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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내성(문수)지맥(終)

내성(문수)지맥 제5구간 - 백현고개에서 오치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20. 5. 11.

☞ 산행일시: 2020년 05월 10일

☞ 산행날씨: 비 온후 날씨는 청정하나 흐린 날씨에 짙은 안개가 간간히 속을 썩임

산행거리: 도상거리 18.2km / 9시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백현고개-400봉-ㅅ합류점-월전리 갈림길-439봉-조운산 갈림길-조운산

                   다시 조운산 갈림길-운곡고개-470봉-464봉-묘지-480봉-암봉-신전고개

                   송전탑-예천임공 묘-새터고개-470봉-485.1봉-무시골재-제1주차장

                   묘지-묘지-안부-난가대-군부대 철조망-갈림길-약수터-당재 갈림길

                   삼모봉-유선봉-국사봉-안부-학가산성 터-갈림길-무명봉-무명봉-갈림길

                   남영사지 갈림길-묘지-상사바위 갈림길-당재-안부-620봉-무명봉-무명봉

                   원통재-묘지-525봉-묘지-묘지-무명봉-575.1봉-안부-갈마령-안부

                   577.8봉-갈마봉-안동권공 묘-암봉-보문산-안부-중대바위-안부-440봉

                  안부-340봉-시멘트 임도-보문터널 위-오치고개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북후면, 서후면. 풍산읍 / 예천군 보문면

 

 

원래 이번주에 수헌.진권아우와 함께 제천(갑산)지맥을 가기로 했는데 아그들이 연락이 없다.

다들 산에 대해서는 한가닥 하는 친구들이라 공사다망하다.

토요일 오후까지 기다려도 아무런 연락이 없고, 제천지역은 일요일 오전까지 비가 온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지난해 연말에서 4구간을 끝내고 미뤄놨던 5구간을 하기위해 토요일 저녁에 베낭을

챙겨서 안동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경부고속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안동행 버스표

18시 40분발 안동가는 버스

코로나인가 지랄같은 역병에 대한 사람들의 경계심이 한층 느슨해진 느낌이다

3월과 4월 중순에 비해 확실히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느낌이다

예전에는 안동가는 버스를 타면 손님이라곤 기껏해야 5~6명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滿車이다

물론 탑승객의 감소로 인해서 노선을 대폭 줄인 영향도 있지만 그렇다치더라도 유동인구가 많아졌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표를 예매하는데 표가 달랑 한장 남았고, 그것도 맨 뒷좌석이다

덕분에 10% 할인을 받아서 22,200원인 차표를 20,000원에 가는 행운(?)을 누린다

안동터미널(21:30)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평택~제천간 고속도로 천등산 휴게소에서 10분정도 정차한

다음에 다시 중앙고속도로에 들어선 후 2시간 50분만에 안동터미널에 도착한다

서울로 귀경하는 버스노선 시간표

현재의 상항으로는 이 시간표는 무의미하다...차량이 대폭 단축되었다 

터미널에서 안동역이 있는 구시가지로 향한다

안동 터미널이 있는 이곳은 최근에 생긴 신시가지라 아무것도 없고 허허벌판에

터미널만 있는 형편이라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많은 안동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간다

안동역 담벼락에 있는 그림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느낌이다

안동역(10:00)

도시의 명성에 비해 안동역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안동역 마당에 있는 노래비

요즘 미스트 트롯에서 한참 뜨고있는 영탁이의 고향이 이곳이랬지

범여는 요즘 유투브로 영탁이의 막걸리 한잔 노래를 듣는 재미로 살지 

역앞 삼거리에는 초파일 봉축 장엄 석탑이 보인다

초파일이 지난지 열흘이 지났지만 코로나 땜에 올해는 윤사월 초파일인

5월 30일날 제등행렬을 하기로 했어 남겨논 모양이다

덕분에 부처님께서는 올해 생일상을 2번 받는 행운(?)을 누리시는구나

휴모텔(22:10~05:00)

지난해 1월 위천(보현)지맥할 때 이용했던 역 건너편 골목 안동찜질방을 가려니 코로나 땜에 찜찜하다

그래서 안동 갈비찜 골목에 있는 모텔로 들어가 요금을 흥정하는데 새벽 5시에 나가야 하는데

요금을 좀 깍아 달라고 하니 현금을 주는 조건으로 30,000원을 25,000원 하기로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도로로 나오니 정류장 앞에 김밥집이 있다.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점심때 먹을 깁밥 한줄을 사서 베낭에 넣고 나온다 

안동의 대중교통은 외지 사람들에겐 참으로 불편하고 헷갈린다

내가 가야할 옹천이란 곳으로 가는 버스는 354번 버스인데 첫 차가 05시 50분이다

그런데 이 버스는 계실이란 마을을 거쳐 빙빙 돌아가며. 06시00분에 옹천으로 출발하는 버스가 훨씬 빠르다

06시 00분에 출발하는 똑같은 354번 버스는 옹천을 가지 않으니 버스기사에게 꼭 물어보고 타야한다

 

옹천 버스 정류장(06:30)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옹천리(瓮泉里)는 마을 북서쪽으로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마치

단지처럼 생겼다고 하여 옹전()이라 하였으며 마을을 가로지르는 옥계천이 맑고 깨끗하여

옥천()이라고도 하였고, 마을에 물맛이 좋기로 이름난 샘이 있어 옹기 ‘옹()’자와 샘 ‘천()’자를

써서 옹천()이라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교통의 중심지로서 안기도() 찰방이 관할하는 옹천역()이 있었으며,

지금도 중앙선이 지나는 옹천역()이 있다. 옹천역은 1941년 7월 1일 보통 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고, 1997년 12월 31일 역사를 신축하였다. 인근에 ‘기찻길 속으로’라는 공원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독벼루(옹천,옥천), 글럿골, 땅마, 밤실(율곡), 쑤배께, 원구렁, 한짓골, 홰나뭇골 등이 있다.

 

독벼루는 독처럼 생긴 벼랑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옹천이라고도 하였는데 후에 옹천리가 되었다.

글럿골은 지형이 굴레처럼 생겼다고 하며 쑤배께는 숲이 있었는데 그 밖이 된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문화유적으로 봉서암(봉서사), 옥천역터 가 있다.

안동역 앞에서 이곳까지 버스를 나혼자 타고온다

버스는 나를 내려주고 되돌아 나가고 잠시후에 예약한 택시가 와서 백현고개로 향한다

그런데 이 택시가 일반 산행을 하러온 등산객인줄 알고 학가산이 있는 신전리쪽으로 향한다

아저씨 지금 방향이 다른 것 같은데요?...하니까 어르신 학가산 가시는 거 아닌가요...

그러더니 착각을 했다고 하면서 차를 돌려서 백현고개로 향하고 잠시후 도착하는데

미안해 하면서 택시비가 18,000원 나왔는데 자기 실수라며 12,000원만 받는다.

그런데 어르신이라니...택시기사 나이를 물으니 60이란다...도찐개찐인데 어르신이라니...

아무래도 흰 머리를 염색해야 할 듯 싶다

나를 태워주고 되돌아 가는 옹천택시

백현고개(白峴:374m:07:00)

안동시 서후면 재품리 백현마을과 북후면 월전리 고지절 마을 경계에 있는 고개로

928번 지방도가 지나가는데 주위에는 과수원이 많이 보이고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있으나 교통량의 거의 없는 편이다

예전에는 자품리로 불리웠으나 2017년부터 재품리(里)로 지명이 바뀌었으며

지명의 유래는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재품리 백현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

서후면 재품리에 있는 백현마을은 북쪽에 흰 운모석이 나는 광산이 있는데, 운모를 실어

나르다가 흘려서 고개가 흰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걸 어쩌나?

산행을 하려고 장비를 점검하면서 스마트폰의 오룩스 맵을 켜고 파일을 여는데 에러 메시지가 뜬다

스마트폰 끝다가 재부팅을 해도 마찬가지이다...이것 어쩌나...맥길은 대간이나 정맥길과는

달리 지맥길은 트랙이 없으며 진행하기가 쉽지 않은데...장님 문고리 잡는 심정으로 길을 나선다.

다행히 출발하기전에 꼼꼼히 기록한 선답자의 산행기를 읽은 것을 생각하면서 걷는 수 밖에...

길을 나서다(07:10)

백현고개 축대위에 올라서니 묘지가 나온다 

빛바랜 선답자의 흔적을 만난다.

오늘은 아무래도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의지하면서 걸어야 할 듯 싶다

능선에 올라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공기가 맑아 나같은 기저환자는숨쉬기 훨~수월하다

그러나 나뭇가지에 묻은 빗물로 인해 옷은 금새 다 젖어 버렸다

계속되는 오르막

400봉(07:20)

우측으로 살짝 꺽어졌다가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ㅅ 합류점(07:22)

좌측에서 넓은 등로가 보이는데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에서 올라오는 등로이다

 

도촌리(里)는 천등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송야천이 흐르며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농촌 마을로 뒷걸(도계), 가는골(세곡,장곡,장골),

부룻골(부루골,불로곡), 서당곡(서당골), 옥산골(옥산곡) 등이 있는데 뒷걸은 송야천 뒤쪽

냇가가 되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후에 도촌리가 되었으며 가는골은 길고 가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고 부룻골은 주위 산의 형상이 부루잎(상치)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당골은 예전에 서당이 있었다고 하며 문화유적으로 도계서원, 양괴정터 등이 있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우측으로 빠지는 넓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좌측으로 꺽어지자마자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저렇게도 죽고 못사는 사이일까?

월전리(月田里) 갈림길(07:26)

안동시북후면에 있는 월전리(月田里)는 동산마에 있는 동산을 중심으로 반달처럼 생긴 계단식

밭이 있어 월전(, 일명 달밭)이라 하였는데 자연마을인 큰마(일명 대촌)는 임진왜란 때

서애(西) 류성룡()이 머물렀다고 전해지며, 김학달()과 이여송()의

원군이 왔을 때 피난민이 모여 300가구 정도의 큰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평()은 비교적 넓은 들이 있는 곡창지대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오른쪽 낮은 능선을 따라 나무숲을 이루었던 곳을 쑷등모테, 왼쪽 양지쪽을 양지모테라 부른다.

고지절(일명 탑모테)은 고지사()란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나무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향이 너무 좋다

또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439봉(07:29)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등로 좌측 아래는 깊은 계곡이 보인다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이장(移葬)을 한듯한 묘터의 흔적이 보인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고 올라간다

조운산 갈림길(07:38)

조운산은 지맥길에서 우측으로 300m정도 떨어져 있으나 갔다 오기로 한다

조운산 오르는 등로 좌측의 소나무숲은 송이밭인 모양이다

조운산 오름길 암릉구간은 비에 젖은 탓인지 상당히 미끄럽다

철쭉도 이별을 준비하고...잠시후에 조운산 정상에 도착한다

조운산(山:634.5m:07:53)

안동시 북후면 월전리와 도촌리 신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아래에서 보면

송곳같이 뾰족 솟아있는 까칠한 산이나 정상에 오르면 그저 펑퍼짐한 산이다

정상에는 묘지 1기가 있으나 나무에 가려서 주위 조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북쪽으로는 월전리 갈미봉으로, 남쪽으로는 자품리 천등산으로 이어지며 산행인들에게는

문수지맥에 속한 산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문수지맥은 백두대간의 소백산에서 가지 쳐서 나온

산줄기가 봉화 문수산을 거쳐 안동의 파리봉, 요성산, 조운산 등으로 이어지고 다시 학가산,

대봉산, 검무산을 거쳐 예천 지보면 연화산으로 뻗어가는 지맥으로 설명되고 있다.

『여지도서』(예안)에 조골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골산은 본부 북쪽 40리에 있고

기우단이 있으며 동쪽의 예안 영지산(, 지금의 도산면 분천리 영지산)에서 산줄기가 이어졌고

남쪽의 본부 학가산에서 산줄기가 멈춘다."라는 기사가 있다. 『안동도회좌통지도』(안동)에 조골산

주위로 학가산, 천등산, 봉정사, 두모현(, 지금의 두무재)이 묘사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도 '북후면 월전동 조골산' 기록이 나온다.

 

다만 『조선지형도』에는 지금의 이름인 조운산()으로 표시되어 있다.

지금의 이름은 이 지도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를 제작하면서 잘못 표기한 것인지

혹은 좋지 않은 의미 때문에 의도적으로 바꾼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지역 사람들은 조운산보다는 조골산으로 부르고 있다

조운산 정상을 밟고 다시 왔던길을 되돌아 간다

조운산 갈림길(08:07)

넓은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잠시후에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 숲속으로 들어간다

트랙도 없이 깜깜이하는 산행 ...선답자들의 흔적이 왜그리도 반가운 지....

안부를 지나고...

조금을 더 진행하니...

운곡고개가 나온다

운곡고개(雲谷峴:08:13)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 운곡마을에서 도촌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운곡마을은 운골,군골,궁골이라고도 부르며  지대가 높아서

구름이 닿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문화유적으로 운학묘가 있다.

운곡 마을쪽의 모습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가 지저분해지기 시작한다

좀 이른것 같은데 떼죽나무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470봉(08:20)

안부로 내려선 다음에...

오늘 따라서 유난히 빨간 띠지가 맹탕으로 걸어가는 범여를 도와준다.

세상에 죽어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와송(臥松: 누워있는 소나무를 지나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비에 젖은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상상은 자유?

무명봉을 올라섰다가 내려서니 우측에  그물망이 처져있는 약초재배지가 나온다

그물망을 지난 다음에...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64봉(08:25)

가느다란 솔밭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묘지(08:26)

송이밭이 나오고 빛바랜 출입금지 플랑카드가 펄럭인다

이런곳은 송이가 많이 나올 듯 싶다

480봉(08:33)

또 다시 내리막길...소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향이 너무 좋다

안부를 지나고...

암봉(08:36)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안부 고개가 나온다

신전고개(08:37)

신전리 새터마을로 내려가는 고개이다

고개에 올라 능선을 조금 진행하니 송전탑이 나온다

송전탑(08:39)

송전탑 NO가 식별이 되지 않는다

송전탑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간다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암봉을 지나고...

안부를 내려선 다음에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을 지나고...

소나무가 있는 곳을 넘어서니...

가선대부 중추원의관(贈嘉善大夫中樞院議官) 예천임공묘(醴泉林公墓)가 나온다

예천임공 묘(08:45)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은 고종 32년(1895) 을미개혁 때 군국기무처를 폐지하고

중추원제(中樞院制)를 공포한 이후부터, 광무 9년(1905) 의관을 찬의(贊議)로 개칭하기 전까지

존재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직제로, 법률과 칙령을 심사 의정(議政)하는 기관으로

일종의 입법기관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자문 기관이었다.

 

의장•부의장 밑에 속하며 1•2•3등으로 나뉘고 인원은 50명 안팎이다. 자격은 칙임관•

국가유공자 및 정치•법률•이재(利財)에 대한 학식이 풍부한 사람들로서 내각회의를 거쳐 내각

총리대신의 추천에 의하여 칙선(勅選)으로 임명되었다

묘지를 낙엽이 푹신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등로는 좌측으로 살짝 꺽어지고...

묵은 묘지를 지나니...

안부 임도가 나온다

새터고개(08:50)

우측은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 새터마을이고 좌측은 안동시 서후면

재품리 간리 마을이 있으며 남서쪽이 풍산천이 흐르고 있는 곳이다

고개 좌측의 등로로 올라간다

470봉(09:02)

좌측으로 송이밭인지 입산금지 표지판이 보인다

계속되는 송이밭 표시 노끈

등로가 살짝 열리면서 가야할 학가산 난가대 보인다

485.1봉(09:08)

이곳에서 독도에 주의해야 할 듯 싶다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간다

벌써 松花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리막길은 마사토 지역이라서 상당히 미끄럽다

나뭇가지 사이로 학가산으로 오르는 시멘트 도로가 보이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공터가 보이면서 무시골재로 내려간다

무시골재(422m:09:18)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와 서우면 재품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학가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우측으로는 신전리 새터와 마구실(마곡)으로 내려가는 아스팔트 도로가 보인다

 

마구실, 마곡(麻谷)은 새마 (새터)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옛날부터 마(麻)를 많이 재배하여 붙은 이름이다.

다른 이야기로 마고 할머니가 영등 할머니와 같이 하늘에 오르기를 기도했는데, 이때 하늘에서 신령이

나타나 등천 방법을 일러주었다. 신령이 가르켜 준대로 바위굴에서 기도하며 살았다고 ‘마구실’이라 한다.

학가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동통신탑을 바라보면서 학가산 도로를 따라서 간다

도로 우측에는 묘지도 보이고...

도로가에 있는 산괴불주머니는 슬슬 이별을 준비한다

제1주차장(09:30)

말이 주차장이지 도로가에 한두어대 차를 댈만한 공간밖에 없다

병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주차장을 지나자마자 좌측 능선으로 치고 오르는데 아예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능선을 치고 오르니 잘 관리된 묘지가 나온다

묘지(09:37)

묘지 주위에는 고사리가 보이기에 베낭을 내려놓고 꽤 많은 고사리를 수확한다

각시붗꽃도 끝물이구나

얘기풀(꽃말:숨어사는 자)

영신초(靈神草)·아기풀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가 원산지이고 뿌리는 가늘고 단단하다.

줄기는 뿌리에서 여러 대가 모여나와 밑 부분은 비스듬히 자라지만 위쪽은 곧게 선다.

밑 부분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반관목성(半灌木性) 식물이며 전체에 잔털이 나 있다.

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되며 온포기를 과자금이라 하며 약재로 사용한다.

또한 줄기와 잎을 말린 것을 영신초라 하여 약재로 쓴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생즙을 내어 사용한다. 외상에는 짓이겨 붙인다

 

산과 들 양지바른 곳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는 밑에서 모여 나며, 곧게 서거나

비스듬히 서고, 높이 10-20cm이며 잎은 어긋나며, 타원형 또는 난형, 길이 1-3cm, 폭 0.2-1cm,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꽃은 4-5월에 피며, 총상꽃차례로 달리고, 자주색이고 꽃받침잎은 5장,

꽃잎처럼 보이며, 양쪽 2장이 보다 크며, 꽃잎은 3장이며, 밑에서 서로 붙으며 수술은 8개이고,

암술대는 2갈래로 갈라진다. 열매는 삭과이며, 둥글고 납작하다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달팽이의 사랑놀음

훤한 대낮에 뭔 짓거리여...부끄러운줄 알아야지

맥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는 뜻이겠지

나뭇가지를 헤치고 올라가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09:45)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선답자들의 흔적은 보인다

암릉구간이 길을 가로막고...

비에젖은 암릉구간은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구멍바위

무명 묘지를 지나고...

다시 급경사의 올막을 치고 오르는데, 맑은 공기 탓인지 컨디션은 굿이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힘들게 치고 오르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09:58)

능선 오름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花無十日紅이란 자연의 이치를 우리나라 정치판의 사람들만 모르는 듯 하다

자연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는 듯...앞으로 정치판에 입문하려면 최소 백두대간

3번은 종주한 사람 이상만 자격은 주는 건 어떨까.

정치판은 완전히 잡넘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으니...저 꽃들에게 어케 설명할까

비에 젖은 너덜길을 치고 오른다

낙엽길에 발목까지 빠지고...

능선으로 치고 올라서니...

철조망이 길을 막는다

철조망 안쪽에는 학가산문화환경연구소가 보인다

철조망을 따라서 간다

철조망을 따라서 우측으로 5분정도 진행하니 개구멍이 보인다

개구멍을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축대를 지나 올라가니 학가산 정상으로 향하는 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산불감시초소와 그 뒷쪽엔 학가산문화환경연구소가 있

어제 꽤많은 비가 온 탓인지 감시초소에는 지킴이가 보이지 않는다

난가대 옆에 있는 학가산 문화환경 연구소

학가산의 지리, 역사, 문화, 종교, 식생, 생업 등 한 개의 작은 산을 대상으로 종합적이고

깊이있는 연구를 하여 앞으로 일어날 학가산 종합 개발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 산림

생태 환경을 지키며 나아가 안동시민을 비롯한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진정으로 사랑받는

산으로 가꾸고자 만들어진 연구소란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라본 지나온 조운산과 신전리(里)의 모습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신전리는 마을 이름은 주위에 참나무 숲이 많이

우거져 있다고 하여 섶나무 ‘신()’자를 써서 신전()이라 하였다

 

천등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고도가 높은 편이다. 당곡지, 고지못 등이 있는 산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섶밭(신전), 구섶밭(구신전), 마우실(마곡), 북적골(북절골,북사곡,이동),

새마(신촌), 운골(운곡,군골,궁골) 등이 있는데 신전은 본래 섶이 많으므로 섶밭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된 것이며 구섶밭은 신전에서 제일 오래된 마을이다. 마우실은 삼이 잘 된다고 한다.

북적골은 학가산 북쪽이 되는데 예전에 북절이 있었다고 한다. 운골은 지대가 높아서 구름이 닿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유적으로 운학묘가 있다

난가대(爛柯臺:708m:10:20)

난가대는 송암 권호문 (松巖 權好文:1532~1587) 선생이 지은 이름이다.

난가(爛柯)라는 뜻은 바둑이나 음악 등에 심취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이 대(臺)에 오르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이 있음을 의미하는데 속된말로

말하면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는 얘기이다

 

송암은 퇴계 이황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일대 풍미했던 서애 류성룡( 西厓 柳成龍, 1542~1607),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백담 구봉령(栢潭 具鳳齡)과 함께 교분이 두터웠고 학행과 덕목이

높았던 문인이며 선비였다.

 평생 벼슬길을 거부하고 자연을 벗삼아 살았다 하여 스승 퇴계는 그를 ‘소쇄산림지풍(瀟灑山林之風)이

있다’는 인물 평을 남겼다...송암은 청성산 아래 무민제에서 학가산을 드나들며 학가산의 3봉(峰)과

3대(臺)의 이름을 지었고 일생을 학가산 사랑에 힘쓴 분이다

난가대는 안동시와 영주시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난가대 안내문

도로에서 바라본 난가대의 모습

학가산에는 삼봉과 삼대가 있는데 삼봉(三峯)은 학가산 정상으로 치는 국사봉(國祠峯),

동쪽의 유선봉(遊仙峯)과 삼모봉(三矛峯)을 이르며 삼대(三臺)는 삼모봉 동쪽 능선에 있는

학서대(鶴棲臺)와 난가대(爛柯臺), 그리고 지형도 상의 정상인 872m봉 북릉 초입에 있는

어풍대(御風臺)를 일컫는데 이 이름들은 안동지역에서 평생 벼슬길을 거부하고 학가산을

벗 삼아 살았다는 송암 권호문(權好文 1532~1587) 선생이 지은 것이라 전해진다

난가대 앞 사각정자 뒷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는 거의 보이지 않으나 선답자의 흔적이 맥길임을 알려준다

감사합니다

철대문옆 개구멍 안으로 들어간다

벙커 위를 지나서...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군부대 철조망(10:35)

이 문만 통과하면 KBS 송신소를 지나 등로와 시간을 확 줄이수 있는 곳이다

군부대와 KBS 송신소를 한 방에 통과할 수 있을까 하고 아무리 봐도 개구멍은 안 보인다

하는 수 없이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녹슨 철조망을 따라서 미끄러운 등로를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구멍 뚫린 철조망 아래로 내려간다

개구멍을 통과하여 사면길을 따라서 가는데 또다른 철조망이 길을 막는다

철조망을 따라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높이가 2m이상 되는 암릉 구간이 나오는데 그 아래로 개구멍이 보인다

이 개구멍이 없다면 한참을 돌아야 하는데 내려가는게 문제이다

베낭과 스틱을 아래로 던져놓고 뿌러진 쇠파이프와 나뭇가지를 이용해 내려간다

이 개구멍이 없었다면 한참을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한다 

철조망 개구멍을 통과하여 사면길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사면길을 지나니 학가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따라서 정상쪽으로 올라간다

갈림길(10:54)

좌측으로는 KBS 학가산 송신소와, 군부대 KT 중계기지가 있고 맥길은 우측으로 가야 한다

갑자기 몰려온 짙은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로위에 있는 KBS 학가산 송신소 철탑이 흐릿하게만 보인다

안개에 가려진 빨간 송신탑 있는 곳이 맥길인데 오를수가 없어니 아쉽기만 하다

학가산 정상에는 군부대, KBS, MBS, SBS 지상파 방송국 송신소와 KT 송신소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어 일반 등산객들의 접근을 전혀 할 수 없는 곳이다.

 

난 지상파 방송을 한 본지가 꽤나 오래된 듯 싶다

공영방송이라 자칭하는 지상파 방송국(KBS, MBS)들은 집권세력의 눈치 보느라

정권의 나팔수가 된 오래되어 공익적 개념을 잊어 버린지 오래된 듯 하다

시청료를 내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으나 전기 요금에 묻어서 오니 안 낼 방법도 없다.

정권의 눈치를 안보고 오직 국민만 바라보는 영국의 BBC, 일본의 NHK 같은 방송은 아예

기대하지도 않지만 민초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종편보다도 수준이 낮으니 누가 보겠나

학서대(鶴棲臺)라는 팻말을 따라서 가는데 정작 학서대는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약수터(10:56)

이곳은 기도 잘 받는지 무속인들이 갖다논 듯한 향로가 7개나 보이고 땅속엔

고무통을 박아놓고 커다란 바위에는 불조심이란 글씨를 써놨지만 희미하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石間水는 먹기에 부적절하다

약수터 옆 바위 위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곳 위에 있는 KBS와 KT 송신탑 사이에 학서대가 있으나 접근할 방법이 없다

 

학서대란 퇴계 이황 제자인 송암 권호문(1532-1587)이 지었다는 이름으로 학이 노닐고 있는 곳이니

사람은 거기에 오르지 않고 언제나 쳐다보기만 하는 곳이라며 언제나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는 학이

살고 있는 높은 대(臺)를 말한다.

조선시대 유명한 송암선생께서 황홀한 풍광에 도취되어 학서대라 이름 지은 고귀한 명소이건만

방송 통신시설물로 자연이 심하게 훼손된 모습이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곳이다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학서대로 오르기 직전에...

우측의 나무 계단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비에젖은 벌깨덩굴

한참을 돌아서 마루금으로 복귀하니 학가산 등산로 안내도가 있고 좌측으로는 당재로 내려가는 길이다

학가산 등산로 안내도

당재 갈림길(11:05)

맥길은 국사봉쪽으로 향한다

안부에는 국사봉 오름길 우측에 통정대부절충장군중추부사(通政大夫折衝將軍中樞府事)를

지낸 김해김공과 숙부인 영양천씨 묘지가 나온다

맥길 가운데에 MBC 학가산 송신소가 자리를 잡고있다

MBC 학가산 송신소 아래로 우회한다

짙은 안개는 계속 몰려온다

苦行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말발도리는 원래 바위틈에서 잘 자라는 꽃이다

학가산 삼모봉(三矛峰:854m:11:15)

학가산의 3봉중에 하나로 정상의 바위들이 날카로운 창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붙혀진 이름으로

유선봉의 맞은편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청량산과 일월산 북쪽으로는 백두대간의 소백 준령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짙은 안개에 묻혀버린 삼모봉

삼모봉 앞에는 유선봉 안내판이 보인다

유선봉을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우회하여 국사봉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로프를 타고 유선봉으로 올라간다

유선봉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본 삼모봉의 모습

유선봉(遊仙峰:11:19)

국사봉과 삼모봉 사이에 있는 학가산의 제3봉으로 바위와 소나무가 잘 어우러진 봉우리이다

유선(遊仙)이란 신선들이 흥겹게 놀고 있다는 뜻으로 송암 권오문 선생이 지은 이름이다

사방이 보이는 일품이 가히 환상적이라는데 오늘은 짙은 안개로 꽝이다

유선봉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서둘러 국사봉으로 향한다

코 앞의 국사봉도 오리무중이다

비에 젖은 암릉 아래로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우회길을 다시 만난다

학가산 정상인 국사봉이 보인다

국사봉 정상 아래에 있는 안내판

국사봉 이정표(11:23)

철계단을 따라서 국사봉 정상으로 오른다

학가산 국사봉(國祠峰:882m:11:26)

안동시 서후면과 북후면, 예천군 보문면에 걸쳐 있으면 학가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주봉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산의 모양이 ‘날아가는 학과 같다’하여 학가산(山)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이 국사봉은 ‘학의 머리’ 혹은 ‘학 위에 탄 신선’의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학가산의

7개의 봉우리 중에 최고봉으로 학가산의 중앙에 위치하여 장군의 지휘소로 쓰였고, 정상의 우묵한

바위는 난공불락의 자연 보채(堡砦: 적을 막기 위하여 돌, 흙, 콘크리트 따위로 튼튼하게 쌓은 구축물) 

역할을 하였으며 나라(임금)에 제사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영가지 산천 조에는 학가산 국사봉의 아름다운 조망을 기록으로 남겼으며, 능인굴과 함께 신라시대

능인대사가 수행하던 불교성지로 알려져 있고 학가산 사랑이 지극했던 송암 권문호 선생은 이 봉을

적성봉(適星峰)이라 고쳐 부르기도 했으며 또한 국사봉은 2005년 경북 도민 체전의 성화 채화지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안동)에 "학가산()은 하가산()이라고도 하는데, 본부의 서쪽

20리에 있다."라는 기사가 나오는데. 상당히 오래전부터 지금의 명칭 그대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디지털안동문화대전』에 영주에서는 선비봉으로, 안동에서는 문둥이봉으로, 예천에서는 인물봉으로

각각 부르기도 한다고 소개되어 있다. 일설에는 학이 앉았다 날아가는 형상 같아서 학가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산 서쪽 사면은 예천군 보문면에 속하는데, 이곳에 학가산 우래 자연휴양림이 있다.

또 남쪽 사면은 서후면 재품리에 해당하며, 이곳에 통일신라 때 의상이 창건한 광흥사가 있다.

안동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동쪽으로 일월산(), 서남쪽으로 팔공산(), 멀리 북쪽으로

소백산맥을 볼 수 있는 등 영남 북부 지방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학가산 남쪽에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왔을 때 쌓았다는 학가산성터가 남아 있으며.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지명은 그 흔적을 보여준다.

학가산성은 서후면 재품리에서 산성리로 이어지는 느르치 고개 마루에 있어 전략적 요충지를 지키는

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옛 문헌에는 느르치 고개를 산성현()으로 표시하였다

『택리지』에 “안동에 있는 학가산(, 892m)은 두 강 사이에 있으며 산세가 오관산ㆍ삼각산과

흡사하지만 돌 봉우리가 적은 것이 유감스럽다. 산 밑에 풍산()들이 있어서 어떤 사람은 도읍이 될

만하다 하나, 이 세 곳의 산이 모두 위에서 말한 네 곳의 산보다 못하다”라고 기록한 학가산은 안동시

서후면ㆍ북후면, 예천군 보문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학이 나는 형세라고 한다.

이 산에는 공민왕이 쌓았다는 학가산성이 있으며 학가산 자락 석탑리에는 돌무더기로 쌓은 네모난

탑이 있는데, 이 탑에 전설이 내려오는데. 이곳에서 200리 떨어진 영주 부석사에 30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는데, 학가산에서 도를 닦던 능인대사가 그들이 먹을 공양밥을 훔쳐간다는 말을 듣고 그를 죽이기

위해 여기까지 돌을 들고 떼를 지어 몰려왔다고 한다.

그들을 이미 기다리고 있던 능인대사가 그들의 행동을 꾸짖자 비로소 깨달음을 얻은 승려들이 능인대사를

죽이고자 가지고 온 돌을 한자리에 쌓은 돌이 지금의 학가산 석탑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가지』에는 이 산의 한 굴에 능인대사가 숨어 지내며 세속을 멀리하였는데, 스님 1000여 명이

부석사에서 찾아왔으나 끝내 그를 만나지 못하자 각각 돌을 모아서 쌓은 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예천군 보문면 우래리()의 가거리()는 퇴계 이황이 이곳을 지나다가 산천이 아름다워

가히 살 만한 곳(산천가경 가거지지( ))이라고 했다 하여 가거리로 불린다고 한다.

이중환은 이어서 “평야에 내려앉은 평지돌출의 산으로 비록 큰 힘은 없으나 기이한 경치는 적어놓을

만한 것이 많다”라고 기록하였다.

인증샷

안개

 

기다리세요
잠시 후면 떠나리니
머리 풀고 굿거리장단
춤 한 번 춘다고
바람난 여인이라 바라보지 마세요
살다 보면 주절거리는 것보다
신바람 나게 춤 한 번 추는 것이
덜 아프니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송정숙·시인

짙은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지 못한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국사봉 아래로 내려간다

다시 길을 떠난다

등산 안내도를 바라보면서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1:37)

능인굴은 신라 신문왕 때(680년경) 능인대사가 이곳에서 수행과 포교를 하였던 기거처이다.

능인대사는 의상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학가산 남쪽 봉정사와 개목사의 창건주이며,

천등산의 천등굴에 얽힌 전설과 석탑리의 석탑설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승려이다.

 

능인은 국사봉 바로 아래 이 굴에서 생활하며 수행과 포교에 힘써 학가산 주변에 아홉개의 절을

이루어 오늘날까지 '8방 9암자'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니 가히 학가산의 개산조라 할 수 있다.

능인굴 안쪽에는 늘 마르지 않는 신비한 샘물이 솟아 등산객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학가산성(城) 터

학가산(山:870m)의 정상 부근에 있는 산성으로 계곡을 둘러싼 산줄기를 따라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경사가 급한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내외 협축법()으로

쌓았는데, 아래쪽은 비교적 큰 돌로 쌓고 위쪽은 작은 돌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를 하였으며,

높이는 2~4m이며 길이는 약 2,000m이며 성 안에서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과 함께 청자와 백자

조각이 발견되었으며, 《영가지()》의 고려조에 왕이 머문 곳이라는 기록이 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고려 때까지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학가산 북부 사면()에서 내성천()의 작은

지류들이 발원하고 남쪽 사면에는 광흥사()가 있다.

비에 젖은 철쭉길을 따라서 걸어간다

요즘 학가산 등로는 철쭉이 대세이다

갈림길(11:40)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우회길과 신전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일반 등산객의 띠지가 많이 보인다

무명봉(11:41)

좌측으로 내려선 다음에...

조금을 더 걸어가니 무명묘지가 보인다

무명묘지(11:42)

좌측으로 살짝 돌아서 간다

등로 좌측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이다

조망바위(11:43)

지금의 조망은 五里霧中

로프를 타고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우회길을 다시 만난다

꼬리고사리

영양잎은 길이 5-15㎝로서 옆으로 퍼지고 엽병의 길이가 1-3㎝이지만 실엽은 곧추 30㎝이상 자라며

엽병은 뒷면이 적갈색으로 윤채가 있고 표면에 얕은 홈이 있으며 엽신은 거꿀피침모양으로 길이 7-30㎝,

나비 2-7㎝이고 끝이 뾰족하며 중앙에서 밑으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며 엽축은 표면이 녹색이고 뒷면

하반부에는 흑갈색이며 우편은 긴 달걀모양 또는 피침형이고 둔두 또는 예두로서 짧은 대가 있으나

밑으로 갈수록 작아져서 귀같은 돌기로 된다. 잔깃조각은 거꿀달걀모양 또는 타원형이며 짧은 대가

있는것도 있다.

갈림길(11:45)

직진은 예천 학가산과 상사바위 가는쪽... 좌측 내리막길은 맥길인 당재 방향이다

직진으로 올라가 예천 학가산과 어풍대를 들렸다가 되돌아 올 생각도 해봤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 같고 귀경하는 차 시간도 걱정이 되어 아쉬운 맘을 갖고 당재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미끄러운 내리막길에 반가운 나산적 두목님의 흔적을 만난다.

요즘은 산적 두목직을 내려 놓으셨나요?...그래서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부정부패가 판치는 잡넘들의 놀이터가 돼버렸나요?

難世에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과 같은 의적이 되어 잡넘들을 싹 청소를 해주시면 안될까여?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내리막길에서 된통 한번 꼬꾸라진다

남영사지 갈림길(11:47)

예천 학가산과 어풍대 아래에 계곡 깊숙한 곳에 엣 절터의 흔적만 남아있는 곳이다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계속되는 급경사 내리막길

우측으로 꺽어지고...

암릉구간이 보이고...

사면길을 따라서 걸어간다

묘지(12:00)

묘지 우측 아래로 내려가니...

2번째 묘지를 만난다

소나무에서 나오는 맑은 공기가 너무 좋다

이곳에서도 우측으로 가면 남영사지가 나오는 모양이다

등로 좌측에는 대머리 묘지도 보인다

4번째 묘지를 지나니 우측으로 상사바위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상사바위 갈림길(12:04)

전국 각처에 상사바위란 지명이 상당히 많고 유래되는 전설도 많다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생겨났다는 상사바위에 얽힌 전설...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광포전설)의 하나로, 인간의 본성보다 중세의 질서가 우선하던 시기에 형성된 설화이다.

 

사회의 관습, 신분, 윤리의 제약과 한계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거나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여건 때문에 지속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내용이며. 지역에 따른 변이와 관계없이 남녀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인간성이 무시되는 중세의 윤리와 질서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상사바위 전설의 대부분은 같은 의미를 지닌 상사뱀 전설이 포함되는데 특정 개체로서의 뱀이 증거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변치 않는 바위를 증거물로 바꾸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묘지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우측에 사과밭이 나오고 가야할 620봉이 보인다

사과밭 옆길을 따라서 내려간다

물탱크를 지나 좌측으로...

묘지가 나오고...

좌측 능선 나뭇가지 사이로 천주마을이 보인다

안동시 서후면 재품리(舊지명:자품리)에 있는 천주(天柱)마을은 재품리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학가산의 정상 바로 아래에 해당하며 선암사가 이 마을에 있다.

지명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이 하늘 거미가 줄을 친 형국이라 산 모양이느릇하다(느릿하다)’하여

느릇이라 불렀으며, 학가산의 정상으로 오르는 깍아 지른 절벽이 하늘을 받쳐주는 기둥과 같다고 해서

천주라 하였다

농로를 따라서 당재로 내려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느르티 마을이 보이고 그 너머로 가야할 갈마봉이 보인다

느리티는 산성리 동쪽에 있는 고개로 느리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재(堂峴:536m:12:10)

안동시 서후면 재품리 천주마을과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느리티 마을 경계에 있는

고개로 두 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가 있는데 예전 서낭당이 있어서 당재라

부르는 지는 모르겠으나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서낭당의 흔적은 보이지

않으나 천주 마을쪽은 서낭당 흔적같은 커다란 나무 몇그루가 보인다 

당재 이정표

당재 천주마을쪽의 모습

지맥길은 절개지 위로 올라가야 하나 아카시아와 잡목의 저항때문에 오를 자신이 없다

우측으로 좀 내려간 다음에...

 농로를 따라서 폐가가 보이는 곳으로 향한다

뒤돌아 보니 학가산 능선은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고 상사바위가 보인다 

농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안부(12:13)

마루금에 복귀한다...흐린 날씨에 강한 바람이 불어대니 생각보다 상당히 춥다

안부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직진의 천주마을 방향으로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올라온다

임산물 재배지 철조망을 따라서 올라간다

8분정도 철조망을 따라서 가다가...

철조망과 헤어져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620봉(12:31)

정상에는 묘지 1기가 있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철쭉길에 등로는 희미하다

묘지를 지난다

다들 반갑소

계속되는 내리막길

또 묘지를 지나고...

무명봉(12:37)

안부같은 곳을 지나는데 올해 처음으로 홀딱벗고 새(검은등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무명묘지를 지나고...

트랙없이 걷다보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왜 그리도 반가운지 모르겠다

그리 흔하지 않은 하얀 철쭉도 보인다

이곳도 송이가 많이 나는가 보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안부를 지나고...

무명봉(12:52)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묘지가 나오고...

등로 좌측 아랫쪽으로 안동시 풍산읍 죽전리(里) 관음절 마을이 보인다

죽전리는 마을에 대밭이 있어서 대밭·대밭골·죽전()이라 하였으며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에 따라 안동군()

풍북면()에 편입되었으며,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음동()·악대(

악심리()·탑골[]을 병합하여 죽전리()라 하였고,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풍산면()에 편입되었다.

 

마을 뒤로 보문산이 우뚝 서 있으며, 앞으로는 풍산천이 발원하여 흐르며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농촌의 자연마을로는 대밭(죽전), 관음절(관음사), 답실(답곡) 악대, 악심이, 이레이, 탑골 등이 있다.

전은 대밭이 있었으므로 대밭골이라 하던 것이 변한 것으로 후에 죽전리가 되었다.

관음절은 관음사가 있었다고 하며 악심이는 악심사가 있었으며, 악대는 악심사터 뒤가 된다.

탑골은 예전에 탑이 있었다고 하며, 문화유적으로 삼층석탑(악심사탑)이 있다

옹벽을 지나 절개지 아래로 내려간다

오늘 처음 햇빛이 나는데 따뜻한 날씨가 너무 좋다

원통재(400m:12:58~35)

안동시 풍산읍 죽전리 관음골 마을에서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산성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정상에는 수백년이 족히 되었을 법한 느티나무 노거수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고 주위에는 사과밭이 많이 보인다...산꾼들은 산성고개라고도 부른다

원통재에서 바라본 산성리 마을의 모습

원통재 정상을 지키고 있는 노거수

貧寒한 산꾼의 점심상

아침에 산 김밥 한줄에 캔맥주와 과일로 점심을 대신하고 따뜻한 햇볕에

베낭을 베개삼아 15분정도 午寢을 겸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잠깐 사이에 따뜻한 햇볕 아래서의 잠깐의 단잠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수영꽃(꽃말:애정)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하며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들이나 길가에서 자란다.

원줄기는 높이 40~90cm 정도이고 원주형으로 많은 줄이 있으며 홍자색이 돌고 잎과 더불어 신맛이 난다.

근생엽은 모여 나고 경생엽은 어긋나며 피침상 긴 타원형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잎자루가 짧아지고 턱잎은

초상의 막질이며, 5~6월에 개화하며 녹자색의 꽃은 길이 15~30cm 정도의 원추꽃차례에서 돌려나고

짧은 화경이 있다.

 

열매는 길이 2mm 정도의 세모진 타원형으로 흑갈색이고 윤기가 있으며 애기수영’과 달리 화피 열편은

꽃이 핀 다음 자라며 연한 잎은 식용하며 밀원, 관상, 사료로도 이용하는데. 어린순을 데쳐서 나물이나

국을 끓여 먹고 잎은 채소나 샐러드, 샌드위치, 스프, 소스 등에 이용한다. 향미료로 쓰이기도 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山城里)의 모습

산성리는 마을이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과거 이 지역에 산성이 있었으므로 산성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골마, 느리티가 있다. 골마는 산성리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느리티는 산성리 동쪽에 있는 고개로 느리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성마을 뒷쪽에는 상사바위와 그 너머로 어풍대와 예천 학가산이 보인다

어풍대(御風臺)란 송암 권호문(權好文(1532~1587) 선생이 지은 이름이다

어풍이란 바람을 크게 거느린다는 뜻으로 안동팔경 제5편 학가귀운(駕歸雲)

에서는 몰려오는 바람과 구름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쓰여져 있다

어풍대에 오르면 예천읍과 영주시 풍기읍이 한 눈에 보이고 언제나 시원한

바람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시멘트 농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밭 울타리에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지느러미 엉컹퀴

초롱꽃목 국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로 원산지는 유럽과 아시아의 온대지역이다.

도로변이나 논, 밭 근처에서 자라며, 전국에 걸쳐 분포하는 외래종 잡초로 줄기 양쪽에 지느러미 같은

가시가 있는 날개가 붙어 있으며 5~20cm 길이의 잎에도 끝에 톱니 같은 가시가 있다.

 

꽃은 붉은 빛이 도는 자주색 혹은 흰색으로 피는데 어린 순을 나물로 먹는데, 연한 줄기의 껍질을

벗겨 날것으로 먹기도 하며 중국에서는 줄기·잎·뿌리를 이뇨제·지혈제·해열제로 쓰며 관절염 치료에 사용하기도 한다.

농로에서 올라서니 묘지 2기가 나온다

능선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올라간다

베낭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취해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소리에 놀란다

예천에서 왔다는 나물 채취꾼 2명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등로 우측에 묘지가 있고 급경사의 능선으로 라간다

빡세게 올라선 다음에...

오늘 산행중에 가장 힘들게 오르막을 치고 올라왔다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묘지(13:44) 

525봉(13:48)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안부를 지나고...

묘지(13:50)

희미한 소나무 숲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멋진 암릉을 만난다

묘지(13:55)

소나무 숲사이로 지나가는데 이곳도 송이채취지역인지 채취꾼들이 버린 쓰레기가 보인다

송이움막이 나오고 좌측으로는 풍산읍 죽전리 관음절 내려가고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무명봉(14:00)

송이밭 노끈을 따라서 걸어간다

참꽃봉(570m:14:02)

참꽃(진달래) 능선이 시작되는 곳이다

참꽃봉 정상에서 등로로 내려선다

계속되는 송이밭...가을철 산행때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만한 곳이겠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갈림길이 나오고...

575.1봉(14:06)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안부(14:10)

좌측으로는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 방향이고 우측은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 방향이다

안부를 지나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소나무숲 사이의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자연의 혜택을 받는자들이 이렇게 자연을 훼손하다니...

이장한 묘터를 지난다

소나무숲 아래로 내려간다

갈마령(馬嶺:14:20)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에서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보문산 동북쪽에 있으며,

조선시대에 안동에서 예천으로 갈 때 이용되었던 고개이기는 하나, 주로 다니던 길은 아니었다.

주로 다니던 길은 학가산 아래 산성리 느르치를 통하는 길이다.

따라서 옛 문헌에서 갈마령에 대한 기록은 찾기 힘들다. 다만 『조선지지자료』에 '서미동

갈마현()'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명칭과는 한자 표기가 다르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편하게 걷는다

묘지도 지나고...

안부(14:25)

소나무숲 사이로 맥길은 계속된다

오르막길은 시작되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577.8봉(14:35)

 다시 한번 더 치고 오르니 폐헬기장이 나오는데 트랭글 앱에서 이곳을 갈마봉이라고 한다

갈마봉(嶺:623m:14:38)

폐헬기장에 올라서는데 트랭글 앱에서는 이곳을 갈마봉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은 아무런 표시도 없고 갈마봉에 대한 유래도 알 길이 없다

산스크리트어로 갈마(karma)는 업(業)이란 말이며 이 세상에서 주어진 나의 업을 다 닦겠다는 뜻이다

갈마봉을 지나 내려서니 묘지가 나온다

안동권공 묘(14:40)

묘지 우측으로 내려간다

보문산으로 향하는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암봉(14:42)

등로에서 바라본 참꽃(진달래) 능선

안부를 지나고...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보문산으로 오르는 길은 고행길이다

예전에 산불이 난 지역인지 불에 탄 나무들이 쓰러져 있고 잡목들의 저항이 엄청 심하다

천신만고 끝에 보문산 정상에 오른다

보문산(普門山 641.7m :14:50)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와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와 수계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폐헬기장, 새로 설치한 듯한 삼각점, 샌드위치 판넬로 세운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보문산(普門山)은 지명에 대한 명성에 비해 산은 참으로 초라해 보여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아마도 이곳에서 북서쪽에 수계리 절골에 있는 예천 보문사의 지명에서 따오지 안했나 싶다

이 지역의 면소재지 지명도 예천군 보문면이다 

 

보문(普門)이란 佛家에서 쓰는 단어로 부처님이 설한 중도(中道). 실상(實相)의 의미가

모든 것에 두루 통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산불감시초소 뒷쪽으로 가면 예천 보문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예천의 보문면은 보문산에서 이름을 가져다 쓰고 있지만, 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성천

동쪽 영역을 학가산과 보문산이 반분한다고 할 수 있으며 지도상에서 볼 때, 학가산과 보문산

사이의 갈마령이 두 산의 경계를 가르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판단이 그릇되지

않다면 보문면은 보문산 영역보다 더 넓은 지역이 학가산 영역에 속한다고 하겠다.


 

보문산은 산 북서쪽 절골마을에 의상대사가 세운 예천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보문사가 있어

더 유명하며 예천군 수계리에서 보문사를 지나 오르는 코스와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에서

중대바위를 거쳐 오르는 코스가 가장 대표적이며 어느 코스를 택하던 산의 정상 부근에서

양 지역이 경계를 나누고 있다

보문산 정상 삼각점(△21 재설 / 건설부)

뒤돌아 본 보문산 정상의 모습

보문사(예천)

 

예천 보문사...펌

보문사는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 학가산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중창주인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화엄경』을 읽다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유명한 보문사는

부처님 말씀의 사섭법 중 하나인 동사섭(同事攝)을 실천하는 도량이다.

 

「학가산 보문사 사적비」에 창건, 설화, 연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타나 있는데 학가산은

백두대간 줄기 가운데 아름답고 덕성을 갖춘 영산으로 천하의 신령함이 이곳에 모이고 상서로운

기운이 널리 펼쳐져 있음을 신라 문무왕 16년인 서기676년 의상대사가 발견하였다.

이후 구름을 꾸짖고 숲을 헤쳐서 산을 열고 일승(一乘)의 원지(圓旨)를 받들어 정법의 깃발을 세워

삼승(三乘)을 회통(會通)하는 가람을 세우니 바로 이곳이 보문사이다

 

시골마을,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중턱에서 지역민과 함께, 지역민 속에서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절집이 특별한 곳이라기보다 이웃인 듯한 느낌이 나는 곳으로 사적비에도 있듯 비록 웅장하고 위용을

갖춘 당우는 없지만 스스로 큰 욕망을 자제하고 작은 것을 자족하여 큰 것을 다스리는 지혜와 넉넉함이

있고, 멋을 부리는 기교와 세련된 조각은 없지만 앉고 누워서 정적삼매를 이루는 데 지장이 없는 당우와

요사가 신축되고 복원된 곳으로 대찰이라 위축됨도, 쇠락해 불편함도 없이 외갓집같이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부처님을 뵐 수 있는 그런 절집이다

경상북도 예천군 '학가산 보문사(普門寺)'

예천 보문사 극락전(경북 문화재 자료 제203호)...사진 펌

보문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창건한 사찰로 이후 여러 차례 재난을 당해 무너진 것을

고려 명종 14년(1184) 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스님이 극락전을 비롯하여 7동의

가람을 복원하였으나 조선조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고 극락전과 반학루, 삼층석탑만 남아있다

 

극락전은 보문사의 주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측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 지붕이며,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栱包:처마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맞추어 댄 나무쪽)의 앞쪽 기둥은 기둥 위에서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되어있고,

뒷쪽 기둥은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으로 섞어 놓았다

조선 중,후기의 건축물로 두 가지 건축 양식을 사용하여 건축의 시대적 변화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예천 보문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상(阿彌陀三尊像:경북 문화재 자료 제519호)...사진 펌

극락보전에 안치된 아미타삼존상은 조선시대 불상으로 가운데 본존불상은 사각형의 얼굴과

움추린듯한 어깨, 경직된 부피감, 두꺼운 통견을 하고 있으며, 수인(手印)은 향마촉지인

(降魔觸地印:부처가 악마를 항복시키는 인상(印相)으로 왼손은 펴서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무릎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펴서 땅을 가리키는 모습)을 결하고 있으며 몸체보다 두상이 크고

당당한 체구로서 긴장된 느낌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좌.우 협시 보살상은 각각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상은 전체적인 양식은 본존상과 같다

남동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뻐꾹채(꽃말:봄나그네)

중부지방 이북의 산과 들 건조한 곳에 비교적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전체에 흰 솜털이 빽빽하게

덮이며 잎은 깃 모양으로 깊게 갈라지는 홑잎이고. 꽃은 줄기 끝에서 머리모양꽃차례로 달리며, 붉은 보라색이다.

열매는 수과이며, 긴 타원형, 능선이 4개 있으며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해열과 해독 작용이 있어 중국에서는

약으로 쓴다

참꽃 능선 너머로 안동시내가 흐릿하게 보인다

다음구간에 가야할 검무산도 당겨본다

중대바위로 내려가는데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있는걸로 보아 맥길은 틀림없는 듯 하다

가야할 중대바위가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물기를 머금은 마사토 지역이라 이곳에서도 된통 미끄러진다

계속되는 급경사의 내리막길

다시 등로는 사라진다

다음 구간에 오를 봉우리가 보인다

보문산 내리막길은 가도가도 끝이 안 보인다

노루발도 땅을 헤집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산불이 난 지역은 어김없이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 힘들다

힘들게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편안한 등로가 나오고 중대바위로 향한다

관리가 안된 묘지가 보이고...

안부(15:15)

 다시 산불이 난 지역으로 올라간다

 소나무숲을 뚫고 나가니 중대바위가 나온다

중대바위(中隊岩:480m:15:18)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에 있는 커다란 암릉으로 지맥길에서 100m정도 떨어져 있다

군대를 통솔하는 용맹한 장군이 투구를 쓴 모습과 흡사하여 붙혀진 이름이고 암릉 아래에

중대사라는 절이 있어서 중대바위라 불렀다는 설이 있으며 중대바우, 장군바우, 탕건(宕巾)

바우라고도 부른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신성스럽게 받들어지는 골매기와 같은 신성물이다.

실제 이 바위로 인하여 마을에 재앙이 없고 평안하다고 믿고 있다.

이 마을에는 예로부터 높은 관직에 진출한 사람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오늘날에도

판사, 군수까지 나왔고 전쟁에 나간 동리 사람들이 전사자 한 명 없었다는 것은

중대바위의 영험 때문이라 믿고 있다

중대바위 아래에 있는 서미마을에는 '김상헌 유허비'와 '중대바위'서미마을은 풍산현에서

북쪽15리 오적산 남쪽 서미마을에는 서애 유성룡 선생과 청음 김상헌 선생 두 정승이 은거했던

곳으로 유명하며, 특히 서애 유성룡 선생은 이곳 서미마을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중대마을에서 뒤돌아 본 보문산의 모습

중대바위에서 마루금으로 복귀하여 맥길을 이어간다

오치고개로 가는 길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은난초(꽃말: 청초한 아름다움, 총명)

줄기는 10~40cm 높이고 곧게 서며 털이 없고 3~6개의 넓은 타원형이 잎이 어긋나게 자라는데

기부가 줄기를 감싸고 털이 없고 끝이 길게 뾰족하고  5월에 줄기 윗부분에 3~10개 정도의 흰색

꽃이 수상화서로 달리며 포는 좁은 삼각형이고 꽃받침잎은 끝이 다소 뾰족한 피침형이다.

 

꽃을 감싸는 포엽이 꽃차례보다 짧은 점이 은대난초와 차이점이며 잎이 작거나 거의

없으며 화피편이 서로 떨어져있는 것을 꼬마은난초라 하는데 전국 각처의 산야에 분포하는

다년생초본으로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산지의 숲 속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

이곳도 어김없이 등로가 사라지고...

뒤돌아 본 중대바위의 모습

안부(15:25)

등로에서 바라본 서미마을(西里)의 모습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서미 마을은 마을 뒤로 보문산이 우뚝 서 있으며, 앞으로는 개천이

발원하여 신양저수지로 흐르며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서미(서미동촌,이화동), 간데마(중간마), 대목재, 서원몰(서원촌,송몰) 등이 있고, 서원몰은

서간사가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고 문화유적으로 서간사(서간정사) 가 있다

 

서미골은 본래 서미골, 서미동촌이라 하였는데 서애 류성룡이 잠시 살면서 이화동으로 고쳤으며,

병자호란 뒤 청음() 김상헌()이 낙향하여 은거할 때, 백이숙제()가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치려는 것을 말려도 듣지 않자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고 살았던 것과 자신의 처지가 같다고 하여 고사리 ‘미()’자를 써서 서미(西)라 하였다

소나무 숲을 헤치며 내려간다

참꽃 능선을 바라보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440m봉이 나온다

440m봉(15:34)

봉우리에는 단양우공 묘지가 있다

440m봉에서 북동쪽으로 바라보니 영주시내 아파트가 보이고 그 너머로 백두대간 소백 준령이

육안으로 희미하게 보이나 흐릿한 미세먼지로 인해 똑닥이 카메라로는 잡을 수 없는 한계점에 다다른다

동남쪽으로는 중앙고속도로와 신양저수지가 보이는데 버스를 타려면 저기까지 가야한다

다시 잡목을 헤치고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을 지나고...

암봉(15:37)

등로에서 바라본 중앙고속도로와 풍산읍 신양리 신양저수지의 모습

신양리(里)는 마을 뒤로 보문산이 우뚝 서 있으며, 앞으로는 개천이 발원하여

신양저수지로 흐르며,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신양(신양부곡),

거름마, 건넛마(월촌), 도롱골, 땅골(당골,단곡,당곡), 새납골(조납곡), 선바웃골(입암곡),

안마, 안신양, 안흥, 영우골, 오티(오티동,안동오티), 음달마, 주막걸, 창마(창촌) 등이 있다.

신양은 예전에 신양부곡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땅골은 예전에 신당이 있었다고 하며

티는 오티고개 아래 있는 마을이며 창촌은 조선시대 때 창고가 있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등로 주위의 산불난 흔적이 보이고 현지 주민들이 고사리를 꺽는데 여념이 없다

나도 여기서 베낭을 내려놓고 고사리를 조금 수확한다

340m봉(15:45)

340m봉을 지나 최대한 우측의 희미한 길로 내려서는데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천신만고 끝에 내려서니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로 내려선다

시멘트 임도(16:00)

맥길은 우측으로 가야하기에 우측으로 올라가니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하다

도저히 오를 자신이 없어 그냥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우측 능선이 맥길이다

윗쪽으로 보이는 318m봉은 눈팅이로 인증 샷하고...

맥길은 다시 시멘트 도로와 합류를 한다

중앙고속도 보문터널 위(16:08)

이동통신탑이 보이는 오치고개로 내려간다

오치고개(烏峙:270m:16:10)

안동시 풍산읍 신양리 오치동과 예천군 보문면 오암리 오치마을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는 이동통신탑과 면계를 표시하는 안내판, 가건물이 보인다

특이한 점은 다른 시. 군의 면에 있는 마을이 똑같이 오치 마을이다

 

지명의 유래는 마을 형국이 마치 까마귀가 먹이를 쪼아먹는 형국을 닮았다고 해서 까마귀 오()

언덕 치()자를 써서 오치라 하는데 오티는 오치에서 음이 변한 것으로 이 오티고개의 동쪽은

동땅이고 서쪽은 예천 오티인데  고개마루에 서낭당이 있어 당고개라고도 한다.

오치고개 예천군 보문면쪽의 모습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스틱을 접는데 RV 차량 한대가 예천쪽에서 넘어오기에

손을 들었더니만 차를 세워준다...도로공사 소속 차량인데 봉사활동을 하고 가는

중이라면서 신양리까지 간다고 하면서 버스 정류장이 있는 마을회관까지 편안히 왔다

신양리 마을회관까지 태워주신 도로공사 직원분...세세생생 복 받을깁니다

신양리 마을회관(16:22)

貴人의 도움으로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어르신 3분이 손주들과 함께 놀고 있다

이 분들에게 안동으로 가는 버스가 몇 시에 있냐고 물으니 저녁 7시 막차밖에 없다고 한다

헐~~~일단 씻고보자...마을회관 옆 수도가에서 웃통을 벗고 깔끔하게 씻고는 衣冠整齊를

하니까 조금은 살만하다...오늘은 많이 넘어지고 비 온 뒤라 너무 지저분했다

그리고는 베낭속에 남아있는 빵 2개와 떡 한팩을 어르신들에게 드리고는 안동에서 서울을

가야하는데 빨리 가는 방법이 없겠냐고 하니...일단 풍산읍까지 나가면 안동가는 차는

10분마다 있다고 하는데 풍산읍까지 가는게 문제이다.

 

택시를 부를까 고민을 하는데 어떤 할머니가 우리 영감이 집에 있는데 잠깐 태워주라고

할테니 기다리라고 하는게 아닌가 ... 떡 한팩에 이런 횡재를...

풍산읍 버스 정류장(16:55)

어르신이 풍산읍까지 태워 주시는 바람에 편안하게 풍산읍까지 왔다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는 11번 좌석버스가 오는 바람에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버스에 올랐는데 태워 주신 어르신에겐 조금 미안하다

안동터미널 앞 버스 정류장(17:10)

다음 구간 올 때 버스시간을 확인하고...

이곳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때문에 버스 노선이 확 줄여 버렸다

서울가는 버스표가 동서울은 20시, 경부터미널은 20시 10분에 있단다

이곳에서 3시간 이상을 죽쳐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터미널 근처에는 편의 시설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목욕탕을 갈 수도 없고...대합실에서 허공만 바라보면 멍하니 앉아있다

그러다가 화장실을 갔다오면서 보니 성남으로 가는 버스도 있네...

성남으로 가는 버스표를 물어보니 18시 30분인데 표가 2장 있다고 한다 

얼른 표를 교체한다

안동행 → 성남행 버스표

안동에서 성남가는 버스는 안동에서 영주까지 5번 국도를 타고 영주까지 가서 영주에서

10분정도 정차한 다음에 풍기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제2영동고속도로를

따라서 성남까지 오는데 서울보다 가까운데도 요금은 비싸고 시간도 더 걸리지만 그래도

안동에서 1시간 40분을 먼저 출발하니 훨씬 빠르겠다

안동에서 출발하여 성남에 도착하니 저녁 9시 30분이 지났다

신분당선을 타고 개포동역에 내려서 집에 도착하니 10시 10분 경...상당히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