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7년 4월 23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더운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9.6km + 어프로치 1.5 km / 4시간 58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바느고개-188.4봉-213.5봉-168봉-133.6봉-안부-145.3봉-당촌고개-104.4봉
117.6봉-144봉-당상동 안부-195.8봉-당촌리 산성-당하동 고개-갈림길-128봉
204.5봉-황학산 갈림길-황학산-231봉-213봉-톳재비 고개-분토봉-이정표
분딧골-뒷들고개-이정표-고인돌-88봉-당산먼당-안부-86봉-청둑선착장 갈림길
가호전망대-청둑선착장-충의사, 가호서원 옛터-사각정자-아랫말 선착장
☞소 재 지: 경남 진주시 대평면, 귀곡동
초파일이 다가오는데 평소에 인연이 있고, 신세를 진 스님에게 인사를 올려야 하는데 갑작스레
현장 2군데가 공사 내역이 자꾸만 추가가 되는 바람에 꼼짝을 못할 지경이라 맘만 급해진다
4월 29일은 연등축제 제등 행렬 준비로 바쁜 도반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미안하기 그지없다
4월 27일까지 현장을 마무리 짓고 스님들께 禮를 갖출 시간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게 현장은 토.일이 휴무라 산에 갈 여유는 생긴지만 체력이 문제다.
오늘은 거리도 짧고 한여름이 다가오면 잡목의 거센 저항이 심해 걸을 수 없기에 5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웅석지맥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 짓기위에 이른 아침에 집에서 가까운 남부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서울 남부 터미널발 원지행 버스표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서 남부터미널에서 진주가는 첫 차를 타고 원지에서 내릴 요량이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고속버스는 휴게소에서 휴식시간을 15분을 주는데 시외버스는 10분밖에
휴식 시간을 주지 않는 바람에 아침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오늘은 버너와 코펠을 가져간다
원지 시외버스 터미널(09:05)
버스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다... 1주일만에 다시 온 원지시외버스 터미널
지난해 신백두대간을 하면서 이곳에서(신안면사무소 앞 팔각정) 진권아우와 라면을 끓여
먹었기에, 버스에서 내려 신안면사무소 앞에 있는 팔각정에서 라면에다가 집에서 가져온 햄과
파를 듬뿍 넣고 맛있게 아침을 해결한 다음에 택시를 타고 오를 산행 들머리인 바느고개로 향한다
바느고개(針谷峴:09:50)
택시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하는데 지난주에 나에게 덤볐던 대평농장 개쉬끼가 또 짖어댄다
택시기사가 그곳엔(까꼬실) 교통이 안 좋으니 택시 탈 일이 있어면 연락을 주라고 하면서 명함을 건넨다
원지에서 이곳까지 택시비는 17,000원... 산꾼이 뭔 돈이 있다고 하루에 2번씩 택시를 타노
지나가는 차량들 ...손만 들면 다 내차인데...
이곳에서 내려 장비를 점검하고 난 다음에 산행을 시작한다
등로에 들어서지 호화롭게 조성된 진주정공과 함안이씨의 부부묘를 만난다
또 다른 진주 정공의 묘지
오늘의 들머리인 바느고개를 뒤돌아 본다
김해김공의 묘지를 지나면서 거친 등로로 들어선다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지난주에 걸었던 웅석지맥 능선의 모습
초반부터 잡목의 저항이 심하고, 등로가 보이질 않아 애를 먹는다
188.4봉(10:10)
초반부터 힘들게 능선을 치고 오른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가 조금씩 뚜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213.5봉(10:15)
우측으로 완만하게 꺽어지는 능선을 따르는데 등로는 희미하게 보인다
계속되는 희미한 등로
두릅은 벌써 다 피어버려 용도폐기가 되어 버렸고...
이곳의 등로는 봄은 생략되고 綠陰芳草 우거진 盛夏의 계절이 되어 버렸다
붓꽃의 종류도 가지가지다
병꽃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 시작하고...
잘보이지 않는 능선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추어탕에 꼭 들어가야 하는 제피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산딸기... 이넘들이 벌써 이렇게 크버렸구나...이 넘들은 맥 산꾼들에겐 공공의 적이지
168봉(10:30)
키가 크고 가느다란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등로 좌측 아랫쪽엔 진양호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고...
1주일만에 다시 만납니다... 뉘신지 꼭 한번 뵙고 싶습니다
희미한 등로를 따르니...
133.6봉(10:40)
묘지를 만나고...
안부(10:45)
에공 아까운거
등로는 상당히 희미하다
또 다른 묘지를 만나고...
완만한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145.3봉(10:53)
145.3봉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지니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내리막길에 석축으로 쌓은 묘지 2기가 보인다
묘지로 내려서니 당촌리 사평마을이 보이는데...
묘지에서 내려서서 마을 도로로 향한다
주택을 끼고 마을 가운데로 지난다
하얀 민들레(꽃말: 내 사랑 그대에게 드려요)
하얀 민들레는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 유럽, 아메리카의 인디언들 까지도
중요한 약으로 썼다고 하는데 하얀 민들레는 어려가지 질병에 효과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유방암, 유종의 고름을 없애는 힘이매우 강하다고 한다
하얀 민들레는 세계 도처에 2~4백 종류가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하얀 민들레가
가장 약성이 뛰어나다고 하며 우리나라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들레는 서양에서
건너온 서양 민들레가 대부분이며, 서양민들레보다는 토종민들레, 하얀꽃이 피는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 하얀 민들레가 제일 약효가 좋다고 한다
당촌고개(堂村峴:11:00)
진주시 대평면 당촌리 사평마을을 가로 지르는 고개로 당촌리는 평지에 위치한 마을로 앞으로 남강이 굽이져 흐른다.
당촌소류지가 있으며, 넓은 들에서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당촌(당말), 늑실, 당하동,
못밑(지하), 벗들(버들들,유평), 사평, 쑥새골, 아래골(암소골), 잠방골, 황소골(대우동) 등이 있다.
당촌은 뒷산에 신당이 있었으므로 당말 또는 당촌이라 하였는데, 후에 당촌리가 되었다.
당하동은 당촌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고 못밑은 마을 위에 못이 있다고 한다.
사평은 마을 앞에 모래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황소골은 앞산 모양이 황소 형국이라 한다
산괴불주머니(꽃말:보물주머니)
당촌고개를 가로질러 감나무밭으로 오른다
하얀제비꽃도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감나무밭에서 뒤돌아 본 사평동(砂坪洞) 마을
대평면 당촌리에 있는 사평(砂坪)마을은 마을 앞에 모래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사평마을은 댐수몰이 되기전에는 92호로 5개마을로 분동되어 있었다고 하며, 현재 수중이 되어있는
벗들에 28호가 주거하고 있었고 주작물인 벗들무우(대평무우)는 전국에서도 유명하여 옛날에는
나라 임금님께 진상하였다고 하며, 이곳에는 사평정미소가 있는데 대평면에서 가장 오래된 정미소로서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제분기 등의 정미시설이 가동되었다고 하며, 일제강점기 때 진주시 대평면
당촌리 사평마을에 살던 강형수가 처음으로 소규모 정미소를 지어 정미업을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된 정미업의 명맥을 계속 유지해 온 지역의 몇 개 남지 않은
향수어린 정미소 중의 하나였으며, 수몰이 임박했던 1997년 말까지도 시설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정미소였다
엄나무순도 다 피어버려 먹을수고 없다...딸까말까 망설이다 포기하고 그냥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을 헤집고 올라가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이곳은 더운 날씨 탓인지 철쭉도 끝물이다
104.4봉(11:08)
우측에는 밤나무밭이 보이고 경고판도 있다
농장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꽤나 큰 규모의 농장이 보인다
편안한 임도를 따르는데...
고사리밭은 일손이 모자라는지 다 피어서 상품가치가 전혀없는 고사리가 그냥 방치되어 있다
2번째 경고판도 지난다
묘지 3기가 있는 곳을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다
117.6봉(11:20)
117.6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 좌측 아랫쪽은 진양호가 유유히 흐른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 가다가...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등로가 보이질 않는 곳으로 올라선다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144봉(11:28)
이곳에서 직진을 하면 조금전에 헤어졌던 136.4봉 가는 등로가 나오나 이곳에서
급하게 우측 능선 아래로 떨어져야 웅석지맥길을 이어갈 수 있는데 이곳은 길이 아예
보이지도 않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전혀없어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하는 구간이다
144봉에서 급하게 90도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오니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무명묘지가 보이고...
등로는 다시 희미해지고...
또다른 묘지를 지나니...
잡풀이 무성한 넓은 공터로 내려서는데 여름엔 상당히 애를 먹을것 같다
당상동 안부(11:37)
대평면 당촌리 당촌마을 윗쪽에 있는 넓은 안부로 잡풀이 무성하고 우측으론 단풍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넓은 안부에서 좌측으로 올라선다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고...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오랫만에 힘들게 능선을 오르니 성터의 흔적같은 돌담이 보인다
195.5봉(11:52)
195.5봉 바로 아래에는 해주정공의 묘지가 있다
묘지에서 만난 솜다리꽃
가야할 황학산이(좌측)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우측으로는 갈마봉이 보인다
묘지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갑자기 등로가 없어져 버렸다
잡목과의 전쟁을 치르며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또다시 돌담이 나오는데 집에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조선시대의 성터였다고 한다
당촌리 산성(11:58)
진주시 대평면의 자료에서 보면 당촌리마을 최하단(수몰전 당하마을) 뒷산에 있는 산성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기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서 지금도 성터가 있다
녹색 띠지를 따라서 간다
근데 이 띠지를 확실히 믿을건 아니다... 가끔 질러도 가고 가끔은 알바도 하고...ㅋㅋㅋ
가야할 황학산과 그 뒷쪽(좌측)은 분토봉이고 우측은 갈마봉인듯 하다
갑자기 등로가 없어지기도 하고 성터의 돌들이 움직여 조심해야 할듯 하다
성터가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의 뚜렸한 좌측 등로를 버리고 등로가 잘 보이질 않는 직진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가 전혀 보이질 않는 곳을 치고 내려서니...
등로 우측으론 묘지가 보인다
당하동 고개(堂下洞峴:12:10)
진주시 대평면 당촌리 당하마을에 있는 고개로 당하동은 당촌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 붙인 이름이다
당촌(堂村)마을은 남강댐 수몰되기 전 당촌리가 3개 마을로 분동(分洞)되어 있을 당시 당촌마을은
101호로서 큰마을에 속하여 일정때는 대평면 내에서 벼 공출을 제일 많이 낸 마을이다.
8. 15 해방후에는 무종자 생산으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하였으며, 1973년 2월 26일 법률
제 2555호로 종묘관리법이 제정되기 전 무종자 생산량이 당촌마을에서 약 400가마(72㎏입)였다.
당촌리거주 김덕용(金德龍)이 면내에서 생산된 무종자를 600여가마를 수집, 재던 전주 흥농종묘지사(興農種苗支社)로
80여가마 송출하고 잔여 무종자는 강원도, 경기도 등 전국 각지로 송출하였으나 종묘관리법이 제정된 이후에는 이곳
당촌리에서 는 종자생산을 못하게 하고, 대전·전주 흥농종묘지사에서 종자를 생산하여 진주 대평무우라고 이름 붙여
보급하고 있었으며 당촌리 지하(地下) 삼거리는 경제적으로 윤택한 곳이었다. 큰 상점이 있어 사람이 많이 왕래하던 곳이다
당하동 고개에서 가로질러 능선으로 접어드니 묘지 2기가 보인다
갈림길(12:13)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 오르막으로 향한다
128봉(12:20)
뚜렸한 등로를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진양호와 신풍나룻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자주 만나는 어영님의 시그널
오늘의 날씨도 지난주 못지않게 덥다... 진양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소나무 숲속의 서널한 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204.5봉(12:40)
약간의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대머리(?) 묘지를 만난다
진양호 너머로 낙남정맥길이 아련히 보이는데 아마 태봉산인듯 싶다... 앞에 보이는 다리는 진수대교이다
암릉길을 지나니...
황학산 갈림길(12:47)
좌측으로는 분토봉, 우측으로는 황학산, 갈마봉으로 이어지는 등로로 갈라진다
황학산(黃鶴山:233m:12:48)
진주시 귀곡동에 위치한 산으로 원래 이곳의 행정구역은 진양군 축곡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1973년에 진주시로 편입되었으며 진양호 담수로 인해 수몰된 지역이 되면서 일반인들의 접근이
그리 쉽지 않은 곳으로 지명의 유래는 학이 알를 품고있는 형상이라 하여 황학산이라 불리웠으며
황학산의 한 봉우리인 태봉에는 옛날 태를 묻었다고 하며 이 산 아래의 마을인 까꼬실 마을(한골)은
인물이 많이나는 吉地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중기 이후에 진주 향내에서 가장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곳이란다
황학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까꼬실 마을의 안내도
지금은 수몰이 되어 귀곡동에 주거하는 가구는 단 2가구 뿐이지만 이곳에서 살았다가 진양호 담수로 인해
마을이 수몰되면서 외지로 나간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구구절절히 배여있는 안내도인듯 싶다
귀곡동(貴谷洞)은 1973년 내동면 귀곡리가 진주시에 편입되어 귀곡동이 되었으며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판문동(板門洞) 관할하에 있고, 가운데섬·녹두섬·벗들 등의 들판, 갑골·무점골·분딧골·뿔땅골·산박골·한골·
항아골 등의 골짜기, 개구리바우·시포리바위 등의 바위, 공궁·꽃동실·시루봉·콧등실·태봉(胎峰)·황학산(黃鶴山) 등의
야산, 공에미·깟고실·대터·딧덕골·송정·큰말 등의 옛마을, 고개인 아래땅곡 등이 있다. 뿔
땅골은 불당이 있었다는 데서, 시루봉은 산세가 시루처럼 생겼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주요 시설로는 남강댐이 있으며 유적으로는 여러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고인돌 밑에서 청동기시대의
움집 터와 돌널무덤을, 주위에서민무늬 토기. 도질토기 조각 등을 출토하였다
이 지역 출신들의 실향민들이 붙혀놓은 산패
웅석지맥의 마지막 지명이 붙은 산 이름 황학산
웅석지맥이 좌측인 꽃동실 방면으로 갈것인가, 아니면 갈마봉을 거쳐 귀동으로 갈 것인가
맥산꾼들 사이에는 의견이 분분한 곳이다...우측의 귀동으로 빠지면 덕천강이 진수대교를
지나 진양호로 들어 오는데 경호강과 합류하여 남강댐으로 흘러가는 거리가 멀지만 좌측의
꽃동실은 좌측의 경호강과 우측의 덕천강이 합류하여 곧바로 남강으로 흘러드는데 꽃동실
방면이 확실해 보이기에 난 뒤도 안돌아 보고 꽃동실 방면으로 향하는데, 내가 가끔 사용하는
오룩스 앱은 귀동 방향으로 맥길을 안내하고 있다
황학산에서부터는 등로가 아주 잘 되어 있다
231봉(12:58)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오른다
멋진 암릉구간을 지나니...
213봉(13:01)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서 편안한 등로를 향한다
고수들도 이쪽으로 향했나 보다
마치 우리동네 뒷산인 대모산 둘레길을 걷는 느낌이다
무명묘지를 지나 내리막길 내려서니...
등로 우측으로는 편백나무 숲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대나무숲이 보인다
톳재비고개(13:15)
귀곡동 마을의 북쪽 뿔당골과 신풍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로 옛날부터 도깨비가
자주 나타나 혼자서는 넘기가 무서운 고개로 톳재비 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톳재비란 도깨비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톳재비 고개 이정표(↓황학산1.2km →한골(선착장)↑ 꽃동실2km)
이정표는 지자체가 아닌 귀곡총 동창회. 실향민회, 까꼬실 산악회에서 설치한 모양인데
진양호 수몰로 인해 고향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미련이 구구절절이 남아있는 듯하다
자료에 의하면 까꼬실산악회는 남강댐으로 인하여 농지와 마을은 수몰되고, 산등성이만 남아있는
고향땅을 진주의 절경으로 만들고 가꾸며, 마을도 학교도 없어지고 이주단지도 없어, 전국 각지로 뿔뿔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까꼬실 사람들의 애환을, 산행을 통하여 풀고자하여 결성된 산악회란다
톳재비 고개에서 분토봉으로 오르는 길엔 통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분토봉으로 오른 길 좌측엔 묘지가 있는데 묘지 뒤 바위에는 “龍”자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분토봉 이정표
정상석은 뒷쪽으로 20여m 정도 떨어져 있고,톳재비고개 안내문과 꽃동실(가호전망대)방면 안내도가 있다
조금전에 지나온 톳재비 고개의 유래는 여기에 있다
분토봉(墳土峰:136m:13:22)
분딧골 윗쪽에 있는 봉우리로 이곳에는 고인돌과 고분군이 있었고, 석기
토기들이 출토되어 분토봉이라 불리웠는데 이 봉우리 아래에는 분딧골이 있다
톳재비고개 안내문과 꽃동실(가호전망대)방면 안내도가 있으며 우측 내리막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합수점으로 향하는 길은 아주 정리가 잘되어 있다
마치 국립공원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소나무 숲사이를 빠르게 내려오니...
이정표(13:28)
등로 좌측으로 밤나무밭이 보이고...
통나무 계단으로 내려간다
분딧골 (13:30)
이곳에는 고인돌과 고분군이 있었고, 석기 토기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주거지로 볼 수 있어, 분딧골(墳土洞)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분딧골 이정표(↑분토봉 항학산, ←한골, → 큰마을.당산)
분딧골에서 좌측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좌측으로는 데크목 시설도 보인다
뒷들고개(13:32)
뒷들고개는 무,배추,고구마,수박,오이의 명산지로 유명했던 뒷들과 녹디섬으로 통하는 고개이다.
특히 "까꼬실고구마"는 부산에서 지금도 짝퉁이 나돌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뒷들고개 이정표
뒷들고개에서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 통나무 계단으로 오른다
밤나무 단지에도 이런 안내판이 서 있다
밤나무 사이의 등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꽃동실로 가는 이정표
묘지 좌측의 등로로 올라가니...
이정표(13:36)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
2쌍의 부부인듯 한데 감나무의 새순을 마구 따다가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는 눈치이다
고인돌(13:38)
1992년 경상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 발견되었으며, 1997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청동기시대 유적과 삼국시대 무덤으로 경상남도 진주시 귀곡동(貴谷洞) 산 66-19에 있었다.
출토된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구멍무늬토기, 돌끌, 반달돌칼 등이 있다. 대부분 유실되어 일부만 남았다.
삼국시대 무덤으로는 돌덧널무덤 2기와 돌방무덤 1기가 있으며, 주위에서 가야의 토기, 신라의 토기, 손칼, 재갈 등이 발견되었다.
남강댐 건설 이후 수몰되었으며, 출토된 유물은 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고인돌 안내판
88봉(13:40)
쉼터 의자가 있는 것로 봐서는 사람들이 다니는 모양이다
당산(堂山)먼당(86m:13:42)
귀곡동 큰 마을 뒷쪽에 있는 산으로 이곳에서 까꼬실마을과 토지의 수호신을 모셨고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당산제(堂山祭) 지내던 곳이다
‘먼당’이란 경상도 방언으로 ‘고개’ 또는 ‘높은 곳’을 의미한다
등로 우측으로 고사리밭이 보인다
쉼터 의자가 또 보이고...
안부(13:47)
고도차가 거의 없는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 우측으로는 탈모가 심한 묘지가 보이고...
진양호가 가까워지나 보나 진주시장 명의의 경고판이 자주 보인다
86봉(13:49)
웅석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데 삵에 대한 표지판과 벤취 2개가 있다
통나무 계단으로 내려섰다가...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청둑 선착장 갈림길(13:53)
웅석지맥 마지막 길은 참으로 편하다
가호 전망대(佳湖 展望臺:13:55)
지리산 천왕봉에서 분기하여 남덕유산 참샘에서 분기한 경호강과 지리산 천왕샘에서
발원한 덕천강이 서부 경남의 젖줄인 남강이 시작되는 아름다운 진양호반(가호)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가호전망대를 이 지역 사람들은 꽃동실이라 부른다
천왕봉에서 같이 걸어온 웅석지맥 능선이 入水하면서 범여 역시 웅석지맥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가호 전망대에서 바라본 진양기맥의 끝자락
2012년 4월 22일 진양기맥을 마무리 하면서 걸었던 진양기맥의 마지막 자락이 보이는데
신산경표를 저술한 박성태 선생이 어쩌면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 곳이 저 곳이 아닐까싶다
왜 진양기맥이라 불렀으며 맥의 끝을 기강나루가 아닌 이곳으로 정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안된다
가호 전망대 안내판
가호 전망대에서 남강물에 손을 담그기 위해 내려섰지만 물가로 접근이 불가능하여 포기한다
가호 전망대 앞의 안내판
가호전망대 앞에는 꽃동실이란 표시석이 서 있는데 이곳을 백두대간의 끝점이라
표시를 해놨고 바로 앞에는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말뚝이처럼 서 있다
표지석 뒤면에는 "이곳은 한반도의 정기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을 거쳐 지리신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뼈대를 이루는 가장
큰 산줄기 백두대간이 끝을 맺는 곳이다" 라고 적혀 있다
웅석지맥 마지막 지점에서 인증샷
전망대에는 부부인듯한 남.여가 있는데 이곳에서 진주로 가는 배가 몇시에
있냐고 하니 바로밑 선착장에 배가 있는데 조금후에 출발을 한다고 한다
내가 아는 정보로는 이곳 귀곡에서는 08:10, 12:00, 17:00로 알고 있는데 잘못
알고 있나 생각하고 급하게 인증 삿만 남기고 부지런히 선착장으로 향한다
까꼬실 산악회에서는 이곳을 백두대간의 끝점으로 표기하고 있다
가호(佳湖)란 까꼬실의 한자식 표기로 경호강(鏡湖江)과 덕천강(德川江)이 합수하는 이곳의 풍광을 아름다운
호수로 비견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오늘날 진양호반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예견한 듯하다.
농포 정문부선생을 모신 서원의 명칭이 가호서원이고, 까꼬실 망향비에 새긴 서호 정광학(1791-1866)
선생의 시 가호와 쌍주 정세교(1824-1880) 선생의 시 가호팔경이 전해지고 있다
다시 청둑선착장 갈림길
청둑(선착장) 등로로 좌측에 있는 '통훈대부 김해부사' 묘지가 보인다
가호전망대에서 만난 부부가 가르쳐준 선착장으로 향한다
청둑 선착장(14:02)
선착장에는 배는커녕 개미새끼 한마리도 안보인다
조금은 불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진양호 저 건너에 배 한척이 보인다
그래! 어케 되겠지 하고 오늘 점심으로 가져온 빵과 과일 캔맥주 하나를 마신다
꿩 대신 닭이라... 가호 전망대 아래에서 못한 인증샷을 이곳에서 남긴다
손을 씻는 의식도 진행한다
청둑선착장에서 20분 이상을 기다려도 배는 오질않아 아무래도 불안하다
만약에 배가 없으면 17시까지 이곳에서 축치던지 아님 3시간 이상을 걸어나가야
택시를 부를 수 있는데 별 대책이 없어서 일단 걸을 수 있을 때 까지 걸어보자
진양호 주변에는 대밭이 보인다
대밭옆에 있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무작정 걸어간다
이정표와 안내판은 국립공원 수준이다
자주 만나는 상수도보호 안내 간판
충의사, 가호서원 옛터(14:20)
정문부 장군을 모신 사당이 있던 곳이였는데 지금은 진주시 이반성면으로 옯겨 잡풀만 무성하다
정문부의 호는 농포(農圃),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1588년(선조 2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벼슬길에 나아가 임진왜란 때 북평사(北評事)로 의병 대장에 추대되어 함경도를 침략한 왜군을
물리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전쟁 후 여러 벼슬을 거쳤으나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억울한 죽임을 당하였다.
후에 무죄가 해명되어 좌찬성에 추증되었다...정문부 장군의 묘지는 의정부시 용현동에 있다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육전에서는 권율장군의 행주대첩과
이 정암의 연암대첩이 있는데 그것은 역사가가 그것을 기록하였고.이들의 칭송을 마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지위가 있어 말(馬)과 부역과 군졸을 낼 수 있음에 힘입은 것이나 고단하고
미약한데서 일어나 도망하여 숨은 무리들을 분발시켜 충의로서 서로 격려하여 마침내 오합지졸을
써서 완전한 승첩을 거두어 한쪽을 수복함과 같은 이는 관북의 군사가 제일이다”
위의 내용은 정문부 장군의 “북관대첩비”중의 비문의 일부인데 이순신, 권율등의 장수들은 벼슬에
앉아 승리를 거두었지만 정문부 장군은 오합지졸 같은 3천 의병으로 2만8천의 왜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충의사.가호서원 안내판
충의사.가호서원 맞은편에는 큰샘이 있는데 물이 지저분하여 식수로는 부적합해 보인다
사각정자(14:21)
조금전에 지났던 뒷들고개를 다시 만나고...
분토봉에서 내려왔던 분딧골을 지나 한골방향으로 간다
대나무 숲을 지나니 해주정씨 묘지가 나오는데 묘지의 벌목작업을 끝낸 분들이
선착장에 모여 다시 진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혹 진주로 가는 배가 몇시에 있냐고 물으니 15시에 있다고 한다.
그러면 10분정도 여유가 있으니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다
아랫말 선착장(14:48)
이 분들은 산소 벌목작업을 끝내고 제를 지낸 모양이다...제물과 막걸리가 있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자기들은 여기가 고향이었는데 진양호 담수로 수몰지구가 되어 진주로 이주한 해주 정씨라고
하면서 선착장 바로 위에 있는 묘지가 정문부 장군의 10대손으로 자기들의 할아버지라고 한다
어디서 왔냐고 하기에 서울에서 혼자 왔다고 하니 깜짝 놀란다
그러면서 제를 지내고 남은 과일과 막걸리를 주는데 배가 고프던 차에 권하는 족족 연거푸 5잔을
마시고 나니 허리가 펴지는 느낌이다
3시 10분쯤 되니 맞은편 선착장에 있던 귀곡호 배가 도착한다.
원래 이 배는 수자원공사에서 배와 선장의 월급을 지금하고 예전에 이 지역에
살았던 실향민들이 농사를 지으려고 왔다갔다 할 때 사용하는 배로 배 운항시간은
수시로 바뀐다고 하며 뱃삸은 무료이며 일반인은 탈 수 없다고 하는데 운좋게 배를 탄다
배를 무료로 탈 수 있게 해주신 정대근 어르신
이곳 까꼬실(귀곡)에는 해주정씨가 70%였다고 한다
정문부 장군의 후손으로 서초동 법원 앞에 있는 정곡빌딩 5개가 해주정씨 종친 소유란다
이 분은 젊었을 때 나만큼이나 역마살이나 끼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카메라를 메고 전국에 사진을 찍어러 다니신단다
올해 79세인 한국고령자 정보문화교육위원회 이사장이신 정대근 어르신 고맙습니다
그리고 배고프던 차에 막걸리 정말 잘 먹었습니다
해주정씨 종친들
진양호(晉陽湖)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귀곡동·대평면·내동면과 사천시 곤명면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로
면적 29.4㎢, 유역면적 2,285㎢, 저수량 3억 1000만t이며, 1970년 남강(南江)을 막아서 만든
남강댐에 의해서 생긴 인공호수로,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있다.
홍수 조절과 주변 일대의 상수도.관개 용수·공업용수 등으로 이용되며,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좋아 진주시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주변에 선착장과 물홍보전시관·동물원·어린이동산·호텔·여관·식당 등의 위락시설이 있다.
400대를 수용하는 주차장과 동물원, 어린이동산은 유료이고, 물홍보전시관은 무료 입장할 수 있다.
찾아가려면 진주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진양호행 시내버스를 타거나,사천공항에서
승용차로 20분, 고속도로에서 서진주 인터체인지로 빠져나와 2분 정도 달리면 나온다
웅석지맥이 입수한 가호전망대 앞으로 지나간다
5년전에 걸었던 진양기맥 능선쪽엔 아시아 레이크 호텔이 보인다
이곳 진주는 해방 전후 힘든 시기에 노래로서 민초들의 힘든 대신 해준 가수들이 참으로 많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애수의 소야곡, 짝사랑, 유정천리, 등등
가요황제로 불리는 가수 남인수선생과 이재호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진양기맥의 끝자락 모습
배에서 내려 뭍으로 올라선다(15:20)
담부터는 절대 안타겠습니다...시장님
진양호 선착장의 모습
정대근 어르신과 작별을 하고 올라서니 망향비가 보인다
망향비(15:22)
망향비 앞 버스 승차장에서 버스를 타고 진주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진주시외버스 터미널(15:50)
진주에서 서울 남부터미널로 오는 버스는 2~30분 간격으로 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서울로 향하는 버스가 있으나 20분 뒤에 표를
예매하고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매점에서 캔맥주 하나를 마시고 서울가는 버스에 오른다
천안을 지나면서부터 버스는 더디게 서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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