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6년 10월 2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높은 습도
☞ 산행거리: 도상거리 13.5km + 어프로치 약3.5km / 7시간 20분소요
☞ 참석인원: 진권아우와 둘이서
☞ 산행코스: 수도암-한산교-갈림길-청암사 갈림길(1)-청암사 갈림길(2)-벤취-헬기장-전망암
수도산 동봉- 데크목 계단-돌탑-단지봉 갈림길-수도산-수도산 서봉-금오지맥 분기봉
조망바위-1,021봉-암봉-926봉-바위봉-갈림길-청암사갈림길-벙커봉-안부
510봉-가랫재-이동통신탑-추량산-751봉-암봉-757봉-799봉-864봉-안부
삼방산-갈림길-묵 묘-부항현-700봉-철조망-무명봉-누루목재-686봉-헬기장
갈림길-고석마을
☞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대덕면, 지례면, 증산면 / 경남 거창군 가북면
요즘 세상사가 우째 이리도 복잡한 지 모든게 뒤죽박죽이고 아수라장 같은 느낌이다
국회라는 곳이 민의의 전당이 아닌 아닌 자기들의 이익을 쫒아서 쌈박질하는 전투장이
되어 버렸고, 부패 방지를 발효된 김영란법이란 예전엔 듣도보도 못한 법이 부패방지가
아닌 서민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악법이 되어 民草의 삶은 송두리채 망가지고 있건만
가장 이기적인 국회라는 곳은 자기들이 법을 만드는 위치에 있어서 그런지
해당사항 제외... 國會義員이 아닌 國害義員이라고 온 국민들이 손가락질 하는대도
모른척 하는 뻔뻔함...저런 분들을 위해 내는 세금이 정말 아깝다
부패방지... 꼭 필요한 법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로 인해 고급 음식점과 꽃집 등
여러분야에서 종사하는 민초들은 하루 아침에 날아가 버린 삶터... 법의 보완이 필요하다
이번주부터 지난 여름에 잡목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하다만 주왕지맥을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사드 배치지역이 바뀌면서, 시작하려던 평창(주왕)지맥을 중단하고 경북 김천과
성주 지역에 걸쳐있는 회천(금오)지맥과 감천남(영암)지맥을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에 일정을 바꾼다
회천(會川:금오지맥(金烏枝脈) 지도와 개념도
수도지맥 수도산 1313봉(분기점)에서 북쪽능선으로 시작하여 삼방산과 염속산을
지나면서 서쪽으로 이어지다 염속봉산을 지나면서 다시 북쪽으로 지맥은 이어진다.
연봉산과 벌무산 그리고 고당산을 지나면서 다시 지맥은 북동쪽으로 이어진다.
백마산을 지나고 금오산성에 접어 들면서 지맥은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 백마산을 끝으로
감천으로 떨어지는 실 거리87.93km의 회천(금오)지맥은 끝을 맺는다.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회천지맥이라 부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오전에 지인의 결혼식 한군데를 참석하고 집에와서 휴식을 조금 취한 다음에 경부선 터미널로 향한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19시에 출발하는 김천행 버스를 예매하고 진권아우와 카톡으로 대화를 한다
진권아우가 있는 용인에는 김천으로 곧바로 가는 고속버스가 없어서 구미로 가서 김천으로 올라온다고
하면서 18시 05분 버스를 타고 구미로 내려가는 중이란다
고속버스가 천안을 지나면서부터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 낼은 비가 오지 않아야 할터인데
추풍령고개를 넘어서면서 비가 소강상태가 되고 김천 I.C를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오며 비는 그친다
김천버스 터미널(21:30)
난생 처음 와보는 김천터미널... 14만의 인구를 자랑하는 터미널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시내버스가 같이 이용하는 터미널인데고 불구하고 면소재지 터미널 수준이다
버스에서 내려 30여분을 터미널 근처에서 서성인 끝에 구미에서 올라온 진권아우와 조우를 한다
김천 터미널 앞에는 시드반대를 위한 플랑카드로 도배를 하다시피 해놨다.
김천시민들의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국가의 안보와 안위를 위해서는 필요한데
무조건 내 지역에는 안된다는 건... 좀 그렇다.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방부의
우유부단함에 씁씁함이 안타깝다... 사드포대가 배치되는 지역주민들에게 이해와
당위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며, 거기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조치를 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발표부터 먼저하고... 반발하자, 수습도 제대로 못하는 아마추어리즘
공무원들의 프로 정신이 안타깝다
회천(금오)지맥과 영암지맥... 사드가 배치되기 전에 얼른 끝내야 할터인데...
금오장 여관(22:20~04:20)
터미널에서 300m정도 떨어진 거리에 찜질방이 하나 있는데 2명이서 찜질방가는 비용이나
허름한 여관방에서 자는 비용이나 별 차이가 없을듯 싶어서 지난해 금오지맥을 마친 동료산꾼
도리깨님에게 정보를 얻어 가지고 터미널에서 400m정도 떨어진 뒷골목에 있는 싸구려 여관을
물어 물어 겨우 찾아가니 간판은 보이는데 간판불과 계단의 불도 꺼져있어 장사를 안하는 줄 알고
그냥 나오려다가 컴컴한 계단을 올라가 문을 두드리니 인기척이 난다
연로하신 쥔장 할머니가 빼꼼히 문을 열기에 하루밤 자고 가려는데 재워줄 있냐고 하니까
들어 오란다...왜 불을 꺼놨냐고 물으니까. 몸이 불편하여 영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방값 30,000원을 내고 방에 들어가니 손님이라곤 달랑 우리뿐이고 제일 넓은 방을 주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온수가 잘 나와 샤워를 끝내고 잠자리에 든다
삼덕기사 식당(04:30~05:10)
시외버스 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삼덕기사식당...5,000원짜리 부페라고 우습게 봤다간 큰코 다친다
이곳 역시 도리깨님의 정보로 이곳에 왔다...난 사실 부페식당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내 돈내고 내 손으로 밥 갖다 먹는게 싫어서 부페 식당을 잘 이용하지 않는 편이다
근데 이곳은 부페라도 커다란 대접 같은게 있어서 각종 나물을 대접에 담아 고추장으로
밥을 비며 먹고나니 70이 넘은 쥔장 할머니가 커피에다 1,000원짜리 요구르트도 후식으로 준다
이곳 정수기에서 가져온 수통에 물을 보충하고 물을 따끈하게 끓여 달라해서 가지고 간 보온병에
넣고나니 오늘 산행 들머리인 수도암까지 태워주기로 한 김천사는 진권아우 친구가 도착한다
부페식당과 여관에 대한 정보를 준 도리깨님...세세생생 복 받을깁니다
수도암 입구(06:20)
김천사는 진권아우 대학동기... 서울에 살다가 고향인 김천으로 내려와서 부모님 모시고 농사를
짓는다고 하는데 김천에서 이곳 수도암까지는 차로 거의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이다
김천 구성면과 지례면을 지나면서 4차선의 넓은 도로가 증산면을 2차선으로 좁아지고 거창과
무주쪽으로 향하는 30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수도산 휴양림을 지나 수도암으로 향하는 좁은
도로를 따라 오르니 수도산에서 내려오는 청정한 무흘구곡(武屹九曲)과 펜션 몇채가 보인다
무흘구곡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한강(寒岡) 정구(1543~1620)가 중국 송나라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에 빗대 이름 지었다고 하며 바로 옆에는 인현왕후길이 조성되어 있다
인현왕후길은 수도산 자락의 수도암과 청암사를 잇는 9㎞짜리 산길로 인현왕후가 수도암과
청암사를 오가며 기도를 올렸을 것이라는 향토사학계의 추정에 근거해 조성했다고 한다
30번 도로에서 수도암까지는 7km가 넘는 거리로 큰 차들은 길이 좁아 오지도 못하는데 수도암
주차장까지 왔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복받을거요
수도암 안내판
수도암 봉황루(鳳凰樓)
돌계단을 오르니 수도암 출입문 역할을 하는 봉황루가 나오는데 봉황루로 들어서면서
수도암 대적광전을 향해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며 금오지맥을 무탈하게 마치길 기원한다
수도암 관음전(觀音殿)
수도암의 사적(史蹟)은 전하지 않으나 청암사 사적비에 의하면 신라 헌안왕 3년(859년) 도선국사가
쌍계사, 청암사, 수도암을 같이 창건했다고 전며, 그 후 사적은 남아있지 않으나 조선 제11대 중종
을사년(1545년)에 상선거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또한 인조 27년(1649년) 벽암선사께서 중흥하였고 고종 31년에 동학혁명으로 일부의 암자가
소실되었으나 6년후인 광무4년(1893년) 포응선사가 다시 복원하였다.
그 이후 경허(鏡虛). 한암(寒岩). 효봉(曉峰). 구산(九山) 선사 등이 주석하였다
현재 수도암은 대적광전 영역의 대적광전과 약광전, 관음전 영역, 선원영역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정각(正覺), 서전(西殿), 낙가(洛伽), 한적(閑寂) 등이 있다
대적광전 뜨락에서 바라본 가야산
수도암에서는 가야산 정상(칠불봉)을 연화봉이라고 한다
연화봉 앞에는 일자봉이 있어 연화봉을 받쳐주고 있는데 연화봉은 공덕을,
일자봉은 평등한 지혜를 상징한다고 하며 이런 연유로 수도암은 지혜와
덕을 현출하고 있다고 한다
대적광전 앞에서 진권아우와 함께
수도암 대적광전(大寂光殿)
탱주가 뚜렸하고 고식 기단위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전각으로 겹처마, 다포계 맞배지붕으로
특이한 점은 기둥에 주련이 없다는 점이고, 법당내에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을 대적광전(大寂光殿) 또는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전각의 명칭이 붙여질 경우에도 보통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게 되며, 또 비로전(毘盧殿) 또는 화엄전(華嚴殿)이라고 할 때에는 보통
비로자나불만을 봉안하는 것을 상례로 삼고 있다.
대적광전이 주법당인 대표적인 사찰로는 합천 해인사와, 구례 화엄사, 화계사 등이 있다
수도암 꽃살문
단아하고 청아한 꽃살문이 산꾼 범여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찿아볼 수 없는 소박한 사찰... 범여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있는 사찰로
좋아하는 부안 내소사에 온듯한 느낌이다...옛날 그대로의 꽃살문... 영원히 보존했으면 한다
경상도 지역의 성지 순례를 하다보면 불사네 뭐네 하면서 무조건 크게 화려하게 한 사찰과는 차원이 다르다.
부처님도 이런 사찰을 좋아 하시겠지.
수도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307호)
이 불상은 원래 수도암 대적광전에 모셔진 본존불로 모셔진 비로자나불 좌상이다
사각형에 가까운 풍만한 얼굴은 비만한 편으로, 가늘게 치켜든 긴 눈과 평평한 코,
굳게 다문 입술과 턱 밑으로 짧은 주름이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불상의 몸체는 거구이면서도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법의(法衣)는 형식적이고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으나, 반복을 피하여 변화감을 주고 있다
손 모양은 가슴앞에서 왼쪽의 검지를 감싸 쥔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임을
알려주며 불상의 받침대는 상. 중. 하대로 구성된 팔각 연못 좌대이다
특히 상대(上臺)에는 3마리의 사자상과 용머리로 보이는 조각이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불상으로 추정된다
대적광전 편액
불상 조성시의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도선국사가 이 부처님을 조성할 때 수도암터에
어울리는 탑과 모든 불사를 마쳤으나 석불을 조성할만한 석재가 없었다.
그러다 수도산 너머 부처골에서 큰 돌을 발견하고칠척이 넘는 거대한 부처님을 조성하였으나
수도까지 옮길일이 막막했다...이에 모든 대중들이 지극 정성으로 7일 기도를 올리는데
마지막날 수염이 하얀 노스님이 나타나 부처님을 옮겨 준다면서 큰 석불을 등에 업고
나는듯이 산을 오르며 넘어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수도암 근처의 아홉살이 고개에 이르렀는데 그만 칡넝쿨에 걸려 넘어질뻔 했다.
이에 노스님은 수도산 산신을 불러놓고 “부처님을 모시고 오는데 칡넝쿨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앞으로는 다시 절 주위에 칡넝쿨을 자라지 못하게 하라”고 호통을 치고는 부처님을 수도암에
모셔놓고 사라져 버렸다.
그 때문인지 수도암 주위에는 지금까지 칡넝쿨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대적광전 뜰에서 바라본 가야산
수도암의 풍수형국은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옥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이란다
풍수지리의 大家인 창건주 도선국사는 이곳을 찾아 터를 발견하고는 만대의
수도인이 나올것이라고 기뻐하면서 7일간 춤을 추었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가야산 상봉(上峰)은 실을 거는 끌개 돌이되고, 뜰 앞에 있는 동.서의
삼층 석탑은 베틀의 두 기둥이 되며, 대적광전 안의 비로자나불이 봉안된 자리는
옥녀가 앉아서 베를 짜는 자리라고 한다
또한 선원에는 실을 감은 도토마리석이 있으며, 북실을 담그는 물이 있어야 하므로
옛날 관음전 마당에는 비교적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수도암 약광전(藥光殿)
약광전의 석불좌상은 도선국사가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금오산 약사암과 직지사 삼성암에 있는 약사여래와
함께 방광하였다 하여 3형제 불상으로 불린다. 특히 머리 부분에 보관(寶冠)을 장식했던 흔적이 있어 주목된다.
이는 약왕보살(藥王菩薩)의 머리에 금속관을 설치했던 것으로 흔하지 않은 예이다.
석조비로자나불상은 석굴암 불상보다 80㎝ 작으며, 9세기에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하였다고 한다
약광전 편액
약광전 법당 안에는 노스님이 열심히 기도중이라 민폐를 끼칠까봐 자세히 보지는 못한다
약광전 석불좌상(보물 제296호)
이 불상은 원래 청암사 약광전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머리에 관을 쓰고 좁은 이마의 중앙에
커다란 백호(白毫)가 박혀 있으며,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운 풍만한 모습으로, 눈과 코는
가늘고 짧으며, 입술은 두툼하게 표현되어 온화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을 주고, 귀는 가늘게
늘어져 있고, 목에는 세 줄의 삼도(三道)가 나타나 있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어 보살(菩薩)처럼 보이지만, 전반적인 형태나 손가짐으로 볼 때,
여래(如來)상에 가깝고, 약광전이라는 전각에 모셔져 있어 약사여래(藥師如來)로 보인다
불상은 전체적으로 경직된 신체에 도식적인 옷주름이 표현되고, 광배(光背)나 앉아있는
모습이 형식화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10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수도암 삼층석탑(동탑:보물 제 297호)
통일신라시대의 3층 석탑으로 높이는 동탑이 3.76m, 서탑이 4,25m로 수도암 대적광전앞에 마주 서 있다
동탑은 단층기단으로 면석에는 큼직한 눈모양이 새겨져 있고, 1층 몸돌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형태로
모서리 기둥을 표현하고, 각 면의 모서리 기둥에는 5cm정도의 깊이로 감실(龕室)을 마련하고, 그 안에
조각된 연꽃 대좌 위에 여래좌상(如來坐像)을 돋을 새김 하였다.
수도암 삼층석탑 서탑
서탑은 이중(二重) 기단으로, 중석 각 면에, 모서리 기둥, 안 기둥 한주가 모각되어 있다
탑신부는 몸돌.지붕돌이 층마다 1매씩이며, 1층 몸돌에만, 연꽃대좌 위에 여래좌상 1구를
돋을 새김 하였다...두 탑의 형식이 서로 다르고, 법당과는 가까우나, 탑 사이가 멀리 떨어져
있는것으로 보아 본래 쌍탑 형식으로 보기는 어렵다
수도암 대적광전과 약광전, 삼층석탑만 산행 시간 때문에 주마간산 격으로 보고
다른 전각과 선원들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계단으로 내려선다
이제 진권아우와 김천 친구는 헤어질 시간을 아쉬워 하면서 두 손을 꼭 잡고
대적광전 계단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대학을 졸업한 지 30여년이 다되어 간다는데 참으로 부럽다
진권아우! 젊은 것이 인생 참 잘살았네!
대적광전 계단 아래에서 헤어지며 산행하면서 먹으라고 양파즙에다
떡을 2개씩이나 주는데 얼마나 고마운 지...
담 주(10월 9일)에 2구간 들머리까지 태워주기로 약속하고 작별을 한다
등산 안내도
한산교(寒山橋:06:40)
꽤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수도암을 둘러보고 산행 들머리인 한산교에서
수도암을 향해 저두일배의 예를 올리고 금오지맥 1구간 산행을 시작한다
등로에 접어들면서 아우가 산악회 시그널을 하나 건다
기상청에서 비가 온다고 했는데 다행히 비는 오지 않으니 안심이다
갈림길(06:48)
청암사 갈림길 1 (06:50)
청암사는 신라 헌강왕 때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조선조의 허정화상(虛靜和尙)이 중창하여
화엄종(華嚴宗)을 선양한 곳으로 1912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당시의 주지 김대운(金大雲)이 새로 중건하였다.
숙종의 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원당(願堂)으로 유명하다.
청암사의 산내암자로서 1,360m의 고지대에 있는 수도암에는 보물 제307호인 청암사수도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297호인 청암사수도암삼층석탑, 보물 제296호인 청암사수도암약광전석불좌상 등이 있다
호젓한 등로를 따라서 수도산으로 향한다
청암사 갈림길 2 (07:00)
청암사는 통일신라 헌안왕 3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본래 해인사의 말사들을 관장하는 거사였다.
경내에는 다층석탑과 42수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고, 산내 암자로는 백련암, 수도암이 있다.
그러나 백여 년 전부터 부처님의 영험과 이적이 많다 하여 사람들이 불영산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조선 숙종의 계비였던 인현왕후(1667~1701)가 기사환국(1689) 때 폐서인이 되어 고통의 세월을 보낸곳이
청암사 극락전이다... 희빈 장씨와의 암투에서 밀린 인현왕후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반대 세력들의 해코지를 피해 은거할 곳을 찾던 인현왕후는 경북 상주의 외가와 가까운 청암사로 거처를 정한다.
당시 왕후가 머물던 곳이 극락전 별채, 복위 기도를 올렸던 곳이 보광전이다. 인현왕후는 극락전에서 만 3년간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인현왕후가 제자리를 되찾은 건 1694년 갑술옥사 때다.
그는 복위 뒤 청암사에 감사 편지를 보내는데, 당시 편지는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2번째 청암사 갈림길을 지나니 멋진 소나무 아래에 산꾼을 위한 벤취 2개가 있다
정상이 1km 남았다는 표식을 지나니...
헬기장(1,113m:07:10)
소리 소문없이 어느새 가을은 우리곁으로 와 버렸다
전망바위(1,256m:07:15)
가야할 수도산 동봉은 짙은 안개에 가려 버렸고...
가을에 심취한 진권아우!...가을을 타는가 보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미끄러운 등로를 조심스럽게 올라선다
수도산 동봉(1,315m:07:20)
동봉에서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선다
멋진 조망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짙은 안개로 인해 오늘을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비를 안맞고 걷는것만 그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맨날 일기예보가 틀리는 구라청(기상청)이 오늘은 고맙기만 하다
돌계단을 올라서니...
돌탑이 보인다... 다시 1분정도 지나니 단지봉 갈림길이 나온다
단지봉(丹芝峰) 갈림길(07:25)
단지봉은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와 거창군 가북면 몽석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단지봉의 유래는 산정(山頂)이 단지 뚜껑처럼 평평하며 넓고 산 아래는 단지 배 나온 것이
단지 같아서 단지봉이라고 명명했다고 하는데 민산이라고 한다고한다
수도지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1335m)이지만 봉우리라는 이름 때문에
수도지맥이라는 이름을 수도산에 양보한 듯하다
수도지맥 2구간을 걸을때 지났던 곳이라 낯이 익다...거의 4여년 된듯하다
수도산(修道山:1317m:07:27)
경북 김천시 증산면과 대덕면, 경남 거창군 가북면에 걸쳐있는 경,남북 도계에있는 산으로 산의 명칭은
참선수도장으로 유명했던 신라말의 수도암이 있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하며, 불령산·선령산이라고도 한다.
참선 수도장으로 유명한 신라말 때의 수도암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방이 비교적 완경사를 이루며, 남쪽 사면에서는 대가천이 발원하고, 북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하천은 감천에 흘러든다.
북쪽 산록의 청암사 일대는 불령동천·용담폭포·추산령낙조·담계옥류 등이 청암사 8경으로 유명하며,
해마다 곡우날이면 주변에서 자라는 자작나무의 수액을 먹고, 위장병·신경통 등을 고치기도 한다.
또한 청암사의 부속암자인 수도암 경내에는 청암사수도암약광전석불좌상
(靑巖寺修道庵藥光殿石佛坐像 : 보물 제296호)·청암사수도암3층석탑(보물 제297호)·
청암사수도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靑巖寺修道庵石造毘盧遮那佛坐像 : 보물 제307호) 등이 있다.
주변에 가야산국립공원·덕유산국립공원 등의 명소가 있으며, 북쪽 산록으로 상주-산청을 잇는 국도가 지나간다
산의 높이로 치면 우리나라 30위권 안에 들지만, 산림청의 100대 명산에서도 빠질 만큼 지명도가 낮다.
그 산중에 있는 수도사나 청암사(靑巖寺)도 영남의 지역 불자들이 아니면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오지에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수도산은 이름을 여럿 갖고 있다. 수도사 암벽에 조성된 산왕대신 감실에 '불령산(佛靈山)'으로 되어 있는 걸 보면
'수도산'이라는 이름은 그 후에 등장한 이름인 듯 하다. 같은 산중에 있는 청암사도 ‘불령산’으로 쓰고 있다.
그 외에도 이 산은 ‘선령산(仙靈山)’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수도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물과 관련된 것이라 착각하기 쉬우나, “修道山”이라는 한자를 씀으로
승려로써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는 산, 혹은 도리를 깨우치는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수도산 중순에 위치한 수도암은 고지대에 위치함에도 풍부한 물을 공급받고, 여름철에는 모기 등의
해충이 적어 천혜의 수도지로 인정받아 수도[修道] 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수도산에서 발원한 대가천은 가야산 북사면을 따라 내려오다 성주, 고령 땅을 적신 뒤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로 옛 가야 땅을 흐른다 해서 이름도 대가천(大伽川)이다
정상 뒷면에 새겨진 수도산의 유래
수도산 정상에는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삼각점 안내판이
있긴 하지만 정작 삼각점은 그 어디에도 찾을수가 없다.
황강(수도)지맥 산행때의 사진(2013년 1월 20일)
수도산에 서면 온 사방이 일망무제로 다 보이는 곳이나 오늘은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진권아우와 둘이서 인증샷을 남기고 서둘러 길을 떠나는데 어제 내린 비로 인해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수도산 서봉(西峰:1,313m:07:43)
양각산 갈림길이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이곳은 수도산 서봉으로 신선봉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양각산으로 가는 길이다...
양각산(兩角山:1150m)은 거창군 웅양면에 위치한 산으로 산 정상의 두 개의
봉우리가 소의 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반가운 현오님의 시그널
황강(수도)지맥 때의 것인지...금오지맥때의 것인지...암튼 대단혀요
수도산 서봉의 모습
회천(금오)지맥 분기봉(07:45)
부산 ‘같이하는 산악회’에서 스텐레스 판에다가 수도지맥을 황강기맥, 금오지맥을
감천지맥으로 표기했던 걸 누군가 그걸 지우고, 수도기맥과 금오지맥으로 새롭게 표기를 해놨다
능선 북쪽으로는 김천시 증산면과 대덕면의 면계(面界)가 되는 등로가 이어지고, 북서쪽으론 월매산 능선이다
황강(수도)지맥 종주때의 사진
본격적인 회천(금오)지맥 능선에 첫발을 내딛는다
초반부터 미역줄기란 넘이 태클을 걸어대고 비에젖은 낙엽이 가득한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회천(금오)지맥 분기봉에서부터 계속해서 내리막이다
계속해서 내리막길이지만 전망은 꽝...구라청(기상청)의 예보로는 비가 온다고 했는데
비 안맞는 것만해도 어디야! 내리막길을 내려서는데 갑자기 구름이 걷히면서 시야가 확 트인다
조망바위(08:00)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가야할 회천(금오)지맥 능선
김천을 일컬어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라고 한다.
삼산(三山)은 황악산 ·금오산·대덕산이며, 이수(二水)는 감천과 직지천을 가리킨다.
김천에 수도산은 별로 중요한 산으로 치지 않았던 것 같다.
김천은 삼국 시대부터 교통의 중심, 물류의 중심지가 되어 많은 사람이 왕래하고
문화가 교류되어 시장과 내륙장이 발달하면서 술과 음식도 발달하게 되었다.
김천을 대표하는 술은 과하주가 유명하며 물이 좋아 맛도 좋다고 명성이 높다.
과하주란 무더운 여름을 탈없이 날 수 있는 술이라는 뜻에서 얻은 이름이다.
조선 중기부터 양반가에서 많이 마시게 된 술인데 경북 김천과 전북 전주의 과하주가 유명하다.
소주는 독하고 약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서 변질되기 쉬우므로 만들어진 술이지만
김천의 과하주는 전주의 과하주와는 달리 소주를 넣지 않고 금천 샘물만을 넣어서 만든다고 한다.
초가을인데 이곳에는 겨우사리가 꽤나 많이 보인다
몇년전 영산기맥에서 자주 만난 시그널(?)... 아마 공작산 아우가 다니는 송악산악회의 것인 모양이다
급경사로 내려오니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 멧돼지의 흔적만 보이다가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올라선다
1,021봉(08:20)
키작은 산죽밭을 치고 나가는데 벌써 등산화에 나무의 맺힌 빗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암봉(08:30)
암봉을 내려서니 좌.우로 건강한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숲이 우거지고 솔잎이 많으니
송이버섯이 나올것 같은 곳인데 베낭을 벗어넣고 뒤져볼 수도 없고 입맛만 다시고 걷는다
이곳 김천 수도산 자락에는 자연산 송이가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또 다시 급경사의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 내려선다
비교적 등로는 뚜렸하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아 알바 염려는 없으나
비에 젖은 등로가 워낙 미끄러워 생각보다 산행 속도가 나질 않는다
우거숲이 성가시긴 하나 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다
안부(08:35)
1,010봉(08:38)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지나온 수도산...끝내 속살을 보여주질 않는다
해방된 지가 70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소나무에는 일제의 만행 흔적이 그대로 보인다
암봉(08:50)
코끼리 바위(범여의 생각中에서)도 우회해서 오른다
926봉(09:00)
등로 좌측으로는 대덕산과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오이꽃 버섯
등로에서 버섯을 채취하는 분들을 만나고... 오늘 산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
바위봉(09:20)
갈림길(09:22)
진권아우와 세상사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호젓하게 길을 걷는다
조그만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청암사 갈림길(657m:09:25)
우측으로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이고 길도 반질반질하다
먼저가던 아우가 무심코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이곳으로 가면서
청암사로 이어지는 길이고, 회천(금오)지맥은 희미한 직진의 등로로 간다.
수도암에서 출발하여 이곳까지 물한모금 안 마시고 걸어왔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벙커봉(09:30))
청암사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벙커처럼 생긴 구덩이가 보이고...
가을 산에서 자주 만나는 가는 쑥부쟁이
안부(09:35)
우측으로는 윗가래재 마을에 있는 감나무밭이 키작은 소나무 사이로 보인다
소나무 숲속으로 올라서니...
510봉(09:38)
갈림길이 나오는데 회천(금오)지맥 원길은 직진이나 많은 산꾼들이 우측으로 내려갔다
원칙대로 직진하여 가니 우측 아래에 정부인 함안조씨 묘지가 보인다
소나무 사이로 조금을 진행하니...
묘지가 나오고...숲속에 들어섰다가 다시 조금을 진행하니...
또다른 묘지가 나오는데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가 나온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가랫재로 향한다
가랫재(518m:09:50)
경북 김천시 대덕면에서 증산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가랫재는 지대가 높아 항상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마을이어서 가을재라 하던 것이 음이 변하여 굳어진 이름이다.
한자로 추령(秋嶺)이라고 하며 무주와 성주를 잇는 증산면과 대덕면의 경계지역의 30번 국도이다.
도로로 내려선 다음 우측으로 간다
도로옆 칡넝쿨속에 숨어있는 가랫재 수준점
가래마을쪽으로 향하다가 가드레일 뒷쪽 능선으로 접어든다
이동통신탑(09:58)
가랫재 절개지 능선위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 구름에 가린곳인 삼도봉인듯하다
자주쓴풀
용담과의 쓴풀속에 속하며 햇볕이 잘 드는 언덕, 산비탈, 풀밭, 밝은 소나무숲 등에
자생하는 두해살이풀로서 뿌리부터 잎 및 꽃까지 모두가 엄청 쓴맛을 가지고 있어서
뜨거운 물에 천번을 우려내도 쓴맛이 난다고 하여 '쓴풀'이라고 부른다.
일조량에 아주 민감해서 햇볕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꽃잎을 닫아버리며
쓴풀 줄기를 자르면 하얀 유액이 나오는데 그 맛이 매우 쓰다
자주쓴풀은 줄기가 짙은 자주색이며 자주색꽃이 피며, 생약명으로 당약(當藥)이라고 하여
약용하며 쓴맛 건위약으로 소화불량과 밥맛이 없을 때 쓰이며 용담보다 약 10배 쓰다.
그러나 보관하면 쓴맛이 약해지는 결점이 있으며 머리털을 빨리 자라게 하는 작용이 있다 하여
조기탈모증에 쓰기도 하는데, 가을에는 꽃잎이 5장인 자주꽃이 피었다가 열매를 맺으면 시든다.
열매는 삭과로 바소꼴이며 씨앗이 매우 작으며 쓴풀속은 전세계에 약 80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여러종이 자라고 있고, 꽃잎이 4장인 네귀쓴풀과 큰잎쓴풀, 대성쓴풀
꽃잎이 5장인 쓴풀, 자주쓴풀, 개쓴풀 등이 있다
가랫재로 올라오는 구절양장
가랫재의 또다른 유래는 대덕면에서 증산면으로 올라오는 굽이굽이 골짜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며 `갈림`의 뜻으로 여겨지며 기본형은 `가르다`로 이에서 갈라져 나온 형태로 본다.
늘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진권아우님
근데 지는 전망좋은 곳에서 서고 나는 미끄러운 절개지 아래서 찍으란다
미끄러지면 그냥 황천길인데... 젊은것이... 형님을... 그래도 싸가지는 좀 있다
현오님의 변신?
월매산도 보이고...
추량산(秋良山:589.4m:10:05)
가랫재 절개지 위에 있는 지도상에는 589.4봉으로 표기되어 있는 봉우리에 추량산이란
표시석이 있는데 북삼읍 등산회원들이 세운 추량산의 높이 표시는 505m로 엉터리이다
표시석을 세운 정성은 가상하다만 기왕이면 다시한번 확인해야지...
추량산의 유래는 가랫재(秋峴) 아래에 있는 대덕면 추량리 가래실 마을에서 유래됐다
가래실은 마을 형상이 떡가래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고래의 예법을 중시
추현(秋峴:일명 가릇재) 아래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어서 가래실이라 하고 한자로
추량(秋良)으로 표기하였다.하는 의미를 담아 가례(家禮) 또는 가례(嘉禮)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1400년대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낸 서산 정씨 11세손 행촌(杏村) 정처우(鄭處祐)가
충청남도 서산에서 옮겨 와 정착한 이래 대대로 서산 정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고도가 엉터리인 추량산 표시석
추량산 3등삼각점(△ 무풍307 / 1983복구)
흰목이버섯
추량산에서 우측으로 꺽어졌다가 다시 좌측으로 급하게 내려선다
안부로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벌목한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안부에 오르는데 참으로 힘이든다
운지버섯
서서히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진권아우는 부지런히 도망을 가고...
힘들게 봉우리로 올라와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소나무 숲이 주변에 많이 보인다... 이런 곳에는 송이버섯이 있을 법한데...시간이 없어 아쉽다
751봉(10:50~11:15)
이른 새벽에 아침을 먹은 탓인지 허기가 진다... 아우와 함께 행동식으로 가져온 떡에다가
집에서 가져온 단감... 후식으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나선다
좌.우에는 소나무가 많이 보이고 서서히 등로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암봉(11:20)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 사면길로 내려선다
757봉(11:35)
잡목이 길을 막고 있고 등로가 상당히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멧돼지의 집
갑자기 뭔가 후두둑하는 소리에 놀라 앞을 쳐다보니 멧돼지 한마리가 도망을 간다
멧돼지가 자기 집에서 잠을 자다가 우리가 지나는것 보고 서둘러 도망을 간다
멧돼지의 흔적
우측으로 벌목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꽃향유가 참으로 이쁘게 피어있다
벌목지에서 바라본 김천시 대덕면과 그 너머로 보이는 가야산의 모습
799봉(11:50)
벌목지와 작별을 하고 좌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우측으로 철조망으로 바라보면서 걷는다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면서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바로 앞이 삼방산인줄 알고 부지런히 올랐는데 아직도 삼방산은 보이질 않는다
864봉(12:05)
잡풀이 너무 많아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그렇다고 헬기장은 아닌듯 하고...
등로는 보이지 않고 이리저리 헤맨끝에 겨우 등로을 찾아서 내려선다
안부(12:07)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억새밭이 펼쳐지면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삼방산이 나온다
삼방산(三房山:864.4m:12:10)
김천시 대덕면 추량리와 증산면 동안리, 부항리 사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명칭 유래는
지례면, 대덕면, 증산면의 세 개 면이 접한 지점에 있는 산으로 삼방산이라 한다.
또는 모양이 고드름처럼 생겼다 하여 고드름산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삼방산은 김천시와 주변 시군과의 경계가 아닌, 김천시의 내부에 위치한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삼방산은 고도가 높고 경사가 급한 산으로 원래의 산지 경관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소나무와
참나무 등의 침엽수와 활엽수가 혼합림의 식생을 이루고 있다.
삼방산의 서쪽 사면에는 감천의 본류에 유입하는 작은 지류 하천들이 발원하여 흐르고 있으며, 동쪽 사면에는
성주군을 지나 고령군을 관통하는 대가천의 최상류에 해당하는 작은 지류 하천들이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대가천에 유입하고 있는 삼방산은 김천시 내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산세가 험한 편이라서, 토지 이용이나
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지형 경관과 산림의 보존이 매우 양호한 편이다.
삼방산에서 바라본 김천시 대덕면(大德面)
대덕면은 신라 시대에 지품천현(智品川縣)에 속하였다가 757년(경덕왕 16) 지품천현이 지례현으로
개칭되면서 개령군 지례현에 속하였고, 1018년(현종 9) 상주목 경산부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에 지례현
남면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편으로 지례군 상남·하남·외남의 3개 면으로 분리되었다.
1914년 3개 면을 재통합하여 김천군 대덕면으로 개편하여 32개 동을 화전·문의·대리·연화·덕산·내감·외감·
가례·조룡·중산·추량·관기 등 12개 리로 통합하였다. 1949년 김천읍이 김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금릉군 대덕면이
되었고, 1960년 12개 리를 21개 리로 분할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천시와 금릉군이 김천시로 통합됨에
따라 김천시 대덕면이 되었다.
삼방산 정상에는 정상석은 보이질 않고 산불감시초소와 삼각점만 정상을 지키고 있고 넓은
초원같은 곳에 억새밭이 펼쳐지고 있고 서남쪽으로는 대덕면과 가야산이 물끄러미 산꾼을 바라본다
삼방산 정상 2등 삼각점(△가야21 / 1988재설)
삼방산 정상에서 진권아우
삼방산 정상을 지키고 있는 산불감시초소
삼방산을 지나면서부터 좌측은 수도산에서 같이 걸어온 대덕면과 이별을 하고
지례면으로 면계가 바뀌지만 우측은 계속해서 증산면과 같이 회천(금오)지맥을 이어간다
앞서가는 진권아우가 억새에 파뭍힐 정도로 잡풀이 갈길 바쁜 산꾼에게 태클을 건다
삼방산 내리막길에서 싸라버섯을 조금을 수확하고...
갈림길(12:20)
좌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회천(금오)지맥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서는데 등로는 엄청나게 미끄럽다
묵 묘(12:30)
계속되는 내리막길... 등로는 아주 미끄럽다
촛대승마
미끄러운 급경사로 내려서니 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부항현 (釜項峴: 475m12:35)
김천시 지례면과 증산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증산과 대덕 3번 도로와 연결되는 903번 도로가 지나간다
증산면 부항리 아랫마을 이름을 따 부항현이 된 모양이나 현지 명칭은 ‘가목재’로 불린다.
가마 부(釜)에 목덜미 항(項)이니 우리말로 바꾸면 그대로 가마목재 또는 가목재다.
부항리(釜項里)는 조선시대에는 성주목 증산면에 속한 월도·한적·시동이라 불리던 마을로 1895년에
증산면이 양분되면서 성주군 내증산면에 귀속되었다. 1906년에 지례군 내증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위 3개 마을과 신기를 합하여 부항리라 개칭하여 김천군 증산면 관내가 되었으며, 병자년(1936년) 대홍수 때
신기에 살던 수재민이 이주하여 이전부락과 새마의 두 마을이 새로 형성되었고 주막뜸이 추가 되었다.
증산면 북단 산간오지의 골짝에 산재하는 7개의 마을로 면 소재지에서 3∼4km 거리이다.
지례면 속수에서 가목재를 넘어 면소재지로 연결되는 6번 군도가 지난다.
동은 황항리, 서는 대덕면, 남은 황정리와 동안리, 북은 지례면과 접경한다.
증산면의 증(甑)-이 가마 부(釜)의 부항과 걸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항의 옛 이름이 대증(大甑)이니 여기서도 증-부의 대응성이 찾아진다.
흔히 방언에 시루를 시루가마라고도 이름은 이러한 뒷받침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오늘은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도 않은데 등로가 미끄러운 탓인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곳에서 물한모금 마시고 다시 부지런히 길을 걷는데 오늘 산행을 마감하려 한 코빼기재까지나
아님 똥재까지 가려는데 괜스레 맘만 급해진다
임도를 따라 가가가 임도를 버리고 다시 등로로 접어든다
임도에서 올라서 좌측으로 꺽어져 능선으로 가다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가 우측에 보인다
임도와 가까운 곳으로 내려갔다 다시 벌목지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정신나간 철쭉꽃
철조망을 끼고 올라간다
전혀 배려를 않고 설치한 철조망... 좁은 길을 따르려니 미치겠다
700봉(13:30)
철조망이 처져있는 벌목지와 작별을 하고 좌측 능선을 오르니 700봉이다
악명높은 철조망 구간을 지나니 편안 등로가 나오는데 이젠 힘이 많이 부치기 시작한다
아침에 출발할 때 일단 똥재를 목표로 했고, 정 힘들면 코빼기재까지 가기로 했는데
오늘 날머리에서 우리를 태워 주기로 한 진권아우의 친구한테 전화를 한다.
3시 40분까지 똥재로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하면서 구미에서 용인가는 버스를 끊어
오라고 한다... 김천에서 용인가는 버스가 없어서 구미를 가야하는데 기왕이면 구미에서
서울가는 형님 버스 티켓도 한장 끊어 오라고 하는데 지금 시간대이면 코빼기재까지도 빡빡하겠다
무명봉(13:35)
우측으로 꺽어져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몇개 넘어간다
관음보살의 화현인가?... 여러가지 시그널로 자주 만난다
잡목지대를 헤쳐나가니 잘록한 형태의 희미한 재가 나온다
누루목재(黃項峙:13:40)
증산면 황항리 윗쪽 능선에 있는 고개로 능선에 잘록한 부분이
누루목재라는데 그냥 지나치기 쉽겠다
우측 아래에 있는 마을 이름이 황항리(黃項里)리라서 누루목재라 부르는 모양이다
원래 지례군내 증산면의 지역으로서 높은 지대에 위치하여 주위가 황토빛이므로
누루목이라 불렀고, 그것을 한자로 의역한 것이 황항이라 한다.
먼지버섯
686봉(13:45)
지도상에 686봉이라 표기가 되어 있는데 서래야 박건석님은 누루목봉라고 표기를 해놨다
맥길을 타면서... 자주 만나는 이 분의 흔적... 산에 대한 열정 하나만큼은 대단하다
그러나 지명을 붙일때는 정확한 근거와 고증을 거친 다음에 붙혀야 하는데 어떤 곳은
엉뚱한 곳에 지명이 붙어있고, 어떤데는 당신 맘대로 붙혀놔 산꾼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시는 분
당신의 열정은 존경합니다...그러나 엉뚱하게 지명을 붙혀 산꾼들을 惑世誣民하지는 말아 주십시요
헬기장(13:50)
군 교통로와...
벙커를 지나...
갈림길(13:52)
간벌하여 마구 버려진 잡목으로 등로는 사라지고...
칡넝쿨 사이를 헤집고 내려가니...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오고...
도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최근에 생긴듯한 마을 식수 탱크가 보인다
시멘트길을 따라서 마을길로 내려선다
물봉선도 산꾼 범여를 반기고...
전봇대 뒷쪽 능선으로 올라서야 하는데...
고석마을(608m:14:00)
김천시 증산면 황항리와 지례면 관덕리의 경계가 마을 가운데를 가로 지르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가운데 십자 안부에는 임도 안내 지도와 전봇대가 서 있고 우측으로는 사과밭과 양배추를
심어논 밭들이 많이 보이는데 정작 사람들은 코빼기도 안보인다.
그러나 온 동네 개들이 얼마나 짖어대는 바람에 동네가 떠나갈 것 같은 기분이다
오늘따라 진권아우가 산행하는 재미가 없는지 이곳에서 산행을 끝내잔다
나는 다음 구간을 계산해서 비록 똥재까지는 못갈 지언정 코빼기재까지 끝냈으면 좋으련만...
둘이서 같이 다니는 산행이라 맘대로 못하고...하는 수 없이 산행을 종료한다
진권아우의 구미 친구를 지례면소재지로 오라고 하고 지례 택시를 불렀는데 30분이
지나도 오질 않아 관덕리 마을로 무작정 걸어 내려가는데 30분이 지난 다음에야
70이 다 된 할마시가 스타렉스 콜밴을 끌고와서 지례면소재지까지 온다
진권 아우의 친구
구미의 모 대학교수로 재직한다는 진권아우의 친구 덕분에 지례에서 구미까지 편하게
와서는 온천물이 좋다는 구미 봉곡이란 곳의 찜질방에서 깔끔하게 목욕을 하고
의관정제 한 다음에 구미버스터미널 앞 칼국수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터미널로 향한다
거기다가 친구가 준 선물까지 얻고... 차표도 그냥 끊어주니... 양넘 지갑줏은 기분이다
그리고 담주에도 태워주겠다고 하니... 최 교수님! 세세생생 복받을 깁니다
진권 아우보다 내가 5분 먼저 출발을 한다
오늘 아우님 덕을 톡톡히 봤네그려...젊은이 세상 잘 살았구먼
이번주 토욜 저녁에 김천에서 봅세나... 난 저녁 7시 버스로 내려 갈라네
2구간은 고석마을에서 살티재까지 끊으면 시간적 여유가 좀 있을듯하니
유명하다는 지례 흑돼지 갈비에 쐬주나 한잔합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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