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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내성(문수)지맥(終)

내성(문수)지맥 제7구간 - 비접고개에서 내성천/낙동강 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21. 2. 3.

☞ 산행일자: 2021년 01월 31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미세먼지가 상당히 심함

산행거리: 도상거리 23.2km+날머리 1.3km / 8시간 1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비접고개-125m봉-갈림길-안부-137m봉-진주류씨 가족묘-신촌마을 갈림길-삼거리

                 한어기마을 갈림길-무명봉-무명봉-갈포고개-시멘트 도로-안부-무명봉-갈포지 고개

                 청주정공 묘-무명봉-임도-200.1m봉-227.7m봉-묘지-207m봉-205m봉-봉우재-229m봉

                 231.3m봉-233,5m봉-245.3m봉-캐빈?-190m봉-남양홍씨 가족묘-144m봉-이동통신탑

                 28번국도-동막고개-농로 삼거리-동래정공 묘-갈림길-177m봉-안부-전망대-297.3m봉

                 공주이공 묘-무명봉-무명봉-동래정공 묘-217m봉 갈림길-삼거리-만촌고개-축산김공 묘

                 236.0m봉-무명봉-안부-무명봉-나주정공 묘-매창리 임도-262m봉-안부-332m봉

                 산불감시초소봉-임도 삼거리-유인남원양씨 묘-나부산-안부-283.4m봉 갈림길

                 마산고개-224.2m봉-동래정공 묘-밀성박씨 납골원-181m봉-밀성박공 묘-마산마을

                 동래정공 묘-무명봉-204m봉-무명봉-250m봉-안부-사림봉-적석봉 갈림길-적석봉

                 다시 적석봉 갈림길-안부-무명봉-사림고개-제2전망대-원산성 갈림길-175m봉

                 안부-범등-묘지-무명봉-내성천/낙동강 합수점

소 재 지: 경북 예천군 호명면, 지보면

 

지난주에 6구간을 끝내고 이번주에 내성(문수)지맥을 끝내기 위해서 자료를 준비하는데

수술후 느림보가 되어버린 범여로서는 고민이 많다...남은 구간은 고도가 낮으나 거리가

23km 이상이 남아있어 당일 산행으로는 거리가 멀고, 들머리인 비접고개로 가기 위해서는

06시 40분에 동서울에서 출발하여 용궁, 예천을 거쳐 경북도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이 버스를 타게되면 10시30분이 되서야 산행을 시작할 수 있게 되고, 경북도청이 있는 곳은

신도시라 식당과 교통이 엄청 불편하여 베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아침을 해결해야 할 곳이

마땅잖아 고민하던중에 2020년 12월 17일에 청량리에서 안동까지 ktx열차가 개통되어

2시간이면 안동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토요일 저녁에 베낭을 챙겨놓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청량리발→안동행 KTX열차표

청량리역(05:45)

이른 새벽에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오늘 날씨는 생각보다 그리 춥지않다... 대합실 자판기에서 커피한잔을 마치고

플렛홈으로 향한다

중앙선 KTX 열차 시간표

청량리역에서 안동가는 KTX열차

예전에 청량리에서 안동까지 열차로 가려면 4시간 가량 걸렸는데 지난해 12월에

안동까지 KTX 열차가 생기는 바람에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 들었다고 한다

신 안동역(08:05)

예전의 안동역은 구도심에 있고 낡았지만 그래도 정감이 있는 역이였다

역 광장에는 진성이라는 가수가 불러서 히트친 ‘안동역에서’라는 노래비도 있었는데

지금은 안동역 구도심에서 벗어난 고속버스 터미널 옆에 신 안동역이 새로 생겼다.

안동역에서 도로를 건너 고속버스 터미널 대합실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택시로 오늘 산행 들머리인 비접고개로 향한다 

비접고개(飛蝶峴:09:00)

예천군 호명면 금능리에 있는 고개로 지보면에서 호명면 경북도청 신도시로

이어지는 927번 지방도 지나가는데 신도시 개발로 인해 예전의 고개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고개 좌측으로는 경북 북부권 환경에너지 종합타운과 경북도청 신도시를

건설하는 대보건설 직원들의 숙소가 있는 가건물이 보인다

 

비접고개의 지명유래는 고개 아래에 있는 비접곡 마을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는데

마을의 지형이 나비가 날아가는 모양과 같이 생겼다 하여 비접골이라 하던 것이

변음되어 비정골로 불리어진다고 한다

09시에 비접고개에 도착했으니 버스를 타고온 것에 비하면

교통비를 더 들었지만 1시간 30분정도 산행시간을 앞당긴 셈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9:05)

신도시 개발지를 지나 절개지로 올라간다

경북 북부권 환경에너지 종합타운 전망탑을 바라보면서 공터로 올라간다

공터에 올라가니 아카나무 사이로 인공수로가 보인다

오늘 날씨가 좀 따뜻하니 미세먼지가 심한듯 하다.

신도시 아파트 너머로 지난주 걸었던 검무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인공수로가 지맥길이다...이 수로는 신도시 개발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조만간 이 인공수로도 없어질 듯 싶다

계속 인공수로를 따라서 가다가...

더 이상 갈수가 없어서 올라가려고 하는데 수로가 너무 높아서 사이즈가 적은 범여로선 난감하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수로옆에 쇠파이프 말뚝이 보이기에 말뚝을 이용하여 수로를 탈출한다

수로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갑자기 등로가 좋아지고 문수지맥 안내판이 걸려있다

등로는 지금 공사중...

125m봉(09:13)

안내판을 만난다

갈림길(09:15)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100m 단위로 이정표가 서 있는듯 하다

안부(09:17)

능선으로 올라간다

137m봉(09:20)

137m봉에서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내성(문수)지맥의 마지막 구간은 野性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등로는 희미해지고...

묘지 윗쪽을 통과한다

등로 좌측 아래에 있는 묘지의 모습

묘지를 지나니 등로는 지저분해진다

예천군에서 설치한 문수지맥 안내판은 편안한 길로만 안내하는 모양이다

오리지널 지맥길은 이정표상의 암천리 방향이 아닌 직진길로 이어진다

거친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오른다

묘지 뒷쪽 능선에 올라서니 예천군 호명면 금능리 비접골 

마을이 보이고 양지바른 곳에 진주류씨 가족묘가 조성되어 있다 

 

비정골, 비접곡(飛蝶谷)이라고도 불리우며 새마 동쪽에 있고, 마을의 地形이 나비가 날아가는

모양과 같이 생겼다 하여 비접골이라 하던 것이 변음되어 비정골로 불리어진다고 한다.

진주류씨 가족묘(09:25)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등로 좌측 아랫쪽에는 민가가 보이고...

잡목과 가시나무들의 저항이 너무심해 더 이상 산행을 진행할 수가 없다

우측의 농로로 내려간다

수로 우측의 편안한 길로 내려가는데 조금전에 헤어진 예천군에서 표시한

문수지맥 능선이 나오는데 맥꾼들의 등로와는 다른 편한길로 이어진다

신촌마을 갈림길(09:30)

고공수로가 지나가고 수로 좌측 아래로는 예천군 호명면 금능리 신촌마을로

이어지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신촌마을은 인근에 있는 지보면 암천리

너리바우에 살던 예천 임씨들이 옮겨 와서 새로 마을을 이룬 곳이라 하여 새마라 부른다.

금릉리에서는 가장 늦게 생긴 마을이다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쓸데없는 짓거리...능선에 올라서자마자 곧바로 시멘트 도로로 내려와야 한다

마을길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삼거리(09:35)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등로인 시멘트 도로에서 바라본 예천군 지보면 암천리 들녘의 모습

본래 용궁군 갑상면의 지역으로서 안에 너리바위가 있으므로 너리바우 또는

광암(廣岩) 암천(岩川)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동군

풍서면의 구담리 일부를 병합하여 암천리(岩川里)라 했다.

앞에 보이는 컨테이너 박스를 포스트 삼아 맥길을 이어간다

한어기 마을 갈림길(09:39)

컨테이너 박스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예천군 호명면 한어리 들녘이 보인다

용도 폐기된 인공수로 옆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다시 잡목이 무성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09:42)

반쪽이 날아가버린 무명봉 아래로 내려간다

무명봉 내려가면서 바라본 예천군 호명면 한어리(閑於里) 한기마을의 모습

한어리 한기(閑基)마을은 조선조 중종때, 韓정승이라는 이가 터를 잡고 살았다 하며

지형(地形)이 마치 연꽃이 물에 뜬 형국이라고 하고, 어지러운 세간은 피해 한가롭게

숨어 살면서 세월을 보낼 곳이라 하여 광산 노씨들의 조상이 붙인 이름이라 전한다

수로를 건너 임도로 올라선다

이 표지판은 편안한 길만 안내하는 모양이다

관리가 안된 매실밭을 지난다

잠시 편안한 등로를 가다가...

밭을 지난 다음에 농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희미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09:52)

다시 시멘트 도로로 내려간다

도로로 내려서서 이동통신탑을 포스트삼아 걷는다

밭에서 바라본 호명면 한어리 한기마을의 모습

갈포마을 너머로 보이는 능선이 잠시후에 가야할 맥길이다

갈포고개로 내려선다

갈포고개(葛浦峴:09:55)

예천군 호명면 한어리 한기마을에서 지보면 암천리 갈포마을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옛날에 용궁군, 예천군, 안동군계에 걸쳐있는 갈포마을에 있는 고개로 갈포마을은

예천임씨(醴泉林氏) 세거지이며 너리바우 북서쪽에 있고, 1872년 갈대밭을 개척하여

마을을 개척했다 하여 갈피동 또는 갈포라 부른다고 하는데 이곳부터는 호명면과

작별을 하고 등로 좌.우가 온전히 예천군 지보면으로 접어든다

갈포고개에 있는 이동통신탑

한기마을쪽으로 가다가 좌측의 농로를 따라서 간다

농로로 올라서니 커다란 밭이 나오고...

밭 좌측에는 갈포마을이 보인다

밭 가운데를 지나니 고속도로같은(?) 넓은 임도가 나온다

시멘트 도로(10:00)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좌측의 임도로 올라간다

임도로 올라서서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예천군 지보면 어신리(漁薪里)의 들녘

율리(栗里), 신전리, 갈동리, 어소리, 신류리를 병합하여 어소와 신전의 이름을 따라 어신리(漁薪里)라 했다.

조선조 세조 때 金海金氏 金龍國이 개척하고 마을 앞 연못에서 고기를 낚으며 즐겼다는 곳이라고 마을

이름을 어지리 또는 어소(漁沼)라고 불렀으며 지금은 그 연못이 개울바닥이 되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구전되는 민담이 있다.

 

아주 인심이 좋고 후덕한 평산신씨(平山申氏) 부자가 대대로 이 마을에 살았는데, 원근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친속하게 이 집을 드나들며 마치 다정한 이웃처럼 지냈다. 가난한 사정을 듣기만

하고도 아무 말없이 도와주었으므로 근방에서는 이 부자를 말없이 도와 주는 벙어리라는 뜻으로

申버벌네라고 했다. 이근처 사람들은 감기가 걸려 재채기를 할 때도 “申버벌네집으로 가거라” 라고 했다.

역신도 가난한 사람을 괴롭하지 말고 인심이 후덕한 申버벌벌네 집으로 가서 대접받고 가라는 뜻의

주문이라고 한다

밭 좌측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간다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0:05)

희미한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무명봉(10:07)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에는 망해버린 폐축사가 보이고...

등로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는 갈포저수지가 보인다

묘지를 지나고...

잡풀 지대를 지난다

과수원 너머로 가야할 맥길이 보인다

갈포저수지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갈포지 고개(葛浦池:10:12)

예천군 지보면 암천리 갈포저수지에서 어신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좌측 아래에는 갈포지가 있고, 사과밭이 보이는데 예천군에서 설치한

문수지맥 이정표는 어신리쪽으로 향하지만 진짜 맥길은 과수원 가운데로 향한다

갈포저수지쪽으로 가서 우측의 사과밭을 가로 지른다

사과밭을 지나고...

밭 두둑을 지난다

뒤돌아본 갈포지의 모습

밭을 지나서 묘지쪽으로 올라간다

청주정공 묘(10:16)

잡풀지대를 올라서니...

생전에 기독교인이었던 안동김공 묘지 윗쪽으로 올라간다

능선을 치고 올라서니...

넓은 임도를 만나서 좌측으로 올라간다

좋은 등로에 올라서니 예천군에서 설치한 문수지맥 안내판이 보인다

무명봉(10:22)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10:25)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가니...

등로 가운데 삼각점이 있는 200.1m봉이 도착한다

200.1m봉(10:37)

200.1m봉 삼각점(△예천466/1973재설)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완만한 능선으로 향한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가 보인다

221.7m봉(10:45)

오랜된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보지산(保知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조금은 망칙스럽다

예천군의 면소재 지명을 거꾸로 보면 희한한 지명이 많은데 지보면을 꺼꾸로 읽으면

보0면이고, 풍양면은 양푼면, 개포면은 포개면이니...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하다.

저게 뭐여!

맥길은 소화리 방향으로 향한다

묘지(10:37)

계속해서 임도와 같이 간다

등로 우측으로 다암저수지가 보인다

207m봉(10:40)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묘지 윗쪽으로 올라간다

205m봉(10:45)

좌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무명봉을 넘어서고...

등로는 무쟈게 좋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에 있는 꽤나큰 직동저수지가 보인다

대죽리(大竹里)는 옛날에 용궁현 신상면(龍宮縣 申上面)의 지역이었으며 대나무가 무성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암천리(岩川里) 일부를 병합>하여 대죽리라고 했다

 

저 대죽리에는 말()무덤에는 다음이 같은 전설이 전해져 온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전 대죽리 마을에는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살았는데 문중들 끼리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는데 사소한 말 한마디가 자꾸 큰 싸움으로 번지며 말썽이 잦자

마을어른들은 그 원인과 처방을 찾기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을 찾은 나그네가 마을 뒷산의 모양을 보고 좌청룡은 곧게 뻗어 개의 아래턱 모습이고,

우백호는 구부러져 길게 뻗어 위턱의 형세이어서 개가 짖어대는 모양이라 마을이 시끄럽다고 하며

예방책을 일러주었다.마을 사람들은 나그네가 말한데로 개 주둥이의 송곳니쯤 되는 마을 입구 논 가운데에

날카로운 바위 세 개를 세우고, 개의 앞니쯤 되는 마을길 입구에는 바위 두 개로 개가 짖지 못하도록

재갈바위를 세웠다.

 

또 싸움의 발단이 된 말썽 많은 말()들을 사발에 담아 주둥개산에 묻어 말무덤(言塚)을 만들었다.

대죽리 마을은 흉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여러 문중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이웃사람을 비난하는

()을 한데 모아 구덩이에 파묻는 형식의 장례를 치렀다.그 뒤부터는 신기하게도 다툼질과 언쟁이

없어지고 평온해져 지금까지 화목하게 잘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점점 말()을 믿지 못하는 불신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언어에도 품위가 있다.

 

표독스러운 말로 상대를 공격하고, 모욕적이며 거짓과 과장으로 점철된 충동적인 막말은 분노와 원망,

갈등과 대결을 불러온다.내가 듣고 말하는 것들이 과연 진실한가, 따져 보고 가려 말하는 지혜와 용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예천의 말()무덤은 깨닫게 해주고 있다.

 

말(言)무덤의 전설은 요즘 시정잡배처럼 행동하는 이 나라의 정치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기들을 뽑아준 민초들의 안위에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니편, 내편

가르기를 하면서 내가하면 로맨스요, 니가하면 불륜이라는 이분법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데

저 꼬라지 언제쯤 안 볼수 있을라나...정의, 공정, 청렴을 표방한 현 집권 세력들이 촛불로 권력을

잡고서는 자기들이 그렇게 증오하던 독재세력이라던 군부세력보다 더 독재를 하고 있으니...

너무 함부로 나대지 마소...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소...

아주 편안하게 빠른 걸음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느닷없이 시멘트 도로를 만나고...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묘지가 있는 곳에서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봉우재(10:57)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못안마을에서 어신리 신전마을로 이어지는 임도이다

봉우재에 있는 임도 안내판

임도를 가로질러 등로로 올라간다

등로에 올라서니 잘 조성된 동래정공 묘지가 나온다

묘지 좌측으로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지난주에 걸었던 검무산(맨 우측 표족한 봉우리)과 경북도청 신도시는 요즘 시국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229m봉(11:02)

맥길은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소화리쪽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어신리 신전마을로

이어지는 뚜렸한 샛길이 보이는데 신전(薪田)마을은 다바우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다바우에 살던 심씨(沈氏)가 이곳으로 이주하고, 이 마을이 다바우에서 서쪽이므로

서밭, 섯밭(西田)이라고 불렸다 하며, 또는 땔나무를 채취할 수 있던 지역이라는

뜻으로 신전(薪田)이라 했다고도 한다

231.3m봉(11:07)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233.5m봉(11:10)

233.5m봉 정상 삼각점(△예천 464/2003재설)

완만한 등로를 따라가다가 살짝 우측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는 소나무숲 사이로 이어지고...

245.3m봉(11:14)

245.3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맥길은 좌측으로 향한다

우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 직진으로...

캐빈?(11:19)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었던 곳인데 생뚱맞은 캐빈이 설치되어 있다.

캐빈(cabin)이 뭔지 궁금하여 위키백과사전을 검색하여 보니, 귀틀집(로그 캐빈), 오두막집,

선박의 객실, 선박, 항공기의 선실을 캐빈이라고 한다

 

캐빈을 바라보면서 우측으로 90도 꺽어져 나무 계단으로 내려간다

멀쩡한 등로는 그냥 두었으면 좋으련만...너무 인공적인 냄새가 난다

소화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계속되는 내리막길

190m봉(11:24)

등로가 열리면서 묘지가 나오고 동막고개가 있는 예천군 지보면 소화리가 보인다

남양홍씨 가족묘(11:30)

이동통신탑을 포스트 삼아서 걷는다

고추밭 너머 북서쪽으로는 28번 국도가 지나가고 예천군 지보면 송평리(里)들녘이 보인다

송평리(里)는 마을이 평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송평, 어신들이 있고

송평천이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가마골, 신동, 외평, 거리실, 고슬이 있다.

 

가마골은 옛날에 숯가마가 있던 곳이라기도 하며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긴 곳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신동은 들따라 농사짓기 편리한 곳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외평은 들이 넓고 교통이 편리한 산 밖으로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리실은 외평에 살던 장씨들이 외평 바깥쪽을 다시 개척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맥길은 이정표가 아닌 직진의 숲속으로 향한다

144m봉(11:32)

144m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니 아카시아와 잡목이 태클을 걸어댄다.

남양홍씨 가족묘지에서 헤어진 등로를 다시 만난다

이동통신탑으로 내려간다

이동통신탑(11:36)

이동통신탑을 지나 동막고개로 향한다

28번 국도 지하차도로 내려간다

28번 국도 지하차도(11:38)

28번 국도 지하차도를 빠져 나오니 주택이 나오고 개쉬끼가 범여를 보고 지랄발광을 한다

동막고개에 도착한다

동막고개(東幕峴:11:40)

예천군 지보면 소화리 28번 국도변에 있는 고개로 30여 가구의 남양홍씨(南陽洪氏)가 살고있는 집성촌이다.

옛날 주막거리에서 술을 팔던 구노파(具老婆)가 양지 바른 이곳에 술청을 차리니 술맛이 하도 좋아서

동쪽 주막이 있는 고개란 뜻으로 동막고개가 되었다고 하며, 이 고개마루에서 빗방울이 남으로 떨어지면

낙동강(洛東江)으로, 북쪽에 떨어지면 내성천(乃城川)으로 흘러서 삼강(三江)에 가서야 상봉한다

뒤돌아본 동막고개의 모습

지맥길은 포크레인이 서있는 주택가 마당 가운데로 이어진다

주택가를 빠져나와 농로로 올라간다

과수원 가운데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간다

농로사거리(11:45)

만화리 방향으로 맥길은 이어진다

청색 물탱크가 나오고 우측에 있는 양지바른 묘지에서 5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등로에서 뒤돌아본 예천군 지보면 소화리()의 모습

소화리는 마을이 산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가좌골, 못골, 시골이 있고 동쪽으로 동막지가 있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러 리가 병합되었는데 그 중 소동과 외방화의 이름을 따서 소화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전평, 동막고개, 수동, 배골, 새터, 가현, 장터가 있는데 전평은 밭이 많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동막고개는 양지 바른 이 마을에서 술청을 차리니 술맛이 하도 좋아서 동쪽 주막이

있는 고개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수동은 주막이 있는 마을로 술맛이 좋아 피로가 쉬 풀리므로

오래 살 수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현은 덧재고개 밖에 새로 생긴 마을 터가 흡사 옆에 있는

고개마루처럼 여겨진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터는 구마전에 있는 장터가 떠내려 가자 거기살던

사람들이 옮겨와 형성되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등로 우측으로 새로 조성한 듯한 묘지가 보인다

동래정공 묘(11:58)

묘지를 지나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소나무숲길 사이로 맥길은 이어지고...

갈림길(12:00)

맥길은 우측의 만화리로 이어지는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 등로로 오른다

유인 경주김씨 묘지를 지나 급경사로 올라간다

177m봉(12:03)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예천군에서 설치한 문수지맥 이정표는 꽃길만 걷는 모양이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y자 임도를 만나고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2:07)

나무 계단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선 다음에...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또다시 좌측의 임도를 버리고 나무계단으로 올라간다

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니 데크목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12:14)

전망대에서 바라본 경북도청 신도시와 검무산의 모습

전망대에서 바라본 위천(보현)지맥 능선에 있는 비봉산은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기만 하다

잠시후에 있는 능선의 모습

전망대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무명봉을 지나고...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297.3m봉이 나온다

297.3m봉(12:30)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오늘은 마치 둘레길 걷듯 꽃길만 걷는다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야트막한 봉분의 묘지가 나온다

공주이공 묘(12:23)

小路를 따라서 맥길은 이어지고...

무명봉(12:25)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급경사의 내리막이 시작되고...

잠깐 사이의 급경사를 내려오니 안부 능선이 나온다

무명봉(12:28)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나부산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명봉에 올랐다가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묘지가 보이고...

동래정공 묘(12:31)

뒤돌아 본 동래정공의 모습

동래정공 묘에서 조금을 더 내려오니...

또다른 무명묘지가 나온다

217m봉 갈림길(12:35)

묘지를 지나니 예천군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나오고...

축산분뇨를 야적한 밭이 나오고 이곳에서 217m봉으로 이어지는 직진의 오르막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이곳에서 보면 직진 등로가 튼실하여 맥길로 착각할 수 있으니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야적장 끄트머리에서 숲속으로 들어가는데 바로 아래에는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잡목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간다

묘지가 나오고 묘지 너머로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만촌고개 가는길

삼거리(12:40)

등로 우측 아래에는 만촌저수지가 보인다

만촌고개로 내려간다

만촌고개에서 바라본 예천군 지보면 만화리 만촌마을의 모습

만촌고개(晩村峴:12:42)

예천군 지보면 만화리 만촌마을에서 소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있다.

예전의 지명은 만의동(晩義洞)이었는데 고개너머 소화리에 속한 들 이름이 「마느실」이니

아마 동리 이름과 연관성이 있을 듯하다.

셀카놀이

만촌마을쪽으로 내려가다가 좌측의 농로로 올라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예천군 지보면 만화리(晩華里)의 모습

만화리는 마을이 산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물방아골, 웃골이 있으며,마을 가운데로 개울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대동, 신촌, 만의동, 구태미가 있는데 대동은 마을이 500년전에 개척된 큰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신촌은 대동에 살던 공주이씨가 살림을 나서 동쪽에 새로 터를 잡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만의동은 마을 앞 들이름 마느실에서 따와 붙여진 이름이다

넓은 등로를 지나간다

축산김공 묘(12:45)

묘지 아래로 내려가니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농장앞 시멘트 도로가 나오는데 예전에는 맥길이 농장 가운데로 이어졌는데

지금의 등로는 예천군에서 설치한 문수지맥길은 농장 우측으로 개설되어 있다

나무 계단으로 올라간다

농장 우측으로 개설된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간다

예천군에서 설치한 도로를 버리고 과수원 가운데를 질러간다

다시 등로로 접어든다

능선으로 올라간다

새로이 공사중인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에 삼각점이 있는 236.0m봉으로 향한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무심코 걷다보면 놓치기 딱 좋은 봉우리이다

236.0m봉(13:03)

이 양반!...산에 대한 작명은 알아줄만 하네요...근데 영 믿음이 안가니...

판독이 불가능한 236.0m봉 삼각점

다시 임도로 복귀하여 매창리 임도 방향으로 향한다

계속되는 편안한 임도

공사중이지 않았으면 상당히 잡목의 저항이 심할듯한 구간이다

무명봉(13:08)

등로 서남쪽으로 팔각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13:12)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겠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산적두목님!...잘 계시죠?...군이님도 우째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무명봉(13:15)

안부에서 다시 능선으로 오른다

무명봉에 올라선 다음에...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길은 좋으나 참으로 지루하다

가야할 262m봉이 보이고 맥길은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무명봉을 만나서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잘 조성된 묘지가 보인다

나주정공&인동장씨 묘(13:20~40)

亡者의 밥상을 빌려 가져온 인절미와 우유 하나로 점심을 해결하고 묘지와 묘지 사이에

바람을 피하면서 베낭을 베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독립군의 여유로움을 만끽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매창리(梅倉里) 임도(13:41)

새로 포장된 듯한 시멘트 임도가 나오는데 이곳이 예천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상의 매창리 임도이다

동남쪽 아래로 내려가면 예천군 지보면 매창리 매화촌 마을이고 북서쪽은 마산리 어화마을이다

 

매창리는 마을 뒤로는 산지가 있고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갓골, 한여골, 창동, 내포,

문정자가 있는데 갓골은 마을에 갓바위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한여골은 마을 뒷산이 높고 앞이

막혀서 하늘만 보이는 조용한 마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창동은 옛날에 민창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내포는 낙동강 변 안쪽의 아늑한 남향으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정자는 문씨가 정자를 짓고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낙동강변 언덕 위에 널찍한

정자의 주출돌이 남아있다

 

매화촌(梅花村)은 이곳 어디엔가에 매화낙지(梅花落地)란 명당자리가 있다는데 용궁땅에 매화낙지라는

말과 용성록(龍城錄)의 매화촌(梅花村)이면 응당 그 뒷산은 나부산(羅浮山)이 바람직하다 하여 이름 붙여으리라.

임란(壬亂)을 전후하여 정희복(丁希福)이란 선비가 이곳에 자라잡은 뒤로 나주정씨(羅州丁氏)의 集姓村이 됐다. 

나무계단을 올라서 나부산으로 향한다

이런데 자연 그대로 두는게 훨씬 나을듯한데 예천군에서 뭔 돈지랄인지? 

262m봉(13:47)

안부로 내려간 다음에...

잣나무 조림지가 있는 등로로 올라간다

산불감시초소와 팔각정이 뚜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13:52)

332.0m봉(13:54)

팔각정이 점점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고...산불감시초소와 팔각정이 있는 봉우리로 올라선다

능선 동남쪽 낙동강 건너에는 지난해 9월 27일 나홀로 걸었던 위천(보현)지맥의 비봉산이 보인다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평림리, 덕미리, 양서리 경계에 있는 산이라 다인면 들판에 우뚝솟은

다인면의 진산인 비봉산(山:579.3m)은 신증동국여지승람』(예천)에 "비봉산()은

다인현의 남쪽에 있다. 군과의 거리는 남으로 35리이다."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유사한 기록이 『해동지도』(예천)의 주기에 나타나 있다.

이후 표기자의 변화 없이 『1872년지방지도』(예천)에 '비봉산'이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비안)의 현동면에는 비봉산과 한글로 '비봉산'이 병기되어 있으며 봉평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같은 문헌의 현남면에는 죽림동에 위치한다는 기록이 있어 지명의 강한

존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의 비봉산을 차미산이라고도 했으며 "다인면 평림리,

덕미리, 양서리 경계에 있는 산"이라는 기록을 통해 이칭으로 '차미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잠시후에 가야할 나부산 너머로 문경시 점촌읍의 아파트촌이 보인다

북쪽으로는 예천읍내가 보이지만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다

팔각정에서 바라본 비봉산 아래에 예천군 풍양면 덕미리의 모습

덕미리(德彌里)는 일제 강점기에 금을 캐던 광덕 광산의 터가 남아 있는데, 이는 1930년에

일본인 형제가 비봉산에 개척한 금광으로서 품질 좋은 금이 생산되어서 국내에서도 으뜸가는

광업소였으나 1942년에 폐광되었으며 남원 양씨, 김해 김씨, 해주 오씨의 오랜 세거지이다.

낙동강 너머로 지난해 9월에 걸었던 위천(보현)지맥 능선의 비봉산, 대흥산, 건지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산불감시초소봉(328m:13:58)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팔각정, 나부산 제단과 돌탑등이 있고 사방이 확트여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나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여 아쉽기만 하다

생뚱맞은 나부산 제단...나부산은 이곳에서 1.3km정도 떨어져 있다

거기다가 나부산의 ‘부는 뜰 부(浮)가 아닌 부자 부(富)’ 로 엉터리 표기이다

서쪽의 남에는 상주시의 아파트촌이 보이고 북에는 점촌읍...그 너머로는 백두대간 능선이다

팔각정과 산불감시초소

산불감시초소봉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임도 삼거리(14:04)

나부산 가는 길

능선을 넘어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스카이라인

지맥의 야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예천군의 산림정책

제발 민초들의 고혈을 빨아서 헛지랄 그만하소...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 너머로 비봉산은 멋진 자태로 산꾼을 반긴다

등로 북쪽에 보이는 태양광 단지...자연을 저렇게 훼손하는게 친에너지 정책인가?

유인남원 양씨 묘(14:12)

위천(보현)지맥 비봉산(좌)과 대흥산(우)의 모습

지나온 산불감시소봉의 팔각정을 바라보면서...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나부산 정상에 올라선다

나부산(山:333.4m봉:14:15)

경북 예천군 지보면 만화리와 매창리, 마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봉분조차도

희미한 무명묘지와 통나무에 솥뚜껑을 이고있는 모양의 특이한 형태를 한 정상목이 서 있다

 

낙동강과 내성천이 만나는 지역의 동쪽 연안에 있는 산으로 『여지도서』(용궁)에 "관아 남쪽

20리에 있으며, 안동의 학가산에서 뻗어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지도와 『조선지형도』에서도 지명이 확인되며, 산의 형세가 나비가 날아가는 형상이라 하여

나부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인증샷

이제는 멍석까지 깔아주는구나...맥꾼이 野性을 잃어버리면 안되는데...

가야할 능선의 우측으로는 회룡포가 보이고 그너머로 문경시 점촌읍과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보인다

나무 계단을 내려선 다음에...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다시 토사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깔아논 멍석을 밟으며 내려간다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283.4m봉의 모습

공사판은 이곳에서 멈추고...

등로 정리가 잘되어 있는 맥길을 걸어간다

안부(14:30)

마산리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소나무숲 사이의 완만한 등로로 올라간다

 

283.4m봉 갈림길(14:38)

맥길은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능선에 오른 다음에 내려서니 이정표가 있는 마산고개가 나온다

마산고개(14:43)

북서쪽으로 마산마을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마산고개로 올라선 다음에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224.2m봉(14:50)

이곳에 삼각점이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마산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니 엉뚱한 곳에 삼각점이 있다

224.2m봉 삼각점(△예천456/2003재설)

완만한 등로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온다

처사동래정공 묘(14:52)

마산리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오랫만에 선답자의 흔적을 만난다.

좌측의 마산리로 이어지는 뚜렷한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오니 우측에 납골묘가 보인다

밀성박씨 충헌공파 납골원(14:57)

밀성(密城)의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옛 지명으로 삼한시대 변한(弁韓)의 땅으로 뒤에 가야(加耶)에

속하였으나 신라 법흥왕 때 추화군(推火郡)이 되었다. 757년(경덕왕 16) 밀성군으로 고쳐 밀진(密津)·

상약(尙藥)·오구산(烏丘山)·형산(荊山)·소산(蘇山) 등을 영현(領縣)으로 하였으며 양주(良州)에 속하였다.

 

995년(성종 14) 밀주자사(密州刺使)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지밀성군사(知密城郡事)로 바꾸어

창녕(昌寧)·청도(淸道)의 2군과 현풍(玄豊)·계성(桂城)·영산(靈山)·풍각(豊角)을 속현으로 하였다.

1194년(명종 24) 남로병마사(南路兵馬使)가 동경(東京)에서 반란을 일으킨 김사미(金沙彌)를 밀성의

저전촌(猪田村)에서 격파하여 이를 평정하였다.

 

1275년(충렬왕 1) 조천(趙仟) 등이 반란을 일으킨 일이 있어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낮추었고,

다음해 소복별감(蘇復別監)을 두어 계림부(鷄林府)에 예속시켰다가 뒤에 밀성현령(密城縣令)으로

하였으며, 1390년(공양왕 2) 밀양부(密陽府)로 승격시켰다. 조선 태조 때 밀성군으로 하였다가 뒤에

밀양부로 고쳤다

멋쟁이 소나무를 지나니...

또다른 밀성박씨 묘지들이 나온다

 밀성박씨 묘지 위에서 바라본 나부산(맨 뒷쪽) 뾰족한 부분

묘지위로 올라서 숲속으로 들어간다.

가느다란 소나무가 빽빽한 181m봉 정상으로 올라간다

181m봉(15:03)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묘지가 나오고...

밀성박공묘(15:06)

이곳 지보면 마산리는 밀성박씨 집성촌인지 유난히 밀성박씨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배수장과 최근에 조성된 듯한 묘지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최근에 조성된듯한 유인 경주이씨 묘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만나 마산마을로 내려간다

축사를 지나고...

마산마을을 바라보면서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밭쪽으로 향한다 

등로옆에 있는 소망교회의 모습

서울의 대형교회만 보다가 시골의 자그만한 교회를 보니 정감이 간다

마산마을(馬山村:15:10)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에 있는 마산마을은 마산은 마을 주위에 산이  말과 같이 생겼다 하여 

말은 용맹한 짐승이라 후손이 용맹스럽고 번창하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앞산이 나비와 같이 생겼고 나비를 꽃을 좋아하므로 마을 터를 꽃으로 여겨 화산이라고도 불렀다.

예천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에는 이곳을 마산고개라 해놨고

이정표에는 합수점까지 4.1km가 남았다는 표시가 보인다

마을도로로 올라서니 흙담이 무너진 민가가 나오고 村老 한 분이 뭔가를 열심히

하는데 개쉬끼 한마리가 나를 잡아 먹을듯이 덤비는데 겁먹은 나를보고 웃기만 하신다.

민가를 빠져나와 도로를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서 뒤돌아 본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의 모습

마산리(馬山里)는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에 있는 리()로 마을이 산자락 밑에 자리잡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마산, 완담, 어화, 큰골, 용포동이 있으며 마산은 마을 주위에 산이 말과 같이

생겼다 하여 말은 용맹한 짐승이라 후손이 용맹스럽고 번창하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앞산이 나비와 같이 생겼고 나비를 꽃을 좋아하므로 마을 터를 꽃으로 여겨 화산이라고도 불렀다.

큰골은 양쪽에 높은 산이 있고 그 사이로 깊은 골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포동은 마을 뒷산이

용비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묘지를 끼고 임도를 따라서 올라간다

처사동래정공 묘(15:16)

이정표를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예천군에서 하는 문수지맥 트레킹 도로공사가 이곳에서 다시 시작된 모양이다.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동래정공 묘지가 나오고...

무명봉(15:20)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와서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임도로 내려선 다음에...

새로 설치한 나무 계단으로 올라간다

완만한 등로에는 뫳돼지가 땅을 마구 뒤집어 놨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204m봉(15:34)

우측으로 내려와서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를 다시 만난다

갈림길이 나오고 이정표를 따라서 우측으로 오른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묘지가 나오고 지맥길은 묘지 우측으로 꺽어진다

무명봉(15:40)

예전에 산양삼 재배지였는데 수확이 끝났는지 차양막이 망가져 있다

250m봉(15:43)

오늘은 그런대로 걸을만합니다

소나무숲 사이의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능선 끄트머리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용포마을의 모습

나뭇계단을 따라서 사림봉으로 향한다

안부(15:48)

편안하게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서니...

회룡포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보인다

사림봉 정상의 모습

사림봉(士林峰:256.2m:15:55)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에 있는 산으로 정상 앞에는 내성천을 끼고 도는 회룔포가 한 눈에 보이고

뒷쪽은 낙동강이 흐르고 있는데 사림봉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이곳 예천과 또 가까운 안동지역은 유림(儒林)의 고장이라 행여 조선시대 세조 때부터 갈라지기

시작한 유림(儒林)의 네 파 중의 하나인 사림파와 관련된 것은 아닌지?(범여의 생각中에서)

 

사림파(士林派)는김종직(金宗直), 김숙자(金叔滋),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위(曺偉), 김일손(金馹孫) 등

영남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성종 때부터 관계(官界)에 등용되어 이전부터 정계의 중심 세력을

이루고 있던 훈구파(勳舊派)와 대립하였다

회룡포를 보기 위해서 전망대로 내려간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회룡포(回龍浦)의 모습

회룡포(回龍浦)는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과 지보면 마산리 일대에 있는 농촌마을이자

관광지로 명승 제16호로 지정되었다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물길인 내성천이 휘감아 만들고 있는 육지 속의 섬, 회룡포이다.

멋진 풍경으로 반짝이는 하얀 모래 백사장을 감싸며 돌아가는 옥빛 물길의 아름다운 모습이

인상적인 곳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감입곡류하천으로 영월의 청령포와 함께 유명한 곳이 회룡포이다.

회룡포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길목은 폭이 80m에 수면에서 15m 정도 높이로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치면 정말 섬 아닌 섬이 되어 오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아르방다리로 부르는 간이 다리가 있는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걸을 때마다

덜컹거린다 해서 ‘뿅뿅다리’라고도 부르는데 회룡포 안 의성포마을은 열 가구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로 앞으로는 강이 돌아가고 뒤로는 야트막한 언덕이 놓인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준서와 은서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회룡포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아도는 육지속의 섬마을로 원 지명은 의성포였다.

내성천이 빚어놓은 산과 강은 태극모양을 하고 있어 회룡포를 산태극 물태극이라 부른다

 

회룡포(回龍浦) 지명 유래는 청룡과 황룡이 여기서 만나 하늘로 올라갔는데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는 모습을

빗대 회룡이라고 했다. 원래 이름은 의성포였다. 하지만 인근에 의성군이라는 지명이 있어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용의 마을. 이 주변에만도 ‘용(龍)’ 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10개나 되는데 용궁, 회룡포, 비룡산, 용포, 용포마을,

용두소, 용두지, 와룡산, 용암리, 용두정이다. 회룡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120년 전. 고종 때

의성에 살던 경주 김씨 한 명이 들어와 개간하면서 집성촌이 됐다. 신라가 멸망하면서 같은 김씨인

마의태자가 경주에서 올라와 울며 지나간 곳을 1000년이 지나 경주 김씨 가문이 이 곳에 들어온 것은 우연일까 

사림봉 정상의 전망대에서 회룡포를 감상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아쉬워서 회룡포를 다시한번 뒤돌아 본다

소나무숲길로 내려간다

회룡포쪽을 바라볼 수 있는 벤취도 보인다

호젓한 등로로 내려간다

적석봉 갈림길(16:05)

맥길은 용포마을로 이어지는데 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적석봉을 가보기로 한다

이정표를 지나서 적석봉으로 향한다

적석봉(積石峰:256m:16:09)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 낙동강변에 있는 적석봉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적석봉 갈림길의 이정표에는 0.7km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200여m 밖에 안된다

인증샷 

적석봉 정상에는 돌탑이 보이고 좌측으로 0.5km 지점에 의자봉이 있고 원산성 2.5km라는

이정표가 보이기에 의자봉까지 갔다올까 생각하다가 귀경 차량이 걱정되어 다시 왔던길을

되돌아 간다

다시 적석봉 갈림길(16:11)

이정표상의 용포마을과 장안사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천상의 정기 서린 곳에 비룡()이 꿈틀거리는 곳, 장안사는 천년 신라에 학이 춤을 추듯

뭇 봉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고, 구름을 담아 놓은 듯 비룡이 꿈틀거린다는 비룡산()

정상 가까이에 장안사가 있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금강산 장안사, 양산 장안사, 그리고 국토의 중간인 이곳 용궁면

용궁리 비룡산 장안사가 그 하나로 13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고찰이다

나무 계단을 따라서 용포마을쪽으로 내려간다

안부(16:14)

안부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희미한 등로로 올라간다

무명봉(16:16)

소나무 숲길 사이로 이어지는 지맥길을 이어간다

부뜰이님의 흔적을 만나고...

무명묘지가 나오고...

조금전에 헤어진 뚜렸한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잘 관리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사림고개(16:22)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

우측으로는 회룡포 방향으로 용포마을이 있고 좌측으로는 삼강마을쪽으로

내려가는 비룡교 방향으로 향하는 생태탐방로인데 길은 여러 방향으로 있다.

회룡포에서 삼강주막까지 이어지는 둘레길은 행정안전부의 ‘우리마을 녹색길 명품 베스트 10’에 선정됐다

지맥길은 원산성 전망대 방향으로 이어진다

완만한 등로로 올라가니...

데크목 계단이 나온다

등로옆에 방치된 유인 안동권씨 묘지도 지난다

안동권씨 묘지를 지나 또다시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간다

둘레길같은 생태탐방로 간간히 탐방객을 만난다

돌탑을 지나 회룡포가 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제2전망대(16:35)

전망대에서 바라본 회룡포의 모습

전망대 좌측에는 예천에서 설치한 삼산(三山三水)의 고장 안내판이 있다

흔히들 김천을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라는데 이곳은 물길이 하나 더 있는 모양이다

 

안내판의 내용을 보면 용궁(龍宮)은 신라때는 축산(竺山).원산(圓山)이고, 고려때는 용주(龍州)라고 했다.

지금의 용궁은 고려 현종3년(1012)부터 명명된 지명이다...이름에서 보듯 용궁은 수중의 궁궐을 의미하며

축산은 부처의 나라 인도의 천축국(天竺局)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산은 비룡산에 있는 원산성에서 유래된 것이다

 

용이 휘돌아 감으니 회룡포요, 용이 승천하는 형세이니 비룡산이라고 한다

이렇듯 옛적부터 풍수명당으로 이름난 명산대천 용궁은 문수지맥 학가산, 백두대간 주흘산,

그리고 팔공산 지맥이 마주하고, 선달산에서 발원한 내성천, 황장산에서 발원한 금천,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 등 세 강이 만나 합수한다.

그 삼산산수(三山三水)의 중심에 비룡산 원산성(圓山城)이 있다.

성의 모양이 둥굴어서 따뷔성(또아리성)이라고 했다.

 

강이 해자(垓字)를 이루는 천연요새로 삼국시대에 백제, 고구려, 신라가 번갈아 가며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격전을 벌인 지리적 요충이자, 군사적 전초기지였다

삼산삼수의 명승지 안내판

 

전망대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삼강~회룡포 등산 안내도

원산성 갈림길(16:38)

직진으로 가면 원산성과 회룡대 방향이고 맥길은 좌측으로 90도 꺽어져 범등으로 향한다

좌측의 내리막길에서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수없이 걸려있다.

 

원산성(圓山城)은 예천군 용궁면 항석리의 비룡산(飛龍山:240m)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벽의 둘레가 1,000여m이며, 성벽의 높이는 지형에 따라 1.5~3m로 축조된 토석(土石)

혼축성(混築城)으로 따뷔성이라 불리는 이 성은 군지(郡誌)에는 용비산성(龍飛山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 옆으로는 문경에서 흘러오는 금천(衿川), 영주에서 흘러오는 내성천, 태백에서 오는

낙동강이 합류하는 삼강(三江)을 배수진으로 하고 절벽이 깍아지는 듯 하며, 성의

정상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일목요연( 一目瞭然)하게 조망할 수 있는 자연요새이다

 

삼한시대의 마한이 이 성을 지키기 위해 전투를 벌이다가 백제에 패망했다고 하며

그 후 신라, 백제, 고구려의 접경지대로서 잦은 격전이 있었다고 한다

망루지로 추정되는 시설물이 확인되었으며 주변에 와편과 토기편이 산재되어 있다. 

좌측으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독립군을 격하게 환영한다

편안하게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산행 종료후 걸어야 할 비룡교가 보인다

능선에서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에서 다시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간다

175m봉(16:50)

175m 정상에 있는 이정표와 벤취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6:53)

범등(16:55)

정상에는 이정표와 회룡포 안내도 삼강주막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정상 좌측으로는 의자봉, 적석봉, 사람봉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인다.

이 봉우리를 범등이라고도 하고 삼강앞봉이라고도 하는데 조금은 헷갈린다

범등 정상에 있는 회룡포 안내도와 삼강주막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범등 전망대에서 바라본 삼강주막의 모습

예천군 풍양면 낙동강변에 있는 삼강주막(민속문화재 제134호)은 금천, 내성천, 낙동강이 만나는

삼강 합수점에 있는 주막으로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건물이다.

 

1900년 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 유옥연 주모할머니가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가 2007년도에 1억 5천만 원의 예산으로 옛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새로운 주모와 함께 나들이객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벤취가 있는 곳으로 내려서면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낙동강이 보이고 내성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인 삼강교가 보인다

묘지(17:00)

안부를 지나서...

 마지막 봉우리로 올라간다

무명봉(17:02)

내성(문수)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내리막 능선으로 내려가는데 벤취가 보인다

내성(문수)지맥 합수점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인데 나무가 가려져 조망은 시원찮다.

나무 계단을 따라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마지막 능선을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홀로걷는 산꾼을 반긴다

밭 가운데로 이어지는 데크목 시설은 원산성으로 이어지며 합수점은

좌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서 간다

낙동강이 보이고 조금후에 건너야 할 비룡교...강 건너에는 삼강주막 캠핑장이 보인다

삼강교 아래의 합수점으로 향한다

삼강교 아래로 흘러드는 내성천의 모습

드디어 내성천(우)이 낙동강에 입수되는 내성(문수)지맥 합수점에

도착하면서 범여도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17:15)

백두대간 옥돌봉에서 출발하여 봉화, 영주, 안동, 예천을 거쳐 내성천 우측 산줄기를 따라서

도상거리 115km를 7번에 걸쳐서 이곳에 도착하여 느끼는 이 벅찬 감회...맥꾼이 아니면 못 느끼제.

좌측의 비룡교 너머로는 의자봉과 지나온 적석봉이 보이고 좌측 절개지 위는 범등이다

나와 동행한 베낭과 스틱

인증샷을 남기고 삼강주막쪽으로 향한다

낙동강변쪽으로 걸어가면서 바라본 의자봉의 모습

강변에서 비룡교로 올라서면서 용궁 택시를 호출한다

비룡교에서 바라본 의자봉(우)과 적석봉(좌)의 모습

합수점이 있는 삼강교 너머로 바라본 落照

비룡교를 건너는데 용궁택시가 도착하여 용궁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용궁 버스 정류장(18:10)

이곳은 지난해 7월 금천(국사)지맥을 마무리했던 곳이라 낯설지가 않다.

버스표를 예매하고 나서도 경북도청에서 예천을 거쳐 이곳을 지나는 버스가 오려면

1시간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어 서울가서 친구들과 먹을 이곳 예천양조에서 만든 영탁이

막걸리 3통을 산 다음에 터미널 뒷쪽 공용화장실에 가서 깔끔하게 씻고 바로옆 국밥집으로 간다

용궁발→동서울행 버스표

용궁버스정류장 시간표

늦은 시간에 집에 가봐야 밥먹기가 거시기할 것 같아 저녁을 먹기로 한다

독립군의 쫑파티

국밥 한그릇에 맥주 한병으로 지맥 한 구간 졸업을 홀로 자축하며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19시 10분에 용궁에서 동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진다