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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1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37구간(역산행) - 댓재-큰재-자암재-덕항산-구부시령-피재

by 범여(梵如) 2010. 3. 23.

 

산행일시: 2009년 9월 26일~27일

산행구간: 댓재-황장산-큰재-자암재-환선봉(지각산)-덕항산-구부시령-건의령-삼수령(피재)

거리/시간: 약 35여km /  10시반 소요

 

인간이란 동물은 참 간사하기 짝이 없는가보다. 지난 한주 山友들과 일반 산행을 하고 한주만에 대간길에

나섰더니 이렇게 힘이들줄... 새벽 3시30분경에 댓재에 도착하여 워밍업을 하고난 후 산행길을 나섰다.

강원도 산이 거의 다 그렇듯이 출발지점이 해발 800m 이상인 곳이 참 많다. 그렇다고 만만한 곳은

한곳도 없다. 어둠속에 댓재에서 출발 30여분만에 황장산까진 갔지만 잡목지대 싸리밭을 치고 나가기가

힘이들었다. 황장산, 큰재 지나 고랭지 채소밭을 지날 즈음 동해에서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고...

 

오늘은 존 구경하긴 틀렸나보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것 같은 먹구름은 하늘에 잔뜩,주위엔 안개가

넘 끼어 50m 앞을 보기 힘이 들고, 자암재를 지나 산꾼들과 식사를 겸한 고량주 한잔에 아침 만찬은 끝..

자암재를 출발 환선굴을 향할 즈음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금강산 못지않은 천하의 절경 코스인 덕항산은 

30m앞도 내다볼 수 없고(범여의 德이 모자람인가) 부지런히 걸어 덕항산에 도착하니 윈드자켓은 비로

 다 젖어 버리고 할 수 없이 판초를 꺼내입고 몸에 체온을 유지하며 구부시령으로 향했다.

 

어느 박복한 여인 기구한 운명을 생각하며 푯대봉을 향하는데 갑자기 빗줄기는 굵어지고 여기서 오르막

내리막이 20여번이 반복되니 갑자기 체력이 저하되기 시작. 가져온 따뜻한 양송이 스프와 초코릿, 우유로

원기를 보충하고 건의령으로 향했다. 이 코스는 육산으로 트레킹하긴 좋은 코스이나 워낙 거리가 길고

업다운이 심해 체력 소모가 많은 곳이다. 건의령에서 피재까지 남은 거리는 아직도 6.5km 그러나 이 코스는 

태백시에서 관리가 잘되어 있어 걷기는 참 편했다. 이제 서서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댓재-황장산-큰재-자암재-환선봉(지각산)-덕항산-구부시령-건의령-삼수봉의 약 35여km를 10시반에

피재에 도착하니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피재에 표시되어 있는 온도계는 12도를 가리키네

이제 얼마남지 않은 구간 有終의 美를 거두어야지 자꾸만 잠은 쏟아지고...      

 

댓재에서 피재까지 3D 지도

댓재(竹峴)에서 새벽 3시30분에 산행시작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과 정선 하장면 경계에 있는 삼척과 태백을 잇는 424번 지방도로가 백두대간

마루금을 동서로 가른다.   댓재는 한문으로 풀어보면 죽치(竹峙)가 되니 옛날에 산죽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산죽을 별로 만날 수 없고 울창한 잡목만이 산꾼들을 반긴다

 

칠흙같은 어둠의 댓재가 서니 굉장히 강한 바람이 분다.

그러나 마루금 속으로 들어가면 바람은 이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우거진 숲이 사방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라 그런지 벌써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오늘은 접근상 편의를 활용하기 위해 댓재에서 출발하여 황장산을 거쳐 자암재까지

 나아가는 南進의 길을 선택한다.

댓재에서 출발 30여분만에 만난 황장산(해발 975m) 정상에서

 

이마에 땀이 맺힐 때 쯤 첫 번째 봉우리를 만난다. 차갓재와 벌재 사이(문경 소재)의 황장산에 이어 대간에서

두 번째 만나는 황장산이다. 황장산이란 본디 黃腸木(궁궐이나 임금의 관에 주로 이용되는 소나무과)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오늘의 황장산 역시 문경 황장산에서처럼 황장목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숲의 遷移때문일 것이다. 陽樹는 시간이 지나면 陰樹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마련 즉 황장목은

 ‘죽음(死)으로써 새로운 삶(生)'을 맞이한 것이다. 오늘 대간은 시작부터 자연의 법칙을 강조하니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이나 많을 듯싶다.

여기 1059 봉은 또 다시 황장목의 이야기를 꺼내게 한다. 1059봉에서 동쪽으로 연결되는 능선은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서 혈을 맺는다. 여기에는 이성계 5대 조부가 잠들어 있는 준경묘가 자리잡고 있다.

준경묘 주변에는 울창한 소나무가 우거져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 소나무가 바로 황장목이다.

광동 이주단지 고랭지밭에서 만난 구절초 - 어느 님을 기다리시느라 저렇게 곱게 단장을 했을까?

고랭지 채소밭 가는 길에서 여명을 맞이하고

 

1059봉과 큰재를 지나면 이국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넓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진 고랭지 채소밭이다.

능선에 올라서면 건너편 산사면 일대까지 귀네미골 35만평의 고랭지채소밭이 펼쳐져서 장관이다.

이 귀네미골(牛耳谷)은 삼척시 하장면의 광동댐을 만들 때 수몰지구에 살던 사람들을 이주시켜 정착시킨 곳이라고 한다.

 살던 곳이 수몰되었으니 새로운 삶의 터전이 필요했겠지만 하필이면 왜 마루금인가! 이곳에 거주민들은 고랭지 채소 재배가

생계를 유지하는 방편이지만 고냉치 채소밭은 현대판 화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연 훼손 및 환경 오염을 가져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고도 대간꾼을 대간을 훼손하는 주범으로 꼽는 정부의 태도가 못 마땅하다.

 어쨌든 마루금은 죽어가면서(死) 이주민을 살리는(生) 것은 분명해 보인다.

큰재 부근에서 만난 대규모 고랭지 채소밭 - 광동댐 수몰지구 이주민들이 일구는 고랭지 채소밭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에 채소밭보단 울창한 삼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범여의 생각 中에서)

자암재에서 같이간 산꾼과 함께

 

선답자들에 따르면 환선굴이 위치한 대이리 일대에는 석회석 동굴뿐만 아니라 너와집,

굴피 집 그리고 통방아 등이 보존되어 있다. 일부는 아직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조만간 기능은

 다하게(死) 될 것이다. 그러나 주거 민속의 연구 대상과 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生)은 지속하게 된다. 즉 너와집 굴피집 통방아 등은 죽음과 삶을 동시에 영위하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대간은 “죽음은 곧 삶이며 삶이 곧 죽음이다”는 동양철학의 일부를 강조하려 한듯하다.

 하산하니 전직 대통령이(김 대중)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리고 그의 유서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주변인이 없는 곳에서 영면하소서.

生由於死 死由於生(삶은 죽음에서 그리고 죽음은 삶에서 시작된다) 불경(道典)에 나오는 말이다.

이젠 덕항산도 설설 겨울 준비를 할 모양이다. 거기다가 꽤 내리는 가을비에 기온이 뚝 떨어져 갑자기

 오한이 오기 시작하는구나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 내리는 자암재 오름길이 꽤 경사가 급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탓에 잠깐 동안의 긴 장으로 환선봉으로 이어지는 대간 오름길은 풀섶에 가려진 채 오른쪽 환선굴로

이어지는 갈림길에만 리본이 무수히 붙어 있어 자칫 초보 산행객이 실수하기

쉽겠다. 잠시 물 한모금 추긴 후 가운데 풀섶을 디뎌 나가니 정면 대간 숲으로 오름길이 이어진다.

환선봉(1081m) 정상에서 - 이 봉우리 아래가 천연 기념물 제178호인 환선굴이 있다. 길이 6.9km, 천정 높이

30m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동굴이란다. 동굴안에 3000명이 모일수 있는 넓은 광장과 폭포가 있다.

지금 내가 그 위에 서있다. 조망권이 굉장이 좋은 곳인데 지금은 가을비와 안개로 인해 50m 앞도 보이지 않는다.

 지각산(智覺山)이라고도 한다 지각산(智覺山)은 한자로 보면 꽤 고상한 이름이다. 그런데 삼척시 하장면 광동댐

 부근엔 또 하나의 지각산(904m)이 있다. 이 산 이름은 원래 ‘찌걱산’이었던 것이 한자화하면서 지각산이 됐다.

 ‘찌걱’이란 삼척 지방 사투리로 남녀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나타내는 의성어이다.

광동댐 부근의 지각산 자락이 Y자로 벌어져 있고, 그 계곡에서 남녀가 우연히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둘 사이에 꼭 사단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찌걱산이라

 했다는데, 속된 이름인 찌걱산을 한자화하면서 고상하게 지각산이라 하게 됐다.

 따라서 이곳의 지각산 역시 원래는 찌걱산이었던 것이 고상한 이름의 지각산이 됐고,

이후 더욱 근사한 환선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덕항산(1072m) 정상

태백과 삼척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덕항산은 동서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삼척쪽의 동쪽은 협곡으로

깎아지른 계곡이고 태백쪽인 서쪽은 한없이 부드럽고 평탄한 형세이다.

아홉마리 용이 아홉 늪에서 놀고 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옛날 이 산을 넘어오면

화전(火田)을 할 수 있는 땅이 많아 덕메기산이라고 하였으나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하산이

 되었고 현재 덕항산으로 변천했다고 전해진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으로 뽑히기도 했다.

갑자기 비의 양이 많아서 판초를 입지 않곤 힘이 드는구나 

덕항산(덕매기산) 정상에 오르니 갑자기 가을비의 量이 많아진다. 우의를 입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대간 답사객들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은 산행객들이 다니질 않는 탓에 그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조그만 정상 표지석만이 외롭게 산을 지키고 있다.

바로옆 헬리포트엔 산불 감시탑만 버려진 채 덩그라니 서 있어 왠지 쓸쓸해 보인다.

구부시령(1007m)에서 - 태백 하사미골에서 삼척 도계읍 한내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옛날 한내리 땅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박복한 여인이 살았는데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어 무려 아홉 

서방을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구부시령(九夫侍嶺)이라고 한다

 

아홉 지아비를 차례로 섬겨야 했던긴 동쪽 대기리 주막집 여인은 어느 새 사라지고 ,그 숫자와는

 상관없이 이 땅 어두웠던 세대 그늘진 곳에서 恨 많은 삶을 살다 간 예쁜 女人을 생각하며 한 점씩

 돌을 쌓으며 이 길을 쉬어 가던  로맨티스트 방랑객의 낭만이 돋아 나온다.

그는 아홉중에도 속하지 못했으리라..바로 옆에 떨어진 돌 한 점 들어 맨 위에 놓아 본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거기가 거기같아 알바하기가 가장 좋은코스 같다

 

1,055m봉에 닿는다. 이 부근 봉우리에서는 유일하게 정상 바닥에 돌이 여러 개 박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숲에 가려 시야는 막혀 있으며, 이정표에 ‘구부시령 0.7km, 한의령 6.1km’라 적혀 있다.

구부시령을 지나 넘어가는 1055봉을 넘어서려니 비의 양은 조금 적어지면서 우의를 입은탓에 무더위를 느낀다.

 큰 나무 숲이 그리운 잡목지대를 힘겹게 헤쳐 나간다. 잡목들도 설설 가을을 준비하기 시작하는구나 

강원도의 산은 지금 겨울준비가 한참인것 같다.

푯대봉 삼거리에서 - 아직도 피재까진 약 8km여가 남았는데 비가 많이 오다보니 체력소모가 심해지는구나

 

좌우가 짙은 안개로 인해 뒤 덮힌 채 표대봉 삼거리에서 지난 여름 같이 대간산행을 같이한 산정 산악회 산꾼들을 만난다.

정말 반갑다. 무박 산행이 아닌 당일 산행을 하기에 이제 시작을 하는가 보다

산정 산꾼들과 헤어져 표대봉 삼거리를 지나  902안부를 올라선 후 잠시 부드러운 오름길을 밟아

 잡목 우거진 건의령으로 향한다. 

한의령에서 - 대간 산꾼들은 이곳을 건의령(巾衣嶺)이라고들 많이 부른다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이 삼척시 근덕면 궁촌에 유배를 와 있었다. 그리하여 살아남아서 정선 두문동에

 은거해 있던 일곱 명의 충신들이 공양왕을 배알하러 갔다가 돌아가면서 이 고개에 이르러 복건과 관복을

벗어 나무에 걸어 놓고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기로 맹세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걸었던 고개라 해서 ‘巾衣嶺’이라 했다고 하는데,

산경표에는 ‘建儀嶺’이라 기재되어 있고, 일명 한의령(寒衣嶺)이라고도 한다.

  한의령이라 하게 된 것은, 옛날 삼척 지방에서 이 고개를 넘어 태백으로 갈 때 겨울에 눈이 엄청나게 오고,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이 고개를 넘다가 얼어 죽은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옷을 두껍게

입어도 얼어 죽는다고 하여 한의령이라 했다고 한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덕항산구간 종주를 마무리하고 건의령(建儀嶺,巾衣領,寒衣嶺)에 내려서니

오른쪽 맞은 편 언덕 성황당 나무아래 百人敎君子堂이 허물어 질듯 명맥을 유지한 채 어느 지나가던 밤길의

산행객이 부어 놓은 술 한잔이 집을 지키고 있다.

고려 충신들이 미련 없이 벗어놓은 관복들은 사라지고 눈치 껏 자리만 탐하며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리는

 정치꾼,고위 공무원들만 그득한 세상이 한심스럽다. 백명을 모아 가르침에 전력하던 선인들의 고귀함도 사라진

 이 척박한 땅 아래로 터널을 지나가는 차량소리만 들리는 것 같구나

피재가는 능선에서 바라본 한가로운 강원도 오지(奧地)마을 풍경

피재가는 길이 왜이리 힘이들고 멀기만 하는고...

삼수령 표식판 앞에서 - 낙동강과, 한강, 오십천의 발원지란다.

 

빗물이 어느 강의 유역으로 흘러들어갈 지 그 운명을 실험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낙동강 유역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것인지 빗줄기는 여기 갈림길에서 더욱 굵어진다.

 낙동강 유역과는 지금 헤어지지만 대간이 끝나고 ‘낙동정맥 밟기’를 할 때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게다. 會者定離 去者必返(회자정리 거자필반)이 아닌가.

건의령에서 삼수령에 이르는 길. 여전히 앞은 보이지 않으니 땅만 보며 걷는다.

 땅위의 키 작은 친구들 역시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도란도란 말을 건넨다.

일행 중 한명이 산삼 한 뿌리를 캐서 건네준다. 땅만 보고 걷다가 얻은 횡재다.

남들은 산삼이 아니라 더덕이라고 우기지만 백두산의 氣와 지리산의 氣가

합쳐진 오늘 구간에서 캔 것이니 산삼이 더덕이고 더덕이 곧 산삼일게다.

오늘 산행 종착지인 피재에서 - 약 35여km를 10시간 반에 걸쳐 걸으니 무릎이 얼얼하네

피재(삼수령:920m) 표시석

피재는 태백시에서 삼척시 하장면으로 이어지는 35번국도 상의 고갯마루로서 일명 삼수령(三水嶺)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한강, 낙동강, 오십천이 갈라지는 분수령이므로 삼수령이라 하고, 예전 삼척 사람들이 난을 피해

그들이 이상향으로 여겼던 황지 쪽으로 갈 때 이 고개를 넘어가서 ‘난을 피해서 가는 고개’라 해서

 피재라고도 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