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7년 2월 18일
☞ 산행날씨:맑은 날씨에 세찬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8km (실거리 19.5km) / 6시간 4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밤머리재-기산갈림길-853봉-헬기장-갈림길-859봉-조망바위-880봉-888봉-조망바위-왕재
상투바위-1,032봉-1,079봉-헬기장-웅석봉-어천갈림길-웅석봉갈림길-996봉-1.034봉-안부
큰등날봉-홍계리 갈림길-1,005봉-990.9봉-딱바실계곡 갈림길-960.6봉-감투봉갈림길
고령토채취장 터-910.6봉-임도다물교육원 하산길-백운계곡길-790봉-안부-선인봉-묘지
고령토 채취장터-임도-지리산 둘레길-십자안부- 480봉-백운산- 아랫터골갈림길-임도
대나무 창고-과수원-윗터골재
☞ 소 재 지: 경남 산청군 삼장면, 금서면, 산청읍, 시천면, 단성면
일주일 내내 현장 2군데에 시달리다 예상보다 하루 빠른 금욜에 현장을 깔끔하게 마감을
하고나니 긴장감이 풀리는지 갑자기 온 몸에 있던 氣가 한꺼번에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
지난주에도 산행을 할 여유가 안되었는데 산에 갈 수 있겠끔 해주더니만...
이번주에도 산행 준비를 하려는데 바로 위의 형님이 이번주에 누님의 생신인데 가족끼리 식사를 하잔다
그러자고 하고나니 어딘가 허전하여 토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웅석지맥 한 구간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대충 베낭을 챙긴 다음에 집에서 가까운 남부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원지행 06시발 버스표
다들 잠이든 집에서 도둑 고양이처럼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05시 45분이다
버스표를 예매하여 진주행 버스에 몸을 실은 다음에 평소의 습관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대전 → 통영간 고속도로 인삼랜드 휴게소에 정차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버스는 휴식시간을 10분밖에 주질 않는 바람에 아침 식사를 할 여유가 없어서 충무김밥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대신하고 버스에 올라 원지에 오르면서 어제 청학동댁이 올해 처음으로 고로쇠 수액을
채취했다고 택배로 보내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하니 어디냐고 묻는다
지금 웅석봉을 가려고 원지에 가는중이라고 하니 덕산에서 도착하여 전화를 하란다
원지 버스 정류소(08:55)
원지는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에 있는 마을로 남강유역에 위치하여 대부분 넓은 평지로이루어져 있으며
후천, 덕현소류지 등이 있고, 단성고을 북쪽이 되므로 북동 또는 신안역이 있었으므로 역막 또는 신안역,
신안이라 하였다고 하며, 산청군의 교통요지로서 군청소재지가 있는 산청보다 훨씬 번화한 곳이다
산안면 하정리에 있는 원지는 다복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신안원(院)이 있었다고 하여 원지 또는
원목정이라 하였으며 신안면은 산청군의 관문이자 남부 6개면의 중심지이다
원지발 → 덕산행 버스표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을 갔다온 사이에 덕산을 거쳐 대원사, 홍계리로 향하는 버스가
가버리는 바람에 세찬 바람이 부는 원지 버스터미널 앞에서 25분을 기다린다
내 고향으로 가는 길인데 이젠 늘 낯선 곳이 되어버린 이곳... 난 정녕 이방인란 말인가
원지에서 덕산을 경유하는 버스 시간표
덕산으로 향하는 버스는 중산리행 버스라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등산객들이 꽤나 많다
원지를 출발한 버스는 25분만에 시천면소재지가 있는 덕산 정류장에 도착하니 청학동댁 부부가
트럭을 세워놓고 나를 기다린다... 내가 버스에서 내리니 청학동댁이 친정오라버니 만난듯 반가워 한다
청학동댁을 알게된 동기는 지난해 3월 6일 진권아우와 둘이서 신백두대간 2구간인 고운동재에서
돌고지재를 걸을 때 돌고지재에서 히치를 했는데 그때 원지까지 화물차를 태워준 게 인연이 되었고
지난해 내가 고사리를 팔아준 게 인연이 되었는데 봄에는 두릅과 고로쇠, 겨울에는 곶감을 보내준다
늘 받아 먹기만 미안하여 지난해 구정때 곶감 20개를 구매했더니만 이번에 고로쇠를 처음으로 채취하였다고
하면서 어제 사무실로 택배로 보내와서 고맙다는 인사 전화를 했더니만 밤머리재까지 태워 주겠다고 한다
택시타면 된다고하니 기어코 타라고 하는데 더 이상 사양할 수가 없어서 밤머리재 가는길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보니 밤머리재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바람이 어찌나 세던지 서 있기조차 힘이 들 정도이다
거기다가 산불을 감시하는 소방차가 서있고 감시요원들의 눈매가 매섭기만 하다
밤머리재(栗峴:580m10:18)-사진 펌
밤머리재의 유래는 조선시대에 남명 조식선생이 이곳에서 가까운 시천면 덕산의 산천재(山天齋)에
계시면서 지인을 찾아 고개를 넘어 다닐 때 ‘밤을 한말정도 까먹어야 넘을 수 있는 고개’라 해서
밤머리재로 불렀다는 유래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만큼 멀고 험한 고개였다고 한다
밤머리재에 도착하여 청학동댁 부부와 작별 인사를 나눈다
그러면서 산행이 끝나는 윗터골재에서 전화를 하란다... 원지까지 모시겠다고
하면서 부부는 돌고지재 근처에 있는 고사리 농장으로 일하러 가는 중이란다
이러면 엄청 왕부담인데... 올해는 고사리를 얼마나 팔아줘야 할지...
이곳에서 스틱을 펴고 모자를 쓴 다음에 조금만한 세컨드 카메라는 베낭에 넣고 조금 큰 카메라를
꺼내서 밤머리재 주변을 찍은 다음에 산불감시요원들의 눈의 의식하며 서둘러 등로에 접어든다 (10:20)
웅석봉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의 모습
근데 이게 뭐야... 카메라가 이상하여 점검을 하니 메인 카메라에 메모리 카드가 없는게 아닌가
참으로 난감하다... 그렇다고 다시 밤머리재로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베낭을 내려
세컨드 카메라에서 메모리 카드를 꺼내서 메인 카메라에 넣고 기록을 시작한다
요즘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장가가는 넘이 거시기 빼놓고 가는것도 아니고...
기산 갈림길(836m:10:45)
이정표(↓밤머리재1.0km , ↖대장4.0km ↑웅석봉4.3km)와 119구조 이정목 웅석봉 1-1가 있다.
뒤로 돌아보니 지난해 10월에 걸었던 도토리봉과 동왕등재 등이 보이는데 바람이 세차다
853봉에서 바라본 산청읍(10:48)
山淸이란 지명이 처음으로 사용된 시기는 조선조 영조 43년에 처음으로 현명(縣名)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산청이 배출한 인재는 수도없이 많은데, 삼우당 문익점, 남명 조식선생,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의 스승인
유이태 선생, 한국 근대 불교의 큰 스승인 퇴옹당 성철 큰 스님 등이 있다.
산청읍내 뒷쪽으로는 올해안에 걸어볼 계획인 정수지맥이 보이고 그너머로 진양기맥 능선이 보인다
밤머리재에서 853봉까지 힘들게 올라오는 동안 엄청난 바람의 저항을 받았지만
853봉부터 웅석봉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트레킹하듯 편하게 걷는다
헬기장(10:53)
헬기장에 서 있는 구조 이정목
갈림길(10:56)
대부분의 산객들이 편안한 우회길을 택하지만 초반이라 가급적
원칙적으로 걷고 싶어서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은 험한 길로 올라선다
859봉(11:00)
길이없는 험한 길을 내려오니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를 만난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가야할 웅석봉의 모습
조망바위(11:05)
지난해 걸었던 웅석지맥 능선의 모습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와 경호강의 모습
조금전에 산행을 시작한 밤머리재 주차장도 보이고...
880봉(11:10)
다시 우측으로 천왕봉과 홍계리를 바라보면서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또다시 우회길을 버리고 험한 길을 택한다
편안한 길을 버리고 등로로 올라서니 반가운 시그널 하나가 보인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서 바라본 산청읍
길은없고 잡목은 우거지고, 괜히 올라왔나 싶을정도로 힘은 들고 후회스럽다
888봉(11:20)
길이 없는 곳에서 만난 竹泉선생님 시그널... 한번도 뵌적은 없어도 대단한 내공을 가지신 분인듯 하다
험한 길을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가 나온다
다시 웅석봉으로 향하는 편안한 길로 내려선다
구조 이정목 1-4를 만나고...
조망바위(11:35)
등로에서 바라본 홍계리(洪界里)
산청군 삼장면 홍계리는 지리산 조정골에 위치하여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상촌, 굼땀, 돌머리, 딱바실, 정지땀 등이 있는데 상촌은 제실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굼땀은 상촌 서쪽 구렁에 있는 믈이라 하여 굼땀이라 하였고, 돌머리는 상촌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의
지형이 돛처럼 되었다는데 이곳은 그 머리쪽이 된다 하여 돌머리 도는 도두라 한다. 딱바실은 상촌 서쪽에
있는 마을로 딱나무 맡이 있었다 하여 딱바실이라 하며 제실이라고도 한다.
정지땀은 상촌 동쪽에 있는 마을로 2아름이 되는 귀목인 정지나무가 있었다 하여 정지땀이라 한다. 1
991년에 자연발생유원지로 지정된 계림정숲이 유명하다.
조망바위를 내려서니...왕재가 나온다
왕재(870m:11:37)
산청군 산청읍 내리와 삼장면 홍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이정표(←밤머리재3.3km, ↑선녀탕2.0km, →웅석봉 2.0km)가
있고 암릉으로 된 고개 좌측으로는 선녀탕과 지곡사로 내려서는 등로인데 산꾼들의 흔적인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 산청군 지곡사(智谷寺-한국의 산하) |
웅석봉 북사면의 지곡 아래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응진(應眞)이 창건한 지곡사(智谷寺)가 있다.
당시의 이름은 국태사(國泰寺)였으며 고려 전기에 크게 중창했다. 선종 5대 산문(山門)의 하나였으며
조선시대 산음현(山陰縣)의 대표적인 사찰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기록이 확인된다.
왕재에 있는 이정표
선녀탕에서 왕재로 올라오는 길에 걸려있는 일반등산객들의 시그널
다시 오름길
왕재에서 오름길은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데 등산객 3명이 보인다
여수의 산악회에서 왔다는 이 분들...아마 맨 후미에 뒤쳐진 사람들인 모양이다.
상투바위에서 바라본 밤머리재와 왕산의 모습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에만 눈이 보이고... 그 앞으로 지난해 걸었던 웅석지맥의 모습
상투바위(11:53)
경호강 너머로는 합천의 황매산이 좌측으로는 가야산과 수도산이 아련히 보인다
구조 이정목은 500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1,032봉(12:00)
웅석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등로는 대체로 무난하다
등로 아래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당히 세차다
웅석봉 갈림길(1,079m:12:12)
웅석지맥의 주봉인 웅석봉은 지맥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등로에는 웅석봉으로 오르는 등산객이 걸어둔 띠지들이 어지럽게 걸려있다
헬기장(12:15)
우측으로는 단성면 청계리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보이고...
웅석봉(熊石峰·1099m:12:22)
산청군 산청읍 내리와 삼장면 홍계리, 단성면 청계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청읍에서 웅석봉을 보면
마치 산청읍을 감싸고 있는 담장처럼 보이는데, 유산(楡山)·웅석산, 곰바위산이라고도 한다.
산세가 정상에서 보면 북쪽은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되어있다. 산세가 하도 가파르고 험해 곰이 떨어져
죽었다고 하며 또한 산의 모양새가 곰을 닮았다 해서 웅석봉이라 하나, 원래는 신이나 그 정도로 신성하고
높은 존재를 뜻하는 우리말 고어 ㄱ.ㅁ(아래 아, 감)에서 유래한다
산 정상에 올라서니 온 사방이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서쪽으로는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을 비록하여 중봉, 하봉, 북쪽으로는 눈덮인 덕유산이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가야산과 수도산 황매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웅석지맥의 종점인 진양호와
진주시내가 손에 잡힐듯이 가깝다... 정상에는 2등 삼각점과 좌우로 데크목 전망대와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이곳에서 여수에서 왔다는 등산객들에게 막걸리 한 사발을 얻어 마시고 다시 갈림길로 돌아간다
웅석봉 정상에서 인증샷(여수 산악회 회원이 사진을 망쳐놨다)
웅석봉 정상 삼각점(△산청25 / 1981재설)
웅석봉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의 모습
산청읍내 뒷쪽으론 정수지맥 능선이 산꾼 범여를 부르는듯 하다...올해안에는 걸어봐야제
조금전 내가 걸어왔던 능선의 모습
산청읍 좌측으론 왕산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2번만 더 걸으면 웅석지맥 합수점인 진양호에 도착하겠지
경호강 저 너머로 아련히 보이는 내 고향 의령땅에 있는 자굴산이 아련히 보인다
내 나이 스무살까지 저곳에 살았건만 지금은 늘 낯설기만 한 곳이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 시인의 고향
산불감시초소 안에 있는 아저씨와 반갑게 인사를 건낸다
초소를 내려서니...
어천 갈림길(12:30)
헬기장에서 바라본 청계저수지의 모습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청계리는 석대산과 이방산 자락 사이의 골짜기에 위치하여 산지로 부터
내려오는 물들이 모이는 곳으로 깊은 골의 맑은 물이 흐르므로 청계라 하였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개당, 웃개당, 아릿개당, 가운데개당, 대현동, 점촌, 용두마을 등이 있다.
개당은 용두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깨금징이라고도 불린다. 개당 윗쪽의 마을을 웃개당,
아랫마을을 아릿개당이라고 하며 그 사이에 있는 마을을 가운데개당이라 한다.
대현동은 청계 서북족에 있는 마을로 대현고개 밑이 된다 하여 대현이라 한다.
용두마을은 아릿개당으로 넘어가는 용두고개 밑이 된다 하여 용두라 한다.
점촌마을은 용두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온다
다시 돌아온 갈림길(12:35)
이정표(→밤머리재4.9km ↑웅석봉0.4km, ←다물평생교육원(단성면 운리)8.1km / 딱바실계곡 9.5km )에서
좌측으로 지맥길을 이어 가는데 갑자기 등로가 좁아지면서 지맥길다운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웅석봉에서 갈라지는 이곳부터의 마근담봉 까지의 능선을 달뜨기 능선이라고 부른다
달뜨기 능선 유래는 해방 전후에 지리산에 숨어살던 빨치산들이 붙인 이름으로 조개골과 쑥밭재 언저리에
마련한 비밀 아지트에서 건너편 웅석봉 남쪽능선 너머로 떠오르는 처연한 달을 바라보며 그 아래 두고 온
고향과 식구들을 그리워 하던 빨치산들의 한과 설움이 그 이름에 그대로 담겨있는 듯하다
‘앞서 가던 문춘 참모가 걸음을 멈추고 한참 정면을 바라보고 있더니 뒤를 돌아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동무들! 저기가 달뜨기요. 이제 우리는 지리산에 당도한 거요!” 눈이 시원하도록 검푸른 녹음에 뒤덮인 거산이
바로 강 건너! 저편에 있었다.’ 이태(李泰)씨의 수기 ‘남부군’에서 빨치산들이 지리산으로 이동하는 여정 중의
한 내용이다
달뜨기는 해방 전후 좌.우의 이데올르기에 휩싸인 시대에 여순반란사건에서
패배한 빨치산 패잔병들이 처음으로 지리산에 숨어들었던 초입이었다.
남부군 제2병단이 토벌군을 피해 지리산에 접어들어 긴 여로의 종착지가 지리산이었다.
지리산으로 들어선 1,400여명의 빨치산 대원들이 마치 고향을 그리워하며 입버릇처럼
되내이던 달뜨기 능선... 범여는 지금 그 아픔의 능선을 걷고 있다
당시 남부군 사령관이었던 이현상이 ‘지리산에 가면 살 길이 열린다’ 했던 빨치산의 메카 지리산
아직도 그 여파가 남았는지 오늘도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태극기와 촛불이 서로가
원수처럼 어르렁되는 이 시대... 정녕 이 민족은 단합이 불가능한가!
달뜨기 능선을 걸으면서 범여는 착잡한 마음을 가눌길이 없다.
등로 좌측인 청계리쪽은 벌목지가 보이고...
로프가 있는 곳으로 지나다가...
점심시간(13:00~13:30)
점심이라봐야 막걸리 한병에 빵과 바나나 우유...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 휴식을 겸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등로는 생각보다 유순하다
996봉(13:38)
또다시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1,034봉(13:45)
1,034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웅석봉의 모습
벌목지 너머로는 정수지맥과 진양기맥 능선들이 아련히 보이고...
바로 앞에는 청계저수지와 진주시내가 보인다... 다시 험한 능선을 내려오니 조금전에 헤어진 길을 만난다
안부(13:50)
암릉이 있는 곳으로 올라서니...
큰등날봉 갈림길(13:54)
직진 능선으로 올라선다
큰등날봉(999m:13:57)
우회길을 택하지 않고 직진으로 올라오니 큰등날봉 정상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경상도 출신인 범여의 생각대로 해석하면 ‘커다란 봉우리가
튀어나온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범여의 私見임을 전제로 한다
홍계리 갈림길(13:55)
직진을 하여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등로 좌측으로 암릉이 보인다
오늘따라 유난히 많이 보이는 녹색 띠지를 따라서 걷는다
1,005봉(14:05)
조망이 아주 뛰어난 곳이다
1,005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백운산의 모습
좌측으로는 아직까지 단성면 청계리를 바라보면서 걷는다
990.9 봉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웅석지맥길을 이어간다
너덜길을 지나 990.9봉을 반원형으로 돌아서 오니...
이정표(↑다물평생교육원 4.5km ↗삼장면 홍계(딱바실 계곡) 5.9km ↓웅석봉 4km)가 나온다
딱바실 계곡 갈림길(14:20)
우측 사면길쪽은 등산객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이는데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우측으로 내려서면 삼장면 홍계리 딱바실 마을로 이어지는 등로인데 일반 등산객들이
웅석봉으로 오르거나 하산하는 등로로 많이 사용하는 곳으로 지맥길은 직진 오름길이다
딱바실골은 닥나무 밭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960.6봉(14:28)
960.6봉을 내려서니 희미한 등로에 y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시그널이 우측에 있는데 이곳 역시 독도에 상당히 신경써야 할 곳이다
감투봉 갈림길(14:29)
우측으로는 지리 태극을 하는 산꾼들의 등로인 감투봉, 이방산을 거쳐 날머리인 덕산마을로 이어지는 곳이다
대부분의 시그널들이 우측으로 붙어있고 웅석지맥길에는 시그널이 아예없다시피 한 곳이다
지도를 확인하면서 진달래 군락지로 내려오니 반가운 녹색 띠지 하나가 보인다
쉬어가기 좋아 보이는 넓은 공터가 보이고...
고령토 채취장(14:32)
지도상에 고령토 채취장으로 표기가 된 황토빛 공터가 나온다
고령토는 도자기의 태토와 유약의 원료가 되는 흙으로 중국의 대표적 도자기 생산지인 경덕진요(景德鎭窯)
부근의 장시성 고령촌(高嶺村)에서 생산되는 점토로 대표되기 때문에 고령토라 불리게 되었다.
주광물은 카올리나이트(kaolinite : Al2O3·2SiO2·2H2O)와 할로이사이트(halloysite : Al2O3·2SiO2·4H2O)으로,
불순물로서 장석·규석·운모 등이 함유되는 경우가 많으며, 수파조작(水簸操作)에 의하여 제거하여 사용한다.
주로 천연산의 미세한 분말점토의 형태로 생산되는데, 수분을 가하면 가소성(可塑性)을 가지며 건조하면
강성(剛性)을 나타내기 때문에 도자기의 원료로서 가장 적합하다. 색상은 흰색 또는 분홍색이며, 산화철의
함유량은 0.5% 이하이고, 산화티타늄(酸化titanium)의 함유량은 0.2% 이하이다.
번조한 뒤의 색상은 흰색이거나 담황색으로 되며, 용융도(熔融度)는 1,770∼1,790℃이다.
산지는 중국 산둥성(山東省)·장시성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곳에서 채취되며, 우리나라에서는
경남 하동군이 가장 유명하며, 고성·산청, 황해도 해주, 함경북도 경성 등에서 산출된다.
- 다음 백과사전 인용 -
우측으로 내려서니...
910.6봉(14:33)
4등 삼각점(△산청456)이 깨진채 숲속에 방치가 되어 있다
910.6봉에서 내려서자마자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임도 갈림길(14:35)
대부분의 산꾼들이 임도로 향했고 오늘 유난히도 많이 보이는 녹색 띠지도 임도로 향했는데
GPS상 지맥길은 등로가 전혀 보이질 않는 좌측 능선으로 가리켜 그 쪽으로 내려서니...
大邱 宜山님의 시그널이 보이는데 한번도 뵙진 못했지만 내공이 대단하신 분 같다
길이 전혀 없는 곳으로 내려서는데 여름철엔 임도를 따라야 할 것 같다
임도(14:40)
5분 정도 잡목을 헤치고 내려오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다물평생교육원 갈림길(14:42)
다물(多勿)이란 ‘되물린다’, ‘되찾는다’는 의미의 순수한 우리말로 《삼국사기》〈고구려본기〉및
중국《자처통감》에 의하면 “위복구토위다물(謂復舊土爲多勿)이라 하여 ‘잃어버린 옛 영토를 되찾는다’는
의미로 고구려의 건국정신이기도 하다
고구려 이후는 발해의 건국정신, 고려의 북진정책, 조선왕조의 북벌정책으로
이어져 왔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정신적 근원이 되었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다물 정신은 3천3백년간 동북아 정책을 경략했던 우리 민족의
기상과 특질을 되살려(다물) 선진한국, Globl korea 건설에 앞장서는 창조적 혁신활동
창조적 혁신활동(연구, 교육, 봉사)를 말한다 ( 다물 홈페이지 자료 인용)
백운계곡 갈림길(14:47)
이정표를 지나면서 다시 길은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하지만 그래도 다른 지맥에 비하면 양반이다
우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백운계곡으로 내려서는 등로이다
가야할 809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름길에 뒤돌아 보니 지리태극 능선으로 이어지는 감투봉과 이방산이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가 보이고 산중턱에 보이는 곳이 단속사지이다
석대산 너머로 합천의 황매산이, 직진으로 바라보이는 희미한 저 산이 내고향 의령땅에 있는
자굴산인듯 싶다... 올 3월말경에 계획한 우봉지맥길 때에 들릴 시간이 될런지 모르겠다
당겨본 운리(雲里)의 모습
지리산의 험준한 산속에 파묻힌 ‘구름에 덮인 마을’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석대산 · 수양산 · 감투봉 등 여러 산지로
에워싸인 산간분지이므로, 구름 걷힐 날이 없는 곳이다. 결국 보우(普雨) 대사가 읊은 시와 흡사한 환경이다.
‘흰 구름 속에 청산은 첩첩이 있고, 푸른 산중에는 흰 구름도 많구나. 날마다 구름 산 따라 친구가 되었으니,
몸 편한 곳이 집이 아니더냐’라고 했기 때문이다
폐헬기장인듯한 넓은 공터도 보이고...
편안한 등로를 지나간다
790봉(15:15)
경호강과 아침에 버스에서 내렸던 원지도 보이고...
동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웅석지맥 끄트머리인 진양호와 진주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안부(15:20)
선인봉(809m:15:30)
개념도에는 그냥 809봉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선인봉에서 조금 내려서니 폐헬기장 흔적인듯한 넓은 공터가 보이고 계속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내가 아는 산으로님은 아닌듯...그 분은 인증샷도 안 남기는 은둔의 산꾼인데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는 희미한 곳을 따라서 계속해서 내려서는데 늦은 오후라 그런지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내리막길을 내려서는데 졸음이 밀려온다... 시간이 없어 베낭을 내려놓고 잘 수도 없고 그냥
무작정 졸면서 걷다가 낙엽에 미끄러지면서 한바퀴 굴러서 쳐박히다 보니 정신이 번쩍든다
묘지(15:50)
묘지를 지나 조금 더 내려오니...
고령토 채취장터(15:52)
이곳에서 원래 지맥길은 임도로 가로질러 올라서야 하나 올라가보니 잡목의 저항이 무쟈게 심하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다시 되돌아 내려와서 편안한 임도길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고령토를 채취한 다음 원상 복구를 해 논 모양이다
그 너머로 오늘 내가 걸었던 웅석봉이 보인다
좌측의 지맥 능선을 바라보면서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임도 갈림길(16:02)
이곳에서 단성면 운리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돌담 형식으로 쌓아놓은 소나무 숲사이로 내려서니...
지리산 둘레길이 나온다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를 끼고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지리산 둘레길 십자안부(16:07)
십자안부를 가로 지른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서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임도 끝부분에서 임도와 헤어져 좌측으로 꺽어져 능선으로 올라선다
잡목의 저항을 받으면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희미한 ㅜ자 갈림길이 나오고...
조금전에 걸었던 길을 뒤돌아보니... 선인봉이 보이고...
480봉(16:20)
다시 살짝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와 다시 만난다
백운산 오름길에 뒤돌아보니 오늘 내가 걸었던 능선들이 한 눈에 보인다
산청 백운산(白雲山:515m:16:30)
산청군 단성면 입석리와 백운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그저 볼품없는 밋밋한 산이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3등 삼각점이 있고, 이 산 사면에서 발원한 백운천은 낙동강의
수계인 덕천강으로 흘러들며, 우측 아랫쪽의 백운계곡은 조선중기 성리학자이자
영남사림의 거두였던 남명 선생의 체취가 지리산록 중에서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남명선생이 남겼다는 백운동(白雲洞), 용문동천(龍門洞天), 영남제일천석(嶺南第一泉石),
남명 선생 장지소(南冥先生杖之所) 등의 글자가 암석에 새겨져 있으며 ‘푸르른 산에 올라보니
온 세상이 쪽빛과 같은데 사람의 욕심은 그칠 줄을 몰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도 세상사를 탐한다’ 는
글을 지은 작품의 현장이기도 하다.
백운산 정상 삼각점
백운산에 내려서는데 아침에 태워준 청학동 아줌마 서방님한테서 전화가 온다
지금 어디냐고 묻길래 백운산에서 내려가는 중이라 하니 자기도 농장에서
윗터골재로 출발하겠다고 한다... 내가 너무 甲질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
해가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니 맘은 점점 급해진다
백운산을 내려오면서 GPS상 지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잡목이 너무 우거지고
등로는 아예 없어서 도저히 걸을수가 없어서 대다수 산꾼들이 걸었던 편한 길을 따른다
아랫터골 갈림길(16:40)
우측으로 뚜렸한 등로는 아랫터골로 내려가는 길이나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너덜길 같은 곳을 내려서니...
임도(16:47)
원래 지맥길은 앞쪽으로 보이는 저 능선으로 내려와야 맞을듯 싶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대나무 창고(17:00)
넓은 공터에는 쓰러져가는 대나무로 만든 농가 창고가 있는데 이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접어드니 녹슨 철조망이 나오고 철조망을 넘어선 잡목의 저항으로 도저히
갈 수가 없어서 좌측 과수원으로 빠져 나간다
대나무 창고에서 뒤돌아 본 백운산
녹슨 철조망 너머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하다
하는 수 없이 좌측으로 내려서 과수원 도로로 접어든 다음에 윗터골재로 내려서면서 산행을 종료한다
윗터골재(170m:17:05)
산청군 단성면 백운리에 있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백운리에서
입석리로 넘어가는 길인데 차량 통행은 거의 없고 주변에는 전무 과수원만 보일뿐이다
이곳은 단성면과 시천면의 경계이지만 단성보다는 덕산(시천면소재지) 생활권이다
다음구간을 들머리를 확인하고 산행을 종료하는 장비를 정비하고 있는데 청학동댁 부부가 도착한다
아침에 탔던 트럭을 타고 원지로 나가는 길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원지에 도착한다
청학동댁이 범여에게 어제 택배로 보내준 지리산 고로쇠
원지 버스 정류장(17:45)
원지 버스 정류장 매표소에서 표를 예매하는데 5분후에 버스가 도착한다고 한다
다음 버스는 몇시에 있냐고 하니까... 1시간 후라고 하여 씻지도 못하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 오르니 좌석이 맨 뒷쪽이라 그곳에서 옷만 갈아입고 산행길에 남은 빵 하나와
캔맥주 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버스는 천안부근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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