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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이안(작약)지맥(終)

이안(작약)지맥 제4구간 - 함창/점촌I.C에서 이안천 / 영강 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19. 11. 16.

 

☞ 산행일자: 2019년 11월 16일

☞ 산행날씨: 맑고 포근한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13km +어프로치 6.2km / 5시간 5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점촌 터미널-문경 코아루 아파트-함창/점촌I.C 진입로-나한리 입구-굴다리 -중부내륙고속도로-갈림길

                 206.4봉 갈림길-안부-175.9봉 갈림길-175.9봉-전주이공 묘지-시멘트 도로 사거리-U모텔-쿠치나13Y펜션

                운산원-함창 삼거리-구향4리 버스 정류장-경북선 철길 지하도-함창초등학교-LH천년나무 아파트 -윤직 삼거리

                윤직육교-고개-덕통2리 갈림길-샘골마을 입구-92.4봉-도로 삼거리-137.2봉-안부-땅재-봉굴재-도로

                비단뜰 제2농장-도로-태봉산-금곡교-신덕배수장 -배수장 갑문-이안천/영강 합수점

소 재 지: 경북 상주시 이안면, 함창읍

지난 4월에 티벳을 같다온 이후로 대한항공 마일리지가 56,000  정도 남아 있는데 그것이 올해를 지나면 소멸이

된다고 하기에 어디에 써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평소에 친분이 있는 카메라 동호회 멤버들과 5월쯤이던가 11월에

일본의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로 여행 겸 출사를 가기로 했는데 6월쯤에 정치하는 인간들이 이웃간에(한국과 일본)

민초들의 군중심리를이용하여 자기들 정치 이익을 위해 개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일본에 가는게 조금 끌적지건하다. 

그렇다고 안 갈수도 없고, 더군더나 일본의 교토에 수많은 사찰들을 다시 한번 가보고 싶기도 했고...

난 일본 교토 여행이 이번에 4번째인데...교토란 도시가 마치 우리나라 경주처럼 갈 때마다 깔끔하고심플한 게

참으로 매력적이었다...거기다가 우리 딸래미가 유학을 간 곳이기도 하고...정치하는 하는 인간들의 탐욕 때문에

내 마일리지 30,000을 날릴수도 없고 해서 일요일에 간다.

 

어제(15일)는 병원에 가서 지난주에 PAT 검사 결과를 주치의로 부터 설명을 들었다.
예전에 보이지 않는 좁쌀만한 검은 점이 하나 보이는데 별건 아닌것 같은데 조금은 찜찜한 것같으니
조직 검사를 한번 해보자고 한다...그 소리를 듣고나니 기분이 영 그렇다그러면서 수면, 식욕, 수술 부위 통증에
부작용을 설명을 하는데 현재 나하곤 전혀 관계가 없다잘먹고,  잘자고, 잘싸고, 통증이 없고, 매주 산에 댕기고,
지인들과 골프장 자주 나가는데뭔 소리람...근데 집에서 는 가족들이 엄청 놀라는 분위기다.나 역시 그 소릴 들으니
기분이 영 그러하여 에고 모르겠다 산에나 가자하고 토요일 이른 새벽에베낭을 메고 작약(이안)지맥 마지막
구간을 하기 위해 동서울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점촌행 버스표

선릉역에서 지하철 2호선 첫 차를 타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06시 05분이다

06시 30분 점촌가는 버스표를 끊는데 표가 딱 한장 남았단다...하마터면 못 탈뻔 했다.

시간이 남아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버스에 오르니 오늘은 유난히도 등산객이 많이 보인다.

물론 나처럼 맥산꾼은 아닌듯 하고, 부부간인 듯 남.여간의 등산객이 많다

점촌 버스 정류장(09:15)

버스에 오르자마자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서 그런지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버스는

중부내륙 고속도로 연풍I.C를 빠져 나와 백두대간 이화령 고개 아래에 있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잠시후에 문경 터미널에 도착하는데 등산객들은 전부 문경에서 다 내리고 점촌으로 가는

등산객은 나 혼자다...문경에서 20여분만에 점촌 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함창 / 점촌 I.C까지 지도를 검색해보니 거리도 그리 멀지않아 보이고

시간적 여유도 있고, 오늘 산행은 산행이 아니라 거의 도로를 걷는 구간이라 걸어가 보기로 한다 

터미널에서 3번 국도를 따라서 가다가 좌측으로 브리티시 S아파트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문경제일병원을 지나고 개울을 따라서 문경 코아루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걷는다

문경 코아루 아파트(09:50)

코아루 아파트 107동옆 샛길로 향한다

107동 앞에는 경북선 철길 선로가 보인다

함창/점촌I.C로 향하는 도로가 보이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코아루 아파트 107동 옆에 있는 대신정기화물 샛길로 향한다

놀이터가 나오고 조금을 더 가서 타이어 가게를 지난다

함창/점촌I.C 진입로(09:58)

함창/점촌I.C 진입로 아래로 통과하여...

나한사 절집 간판을 끼고 우측 도로를 따라서 간다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우측 위의 도로는 함창/점촌I.C로 가는 도로이다

나한리(羅漢里) 입구(10:08)

상주시 함창읍 나한리 장자골의 모습

나한리(羅漢里) 장자골 마을은 장자(부자)가 살았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아랫장자골 마을은 장자골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굴다리(10:15)

상주시 이안면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서 가다다 고속도로를 바라보면서 농로 향한다

점촌/함창TG가 보인다

점촌/함창 TG 제설 장비 차고를 바라보면서 걷는다

제설창고를 바라보면서 우측 농로로 향한다

함창/점촌 I.C(10:30)

굴다리를 지나니 막다른 도로가 나오고 공장이 보인다...우측 도로로 향한다

좌측 윗쪽에는 잠시후에 가야할 175.9봉이 보인다

마루금 들머리에 도착한다(10:45)

점촌 터미널에서 도로를 따라서 6.2km의 거리를 1시간 30분정도 걸렸다

좌측 능선이 마루금이나 그녕 사과밭옆 농로를 따라서 간다

농로에서 임도로 바뀌면서 길은 좁아진다

갈림길(10:48)

우측으로 꺽어지니 등로는 보이지 않고 빛바랜 여영님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등로는 지맥스러움을 나타낸다

맥길은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직진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능선을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206.4봉 갈림길(11:00)

우측으로 족보가 있는 206.4봉이 있으나 그냥 좌측으로 향한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다시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등로는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안부(11:04)

175.9봉 갈림길(11:06)

175.9봉은 맥길에서 좌측으로 100여m 정도 떨어져 있으나 오늘 산행중 가장 높은 곳이라 들리기로 한다

175.9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206.4봉의 모습

175.9봉(11:08)

안면이 많은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솔갈비에 묻혀버린 삼각점을 찾아서 이리저리 솔갈비를 뒤져본다

드디어 찾았다

175.9봉 정상 삼각점(433복구 / 건설부 74.10)

삼각점에 표시된 것과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팻말의 삼각점 숫자가 다르다

삼각점에는 ‘433 복구’이고, 팻말에는 ‘문경 450’이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와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내리막길에는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이고...

급경사의 내리막에서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내리막길에 조금 더 내려서니 뚜렸한 임도가 나온다

좌측에 묘지가 있고...

전주이공&양천허씨 묘(11:15)

넓은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태양광 지붕을 한 축사가 있으나 소는 한마리도 안 보인다

과수원을 끼고 농로를 따라서 걸어가는데 우측으로 함창명주테마 파크및 박물관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함창명주테마파크 및 박물관의 모습

전통적으로 최고의 옷감은 명주인데 이는 은은하고 고급스런 광택으로 일찍부터 주요 수출품이기도 했다.

원료가 되는 누에는 생육환경이 까다롭고, 이것으로 실을 뽑아 옷감을 짜는 일은 여인의 인내를 필요로 했다.

함창 명주테마파크는 박물관, 공장, 개방 공원 등 다양한 시설이 있어 시민들의 문화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명주 제작 과정뿐 아니라 누에고치, 누에로부터 탄생하는 나비까지 다양한 볼거리와 간단한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명주(明紬)는 명(明)나라에서 들어온 견직물(絹織物)이라 명주라 하는데, 견사(絹絲)를 사용하여 짠 직물을

말하며 견사(silk)는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이다. 스카프 한 장 만드는데 누에고치 200개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뽕나무밭인 갈림길에 10시 방향으로 꺽어진다

함창명주테마파크 뒷산인 206.4봉의 모습

뽕밭 너머로 바라본 함창 명주테마 박물관

시멘트 도로 사거리(11:20)

연구용 뽕밭들이 보이고...

삼백의 고장 상주(州)

삼백(三白)은 누에, 쌀, 곶감을 말하는데, 곶감이 삼백(三白)에 들어가는 이유는 곶감이 마르면 하얀 분이

올라온다고 白에다 넣었네. 함창명주는 함창읍과 이안면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명주인데, 우리나라 전통

명주의 95%를 차지하는데 그래서 명주하면 함창이란다.

우리나라 3대 대표 전통 옷감이 있는데, 한산모시, 안동포와 함께 이 함창명주가 들어간다

함창명주테마파크 및 박물관을 바라보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맥길은 휀스 철책이 등로를 막고 있어서 우측으로 우회를 한다

U모텔  담장을 끼고 돈다

휀스의 가장 낮은 곳을 끼고 모텔 마당으로 들어선다

U모텔(11:23)

모텔 마당을 지나 우측으로 향하는데 좌측 위의 절개지가 맥길이다

쿠치나13Y 펜션(11:25)

펜션 좌측 능선이 맥길이다

쿠치나13Y 펜션을 벗어난다

T자형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꺽어지니 좌측에 운산원이 보인다

운산원(雲山園:11:28)

운산원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우측에는 대한콘크리트 표시석이 보인다

명실상감한우 북상주점을 지나 ...

32번 국도를 만나 좌회전을 한다

함창 삼거리(11:32)

상주시 함창읍(咸昌邑)은 상주시에서 동북방향 19㎞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함창읍은 편리한 교통여건으로

인하여 논공단지에 각종 업체가 입주하고 있고 농업과 상업이 주를 이루고 있는 전형적이 농촌도시이다.    

고령 가야국의 도읍지로서 전통과 예절이 숨쉬고 있는 지역이며, 전통 명주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옛 왕도의 성산인 재악(작약), 대가산, 숭덕산, 오봉산, 봉황대, 태봉, 덕봉, 막구리산 등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어

광활하고 비옥한 평야를 이루며 이안천이 동류하는 산세수려한 천혜의 고장으로 상주의 유일한 읍으로서 동쪽은

사벌과 공검면, 서쪽은 공검면과 이안면, 북쪽은 문경시와 접경하고 있으며 농업과 상업이 적절히 조화되어 있으며

남북으로 김천과 문경을 잇는 경북선 철도와 국도 3호선(4차선)이 시원하게 통과하고 중부내륙고속도로 함창 IC가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고대 고령 가야국의 도읍지이며 신라시대에는 고동람군(古冬欖郡) 또는 고릉(古陵), 고녕(古寧)에

속하였다가 고려 함녕군(咸寧郡, 964년) 상주목에 속한(1018년) 뒤 함창으로 고쳐졌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함창현(咸昌縣, 1413년) 함창군(咸昌郡, 1895년)으로, 1914년 4월 상주군 함창면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고 1980년 12월 1일 대통령령 제 10050호에 의거하여 함창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충효의 고장인 함창읍의 주요 유적지는 증촌리 석불 좌상, 증촌리 석불 입상, 전 고령가야왕릉, 오봉산 고분군,

함창향교, 증촌리 입석, 용화사, 봉황대, 임호서원, 용화사 탑, 남산 고성 등이 있다.

함창 삼거리에 있는 오방지리라는 카페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뒤돌아 본 함창 삼거리의 모습

도로가 맥길이다

버스 정류장도 지난다

석회석과 흑연을 생산하는 함창 탄소 간판을 지난다

평창송어와 약천송어 횟집도 지나고...

어렸을 때 자주 접했던 情感이 가는 간판

똘이는 다 커서 도시는 나간 모양이다...조용하다

도로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구향4리 버스 정류장(11:45)

원래는 함창군 현내면 지역이었으며  향교가 원래 이 곳에 있어 구향리라 한다고도 하고, 함창현청이 있었기

때문에 구향이라 한다고도 한다. 1914년 구아리(舊衙里)·금취리(琴吹里)·건통리(件通里)·증촌리(曾村里)

일부와 북면의 성동리(城東里)를 합하여 구향리가 하고, 함창면에 편입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좌측 골목으로 들어가면 함창중앙 초등학교 가는 길이다

구향 4리에 있는 바탕골 마을 입구

옛 고량가야국의 가장 중심지여서 바탕골이라 한다 하기도 하고, 모든 도로가 이 곳을 기점으로 통달해서 부른다고 한다.

함창역이 있고, 서쪽에 방우재들이 있으며, 뒤에는 붉은 디기라 불리는 언덕이 있다.《‘건통‘과 비슷한 말에 ’건턱‘이

있는데 ’언덕‘이라는 뜻이다.

 ’바탕‘은 ’근본‘이라는 뜻도 있지만, ’활을 쏘아 살이 미치는 거리로 길이를 재는 단위‘도 ’바탕‘이다.》

직진길은 경북선 철길이 가로막고 있어서 지하도로 내려간다

경북선 철길 지하도(11:47)

지하도를 건너자마자 계단으로 올라간다 

지하도로 올라와서 본 경북선 철길

경북선(慶北線)은 경부선 김천역과 중앙선 영주역을 잇는 한국철도공사의 단선 철도 노선이다.

이 노선은 상주시, 문경시, 예천군을 경유하는데, 연선 여객 수요가 적어 폐역이 14개 역으로 많다

철길 담벼락을 끼고 걸어간다

우측 감나무밭 가운데로 향한다

동네옆 감나무밭에는 까치밥으로 걸려있는 홍시 2개를 따먹고 허기를 면한다

구향리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마을길 가운데가 맥길인데 참으로 難解하다

반사경을 보면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골목 끄트머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함창초등학교 골목이 나오고 쪽문이 보인다

함창초등학교(11:55)

학교를 빠져나와 정문으로 빠져 나온다.

오늘은 등로가 함창읍내를 관통하기에 베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매식을 하기로 하고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는데 이곳은 읍내 중심이 아닌 외곽이다 보니 식당이 보이질 않는다

이곳 주위를 한참을 돌아다 봐도 식당이 보이지 않아 점심 식사가 된다는

찜닭집을 들어 갔는데 요리시간이 30분정도 걸린다고 하며 2인분 이상이라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건 결론적으로 말하면 1인분은 안팔겠다는 얘기이다...나는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

하는 수 없이 편의점 안으로 향한다 

점심시간(12:00~12:35) 

컵라면 하나에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떠난다 

천왕사라는 절집도 보인다 

LH천년나무 아파트 정문(12:37) 

아파트 담벼락을 끼고 우측으로 향한다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윤직 삼거리(12:47) 

상주시 함창읍에 있는 윤직리(允直里)는 경지가 넓게 분포하는 농촌마을로, 작은 하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곳이다.

자연마을로는 윤직, 머리미, 당교, 하신기, 양짓마마을 등이 있다. 윤직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머리미마을은 머리처럼 생긴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교마을은, 신라를 치려던 당나라 군사들에게 김유신 장군이 잔치를 베풀어 술에 취하게 한 뒤에 모두 죽여

묻은 다리가 놓여 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하신기마을은 문경군 점촌읍 모전리의 상신리 아래쪽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양짓마마을은 볕이 잘 드는 양지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3번 국도를 무단횡단한다

뒤돌아 본 윤직삼거리의 모습 

새마을 벽돌 공장 간판을 바라 보면서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가족들이 김장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골목안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문경황토벽돌공장도 지난다

도로를 따라서 가는 길에 좌측으로 새마을이 보이는데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개를 지나니 윤직육교가 나온다

윤직육교(12:58)

육교 아래로 함창과 점촌을 잇는 3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윤직육교에서 바라본 3번국도 점촌쪽의 모습

윤직육교를 지나 지하차도를 빠져 나간

지하차도를 빠져 나와서 함창읍 덕통리로 들어선다

수확이 끝나지 않는 콩밭이 보인다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진다

직진으로 가면 윤직리 구역터로 가는 길이다.

구역터는 덕통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윤직리의 머리매 남쪽 산 너머 마을이다.

덕통역이 이 곳에 처음 설치되었다가 덕말로 옮긴 뒤 마을을 구역터라 불렀다 한다.

대마(大馬) 2필.중마(中馬) 2필. 소마(小馬) 4필과, 역리(驛吏) 45명. 비(婢) 11명이 있었다.

고개(13:03)

고개 좌측 윗쪽이 97.9봉이나 별의미가 없어서 그냥 도로를 따라서 간다

덕통2리 갈림길(13:05)

상주시 함창읍에 있는 덕통리(德通里)는  경지가 넓게 분포하는 평지에 자리한 농촌마을로, 작은 하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곳으로 덕통역이 있었으므로 덕통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덕통, 삼거리, 옻샘,

양지뜸, 비석거리마을 등이 있다. 덕통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덕통리의 그것과 같

으며 역말이라고도 불린다. 삼거리마을은 앞에 세 갈래의 길이 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옻샘마을은 옻

오른 데에 좋다는 샘이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양지뜸마을은 볕이 잘 드는 양지에 자리한 마을이라

칭해진 이름이며, 비석거리마을은 비석이 많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농로 가운데를 따라서 걸어간다

동쪽으로는 점심을 먹고 지나온 함창 LH천연나무 아파트가 보인다

이곳도 수확을 하지 않은 콩밭이 보인다

시멘트로 도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향한다

묘지를 지나고...

샘골마을 입구(13:10)

상주시 함창읍 오동1리((梧桐1里)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샘골의 동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장마나 가뭄에도 수량이 같고, 여름과 겨울 없이 항상 차고 맛이 좋은 샘이 있어서 샘골이라 전해진다

샘골 입구를 지나니 태양광 단지가 많이 보인다

도로 우측으로는 함창 제2논공공단이 조성중이다  

현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구하면서 태양광을 집중 육성하는데 과연 옳은 정책인지?... 

함창 제2 논공공단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태양광 너머로 보이는 함창읍 오사리(里)의 모습

함창읍에 있는 오사리는 경지가 넓게 분포하는 농촌마을로, 작은 하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곳이다.

큰 우물이 있으므로 오수물 또는 오손물이라 불리다가 오사리가 되었으며 자연마을로는 오수물, 셋집마,

송동, 약샘, 숲앞, 탑들마을 등이 있다. 오수물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오사리의 그것과 같다.

집마마을은 세 가호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송동마을은 소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약샘마을은 약물이 났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고, 숲앞마을은 앞에 숲이 무성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탑들마을은 작은 탑이 있는 들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논공공단 휀스를 따라서 걸어간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함창 제2논공공단을 지나 맥길에서 약간 떨어진 92.4봉으로 가본다 

영양남공 묘지를 지나 92.4봉으로 향한다 

92.4봉( 13:20)

속된말로 별볼일이 없는 봉우리라 실망스럽다

92.4봉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함창 제2논공공단의 모습  

 우리 종씨 묘지도 보이고...

평산신씨 갈마산공파 기념비를 지나... 

맥길인 도로로 내려선다

시멘트 도로 사거리를 지난다 

삼백의 고장답게 감나무밭이 많이 보인다 

추수가 끝난 들판 너머로 지난주에 시작한 운달지맥 능선이 보인다 

목장을 지나 직진으로... 

도로 삼거리(13:30)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태양광 단지가 맥길을 막는다 

우측으로 우회를 한다 

논두렁을 가로질러... 

 축사 옆으로 향한다

과수원으로 올라간 다음에...

겨울 준비를 하는 복숭아밭을 가로 질러 올라서니...

시멘트 농로가 나온다

조금전에 지나온 태양광 단지를 뒤돌아 본다

까치밥 2개를 실례(?)한다

서리를 맞아서 그런지 홍씨가 아주 달콤하다

감나무밭을 지나 137.2봉으로 향한다

137.2봉(13:40)

137.2봉 아래에는 석등과 석인석(石人石) 2기가 양 옆에 있는 묘지가 있다 

석인석은 능묘 앞에 세우는 피장자(葬者)를 수호하는 상징물의 하나로서

돌에 조각한 사람의 형상을 말한다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이라고도 석인석의 유래를 보면 왕족() 등이

능묘()를 더욱 장엄하고 권위 있게 꾸미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문무()인의

석상이 고인()을 영원히 수호()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는데 중국에서는

한대()부터 예를 볼 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신라 성덕왕릉()에

처음으로 설치하였는데, 석인에는 신라시대 이래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문관석이고 하나는 무관석이다.

 

문관석을 문인석(), 무관석을 무인석()이라고도 하여 반드시 대를 이루어 설치한다.

신라 왕릉 중에서 석인이 있는 능은 성덕왕릉, 괘릉, 흥덕왕릉이다.


1916년의 조사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도 38개의 왕릉이 있었다고 하나 이들은 심한

손상을 입어서 원형대로 있는 것은 드물고, 조선시대 왕릉에는 빠짐없이 문무인석이 한 쌍씩

설치되어 원형이 유지되어 있으나 그양식은 공민왕릉의 문무인석 양식을 모방하여 일률적이다.

문인석은 관을 쓰고 관복을 입으며 홀()을 들었고, 무인석은 갑옷을 입고 직립()하여

장검()을 잡고 있다 

일반적인 형태및 특징을 보면 16cm 높이의 사각() 위에 서 있는 입상인데 동글동글한 얼굴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크고 넉넉한 귀와 입가에 띤 엷은 미소가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양손은 가지런히 가슴 앞으로 모으고 있다. 사각기둥형태의 돌을 깎아 조각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해 조각표현이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는 편이다

묘지에서 내려선 다음에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안부(13:45)

좌측으로 내려오는 임도와 합류를 한다

임도를 가로질러 내려간다

조그만 고개로 내려서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땅재이다

우측 아랫쪽엔 덕통 마을이 보인다

땅재(13:50)

함창읍 덕통리 덕통산 동쪽에 있는 고개로 덕통에서 뒷골로 가는 길에 있다.

‘땅’은 ‘성질이나 특징의 정도가 아주 심한’뜻이 있다

좌측으로 꺽어져 시누대가 있는 小路를 따라서 간다

소로를 따라서 가다가...

가정집 마당을 지나간다

마을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향한다

맥길이 지나가는 상주시 함창읍 덕통리 덕통(德通)마을

조선 세조 8년 8월 5일 병조(兵曹)의 건의로 각 도의 역참을 파하고, 역로를 정비할 때

영남에서 서울로 토하는 유곡도(幽谷道) 찰방(察訪)에 딸린 덕통역(德通驛)이었던 마을이며

덕봉(德峯) 아래에 위치하였으므로 덕통이라 하였으며, 옛날 덕통부곡(德通部曲)이 있었다.

도로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축사를 끼고  마을 도로를 따라서 간다

봉굴재(13:55)

함창읍 척동리의 작골 북서쪽과 범골 남서쪽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고개 아래로 내려서니 도둑넘을 비롯한 잡풀이 산꾼을 상당히 괴롭힌다

잡풀의 횡포(?)를 견디면서 추수가 끝난 들녘으로 내려선다

논두렁을 걸으면서 가야할 태봉산을 바라본다

도로(13:58)

함창읍 척동리와 태봉리를 연결하는 도로이다

농로를 따라서 태봉산을 바라 보면서 걷는다

척동리 들녘 너머로 12월 중순쯤에 걸어야 할 운달지맥 끄트머리가 보인다 

수확이 끝난 들녘에는 공룡알이라 부르는 볏집들이 많이 보인다

비단뜰 제2농장(14:05)

수확이 끝나지 않은 콩밭도 지나고...

물이 빠진 연꽃밭도 지난다

도로(14:08)

이 도로는 예천군 풍양면과 용궁면,상주시 사벌면에서 함창과 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작약(이안)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태봉산으로 향한다

농장 입구에서 좌측의 급경사로 올라간다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만나고...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가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태봉산 정상을 지키고 있다

태봉산 정상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흔적

태봉산(胎峯山:105.9:14:16)

상주시 함창읍 태봉리 들녘 가운데 섬처럼 우뚝솟은 산이 하나 있는데 작약(이안)지맥의

마지막 산으로 이안천 북쪽과 작골 남쪽의 태봉들 가운데 있는 태봉 마을의 남쪽에 있는데 태봉산이다.

 

 태봉산은 관천(串川)과 이안천(利安川) 사이의 들판에 홀로 서 있으며, 조선 광해군 원년(1608)에

왕자(공주:1)의 태를 봉하였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가 없다. 아무런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1932년 태실은 도굴을 당하여 1970년 초까지는 태함(胎函)과 비석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무

흔적이 없으며 산 아래에 있던 태봉 마을에 일제시대 일본군 병참이 있어서 1896년 3월 29일부터

이틀 동안 안동. 예천. 봉화. 영천(영주). 제천의병이 예안의병의 선두로 이 곳을 공격했으나 무기의

현격한 차이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 때 예안의병은 영양 청기에서 중군(中軍)으로 초빙되어 온

벽산(碧山) 김도현(金道鉉)이 지휘했었다. 예안의병은 1896년 1월에 첫 대장인 이만도(李晩燾,

퇴계 11대 후손)에 의해 조직되었다. 마을은 그 후 갑술년(1934) 홍수의 피해로 지금의 태봉 마을로 옮겨 갔다.

옛 고령가야국과 함창현의 지역으로서 함창읍 태봉리에 있는 태봉산은 이안천(利安川)과 합수되어

낙동강을 이루는 합수 지점의 평야에 돌출되어 있는 산으로서 태봉산 이외에 고산(孤山), 료도(寥島),

투구봉으로 불려 지고 있으며, 영남대로와 접하고 있어 예부터 대로의 길잡이 역할을 하여온 산이다.

 

이 산 아래에는 태봉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갑술년(1934년) 대홍수로 인하여 마을 전체가 유실되어

현재의 태봉 마을로 집단 이주를 하였다. 태실이 있었던 정상 부근에는 민묘가 조성되어 있고 태실은

서삼릉으로 이봉함에 따라 태실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 태실은 선조의 12남 인흥군(仁興君 1604~1651)으로서 는 정빈민씨(靜嬪閔氏)이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물은 태항아리와 태자석이 있다.

태봉산 아래에 있는 묘지

조금을 더 내려오니 또 다른 묘지가 나온다

갈비(솔잎)가 수북한 등로로 내려선다

산을 내려선다

들판 너머로 아안천 제방을 바라 보면서 걷는다

비닐하우스 가운데를 지나고...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를 다시 만난다.

도로가 맥길이다

태봉 들녘에는 양파도 많이 심는 모양이다

도로를 걸어면서 뒤돌아 본 태봉산의 모습

이안천 제방으로 올라서니 금곡교가 보인다

잡풀이 무성한 이안천의 모습

금곡교(金谷橋:14:40)

대부분의 맥꾼들이 이곳 금곡교에서 작약(이안)지맥을 종료하지만 난 원칙대로 합수점까지 간다

금곡교를 지나 자전거 길을 따라서 간다

이안천 너머 저 멀리가 지난주에 마무리한 숭덕지맥 끄트머리이다

금곡교 너머로 보이는 봉황대(鳳凰臺)의 모습

상주시 함창읍 신덕리에 있는 봉황대 앞에는 예전에 봉황나루터가 있었다.

상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옛길 영남대로가 강을 건너는 곳으로 현재의 금곡교 저편에서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 태봉산 자락을 돌아 함평현으로 이어지는 영남대로가 바로 여기를  지나간다

신덕 배수장(14:43)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간다

좌측에는 엄청나게 큰 골재 야적장이 있다

산꾼은 산을 걸어야 하는데 도로를 따라서 걸으니 발바닥이 엄청나게 아프다

배수장 갑문(14:58)

금곡교에서 이곳까지 약 1.5km 가까이 걸어와서...

합수점으로 내려간다

영강(潁江)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중벌리에서 발원하여 사벌면 퇴강리에서 낙동강에

유입하는 하천으로 동쪽으로 흐르며양산천, 조령천, 가도천, 이안천을 합류한다.

주변의 높은 산지가 만들어 준 쌍룡계곡·용추계곡 등이 있으며, 문경팔경 중 제1경인

진남교반()은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영강' 지명은 그 정확한 유래를 확인하기 어려운데, 『여지도서』(상주)에 "영수는 관아의 북쪽 45리에 있다.

문경 용연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여 삼탄으로 들어간다."라는 관련 기록이 확인된다.

『해동지도』·『청구도』·『1872년지방지도』 등에 물길은 표시되어 있으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데

현재의 물길과 비교해 보면, 상주 북쪽 경계를 흐르다가 이안천을 합류하며 낙동강에 유입하는

관천()이라고 표시된 물길이 영강 흐름과 거의 같은 위치와 방향을 유지하고 있어 관천이

영강 지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동여지도』에는 현 영강의 발원처인 속리산과 청화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

삼탄 인근에서 낙동강으로 유입하는 관천이 잘 표시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함창)에는 "관천()은

현 동쪽 7리에 있다. 문경현 견탄()의 하류로서 남쪽으로 흘러 용궁현의 하풍진()과 합쳐진다."라고

하여 현 영강의 일정 구간을 관천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합수점으로 가는 길

이안천이 영강으로 합쳐지는 합수점에는 철새들이 참으로 많이 보인다

이안천(利安川)은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 형제봉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화서면 북동쪽을 꿰뚫고,

내서면 서원리에 이르러 북동쪽으로 꺾여 흘러서 공검면 서북쪽을 지나 이안면 여물리에 이르고,

여기서 동쪽으로 꺾여 함창읍 금곡리 마을 앞에서 영강으로 들어간다.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다(15:05)

백두대간 속리산 형제봉 아래에 있는 갈령 삼거리에서 이곳까지 같이온 작약(이안)지멕길은

이안천이 영강으로 흡수되면서 그 임무를 다하고 나 역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맥길 하나를 끝낼 때 마다 느끼는 喜悅은 참으로 남다르다.

내가 걸을 수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기에...

인증샷

합수점에서 금곡교까지 약 2km 가까이를 되돌아 가야 하는데 도로를 따라서 걸었던

자전거 포장도로가 발이 너무나 아팠다...합수점에서 이안천 건너 제방둑이 가까워 보였고

팔각정에 잔차족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고 이안천 물길도 얕아 보여 그쪽으로 간다.

 

이안천의 물길을 3번을 건너야 하는데 2번째를 건너다가 여름철에 떠내려온 풀섶에

갇혀버려 오도가도 못하고 10여분 정도 헤매다가 겨우 빠져 나온다 

3번째의 이안천 물길은 그냥 건널 수가 없어서 결국은 등산화를 벗어야만 했다.

깊은 곳은 물이 무릎까지 차 오른다...맨발로 물길을 건너고 풀섶을 헤치면서

잔차 제방둑으로 올라오니 휴식을 취하면서 나를 쳐다보는 잔차족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데, 나도 내가 이상해 보이는데 쳐다보는 사람이야 당연하겠지...  

제방둑에 있는 잔차 도로 안내판

팔각정(15:45)

이안천을 건너온 내 몰골은 완전히 거지꼴이다

이곳에서 옷에 묻은 이물질을 털어내고 옷을 갈아입고 베낭을 정리한 다음에 제방길을 걸어간다

제방길 자전거 도로를 걸어 가면서 바라본 이안천의 모습

제방둑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트럭 한대가 시동을 걸고 있기에 밑져봐야 본전이지

생각하고 점촌가서 서울가는 버스를 타야하는데 좀 태워 달라고 하니까, 자기는

함창을 갈려고 하는 중이란다...함창까지라도 좀 태워 달라고 하니 타라고 한다.

그러더니 함창이 아닌 점촌터미널에 나를 태워주고 함창으로 향한다.

함창과 점촌은 상주시와 문경시에 있지만 시 경계에 맞붙어 있는 동네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터미널로 들어 간다 

점촌발 → 서울 경부터미널행 버스표

점촌 터미널에 도착하니 16시 05분이다.

16시 25분에 동서울로 가는 버스표는 매진이 되었고, 강남으로 가는 버스표만 있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하여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터미널 안의 분식집에서 계란 2개와

오뎅 2꼬치로 배를 채운 다음에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