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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변산지맥(終)

변산지맥 제1구간 - 쓰리봉에서 송촌마을 도로까지

by 범여(梵如) 2017. 12. 10.

☞ 산행일자:  2017년 12월 09일

☞ 산행날씨: 흐림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1.7km +어프로치 2km / 5시간 1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장성갈재-515.5봉-변산지맥 분기점(왕복)-쓰리봉(서래봉)-암봉-암릉-갈림길-488.1봉-소갈재-NO63송전탑

                 289.1봉-두승지맥 분기봉-옥녀봉(거담봉?)-안부-수리봉-무명봉-임도-갈림길-산불감시초소-무명봉-155봉

                왕림고개 -도산고개-152봉-안부-수산-135.5봉-송촌고개-무명봉-송촌마을 도로

소 재 지:  전남 장성군 북이면 / 전북 정읍시 입암면, 소성면 / 고창군 신림면


일년내내 일욜만 되면 베낭을 지고 산으로 도망(?)을 가는 막내 때문에 형제간끼리 모임한번 하지 못한다는

어른들의 불만 때문에 오랫만에 일욜(10일)날 가족끼리 모여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는 바람에 토욜날 산행을 나선다

큰 누님이 올해 연세가 여든셋이고 둘째 형님이 일흔여덟인데 어른의 부탁을 마냥 거절할 수는 없었다

우리 형제간이 팔남매인데 아직까지 다 생존해 계시는데 내가 잘해야 할터인데 역마살이 심해 산으로만 다니니...

늘 가족과 형제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이다

원래 이번주에 각호지맥 2구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구간은 참으로 애매하다... 중간에 탈출로가 마땅찮고

도로가 있는 곳으로 오려면 적어도 10시간이상 걸리는 코스라 요즘처럼 해가 짧은 겨울에는 아무래도

날머리에서 서울로 오는 교통편이 마땅찮아 해가 긴 내년 5월 이후에 하기로 하고 여기저기를 검색하는데

예전에 가끔 다녔던 산악회에서 100대 명산으로 방장산을 간다고 한다

그래 이 곳을 따라가서 변산지맥 첫 구간이나 짧게 한구간이나 하고 와야겠다고 하여 이른 아침에

잠실역에서 버스에 탑승하여 방장산의 들머리인 장성갈재로 향한다

 

맥산꾼들은 산악회를 따라 다니지 않은 다음에야 늘 첫구간이 고민인데 그건 나만의 문제는 아닐게다

지맥길은 대간이나 정맥에서 갈라져 나오는 산줄기라 늘 접속구간이 상당히 길기에 항상 부담스러운데

이렇게 산악회를 따라 나서면 경비도 절감되고 부담도 덜한 편이다

이 산악회는 7~8년전에 한.두번 가본 곳이라 어색했는데 그래도 나를 알아보고 굉장히 반가워 한다

차에서 아침 대용으로 가래떡 3줄과 생수 하나를 주는데 나에겐 간식으로 가래떡 하나를 더준다

어차피 짧은 코스라 점심을 안 싸왔는데 점심 대용으로 먹기로 하고 차에서 올라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정안 휴게소... 다시 버스는 출발하고 전주.정읍으로 가는길에 근방이라도 눈이나 비가

쏟아질 것처럼 컴컴해오니 조금은 불안하다

버스는 호남고속도로 임암I.C를 빠져나와 장성갈재로 향하는 길에는 눈이 꽤나 많이 쌓여있고

버스가 고개를 헐떡거리며 올라와 오늘의 들머리인 장성갈재에 도착한다

 

 

변산지맥(邊山枝脈)은?

영산기맥의 장성갈재에서 서쪽으로 약1.7km 떨어진 x734m봉<쓰리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347.4m봉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수산(秀山.x237m)을 일구고 708번 도로가 지나는 송촌에 이른다.

송촌에선 방향을바꿔 북진하며 변산반도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 사창마을까지 장

장 22km를 비산비야의 구릉지를 지난다.
이구간은 최고봉이 109,2m(배풍산)이고 주로 2,30m의 구릉지로도로나 농로를 따라 신림,흥덕,줄포,보안면등 4개면을 지난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들어서면 방향을 다시 서쪽으로 바꿔 노승봉(352.9m),옥녀봉△432.7m), 세봉(x433m),

신선봉(x491m),을 지나고 말재 내려섰다 다시 갑남산(409m),사투봉(x169.2m), 봉화봉(△174.2m)을 세우고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변산반도 격포항 남쪽에그 여맥을 묻는다.

도상거리는 약 56.5km 정도 되고 지역의 특성을 살려 이 산줄기를 변산지맥(邊山枝脈)이라한다.

 

 

이 산줄기 좌측으로 흐르는물은 갈곡천이 되어 곰소만으로 들거나 직접서해바도로 들고
우측으로 흐르는물은 고부천이 되어 동진강에 들거나 두포천이 되어 서해바다로 든다.

 

필요한 지도는 : 1/50000: 담양, 고창, 부안, 위도. 1/25000: 사가, 고창, 줄포, 석포, 격포(5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장성갈재(270m:10:55)

전남 장성군 북이면과 전북 정읍시 입암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1번국도가 지나가는 곳이다.

일제시대에 착공이 되고 지역별로 순차적으로 개통이 되었다 한다.

 

노령이 장성갈재로 불리웠는데 이 도로가 생기면서  지명을 거기서

따왔다고 하는데 원래 갈재 아래로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이곳도 옛 영화를 잃어가고 있다.

 

 

입암산과 방장산 사이의 낮은 능선인 노령부터 장성갈재까지가

전라남도에서 북으로 가는 대표적인 고개가 되는데

국도1호선과 호남선 철도, 호남고속도로가 모두 여기를 통과한다.

 

이 고개 남쪽은 전남 장성군 북이면이고 북쪽은 전북 정읍시 입암면이다.

전남에는 목란마을이, 전북에는 군령마을이 고개 첫 마을이며

모두 예전에는 주막거리가 있었던 마을인데 옛날 과거길 가는 선비들로부터

소금장수 소장수 새우젓장수 등 수많은 민초들의 발길이 다다렀던 곳이다.

 

갈재를 한자로 갈대 노(蘆)자를 써 노령(蘆嶺)으로 했다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북이면 목란마을에 갈애바위가 있는데 역시 갈재에서 옮겨진 이름이다.

 

갈재 남쪽 목란마을 아래 원덕리 원덕제(저수지) 북쪽에 암봉으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있다.

이 암봉을 바라보면 눈, 코, 입이 확연한 미인의 모습인데 조선 중엽 이전에는

처용암이라고 불렀으나, 천하일색이었던 갈애 전설이 얽혀있다.

갈재는 전라좌도는 물론 전라우도 등 크고 작은 한양길이 모이는 주요 통로였다.

재를 넘으면 전북 전주 길목인 정읍이 펼쳐지는데 장성댐 밑 청암역에서 이 고개를

넘으려면 고개밑 원덕리 미륵원에서 쉬거나 여러 사람이 무리를 지어 넘어야 했다.

고개는 산적들 소굴이었다.1520년 중종 때 군사까지 파견될 정도였다.

이 미륵원 인근 500m쯤에 주막이 7개나 된 주막촌 ‘목란’이 있었다.

장사꾼이나 과거 지망생들이 목란에서 투전판이나 술 따르는

여인의 유혹에 걸려 인생을 망친 일이 많았다는 전설이 있다.

목란과 미륵불이 있었던 원덕주막 사이 동쪽 산허리에는

처용암(處容岩)이란 미인 바위가 보이는데 짙은 두 눈썹 형상이 마치 아리따운 여인과 같다.

이곳 주막에서 태어난 ‘갈아’란 여인은 뭇사내들의 신세를 망쳐 어떤 장군의 칼에 찔려죽었다고 한다.

이후로 바위는 애꾸눈이 되고 인근 마을에서 애꾸눈 미인들이 태어났다는 전설이다.

이 전설과 관련, 정비석씨의 ‘기생열전’에서는 조선시대 성종때의 기생 ‘노화’가 나온다.

 미색이 뛰어나 그의 치마폭에서 장성 현감 셋이 파직된다.

파견된 사헌부 관원마저 노화의 유혹에 걸려 팔뚝에 정표를 해준다.

다음날 관헌에게 붙들려 온 노화는 그의 팔뚝을 보여주며 노래한다.

“노화의 이 팔뚝에 뉘 이름 새겼는고, 고운 살에 먹이 베어 글자도 선명코나.”

결국 이 기생은 관원의 첩으로 들어 앉혔다고 한다.

장성갈재에 있는 통일공원 비

故 김 대중 前 대통령과 김 정일이  서명된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표시석이 있는데

이곳이 통일공원으로 명명된 곳인데 저 분들의 염원은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요즘의 정세로 보면 이 나라가 백척간두에 서 있는듯 한데 이 위기를 해결한 지도자는 보이지 않으니...

통일공원에 설치된 수준점

통일공원 내에 있는 통합 기준점

광산이씨 세장비가 서 있는 임도를 따라서 산행을 시작한다(11:00)

무명묘지(11:15)

분기봉으로 향하는 길에는 눈이 제법 쌓여 있기는 하지만 오르막이라 아이젠을 찰 정도는 아니다

515.5봉(11:20)

장성갈재에서 한달음으로 빡세게 치고 오르니 예전의 성터처럼 보이는 돌담이 있고 넓은 공터가 나온다

이곳도 입암산성의 연장인가...아니면 '방등산가'에 등장하는 도적들의 산성터인가?

 

입암산성(笠岩山城)은 삼한시대에 축성되었으며 몽골의 침입에 저항하던 곳이었고  

정유왜란때 왜구의 침입에 저항하였으며 조선말 동학농민 운동시 녹두장군으로 불리던

정봉준이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후 잠시 이곳에 몸을 숨겼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515.5봉에서 산죽길을 따라서 안부로 내려서는데 생각보다 미끄럽다

근대에 축성한듯한 산성터인지 아님 군 교통호인지?

내리막길...눈싸인 낙엽길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1:30)

방장산이 유명한 탓인지 일반 등산객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쓰리봉으로 오르는 빡센 오름길...적설량은 점점 많아지고...

멋진 상고대의 향연

변산지맥 분기점(11:55)

산꾼들의 산행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고흥류공 할아버지 묘지는 후손들이 이장을 했는지

흔적도 보이질 않고 묘터에는 억새풀만 무성하게 묘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곳이 변산지맥 분기점이나 오늘 내가 걸어야 할 꼭지점인 쓰리봉으로 향한다

산죽사이의 암릉길을 지나니...

암릉 너머로 홍길동의 고장이라 불리는 장성쪽은 짙은 먹구름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쓰리봉(734m:11:58)

전남 장성군 북이면과 전북 정읍시 입암면 그리고, 고창군 신림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가 연달아 3개가 있다고 해서 쓰리봉이라고 하는데

봉우리 정상은 암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여러가지 일설이 있고 공식적인

지도상에는 이곳을 방장산이라 표기한 곳도 많이 보인다

 

일설에는 이곳에서 쭉 이어지는 봉우리중 3번째 높은 봉우리여서 쓰리( Three)봉라

부른다고 했는데 봉수대의 높이가 방장산 정상보다 높았는데 6.25때 폭격으로 높이가 낮아져

715m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걸보니 봉수대의 높이가 낮아지기 전에는 봉수대,방장산,

쓰리봉 순으로 높이가 정리되는 모양이다

도적떼가 많아서 일본말 쓰리, 서쪽에서 왔다는 서래(西來)가 변해서, 농기구 써래가 변해서 ,

장성 정읍,고창 3개의 고장에 속하는 봉우리라고 해서 등등 여러가지 설이 있다.

 

우리말사전에 '쓰리'는, 겨울 낚시에서 붕어나 잉어 따위를 낚아올리기 위하여 얼음을 끄는 쇠꼬챙이,

‘혓바늘’의 방언이고, 일본어 '쓰리'는 소매치기를 뜻한다.

 

범여의 생각에는 써래봉이 아닌지...써래의 사전적 의미는 논이나 밭을 가는

농기구를 말하는데 이곳에 연달아 있는 암릉들이 산 아래에서 보면 써래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 아닌지...

써래는 써레의 방언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써레라 불리는 전라도 사투리가 변음이 되어 쓰리라 불리는지

아니면 정상 이정목 제작자의 실수로 쓰리봉이라 했는지 고민이긴 하지만 그건 내가 신경쓸 건 아니고...

 

이곳에서 인증샷을 남긴 다음 일반 등산객들과 작별을 하고 분기점으로 향하는데 하늘이

컴컴해지면서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인데 홀로 걷는 나로서는 조금은 불안한 느낌이다

다시 변산지맥 분기점(12:05)

아무도 가지 않았던 이 길 눈이 제법 많아서 이곳에서 아이젠을 착용한다

반가운 맥산꾼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암봉(12:08)

암봉에서 바라본 영산기맥 능선

암릉에서 바라본 전남 장성군의 산그리메

암봉에서 바라본 정읍시 입암면

정읍시 입암면은 원래 정읍군의 남이면(南二面), 서일면(西一面)과

흥덕군(興德郡)의 이동면(二東面)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1914년 3월 3개면을

병합하여 입암면(笠岩面)으로 되었으니 명칭의 유래는 입암산으로 말미암아 불리워진 것이다.

 

입암면은 갈재(蘆嶺)밑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으며 고대 교통수단의

기관이었던 왕신원(往信院:旺壽里)과 삼례도(參禮道)의 천원역(川原驛; 현 川原里)이

있었으며 조선 중종(中宗)때는 갈재에 산적이 많아 한때 교통이 불편해지자, 노령군보(蘆嶺軍堡)를

두었으니 현 입암면 등천리의 군령교(軍令橋)는 당시의 군보(軍堡)의 영(營)이 있었던 곳이다.
또 입암산성은 호남의 요새(要塞)로 국난이 있을때마다 국방의 거점이 되었으니 임진란에도 많은

의병들이 순절한 곳인데 최근세에 와서 호남선 철도가 노령으로 개통되고 또 국도와 호남고속도로가

모두 이곳을 통과하니 역시 교통의 요충지이다.

 

따라서 천원리는 교통의 요충인 동시에 군사의 요지인 것이다. 몇가지 기록에서 간추려 볼 때

1592년(宣祖25年) 임진난에 호남의병들이 장성에서 출발하여 11월 천원(川原)에 이르러

군사훈련을 하였으며 1894년 봄 동학농민군들이 장성에서 전주로 올라가다 천원에서 밤을

지냈으며 그해 12월 일본군과 이규태의 관군이 천원에서 며칠을 머물며 작전을 한곳이다.

암봉에서 내려서자마자 초반부터 잡목이 거칠게 저항을 한다

선답자들이 호남땅의 지맥길을 겨울에 하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산꾼이 다니지 않았던 탓인가 눈이 발목까지 차오른다

산죽으로 인해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직진의 능선이 뚜렸한 거 같아 직진으로

내려서니 등로는 사라지고 암릉구간의 천길 낭떠러지라 우측으로 방향을 바꾼다

등로가 어디가 어딘지 구분도 안된다

암릉(12:15)

암릉 사이를 지나니...급경사의 내리막길...겨울에는 상당히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산죽밭이 나오는데 선답자의 흔적인 듯한 빨간띠지 하나가 보인다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서 내려서니...

산으로 아우님의 흔적이 보인다... 이 능선이 지맥길임을 확신한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산죽길 등로는 보이질 않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등로를 찾아가는데 눈 아래의 낙엽으로 인해 2번이나 꼬꾸라진다... 뭔 지랄인지?

갈림길(12:30)

우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좌측은 아예 등로가 없으나 지맥길은 좌측이다

등로가 없고 잡목이 무성한 좌측 능선으로 꺽어지니 백두사랑 시그널이 보인다

산죽 능선을 타고 내려가니...

무명봉(12:35)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488.1봉(12:40)

앙증맞은 바위가 있는 곳을 지나...

우측으로 내려선다

등로 좌측에 송전탑이 보이고... 엄청난 잡목의 저항

뒤돌아 본 잡목지대

미치겠다

사투를 벌이면서 잡목지대를 지나니 임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소갈재(小葦嶺:222m:13:00)

정읍시 입암면 연월리와 소창군 신림면 가평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노거수 느티나무

한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있고 우측의 연월리로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뚜렸하다

장성갈재 노령은 장성과 정읍을 잇고, 여기 소갈재는 고창과 정읍을 잇는 소갈재는

고창과 정읍의 경계로 소가 짐을 지고 가다가 목이 말라 위경련을 일으킨다고 하여

소갈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소갈재는 소노령(), 소갈치() 등으로 불리었으며『만기요람』에 "소노령()은

흥덕(, 지금의 고창군)과의 경계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대동지지』(정읍)에도

"소노령()은 서남쪽 30리에 있다. 흥덕과의 경계이다."라고 수록되어 있고 『호남지도』에

반등산과 율치 사이에 소노령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해동지도』, 『광여도』 등에도 고창과의

경계부에 소노령으로 기재되어 있다. 고개 지명과 관련해 노령의옆에 위치해 소노령이라고 한다는 설이 있다.

 

동국여지승람(輿)』에 보면 신림면 신평리와 정읍시 입암면 연월리를

잇는 고개는 갈대가 많은 작은 고개라는 의미의 소위령()으로 나와 있다.

소갈재는 우리말로 ‘작은갈재’인데 한자로 ‘소위령’으로 표기한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소갈재로 가로질러 올라서니...산으로님의 시그널이 보이고...

찔레꽃, 두릅나무, 아카시아, 맹감나무, 산딸기, 칡넝쿨이 함께 태클을 걸어댄다

잡목도 경상도 출신이라 텃세를 하는지...

준.희 선생님도 최근에 지나가신 듯...가시나무 지대를 지나면서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천신만고끝에 잡목지대를 벗어난다

자작나무 조림지대를 지난다

NO63송전탑(13:20)

NO63송전탑을 지나 조금을 올라서니 289.1봉이 나오고...

289.1봉(13:24)

289.1봉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진다

또다시 잡목의 저항은 시작되고...

도저히 치고 나갈수가 없어서 좌측으로 한동안 돌아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낙엽이 수북한 등로에 녹색띠지가 산꾼 범여를 안내한다

우측으로 넓은 임도가 보이는 곳에서 직진으로 올라간다

우측으로 두승지맥 능선이 보인다

이곳은 양지라 그런지 눈은 전혀없다

두승지맥 분기점(328m:13:40)

이곳은 정읍시 입암면과 소성면, 고창군 신림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정읍시와 완전한 작별을 고하고 온전히 고창군 신림면으로 들어선다

두승지맥 개념도

 

두승지맥 (斗升枝脈)은

영산기맥 장성갈재에서 올라 선 써래봉에서 북으로 변산지맥이 분기하여 소갈재로 내려 앉았다가 다시

올라선 옥녀봉(△349.6). 이 옥녀봉 직전의 전위봉격인 320봉에서 북동으로 또 하나의 산줄기를 갈라내는데,

이 산줄기는 계속 북진하면서 두승산을 지나 부안의 백산을 끝으로 고부천이 동진강을 만나는 부안동진강교

아래에서 산줄기를 마감한다. 서쪽으로 변산지맥과 함께 고부천의 물막이가 되고, 동쪽으로는 동진강을 흘려보낸다.

斗升山은 산경표(94頁)와 대동여지도에도 표기가 있고, 白山 역시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족보있는 산이다.

두승지맥 분기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길이 너무 좋아 산꾼을 당황하게 한다

여태껏 잡목의 시달리며 개고생 한터라 감격한 탓이라 그런가

시누대 터널도 지난다

등로에서 바라본 고창군 신림면 덕화리(德化里)의 모습

방장산을 뒤로 한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여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으로 월계리, 덕곡리, 화동, 대장동 등을 병합하면서 덕곡과 화동의 이름을 덕화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덕곡, 월계, 유점, 못안마을 등이 있으며 덕곡마을은 덕화리의 중앙에 자리한 마을이다.

월계마을은 덕곡 서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이 달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유점마을은 유기점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못안마을은 앞에 연못이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방장산(方丈山:743m)

전북 고창군 신림면과 전남 장성군 북이면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전형적인 육산(陸山)의

산세를 지녔음에도 악산(岳山) 못지 않은 기개와 뛰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방장산은 지리산,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추앙 받아온 산이다.

당당한 기세로 전남과 전북을 가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호남지역의 명산으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방장산은 산세가 크고 험한데다가 전라남·북도를 이어주는 요충지라서 백제가 신라에 멸망한 뒤

백제 유민으로 구성된 의적들의 본거지가 되었다. 이들은 도적성으로 불리는 성을 쌓고 지나는

사람들을 약탈하곤 했는데, 이런 활동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방장산은 중국 삼신산의 하나에서 빌려온 이름으로 ‘산이 넓고커서 백성을 감싸준다’

라는 뜻이다

한국은 중국의 삼신산을 본떠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불렀다.

호남지역에서는 방장산, 무등산, 지리산을 삼신산으로 불렀고 전라북도에서는 일봉래로

변산을, 이방장으로 방장산, 삼영주로 두숭산을 삼신산으로 하였다.

 

예전에는 이 산을 방등산 또는 반등산으로 불렀다.

반등산은 산이 높고 장엄해서 절반밖에 오르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조선 인조때에 명나라를

숭상하던 조선사대부들이 중국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을 닮았다는 이유로 방장산으로 고쳤다고 한다.

 

방장산 남쪽 백암리의 수도골에는 절이 많았다하고, 예부터 한말에는 천주교인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단다.

동으로 헬기장봉과의 사이에 유독 흰바위로 이루어진 절벽이 있었는데 이 바위에서 백암마을 이름을 짓고,

삼한시대의 성으로 전해오는 벽오산성(碧梧山城)이 벽오봉을 남긴 것으로 짐작된다.

내년쯤 걸어볼 계획인 두승지맥 능선

산행을 처음 시작한 쓰리봉은  시야에서 멀어지기 시작하고...

옥녀봉(玉女峰:349.6m:13:45)

정상에는 쉼터용 벤취 2개가 있고 글씨가 많이 마모된 삼각점, 거담봉이란 표지목이 있는데

국립지리원 지도에는 옥녀봉이라고 표기가 되어있다... 지나온 쓰리봉도 그렇고 이곳도

외지 사람들이 알 지  못하는 거담봉의  뜻은 뭔지...

옥녀봉 정상 삼각점(△담양 301 / 1988재설)

옥녀봉 정상을 거담봉이란다

소나무 숲사이의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안부(13:50)

수리봉(305m:13:52)

옥녀봉에서 7분만에 봉우리를 올라서는데 수리봉이란 표시목이 있다

지도상에 아무런 표시가 없는 무명봉이다

능선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등로 좌측 아랫쪽에 송전탑이 지나간다

송전탑 아랫쪽으론 벌목지가 보인다

잠시 후 쉼터용 의자와...

←수리봉 0.2km, →교동 1.5km가 있는 이정표에서...

우측(교동)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잡목이 무성한 희미한 등로로 내려선다

방장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는데 평야지대에 우뚝 선 탓인지 상당히 높게 보인다

소나무가 도열해 있는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다가...        

무명봉(14:00)

이곳도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특히 산초나무와 엄나무, 두릅나무가 엄청나게 괴롭히는데 우측으로 꺽어진다

후답자들은 개고생하지 마시고 벌목지대로 우회하여 내려 오시길...

준.희 선생님도 엄청나게 고생을 하시면서 내려가신 모양이다

이리저리 몸뚱아리를 할키면서 내려서니 소갈재에서 이어지는 임도가 나온다

임도(14:10)

임도를 가로질러 편백나무를 심어놓은 곳을 지난다

잠깐동안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갈림길(14:14)

지맥길은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이어진다

산딸기인지 복분자인지 구분이 안가는 가시나무 숲에 갇혀 버렸다

잡목지대를 헤치면서 천신만고 끝에 잡목지대를 탈출하여 좌측으로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넓은 임도가 보이고...

임도를 따라서 가니 좌측으로 인삼밭이 나오고 방장산 능선이 보인다

전주이공 묘지를 지나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임도를 따라서 내려가니...

산불감시초소(14:25)

또다른 전주이공 묘지를 지나 임도를 따른다

참기 어려운움을 참는 것이

진실한 참음이요

누구나 참을 수 있는 것은

일상의 참음이다

자기보다 약한 이의 허물을

기꺼이 용서하고

부귀와 영화 속에서

겸손하고 절제하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수행의 덕이니

원망을 원망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

참은 것이 진정한 참음이다

 

아함경 中에서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전주이공 묘지에서 임도를 버리고 묘지 뒷쪽으로 올라선다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데 산으로 아우님의 시그널이 보인다

준.희 선생님도 이 험한 길로 가셨구나

무명봉(14:30)

멧돼지들의 놀이터

넓은 임도가 나오고 우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155봉(14:35)

조경수의 사열을 받으면서 농장 가운데를 가로 지른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내리막 임도를 버리고 지맥길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진다

길은 보이지 않고...

천신만고 끝에...

경주이공과 부인 김해김씨 묘지가 있는 곳으로 내려선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잠시 후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 우측 능선이 맥길이나 도저히 갈 자신이 없어서 임도로 걸어간다

왕림고개(14:45)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왕림마을에서 덕화리 월계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왕림()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호형()국인데 나무가 없음으로 마을 남서쪽으로 약 200m

지점에 자리를 잡고 범에게 숲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면서 마을 이름을 왕림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마을에 숲이 무성하면 마을이 흥하고 숲이 없으면 폐한다고 하여 많은 나무를 심어서 숲이 우거져 있는데

이 때문에 마을이름을 왕림이라 명명하였다.

고개를 가로질러 넓은 농로를 따라서 걷는다

가야할 수산(秀山)이 보이고...

 

시멘트 도로 좌측 아랫쪽은  덕화공설묘지가 있고 우측의 묘지쪽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배유인청주한씨 묘지를 지나고...

또 다른 묘지를 지나...

칡넝쿨 사이를 헤치고 내려서니...

도로가 보인다

도산고개(14:55)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에서 가평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 23번 군도가 지난다

고개 우측에는 커다란 목장이 있고 좌측에는 덕화공설묘지가 있는데 지명은

고개 아래에 있는 신림면 도림리 도산마을의 지명을 따온 듯 하다

도산고개 아래에 있는 덕화공설묘지

목장으로 올라서니 넓은 밭이 보이고 전기선이 처져있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이 목장 여편네의 성깔머리가 고약하다고는 하나 갈데까지 가보기로 한다

목장 안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올라서니 개쉬끼들이 난리부르스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조형물을 지나 우측 도로를 따른다

농장 끄트머리에 올라서니 축사가 능선을 막고있는데 늙은 할마시가 농작물을 손질하면서 나가라고 한다

나갈려고 하는데 길을 모르겠다고 하니 왔던길을 되돌아 가란다... 갈 길이 멀어 그렇게는 못하죠

우측 축사 아랫쪽으로 내려서니 전선에 전기가 통하니 그리로 가지 말란다

에~~~이 설마 얼마나 돈이 많길래 낮에까지 전기를 보내겠어...

능선에 오르니 산에도 소를 방목해놨다

목장 위로 올하서니 안쪽으로  전기선이 지나고 그 바깥으로 나즈막한 철조망을 쳐놨다

아까 할마시가 전기가 통한다고는 했지만 설마 그럴리 있겠나하고 전선줄을 넘는데

이게 뭐야 진짜 전기가 통하네 눈에 젖은 바지가 전선줄에 닿았는데 갑자기 온 몸에 전기가 통한다

이 사람들이 진짜 사람을 잡겠네... 조심스럽게 전선과 철조망을 넘어 능선으로 올라선다

152봉(15:10)

이곳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내려간다

가야할 수산과 벌목을 한 후 편백나무를 심어논 조림지가 보이고...

안부(15:13)

이곳에서 산악회에서 준 가래떡과 생수로 허기를 면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감사합니다

수산으로 가는 길은 좋다... 등로에 돌탑들이 많이 보인다

수산으로 올라서니 그네와 운동기구 秀山亭이라는 팔각정, 무인산불감시탑과 건립비가 있다

수산(秀山:235.5m:15:30)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와 덕화리, 송용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신림면의 진산이다

정상에는 수산정을 비롯하여 운둥기구들이 보이는데 지명의 유래에 대한 기록은 없다

수산정과 건립비

송촌마을로 내려가는 등로는 아주좋다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135.5봉(15:40)

소나무가 도열해 있는 임도가 끝나고 묘지가 나온다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꺽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또 직진으로 진행하니...

좌측으로 묘지들이 보인다

처사라 함은 벼슬을 하지 않은 분을 말함이고 묘비에는 옥개석(지붕석)을 올리지 않는데

이곳 묘지에는 처사(處士)들의 묘비에 한결같이 옥개석을 올려놨다

전주이공치석후손 합동제단(15:47)

전주이공치석후손 합동제단 뒷쪽을 지나 낙엽이 수북한 능선으로 오른다

무명봉(15:50)

잡목을 헤치고 좌측으로 내려서니 뚜렸한 등로가 보이도...

송촌고개(松村峴:60m:15:52)

고창군 신림면 송용리 송촌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로 고창에서 정읍으로 이어지는

708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 정상 양쪽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송용리(松龍里)의 지명은 행정구역 폐합 당시 병합된 지역 중 송촌과 용암의 이름을 따서 송용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구정(), 내동, 농암, 신송, 송촌 마을이 있으며 농암()마을은 마을 앞 장등에 용바위가

있었는데 그 용바위를 보고 농암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구정마을은 수랑샘이 있는 마을로서 샘이 아홉이

생겨야 마을이 흥하리라는 전설이 있다 하여 구정이라 명명하였다.

신송마을은 송촌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이란 뜻으로 신송이라 명명하였다

도로를 건너 버스정류장이 있고 송촌마을 표시석을 끼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뭔 공사를 하려는지 마구 파놓았다... 후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어떻게 기록될 지...

등로 좌측으로 신림저수지가 보인다

신림저수지는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의 자포리와 송용리, 반룡리, 세곡리에 걸쳐 있는

저수지로서, 고창에서 동북 방향으로 입암행 지방도 708호선을 이용하여 4㎞ 정도 가면 찾을 수 있다.

방장산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흘러들어 수원이 좋고 수심이 깊으며 안정된 좋은 낚시터가 형성되어 있으며,

주로 대형 붕어와 잉어가 잡히며 여름철 캠프낚시에 고르게 나오고 갈수기에는 제방권이 포인트이며 봄철

산란기에는 상류 수초대에서 월척이 많이 나온다고 하며 고창의 33개 저수지 중 신림저수지는 가장 규모가 크다.

능선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숲으로 들어서니...

시누대와 잡목이 길을 막아 도저히 갈수가 없어서 좌측으로 우회한다

무명봉(16:00)

산딸기 나무의 괴롭힘을 당하면서 내려서니...

대밭을 지나 묘지가 나오고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감나무밭을 가로 지르고...

묘목밭을 지나...

전봇대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선다

송촌마을 도로(16:10)

원래 산행계획은 신림초등학교까지 가기로 했는데 초반에 쓰리봉을 내려오면서 눈과 잡목의

방행로 시간당 1km 걷기가 힘들어 지체되고 선답자들처럼 임도나 우회로가 아닌 원칙대로

걸어볼려고 하니 잡목과 길이 없어서 애를 먹었다... 그 바람에 시간은 지체되고...

오늘은 여기서 산행을 접기로 한다... 다음 구간을 2번에 끝내려면 조금 빡빡하겠다

우측에 있는 마을로 내려서니 송촌마을 회관이 나오고 이곳에서 아침에 타고온 산악회 총무에게

전화를 하니 출발 20분 전이란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택시를 부른다

저 버스를 놓치면 고창이나 정읍으로 나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기에...

10분만 택시는 도착하고 양고살재까지 택시를 타고와 산악회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힘든 첫구간 산악회 버스를 이용하여 한 구간을 끝내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