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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백두대간 1차 북진(終)

백두대간 제34구간(역산행) - 도래기재-옥돌봉-박달령-선달산-늦은목이재

by 범여(梵如) 2010. 3. 23.

산행일시: 2009년 8월 9일

산행구간: 도래기재-옥돌봉-1015봉-박달령(1009m)-1246봉-선달산-늦은목이재(720m)- 오전리(경북 봉화군 물야면)

 거리/시간: 마루금 13.6km날머리 약4km / 5시간 30분 소요

 

 도래기재의 유래 - 이곳에 조선시대에 驛이 있어 역촌마을이라 하여 道驛里라
부르다가 이것이 변음(變音)이 되어 도래기재라 통역되었다 한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의 경계에 있는 도래기재
 옥돌봉 올라가는 길 우측에 있는 550년 된 철쭉나무

3도래기재에서 30분 정도 급경사를 치고 올라오니 오른쪽 40m 지점에 몇년전에 발견했다는

 550년 왕철쭉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줄처져 있으나 잡목숲들로 가려져 있어 별로

뛰어나게 보이질 않는다. 진정 어떤 방법이 보호차원에서 좋을지는 생태학자들의 의견이

 필요하겠지만,... 언젠가 꽃피는 봄의 대간길에서 다시 볼 수 있을런지...

 여기도 백두대간의 완주를 꿈꾸는 리번이 달려있고
 옥돌봉 정상에서 만난 금뚜꺼비-오늘 존일이 있으려나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소재한 옥돌봉(玉石山:1244m)

오늘은 태백산의 두 번째 구간 산행이다. 접근의 용이성으로 인해 도래기재를 들머리로

하여 옥돌봉-박달령-선달산-늦은목이로 연결되는 역방향 길을 잡았다.

옥돌봉은 일명 옥석산이라고도 하며, 정상은 조그마한 공터인데, 까만 오석의 정상

표지석이 있으며, 전망 안내판이 서 있고, 서쪽 아래엔 헬기장이 있다. 북동쪽으로는

나뭇가지 사이에 함백산(1,573m), 태백산(1,567m), 구룡산이 보이고, 동남쪽으로는

각화산(1,177m), 문수산(1,205.6m)이 보이며, 남서쪽으로 선달산(1,236m)에서

 소백산(1,439.5m)에 이르는 대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마에 땀이 주렁 주렁 맺혀 덧옷을 벗으려 하니 곧 옥돌봉이다. 옥돌봉이라는 이름은
 멀리 예천에서 보면 정상이 옥돌처럼 빛났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본디 옥돌(玉石)이란 귀한 것과 천한 것, 선과 악 등 상반된 뜻이 합성된 말이다.
 세상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다 함께 존재한다는 뜻이겠다. 나쁜 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 있으며, 좋은 것은 나쁜 것으로 인해 더욱 드러난다는 의미이니 옥과
 돌은 서로 화답하며 뒤따르는 존재일 것이다. 대간은 오늘 산행의 초입에서부터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다.
 백두대간과 문수기맥이 갈라지는 주실령(朱實嶺) 삼거리에서

옥돌봉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5분 정도 진행하면 ‘주실령 삼거리’라는 곳에 이른다.

주실령가는 곳과 박달령 가는 이정표에 문수지맥 분기점에 다다른다.

 주실령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1.5km 지점에 있는 주실령은 옥돌봉과 문수산 사이의

안부로서 봉화군 물야면과 춘양면을 잇는 915번 지방도가 지나는 아주 험한 고개이다.

  그리고 주실령 서쪽에 유명한 오전약수가 있다. 오전약수(梧田藥水)는 조선 성종 때

보부상에 의해 발견됐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물맛 좋은 약수로 뽑혔다고 한다.

그리하여 순흥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백운동서원)을 세운 주세붕(周世鵬)은 오전약수를

 일컬어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좋은 스승에 비길만하다.’라고 했다고 한다.  

주실령 삼거리에서 90도로 우회하여 향하는데 선두는 벌써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고

 같이 온 후배산꾼 게울이는 자꾸만 뒤로 처진다.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박달봉에서 바라본 주실령(경북 봉화군 춘양면 소재)
길고도 지루한 하산을 디뎌 박달령 넓은 헬기장에 도착하여 길 건너 山靈閣을 마주
 보니 빗속에서 혀진 채로 오늘 누군가의 방문을 접하지 않은 외로운 느낌이다.
문을 열고 영혼들의 안부를 물어본다. 배지붕의 기와가 우람하고 탱화 없이 단장된
 커다란 신령 위폐가 엄숙하고 단정해 보인다.박(밝고큰)달(산,언덕)재는 제천의
 금봉/박달도령 쪽이 알려져 있지만 높이로는 이곳이 더 높은 고개

다.(1009) 또한 박달나무의 단목령(檀木嶺)도 같은 의미겠지만 억지 한역보다는

우리말이 정겹다. 선달산과 옥석산 사이에서 수많은 보부상들을 맞이하며 봉화와

 영월의 소식을 물어보던 영혼들이 이젠 마루금 지나 다니는 대간 꾼들에게서

 무슨 소식을 들어려 할 것인가.

 박달령에서 - 박달령은 고치령, 마구령과 함께 조선시대 보부상들이 경상도와
강원도 영월을 드나드는 길목으로 유명하며 뒤에 있는 산신각에서는 이들의
安寧을 기원하며 매년 4월 초파일에 지금도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옥돌봉에서 박달령으로 내려갈 때 반대방향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오는
일단의 등산객을 만난다. 표정은 제각각이지만 모두들 힘겨워하는 모습이다.
불과 수 분전 내가 옥돌봉 오를 때의 모습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고
 했지만 대간에서는 과거의 시간도 잡을 수 있으니 참으로 묘한 존재이다.

박달령에 도착한다. 옥돌봉에서 가지를 치는 문수지맥이 가장 장엄하게 보이는
 곳이 여기 박달령이다. 문수지맥은 낙동강 상류인 내성천을 낳고 있는데
이 내성천이 부석사의 입장에서 보면 명당수(한양으로 치면 청계천)에 해당한다.
‘박달’은 배달이라는 용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배달이란 곧 고대한국을 가르키는
말이니 박달이란 상고시대 우리의 국가명이다. 또한 박달(朴達, 또는 白達)은
 檀(박달나무)을 뜻하며, 이는 곧 단군의 ‘단’을 의미한다는 인식도 널리 퍼져있다.
(물론 여기에 대한 비판도 있다) ‘檀’자를 사용하는 서울 모 대학의 창학 이념에
 단군의 "弘益人間" 정신을 강조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되었을 터이다.
 비온뒤라 그런지 수줍게 올라온 이름모를 버섯도 이쁘기만 하고

박달령에서 10여분 충분한 휴식을 마치고 선달산으로의 긴 오름길이 이어진다.

후배 산꾼 게울이는 아무래도 같이가긴 힘이 부치는가 보다. 박달령에서 오전리

약수터로 탈출하겠단다.  후배 핸폰을 받고 선달산으로 가속도를 낸다. 시원스럽게...

20여분만에 1246봉에 올라선다. 선달산 보다 높으면서 정상을 뺏긴 것은 아무래도

험한 바위를 안고 있어 산꾼들의 발길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북으로의 내림길이

평탄하여 뚜렷한 봉(峰)을 형성하질 못한 이유인 것 같다.병풍바위에 붙은 질긴

생명의 뿌리들에 감탄하고 내 두발을 곧 추 세워 힘을 주어 본다. .

 저 꽃은 어느 님을 기다리시나
 1016봉의 벤취 - 여러 산꾼들에 휴식을 제공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덜한 탓인지 이름모를 야생화는 지천으로 널려있고
 1246봉 정상의 모습

박달령부터 선달산 사이의 대간 능선은 강원도와 경북의 경계를 이룬다.

박달령을 출발하여 30여분 올라가면 쉼터가 마련된 봉우리에 올라서고, 거기 이정표엔

 ‘박달령 1.4km, 선달산 3.6km’라 적혀 있다. 이후에도 계속 오르막내리막이 반복되면서

고도를 높여가다가 40여분 진행하여 또 하나의 쉼터가 마련된 봉우리에 닿으면, 거기에

 나무판자로 된 이정표에 ‘선달산 2시간 30분, 박달령 1시간’이라 적혀 있다.

  그리고 30여분 바위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 그 다음 봉우리에 올라가면 거기에도

이정표가 있어서 ‘선달산 1.1km, 박달령 3.9km’라 적혀 있고, 옹달샘 표지판이 있다.

  이어서 30여분, ‘현위치 4-7’ 표지목이 있는 봉우리와 암릉이 있는 봉우리(1,246m)를

지나면 선달산 정상(1,236m)에 닿는다. 박달령에서 선달산까지 5km, 2시간 20여분

 걸리고, 도래기재에선 11km, 4시간 20~30분 걸린다.     

 선달산 약수터 근처에서
 한가하고 호젓하기만 대간길
 선달산(해발 1236m)에서의 범여
박달령에서 두 어 시간 정도 씨름하다 보면 선달산에 이른다. 先達이라는 설도 있고
仙達이라는 주장도 있다. 선달산은 덕스럽고 푸근한 풍모를 지니고 있지만 커다란
정상석은 어느 이름이 더 타당한지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구간에서의 옥돌봉, 박달령 그리고 선달산 모두는 이름의 유래를 짚고
넘어가도록 강요한다.
先達이란 ‘과거에 급제하고도 아직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는 신분’이라는 뜻과
‘먼저 올라야 할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특히 선답자 최창남은 '먼저 깨달은
산'이라는 뜻으로 보고 '선(先)'자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시간적 의미에서의
'먼저'가 아니라 '선험(先驗)적인 지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仙達이란
‘仙道를 추구하는 무리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아무래도 先達이라는 이름보다
 仙達이라는 이름이 더욱 끌린다. 그렇게 보아야 태백산의 가치와 맥이 통하기 때문이다.

儒道(유도), 佛道(불도)와 함께 동북아 사상계의 큰 줄기를 형성하는 仙道(선도)는
최치원의 풍류도와 닿아있다고 한다. 고달픈 현실 생활 속에서도 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즐겁게 살아갈 줄 아는 삶의 지혜와 멋을 풍류라고 한다. 이러한 풍류는 철따라
물 좋고 산 좋은 경관을 찾아 춤과 노래를 즐기면서 자연과 친해지는 생활로표출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선도가 중국에서 건너 온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것이라는
점이다. 정리하면, 선도 즉 풍류도는 산을 찾아 춤과 노래를 통해 각박한 세속적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인생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순수함에 잠겨보는 우리 고유의
‘삶의 멋’이라 할 수 있다. 선도 즉 풍류도가 우리민족의 DNA이며, 한국인들의 삶과 문화가
 곧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이다. 우리의 한류가 왜 강세를 보이고 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강세가 산(대간)에서 탄생했다는 점도 공감할 수 있다.
선달산 정상에서 바라본 어래산(해발 1063.6m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소재)
오늘 산행이 비록 태백산의 두 번째 구간에 불과하지만 지나 온 소백산 구간과는
시사하는 바가 확연히 구분된다. 소백산이 참선, 수행, 부처 등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면 태백산은 배달, 단군, 선도 등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 및 사상과 연계되어 있다.
태백산의 첫 번째 구간은 갈곶산을 통해 우리 땅이 어떻게 형성되는 지를 설명하고 있으며,
 오늘 구간의 선달산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 즉 한류의 원천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를
그리고 박달령은, ‘박달’이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선달산 하산길에서 만난 춘양목(금강송)군락지

춘양목(春陽木) 옥돌봉 부근엔 잡목만 우거져 있었으나 박달령에 이르면

띄엄띄엄이나마 춘양목이 보인다. 춘양면 지대이니 춘양목이 있다는 게

당연하지만 다른 곳의 적송보다 싱싱해서 보기가 좋다. 춘양목이란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인 적송을 일컫는 별칭이다.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방에서 벌채된 적송을

 춘양역으로 운반해 와서 춘양역에서 기차에 적재되어 타지방으로 반출됐다.

그리하여 타지방 사람들이 춘양에서 온 적송이라 하여 다른 고장의 적송과 구별하기

 위해 춘양목이라 부른 데에서 이런 별칭이 생겼다.

  적송(赤松), 금강송(金剛松), 황장목(黃腸木) 등으로 불리는 춘양목은 잔가지가 적고,

곧게 자라며, 잘 썩지 않는 우수한 목재여서 예전엔 궁궐이나 사찰 건축, 혹은 관곽을

만들 때 주로 사용되었으며, 일본의 국보 제1호인 목조반가사유상을 만들었다는

 바로 그 소나무이다.  일본 교토의 광륜사에 모셔져 있는데 일본이란 나라는 적송이

생산되지 않는데 죽어도 한국 불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단다. 

 
 늦은목이재(해발720m) 삼거리에서
늦은목이는 선달산과 갈곶산 사이의 안부로서 백두대간 동쪽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생달마을과 백두대간 서쪽 영주시 단산면 남대리를 잇는고갯마루이다.

예전엔 보부상들이 넘나들었으나 지금은 차량통행이 불가능하여 산꾼들이나

가끔 드나드는 곳으로 퇴화해버렸다.

 

 백두대간 기슭에 ‘생달’이란 마을이 두 군데 있다. 즉 문경의 대미산 아래에도

생달이란 마을이 있고, 이곳 선달산 아래에도 생달마을이 있다. 

 

  늦은목이부터 소백산 지역이어서 소백산국립공원의 가장 동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늦은목이 이정표엔 ‘선달산 1.9km, 마구령 5.9km, 비로봉 28km’라 적혀 있다.

이후 대체로 500m 간격으로 이정표가 서 있어서 진행에 도움을 준다.

 늦은목이 옹달샘(약수터) - 내성천(109.5km)의 발원지로서 봉화, 영주, 예천
3개 시.군을 지나 문경시 영순면 달리지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고 한다 
 하산길에서 본 박달령 저 멀리 산꼭대기 V자로 파진 부분이 발달령(1009m)이다
 하산길 펜션조경으로 만든 백두대간
 오전리 마을 정자와 당산(성황당의 모습)
 
얼마나 지루한 장마인지 정확히 7주만에 산행길에 해맑은 햇살을 볼 수
있었다. 제천을 지나니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꼭 가을 하늘을 연상케 하고 있다.
영주I.C를 빠져 나오고서도 산행시점인 도래기재까지 1시간 이상을 가야하는
말그대로 奧地(속칭:깡촌)였다. 나 역시 지리산밑 자락에 자란 촌넘이지만
아마 이런 오지는 아마 자주 못 볼것 같은 정도로 낙후되어 있는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의 경계인 도래기재에서 산행을 시작.
산행 시작 10분이 채 안되 옷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날씨는 너무 좋다.
바람만 불어주면 금상첨화이련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바람은 없고,
산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720고지에서 1250까지 오르내리는 육산이다.
백두대간 산꾼외는 아무도 찾지않는 산행 코스이다보니
이름모를 야생화와 버섯, 두꺼비, 뱀을 비롯한 이름모를 파충류를 무수히 만나고
도래기재-옥돌봉-1015봉-박달령(1009m)-1246봉-선달산-늦은목이재(720m)
로 해서 오전리(경북 봉화군 물야면)로 하산하는 코스로 마루금 13.6km
날머리 약4km를 5시간 30분 정도에 산행을 마무리하고 맑은 공기에 오염
되지 않은 청정지역이라 범여의 머리는 훨씬 맑아지는 느낌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