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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1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35구간 - 도래기재-구룡산-신선봉-부쇠봉-태백산-유일사-화방재

by 범여(梵如) 2010. 3. 23.

산행일시: 2009년 9월5일~6일

산행구간: 도래기재-구룡산-고직령-곰넘이재-신선봉-차돌베기봉-깃대배기봉-부쇠봉

태백산(장군봉)-유일사 안부-사길치령-화방재

거리/시간: 약 30여 km / 약 10시간소요

 

매주 계속되는 무박 산행에 체력이 많이 고갈되어 좀 줄어야지 하면서도 금욜쯤 되면

무의식중에 다음갈 코스를 지도를 보면서 슬슬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베낭을 챙긴다.

토욜 저녁 베낭을 메고 나서니 11월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딸래미가 불만썩인

말투로 아빠 내려올 산에 매주 힘들게 왜 가시냐고 힐난이다. 좀 미안한 생각이든다

 

새벽 3시반 도래기재에 도착 곧바로 구룡산을 향했다. 처음부터 5.4km가 급경사이다.

한시간 40분정도 숨도 안쉬고 논스톱으로 올라가니 아직도 어둠은 가시지 않고

음력 칠월 열여드렛날의 달은 서산으로 뉘엇니엇 새벽 하늘의 밝은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질것 같고... 사진 한컷 찍고 부지런히 고직령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세끼 멧돼지 가슴이 섬짓하다.

 

 잘못하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느데... 곰넘이재를 지나 신선봉 정상에 도착하니

정상에 묘지 하나가 산꾼을 반긴다. 아마 이 분도 전생에 산꾼이 아닌가싶넹.

이 곳에서 신선처럼 살고파서 막걸리 한사발로 허기를 채우고 태백산을 향해 정상을 향했다.

태백산은 산세가 그리 험하지는 않으나 산봉우리가 크고 늠름하여 남성적인

매력이 듬뿍 느껴지는 산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육산에다 고산지대 식물군락지가

산꾼들을 매혹 시킨다. 태백산 정상에 도착했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제사를

모신다는 천제단을 비롯해 각종 단과 전각등이 많아 무속신앙적 요소가 많은 곳이다. 

 

우리도 천제단에서 약식으로 제를 지내고 주목과 고사목의 군락지를 감상하며

유일사 안부, 사길치령을 지나 화방재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린다.

도래기재-구룡산-고직령-곰넘이재-신선봉-차돌베기봉-깃대배기봉-부쇠봉-

태백산(장군봉)-유일사 안부-사길치령-화방재에 약 30여 km를 약 10시간에

걸쳐 하산 지난주에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오늘은 좀 거져 먹은 느낌(?)이다

그러나 어디 힘이 들지 않은 산이 있겠는가. 그저 산이 있기에 갈뿐이지.

전생에 산은 범여의 애인이었는가보다

 

 도래기지재~화방재 개괄도

 

 

 

 

 

도래기재(봉화 춘양면과 영월 하동면 경계)에서 새벽 3시반 산행을 시작

 새벽 3시 반에 버스 속에서 굳어진 피로한 몸을 풀고 도래기재 북쪽 들머리에 발을 올린다.

봉화와 영월을 잇는 88번 지방도에 9월초의 차가운 牛口峙마을의 원혼들이 전쟁의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금정굴을 벗어나 태백을 향하는 발걸음을 따라 함께 날개짓하며 오름을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지나치는 묘 한기와 철탑을 지나니 금정골을 잇는 임도를 건넌다.

 

서둘러 올라서는 820봉을 지나고 크게 가파르지 않은 1049봉을 여유있는 호흡으로

천천히 올라선 후 이내 내리막을 밟아 두번째 임도를 만나니 (05:00),

 

최근에 만든듯한 비박용 정자가 잘 갖추어져 있고 태백산 안내도가 잘 마련되어 있다.

비록 대간 허리를 자르면서 임도를 만들었지만 그런대로 대간길

을 잘 꾸미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배낭을 벗고 굵지 않은 빗줄기에 안도하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숨도 안쉬고 6km 가까이 계속 올라오니 음력 칠월 열려드렛날의 달은 서산으로 지고(구룡산 정상에서)

1258봉 까지 모처럼 된오름을 1시간 남짓 지쳐 오르니 땀에 젖은 몸이 방풍 자켓 속에서 데워지기

시작하고 10여분 더 이어지는 가파른 능선을 밟은 뒤에야 구룡산 헬기장에 다다라 넓은 시야를

확보하며 새벽을 여는 태백산의 아침을 즐기려하나 짙은 운무에 가려져 온통 잿빛이다.(06:00)

구룡산 정상에서 - 구룡산(해발 1344m:경북 봉화군 춘양면)은 태백산과 옥돌봉 사이에 있는

마루금을 이루는 산으로 강원과 경북에 걸쳐 있으며 태백산, 청옥산,각화산, 옥돌봉과 함께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갈라져 나가는 곳으로 이 산에서 발원하는 하천들이 남북으로

갈라져 각각 낙동강과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오늘 구간의 첫 번째 봉우리인 구룡산에 올라선다.

주변의 수많은 산들이 하늘과 맞닿아 높게 솟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저 많은 높은 산들은 그 들 옆구리에

구비 구비 흘러가는 아름다운 계곡을 품고 있을 것이다.

“我東 山高水麗 故曰高麗‥‥‥(우리나라는 산이 높고 물이 수려하여 ‘고려’라고 하였고)‥‥‥”

 전통지리에서 나오는 말이다. 말인 즉 여기 구룡산에 서면 KOREA(고려)라는 우리나라

이름을 재확인 할 수 있다.

구룡산에 얽힌 전설을 설명하는 간판도 볼 수 있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여

구룡산이라 하는데, 용이 승천할 때 어느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오다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뱀 봐라’하면서 꼬리를 잡아당겨 용이 뱀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牽强附會(경강부회 :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대는 것)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설이야 모두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이지만 구룡산 아낙 관련 전설은 산 이름이 먼저 생기고 난

후에 무리하게 꾸며진 전설을 가져다 붙인 듯하여 전혀 개성이 없다.

 

‘구(九)’는 본디 많다는 뜻이다. 따라서 구룡이라고 하면 용이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용은? 산은 천만가지 형상을 가져서 크다가도 작아지고 일어나다가도

엎드리고 숨다가도 나타나는 등 변화무쌍하니 마치 용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전통지리에서는 산줄기를 龍脈 또는 來龍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구룡이라는 뜻은 산줄기가 많다는 뜻이다. 실제 구룡산에 올라서면 수많은

산줄기가 움직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구룡산이라고 이름이 지워졌을 것이다.

고직령 고개에서 - 흔히 이곳은 특별한 지형지물이나 이정표가 없어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다.

조선시대에 보부상들이 봉화와 영월을 오가면서 호환을 당하지 않기 위해 지었다는 산신각이 100m 아래에 있다.

서둘러 오른쪽 하산길을 밟아 내리지만 미끄러운 내림길에 방금 지나간 듯한 멧돼지들의 식사? 를

새끼들을 데려가는 모양이다. 내 머리의 헤드렌턴과 멧돼지의

눈빛이 부딪혀 서로가 깜짝 놀라 경계심으로 고직령으로 향한다.

고직령에서 선두조와 합류하여 허기를 채우기 위해 베낭에 도시락을 꺼내

식사를 마치고 커피까지의 여유를 만끽하고 곰넘이재로 향한다.

해발 1300m가 넘는 이 곳 신선봉 정상에 處士 慶州 孫公 永虎之墓란 비석이 있는 무덤이 하나 있다.

짐승도 다니기 어려운 이 곳에 묘지를 쓴 자손들이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아마 생전에 백두대간을 타는 산꾼이 아니였을까. (범여의 생각 中에서)

 

곰넘이재에서 출발하여 기나 긴 산죽 밭을 지나면 신선봉에 오르게 된다.

신선봉 또한 그냥 넘어가게 하지 않는다. 神仙이란 깊은 산속에 들어가 자연과 벗하며

사는 상상의 사람이라고 하지만, 원래 降神을 잘하는 무당이 산에서 수행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신선이란 능력있는 神官이라고 할 수 있다.

 

천제단에서 제사를 지내려면 능력있는 神官(神仙)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산을 신성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산은 하늘을 맞닿아 있는 곳이자 속세와 가장 떨어져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높이에 초월적인 신성을 느끼고 하늘에 절대적인 신을 감지했는데 이러한 신이 至高神이다.

지고신의 아들이 인간세계를 다스리기 위해 인격화되어땅으로 내려온다.
땅으로 내려온 지점이 바로 태백산 천제단이다.

신성한 동물(용)은 산줄기를 타고 천제단으로 모이고, 제관들은 곰넘이재를 통해

천제단으로 모이며, 신관(신선)들은 接神(신맞이) 준비에 분주하다.

신선봉 정상에서 양은 술잔에 아침 해장을 한대포하는 범여.

그저 신선처럼 살고시포 대간 길을 따라 넓게 방화선을 이루어 무성한 풀섶을

헤치지 않아 발길은 가볍다. 평탄한 오름의 1184봉을 지나 잠시 가파른 암릉을

헤치며 신선봉(1280)에 올라서니 (길게 자란 고사리 잎을 덮은 채 자리 잡은

묘지 한기(처사 경주 손씨)를 만나고, 동료 산꾼과 찌그러진 양푼이잔에다 

동동주 한잔 씩을 나누어 마시며 체온을 유지하고 이내 오른쪽 내림길로 급히 꺾어 내린다. 

차돌베기 정상에서 - 이곳에 차돌이 박혀 있어서 이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짧은 내림 이후에 작은 오르내림으로 이어지며 차돌배기(각화산 갈림길,1141)에

다다라, 깔고 앉을 차돌멩이 하나 없는 산 이름이 무슨 연유에서 온 지도

 모르겠고,대간 길을 따라 넓게 방화선을 이루어 무성한 풀섶을 헤치지 않아 발길은 가볍다.

이 곳은 야생화 천국이다. 산부추, 떡취. 들국화 등등 헤아릴 수없이 많다. -

청순하고 순수한 울님만큼이나 이쁜 얼레지꽃

차돌배기-깃대배기봉-부쇠봉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매우 편한 길이다.

이 또한 당연하다 하겠다. 곰넘이재와 신선봉을 지나 제사를 지내러 오는 제관들

신관 그리고 민초들에게 편안한 길을 내어주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

깃대배기로 이어지는 마루금위에 짙은 숲이 얹혀있다. 여름 산의 특징이다.

짙은 숲의 에너지가 그대로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배낭만 메지 않았더라면

 한 바탕 달리기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굴곡이 없고, 열정이 충만한 길이다.

 

지천에 깔려있는 야생화와 산나물의 천국이다.

조금전 지나간 선두대장에게서 무전이 온다. 마루금 정상에 벌집이 큰것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우리 일행은(2명) 살짝 비켜왔다. 근데 바로 뒤에 따라오던 부부 산꾼이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벌의 공격을 받아 쓰러진 것이다.

여자들의 화장 냄새를 맡고 집중 공격을 했다고 한다. 119에 신고를 한 모양이다. 

깃대베기봉 정상에서 한껏 멋도 부려보고

 

남쪽 覺華山 史庫터로의 진행 방향 을 버리고 북쪽으로 방향을 다시 꺾어 깃대배기봉 오름길을 재촉한다.

신선봉에서 한참을  걸음을 재촉한 후에야 깃대배기봉(1341)에 이어진다.

 일제시대 측량관계로 곳곳에`깃대를 세운 뒤로 대간 길 봉우리들 마다 깃대봉이란 이름이 꽤 많다. 

이곳도 어김없이 범여만큼이나 맛이간 산꾼들이 수없이 드나들고....

단군의 아들 부소왕의 이름을 따왔다는 부쇠봉 정상에서

부쇠봉 하산길에서 잡은 태백산 정상 -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살아천년 죽어 천년의 주목 아래서 어느 산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여름 태백이 주는 느낌은 겨울의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色感이다.

 

겨울 태백이 고결한 순백의 옷을 입고 성자처럼 서 있다면 여름의 태백은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화사한 차림의 미인이 등산객들을 유혹하는 모습이다.

 정상부 능선은 물봉선, 이질풀, 동자꽃 등이 저마다의 색을 다투어 드러내는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의미. 알고 보았더니 태백산은 각종 희귀식물의

 남방한계선 그리고 많은 야생화의 북방한계선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여름 태백의 또 다른 역할을 발견한 셈이다.

태백산 정상(해발 1567m)에서의 범여 

태백산 정상은 지리산 천왕봉과 함께 산의 氣가 가장 쎈곳으로 한의사들이 氣를 받기위해 즐겨 찾는 곳이다

태백산의 역할로 치면 물(水)과 불(火)을 빼 놓을 수 없다.

태백산(영역 개념 : 여기서의 영역이라 함은 함백산을 지나 매봉산까지를 포함한다)은 한강의 발원지,

 낙동강의 발원지 그리고 동해로 흘러가는 오십천의 발원지를 품고 있으며, 한 때 이 땅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불(석탄)로서 산업역군의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상호 극단적으로 모순된 두 객체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곳이 바로 태백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태백산 천제단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물론 민족의 화합을 기원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천제단에 선다. 고치령에서 출발한 후 갈곶산에서 이 땅의 형성 원리를 이야기한 것도,

선달산에서 우리 민족의 DNA를 강변한 것도, 박달령에서 국가명 및 이념

등을 풀어논 것도 모두 여기 천제단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룡산에서 하늘 길을 본 것도, 곰넘이재에서 祭官을 불러낸 것도, 신선봉에서 神官을 찾아낸

것도 모두 여기 천제단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높은 산을 보면서 지고신을

감지해 왔는데 이러한 지고신을 만날 수 있는 곳, 우리민족의 지도자가 태어난 곳 또한 여기

태백산 천제단 즉 신성한 곳이다.

(천제단 안에는 한배검이라고 적힌 단상이 있다. 한배검이란 단군을 높이는 말이다)

천제단에서 - 나와 인연있는 모든 이들에게 항시 좋은일만 있고 건강하시길 기원하면서

단군 할아버지에게 가져간 술과 과일로 약식으로 제를 올리고....

 

실제 태백산의 정상부에 서면 주변 조망을 통해서도 신성함을 느낄 수 있다.

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다)! 사방에 막힘이 없으니 민초들이 충분히

신성시할 만한 地德을 품고 있는 자태이다.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태백산을 일러“………

기이한 곳………가끔 선인들의 이상한 유적이 전해온다”라고 하여

 태백산의 신성함을 언급한 적이 있으며, 고려 시대 유명한 산꾼 安軸도

‘태백산에 올라(登太白山)’를 통해 “………………몸이 구름을 쫓아가니 내가 학을

 탄 것인가(身逐飛雲疑駕鶴)” 라고 노래하면서 태백산의 신비함을 힘주어 강조한 적이 있다.

이름에서도 신성함을 감지할 수 있다. 태백산이란 크게 밝다는 뜻이다.

‘한밝달’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한박달’→'한백달을 거쳐 '한배달'로 변화되어 결국

 한민족, 한겨레라는 말로 변화된다. 크게 밝다는 태백산이 곧 우리 겨레를 나타내는 말이다.

천제단의 유래, 정상부에서의 조망 그리고 태백의 뜻 등 모두는

우리가 태백산을 신성시해야 하는 이유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은 여름 태백이라고 해서 겨울 태백과 달라질 특별한 근거도 없다.

민족의 靈山인 태백산에 있는 공군 폭격기 훈련장.

국가 안보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영산에 이 시설이 있다는 것이 좀...

 

오른쪽 두리봉으로 이어지는 남쪽 능선은 봉화 청옥산(1277)으로 이어지고 ,

대간길은 북쪽으로 태백산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1461봉과 부서봉(부소봉), 태백산까지의 하늘고개(天嶺)를 행렬이 길어지며

후미에 뒤처진 채로 천천히 작은 오름으로 밟아 나간다.

 

6.25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빨치산과 토벌대의 유격전이 벌어지던

왼쪽 天坪계곡 쪽에는, 폭탄투하 훈련을 잠시 멈췄나 보다..

 

하필이면 민족정기를 뒤흔들며 천제단 아래를 진동시키는 전투기의 폭격들은

빗속을 뚫고 함께 오르는 그날의 영혼들에게도 피아식별이 가능할 것인가..

아니면 그날의 어처구니 없는 싸움들을 죄다 허공 속으로 날려 한꺼번에 잊혀질 수 있을 것인가..

날지도 않는 폭격기의 굉음이 우의 속 귓가를 맴돈다.  

태백산 정상 장군봉의 모습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태백산이 지금의 태백산이 아니라 백두산이라는 설이

유력해 지면서 태백산의 神聖함이 다소 무게를 잃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의 태백산이 아니고 백두산이며 어떠랴. 환웅 일행이 백두산에서 지금의

태백산으로 파견 온 것으로 보면 된다. 지금의 태백산은 환웅의 일행이 좋아할

만한 신성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백두산에서 지금의 태백산으로

이동하는 데에도 찰나의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천제단에서 조금만 진행하면 扶蘇峰이 나온다. 우리 민족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다는

부소. 부싯돌의 어원이 扶蘇石이니 火(석탄)山인 태백산에 부소봉이 있는

것은 참으로 절묘한 이치이긴 하지만 부소 또한 단군의 둘째 아들이라는 점에 더욱 관심이 간다.

부소 또한 천제단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태백산에서는 풀어 놀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백두대간의 허리를 싹둑 잘라 만든 고랭지 채소밭.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가 쯧쯧쯧

태백산 정상에서의 하산길은 비교적 여유롭다.

유일사로 통하는 안부까지(1230) 올라온 차량이 무슨 연유로 다행히 비포장으로

남아있는 높은언덕을 숨가쁘게 올라와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까..

또한 에리베이터 식으로 뒷편 급경사 아랫 쪽을 연결하는 탑승기구는 무슨 연유로

대간 언덕에 흉물스레 걸쳐져 있는 것일까..종교든, 정치든 인간이 관여하는 모든

잔치들은 이렇게 아픈 상채기만을 남기며 횡포를 부리게 되는 것일까..민족의 영산 자락을 파고드는

슬픈 인간들의 욕심이 점점 무서울 지경이다.

오늘의 하산 종점인 강원도 태백시 화방재에서

정상에서 1시간여의 내림길을 밟아 1174 안부에 위치한 사길치(四吉峙,새길령,鳥道嶺,士吉嶺)에

다다르니,穴里와 天坪을 오가던옛 보부상들의 발걸음을 지켜주던 산령각이 자릴 잡고

넓은 고갯 길을 쉬어가게 한다.  사길치 매표소에 다다르고 대간길은 넓게 이룬 배추밭으로 길이 끊어진다.

 배추밭 이랑을 건너 화방재로 이어지는 마지막 안부를 10여분 돌아 내린다.

 

花芳재(御坪峙) 내림길에 만개했던 철쭉들은 그 잎만을 무성하게 남긴 채 내년 봄을 기약하고

태백산길 종주길을 마감하는 31번 국도엔 무심한 차량들만 스쳐 지나고, 주유소 건너에

판을 펴고 10시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9월초의 이스리 맛은 그 무엇에 비유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