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9년 05월 22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14.7km + 어프로치 0.7km / 7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우산재-조망바위-310봉-안부-407.9봉-머티마을 갈림길-샛마마을 갈림길
447.9봉-갈림길-449.3봉-암봉-너럭바위-고붓재-순흥안공 묘-범산갈림길
358,1봉-안부-고붓태 갈림길-279봉-안부-갈림길-오봉산 갈림길-오봉산
다시 오봉산 갈림길-안부-쉼터-갈림길-무명봉-무명봉-쉼터-오태리 갈림길
233봉-254.2봉-무명봉-비지재-묘지-239봉-안부-국사봉-안부-314.4봉
덕천재-유인 경주최씨 묘-이동통신탑-시멘트 도로-무명봉-임도-무명봉
218봉-안부-숭덕산-무명봉-안부-204.2봉-갈림길-장판이재-경주최공 묘
민가-역곡 건널목-3번국도-성심원 버스 정류장
☞ 소 재 지: 경북 상주시 외서면, 은척면, 공검면, 이안면
지난 일요일(19일)에 나홀로 숭덕(병성)지맥을 기기위해 선릉역에 도착했는데
지하철 2호선 첫 차가 05시 47분이다... 강변역에 도착하여 불알에 요령소리 나도록
뛰어가 표를 예매하고는 탑승구에 도착하니 차는 30초전에 출발하여 버렸다.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고 김이 세는 이 느낌...참으로 허탈하다 .
상주로 가는 다음 차는 07시 10분... 표를 예매하고 대합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이제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상주쪽의 날씨를 검색해 보니 오후 3시부터 비가 온다고
나오는게 아닌가...현재의 내 컨디션으로는 오후 3시까지 산행을 마칠 자신이 없다.
그리고 아직까지 감기에 의한 합병증을 조심하라는 주치의 권고에 따라 우중 산행은 안한다
그래 오늘만 날인가...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집으로 향한다
각설(却說)하고 일요일에 산엘 가지 않았던 탓인지 주중내내 몸이 무겁고 몸살이 날 지경이다.
산에나 갔다와야지 생각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베낭을 챙기고는
가족들 몰래 도둑고양이처럼 집을나와 택시를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오늘은 너무 일찍 출발했는지 터미널에 도착하니 05시 20분이다
터미널 내의 식당에는 아무데도 문을 열지않아 터미널 밖의 포장마차에서 김밥 한줄에
가락국수로 아침을 해결하고 06시 정각에 상주로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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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
동서울발 →상주행 버스표
정확한 시간에 버스는 출발하여 중부내륙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버스는 점촌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손님이라곤 달랑 4명인데 이곳에서 2명이 내리고 2명만 상주로 향한다
상주터미널(08:30)
터미널을 나와서 택시를 타고 우산재로 향한다(17,800원)
우산재 가는길
상주시 외서면에서 은척면으로 향하는 997번 지방도가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서 넘어가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그 옛길을 그대로 두고 아랫쪽에 우산재 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잊혀진 길이 되어 버렀다.
한달전 1구간때는 고개 정상까지 버스가 갔었는데 오늘은 뭔 공사를 하는지 포크레인이 길을 막고 있어
입구에서 내려 0.7km를 걸어서 우산재 정상으로 향한다
정신나간 넘
가을에 피어야 할 넘이 여름되 되기전에 피어 버렸구나.
하기사 인간들도 정신줄 놓은 넘이 한 둘이 아닌데 어찌 너를 탓하랴
우산재(愚山峙:230m:09:05)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와 가곡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997번 지방도로가 지나갔으나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우산재 터널이 개통되면서 지금은 산꾼들이나 찾는 한적한 고개이다
갈령(葛嶺) 이라고도 불렀던 고개인대 우산리 마을위에 있는 고개라 하여 붙혀진 지명이다
우산(愚山)마을은 선조 때 학자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선생의 우복종택이 있는 곳이다
우산재 표시석 뒷면에 이곳을 갈령(葛嶺)이라고 표기를 해놨다.
백두대간이나 정맥, 지맥길을 타다가 보면 갈령(葛嶺)이란 지명을 흔치않게 만난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속리산 아래에도 갈령이 있고...
갈령이란 지명을 한문화하면서 ‘칡 갈(葛)’를 써 고개에 칡이 많이나서 붙인 지명이라 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고, 순 우리말로 ‘가르다’ 즉 물을 가르는 분수령을 말한다 .
우산재의 옛 지명은 갈령 말고도 머티재라고 했는데《‘산’의 옛말은 ‘뫼’이다. 뫼는 ‘:1’이 뿌리 말이다.
‘:2’은 지금의 ‘말’과 ‘몰’의 중간음 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머티재’는 ‘:3(산)의 재’,
즉 ‘산을 넘는 재’일 수도 있으며 또 ‘머 티’의 ‘머’는 ‘:4:5(宗), ’마리‘, ’머리(頭)‘,’머디(首, 頭)‘와
같은 표기로도 보이며, 속리산의 ’말티재‘도 같은 뜻일 것이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바람도 간간히 불어주어 산행하기는 아주 좋은 날씨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9:08)
숲속으로 들어서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초반부터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숨이 꽉 막히는 느낌이다
능선에 올라서니 송이 채취 구역임을 알리는 하얀 노끈줄이 보인다
조망바위(09:18)
숭덕(병성)지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지나온 477.9봉도 바라보고...
이안천(利安川) 너머로 백두대간 속리산 아래 형제봉에서 시작되는 작약(이안)지맥 능선이 보인다.
이안천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 갈령에서 발원하여 외서면, 은척면, 이안면을 지나 함창읍
금곡리에서 영강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으로낙동강 수계의 지방하천으로 낙동강의 제 1지류이며, 영강의
제 1지류로 하천의 수계는 본류인 이안천과 지류인 대중천, 시암천, 지평천, 지산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천연장은 38.5km, 유로연장 52.6km, 유역면적 241.21㎢이다.
하천의 이름은 이안부곡(利安部谷)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하천 유역의 모양은 새의 깃과 같은 모양인 우상으로,
본류의 좌안으로 지류가 합류한다. 유역 내 농경지는 영강과 접하는 하류부 일부 구간 및 은척면의 황령지
관개구역 외에는 하천변을 따라 좁게 존재하고 있다. 하천의 하상경사는 약 1/650~1/210 정도로 비교적
급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310봉(09:20)
310봉에서 바라본 상주시 외서면 관현리의 모습
관현리(官峴里)는 자연마을로는 곡실, 웃곡실, 최촌, 장터, 대평마을 등이 있다.
곡실마을은 관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고, 웃곡실마을은 곡실 위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최촌마을은 최씨가 이룩한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장터마을은 백원장이 섰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대평마을은 큰 들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숲이 우거져 그저 밋밋한 310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바랑산님의 시그널이 보인다
지맥길이긴 하지만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철쭉도 지고 잎만 무성하니 봄날이 가는구나...능선에 불어오는 바람이 세차니 옷깃을 여민다
少年王子不時着(소년왕자불시착): 어린 왕자 불시착한 곳
春來春去湖水渴(춘래춘거호수갈): 봄 오고 봄 가니 호수 목마르다
水退泥田無主靴(수퇴니전무주화): 물빠진 진흙바닥 임자 잃은 구두 한 짝
無雙鶬孤黃白髮(무쌍창고황백발): 짝 없는 왜가리 외롭고 노란 민들레 백발로 비천을 기다린다
안부를 찍고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백작약(白芍藥:부끄러움)
작약의 한 품종으로 전국의 산지에 분포하다. 6월에 백색으로 피는 꽃을 보기 위해 관상용으로도 재배한다.
덩이뿌리를 가지며 한방에서 귀중한 약재로 사용하며 약성은 차고 신맛과 쓴맛이 난다.
위장염과 위장의 경련성동통에 진통효과가 있고, 소화장애로 인한 복통·설사·복명이 있을 때 효능이 있다.
민간에서는 빈혈에 주로 사용한다. 대표적인 처방으로는 작약감초탕이 있다
오르막길에는 벌목을 했는지 작은 잡목만 무성하다
안부(09:45)
올해 처음으로 만난 백선(꽃말:방어)
향기가 뛰어나고 꽃도 예쁜 백선은 우리나라 각처의 산록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반그늘
혹은 햇볕이 잘 드는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키는 60~80㎝가량이고, 잎은 깃꼴겹잎으로 타원형이다.
깃꼴겹잎이란 잎자루의 양쪽에 작은 잎이 새의 깃 모양을 이룬 복엽을 말한다.
잎의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고 표면에 투명한 선점이 있다
407.9봉(09:48)
407.9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머티마을 갈림길(09:50)
머티마을 이정표
상주시 외서면 가곡리 버럼배미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머티재(우산재)의 동쪽 아래에 있다.
1586년 해주 오씨 오도학(吳道學)이라는 이가 처음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둑(堤) 밑에 마을이 있고, 들이 벌어졌다고 하여 벌티라고 불렀는데 차츰 변하여 멀티가 되었다고 한다.
1610년 경 김창조(金昌祚)라는 선비가 나하(羅下)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
등로 나뭇가지사이로 바라본 은척면 봉상리 소파우봉의 모습
호젓하게 혼자걷는 이 맛...안 걸어본 사람들은 모르제
多福한 신갈나무
이곳은 소나무가 많으나 松花가루가 전혀없어 걷기가 아주 편하다
샛마마을 갈림길(10:00)
외서면 관현리 곡중과 곡하의 중간에 새로 이룩된 마을인데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이다
447.9봉(10:05)
정상에는 3등 삼각점과 벤취가 있다
447.9봉 정상 삼각점(△상주302)
아무도 찾지않은 듯한 벤취
내리막 등로는 상당히 희미하다
갈림길(10:10)
449.3봉(10:12)
오늘 산행구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데 그저 밋밋한 봉우리이다
완만한 내리막길... 상주사람들의 인심만큼이나 등로는 유순하다
아주 편안하게 속력을 좀 내본다
너럭바위도 만나고...
간간히 벤취도 보인다
암봉(10:20)
암봉에서 바라본 희양산의 모습
저 희양산 아래에는 1년에 산문을 한번밖에(초파일) 열지 않는 수행도량 봉암사가 있는 곳이다
그 반대편에는 대간산꾼 호주머니 터는 은티마을 산장 여시(여우)아지매는 잘 있는지 모르겠다.
지맥길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범산도 보인다
너럭바위(10:22)
너럭바위를 내려서니 벤취 2개와 안내판이 있는 고붓재가 나온다
고붓재에 있는 이정표
고붓재(10:24)
상주시 외서면 관현리 고붓태 마을에서 은척면 하흘리로 넘어 가는 고개로 1780년 경 한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갔는데, 오랜 기간 동안 선비가 돌아오지 않자 이 선비의 어머니와 아내가 선비를 기다리다가
이 고개에서 죽었다고 하여, 고붓재라고 한다고 한다.
《‘고붓재’는 ‘고부(姑婦) 재’의 변음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높은(큰) 산에 있는 재’라는 뜻으로 보인다.
‘고(姑, 높은 산)+붇(山)+재(峴)=고붇재→고붓재→고부 재. ’고(姑)‘는 ’한 뫼(큰 산)‘를 ’할미‘로 보고 취한 한자이다.
‘붇→불. 붇→붓. 붇→북’으로 ‘산(山)’의 뜻인 ‘붇’일 수도 있다
고붓재 전설이 적혀있는 안내판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
앙증맞은 바위도 등로에서 만난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은척면(銀尺面)의 모습
은척면의 지명유래는 금척과 은척 설화 속에 내려온다...먼 날에 사람을 살리는 자(尺)가 2개 있는데
하나는 금으로 만든 금척(金尺)이고 하나는 은으로 만든 은척(銀尺)이다.백성들이 금자(금척)나
은자(은척)에 키를 재고 나면 죽지 않고 오래살 수 있으며, 죽은 사람도 살아났다고 한다.
해마다 인구가 늘어나고 식량이 부족해지자 왕이 금자는 경주 건천읍 금척리 금자산에,
은자는 상주 은척면 은자산에 묻었다고 한다
경주시와 상주시는 금척은척(金尺銀尺) 설화와 경상도 지명도 함께 한다.
경상도의 지명 ‘경상(慶尙)’은 경주의 ‘경(慶)’자와 상주의 ‘상(尙)’자를 딴 두 머리글자에서 유래한다.
은척출신의 대표적 인물은 동아제약을 창업한 강신호 회장이 은척면 출신이다
순흥안공 묘(10:29)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 넓은 공터를 지난다
못생긴 소나무숲을 지난다
범산 갈림길(10:38)
범산은 직진으로 뚜렸한 오르막길로 향하고 지맥길을 우측의 4시 방향으로 향한다.
상주시 은척면 하흘리와 외서면 관현리 공검면 중소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번+산(山)=번 산→범 산’으로 짐작되는데, ‘번’은 ‘뻗은(벋은)’의 뜻이다. 호명동 뒷산 줄기가
이안천으로 뻗어 나와 이안천이 마을 앞인 북쪽을 휘돌아 나가기 때문이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니 별 특징이 없는 산이라 하여 범산을 가지않고 그냥 지맥길을 따른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등로는 거의 보이질 않는다
등로가 없는 곳을 내려서니 관리가 안된 묘지가 보인다
약간의 오르막길로 올라서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조그만 계곡이 보인다
능선에 올라 우측으로 꺽어지니 커다란 데크목 전망대가 있는 358.1봉이 나온다
358.1봉(10:54)
358.1봉 정상에 있는 데크목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삼백(三白)의 고장 상주의 모습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하여 쌀·곶감·명주가 유명한데
특히 곶감은 전국 곶감 생산량의 60%이상을 차지하는 상주시 대표 농산물이다.
삼한시대에는 상주시 지역에 사벌국(沙伐國:또는 沙伐梁國, 沙弗國)이라는 소국이 있었다.
그후 3세기 중엽에는 신라의 세력권에 들어 사벌주·상주(上州)·상주(尙州) 등 신라의 행정구역이 설치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상주(尙州)가 설치되어, 1주(州), 10군(郡), 3현(縣)을 관할했다.
고려시대에는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상주목(尙州牧)·귀덕군절도사(歸德郡節度使)·안동대도호부 등으로
개칭되었다가 1018년(현종 9) 전국에 8곳의 목을 설치할 때 상주목이 되었다.
당시 상주목은 7개의 속군(屬郡)과 18개의 속현(屬縣)을 거느린 대읍이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1392년(태조 1)에 경주로부터 관찰사영이 상주로 옮겨와 경상도의 정치·행정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임진왜란중인 1596년(선조 29)에 관찰사영은 경상도의 중앙에 위치한 대구로 옮겨갔다.
상주의 별호는 상락(上洛)·상산(商山)·타아 였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1등 군(郡)이 되어
안동부에 소속되었으며, 1896년에 도제가 실시되어 경상북도에 소속되었다.
등로에서 바라본 외서면 관현리(官峴里)의 모습
관현리는 자연마을로는 곡실, 웃곡실, 최촌, 장터, 대평마을 등이 있는데, 곡실마을은 관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고, 웃곡실마을은 곡실 위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최촌마을은 최씨가 이룩한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장터마을은 백원장이 섰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대평마을은 큰 들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로프가 처져있는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우측의 암릉에는 부처손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부처손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암릉
안내판에는 바위손이라고 해놨다
안부(11:05)
완만한 능선인데도 로프가 처져있다
이 구간에 산으로님의 띠지가 많이 보이네...주머니 사정이 좋았을때였나?
고붓태 마을 갈림길(11:10)
외서면 관현리 고붓재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279봉(11:15)
왈츠를 추는 소나무
안부(11:23)
갈림길(11:24)
우측의 오르막길로 향한다
급경사의 오르막길에는 로프가 처져있다
좌측으로 로프가 처져있는 곳이 지맥길이고 직진은 오봉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오봉산 갈림길 이정표(11:30)
이곳에서 0.4km 떨어져 있는 오봉산으로 향한다
능선에 올라서니 벤취 2개가 있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다
점심이라 해봐야 가져온 잡채에다가 식혜로 점심을 해결한다(11:35~50)
오봉산 가는 길
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니...
오봉산 정상이 나온다
오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오태저수지의 모습
저수지 너머로 공검지가 있다마는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오태 저수지는 1952년 3월 30일 착공하여 1959년 5월 31일 준공하였으며 저수지의 제방은 흙으로
쌓아 올려 만든 흙댐으로 길이 680m, 높이 13.5m이다. 유역면적은 1만 5,040ha, 홍수면적은 110ha이고
총 저수량은 521만 2,000톤이다. 슈트식 여수로(餘水路) 방식으로 설계되었으며 하류천은 동천이다.
주변에 농업용수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낚시터로도 많이 이용된다.
상주 공갈못 지도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에 있는 저수지인 공검지(공갈못)은 제천 의림지와 김제 벽골제 등과 같은 시대인
삼한시대에 수축된 저수지로 역대 여러 차례의 보수를 하였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길이 없고, 다만 고려 명종 때
최 정빈이란 분이 고쳐 쌓았는데 못 둑의 길이가 8백 6십 보이고, 못 주위의 길이가 1만 6천 6백 4십 칠척이라
상산지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못에 물이 차면 수심이 다섯 길이나 되었고, 서쪽 못 가로는 연꽃이 만발하는데
그 절경을 중국의 전당호에 비길 정도라 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못의 얼음 어는 것을 보고 흉년, 풍년을 예측하였다고 한다.
또 정월 열나흗날 밤, 소들이 땀을 흘리는데 그것은 밤을 이용하여 소들이 못에 얼음을 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또 경주 용담의 암용이 공갈못 숫용에게 시집온 이야기도 있다.
또 볶은 콩 서되를 하나씩 먹으면서 말을 타고 못 가를 돌아도 콩이 모자란다는 말도 있다.
속설에 "저승에 가도 공갈못을 구경하지 못한 사람은 이승으로 되돌려 보낸다"고 하였다.
함창 읍지에는 이 못의 서반에는 몇 리에 걸쳐 연꽃이 피어 있으며 마치 중국의 전당호를 방불케 하는
풍취를 지녔다고 하여 그 아름다움과 연꽃의 풍광을 말하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옛부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옥같은 글을 남기어 그 아름다운 풍광을 연상케 하여 준다.
이 못의 이름이 공갈못이라 부르게 된 것은 못 둑을 쌓을 때
"공갈"이라는 아이를 묻었다는 매아설화에 의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향민들은 이 못을 신비롭고 영험스러운 영지로 신앙하여 왔다.
공갈못 노래비...사진 펌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에 있는 고령가야시대에 축조된 공갈못에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전해온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줄게, 이 내 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가오.
상주함창 골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아가
연밥 줄밥 내 따줌세, 백년언약 맺어다오.
백년언약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진다.
이 노래는 「상주 함창 공갈못 노래」라는 농요인데, 이 못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얽혀 있다.
옛날 상주에 사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경주에 다녀오던 길에 한 여인을 만나 같이 걷게 되었다.
여인의 용모가 몹시도 우아하고 황홀할 만큼 아름다워서 그는 오히려 불길함과 두려움을 느꼈다.
대구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어 독명원(犢鳴院)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날 밤 여인이 밖에 나갔다가 갑자기 물동이를 이고 들어오더니 방바닥에 물을 쏟고 황룡(黃龍)으로
변하였다가 다시 사람으로 변하였다. 깜짝 놀란 김씨에게 여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는 경주 용담의 용녀로, 지금 상주 공갈못에 있는 수컷 용에게 출가를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 못에는 또 한 마리의 용이 있어서 저의 출가를 방해하고 있사오니 저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김씨가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는지를 묻자, 용녀는 “제가 그 못에 도착하면 용 세 마리가 서로 싸우고 있을 터인데
청룡은 제 남편이고, 제가 황룡이고, 백룡은 저를 방해하는 용이오니 백룡의 목을 쳐주시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김씨가 여인과 약속한 시간에 상주 공갈못에 도착하였더니 과연 용 세 마리가 어울려 싸우고 있었다.
그는 준비해간 칼을 뽑아 백룡을 내려치려고 하였으나 너무 당황한 나머지 청룡의 허리를 자르고 말았다.
그때 물속에 들어갔던 황룡이 나와 이 광경을 보고 매우 슬퍼하며 “당신은 나를 과부로 만들었으니
영원히 나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김씨는 어쩔 수 없이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나 하고 오겠다고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이튿날 죽고 말았다.
김씨의 죽음을 지켜본 한 무당이 이것은 필시 용신의 장난이라고 하니 그의 가족들은 시체를 가지고
공갈못가에 제단을 쌓은 후 무당으로 하여금 빌게 하였다. 그러자 못 속에서 황룡이 나와 기다렸다는 듯이
김씨의 시체를 안고 못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뒤부터 이 지방 사람들은 얼음이 얼면 용이 얼음 위에 밭갈이를 한다고 여겼는데 공갈못의 물이 어는
모양을 보고 이듬해의 풍흉을 점쳤다. 정월 열나흗날 밤에는 인근의 모든 소들이 겨울인데도 땀을 흘렸다는데,
그것은 밤을 틈타 소들이 못에 언 얼음을 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봉산(五峰山:310.7m:12:00)
상주시 외서면 관현리와 공검면 오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바로 앞에 있는 오태저수지가 시원스레 보인다
고붓태 마을 동쪽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봉우리가 5개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다시 오봉산 갈림길(12:10)
로프가 처진곳을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2:12)
다시 등로는 무쟈게 좋아진다
쉼터(12:17)
갈림길(12:18)
무명봉(12:21)
쉼터(12:22)
오태리(五台里) 갈림길(12:23)
상주시 공검면에 있는 오태리는 1960년에 오태 저수지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수몰 지구가 되었으며,
지금은 낚시터로 유명한데 자연마을로는 개골, 용머리, 무리까, 오태 등이 있으며, 오태라는 명칭은
마을 뒷산이 다섯 봉우리로 되어 있고 다섯 정승이 태어났다하여 붙여졌다.
마을에 접해 있는 산의 모양이 용머리 형국이라 하여 용머리라 칭하였으며, 마을들이 못가에 위치하였다
하여 물가라 부른 것이 와전되어 무리까라고 전해진다.
오태리 갈림길에서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는 좌측의 사면길로 이어지고 맥길은 직진으로 향한다
희미한 등로를 치고 올라서니...맥꾼들이 좌측길로 가는지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233봉(12:28)
좌측 능선을 타고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뚜렸한 등로를 다시 만난다.
아카시아 꽃비가 내리는 등로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름길
254.2봉(12:40)
좁은 능선을 따라서 걷는다
무명봉(12:43)
뚜렸한 능선을 따라서 가다가...
직진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고사목을 지나니...
강한 찔레꽃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비지재로 내려간다
비지재(166m:12:50)
상주시 공검면 병암리에서 중소리 웃등거매로 가는 고개로 원병암에서 북서쪽에 있다.
비조재(飛鳥峙) 또는 비재고개 라고도 하는데 2차선 포장도로로 골짜기의 논경지에 있는 옹달샘은
언제나 마르지 않아 극심한 한해에도 벼농사를 짓는 옥답으로 이름이 나 있고, 10여년 전부터 마을 주민이
사용하는 상수도 수원지가 되고 있다.《비(斜)+지(支)+재(峴)=비지 재. ‘벼랑’과 ‘비탈’에 관련된 말이다.
‘벼랑’은 ‘머리, 산(山)’의 뜻인 ‘?? 받’에서 나온 말이고, ‘비탈’은 ‘빗(비)+달(地)’로 ‘빗’은 ‘??받=山, 頭)’에서
나온 말로 보는데 벼랑 중에서도 물 가의 위험스러운 곳을 상주지역에서는 ‘비루’라고 했다.
‘비탈’과 ‘비루’를 땅이름에서 한자로 옮길 때 ‘비(比, 飛, 琵)’를 썼는데, 특히 ‘비(飛)’가 많이 쓰였다.
이곳에서 선 채로 휴식을 취하는데 길가의 전봇대에서 통신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평일날 홀로 산에서 내려오니 공사를 하다가 말고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묘지(12:57)
또다른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좌측 아랫쪽에는 태양열 집열판이 보이고...
좌측으로 꺽어지고...
등로 좌측 아랫쪽에는 감나무밭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공검면 중소리(中所里)의 모습
중소리는 이안천이 흐르며 주위에 봉우리가 많은데 마을 어귀에는 수령이 500여 년이나 된
느티나무가 수문장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그름마, 염소목, 탈마, 중소 등이 있는데, 중
소는 나그네들이 길을 가다가 중간에 쉬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졌다.
마을의 지형이 마치 염소의 목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염소목이라 불렀으며, 100여 년 전 한 노인이
혼자 천막을 쳐 놓고 살았다고 하여 탈막이라고 불렀다
싸리와 아카시아 나무의 저항이 심하다
239봉(13:13)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서 맥길을 이어간다
제선충으로 피해를 입은 나무의 무덤이 많이 보인다
안부(13:18)
된비알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등로에서 바라본 상주시 공검면 동막리(東幕里)의 들판
자연마을로는 동막, 구만리, 섬밭, 절터 등이 있는데, 동막이란 명칭은 동쪽에 있는 산이 장막처럼
가로막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섬밭은 옛날 공갈못이 있을 때 이 마을 터만 물위에 나오고 주위
일대는 모두 물 속에 잠겨 그 지형이 마치 섬처럼 보였다하여 붙여졌다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서니...
평평한 능선이 나온 다음에 조금을 더 걸어서 가니...
지도상에 있는 국사봉 정상이 나온다
국사봉(國寺峰:338.9m:13:40)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 예주리. 동막리. 부곡리. 중소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2등 삼각점이 있으나 전망은 아예 꽝이다
유래를 살펴보니 공갈못에 사는 숫 황룡(黃龍)이 경주 안압지에 사는 암 백룡(白龍)에게 장가를 갔다.
장가 든 황룡은 백룡을 데리고 돌아 오던 중 영천의 신령못에서 잠시 쉬게 되었는데 이 때 이 못에 살던
암 청룡이 공갈못 황룡에게 마음이 끌려 공갈못까지 따라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때부터 백룡과 청룡은 황룡을 사이에 두고 사랑싸움이 잦게 되었다.
하루는 싸움이 벌어 지자 황룡은 청룡을 없애려고 내려친 것이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고 말았다.
원통한 황룡은 백룡의 시체를 국사봉에다 정성껏 장사 지냈는데 이 후부터 백룡은 한해와 수해를
관장하는 신이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가뭄이나 홍수 때 제를 지내 해가 없기를 빌었다고 한다.
해마다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국사봉이 되었다고 한다
국사봉 정상의 2등 삼각점(△점촌26 / 1980 복구)
오후가 되면서 햇살이 상당히 따갑다...등로 주위에는 타포린으로 가려진 소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인다
안부(13:45)
완만한 등로는 계속되고...
땅비싸리도 보이기 시작한다
국사봉을 지난지 500m 정도쯤 되었나...잠시 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지도상의 314.4봉이 나오는데
상주 사람들은 이곳을 국사봉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국사봉?(國師峰:314.4m:13:52)
상주시 공검면 부곡리와 예주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상주 공갈못 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단석이 있고, 멋진 소나무가 보이는데 전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314.4봉에 서 있는 멋진 소나무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단석
북쪽으로는 작약(이안)지맥 능선과 작약산이 보인다
선답자들의 흔적
인증샷
북동쪽으로 점촌이 보이고 그 너머로 백두대간 능선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314.4봉에서 바라본 상주들녘
상주는 예로부터 주는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특히 이곳은 삼백의 고장으로 쌀의 주생산지였는데 이곳의 쌀은 밥맛이 좋아
예전에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랐던 진상품으로 여주, 이천쌀에 비견될 정도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사벌면은 전국의 면 단위로 기준할 때는 의성군 다인면 다음으로
쌀이 많이 생산됐는데 이곳의 생산량으로 강원도 전체 인구의 쌀 소비량에 해당된다고 한다
북쪽의 능선으로 내려가니 아주 급경사이다
급경사를 따라서 한참을 내려간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진다
간벌된 지역이 나오고 키작은 아카시아나무가 맥길을 점령해 버렸다
언젠가 걸어야 할 작약지맥 능선도 보인다
등로 좌측 아랫쪽에는 예주리가 보인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2차선 도로가 나오는데 덕천재이다
덕천재(120m:14:20)
상주시공검면 율곡리 새마에서 예주리 벽실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 너머에는 예주1리 버스정류장이 있으며 지도상에는 득천재이나
이 지역 사람들은 덕천재라고 한다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좌측으로 올라서니 묘지가 나오고 곧이어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에서 내려다본 예주리(曳舟里) 가는길
상주시 공검면에 있는 예주리는 마을 앞에 이안천을 이용한 새마보라는 보가 있어 마을 앞 넓은
들의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보안은 경치가 좋고 넓어서 인근 마을 사람들의 물놀이터로 이름이 나 있다.
자연마을로는 예주리, 새마, 예주목, 새반 등이 있는데, 예주리란 명칭은 미을 앞에 이안천이 흐르고 있어
옛날에는 강물이 많아 예천 풍양까지 소금배가 왕래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 왜란 뒤에 마을이
새로이 형성되었다고 하여 새마라고도 불렸으며, 약 100여년 전 이 마을에 평산 신씨가 들어와서 새로
마을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고 하여 새반이라고도 불렀다.
예주리에는 1752년(영조 2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유포(柳砲)·유달존(柳達尊)·박눌(朴訥)·이겸(李謙)·
유종인(柳宗仁)·홍약창(洪約昌)·남영(南嶸)·정윤해(鄭允諧)·박성민(朴成敏)·이영갑(李英甲)·남근명(南近明)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셔져 있는 청암서원(淸巖書院)이 있다
유인 경주최씨 묘(14:28)
꿀풀꽃도 보이고...
이동통신탑(14:30)
대밭 너머로 예주리 벽실마을이 겨우 보이고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가야할 숭덕산이 보인다
묘지 뒷쪽으로 향한다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 이리저리 헤매며 개고생을 하다가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시멘트 도로(14:35)
도로에서 잡풀을 헤치고 올라선다
고구마를 심은 밭이 나오고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간다
고구마밭을 지나니...
등로는 보이질 않고...
온 몸이 아카시아 나무에 수난을 당해 상처투성이다 ...뭔 지랄인지 나도 모르겠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오르막길을 오른다
다시 길은 사라지고 이리저리 헤매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55)
좌측으로 내려간다
무명봉(14:58)
임도(15:00)
벽실마을에서 올라오는 넓은 임도와 합류를 한다
무명봉(15:03)
좌측으로 약초재배지가 있는지 파란색 그물망이 처져있다.
접근금지 표지판도 보인다
산나물 재배지였군요
때죽나무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218봉(15:15)
가야할 숭덕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돌복숭아 나무 서너그루가 있다
숭덕산 가는 길
안부(15:20)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 바위 윗쪽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숭덕산(崇德山:235.7m:15:28)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와 이안면 가장리의 경계에 있는 산인데 숭덕지맥의
주봉인데 멋진 정상석 하나가 있으나 산으로 참으로 볼 품이 없다.
백두대간이 상주에 들어와 동(東)으로 두 번째로 뻗은 산줄기인 밤원숭덕지맥으로 이안면 여물ㆍ
가장리와 공검면 율곡리에 걸쳐있는데 함창 고령가야 왕궁(王宮)의 진산(鎭山)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봉산과 함께 지역의 명산으로 손꼽힌다. 또한, 주변에 이안천, 쾌재정, 난재 채수선생의 묘소와 신도비,
남재사, 동계 권달수선생의 사당 등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인증샷
정상석 뒷면의 모습
돌복숭아 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니...
무명봉(15:33)
무명봉 정상에 있는 지적 삼각점
안부(15:38)
신선들의 공깃돌(?)
웬 심사가 저리도 꼬였을까
능선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참으로 시원하다...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204.2봉(15:45)
좌측으로 옥녀봉 가는 길은 등로가 아주 뚜렸하나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갈림길(15:50)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가 아예 없는 곳으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이리저리 헤매면서 내가 길을 만들어서 내려간다
감나무밭 울타리를 따라서 내려간다
숭덕농원(빨간지붕)을 바라보면서 걷는다
숭덕농원의 모습
장판이재(長坡峙:90m:16:00)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에서 이안면 가장리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도로옆에는 숭덕농장이 있고
농원 맞은편에는 축사가 보이고 호도나무 몇그루가 있는데 상주에서 점촌으로 가는 3번 국도가 있다
상주시 이안면의 마을 지명 유래에 잔(小)+받(山)+티(峙)=잔 받 티→장바 티→장파 티. ‘낮은 산에 있는 고개’의
뜻로 기록이 되어 있다
도로를 가로질러 인삼포 옆으로 올라간다
인삼포를 지나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3번 국도 너머로 보이는 상주시 이안면(利安面)의 산그리메
'이안' 지명은 고려시대 이안부곡(利安部曲)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함창)에
"이안부곡은 현의 서쪽 5리에 있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본래 조선시대 함창현 상서면(上西面)과
하서면(下西面) 지역이었다. 『호구총수』(함창)와 『여지도서』(함창)에 상서면·하서면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청구도』·『1872년지방지도』에도 상서면·하서면이 표기되어 있다.
1914년 함창군 수하면과 상서면을 중심으로 상주군 은척면의 일부 동리를 합쳐 상주군 이안면으로 하여
13개 동리를 관할하게 하였다. '수하' 지명은 이안천 아래 지역이 되므로 하서면이 바뀐 것이다.
1973년 저음리가 문경시 가은읍으로 편입되어 현재의 12개 리가 되었고, 1986년 상주군에 속하였다.
1992년 증촌리가 옛 지명인 이안리로 개칭되었고, 1995년 상주시에 속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때 구미리(九味里)는 구미리(龜尾里)로, 여물리(余勿里)는 여물리(與物里)로 그 한자표기가 바뀌었다.
경주 최공의 묘(16:03)
묘지 뒷쪽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조금전에 내려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맥꾼들이 다닌 흔적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노루의 숙소
갑자기 노루가 도망가는 바람에 깜~~~놀
오늘 산행을 하면서 노루와 고라니를 10번도 더 만났다
묵힌 밭을 치고 나간다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민가(16:10)
민가 뒷쪽으로 들어가는데...
개쉬끼들이 난리가 났다.
민가를 지나 폐사일로 옆으로 향한다
망해버린 오미자 농장으로 간다
밭을 지나고 논을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경북선 열차가 지나는 선로로 내려선다
역곡 건널목(16:20)
경북선 열차는 경부선에서 갈라져 김천에서 출발하여 상주, 함창, 점촌, 예천을 지나
영주에서 중앙선에 합류하는 노선이다
3번 국도 지하를 통과한다
3번 국도의 이정표
3번 국도 지하차도를 벗어나면서 산행을 종료한다(16:22)
지하차도 옆 좌측으로 올라가니 상주에서 점촌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버스 정류장(16:28)
버스 시간표도 없고 상주에서 점촌을 가는 버스는 언제 오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차량들을 상대로 몇번의 앵벌이를 시도해 보지만 워낙 차량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바람에 이내 포기를 하고 무작정 버스를 기다린다
40분을 기다리니 상주에서 버스가 오고 있다(17:08)
점촌터미널(17:23)
터미널에 도착하여 표를 예매해놓고 서둘러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서울가는 버스에 오른다
점촌발 → 서울행 버스표
평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버스는 빠르다...2시간만에 강남터미널에 도착한다
'병성(숭덕)지맥)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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