08:10)

천왕봉엔 타원형 자연석의 정상 표지석 한 면에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고, 그 뒷면에는 ‘智異山 天王峰 1,915m’라 새겨져 있고 육지에서 제일 높은

정상답게 사방이 활짝 열려 있다...일망무제(一望無際)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채근담(菜根譚)에는 ‘높은 데 오르면 사람의 마음이 넓어진다(登高 使人心曠)’라고 했으며,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말하지 않았나 싶다

‘어리석은 사람도 이 산에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는 지리산(智異山)

 

 

남명(南冥) 조식(趙植) 선생은 하늘이 울어도 지리산은 울지 않았다고 한다

請看千石鍾(청간천석종) : 천석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서

非大扣無聲(비대구무성) :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오

爭似頭流山(쟁사두류산) : 어떻게 해야만 두류산처럼

天鳴猶不鳴(천명유불명) :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범여의 德이 모자람인가... 이곳에 서면 온 사방이  다 보이는 一望無際인 천왕봉 정상...

오늘은 주변에 짙은 박무로 인해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부산에서 왔다는 이쁜 처자들에게 사진 한장을 부탁하고 본격적인 웅석지맥 첫 구간을 나선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중봉과 하봉의 모습

중산리 갈림길(08:20)

지리산을 수도 없이 와봤지만 지리산 동부능선은 처음이다 

이 구간은 일반 등산객은 잘 다니지 않고 지리산 화대종주나 태극종주하는 산꾼들이

다니는 이른바 매니아들의 등산 코스라고나 할까... 초반의 내리막길은 나름대로 괜찮다

안부(08:28)

지리07-21 구조 이정목이 있는 고개로 올랐다가...

커다란 암릉이 등로를 막고있어 우회하며 등로를 따라간다

철계단(08:30)

연달아 철계단이 나오고...

구조 이정목을 만나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니...

안부(08:40)

뒤돌아보니 천왕봉이 아쉬운듯 범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늘따라 달맞이꽃은 왜 이리도 처량하게 보이는지...

중봉을 오르는데 어느 낭만산객이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천왕봉을 응시하고 있다

중봉(中峰:1,874m:08:50)

중봉 정상의 모습

뚜렸한 등로를 따라가니...

전망바위(08:54)

우측으로는 조개골이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질 않는다

조개골의 지명유래는 그 골짜기 입구에 6.25이전까지 조계사란 절이있어 조계골로 불리다가
조개골로 음운변화 했다는 설과 옛날 바다였다가 지각변동으로 해면이 융기되어 조개화석이 발견되어,
또는 지리산에서 아침이 가장 먼저 열리는 골짜기여서 조개골(朝開谷)로 불린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출입통제선(08:56)

반달곰의 서식지라 출입을 금지하란다... 반달곰보다 못한 불쌍한 인간들!

곰과 인간들이 상생할 길은 찾지않고 무조건 출입을 금하는 국공파들의 ‘甲’질

민초들이 피땀려린 번 돈으로 낸 세금을 祿을 받는 국공파들... 늘 우린 ‘乙’이어여만 하나

여기서 소득없는 알바를 한다... 직진은 막혀있고 우측의 뚜렸한 길쪽으론 기.지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대구 마루금산악회, 목포 올리버님의 시그널이 걸려 있기에 아무 생각없이 2~300m 정도 내려가다 보니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하다... 갑지기 짙은 안개가 몰려와 2~30m도 안보일 정도이니 능선으로 등로를

파악할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선답자인 산으로 아우님에게 SOS를 청하여 다시 되돌아 온다

자주색진범

다시 돌아온 출입통제선(09:10)

주위를 살핀 다음에 단속하는 국공파가 없음을 확인하고 禁線을 넘어 하봉으로 향한다 

조심해서 가겠소이다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미역줄기가 등로를 막아 버린다... 미역줄기 나무를 헤치고 지맥길을 이어간다

아름드리 주목나무를 지나고...

주목나무 아래는 진주대학교 개교 100주년 표지판이 있다

공터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가야할 하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멋진 암릉구간을 곡예하면서 걷는다

암릉구간을 우회면서 걷는데짙은 안개가 몰려온다

산부추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

가야할 하봉의 모습

암봉 정상에 있는 소나무를 헤치고 내려서니...

암릉 사이의 골짜기...어제 내린 비로인해 무쟈게 미끄럽다

죽을 용을 쓰가며 내려선 내모습...내가봐도 미쳤다
길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 왜... 뭐가 답답해서 이 짓거리를 하는지?...

암릉  아래로 내려서는 잡목에 갇힌 등로는 보이질 않고...

멋진 바위하나도 범의꼬리 군락지에 갖혀 버렸다

헬기장(09:45)

가야할 하봉의 모습

이별을 준비하는 참취...아직도 도도함은 그대로다

하늘색 깔때기버섯 幼生

1,744봉을 지나 좀 편안한 등로가 이어지다 금새 험한 길로 변해 버리기도 하고...종 잡을수가 없다

미역취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줄기는 높이가 30~80cm이며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 또는 타원형으로 톱니가 있으며 7~10월에노란 두상화(頭狀花)가

모여 피고 열매는 갓털이 있어 바람에 날려 흩어져 번식한다 

어린 잎은 나물로 식용하고 민간 요법으로 건위제, 이뇨제 따위로 쓴다

산과 들에 나는데 한국.일본.대만.만주 등에 분포한다

능선을 올라서니 하봉이 나온다

하봉(下峰:1,754m:10:00)

지리산에서 천왕봉, 중봉, 제석봉에 이어 4번째의 높은 봉우리이나 원래 지명인 영랑봉,

영랑대란 지명을 버리고 얻은 이름이 하봉(下峰)이라니...

하봉 정상은 아무런 표식이 없다... 상봉(천왕봉), 중봉, 하봉...엄연한 지리산 동부 능선중에

어른 대접을 받아야 할 산이 비법정탐방로에 있다는 이유로 중봉을 넘어서면서 부터는 그 흔한

이정표에 구조 이정목 하나조차 보이질 않으니... 국공파들의 벤뎅이 속만큼이나 좁은 소갈머리 하고는...

밀려오는 짙은 안개...바로앞도 안보이는 그야말로 백지상태다

칠선계곡 방향도 하얗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하봉을 지나면서 계속되는 암릉 등로

멋진 주목나무가 외로운 산꾼 범여를 응원하고...

암릉에서 좌측으로 우회하여 등로를 이어간다

바위떡풀

다시 암릉구간으로 올라선 다음 내려서 안부가 나오고... 

촛대봉 갈림길(10:15)

안부에서 올라서니 거대한 암릉이 길을 막고있고 ㅜ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는 아주 뚜렸한 길에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는데 촛대봉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의 웅석지맥길은 거의 보이질 않는 상태이라 독도주의 구간이다

우측의 등로로 올라 서는데 갑자기 처량하게 대금소리가 들린다

암릉 사이로 올라...

낑낑대며 올라서니...

절벽바위(10:17~11:05)

절벽바위에 오르니 어느 낭만객이 어제밤에 비박을 했는지 나무에다 옷가지와

텐트를 걸어놓고 서투른 대금연주 솜씨로 김추자의 히트곡 “님은 먼 곳에” 를

연주하다가 말고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더니 버너를 켜서 맛있게 커피 한잔을 끓여주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창원에서 왔다는 젊은 친구... 참으로 멋있게 산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산에 대한 이야기, 종교가 불교라 하기에 불교에

이야기로 즉석에서 野壇法席이 벌어진다... 직장과 주거는 창원에서 하고

고향은 충남 대천이란다... 내가 아는 성질머리로는 한꼬라지 하는 할마시도 광천인데...

이 젊은 친구와  1시간 가까이 있다가 작별을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절벽바위에서 바라본 국골(國谷)의 모습

짙은 안개에 보일락말락 하는게 마치 가락국 구형왕의 애환을 보는듯 하다

함양군 마천면에 위치한 국골은 이웃에 칠선계곡에 덜 알려진 호젓한 계곡이다 

 

지리산의 많고 많은 계곡과 봉우리중에 나라 ‘國’자가 들어가는 지명은 이곳밖에 없다

가락국의 10대 왕이며 마지막 왕이였던 구형왕은 국골에서 추성산성을 축조하고

국골에서 신라의 침공에 대비하여 군마를 이끌고 훈련을 시켰다는데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국골은 가락국 마지막 왕의 피란 도성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과 함께 태고적

선녀들의 노여움을 산 곰들이 칠선계곡에서 쫓겨 들어왔다는 동화같은 얘기도 전해 온다.

앞서 칠선계곡 편에서 언급했듯이 국골 너머 칠선계곡의 선녀탕과 그 전설의 궤를 같이한다.

일곱 선녀가 칠선계곡 선녀탕에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던 것을 본 지리산 곰이

평소 연정을 품고 있던 중 선녀들의 옷을 훔쳐 바위 틈에 숨겨버렸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은 옷을 입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려 했으나 아무리 찾아 헤매도 옷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사향노루가 이 사실을 보고 자신의 뿔에 걸려 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 주어

선녀들이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곰이 선녀들의 옷을 훔쳐 바위틈에 숨긴다는 게 노루의 뿔을 나뭇가지로 잘못 알고 옷을 숨긴 것이다.

그리하여 선녀들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는 칠선계곡으로 집단 이주해 살게 하고 몹쓸 짓을 한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아 버렸다는 얘기다.

가야할 두류봉의 모습

지나온 하봉의 모습

등로는 좋으나 산꾼들의 흔적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공터(11:08)

묘지(11:10)

갈림길(11:12)

조개골로 내려가는 등로 방향으로 시그널들이 많이 보인다

2번째 갈림길(11:20)

2% 의령 산친구들 시그널... 내 고향의 산악회라 그런지 왠지 정겹다

두류봉(頭流峰:1,617m:11:23)

두류 능선은 온통 안개뿐...

국골과 칠선계곡이 멋지게 보이는 곳이건만 오늘은 하얀 여백만 보인다

암릉구간을 올랐다가 다시 다시 내려선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도도하고 요염한 자태로 서 있는 촛대승마가 산꾼을 유혹한다

갈림길(11:30) 

국골 갈림길(11:31)

이곳에서 방심하다가 대형 알바를 한다... 평소같으면 바짝 신경을 썼을텐데

뚜렸한 직진길에 기.지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대구 마루금 산악회와 J3산악회

시그널이 있기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않고 뚜렸한 직진길로 향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

험한 암봉위로 올라서니 문어처럼 보이는 멋진 소나무도 만난다

암봉(11:40)

짙은 안개로 인해 능선을 읽을수가 없다

암봉 아래로 내려서는 길엔 로프도 보이고...

바위와 나무가 힘들게 공존하는 곳도 지난다

한참을 가다보니 이런 시그널을 만나는데 주변의 짙은 안개 때문에 능선을 확인할 길이 없다

조금의 의심이 생겨 오룩스 트랙을 확인하니 이게 뭐야?... 꽤나 뭔 거리를 벗어놨다

다시 부지런히 되돌아 가는데 생각보다 힘이든다

다시 되돌아온 국골 갈림길(12:20)

40분동안 헤매면서 되돌아 온 국골갈림길... 오룩스는 이곳이 아니란다

이곳을 와서 자세히 우측을 보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시그널도 보인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처량하게 보이는 며느리밥풀

다시 갈림길(12:22)

오룩스맵이 가르쳐 준 곳으로 내려가니 등로는 아예없다

길은 아예없다

이리저리 치고 내려가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국골 갈림길과 이어지는 등로가 나온다

며느리 시집살이에 대한 슬픈사연의 전설어린 꽃

행운이 따라야만 볼 수있는 흰색 며느리 밥풀꽃을 등로에서 만난다 

枯死木 위에서 자생하고 있는 독우산광대버섯

공터(12:40)

흰색며느리밥풀

다발방패버섯 

지리산 동부능선은 지리산 등로중에 완전히 庶子 취급을 받는다 

중봉 이후로는 그 흔한 이정표와 구조 이정목 하나 없는데다가 개인적 표지기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원시림에 가까운 산림이 우거져 호젓하게 걷는 맛은 그 어디보다도 좋은 느낌이다 

유평리 갈림길(12:50) 

우측으로는 조개골과 유평리로 내려서는 등로가 보이고 대부분의 띠지는 우측으로 있고

직진길은 웅석지맥길인데 반달곰 활동지역이라 위험하지 가지 말라는 경고판이 붙어있다

그래도 범여는 가야하기야 직진길로 향하는데 등로는 뚜렸하고 산죽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는 요즘 사과밭이 많이 있다고 한다

사과밭은 원래 옛 화전민들의 삶터였는데 1950년대 소개령으로

 

고향을 떠난 화전민들 옛 화전민 마을터

유평마을은 일제 항일 의병들의 은신 거점이었다.

6.25 전란 후에는 밤에 빨치산, 낮에 토벌군 세상.
옛 화전민 마을 터에는 꿀사과 밭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이곳은 예전엔 한번 들어가면 살아 나올 수 없었던 골짜기였다.
'반란의 역사'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1950년대 대원사계곡.
빨치산 토벌대이던, 빨치산이던, 어떤 이유로 갔던 마찬가지.
그당시 유평리는 덕산 유독골로 불리웠던, 화전민들의 삶터였다.

덕산 유독골 숯막. = 죽는다.= 골짜기로 갔다. = 골로 갔다.
대원사계곡으로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골로 갔다."라는 말은 대원사계곡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261봉(12:57)

1,261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며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산죽길이 시작되는 등로옆에는 멋진 암릉이 있고... 

분홍산수국

등로 좌측으로는 자작나무 군락지가 보이는데 갑자기 나무들이 움직이며 동물 소리가 들린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데 계속해서 들리는데...반달곰인가?...조금은 불안하다

암릉지대가 나오고 좌측으로 우회한다 

좌측으로 우회하여 등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허공달골 갈림길(13:10)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로 이어지는 계곡인데 허공에 뜬 달이란 의미의 허공달골과 헛방짚다란

의미의 허방다리골이라 부른다는 의견이 분분한데 90년 대 초인가 조선일보의 월간 산에서 실수로

허공다리골로 소개되면서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하봉을 지나 절벽바위를 지나면서 처음으로 등산객을 만나는데 뭘 하는지 등로에다

베낭을 벗어놓고 산죽밭 안쪽에 들어가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있다

내 키보다 더 큰 산죽밭사이로 걸어가는게 고역이다 

마치 지난봄 신백두대간길의 외삼신봉에서 고운동재 넘어가는 등로와 흡사하다

산죽 안부(13:15)   

산죽밭을 치고 나가는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산청 독바위 

등로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산청 독바위를 바라본다

지리산에는 현재 독바위라 이름 불리는 바위가 최소한 3개가 있는데 동부능선 쑥밭재 북쪽에

있는 바위가 산청(진주)독바위이며 그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함양쪽 독바위가 함양독바위다.

그리고 삼신봉 부근 지능선 상의 바위는 특별한 이름 없이 독바위라 불리고 있다

 

독바위는 독아지(물을 담는 항아리의 경상도 방언)를 닮았다고 해서 항아리 ‘옹(甕)’자를

부쳐 옹암(甕巖)이라 하여 독(甕)바위라 불렀으며, 함양독바위(노장대)  다섯 개의 거대한

바위로 구성된 노장대는 한 부인이 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아 거처를 만들고 그 안에서

혼자 살며 도를 닦아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고 하여 독녀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돌을 쌓아 놓은 것이 여태 남아 있어 독녀암의 [독]자를 인용하여 독바위라 전해졌을 수도

있을 것이고 늙은 장군의 묘터가 있어서 노장(老將)대라 불리어졌다고도 한다.

노장대는 노장군의 지휘소가 있었고 그의 무덤이 있었다고 전해온다 

독바위로 향하는 길에는 멋진 암릉들이 많이 보인다 

독바위 갈림길(13:20) 

독바위를 오르려는 곳엔 손가락 굵기의 로프가 있다

주위에는 아직도 짙은 박무로  인해 시원하게 보이는게 없어 그냥 되돌아 간다

다시 독바위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외고개 방향으로 향한다 

부부바위(13:23) 

독바위 갈림길에서 올라오는 커다란 선돌(立石)이 2개가 서 있는데 부부바위란다 

가야할 1,315봉의 모습

급경사의 내리막길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조개골의 모습 

지리꼬틀빼기

지리산이 아니면 왠만해서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는 꽃이다 

쑥밭재(艾田嶺:13:35)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와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재를 넘던

민초들이 숙박하던 곳이라 하여 불렀다는데 숙박→쑥빡→쑥밭 이 변했다는 설과

예전에 이곳에 약쑥이 많이 자생하고 있어서 쑥밭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죽은 산죽길을 따라서 계속해서 오르막길이다 

지난주와는 달리 컨디션 조절을 잘한 탓인지 체력엔 별 문제가 없다 

새봉(1,322m:13:45)

새재 윗쪽에 있는 봉우리라서 새봉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이곳에서부터는 아침에 백무동부터 같이 맥길을 걸어온 함양군

마천면과 작별을 하고 온전히 산청군으로 접어든다

새봉은 등로에서 몇m 떨어진 곳에 있다 ... 조망이 멋진 곳이나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북동쪽으로는 왕산과 필봉산이 보이는 곳이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지나온 천왕봉과 중봉이 보여할 그곳도 아무것도 안 보인다  

1,315봉(13:50) 

등로옆 암릉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1,250봉( 14:10)

암릉구간이라 미끄러워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간다

1,250봉의 모습  

공터(14:22) 

다음 구간에 가야할 동왕등재가 보인다 

이곳에서도 내 키보다 더 큰 산죽의 저항을 받으면 터널같은 등로를 걸어간다

새재(950m:14:35)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와 금서면 오봉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약간의 넓은 공터와

잡풀만 무성하고 곰출현을 주의하라는 경고 플랑카드가 걸려있는 그저 밋밋한 고개이지만

민초들의 한이 많은 고개이다

 

오봉리와 삼장면 유평리 외곡마을을 잇는 족보 있는 고개로 예전에 삼장이나 덕산에서 함양이나

산청으로 넘어가거나 혹은 그 반대일 경우에 주로 동부능선의 다섯 고개를 이용했다고 한다.

쑥밭재와 새재, 외고개, 왕등재, 밤머리재가 그것인데 그 중 밤머리재만 도로가 지나간다

이 고개 아래에 있는 경남 산청군 새재마을의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제주 4·3항쟁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낮에는 아군으로, 밤에는 적군 편으로 살아야 했던

화전민들을 위해 50여년 전 정부에서 무상으로 지어 준 게 마을의 시초라고 한다.

이병주 작가의 소설 '지리산'의 한 부분에서는 "지리산을 찾은 빨치산들은 조개골 등에

숨어 이곳 달뜨기능선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고향과 가족을 생각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빨치산들이 능선 위로 뜨는 달을 보며 가족을 그리워했다던 조개골 초입이 바로 새재마을이다.

대원사에서 유평-중땀-아랫새재마을을 거쳐야 갈수 있는 새재마을은 오지였지만 수년 전에

도로가 연결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졌고 이 때문에 이 마을 주민들도 약초 등을 채취하며

살아왔지만 현재는 대부분 민박과 식당을 겸하고 있다. 심원마을처럼 계곡이 수려한 것은 아니어서

마을 주민들은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이름을 걸고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빨치산은 정규부대에 속하지 않은 무장 전사 ‘파르티잔(Partisan)’과 같은 말이다.

 ‘당원·동지·당파’를 뜻하는 프랑스어 ‘파르티(Parti)’에서 비롯된 단어다. 우

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을 전후해 남한에서 유격전을 수행한 북한 부대를 빨치산이라고 부른다.

빨치산은 휴전 후에도 지리산이나 덕유산에 숨어 게릴라전 형태로 싸움을 이어갔다.

게릴라전은 유격전의 다른 말로, 적의 배후나 측면을 소규모 유격대가 기습·교란·파괴하는 전투다.

하지만 조직적으로 이뤄진 우리 군의 토벌작전에 의해 1963년 11월 12일 빨치산은 최후를 맞았다.

 

새재에서 직진하여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선다

산비장이 

967.1봉(14:43 )

새재에서 8분정도 올라서니 967.1봉이 나오는데 등로옆 간벌목 사이에 삼각점이 있는데

무심코 지나치면 놓치기 쉬운 곳일 것  같아 바짝 신경을 쓰면서 걸었던 탓에 보는 행운을 누린다

철쭉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억새가 가득한 곳이 나오고...

외고개(830m:15:00)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외곡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 잡풀만 무성하고 산꾼들의 흔적은 없다

고개 가운데 커다란 돌배나무 한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산행을 줄여야 할듯 싶다

우측의 외곡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억새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내려서니... 

잣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조금을 더 내려오니... 

자작나무들이 많이 보이며 습지처럼 보인다 

길은 아예없고 습지같은 곳에 등산화는 푹푹 빠진다  

이곳은 유평리 외곡마을에 속하는데 외곡마을 일대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지난 65년부터 70년까지

5년 동안 면양 시범목장으로 조성되었던 곳이다. 한국 최고로 면양사육의 적지로 본 것인데 교통이

불편한 이유로 면양목장은 남원군 운봉면의 운봉고원 즉, 바래봉 일대로 옮겨간 것이라고 한다.

로프가 처져있는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나무다리가 있는 계곡이 나온다 

계속되는 외곡습지

옛 면양목장과 헤어지니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반달곰 활동지역 플랑카드가 나오고 그 아래에 민가인지 농장인지 보인다 

외고개에서 1km 이상을 습지와 억새 잡목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내려오니 

농장에 차량이 보이고 이곳 샘물에서 간단하게 씻고 베낭을 정리한다

농장 철조망을 넘어 시멘트 도로로 내려간다

이곳이 예전에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빨치산 치하였던 산청군 삼장면 외곡마을이다

화전민들의 삶터였던 이곳에는 사과밭과 오미자밭이 보이고 꿀벌통이 보인다 

뒤돌아 본 외고개의 모습

한 2km정도를 도로를 따라서 걸어 내려온다

다시 땀이나기 시작하여  계곡으로 들어가 깔끔하게 알탕을 하고 옷을 갈아

입는데 승용차 한대가 내려오는게 아닌가... 좀 태워 달라고하니 타라고 한다

어디가냐 묻길래 서울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원지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고 했더니

내려가면 내원사 버스 정류장에서 16시 45분에 원지가는 버스가 있는데 어차피

그 버스가 덕산을 거쳐 원지로 간다고 하면서 자기가 덕산까지 나가니까, 거기까지

태워 주겠단다... 이런 고마울 수가 꿀벌 사장님! 고마웠습니다 

덕산 버스 터미널(16:30)

산청군 시천면 소재지인 덕산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시간적 여유가 많다

17시 05분 버스를 기다리며 인근 마트에서 캔 맥주 하나를 마시면서 버스를 기다린다

원지 버스 정류장(17:28)

산청군 신원면 소재지인 원지는 이 지역의 교통 요충지로 서울과 수도권

도시로 향하는 모든 버스들이 이곳을 지나가기에 교통이 아주 편리한 곳이다

이곳에서 남부 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20분마다 한대씩 있는데 17시 40분 차를

안타고 18시 표를 끊은 다음에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서울가는 버스에 오른다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고향으로 가는 이정표를 만나니 무척이나 반갑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30여분이며 내 고향인데... 이제는 고향에 대한 기억이 점점 가물가물 해지니...

추석 명절이 다 되어 가는데 시골에 계시는 연로하신 큰 형님을 뵙지 못하고 가는게 미안할 따름이다

 

이곳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지리산 중산리로 향하는 단성면

이곳은 한국 불교의 큰 어른이자 가야산 호랑이라 불리웠던 퇴옹당 성철대종사(退翁堂 性徹大禪師)의

생가(지금은 겁외사)가 있고, 중국에서 몰래 가져온 목화씨로 섬유 혁명을 이룬 문익점, 그리고

조금 더가면 남명 조식선생을 모신 산천재가 있는 곳이 산청땅이 아닌가...

원지남부터미널 버스표

명절 전이라 그런지 서울가는 버스에는 10명만 탑승하여 서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