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지명 유래

속초시 대포동과 설악동의 지명유래

by 범여(梵如) 2017. 1. 12.

 
8. 대포동(大浦洞)

  일제하인 1914년 지방제도에 대한 개혁을 실시하여 도문면과 소천면을 통합하여 도천면(道川面)으로 개칭하고 11개 동리(속초, 부월, 논산, 노리, 대포, 외옹치, 내물치, 상도문, 중도문, 하도문, 장항리)를 두었으며, 이중 대포리에 면사무소를 두었다.

  1966년 동제 실시 때 대포리에 외옹치리, 내물치리를 합하여 대포동이라 하였고, 상도문리, 중도문리, 하도문리는 합쳐져 도문동으로, 그리고 장항리(獐項里)는 설악동으로 행정 구역을 개편하였다. 1998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대포동, 도문동, 설악동을 합쳐 대포동으로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 대포리(大浦里)

나무고개 - 대포리에서 중도문리로 넘어가는 고개.

대포꼬댕이 - 대포 고개 끝에 있는 마을.

대포장 - 대포에서 서는 장. 1, 6일에 서는데 해산물이 거래된다.

독재 - 밭뚝재

밭뚝재 - 대포 고갯길 7번 국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대포에서 속초로 갈 때 고갯길을 통해 현재의 외옹치(外瓮峙)로 가게 된다. 이 고갯길 옆에 밭뚝이 다닥다닥 층계 모양으로 붙어있기 때문에 밭뚝재라 하였다. 그러던 것이 발음상의 변화로 독재라 부르게 되었다.

마산째 - 대포 북쪽에 있는 솟아 있는 산. 산 위에 옛 성터가 있고 말을 키우고 관리하던 곳이 있기 때문에 마성대(馬城臺)라 한다.

방축(防築) - 대포(大浦) 서쪽에 있는 저수지.

병풍바위 - 예전 대포 재건학교 뒤(북서쪽)에 있는 큰 바위. 다른 말로 화랑탑이라고도 한다.

산두꾸미 - 대포에서 남쪽 물치(勿淄) 쪽으로 가는 길 옆에 있는 마을. 도깨비가 출현했다고 하여 산도깨비라고 하던 것이 산두꾸미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발뒤꿈치에서 사용되는 ‘뒤꿈’이 산과 결합하여 산뒤꿈이라고 하던 것이 산두꾸미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쇠팽이골 - 대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쇠평골 또는 철평(鐵坪)이라고 함. 요즘 이것을 잘못 말해 회평골이라고도 한다.

숫돌바위 - 대포 동쪽 축항 너머에 있는 바위. 숫돌처럼 생겼다.

아랫말 - 대포 나룻가에 있는 마을.

웃말 - 대포초등학교 쪽에 있는 마을

잔다리골 - 대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제집골 - 대포고개 밑에 있는 마을. 기와집이 있어 사투리로 지와집골이라고 하던 것이 제집골로 변함.

진등 - 청룡(靑龍) 서북쪽에 있는 긴 산등성이.

청룡(靑龍) - 대포의 청룡이 되는 산 아래에 있는 마을.

큰골 - 대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요즘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지역이다.

큰말기 - 대포 서쪽 철길 너머에 있는 들.


나. 외옹치리(外甕峙里, 옹진리)

  조선 시대부터 면리제가 실시되었는데, 그때 외옹치(外甕峙)의 행정지역 이름은 독 나루터라는 뜻의 한자 표기 방식으로 옹진(甕津)이었다. 이후 편찬된 지리서에서도 편호나 인구수가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은 볼 수 있으나 행정 땅이름은 변함없이 옹진리(甕津里)라고 기록하고 있다.

  1914년 3월 1일 부령 제 111호로 지방제도의 개혁에 따라 도천면(道川面)으로 통합되었고 여전히 행정구역으로 옹진리(甕津里)로 기록되어 있으며, 1918년 발간된 『최신조선지리』에서는 내옹진, 외옹진리로 기록되어 있다. 내옹진은 오늘날 대포리, 외옹진은 외옹치(外甕峙)이다. 외옹치리는 1966년 동(洞)제 실시 때 대포동에 통합되었다.

굴바위 - 마짝말 동쪽 해변에 있는 바위인데, 굴이 있어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투전을 하기도 했으므로 투전굴이라고도 한다.

기른네미 - 외옹치(外甕峙) 새마을 쪽에서 대포 고개로 빠지는 길목 일대를 가리키는 말.

다리슴 - 마짝말 동쪽 해변에 섬처럼 외따로 솟아 있는 큰 바위. 나무다리로 건너갈 수 있는 섬이란 뜻으로 다리섬이라고 하던 것이 다리슴으로 변화하였다.

덕대바우(德大岩) - 외옹치에서 대포로 가는 해변가에 있는 큰 바위. 바위에 빌면 덕이 생긴다(복을 받는 바위)고 하였다. 한자로 덕대암(德大岩)이라고도 한다.

덕산(德山) - 봉수터 봉화가 있던 터. 설악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봉우리가 달마봉(達磨峰), 주봉산(朱鳳山), 청대산을 거쳐 이 곳에서 끝난다. 옹진의 끝에 있는 산으로 봉수가 있었기 때문에 덕산 봉수(德山烽燧)라고도 한다.

마당바우(場岩) - 봉끝 밑(동쪽) 해변 가에 있는 바위로 마당처럼 평평하다. 한자로 장암(場岩)이라고도 한다.

마짝말 - 새짝말과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남쪽을 향한 마을. 마짝은 마쪽이 변한 것인데, 마쪽은 뱃사람들의 말로 남쪽을 뜻한다. 현재는 풍랑으로 마을이 없어지고 북쪽 새마을로 집단 이주했다.

봉수터(봉화터) - 조선 시대 덕산 봉수(德山烽燧)가 있었던 터.

새마을 - 마짝말이 풍랑으로 폐허가 되자 주민들이 새쪽말 북쪽에 집단 이주하여 새로 건설된 마을.

새짝말 - 마짝말과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동쪽을 향해 조성된 마을. 새짝은 새쪽이 변한 것인데, 새쪽은 뱃사람들의 말로 동쪽을 뜻한다.

약수터 - 외옹치에서 대포로 가는 해변 길 중간에 있음. 바위틈에서 샘물이 솟아 나온다.

오리바위 - 외옹치에서 대포 쪽으로 가는 해변가에 있는 바위. 오리가 자주 와서 앉는다고 한다.

일곱매끼 - 조양동 새마을 쪽으로 향하는 마을 입구의 논이 있는 일대를 일컫는 말.

장승거리 - 마을 입구에 장승이 서 있는 일대.

지네바위 - 다리슴과 굴바위 사이에 있는 바위. 지네처럼 생겼다.

해구(海狗) - 바우 마당바위 북쪽 해변가에 있는 바위. 해구(물개)들이 자주 와서 앉았다.

 
 

 

 
 
다. 내물치리(內勿淄里)

  현재 속초와 양양군의 경계인 쌍천(雙川)을 중심으로 양양 쪽에는 강선면 물치진리(沕淄津里)가, 속초 쪽으로는 도문면(道門面) 물치리(勿淄里)가 각각 행정지역으로 되어 있다. 강선면의 경우『관동지』, 『강원도읍지』, 『양양부읍지』등에도 물치진리(沕淄津里)로 기록되어 있고, 그 이후 기록부터는 물치리(沕緇里)로 되어 있다.

  반면에 도문면의 물치리는 『관동지』, 『강원도읍지』, 『양양부읍지』등의 기록은 편호와 인구수에서 조금씩 늘어나고 줄어든 흔적은 볼 수 있으나 행정지역 개편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이후인 1914년 3월 1일부터 행정지역 개편으로 인해 강선면에는 물치리, 도문면(道門面)은 도천면(道川面)으로 합쳐져 도천면(道川面)에는 내물치리라 기록하고 있다. 1966년 동(洞)제 실시 때 내물치리는 대포동에 통합되었다.

가래고지바우 - 둥글바위와 섬바위 사이에 있는 바위. 바다에 사는 오리 종류인 가마우지가 잘 와서 앉는다고 함. 지역사람들의 사투리로 가래고지라 한다.

게바위 - 마당바위와 둥글바위 사이에 있는 바위. 바위 밑에 게가 많다.

군개 - 마을 남쪽으로 쌍천(雙川) 못미처 있는 작은 시내. 쓸데없는 군더더기 개(시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귀신바위 - 마을 북쪽 대포와의 경계 지대에 있는 바위. 예전에 귀신이 나왔었다고 한다.

둥글바위 - 개바위와 가래고지바위 사이에 있는 둥글고 큰 바위.

마당바위 귀신바위와 개바위 사이에 있는 마당처럼 넓고 평평한 바위. 해구(海狗)가 와서 잠을 잤다고 한다.

선바위 - 가래고지바위 남쪽에 선돌처럼 우뚝 솟은 바위. 사람이 서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이름하였다.

쌍천(雙川) - 설악산에서 발원하여 도문동을 거쳐 물치에서 동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 조선시대에는 도문천이라 했다.

쌍천교(雙川橋) - 쌍천 하류에 놓여 내물치리와 양양 강현면 물치리(沕淄里)를 연결하는 다리. 일명 큰다리라고도 한다.

안가산 - 마을 서쪽에 있는 조그마한 산.

옹구점마을 - 옹기(甕器)를 팔던 점이 있었던 마을로 현재 관광안내소 옆 군부대 자리에 있었다.

유물재비(兪勿齋碑) - 조선 후기에 이 고장에 거주한 유명한 학자 물재(勿齋) 유회일(兪晦一) 선생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비석.

조짐이 - 둥글바위 앞(동쪽)에 있는 바위.

흙다리 - 쌍천교에서 약간 서쪽에 놓여졌던 다리. 지금은 없어졌다. 나무로 만들어 위에 흙을 덮었으므로 흙다리라고 했다.

 
 

 

 
 
라. 설악동(雪嶽洞)

  1914년 행정 구역의 개편으로 도문면(道門面)과 소천면(所川面)이 합쳐져 도천면(道川面)으로 되었고, 도문면(道門面)이 있던 상도문, 중도문, 하도문 외에 설악산 부근에 장항리(獐項里)가 행정 지역으로 신설되었다. 1966년 동(洞)제 실시 때 장항리를 설악동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되었고 1998년에 대포동과 설악동을 합쳐 대포동으로 통합하였다.

1) 관광지 일대

구단지 - 신단지가 조성되기 전에 현재의 소공원 자리에 있었던 관광단지.

군량암(軍糧岩) - 군량장(軍糧場)에 있는 큰 바위.

군량장(軍糧場) - 정고평(丁庫坪)과 소공원 사이에 있는 벌판. 비석 형태의 자연석에 군량장(軍糧場)이라고 새겨져 있음. 예전에 군인들이 양식을 저장하던 곳이다.

권금성(權金城) - 소공원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해발 860m의 험준한 돌산에 있는 옛 성터.

노루목 - 노루목 고개 일대(동쪽) 즉, 현재의 B지구 일대를 가리키던 땅이름. 노루목이 또는 한자로 표기하여 장항(獐項)이라고도 불렀다. 옛날에는 이곳에 민가가 있어서, 설악동(雪嶽洞)의 옛이름인 장항리(獐項里)의 중심 마을을 이루었다.

노루목 고개 - 신단지 B지구에서 구단지로 넘어가는, 현재 파크호텔 앞에 위치한 낮은 고개.

 
도문교(道門橋) - 쌍천(雙川)에 놓여 설악동 주택 단지와 도문동을 연결하는 다리.

망바위 - 정고평(丁庫坪), 무명 용사의 비(無名勇士의 碑) 뒷산 중턱에 있는 큰 바위. 옛날에 도적들이 이 바위에서 망을 보면서 부근을 지나가던 장사꾼이나 행인들의 물건을 털었다고 한다.

목우(牧牛)재(모기재) - 설악동과 노학동 척산리를 연결하는 높고 긴 고개.

식당동(食堂洞) - 비선대(飛仙臺) 윗 골짜기. 식당골이라고도 한다. 층을 이룬 반반한 바위들이 많이 있다.

식당바우 - 식당천(食堂川)에 있는 바위

쌍동암(雙童巖) - 흔들바위를 말한다. 계조암(繼祖庵) 밑에 있으며 두 아이가 길 양쪽에 서 있는 것 같은데 계조암(繼祖庵)의 문지기가 된다 함. 예전에는 두 개가 있었는데 현재는 하나가 남아있다.

와우암(臥牛巖) - 흔들바위 밑에 있는 널따란 바위. 와우형(臥牛形)으로 되었다하는데, 백여 명의 승려가 모여 앉아 공양하던 곳이라 한다.

안락암(安樂庵) - 권금성(權金城)에 있는 암자.

청룡 - 장항리(獐項里)의 청룡 쪽에 있는 마을


2) 능선 . 고개 . 길

  공룡 능선(恐龍稜線) 마등령(馬登嶺)에서 희운각 대피소(喜雲閣待避所) 못 미처 바로 북쪽 신선암(神仙岩)까지의 바위 능선. 바위가 뾰족하여 마치 공룡(恐龍)의 등같이 생겼다. 나한봉(羅漢峰, 1275m), 노인봉(老人峰, 1184m)이 위치하고 있다.

마등령(馬登嶺) - 내·외설악(內·外雪嶽)을 연결하는 고개 중의 하나.

무너미 고개 -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과 가야동 계곡(伽倻洞溪谷)의 경계에 위치하여 내·외설악을 구분 지으며, 고개 바로 북쪽에 희운각 대피소가 있다. 무너미의 무는 물에서, 너미는 넘는다(건넌다)에서 왔다. 물을 넘는다(건넌다)란 뜻의 무너미를 한자로 수유(水蹂), 수월(水越)이라고도 표기하는데, 이 땅이름도 전국에 많이 분포한다.

범봉길 - 설악골에서 천화대(天花臺) 범봉으로 올라가는 길 중의 하나.

북주 능선(北主綾線) - 대청봉(大靑峰)에서 북쪽으로 마등령(馬登嶺), 저항령(低項嶺), 황철봉(黃鐵峰), 미시령(彌矢嶺), 신선봉(神仙峰)까지 이어지는 설악산의 북쪽 주능선(主綾線).

석주(石柱)길 - 설악골에서 천화대로 올라가는 길 중의 하나. 동쪽으로 염라(閻羅)길, 흑범길이 있다.

염라(閻羅)길 - 설악골에서 천화대로 올라가는 길 중의 하나. 동쪽에는 흑범길, 서쪽에는 석주(石柱)길이 있다.

저항령(低項嶺) - 북주 능선(北主綾線)에 있는 고개 중의 하나. 동쪽으로는 정고평(丁庫坪)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길골(路洞)을 거쳐 백담사(百潭寺)에 이른다. 다른 말로 늘목령이라고도 하는데, 저항령(低項嶺), 늘목령 모두 노루목 고개, 목우(牧牛)재와 마찬가지로 길게 늘어진 고개라는 의미의 늘으목, 늘목에서 유래하였다. 즉 늘목령은 늘목에 다시 고개 령(嶺)자가 합쳐져서 늘목령이 된 것이고, 저항령(低項嶺)은 늘목이 노루목으로 변하고, 이것을 한자로 장항(獐項)이라고 표기하여, 거기에 다시 고개 령(嶺)자가 합쳐져서 장항령(獐項嶺)이라고 하던 것이, 발음상 저항령(低項嶺)으로 변하고, 이것을 의미와는 관계없이 한자로 저항령(低項嶺)이라고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으로 볼 때 저항령(低項嶺)도 마등령(馬登嶺)처럼 옛날부터 이용된 길인 것을 알 수 있다.

함지덕 - 화채 능선(華彩綾線) 칠성봉(七星峰) 동쪽에 함지처럼 푹 파인 분지. 예전에는 화전민들이 살고 있었다.

화채 능선(華彩綾線) - 대청봉(大靑峰)에서 시작하여 화채봉(華彩峰), 칠성봉(七星峰), 집선봉(集仙峰), 권금성(權金城)까지 이어진 능선. 일명 동북 능선(東北稜線)이라고도 한다.

화채 동능선(華彩東綾線) - 화채봉(華彩峰)에서 동쪽으로 송암산(松岩山)까지 뻗어나간 능선.

흑범길 - 설악골에서 천화대(天花臺)로 올라가는 길 중의 하나. 서편으로 염라(閻羅)길, 석주(石柱)길이 있다.

희운각 대피소(喜雲閣待避所) -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과 가야동 계곡(伽倻洞溪谷)의 경계인 무너미 고개 바로 북쪽에 위치한 대피소. 1971년 한국산악회 최태묵이 건립했다. 지금은 그 일대를 가리키는 땅이름이 됨. 동쪽으로는 천불동 계곡, 서쪽으로는 가야동 계곡, 남쪽으로는 대청봉, 북쪽으로는 공룡 능선으로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이다.


3) 봉(峰)

나한봉(羅漢峰) - 공룡 능선(恐龍稜線)에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 마등령(馬登嶺)과 1,275m봉 사이에 있음. 불교의 수호신인 나한(羅漢)에서 그 이름이 유래됨.

노인봉(老人峰) - 공룡 능선(恐龍稜線)에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 해발 1,120m. 1,275m봉에서 희운각 대피소(喜雲閣待避所) 방향으로 첫 번째 나타나는 봉우리. 여기서부터 북동쪽으로 뻗은 20개의 암봉을 천화대(天花臺)라고 한다.

노적봉(露積峰) - 권금성(權金城) 바로 동쪽 봉우리. 토왕골과 소토왕골 중간에 있다. 모양이 곡식을 쌓아둔 형태임.

달마봉(達磨峰) - 소공원 북쪽에 우뚝 솟은 높은 봉우리.

대청봉(大靑峰) - 청봉(靑峰)이란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는 “멀리서 보면 아득하게 푸른 옥색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으로 그 봉우리를 가리켜서 이름을 청봉(靑峰)이라고 하였다.(遠見只價而靑故指其絶頂而名日靑峰).”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말로 상청봉(上靑峰), 또는 청봉(靑峰)이라고도 하는 설악산(雪嶽山)의 주봉으로 해발 1,708m이다. 바로 밑(북서쪽)에 중청봉(中靑峰)이 있고, 그 밑(북쪽)에 소청봉(小靑峰)이 있다.

문수봉(文殊峰) - 토왕성 폭포(土王城瀑布)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옆에 문수 보살(文殊菩薩)과 보현 보살(普賢菩薩)이 위치하고 있다는 불교의 설명처럼, 석가봉(釋迦峯) 옆에 문수봉(文殊峯)과 보현봉(普賢峯)이 위치하고 있다. 일명 문주봉(文珠峯)이라고도 한다.

문필봉(文筆峰) - 토왕성 폭포(土王城瀑布)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 모양이 붓처럼 생긴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미륵봉(彌勒峰) - 비선대(飛仙臺) 바로 북쪽에 높이 우뚝 솟은 큰 돌산이다. 마치 미륵불(彌勒佛)처럼 우뚝 솟아 있어 이름 하였고, 장군의 형상이라고 하여 일명 장군봉(將軍峰)이라고도 한다. 중턱에 금강굴(金剛窟)이 있다.

범봉 - 천화대(天花臺)의 20여 개의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보현봉(普賢峰) - 토왕성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 석가모니불 양 옆에 문수 보살과 보현 보살이 위치하고 있다는 불교의 설명처럼, 석가봉(釋迦峰) 양쪽에 문수봉(文殊峰)과 보현봉(普賢峰)이 위치하고 있다.

석가봉(釋迦峰) - 토왕성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 불교의 설명대로 양 옆에 문수봉(文殊峰)과 보현봉(普賢峰)이 있다.

세존봉(世尊峰) - 마등령(馬登領) 밑(동쪽) 금강문(金剛門) 바로 위(북동쪽)에 있는 봉우리.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존칭인 석가세존(釋迦世尊)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소청봉(小靑峰) - 대청봉(大靑峰) 바로 북서쪽에 있는 작은 청봉(靑峰).

왕관봉(王冠峰) - 천화대(天花臺)에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

육형제봉(六兄弟峰) - 양폭(陽瀑) 산장 뒤로 보이는 여섯 봉우리.

중청봉(中靑峰) - 대청봉(大靑峰)과 소청봉 사이에 있는 청봉(靑峰).

진대봉 - 마등령(馬登嶺) 바로 북쪽에 있는 봉우리. 해발 1,327 m, 최근에 등산객들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니고, 이전부터 주민들에 의하여 불린 땅이름인 것 같으나 요즘은 거의 부르지 않는다.

집선봉(集仙峰) - 권금성(權金城) 바로 뒷쪽(남쪽)에 연이어 있는 암봉. 암봉들이 밀집되어 있는 것이 마치 신선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취적봉(翠滴峰) - 토왕성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

칠성봉(七星峰) - 화채 능선(華彩綾線)에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로 해발 1,077m이다. 남쪽 화채봉(華彩峰)과 북쪽 집선봉(集仙峰) 중간에 있다.

칠형제봉(七兄弟峰) - 공룡 능선 신선암(神仙岩) 북쪽에서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을 향하여 용소골과 작은 바위골 사이로 뻗은 여러 개의 봉우리.

화채봉(華彩峰) - 화채 능선(華彩綾線)의 대표적 봉우리.

황철봉(黃鐵峰) - 북주 능선(北珠綾線)에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 남쪽으로는 저항령(低項嶺), 마등령(馬登嶺), 공룡 능선(恐龍稜線)으로, 북쪽으로는 미시령(彌矢嶺), 신선봉(神仙峰)으로 이어진다.

귀면암(鬼面岩) -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에 우뚝 솟아 있는 큰 바위. 비선대(飛仙臺)와 양폭(陽瀑) 사이에 있다. 생김새가 무시무시한 귀신 얼굴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귀면암(鬼面岩)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귀면암(鬼面岩)이라는 이름은 근래에 붙여진 것이고, 옛날에는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의 입구에 버티고 서서 마치 수문장의 역할을 하고 있어 겉문다지 또는 겉문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금강굴(金剛窟) - 비선대(飛仙臺) 뒤 미륵봉(彌勒峰) 중턱에 뚫려 있는 길이 18m의 자연 석굴. 일찍이 원효 대사(元曉大師)가 이곳에서 수도했었다고 전해 온다. 이전에도 불을 땠던 구들의 흔적과 불상 등의 유물이 있었고, 요즘에는 신흥사의 부속 암자로 되어서 새 불상을 모셔 놓았다.

금강문(金剛門) - 마등령(馬登嶺)에서 비선대(飛仙臺) 쪽으로 20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있는데, 바위가 길 양쪽에 문기둥처럼 서 있다.

만경대(萬景臺) - 화채봉(花彩峰)에서 양폭(陽瀑)으로 내려오는 길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좁고 높은 지대. 주위 전망이 좋아 많은 경관을 볼 수 있으므로 만경대(萬景臺)라고 하며, 또는 많은 경관을 바라 볼 수 있다고 하여 망경대(望景臺)라고도 한다.

망군대(望軍臺) - 권금성(權金城) 북쪽의 높은 암봉. 옛날에 성을 지키던 군인들이 망을 보던 곳이라고 하여 망군대(望軍臺)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는 봉화를 올려 신호를 하던 곳이라고 하여 봉화대(烽火臺)라고도 한다.

목탁 바위 - 계조암(繼祖庵)이 위치한 자연 석굴을 형성한 바위. 달마봉(達磨峰)에서 내려다보면 계조암(繼祖庵) 석굴이 목탁처럼 보인다고 한다. 계조암(繼祖庵)은 조사(祖師)들이 계속하여 배출된 암자라는 뜻인데, 목탁 속에서 수도하기 때문에 쉽게 득도하게 된다고 한다.

비선대(飛仙臺) - 소공원에서 남서쪽으로 2.3km지점에 위치한 거대한 암반.

 
 

 

 
 
4) 골짜기

가는골 - 정고평(丁庫坪)에서 비선대(飛仙臺) 쪽으로 약간 가다가 남쪽으로 갈라진 골짜기. 권금성(權金城) 뒤 집선봉(集仙峰)까지 이어진다.

내원(內院)골 - 신흥사(新興寺)에서 내원암(內院庵) 쪽(서북쪽)으로 이어진 골짜기.

문(門) 바위골 - 저항령 계곡(低項嶺溪谷) 중간에서 황철봉(黃鐵峰) 쪽으로 이어진 골짜기.

설악(雪嶽)골 -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에 있는 골짜기 중의 하나. 비선대(飛仙臺)를 지나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토막골 다음에 나타나는 골짜기. 공룡 능선(恐龍稜線)까지 이어진다.

소토왕(小土王)골 - 소공원에서 비룡교(飛龍橋)를 건너서 바로 남쪽으로 나타나는 골짜기. 토왕골의 바로 서편 골짜기로서 그 사이에 노적봉(露積峰)이 있다. 일명 은당골, 무당골이라고도 한다.

식은골 - 정고평(丁庫坪)에서 남동쪽으로 권금성(權金城)까지 뻗은 골짜기.

 
염주(念珠)골 - 음 폭포(陰瀑布)에서 남쪽으로 염주 폭포(念珠瀑布)를 거쳐 화채 능선(華彩綾線)까지 뻗은 골짜기. 서편으로 죽음의 계곡이 있다. 골짜기 중간에 염주 폭포(念珠瀑布)가 있으므로 염주골이라고 하며, 또 입구에 음 폭포(陰瀑布)가 있으므로 음폭골이라고도 한다.

용소(龍沼)골 -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에 있는 골짜기 중의 하나. 귀면암(鬼面岩)을 지나 오련 폭포(五連瀑布) 못미처서 오른편(서쪽)으로 들어간 골짜기. 신선암(神仙岩) 부근까지 뻗었다.

 
잦은 바위골 -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에 있는 골짜기 중의 하나. 비선대(飛仙臺)를 지나서 귀면암(鬼面岩)을 향해 가다 오른편(서쪽)으로 토막골, 설악골 다음에 나오는 골짜기.

 
죽음의 계곡 -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 맨 끝 골짜기. 대청봉에서 희운각 대피소으로 직접 내려오는 능선길 바로 동편 골짜기. 1969년 한국산악회원 10 동지가 해외 원정을 위한 훈련을 하다가 조난당한 곳이다. 1956년 8월 한국산악회원 전감(田堪)이 처음 등반하였으며, 아직 뚜렷한 등반로는 없다.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 - 비선대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설악산의 가장 대표적인 골짜기. 협곡을 이룬 계곡 양쪽의 기암 괴봉들이 마치 천불(千佛)이 꽉 들어차 있는 듯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설악을 대표하는 절경들이 거의 이 골짜기에 밀집되어 있다. 비선대에서 대청봉으로 올라가면서 오른편(서쪽)으로 토막골, 설악골, 잦은 바위골, 용소(龍沼)골, 왼편(동쪽)으로 칠선골, 염주(念珠)골, 죽음의 계곡이 갈라진다.

 
칠선골 -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에 있는 골짜기 중의 하나. 귀면암(鬼面岩)에서 양폭(陽瀑)을 향해서 올라가다가 오련 폭포(五連瀑布) 못미처 왼편(동남쪽)으로 갈라진 골짜기. 구만물상(舊萬物相)골 이라고도 한다.

 
토막골 - 천불동 계곡에 있는 골짜기 중의 하나. 비선대를 지나서 오른편으로 갈라진 골짜기.

 
토왕(土王)골 - 소공원에서 남쪽으로 뻗은 골짜기. 육담 폭포, 비룡 폭포, 토왕성 폭포가 위치하고 있다.

 
핏골 - 신단지 C지구에서 남쪽으로 뻗은 골짜기.


5) 폭포(瀑布), 담(潭)

건 폭포(乾瀑布) - 죽음의 계곡에 있는 폭포.

 
문수담(文殊潭) - 비선대와 귀면암 사이에 있다. 문수 보살이 목욕을 한 곳이라고 하며, 일명 문주담(文珠潭)이라고도 한다.

 
비룡 폭포(飛龍瀑布) - 토왕골에 있는 폭포. 육담 폭포와 토왕성 폭포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폭포수의 모양이 마치 용이 하늘로 낱아 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양 폭포(陽瀑布) - 천불동 계곡에 있는 폭포 중의 하나. 밑의 오련 폭포(五連瀑布)와 바로 위의 천당 폭포(天堂瀑布) 중간에 있다. 음 폭포(陰瀑布)와 이웃하여 있는데, 양 폭포(陽瀑布)는 겉에 있으므로 양 폭포(陽瀑布)이고, 음 폭포(陰瀑布)는 음폭(陰瀑)골에 들어가서 속에 있으므로 음 폭포(陰瀑布)이다. 현재는 양 폭포(陽瀑布)라는 말보다 양 폭포(陽瀑布)를 줄여서 부르는 양폭(陽瀑)이라는 말이 더 널리 쓰이고, 또 양폭(陽瀑)이라는 말은 폭포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일대를 가리키는 말로 변화되었다.

 
염주 폭포(念珠瀑布) - 염주(念珠)골에 있는 폭포. 음 폭포에서 골짜기로 더 들어가서 위치하고 있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염주같다고 하여 염주 폭포, 염주폭이라고 한다.

 
오련 폭포(五連瀑布) -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에 있는 폭포 중의 하나. 귀면암(鬼面岩)과 양 폭포(陽瀑布) 사이에 있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 협곡 사이에 5개의 폭포가 연이어 떨어지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전에는 폭포 일대의 암벽을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 앞문의 수문장 같다고 하여 앞문다지라고 하였다.

 
육담 폭포(六潭瀑布) - 토왕골에 있는 폭포 중의 하나. 소공원에서 비룡 폭포로 가는 길 중간에 있다. 암벽으로 된 협곡에 6개의 폭포와 담소(潭沼)가 연달아 있어서 절경을 이룬다. 폭포 위에 구름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음 폭포(陰瀑布)(음폭, 陰瀑) - 음폭(陰瀑)골 입구에 있는 폭포. 양 폭포(陽瀑布)와 이웃하여 있는데, 양 폭포(陽瀑布)는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 겉에 있으므로 양 폭포(陽瀑布)이고, 음 폭포(陰瀑布)는 음폭골 속에 있으므로 음 폭포(陰瀑布)라고 명명되었다.

 
이호담(二壺潭) - 문수담(文殊潭)과 귀면암(鬼面岩) 사이에 있는 담(潭). 배가 불룩한 병 모양의 아담한 담(潭)이 2개가 있어 이호담(二壺潭)이라고 한다.

 
천당 폭포(天堂瀑布) - 천불동 계곡(千佛洞溪谷) 양 폭포(陽瀑布) 바로 위에 있는 폭포. 위태롭게 석벽에 설치한 철 계단을 오르면서 천당 폭포(天堂瀑布)를 바라보면 천당(天堂)에라도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칠선 폭포(七仙瀑布) - 칠선골에 있는 폭포.

 
토왕성 폭포(土王城瀑布) - 토왕골 맨 위에 위치하고 있는 외설악을 대표하는 폭포로 겨울철에는 빙벽훈련장으로 산악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토왕성(土王城)이란 이름은 오행설에서 유래된 것 같다. 그 의미는 토기(土氣)가 왕성하므로 기암괴봉이 발달하여, 마치 폭포를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다는 뜻이다.

 
 

 

 
 
마. 장재터

  속초시와 양양군의 경계인 쌍천 건너편이므로, 본래 양양군 강현면 상복 2리에 속해 있었으나, 198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단지 C지구인 핏골과 함께 속초시 설악동에 속하게 되었다. 마을 서쪽에 장자, 즉 부자가 살던 터가 있는 까닭으로 장재터라 불린다.

군개도랑 - 마을 바로 앞(북쪽)에 있는 작은 냇가. 군더더기, 쓸데없는 갯가라는 의미의 군개에 도랑이 합쳐진 것이다.

 
마무골 - 마을 서남쪽 골짜기. 말을 묶었던 골짜기라는 뜻이다.

 
맷돌바위 - 물안골 입구에 있는 바위. 바위 모양이 맷돌처럼 생겼다.

 
물안골 - 마무골 서쪽 골짜기, 물레방아가 있었으므로 물방아골이라 부르던 것이 물안골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복교(上福橋) - 장재터와 상도문리 2구를 연결하는 쌍천에 놓인 다리.

 
아랫고개 - 장재터에서 상복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장재터와 상복리의 경계가 된다. 여기서 상복리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윗고개가 있다.

 
장재평 - 장재터 벌판을 부르는 이름.




손병섭(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향토사연구소 선임연구원)
감수위원 : 최용문(전,속초문화원장)

 

'지명 유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주시 귀래면 귀래리의 지명 유래  (0) 2018.03.19
서울시 동작구 지명 유래  (0) 2017.01.17
음성의 산, 하천, 고개  (0) 2017.01.09
연천군 군남면 지명 유래  (0) 2016.12.16
연천군 연천읍 지명 유래  (0) 2016.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