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9년 04월 28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리고 약간 추운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16.3km + 어프로치 1.3km / 8시간 30분 소요
☞ 참석인원: 지맥팀 동료 산꾼들과 함께
☞ 산행코스: 상주제일병원-민가-사방댐-백두대간 능선-분기봉-안부-470봉-435봉-안부-310봉
안부-274봉-280.6봉-갈림길-묘지-안부-25번 국도-밤원고개-무명봉-묘지
가르멜 여자수도원 갈림길-소머리산-임도-무명봉-400봉-무명봉-440.4봉-473봉
안부-380봉-묵묘-320봉-290봉-장서방재-평산신공 묘-390봉-채릉산-조망바위
368.9봉-전주이공 묘-안부-경주김공 묵묘-노음산 분기봉-갈림길-474.8봉-450봉
안부-조망바위-477.9봉-무명봉-우산리 갈림길-암봉-391.4봉-갈림길-우산재
☞ 소 재 지: 경북 상주시 화서면, 화동면, 내서면, 외서면
지맥길을 걷다보면 오라는데는 없어도 갈데는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여기저기 쫒아다니다 보니 거리도 멀거니와 교통 문제 때문에 보현지맥 3구간을 끝내고 4구간을
서낭재에서 평팔재 구간을 못한게 늘 찜찜하여 이번주 토요일 밤에 출발하여 여관에서 하룻밤을
자고 끝내고 오려고 했는데 산동네님께서 숭덕지맥 첫 구간을 가자고 문자가 온다.
늘 고민하는 문제지만 지맥길은 접속구간 때문에 힘이 드는데 첫구간이라 하여 OK하니
보현지맥은 또 미루어지는 셈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베낭을 챙기고 아침밥 한숫갈 먹고는 탑승지인 양재역으로
향하는 중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난 갈등이 몰려온다.
기상청의 예보로는 오늘은 구름만 끼일뿐 비는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오늘도
구라청(기상청)에 뒷통수를 맞는 기분이다...탑승한 버스는 한참을 달려 당진~영덕간
고속도로 화서I.C를 빠져나와 백두대간 화령재를 지나 들머리인 상주제일병원 앞에 도착한다
숭덕지맥(崇德枝脈 개념도
숭덕지맥(崇德枝脈)은 숭덕지맥(崇德枝脈)은 백두대간 봉황산(740.8m)과 신의터고개 중간쯤인
(봉황산 7.9km.신의터고개7.6km) 437.7m봉에서 북동쪽으로 가지를 쳐 낙동강과 영강이 만나는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44.3km되는 산줄기를 말한다.
이산줄기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봉성천이 되어 낙동강에 들고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이안천이 되어
영강에 들었다가 낙동강에 합수되며
소머리산(442m),우산재, 범산(416.5m), 국사봉(339m),
숭덕산(236m ), 서산(192.2m) 오봉산(240m), 두리봉(249.7m), 금지봉(386.5) , 군암산(280.0m)을
지나며 영강(潁江.길이 66.2km)의 좌측,병성천(屛城川.길이 32.3km)의 우측 분수령이 되는데
대한산경표에서는 병성지맥(屛城枝脈)이라 부르고 있다
필요한 지도는 1/25000. 화서, 신촌, 점촌. 1/50000.관기, 상주 , 문경, 예천. 영진 5만 304,305, 279, 280 P.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숭덕지맥 고도표

우리를 태운 버스는 백두대간 화령재를 넘어 내리막길로 내려간 다음에 고속도로 아래
상주제일병원 가기 직전 공터에 도착하는데 하늘이 도운건 지 다행히 비는 그쳤다


상주제일병원(09:05)
예전에 밤원 휴게소였는데 맞은편으로 고속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교통량이
줄어들어 휴게소 대신에 병원이 생긴 모양이다...다행히 비는 그쳤다

병원옆에는 S-oil주유소와 버스 정류장이 있다.

버스시간표

주유소 뒷쪽의 경주최공과 배부인 단양우씨 묘지쪽에서 산행을 시작한다(09:10)

묘지를 지나 묵밭으로 올라서니 빨간 꽃들이 가득하다

밭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민가 한채가 나오는데 사람의 흔적은 보이질 않고 풀어논 개 3마리가 달려든다.
앞에 가시는 조여사님이 질겁을 하고 내가 스틱으로 나무를 내리치니 다들 도망을 간다

산괴불주머니(꽃말:보물주머니)
본초면은 황근(黃菫)으로 2년생 초본으로 종자로 번식하는데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지의 습기가
많은 곳에서 라는데 원줄기는 곧추서서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높이 30~60cm 정도이며 전체에
분록색이 돌고 속이 비어 있으며 어긋나는 잎의 잎몸은 길이 10~15cm 정도로서 난상 삼각형이고
2~3회 우상으로 갈라지며 4~6월에 개화하며 총상꽃차례에 피는 꽃은 황색이다.
삭과는 길이 2~3cm 정도의 선형으로 염주같이 잘록잘록하며 종자는 흑색이고 둥글며 오목하게
파인 점이 있고, ‘괴불주머니’와 비슷하지만 종자 표면에 오목점이 많고 ‘염주괴불주머니’와 달리
개화기까지 남는 근생엽과 경생엽은 난형으로 우상복생한다.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괴불주머니 종류는 모두 독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된다. 연한 잎을 데쳐서 우려내고 먹는 곳도 있다

민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사방댐(09:20)

개울을 지나고...

피나물(꽃말:봄나비)

양귀비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숲 속 그늘진 곳이나 계곡 주변 습기가 많은 곳에 군락으로 자생한다.
유사한 식물로 노랑매미꽃이 있는데 피나물은 한 꽃대에 꽃이 하나씩 피고 노랑매미꽃은 2~3개씩
모여 피는 것이 다르며, 겉에서는 안보이지만 줄기를 자르면 노란 빛을 띤 붉은 유액이 나온다하여
피나물이라 불리는 꽃이다. 군무를 펼치듯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보면 어느 누구든 감탄하고 만다.
어린 순을 나물로도 이용하지만 유독성이므로 독성을 제거한 뒤 이용해야 한다.

물푸레 꽃과...

철쭉꽃이 물을 머금은 채 산꾼을 반긴다

코에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의 오르막길
숨이 멈춰 버리는 느낌이다...지난 3월말 티벳을 갔다오면서 고산병으로 고생을 하여
몸무게가 5kg나 줄은 탓인지 이런 곳에서는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 사이에 같이 온 산꾼들은 다들 도망(?)을 가고 산행을 끝날때까지 만나지 못했다

급경사의 오르막에 몇번을 쉬었다가 오르니 윤지미산 산 아래의 백두대간 능선에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 좌측으로 향한다

숭덕지맥 분기점(10:05)
얼마나 급경사에 힘이 들었던지 1.3km거리를 55분이나 걸렸다


백두대간 갈림길에서 5m정도 떨어져 있는 분기점(437.7m:10:05)
백두사랑 산악회에서 산패를 붙혀놨고 4등 삼각점이 있다.

437.7봉 삼각점(△관기420)

안부(10:10)

오르막길에서 뒤돌아 본 윤지미산의 모습
윤지미산(538m)은 상주시 내서면과 화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름이 특이하여
인터넷을 검색하여봐도 알 수가 없었는데 어느 대간꾼의 산행기를 보니 윤지미산의
정확한 시기와 유래를 알 수 없으나 언제부터인가 윤지미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일부설에 의하면 사서삼경의 대학편에 “윤집걸중(允執乞中)”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윤집걸중(允執乞中)이란 "인생전반을 다 안다, 세상을 포용한다,
세상을 두루 알아 맞힌다"라는 의미를 가진 산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다른 설은 예전에 백두대간이 있기전에 선배 산꾼들이 여수에서 경기도,강원도까지
산맥길을 이어가면서 걸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당시 윤지미라는 여성 산꾼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여성들이 맥 산행을 하지 않았던 터라, 남자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곳을 오르면서 하도 힘이 들어서 엉엉 울었는데 남성 산꾼들이 그 여성 산꾼의
이름을 따서 윤지미산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었다는데 범여는 솔직히 믿음이 가질 않는다

470봉(10:14)
분기점에서 안부를 지나 첫번째 봉우리를 힘들게 올라서니 그저 밋밋한 470봉이 나온다.
이곳에서 리딩을 맡고있는 먼저간 산동네 대장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보다 뒤쳐진 조여사님을 기다리는 사이에 나는 길을 떠난다

470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데 등로는 생각보다 유순하다

갈참나무 군락지를 지나는데 낙엽으로 인해 비가 약간 왔지만 먼지가 많아 목이 아프다

각시붓꽃의 요염한 자태를 바라보는 즐거움 또한 산행의 별미인지라...

잠깐 사이에 녹음이 상당히 푸르다

등로는 잘 보이지 않으나 여느 지맥처럼 잡목의 거추장스러움은 없다

435봉(10:24)

435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들의 흔적...참으로 반갑기만 하다

철쭉도 서서히 이별을 준비한다

안부(10:34)

다시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을 지나간다

보기가 그리 쉽지않은 하얀 철쭉도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310봉(10:45)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가느다란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안부(10:55)

오르막 좌측에는 멧돼지의 등쌀에 못이겨 호구지책으로 묘지 주변에 철조망으로 쳐놨다

274봉(10:58)

274봉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280.6봉(10:59)


280.6봉 삼각점(△상주402)
삼각점이 마모되어 인식할 수 없으나 국립지리원의 좌표에는 (상주402) 표기가 되어 있다

다시 274봉으로 돌아와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갈림길(11:03)
갈림길이 나오고 뚜렸한 우측길이 아닌 좌측으로 향한다

묘지(11:04)

엄나무순이 보이는데 너무 많이 피어버렸지만 잎은 부드러워 먹을수는 있겠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안부(11:08)

안부에서 올라서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 아래로...

25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25번 국도 상주시 내서면 낙서리쪽의 모습

25번국도(11:12)
상주시 내서면 낙서리와 서원리 밤원마을로 이어지는 곳에 있으며 우측으로는
룡화사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고, 도로 윗쪽으로는 영덕~당진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룡화사로 이어지는 도로

이곳에서 갈등은 시작된다
원래 지맥길은 우측의 아카시아 능선 사이로 올라가서 분기점에서 밤원고개로 내려서야
하는데 그러려면 고속도로 아래의 밤원고개로 통과...다시 고속도로 윗쪽 능선으로 올라야 한다
시간도 현재 나의 컨디션으로 30분이상 더 걸리지 않을까...그래도 산꾼이 원칙대로 가야지
같이가던 산동네님과 조여사님은 고속도로쪽으로 올라 가버리고 없다.
아카시아 숲을 헤치고 올라서니 등로에는 산으로님을 비롯한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나 역시 이곳을 언제 다시 올 일이 있겠냐 싶어 원칙대로 가고 있는데 산동네님의 전화가 온다.
그쪽이 맥길이 아니란다... 뭔 소리여 하니까 ...무조건 빨리 오라고 한다
맨꼴찌로 가는 주제에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내려오긴 했지만 아쉽기만 하다.

고속도로에 올라서서 오르지 못한 능선을 바라보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고속도로 갓길로 걸어간다

밤원고개(240m:11:20)
상주시 내서면 서원리 밤원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로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고개의 흔적도 없다.
지명은 밤원마을에서 따온듯 하며 밤원마을은 마을 터가 돌지내 형인데, 돌지내의 상극은
밤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속도로옆 시멘트 계단을 따라서 올라간다

절개지옆...

능선으로 올라간다

절개지 맨 윗쪽 봉우리에 올라서서 마루금으로 복귀를 한다

약초재배지를 조성하려는지 차양막이 처져있다

무명봉(11:35)
맨꼬래비로 같이가던 두 분도 가버리고 이젠 나혼자다
무명봉에 올라 좌측 능선으로 꺽어진다

낙엽속 능선으로 내려서니...

묘지(11:37)
생전에 주(酒:술)님을 즐기셨던 분인 모양이다...후손들이 묘지앞에 술병을 묻어놨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다시 무명봉으로 올라서는데 자꾸만 다리는 무거워지고 배는 고픈데
동료 산꾼들은 야속하게 도망을 가버렸으니 쉴 수도 없다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길...소머리산으로 오르는 길은 그리만만하지는 않다

당진~영덕간 고속도로 너머로 백두대간길의 백화산이 아련히 보인다

또 다시 오르막은 시작되고...

가르멜 여자 수도원 갈림길(430m:12:05)
정말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서니 ㅜ자형 갈림길이 나오는데 지도상에 좌측으로
아래 밤원마을과 가르멜 여자 수도원 으로 가는 길이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산으로님의 흔적을 지나니...

사람소리가 들리고 소머리산 코팅지가 보인다
나를 버리고(?) 도망을 간 산동네님과 조여사님이 식사중이시다
나도 여기서 베낭을 내리고 국에 밥을 말아 간단하게 식사를 끝낸다

소머리산(牛頭山:422.2m:12:15~35)
상주시 내서면 고곡리와 서만리, 서원리 경계에 있는 정상의 모양이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인증샷

소머리산에서 바라본 작약지맥 능선
속리산 아래 갈령삼거리에서 시작되는 작약지맥...아마 대궐터산쯤으로 보인다

다시 길을 나선다(12:35)

다시 내리막길...철쭉이 만발하고 있다.

멋진 소나무를 지나 급경사의 내리길로 내려간다

계속되는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가 나온다

임도(280m:12:48)
상주시 내서면 서원리 작은밤원마을에서 고곡리로 이어지는 임도이다.
고곡리(古谷里)는 산 속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혀진 지명으로 자연마을로는 고곡, 구이골, 둔덕이, 밤선골,
신건마, 주막뜸마을 등이 있는데 고곡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고곡리의 그것과 같다.
구이골마을은 고곡 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골짜기가 소의 구시(구유)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둔덕이마을은 옛날에 이곳에 군사가 주둔하였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밤선골마을은 옛날 이곳에 밤나무가
많았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신건마마을은 신촌리의 관터 근처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막뜸마을은 주막이 있던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소머리산에서 급경사로 내려온 만큼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가야 한다

무명봉(12:58)

급경사의 오름길

갈림봉(13:06)
좌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돌탑이 있는 능선을 지난다

400봉(13:12)

돌탑이 있는 정상에서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녹음이 푸른 등로에 공기가 맑아서 너무 좋다두발로 걸으면서 이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잔뜩 흐린 날씨이기는 하나 비가 올것 같지는 않을 모양이다
내일은 지난주에 5곳을 검사받은 받은 결과가 나온는 날이라 일찍 병원에가야 하는데 특별한 결과는 나오지 않겠지...
혹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나

무명봉(11:17)

급한 내리막길

안부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가니 3등삼각점이 있는 440.4봉이 나온다


440.4봉(13:28)


440.4봉 삼각점(△상주301)

???

내리막길은 완만하다

437봉(13:33)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노성지맥길에 처음뵌 바랑산님...잘 계시죠?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미끄러지 듯...

한참을 내려간다

안부(13:40)

희미한 등로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조금을 더 진행하니...또다른 갈림길이 나온다

380봉(13:50)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등로가 아예 보이지 않는 좌측으로 급하게 내려간다

등로가 없는 낙엽길을 한참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묵묘(13:52)

뫳선생이 마구 파헤친 등로

320봉(13:57)

320봉을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를 가로질러 우측으로 비스듬히 내려간다

y자 갈림길에서 또다시 우측으로 내려간다

이장을 한 듯한 묘터를 지나서 계속되는 내리막길

290봉(14:10)

낙엽이 수북한 등로로 내려서니 절개지가 나오고 장서방재로 내려간다

애기똥풀(꽃말:몰래주는 사랑)
애기똥풀은 줄기를 자르면 노란 액체가 뭉쳐 있는 것이 꼭 노란 애기똥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로는 셀런다인(Celandine)이라고 하는데, 이는 제비를 뜻하는데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비가
알에서 부화할 때 눈이 잘 뜨이지 않아 어미 제비가 애기똥풀의 노란 진액을 물어다 발라주어 눈을
뜨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속뜻은 ‘어머니가 몰래 주는 사랑’이다
애기똥풀은 전국의 산지는 물론 동네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두해살이풀로,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키는 30~70㎝ 정도 된다. 줄기는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속이 비어 있으며 분처럼 흰색을 띤다
잎은 어긋나며 길이는 7~14㎝, 폭은 5~10㎝이다. 잎의 끝이 둥글고 가장자리에는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5~8월에 황색으로 피며, 길이는 1.2㎝이고 줄기 옆에서 나온다. 꽃잎은 4장이며, 꽃봉오리 상태에서는
많은 털이 나 있고 꽃은 매미꽃이나 피나물과 흡사하며 모두 노랗고 작으며, 꽃잎이 네 장인 꽃이 핀다.
그러나 잎을 보면 구분할 수 있다. 열매는 9월경에 달리는데,길이는 3~4㎝, 지름이 2㎜ 정도의 좁은 원주형이다
양귀비과에 속하며 까치다리, 젖풀, 씨아똥이라고도 한다. 어린잎은 식용하며, 꽃을 포함한 잎과 줄기는
백굴채라고 해서 약용으로 쓰인다. 그러나 독성이 강하므로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동북부, 사할린, 몽골, 시베리아, 캄차카반도 등지에 분포한다

장서방재(240m:14:17)
상주시 내서면 서만리에서 고곡리로 이어지는 고개로 901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서만리에는 장서방이란 마을이 있는데 아마 그 마을에서 고개의 지명유래를 따온 듯 하다
내서면 서만리의 마을 지명유래를 찾아보니 장승+백이=장승백이 → 장서배이 → 장서바우.
‘-배기’는 ‘박+이’의 구조로 분석된다. ‘박아 놓은 것, 박혀 있는 곳’을 말한다.
장승을 세웠던 고개라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범여의 생각 中에서)

고개에서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선다

평산신공 묘지(14:25)
오늘 산행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V형으로 계속 오르내리는 빨래판 구간이라 상당히 힘이 든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산동네님이 주신 사과 한조각으로 원기를 보충한다

10분정도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오르막길로 오르는데 봉분이 망가진 묘지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 선 다음에...

다시 오르막길은 시작되고...

390봉(14:50)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푸르름이 머리를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듯 하다

게으름뱅이 진달래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 빡쎈 오르막이 시작된다

능선에 올라서니 채릉산 표지판이 보인다

채릉산(477m:15:15)
상주시 내서면 서만리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이 분도 지나가신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 싶다

맥길에서 늘상 자주 만나는 시그널

직진으로 내려서는 완만한 내리막길

멋있는 나무 한그루를 지나니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15:18)

조망바위에서 노음산을 바라보는데 그 아래에 있는 북장사는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노음산은 남장사와 북장사을 품고있는 상주 불교의 요람인 셈이다
북장사 일주문(사진 - 펌)
북장사의 창건 및 연혁은 『향승성책(鄕僧成冊)』, 『상주천주산북장사사적기(尙州天柱山北長寺事蹟記)』
등의 자료를 참고할 수 있는데 신라시대 진감국사 혜소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또 상주 군지에 의하면 장백사가 있던 옛 절터에 세웠다고 전한다.
지금의 북장사는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1624년(인조2) 당승 10여명이 들어와 다시 세웠으나
또 다시 소실되었는데 이는 풍수로 볼 때 절 남쪽에 화기가 가득한 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염수(鹽水)를 산꼭대기에 묻어 화기를 진압하였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쇠락하였고 명맥만 유지하다 최근 1999년 요사인 명월당을 짓고 극락보전도 화려한
단청을 하며 발전하고 있다. 경내에서 백자나 기와 조각이 나오고 군데군데 자연 주초석이 묻혀 있어
옛 절집의 규모를 알려 주고 있다
북장사 영산회괘불탱(尙州 北長寺 靈山會掛佛幀(보물 제1278호)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이 그림은 괘불에서 많이 그려지는 영산회상도로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숙종 14년(1688) 승려 화가인 학능 등이 그린 이 괘불은 길이 13.2m, 폭 8.07m이다.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당나라 승려가 찾아와 괘불을 그리겠다고 하면서 3일 동안 출입을 금하라고 했다.
한 승려가 궁금해서 엿보니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엿본 것을 알게 된 파랑새는
사라지고 가까이 가서 그림을 살펴보니 어깨부분이 미완성이었다고 한다.
본존불인 석가불이 중앙에 서 있고 여러 보살 등이 석가를 에워싼 형태인데, 석가의 얼굴표정은
약간 딱딱해 보이지만 둥근 얼굴과 조화로운 이목구비, 둥그런 어깨선의 균형잡힌 신체에서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원만한 느낌을 준다. 주로 홍색과 녹색을 사용하였고 중간색과 금색무늬는
화면을 경쾌하고 화려하게 해준다.
이 괘불은 치밀하고 정교한 필치로 신체의 표현이 분명하고, 밝고 선명한 색채로 나타낸 다양한
꽃무늬가 돋보이는 17세기 후반의 뛰어난 작품이다. 또한 신체 각부의 표현이 조화를 이루며,
채색을 밝고 선명하게 하여 괘불의 비교 자료로도 가치가 있다

물푸레꽃이 만발한 등로를 걷는다

완만한 능선으로 내려서니 등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좌측의 능선이 실하여 맥길처럼 보이나 우측으로 내려간다

잡목을 헤치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사람이나 나무나 사바세계에 산다는 자체가 苦인듯 싶다

예전에 산불이 났는지 불에 탄 나무들의 흔적이 보인다

368.9봉(15:28)
서레야님은 이곳을 작은 채릉산이라 해놨는데 전혀 믿음이 안간다


368.9봉 삼각점(△상주408)

좌측으로 꺽어져서 가니...

묘지지대가 나온다

전주이공 묘지(15:32)

묘비와 상석들이 한결같이 넘어져 있다

등로에서 바라본 상주시 외서면 백전리(栢田里)의 모습
백전리는 노음산을 뒤로 한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며 북동방향으로 하천이 흐르며 잣나무가 많은 곳이므로 백전리(柏田里)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백전, 병풍바웃골, 싱그미, 행상바웃골, 입석마을 등이 있다. 백전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백전리의 그것과 같으며 잣밭이라고도 불린다.
병풍바웃골마을은 병풍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싱그마마을은 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고, 행상바웃골마을은 상여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입석마을은 선돌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안부(15:35)

경주김공 묵묘(15:37)

묵묘를 지나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선다

노음산 분기봉(360m:15:42)

숲에 가려진 노음산(露陰山,725.4m)
상주시 남장동과 내서면, 외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갑장산, 천봉산과 더불어 상산 삼악의 하나로
일명 노악(露嶽)이라고도 하며 상주의 서쪽을 진호하는 산이다.
산세가 부드러운 산으로 상주시의 진산이다. 노음산은 영남 8경의 하나로, 고려 말에는 대 시인
조운흘(趙云?)이 이 산에 우거하여 명시를 남겼는가 하면, 보광전에 연해 있는 청천료(淸泉寮, 교남 강당)는
승려만이 아니라 상산 선비들의 문회, 시회의 공간이 되어 많은 시문을 탄생시키기도 한 곳이며 이 산에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유서깊은 두 사찰, 남장사와 북장사를 품고 있다.
830년 이전에 장백사(長栢寺 현, 南長寺 전신)가 있어 진감국사가 동국 최초로 범패를 보급한 곳이요,
남장사(南長寺)에는 불교문화의 귀한 보물이 많다. 보광전에 안치된 철조 비로자나불(보물 990호)과
철불 좌상의 후불탱인 보광전 목각탱(보물 922호)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한국 最古의
목각불탱인 관음선원(觀音禪院) 목각탱(보물 923호)등은 불교예술의 걸작품들이라 하겠다.
또한 노음산의 서편 북장사(北長寺)뒷산을 천주산(天柱山)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도 북장사 상련암
등의 많은 사찰이 있었다.
북장사의 창건 연대는 남장사와 비슷하리라 추정된다. 이곳에는 파랑새(중국승)가 그렸다는 화법이 절묘한
보물괘불이 있고, 조선 후기의 석학 식산 선생(息山先生)의 문집 목판을 보관하고 있다
남장사 일주문(사진 - 펌)
상주 4장사(남장사,북장사, 갑장사, 승장사) 중 하나인 남장사는 신라 흥덕왕 5년 진감국사께서 개산하시어
장백사란 절을 지었는데 고려 명종 때 각원화상께서 현재의 남장사로 절을 옮기었다고 한다
남장사 일주문은 조선 후기 건축수법과 조각기법이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 및 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추녀 밑에 ‘해강(海岡)’(김규진)의 글씨로 ‘노악산 남장사(露嶽山南長寺)’란 해서 편액은 광저(光緖) 8년
(1882년, 고종 19)이라 기록되어 있다.
예전에 남장사 주지 스님으로 계셨던 성웅 큰 스님이 동국대 불교대학원 총동창회장을 역임하셨다.
그 당시 나는 기 회장으로 큰 스님을 가끔 친견하곤 했다.
큰 스님께서 교구본사인 김천 직지사 주지로 재직하실때 물심양면으로 동창회를 많이 도와주셨고,
큰 스님의 상좌이신 종오스님은 동국대 정각원장을 역임하셨고 모임을 같이하여 자주 뵈었다
8년동안 직지사 주지 소임을 끝내고 지금은 남장사 회주로 계시면서 상주사회복지관 등을 운영하면서
상주지역 발전을 이끌고 있는 큰 스님인데 벌써 뵌 지가 10년이 지나버렸구나
남장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990호)...사진 펌
나옹화상이 14세기에 조성했다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990호)이 모셔져 있는데
이 불상은 높이가 1.33m로 등신대에 가까운 좌상이라 한다
이 비로자나불의 후불탱인 목각후불탱은 1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물 제9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채릉산을 지나면서부터 초반과는 달리 등로가 완만해진 바람에 조금은 수월하다

못 생긴 나무들이 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갈림길(15:55)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뚜렸한 직진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숲속으로 들어서는데 등로는 아예 없고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이곳부터는 내서면에서 벗어나 외서면으로 들어선다

등로는 아예없고 조금을 올라간 후에 우측으로 꺽어진다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이고 잘 보이지 않는 등로로 300여m 정도 올라가니 474.8봉이 나온다

474.8봉(16:15)
정상에는 휴식하기 편안한 암릉이 있지만 숲에 가려 전망은 별로이다
동남쪽만 전망이 트여 상주시 외서면 지역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474.8봉에서 바라본 오태저수지
바로 앞의 산 가운데는 황토밭처럼 보이는 것이 태양광 시설을 하려고 산을 밀어 버렸다
원전을 폐기하고 재생 에너지를 생산하겠다고 이 산하를 저렇게 망가뜨리는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연 잘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가래떡 하나로 원기를 보충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474.8봉을 내려와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서 날머리인 우산재 방향으로 향한다

지나온 채릉산이 보이고 동북쪽으로는 속리산 갈령 삼거리 윗쪽에 있는 형제봉이 보인다

이안천의 물굽이가 보이고 그 너머로 대간길의 형제봉과 갈령 우측의 작약지맥 대궐터산이 아련히 보인다

450봉(16:40)

등로가 조금씩 거칠어지면서 지맥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물과 사람은 건너고 격어봐야 안다
자연은 神이 만든 위대한 책이다.
거기에는 허위가 없다.
흘러가는 물, 뜨거운 태양
총총히 깔린 별
파릇파릇한 새싹
아름다운 꽃 , 망망한 바다
조그만 돌멩이
자연은
그 어느 아름다움이
아닌 것이 없고
조화 아닌 것이 없다.
산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거짓이 없고
교만이 없고 속임수가 없다.
인간이
자연을 대할 때
기쁨과 일종의
구원을 느끼는 것은
자연의 진실 때문이다

우리는 한자로 위(爲)라고 한다
위(爲)란 인간의
행위란 뜻이다
인과 위가 합한 말이다.
인간의 행위에는 거짓이 많다
가식이 있고 교활이 있고
속임수가 있고 교만이 있고
배신이 있다.
우리 속담에
“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격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믿을 수 없음을
나타내는 명언이다
인간은 인간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지만
자연은 절대 속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순수함
거기에 반해 매주 이렇게 산에 오르는
범여는 어쩌면 행복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안부(16:45)

안부를 지나면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조망바위(14:48)

이안천 너머로 백두대간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범여의 짧은 다리로 지리산에서 진부령으로 이어지는 저 백두대간 능선
3번이나 오르 내렸으니... 걸을 수 있다는 그 자체는 만으로도 난 선택받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477.9봉(16:50)
숭덕(병성)지맥 능선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정상에는 앙증맞은 돌탑 하나와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오늘의 힘든 구간은 거의 끝난 느낌이다...편안한 내림막길이 시작된다

무명봉(16:54)
하얀 끈이 계속 보이는데 송이 채취지역의 표시이다

능선을 따라간다

우산리 갈림길(17:04)
좌측으로 뚜렸한 내리막 등로가 보이는데 외서면 우산리로 가는 길이다.
직진으로 맥길이 이어지는데 출입금지 플랑카드가 걸려있다.
우산리(愚山里)에는 우복 정경세(1563~1633) 선생이 1602년 대산루를 짓고 1603년 별서 기능을
가진 계정을 지었으며 그의 고손자인 주원(1563~1633)은 영조가 하사한 우복종택과 우복 정경세의
6대손인 정재로가 주거용으로 건축한 한식 목조 기와집인 병암고택이 있는 곳이다

가지 말라고 해놨지만 나는 가야한다...아직 송이가 나오지 않으니까

송이가 나오는 민감한 시기에는 산행이 좀 힘들듯 싶다

송이철에는 이곳에서 기거를 하는 모양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상주시 외서면(外西面)의 모습
상주시의 중앙 서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은 북문동·사벌면, 서쪽은 화서면, 남쪽은 내서면,
북쪽은 은척면· 공검면에 접해 있는데 대부분이 산지 지역으로 면 가운데를 동쪽으로 흐르는 외서천
동단에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북쪽으로 흐르는 이안천 연변에도 좁고 기다란 평지가 나타난다.
병암고택(도 문화재자료 제130호)·대산루 부 계정(도 유형문화재 제156호)·우복종가(도 민속문화재 제31호)·
연봉리 고분군 등이 있는데 현재 면 소재지인 가곡리를 비롯하여 봉강리·관현리·우산리 등 12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본래 조선시대 상주목 외서면(外西面) 지역으로 '외서' 지명은 읍내 서쪽 외곽 지역이 되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여지도서』(상주)에 "외서면은 관문으로부터 30리 떨어져 있다."라고 하였고,
『호구총수』(상주)에도 외서면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와 『청구도』에도 외서면이 표기되어 있다.
1914년 외서면을 중심으로 내서면, 함창군 남면과 수상면의 여러 동리를 합쳐 외서면으로 하여 13개
동리를 관할하게 하였으며 1986년 남적리가 상주시에 편입되면서 현재의 12개 리가 되어 상주군에
속하였고, 1995년 상주시에 속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약초채취꾼들이 버려진 팻트병이 흉물스럽다...좌측으로 내려선다

암릉길을 만나고...

암봉(17:15)

암봉에서 바라본 외서면 가곡리 오가실 마을의 모습
가곡리의 중심에 있는 마을로 산과 산 사이의 좁은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소규모의 경지가 분포하여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서 오목하게 되었으므로 오가실마을이라 부른다

뒤돌아 본 노음산의 모습

391.4봉(17:20)

계속되는 완만한 내리막길

지맥길 졸업하고 뭔 재미로 뭔 재미로 사실까?

갈림길(17:26)

마지막 봉우리에 올랐다가 내려서니...

청색 물탱크가 보이고 도로로 내려선다

옛 영화(榮華)를 잊어버린 997번 지방도로 외서면 가곡리에서 우산리로 넘어가는 997번 지방도로
우산재 아래로 뚫린 우산재 터널로 인해 도로 역할이 끝나고 양봉업자의 삶의 터전으로 바뀌어 버렸다

먼저 도망간(?) 동료 산꾼들이 우릴 기다린다

우산재(愚山峙:230m:17:40)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와 관현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997번 지방도로가 지나갔으나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우산재 터널이 개통되면서 지금은 산꾼들이나 찾는 한적한 고개이다
갈령(葛嶺) 이라고도 불렀던 고개인대 우산리 마을위에 있는 고개라 하여 붙혀진 지명이다
우산(愚山)마을은 선조 때 학자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선생의 우복종택이 있는 곳이다
우복종택(牛腹宗宅) 대산루(對山樓)의 모습...사진 모셔옴
우복(牛腹) 정경세(鄭經世:1563~1633)의 고택인 우복종택의 대산루(對山樓)는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단층에 연결한 2층 누각의 T자형으로 유명하며, 정경세가 독서, 강학 및 책을 보관하던 곳이다.
우복동천(牛腹洞天)이라 할만큼 멋진 곳으로 우리나라 십승지중에 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동천이란 하늘에 잇닿는 땅, 신선이 사는 곳, 별천지, 仙景의 뜻이 있으며, 중국의 백석산에
흰 돌이 많고 아름다운 데서 유래하며 육동천(六洞天)이란 백석동천(白石洞天)은 북한산에,
청계동천은 세검정에, 수락동천은 수락산에 있으며, 최초의 동천(646년)인 자장동천이 통도사 주변에,
화개동천이 화개사 주변에, 적벽동천이 화순에 있다.
정경세(鄭經世:1563~1633)는 조선조 선조때 예조판서,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학자로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제자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임(景任), 호는 우복(愚伏)이다
정경세는 도학(道學)이 정몽주(鄭夢周)에서 시작되어 이황(李滉)에게서 집성되었으며,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이언적(李彦迪) 같은 여러 현인들이 나와 정학(正學)으로 더욱 깊이 연구하여 왕성한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정경세는 영남의 상부에 위치하고 있는 상주에 서원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하고, 유생을
설득하여 도남서원(道南書院)을 창건하였으며, 이곳에 오현(五賢)을 종사(從祀)하였다
정경세는 경전에 밝았으며, 특히 예학에 조예가 깊었다.
제자로는 전명룡(全命龍)·신석번(申碩蕃)·강진룡(姜震龍)·황뉴(黃紐)·홍호(洪鎬) 등이 있다.
저서로는 『우복집(愚伏集)』·『상례참고(喪禮參考)』가 있다.

우산재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외서면 소재지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러 갔는데
맛대가리도 없는 식당에 서빙하는 여편네들...왜 그리 싸가지가 없는지...
서비스 정신은 전당포에 팔아 먹은 듯...그래도 장사가 되는 모양이다
밥을 먹는둥 마는둥...상당히 불쾌하다
이보시게 쥔장...장사란 흥하고 망하는 건 찰나일세...客이 있을때 잘하소
'병성(숭덕)지맥)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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