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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이안(작약)지맥(終)

이안(작약)지맥 제1구간 - 분기점에서 황령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9. 10. 7.

☞ 산행일자: 2019년 10월 06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약간 추움

산행거리: 도상거리 15.1km + 들머리 1.1km / 9시간1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갈령-헬기장-무명봉-암봉-작약(이안)지맥 분기점-다시 갈령-산불감시 카메라-헬기장-암봉

                 도장산 갈림봉-안부-산불감시초소-안부-암봉-고개-청계산 두루봉-암봉-암봉-서재고개

                 조망바위-삼면봉-738봉-삼봉-갈골마을 갈림길-무명봉-606.4봉-671봉-안부-663.3봉-안부-677.8봉

                 673봉-666.4봉-암봉-무명봉-안부-516.3봉-501봉-동네실재-묘지-무명봉-636봉-암봉-안부-국사봉

                 황령마을 갈림길-605봉-무명봉-묘지-묘지-393.6봉-이동통신탑-황령고개

소 재 지: 경북 상주시 화북면, 화남면, 내서면, 외서면, 은척면 / 문경시 농암면


요즘들어 모든게 자꾸만 의욕이 떨어지고 가슴이 답답하다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데 뭔가 허전함을 지울 수 없는게 건강 탓이련가.

이상하리만큼 식욕도 떨어지고 조금만 뭘 먹어도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해 속이 불편하다.

동네 병원에 갔지만 특별한 증상은 나타나지 않고 오는 28일에 아산병원에서 6개월만에 모든 검사를 해야 하기에

조그만 더 기다려 봐야 하나...모든 걸 잊어 버리고 맘 편히 살자 했건만 그것마저도 내 의지대로 되질 않는다.

지난주 일욜날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산에 가지 못해서 그런가?에~라 모르겠다...산에나 가야겠다

이안(利安:작약지맥:芍藥枝脈)개념도.
이안(利安:작약지맥:芍藥枝脈)은 백두 대간 속리산군 형제봉 남동쪽 0.6km지점의 721m봉에서 동쪽으로
가지를 쳐 갈령(49번국지도),두루봉(대궐터산. 873m),동네실재,국사봉(703.3m),황령고개,칠봉산(598m),
갈티재,성재산(356m),작약산(774m), 은점재,수정봉(488m), 태봉산(106m) 을 거처 상주시 함창읍 태봉리에서
낙동강에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7.9m 되는 산줄기로 이안천의 우측, 영강의 남쪽 분수령을 작약지맥(芍藥枝脈)이라
칭하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이안지맥(利安枝脈)이라고 부른다필요한 지도는 1/25000: 화북,농암,점촌. 1/50000 영진지도 : 277,278,279,280쪽.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상주행 18:00 버스표

벌려논 맥길이 너무나 많아 참으로 고민이 많다.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지만 남아있는 곳은 잡목과 잡풀의 저항이 너무 많아 11월 이후로

미루다 보니 마땅히 갈 곳도 없다...그러다가 검색을 하여 결정한 곳이 작약(이안)이 지맥이다 

지난주에 백두사랑 일요팀이 이 지맥 첫 구간을 했는데 그날에 난 꼭 일을 해야할 현장이

있어서 같이 동행하지 못했기에 첫 구간을 마치면 2구간부터 따라가면 편안할 것 같았고,

더군더나 비교적 등로도 뚜렸하고 잡목의 저항이 없는 곳이라 이곳을 택했다. 

 

그러나 작약(이안)지맥 첫 구간은 고도차도 심하고 암릉구간이 많아서 그리 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거기다가 나홀로 산행을 할 시에는 접속구간이 문제가 되는 곳이다

당일로 시작할 시에는 06시에 동서울 터미널가서 첫 차를 타고 2시간 30분에 걸려 상주에 도착한 

다음에 09시 35분에 상주에서 화령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40분 걸려 화령에 도착한 후 화령에서

택시를 타고 갈령에 도착하면 빨라야 11시쯤에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면 몇 시간 산행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탈출로가 마땅찮아 부득히 저녁에 상주로 갈 수 밖에 없다  

18시에 동서울 터미널에서 상주로 출발하는 버스에 오른다

해가 많이 짧아졌는지 저녁 6시쯤 되니 주변에 어둠이 몰려오고 있다.

늘 버릇처럼 버스에 오르면 깊은 잠에 빠지는데 오늘은 전혀 잠이 오질 않는다

거기다가 지난 3일날 광화문 태극기 집회를 갔다온 이후로 허리가 너무 아파서

낮에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물리 치료를 받았는데도 통증이 멈추지를 않는다

그 때문일까... 잠을 이루지 못하고 통증을 참다가 보니 버스는 상주 터미널에 도착한다  

상주 버스 터미널(20:40)

터미널에 도착하여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근처 찜질방을 찾는데 상주 시내에는

천지연 찜질방이라는 곳이 있으나 시설이 열악하고  터미널에서 꽤 먼 거리에 있어 내일 아침이 문제이다

시설이 좋기로는 작약지맥 국사봉 아래에 상주시가  운영하는 성주봉 한방타운 찜질방이 좋다고 하는데

그곳은 오늘 내가 날머리로 정한 황령(노루목재)이 있는 은척이라 이곳에서 25km 가까이 된다

참으로 고민이 많다

하는 수 없이 여관을 알아 보기로 하고 터미널 맞은편 골목에 있는 여관으로 향한다

여관에 가서 숙박비를 물으니 40,000원을 달라고 하는 걸 사정을 하여 30,000원에 합의를 본다

여관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다음에 잠자리에 들었건만 허리 통증으로 인해 쉽게 잠을 청할 수가 없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깐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05시 50분이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여관을 빠져나와 24시간 하는 김밥집에서 김치찌게로 아침을 해결하고, 점심으로 

먹을 김밥 한줄을  사서 베낭에 넣고 터미널로 향한다

이른 아침 상주 시내의 모습

상주는 옛날 부족국가 시대의 큰 고을이었던 사벌국(沙伐國)을 신라  12대 임금이었던 점해왕(沾解王:?~261)이

정벌하여 사벌주(沙伐州)로 고쳤으며 당시 신라의 주부(州郡)중에 최상부에 있다는 뜻으로 신라 23대 임금이었던

법흥왕(法興王:재위기간:514~540)때 "上州"로 고쳤다가 한자어 "上(높다)"이 "尙(숭상하다)"으로 통하기 때문에

경덕왕(景德王:35대)상주(尙州)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

 

BC 58년경 지금의 영남지방의 상주라는 곳에는 사벌국이라는 씨족국가가 있었다

철(鐵)을 생산하여 왜(倭)와 대방군(帶方郡: 옛 고조선 땅에 설치되었던 중국 군현의 하나로 한강

이북에서 자비령 이남에 이르는 지역으로 지금의 경기도 북부 및 황해도 일원을 영역으로 했다)과

마한(馬韓:고대 삼한 국가중의 하나로 54개의 부족국가로 이루어진 국가로 진한(辰韓),

변한(弁韓)과 더불어 고조선 이후에 생긴 삼한(三韓) 중의 하나)에 수출하기도 한 고대국가로서

오늘날 낙동강 유래지이기도 하며, 지금의 낙양이라는 마을의 동쪽에 흐르는 강을 낙동강이라

하여 오늘의 낙동강이 된 것이고, 경상도라는 경주와 상주의 ‘경’과 ‘상’을 합쳐서 경상도가 되었다

상주터미널(06:40)

상주에서 화령가는 버스 시간표

상주에서 서울과 수도권 가는 버스 시간표

상주에서 화령가는 버스표

이 버스는 06시 55분 상주에서 출발하여 화령으로 가서 보은, 청주를 거친 다음에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는 버스로 상주에서 화령까지는 손님이 아무도 없어 나와 운전기사만 달랑 둘 뿐이다.

화령 버스터미널(07:25)

화령터미널 버스 시간표

버스에서 내려 갈령(화북)가는 버스 시간표를 보니 08시 20분이 첫 차이다

그러면 1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하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억시기 마을 정류장 에서 내려

49번 구 도로를 따라서 3km 이상을 걸어서 갈령으로 가야 하기에 부득히 택시를 탄다.

화령 택시기사인 이진식님은 산꾼을 많이 상대하신 건지 아니면 산꾼인지는 몰라도

이 주위의 백두대간이나 지맥길의 능선을 맥산꾼 못지 않게 훤히 꿰뚫고 있다

맥산꾼과는 말이 통하는데 차에서 내리니 트렁크 박스에서 포도즙을 2개 꺼내서 준다

나에게 안전 산행을 하라고 하면서 화령으로 돌아간다

나를 갈령에 내려주고 화령으로 돌아가는 택시

갈령(葛嶺:443m:07:45)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와 화북면 상오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49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이었으나 고개

아래로 새로운 도로가 개설됨에 따라 구불한 고갯길을 넘지않고 갈령터널을 통해 쉽게 지나갈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대간 산꾼들이나 오르내리는 잊어진  고개였으나 한국전쟁 당시에는 화령전투가 치열했던

곳이기도 했는데 갈령의 동쪽에는 청계산이 있고 서쪽은 형제봉이 자리하고 있다.

 

칡이 많다하여 ‘칡 갈(葛)’字를 써서 갈령이라 부르고 있는데 갈령(葛嶺)은 여기 말고도 여러 곳에 있지만

칡을 뜻 하는 ‘칡 갈(葛)로 해석해서는 안되고 순 우리말 ‘가르다’, ‘갈라지다’에서 어원을 찾는다.

물길을 가르거나 행정구역을 가르는 곳을 말한다. 금북정맥의 가루고개, 영산기맥의 갈재나 노령(蘆嶺) 역시

마찬가진데  가르다는 ‘갈’의 우리말을 한자화 하면서 칡 갈‘葛’이나 갈대 노‘蘆’자를 들이댄 것이라(音借表記).

한자를 보고 그 뜻을 풀게 아니라 한자 이전의 우리말을 생각해야 되는 것이다. 칡이나 갈대와는 무관하게

가르는 고개라는 뜻의 갈령이다. (조은산님 자료 인용)

갈령 표시석 뒷면

갈령 정상에 있는 49번 도로 준공 기념비

갈령 정상에는 우복고을 관광화북’이라는 글씨가 나무속에 가려져 있다

고개 넘어 화북면 용유리에 우복동마을이 있는데 백두대간 청화산 남쪽 골짜기 마을로 최근들어

녹색농촌 체험마을로 꾸며져 있으며. 우복동(牛腹洞)은 조선시대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

 ‘우복길지(牛腹吉地)가 청화산에 있다’라는데 근거를 두고 소의 뱃속처럼 아늑하다고 해설을 한다.

소 뱃속이 아늑한지 어떤지 들어가보질 않아서 알 수는 없고, 혹은 풍수에서는 ‘牛伏’이라 하여 소가

엎드린 형국으로도 풀이를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7:50)

날씨가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꽤나 춥다

갈령 도로 준공 기념비옆 초소 안에 베낭을 숨겨놓고 스틱만 가지고 갈령 삼거리로 올라간다

오늘따라 갈령에는 차량들이 엄청나게 많다...버섯을 채취하는 사람이란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갈령에서 백두대간 형제봉으로 가는 산에 능이버섯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헬기장(07:52)

백두대간 3번째 이 길을 걸을때가 2017년 8월 8일이었으니 벌써 2년이 지났구나

멋진奇巖들은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고래바위(?)

시어머니에 대한 恨많은 설음을 아직도 떨치지 못했는가...길을 떠나지 못하는구나

암릉 사이로 올라간다

멋진 기암은 계속되고...

무명봉(08:10)

분기점 가는 길에서 바라본 청화산(靑華山:984m)

경북 문경시 농암면 화산리와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청화' 지명은 『택리지』에 "청화산은 내외 선유동()을 뒤에 두고 앞에는 용유동()을 임하였다.

(중략) 모양이 단정하고 좋으며 빼어난 기운이 나타나서 가리는 것이 없으니 자못 복지이다."라는 기록에 등장한다.

우복동()이라는 명당이 있다고 전해지며, 청담()·청화산인()이란 호를 갖는 이중환(1690~1752)

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가령 『상주지명총람』(2004)에는 이중환이 이 산을 좋아해 여러 해 머물렀고

그 호까지 청화산인으로 지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대야산으로부터 맥을 이어 청화산이 있는데

그 아래에 용유동이 표시되어 있고, 『청구도』에는 청화산 바로 옆에 내선유동()이 있다

분기점 가는 길에서 바라본 우복동천(牛腹洞川)

풍수지리에서 피난, 보신의 10가지 장소를 10승지(十勝地)라고 하는데

그 10승지중의 하나인 소의 뱃속 모양의 명당터인 우복동이 바로 상주시 화북면 일원이다.

실제로 화북면으로 피난온 사람들은 한국전쟁당시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상주시 화북면은 三山(속리산:1,057.7m, 청화산:984m, 도장산:827.9m), 三水(낙동강, 금강, 한강)의 고장으로 불린다. 

 

조선 후기 신분제도가 흔들리면서 백성들은 물론 몰락한 양반의 후예들도 우복동을 찾아 떠나기도 했다.  
이 사실은 정약용의 <다신시문집> 제18권 ‘증언(贈言)- 다산이 제생(諸生)에게 주는 말’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다산은 실학자답게 우복동가(牛腹洞歌)의 詩로 십승지의 폐혜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속리산 동편에 항아리 같은 산이 있어
옛날부터 그 속에 우복동이 있단다네
 
산봉우리 시냇물이 천 겹 백 겹 둘러싸서
출입문은 대롱만큼 작디작은 구멍 하난데
조금 깊이 들어가면 해와 달빛이 나고
 
기름진 땅 솟는 샘물 농사짓기 알맞아서   
멍청한 선비그를 두고 마음이 솔깃하여
 
 지레가서 두어마지기 밭이라도 차지 하려고
죽장망훼 차림으로그곳 찾아 훌쩍 떠나
백 바퀴나 산을 돌다 지치고 쓰러졌다네
 
적이 쳐들어와도 나라위해 죽어야지
너희들 처자 데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아내가 방아찧어 나라 세금 받치게 해야지
아아! 세상에 어디 우복동이 있을 것인가 
 

 

 - 정약용 ‘우복동가(牛腹洞歌)’ 중에서   
 
그 곳은 속리산 동편,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일대였다.
 

 우복동천(牛腹洞川)  개념도  

십승지(十勝之)는 예언의 땅으로 전란·굶주림·천재지변으로부터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축복 받은 땅이다.
조선시대 평범한 민초들이 천수(天壽)를 누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흉년과 홍수로 굶어 죽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수 많은 백성이 개죽음을 당했다.
 

 전쟁과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럽게 비결(秘訣)을 탄생시켰다.  

비결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법을 말하는데, 대표적인 비결서가 <정감록>이다.  
십승지는 이러한 비결에서 유래되었다.   
 
 <정감록>은 가장 널리 십승지를 알린 비결서다.  
 
역사적 격동기에는 수많은 백성이 십승지에 나타난 예언의 땅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십승지는 ‘무릉도원’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전설적인 이상향 의식과 맞물려 한국인의 심층의식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우복동(牛腹洞)은 예로부터 영남 일대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승지로
상주 속리산 동편에 숨어 있다고 전해진다.  
동네가 마치 소의 배 안처럼 생겨 사람 살기에 더없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암봉에서 바라본 분기점과 형제봉(兄弟峰:829m)

형제봉은 보은군 속리산면 모막리와 경북 상주시 화북면 · 화남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한국지명총람』에 '형제봉()'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와 함께 산의 두 봉우리가

형제처럼 나란히 솟아 있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암봉에서 바라본 속리산 천황봉

암릉을 넘어간다

잠시후에 가야할 청계산 두루봉

작약(이안)지맥 분기점(721m:08:25)

2년하고도 2달만에 다시 찾은 갈령 삼거리... 참으로 감회가 새롭기만 하는구나

기분 같아서는 형제봉까지 갔다가 오면 좋으련만, 몸뚱아리가 예전같지 않으니 마음 뿐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작약(이안)지맥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두루봉쪽에선 구름 사이로 빛내림이 환상적이기만 하다

秋風吹白雲(추풍취백운): 가을바람 흰 구름에 불어

碧落無纖翳(백락무섬예): 푸른하늘 구름 한 점 없고

忽念此身經(홀염차신경): 이 문 문득 가벼워 진듯하여

飄撚思出世(표연사출세): 이 세상 훌쩍 떠나고 싶네

 

다산 정약용이 경상도 장기땅으로 첫 유배를 가면서 지은 詩

 이중환은 자신의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청화산은 뒤에 내외(內外) 선유동을 두고, 앞에는 용유동을 임해 있다.   앞 뒤편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고,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나 속리산같이 험준한 곳이 없다.  
흙봉우리에 둘린 돌이 모두 수려하고 살기가 적고 모양이 단정하고 평평하여, 수기(秀氣)가 흩어져 드러남을
가리지 않아, 자못 복지(福地)다’라 했다. 

 잠시후에 가야 할 능선의 모습

갈령으로 다시 돌아와 숨겨둔 베낭을 다시 찾아...길을 떠난다

갈령(08:55)

오늘따라 갈령에는 버섯을 채취하는 사람들로 인해 차량들이 많이 보인다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난다

갈령 정상에 있는 이정표

청계산으로 향하는 빡쎈 오르막길이 초반부터 시작된다

산불감시 카메라(09:04)

 헬기장에서 바라본 이중환이 극찬했다는 청화산의 모습

이중환((李重煥:1691~1756)은 조선 중기 인문지리서의 바이블이라 일컬어지는 택리지의 저자이다.

그가 청화산의 경치를 두고 각종 최고급 형용사를 동원하여 극찬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청화산의 경치가 아니더라도 이중환하면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점이 두 어 가지 있다. ‘대간’

이라는 명칭을 그가 처음 택리지에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은 약 1,000년 전

고려 건국이념(신화 혹은 설화)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지리 개념으로서의 대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는 이중환이 처음이다. 그가 조선 중기 대표적인 실학자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이중환은 청화산 일대를 복지(福地)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런데 청화산 아래 마을(상주시 화북면 용유리)은 오래 전부터 도참사상(풍수)적 측면에서 실제 소의

배속(牛腹洞)처럼 안온하다는 十勝地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시루봉-청화산-문장대-천황봉-

형제봉-갈령-도장산으로 이어지는 둥근 산줄기 안의 분지에서 바깥세상으로 트인 곳은 시루봉과 도장산

사이 용유리의 병천뿐이니 이 일대가 바로 우복동이라는 것인데 말하자면 이중환은 실학자이면서도 많은

부분을 풍수사상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헬기장(09:05)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안부를 지나니...

대머리(?) 묘지가 나오고...

지적 경계점 표시석도 보인다

청계산 두루봉으로 향하는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조금전에 지나온 분기점을 한번 뒤돌아 본다

암릉구간이 나오고...

우측으로 우회하여 올라간다

 암봉(09:18)

암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봉황산과 몇년전 2박 3일 동안 충북 알프스 종주때 올랐던 구병산도 아련히 보인다

산부추(꽃말:신선)

꽃은 8~11월에 붉은 자줏빛으로 피며 꽃자루는 속이 비어 있으며 끝에 여러 송이가 산형(傘形)으로 달린다

꽃자루는 길이가 1~2.2cm이고 포는 넓은 달걀 모양이며 화피 갈래 조각은 6개로 넓은 타원형이며 끝이

둥글며 뒷면에 녹색의 중록이 있으며 수술은 6개인데 화피보다 길다

 

씨방밑동에 꿀주머니가 있으며 꽃밥은 자줏빛이고, 열매는 식과이며 비늘줄기와 어린순은 식용한다

비늘 줄기를 간장, 이뇨, 구충, 해독, 소화, 건위, 풍습, 충독, 진통, 강심, 진정, 건뇌 등의 약으로 쓰며

본초비요에서는 간과 심장에 좋은 약이라 했으며 위를 보호하고 위에 열을 없애주며 신(身)에 양기를

보하고 아울러 어혈을 없애고 담을 제거하는데 쓰인다고 하였다

잠시 후에 가야할 능선의 모습

암릉구간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니 멋진 바위가 있는 도장산 갈림봉에 도착한다

 도장산 갈림봉(828m:09:30)

도장산 갈림봉에서 바라본 속리산 천황봉

속리산이라는 산명을 얻게 된 연유를 삼국유사의 ‘관동풍악발연수석기’에 의거하면 속리산은

원래 구봉산이라 불리어오다가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사에서 고승인 진표율사가 신라

혜공왕 2년에 미륵장육상을 주조하여 봉안하고, 금산사에서 지금의 속리산으로 가는 도중에

소달구지를 탄 사람을 만났다.

 

그 소들이 율사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울었다. 그 소에 탄 사람이 내려서 ‘이 소들이 어째서

스님을 보고 우는 것입니까?... 그리고 스님은 어디에서 오십니까?’하고 물었다. 율사는

 ‘나는 금산사의 진표라는 승인데 내가 일찍이 변산의 불사의방에 들어가 미륵지장의 두 보살

앞에서 친히 계법과 진생을 받아 절을 짓고 오래 수도할 곳을 찾아서 오는 길입니다.

 

이 소들은 겉으로는 어리석으나 속으로는 현명하여 내가 계법을 받은 것을 알고 불법을 중히

여기는 까닭에 꿇어 앉아 우는 것입니다. ’하였다 그 사람이 이 말을 듣고 나서 ‘짐승도 이러한

신앙심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 어찌 신앙심이 없겠습니까?’하고 곧 낫을 들어 스스로 머리를 잘랐다.

율사는 자비스런 마음으로 다시 머리를 깎아주고 계를 받게 하였다

두루봉 가는 길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흔적

안부(09:33)

비교적 등로는 뚜렸하다

암릉 사이를 걷는다

산불감시초소(09:38)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라본 도장산(道藏山:828m)능선의 모습

문경시 농암면과 상주시 화북면의 경계에 있는 도장산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심원사의 원래 사찰 지명이 도장암(道藏庵)이라 도장산이라 불렀다고 하는 설이 있는데

그러나 문경시 지명유래집에 의하면 안회(安廻)와 증삼(曾參)이 공자를 모시고 있는 듯한

산의 형세라 도장산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어딘가 모르게 좀 생뚱맞은 느낌이다

지나온 분기점과 형제봉을 또 한반 뒤돌아 본다

암릉구간을 많이 만난다

안부(09:43)

능선 우측으로는 선돌(立石)도 보이고...

암릉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어서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걷는다

계속되는 우회길

안부로 뚝 떨어졌다가 급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뚜렸한 사면길을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치고 오르니 암봉이 나온다

암봉(10:03)

암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비조재, 봉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팔음지맥, 충북알프스 능선이 보인다 

건너편에는 대궐터산으로 불리는 청계산이 보이는데 대궐터산은 우측으로 더 내려가야 한다  

조금전에 헤어졌던 등로로 다시 내려선다 

암릉 구간은 계속되고... 

뒤돌아 보니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형제봉은 조금씩 멀어진다  

암봉(10:14)

암봉이 등로를 가로막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선 다음에... 

산부추도 외롭게 홀로 걷는 범여를 응원하는 듯...다시 빡쎈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고개(10:19)

두루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집채보다 더 큰 바위가 등로를 가로막고 있다 

급하게 내리막길로 내려섰다가 다시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하게 올라서니 두루봉이 나온다 

청계산 두루봉(874m:10:26)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와 화서면 하송리, 화남면 동관리의삼면 경계봉을 이루는 산으로  상주시의 역사지인

《상산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산 아랫마을에서는 두리뭉실하게 생겼다 하여 두루봉이라고 부른다.

두루+봉=두루 봉. ‘두루’는 ‘들’의 옛말인 ‘드르’와 같이 ‘땅’ 또는 ‘산’ 에서 왔다. ‘달’은 ‘높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산마루가 두루 뭉실하거나 어느 고장을 울타리 치듯 휘어 돈 산을 ‘두루산’이라고 한다.

후백제의 견훤이 이 산에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다 하여 대궐터산이라고도 하는데 대궐터산은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더 내려가 극락정사 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이며 산기슭에 청계사와 후백제의 견훤이 쌓았다는

성산산성이 있는데 성산산성은 둘레가 3.3km인 토석성으로 산 아래에서 보면 바위산으로 보이는 천혜의 요새이다

산 전체가 엄청난 암릉에 둘러싸여 있어 천혜의 요새처럼 보인다 

 

힘들게 정상으로 올라온 탓인지 상당히 힘이 들었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며 아침에 기사분이 준 포도즙을 마신다

정상인데다가 바람이 많이 불어 생각보다 상당히 추워 서둘러 베낭을 정리한다

다시 길을 떠난다 

등로는 최근에 비가 온 탓에 상당히 미끄럽고 오금이 저릴 정도의 급경사 내리막길이라 바짝 신경을 쓴다  

로프를 잡고 힘들게 내려오니... 

2번째의 로프구간...이곳 역시 오금이 저릴 정도의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힘들게 내리막으로 내려와서... 

좌측의 암릉을 끼고 내려간다 

갈 길 바쁜 산꾼에게 고사목이 태클을 걸어댄다 

암봉(10:55)

가야할 삼봉 아래에는 벌목지가 보인다 

저 멀리 아련히 보이는 곳이 낙동정맥 마루금이겠지!

암봉 좌측으로 돌아...   

로프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채 내리막길의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암릉구간을 우회한 다음에...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등로를 따른다 

암봉(11:04)

저 멀리 지난 봄에 걸었던 숭덕지맥 마루금이 아련히 보인다  

오늘따라 비실이부부님의 흔적을 많이 만난다  

조심스럽게... 

암릉 구간을 통과한 다음에...  

커다란 암릉 사이의 급경사로 내려선다

이곳에서 내려선 다음에 직진의 뚜렸한 내리막길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야 하는데 독도에  주의할 구간이다

우측으로 꺽어져 능선에 오른 다음에...

급하게 내려간다

암릉을 끼고 좌측으로 오른 다음에...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등로에는 청버섯(가지버섯)이 많이 보인다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우측에는 잣나무 군락지가 있고 내려서니 서재고개 임도가 나온다

서재고개(600m:11:24)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서재마을에서 화서면 하송리로 연결되는 임도가 있는 고개이다

지명의 유래는 상오리 서재마을에서 가져온 듯 한데 서쪽에 고개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우측의 하송리에는 견훤사당, 청계사가 있는 청계마을이 있는데 청계마을에는 후백제를 견훤의 사당이 있다

 

후백제는 견훤이 완산주(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에 진출해 백제의 맥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후백제건국했다.

그러나 이곳이 견훤의 유적이 많은 것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문경시 가은읍이 견훤왕의 아버지인

아자개의 고향이 있기 때문일까?

가은에 가면 아자개 장터가 있고 시외버스 터미널이 아자개 터미널로 되어 있다

상주 견훤사당(정면)

 상주 견훤사당 (尙州 甄萱祠堂: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7호)

상주 견훤사당 (尙州 甄萱祠堂)유형 무형의 민속신앙인 동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민속신앙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비록 변화를 겪긴 했지만, 인근에 전승되는

견훤관련 설화와 결합되어 후백제대왕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매우 드문 현상이다.

작은 건물로 매우 간결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어서 건축 구성상의 특이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사당으로 서는 드물게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건립 초기의 구성이 현재까지

잘 유지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나름의 의의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견훤사당은 후백제 견훤 왕과 그의 제례에 관련되어 있는 만큼 문화재적 가치가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인용)

 상오리쪽에 있는 임도 차단기

두루봉에서 급경사로 힘들게 내려온 만큼 다시 빡세게 올라가야 하는 힘든 구간이다

코가 땅에 닿을만큼의 급경사 오르막길

범여에겐 이런 곳은 쥐약이다...서다 가다를 반복하는데 자꾸만 걸음이 느려진다

시야가 트이고 속리산 능선이 한 눈에 보이는데 조만간 다시한번 걸어야만 할 곳이다

오르막 등로에서 바라본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上五里)의 모습

상오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마을로,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하였으며 하천이 마을을 가로질러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쉰섬이, 웃쉰섬이, 아랫쉰섬이, 높은다리, 팔판동마을 등이 있으며 쉰섬이 마을은 상오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해마다 좁쌀 쉰 섬을 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웃쉰섬이마을은 쉰섬이 위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아랫쉰섬이마을은 쉰섬이 아래가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높은다리마을은 앞에 높은 다리가 놓여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팔판동마을은 여덟 판서()가

날 터가 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서재마을은 서쪽에 고개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들꽃들도 이별을 준비한다

빡쎈 오름길에서 뒤돌아보니 청계산 두루봉이 아쉬운 듯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급경사는 계속되고 심장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발걸음은 자꾸만 무거워진다

힘들게 올라서니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12:05)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대궐터산 능선의 모습

많은 자료에서 청계산 두루봉을 대궐터산이라 부르는데 실제 대궐터산(746.3m)은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에 있는데  대궐터산이라 부른 연유는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이 산에다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인며 산 아래에는 극락정사라는 사찰이 있다

빡센 오름길에 갑자기 등로가 사라져 버렸다

등로는 보이질 않고 암릉구간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에는 일엽초(一葉草)들이 간간히 보인다

일엽초는 홑잎이 한 개씩 나온다 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다.

단단한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자라는데 지름 2~3mm 정도로 가늘고 늙은 나무 겉에 붙어 자란다.

관상용·약용으로 쓰이고 방광경을 다스리며 월경불통, 출혈, 토혈, 행혈 소아질환: 변비에 효능이 있다 

삼면봉(803.4m:12:10)

상주시 화북면과 화서면, 외서면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이다 

삼면봉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는 아주 좋다

등로가 좋으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완만한 봉우리를 지나...

내려서니...

이장한 듯한 묘지의 흔적이 보인다

738봉(12:21)

국수가먹고싶다

사는일은 밤처럼 풀리지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싶다

세상은 큰잔칫집 같아도
어느곳에선 가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치고 어둠이 허기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싶다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앙증맞은 바위도 지나고...

선답자들의 흔적들도 보인다

좁은 등로를 따라서 가는데...

가끔은 시야가 열리면서 건너편의 능선을 바라보는 호사도 누린다

철쭉이 있는 능선을 지나니...

갑자기 암릉 구간이 나타난다

북동쪽으로 희양산을 비롯한 백두대간 능선이 환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런 모습에 반해 산에 오는것 아닌감...세속에 물들지 않는 이런 맛에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서초동이나 광화문에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는 善이고 상대방은 惡이라는 논리로 한풀이를 하고 있겠지

언제부터인가 진영 논리로 인해 국민 정서가 둘로 찢어졌는데 그것을 해결해야 할 대통령은 뭘 하는지?

법무부 장관 임명을  계기로 갈라진 민심...누군가가 나서서 해결한 사람이 없고 그 사이 민초들의

살림살이는 자꾸만 팍팍해져 가는구나...

 

병자호란 때 최명길은 남한산성에서 김상헌이 찢은 항복 문서를 주워 붙이며 말했다.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 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나처럼 주워 모으는 자도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정부에는 온통 ‘찢어 버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나 주워 모으는 자는 하나도 없다

최명길은 김상헌에게 말했다. “그대 마음 굳은 바위 같아 끝까지 바뀌지 않거니와, 나의 도는 둥근

고리 같아 믿는 바에 따르네(君心如石終難轉, 吾道如環信所隨).”

 

묻고 싶다

이 시대에는 정치가는 하나도 없고 자기 영달을 위한 보신주의 자들만 우글거리니

민초들은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정치하는 인간들은 산에도 안 다니는 지

산에서 배우는 배려와 하심만 실천해도 이 지경까지 안 올텐데

백두대간을 바라보는 범여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괴산과 문경쪽의 백두대간 능선

암릉구간은 계속되고...

삼봉(三峰:693.3m:12:45)

상주시 외서면 대전리 삼봉마을과 화서면 하송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안테나가 있고 암봉으로 구성되어 있어 조망은 일망무제이다

봉우리 아랫쪽에는 휴양림처럼 보이는 갈골마을이 있다

삼봉에서 바라본 대전리 갈골마을

갈골마을은 외서면 대전리에서 가장 북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마르실, 중간마. 삼봉. 웃마가 있다.

임진란 때 피난하는 사람들이 칡넝쿨을 헤치고 밭을 일구고 마을을 세웠다 한다.

‘갈’은 ‘갈라 짐’의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더러는 땅이름에서 ‘산(山)’의 뜻을 가지기도 한다.

은 산골짜기 마을이나 산, 또는 물이 갈라지는 산에 쓰이는 예가 많다.

삼봉에서 내려서니...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벌목지대가 나오고...

벌목한 나무들이 마구 넘어져 있어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갈골마을 갈림길(12:56)

멋진 소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고...

무명봉(13:02)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폐헬기장이 있는 606.4봉에 도착한다

606.4봉(13:05)

구슬붕이

폐헬기장에서 좌측으로는 갈골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고 맥길을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등로는 뫳돼지의 횡포(?)로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좌측에는 활엽수, 우측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 숲에는 데크목으로 만든 평상이 있고 아랫쪽은 임도 공사가 한창이다

완만한 능선을 걷다가...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671봉(13:21)

671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을 지나 내리막길

백두대간 능선이 아련히 보이고...

좌측 등로 아래에는 갈골마을이 보이는데 삼봉에서 갈골마을을 보면서 형태로 맥길을 이어간다

어느 사이에 소리 소문도 없이 가을이 우리곁에 성큼 다가왔다

안부(13:38)

완만한 오르막 능선이 시작되고...

다람쥐 옹달샘(?)

663.3봉(13:44)

이곳부터는 북쪽엔 행정구역이 상주시 외서면에서 문경시 농암면으로 바뀐다

663.3봉 삼각점(△속리315 / 2003이설)

삼각점의 표기가 특이하다...새로 다시 설치했다는 ‘재설’이 아니라 옮겨왔다는 ‘이설’로 표기해놨다

좌측으로 도재이 마을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있으나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낙엽이 수북한 등로로 내려가니 전주가 쓰러져 있는 안부가 나온다

안부(13:47)

677.8봉(13:52)

677.8봉에서 맥길은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잠깐 사이에 문경시 농암면으로 들어섰던 행정구역이 다시 상주시 은척면으로 바뀐다

좌측으로는 전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나무에는 녹슨 철조망이 보이는데 철조망이 박힌 나무들은 대다수가 죽었다

등로는 조금 희마하나 잡풀이 없어서 걸을만하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은 이어지고...

673봉(13:58)

녹슨 철조망을 따라서 간다

반갑습니다

666.4봉(14:10)

지나온 두루봉이 보이고...

암봉에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맥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남산의 모습

지난봄에 걸었던 숭덕지맥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암릉 구간을 조심해서 내려선다

계속되는 암릉구간의 내리막길

등로가 마사토 구간이라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고래 입처럼 보이는 바위를 지나니... 

묘지가 나오고...

뚜렸한 등로를 지나니...

암봉(14:16)

오늘의 날머리인 황령고개는 멀게만 느껴진다

상주시 은척면에 있는 황령리(黃嶺里)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마을로,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한 곳이다.

황령사가 있었으므로 황령리가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황령, 동전, 마점, 풀무골, 산제당마을 등이 있다.

황령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황령리의 그것과 같다. 동전마을은 황령 동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마점마을은 이곳에 무쇠점과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풀무골마을은 신라 때 풀무점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산제당마을은 신도들이 수시로 제사를

지내던 주암골 산제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조계종 수행도량인 봉암사를 품고있는 희양산은 계속해서 보인다

암봉을 내려서면서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최대한 우측으로 붙어서 암릉구간을 내려서야 한다

암릉 구간을 내려서니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무명봉(14:25)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안부(14:28)

우측에는 잣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완만한 오름길

516.3봉(14:35)

잘 가고 있습니다

이번 지맥길은 잡목의 저항이 없어서 조금 편하게 걷는 느낌이다

501봉(14:45)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희미한 안부를 지난다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등로가 보이질 않는 곳에서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은 왜 그리도 반가운 지...

갑자기 나타나는 뚜렸한 등로

넓은 임도와 합류를 한다

다시 등로는 좁아지고...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묘지가 나오고...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997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동네실재가 나온다

동네실재(370m:15:01)

상주시 은척면 황룡리 야동마을과 외서면 대전리 도재이 마을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 997번 지방도가 지나가지만 차량 통행이 뜸한 한적한 고개이다

지명의 유래는 고개 아래에 있는 도재이 마을에서 따온 듯 하며 도재이가 變音되어 동내실재가

된 듯 하다(범여의 생각 中에서)

 

상주시 외서면 대전리 도재이 마을은 옛날 은일(隱逸)들이 도학(道學)을 탐구하던 곳으로

도장이라 불렀으나 도재이로 변했다고 하는데 도장’은 ‘안방’의 고어(古語)다.

 

그러나 상주지역에서는 곡식 등을 넣어 주는 ‘곡간’의 뜻으로 사용되어 왔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안방처럼 아늑하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으로 한자표기는 주로

음차(音借)되어 ‘도장(道場, 道藏, 圖藏)’ 등으로 나타난다. ‘돋+:1+안(內)+골(谷)=돋:2안골→도

?챨踪役돛?골→도장 골. ’닫, 돋, 달‘은 ’산‘을 뜻하는 말이다.

고개를 가로 질러 숲으로 들어가니...

우측의 넓은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된비알을 올라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넓은 임도를 다시 만난다

가는 세월을 막을수는 없고...

묘지(15:14~15:25)

묘지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쥬스 하나를 마시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길을 떠난다

능선에 오르니 우측의 도재이 마을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합류하여 좌측으로 올라간다

오름길의 등로는 뚜렸하다

사면길로 향하고...

무명봉(15:40)

안부로 내려섰다가...

빡센 오르막길이 나오고...

능선 좌측으로 편안한 우회길이 있으나 너무 돌아서 힘든 암릉구간으로 오른다

636봉(15:48)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졌던 좌측의 우회길을 다시 만난다

대한산경표의 저자 산으로님의 흔적도 만난다

편안한 등로를 지나자마자...

곧추선 암릉 구간이 갈길 바쁜 범여를 괴롭힌다...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암릉 사이로 올라서니 시야가 트인다 

암봉(15:57)

조금전에 지나온 동내실재와 그 너머로 도장산이 시원스레 보인다

암봉에서 바라본 상주시 은척면 황령리(黃嶺里)

황령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마을로,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한 곳으로 황령사가

있었으므로 황령리가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황령, 동전, 마점, 풀무골, 산제당마을 등이 있다.

황령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황령리의 그것과 같다. 동전마을은 황령 동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마점마을은 이곳에 무쇠점과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풀무골마을은 신라 때 풀무점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산제당마을은 신도들이 수시로 제사를

지내던 주암골 산제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암릉을 지나...

좌측의 사면길로 오른다

우측에는 선돌(立石)이 보인다

안부(16:00)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맥길에서 1.2km정도 떨어져 있는 남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국사봉(國師峰:704.3m:16:15)

상주시 외서면 대전리와 은척면 황령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우측으로는 남산과 소파우봉으로

이어지고 맥길은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일부의 맥꾼들은 이곳에서 남산으로 갔다 온다마는

牛步 걸음인 범여로서는 焉敢生心이다

이곳을 영진지도에서는 국사봉이라고 해놨는데 상주시의 지도를 보면 이곳이 국사봉이 아니고 남산의

남쪽 아래에 국사봉(592.7m)이 따로 있는데 언제부터 이곳이 국사봉이라 부르는 연유를 모르겠다

전국에 지천으로 널린것이 국사봉이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인증샷

지금이 16시 15분... 언제 이곳을 올까마는 생각하고 남산을 갔다올까 생각을 해보지만

은척에서 서울가는 막차가 18시라 남산가는 것은 입맛만 다시고 황령고개로 향한

선답자들의 흔적

해가 서산으로 기울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춥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황령가는 길에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남산(南山:819.9m)

상주시 외서면과 은척면 사이에 있는 남산은 이 주위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남산을 비롯하여 건너편 북쪽에 위치한 칠봉산과 문경시 농암면 갈동리에있는

삼각점봉(491.5m)의 산등성이를 연결시켜 보면 이곳 일대의 지형이 북두칠성을 닮았다

남산은 북두칠성을 닮은 산지의 중심인 칠봉산의 남쪽에 있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이며

남산은 흔히 ‘앞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북쪽 산자락의 마을도 압실(앞실) 또는 남곡이라 한다 

능선에서 내려서는데...

암릉 구간의 급경사 내리막길에 물 먹은 낙엽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다음 구간에 가야할 맥길 능선과 우측으로 황령 저수지가 보인다

황령마을 뒷쪽으로 백두대간의 늘재와 시루봉, 연엽산 등이 보인다

맥길을 지키고 있는 멋쟁이 소나무

황령마을 갈림길(16:28)

좌측으로 뚜렸한 등로는 황령마을 가는 길이고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암릉구간을 살짝 우회한다

605봉(16:31)

등로는 조금 지저분하고...

우측으로 벌목지대가 보인다

황령지 너머로 희양산이 아련히 보인다

벌목지 윗쪽의 등로는 좋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6:40)

무명봉 아래 좌측에는 묘지가 있고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등로는 희미하고 벌목된 나무들이 어지럽다

길도 상당히 미끄럽고...잠시후에 묘지가 나온다

묘지(16:48)

묘지를 지나면서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묘지에서 직진으로 내려가는 길은 산줄기가 튼실하고 등로도 좋아

맥길처럼 보이나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등로는 보이지도 않는다.

다행히 최근에 지나갔는지 비실이부부님의 따끈한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내려서니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날머리인 황령고개가 보인다

묘지(16:51)

반갑습니다

묘지가 있는 393.6봉으로 내려선다

393.6봉(16:57)

 

망가져버린 393.6봉(△문경439)

이동통신탑(16:59)
이동통신탑을 지나는데 황령마을에서 은척면소재지로 가는 버스가 지나가 버린다

에공 조금만 더 일찍 내려올 걸...황령고개로 내려선다

황령고개(黃嶺:338m:17:00)

상주시 은척면 황룡리 야동마을에서 솔안마을로 내려가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지나간다

또 다른 지명으로 노루목재라 부르기도 하는데 노루의 목을 닮은 '장항(獐項)’이라 하는것은

誤記인 듯 싶다...도로가에는 은자골유기영농조합 입간판이 보인다

  

은척면의 마을지명 유래를 보면 옛 황령초등학교 터가 있는 야동의 샛담에서 황령사가 있는

절골로 가는 산길에 있는 고개. 긴 골짜기를 지나 고개가 있는 곳은  ‘늘어 진 목’의 뜻인 

 ‘노루목’의 ‘노루’가  ‘노랗다’는 뜻의  ‘노루, 누르’로 보아 한자로 표기하면서 ‘황(黃)’을 취하였다.

다음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하고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도로를 따라서 내려 가는데 이곳은 차량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

은척의 택시를 부를까 생각을 하는데 RV차량이 내려 오기에 손을 들었더니만

세워주기에 얼른 올라 탄다... 태양광 공사를 하러 다니시는 분인데 차가

지저분하다고 오히려 저한테 미안해 한다

은척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주신 저 분...세세생생 복 받을깁니다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은척지서(05:40)

은척면은 은자골이라고 하였다

유래는 옛날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자(尺)가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금으로 된 금자(金尺)이고,

또 하나는 은으로 된 은자(銀尺)이었다...갖다 대기만 하면 사람을 죽이는 금자와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은자인 까닭에 죽는 사람은 없고 해마다 인구만 자꾸만 불어나게 되었다.

결국에는 이 금자와 은자를 함께 땅에 묻어 버리기로 하였는데, 금자는 지금의 경주 금척에, 은자는

상주의 은척에 묻었다고 하여 은척이라고 하였다.

은자가 묻힌 산을 은자산(銀尺山)이라 부르고 은자산의 이름을 따서 은자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은척 지서 마당에 있는 보호수

은척 버스 정류장 시간표

은척 버스 정류장의 모습

이곳에서 버스표를 파는 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돗가에서 간단하게 씻은 다음에 옷을 갈아입고 버스를 기다린다  

은척발 → 동서울행 버스표

상주시에서 운영하는 성주봉 한방 휴양림에서 출발한 버스는 5분 일찍 은척 정류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손님이라곤 달랑 나 혼자다...은척을 출발하여 문경시 농암, 가은을 거치는데

가은에서 대여섯명의 손님을 더 태우고 문경읍까지 좁은 도로를 따라서 달리는데 말이 고속버스이지

일반 버스와 다름이 없다...다시 문경을 출발하여 이화령 터널을 지나 연풍에서 중부내륙 고속도로에

올라 동서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